컨택트
- 감독
- 조나단 다비
- 제작년도
- 1992
- 출연
- 엘리아스 코테스, 브래드 피트, J.T. 월쉬, 켄 레스코, 브래드 보비
올해로 3년째 하다 보니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를 작성하고 원고 독촉을 받으며 이 원고를 쓰는 일이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 다시, 올해 본 영화 리스트를 뒤적거렸다. 상반기에 개봉한 영화들 중 사사로운 리스트에 넣을 만한 영화들은 대부분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상영했으므로, 이번엔 주로 2017년 하반기 극장 개봉작과 이 시기에 본 영화들을 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올해의 베스트 영화에 넣을 영화들은 되도록 제외하면서 사사로운 마음으로 나만의 2017년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올해의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먼저 애니메이션 한 편,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 너의 이름은 >과 함께 흥행했던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애니메이션 < 목소리의 형태 >, 10대의 왕따 문제를 소재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를 넘어서서, 소통과 다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세련되고 유려하게 담아낸 영화는 별로 본 적이 없다. 10대는커녕 20대 이야기를 다룬 청춘영화조차 대부분 교훈과 감동을 버무려내기 위해 애쓰는 한국영화가 앞으로 넘어야 할 산 너머에 있는 영화다. 그리고 한국영화 두 편, 정윤석 감독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와 김대환 감독의 두 번째 극영화 < 초행 >, 두 감독의 데뷔작과 두 번째 작품을 모두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본인들은 손사래를 치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할지 모르지만 이 두 감독은 한국영화 미래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제 3년째 사사로운 리스트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넣은 할리우드 영화 차례다.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의 최근 경향의 중심에는 마블과 DC의 세계 속에서 존재론적 고민에 시달리며 우울증을 겪고 있는 히어로들이 있다. 이 와중에 험상궂은 얼굴로 못된 인간들을 몽땅 몰아내고 유인원의 세계를 탄생시킨 < 혹성탈출: 종의 전쟁 >은 올해 유일하게 마음을 움직인 할리우드 영화였다. 사실 보고나서야 알았다. 이 영화의 감독이 < 렛미인 >의 미국 버전을 연출한 맷 리브스였다는 걸, 빤한 영화가 좋을 땐 항상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감독으로부터 비롯된다. 다음은 올해 영화제 상영작 2편, 우선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오드리우스 스토니스 감독의 < 여자와 빙하 >, 최근 몇 년간 본 최고의 시적 다큐멘터리였다. 구 소비에트 연방과 주변 나라의 감독들은 몽타쥬의 본질과 그것이 가지는 힘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오드리우스 스토니스 감독은 리투아니아 출신이다. 그리고 올해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데뷔작 중 한 편인 < 신의 나라 >, 영국 출신 프란시스 리 감독의 데뷔작으로 요크셔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국판 < 브로크백 마운틴 >으로 불린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올해 최고의 영국영화 중 한 편임을 확신한다. 내년에 개봉하지 않는다면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보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수연 작가의 첫 TV 드라마 < 비밀의 숲 >.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에는 TV 드라마를 넣을 수 있다. TV 드라마의 형식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매회 정보의 양을 효과적으로 조절한다. 그러면서 세련되게 메시지를 담아낸다. 이수연 작가의 이런 솜씨는 좀처럼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스릴러 영화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영화가 벤치마킹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2017년 하반기 개봉작 3편. 2012년 < 신의 소녀들 >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2016년 영화 < 엘리자의 내일 >,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 아니더라도 이런 식의 차가운 리얼리즘을 표방한 동유럽 영화는 언제든 보고 싶다. 이제 그의 영화는 어떤 경지에 올라간 것 같다. 거기서 내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영국의 린 램지(< 케빈에 대하여 >), 미국의 켈리 리처드(<어떤 여인들>), 프랑스의 미아 한센-러브(< 다가오는 것들 >)와 함께 항상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또 한 명의 여성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 로드 무비 <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 >. 유려하게 움직이면서 포착해내는 청춘의 빛과 그들의 감정은 황홀하다. 이런 클로즈업이라면 어떻게 쓰든 얼마나 쓰든 괜찮다. 그리고 올해 리스트의 마지막 영화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2015)와 데이빗 맥켄지 감독의 < 로스트 인 더스트 >(2016)의 시나리오 작가 테일러 쉐리던의 본격적인 첫 연출작 < 윈드 리버 >다. 볼 날을 기대했던 몇 안 되는 영화였다. 누군가는 실망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올해 선택한 10편의 영화 중 쓰고 싶은 유일한 영화였다. 테일러 쉐리던 테일러 쉐리던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관심 있게 지켜봐 온 미국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이다. 그는 현재까지 쓴 3편의 영화를 통해 기존의 장르 영화에서 보던 흔한 이야기를 다층적인 콘텍스트에 얹어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원래 배우였다. 2005년 <베로니카 마스>를 시작으로 주로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썬즈 오브 아나키>에 출연해 부서장 역을 맡아 주목받았다. 그러다가 2011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저예산 호러 영화 <고통 Vile>을 연출했다. 이 무렵 주로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했던 모양이다. 2012년 즈음에 시나리오 상태였던 < 시카리오 >와 < 로스트 인 더스트 >의 영화 판권 계약을 마쳤으니 말이다. 이렇게 그는 40살이 넘어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길을 열어젖혔다. 그의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진 첫 결과물은 드니 빌뇌브가 연출을 맡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였다. 사실 드니 빌뇌브는 지금이야 가장 주목받는 할리우드 영화감독이지만, 원래 캐나다에서 주로 활동했던 감독이다. 첫 출세작은 8번째 영화 < 그을린 사랑 >(2010)이었다. 거의 한국 드라마 수준에 육박하는 감동의 막장 이야기를 힘 있게 연출하여 특히 한국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할리우드 배우들과 함께 2편의 영화를 더 연출했지만 그는 여전히 캐나다 바깥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2013년이 끝나갈 무렵 테일러 쉐리던의 시나리오 <시카리오>를 만났다. 그의 11번째 연출작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2015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호평을 받았다. 처음으로 영화화된 쉐리던의 시나리오는 이렇게 감독과 작가의 인생을 바꾸어버렸다. 드니 빌뇌브는 이후 < 컨택트 >(2016), < 블레이드 러너 2049 >(2017)를 연달아 연출하며 할리우드에서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감독의 자리에 올랐고, 테일러 쉐리던은 <시카리오> 이후 데이빗 메킨지가 연출을 맡은 <로스트 인 더스트>(2016)가 공개되면서 시나리오 작가로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는 2016년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되었고, 아카데미영화상 및 많은 영화상의 시나리오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그리고 2016년 자신이 각본을 쓴 세 번째 작품이자, 연출을 맡은 두 번째 작품이지만 본격적인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 윈드 리버 >를 완성했다. 2017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었고, 곧바로 칸영화제로 직행하여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미국 변방 3부작 테일러 쉐리던은 스스로가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 < 로스트 인 더스트 > < 윈드 리버 >를 미국 변방 3부작(frontier trilogy)으로 부른다. 세 영화의 배경이 모두 현대 미국의 변방이기 때문이다. 이 3부작은 특정한 공간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이 세 편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먼저 이야기해야할 것은 영화 속 공간이다. 변방은 정부의 사법권이 잘 닿지 않기 때문에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세 편의 영화에 등장하는 범죄는 이런 공간적 배경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동기를 갖게 된다. 여기서 이 삼부작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주제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주’와 ‘정착’이다. 변방은 이주가 용이하고 정착이 어렵다. 그러므로 이미 변방에 정착한 사람들의 삶은 불안하다. 외부로부터 흘러들어온 이주민은 잠시 머물렀다 어제든 떠날 사람들이고, 그래서 그들의 삶 역시 부유한다. 불안한 삶은 폭력을 내재한다. 폭력으로 나를, 내 삶을, 내 가족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주민과 정착민 사이에는 긴장이 만들어지고, 그 긴장이 깨지면 폭력이, 그리고 그 폭력은 다시 범죄로 연결된다. 그래서 이 3부작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폭력’이 된다. 3부작에는 인간에 내재된 폭력이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의 삶은 얼마나 폭력에 발목이 잡혀있는지가 그려진다. 테일러 셰리던은 자신의 영화 속 폭력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종은 폭력적이고, 폭력은 말 그대로 삶의 접착제다. 그러나 폭력을 사악하게 사용하는 유일한 종은 인간뿐이다.” 그는 이런 인식을 기반으로 현대 미국의 변방의 특정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이주와 정착, 폭력을 주제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섬뜩한 스릴러 영화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배경으로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과 그로 인한 폭력의 이면을 차갑게 담아낸다. 불명확한 선과 악의 경계에서 FBI 요원인 여주인공은 원칙을 지키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리고 정부가 개입하여 얻어낸 마약과의 전쟁의 결과물은 다시 전직 마약 두목에게 돌아간다. 선악이 불분명해진 세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미국의 시스템은 영화 속에서 이렇게 정체를 드러낸다. 한편, 멜랑콜리한 감성이 느껴지는 서부극의 느낌이 물씬 나는 범죄 스릴러 영화 < 로스트 인 더스트 >의 배경은 몰락해버린 미국 서부 텍사스이다. 영화는 가족을 위해 은행을 터는 형제 강도와 이를 쫓는 텍사스 두 경찰을 통해 자본주의가 파괴해버린, 그래서 이제는 미국의 변방으로 몰락한 서부의 모습을 노란빛의 화면에 담아낸다. 웨스턴 장르를 통해 찬양받으며, 무자비한 폭력으로 미국 서부를 개척했던 카우보이 모자를 쓴 미국 백인 남성들은 이 영화에 와서 몰락한 채 퇴장한다. 범죄를 처단하고 정의를 부르짖었던 서부극의 총잡이들은 이제 가족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은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로스트 인 더스트> 앞에는 신서부극(네오 웨스턴)이라는 단어가 붙곤 한다. < 윈드 리버 > 그리고 쉐리던이 마지막으로 당도한 곳은 또 다른 미국의 변방,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는 미국 와이오밍 주의 인디언 보호구역 윈드 리버다. 미국 정부의 인종에 대한 차별적이고 폭력적 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쉐리던은 이곳을 잘 안다. 한 때 오랫동안 이런 보호구역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가 영화의 연출을 다른 감독에게 맡기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윈드 리버는 겨울이 되면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의 눈 폭풍이 며칠씩 몰아치는, 끝없는 백색 설원으로 가득한 곳이다. 이 광활한 공간에서 인간은 한낱 점과 같다. 그 새하얀 눈밭에서 처참한 모습을 한 한 소녀의 시신이 발견된다.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FBI의 관할이다. 지역 사법권의 부재는 외부에서 초짜 여성 FBI 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을 윈드 리버로 불러들이고, 여기에 인디언 경찰과 야생동물 헌터 코리(제레미 레너)가 합세한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보여주는 인디언 보호 구역의 삶은 그 곳의 풍경만큼 스산하고 황폐하다. 죽은 채 발견된 소녀는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백인 공사장 인부들에 의해 희생되었다. 광활한 자연의 지루함을 견딜 수 없어 범죄를 저지른 이 백인들은 결국 인디언들에게 유일하게 빼앗아 가지 못한 그 백색의 자연 속에서 죽어간다. < 윈드 리버 >는 이렇게 오래전 인디언을 학살하고 그 땅을 차지했고, 이제 한 인디언 소녀를 잔인하게 폭행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은 백인들의 범죄를 정부의 사법권으로 처벌하지 않고, 인디언 아내를 둔 코리를 통한 복수로 마무리한다. 따라서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가 인디언이 아니라 인디언의 아내를 둔 백인 남성(코리)과 백인 여성(제인)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쉐리던이 가지고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에서의 거주 경험과 인디언 커뮤니티에 대한 깊은 애정, 그리고 영화의 끝에 등장하는 자막을 생각하면, 코리는 분명 쉐리던의 분신이므로, 이 영화를 통해 정말 쉐리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폭력으로 밖에 지킬 수 없는 인디언 보호 구역의 처참한 현실에 대한 것이다. 쉐리던은 <윈드 리버>에 대한 인터뷰에서 작가로서의 자신의 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스토리텔러로서 나 같은 사람이 하는 일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옆에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음에도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세계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라는 예술이 명백하게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점은, 질문함으로써 우리 세계를 비춰보도록 하고, 결국 관객이 질문을 하게 함으로써 어떤 변화를 끌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쉐리던이 각본을 쓴 이전 두 작품을 떠올려보면, 이 영화에는 이런 하나의 사회적 의미 이상의 다양한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쉐리던의 세계에선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캐릭터를 찾기가 어렵고, 각 인물에게는 많지 않지만 정확하고 필요한 대사가 딱 그만큼 주어진다. 그래서 한 시퀀스에서 다른 시퀀스로 넘어갈 때 꽤 대담한데도 불구하고, 인물의 감정에 대한 설명이 거의 필요 없다. 그렇게 인물들은 안정적인 감정의 인과관계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질문을 던진다. 뿐만 아니라 그의 세계에선 공간 자체가 캐릭터화 되어 공간과 인물이 상호작용을 하고, 이를 통해 다른 의미를 끌어낸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윈드 리버라는 공간의 입장에서 보면 살인사건과 이 사건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을 통해 인디언 보호구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정치적 영화가 되지만, FBI 요원의 입장에서 보면 한 여성 초짜 법률 집행인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희생자의 슬픔을 진심으로 이해해 가고, 갖은 고초 속에서 결국 사건 해결에 성공하고 살아남은 과정을 담은 성장영화가 되거나, 야생동물 헌터 코리의 입장에서 보면 딸을 잃었던 경험이 있는 아버지가 딸을 잃은 친구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여 복수에 성공하는 범죄영화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딸을 잃은 아버지 마틴의 입장에서 보면 상실의 고통과 아픔을 견디는 과정을 담은 심리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삼부작이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다른 하나의 주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 주제는 바로 ‘아버지’, 자식을 지키는 데 실패한 아버지다. 적에게 무참하게 가족을 잃은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의 아버지 알레한드로(베네치오 델 토로), 가난 밖에 물려줄 수 없어 형과 함께 은행을 털기로 한 < 로스트 인 더스트 >의 아버지 토비(크리스 파인), 살해된 딸과 마약으로 망가진 아들을 지켜내지 못한 < 윈드 리버 >의 두 아버지 코리(제레미 레너)와 마틴(길 버닝햄), 이 무능하고 실패한 아버지들은 잔인하게 복수하거나, 가족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가만히 슬픔을 체화한다. 결국 쉐리던의 세계는 이 실패한 아버지들을 통해 더 커다란 은유의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테일러 쉐리던이 만들어낸 세계 난 테일러 쉐리던이 미국 변방 삼부작을 통해 구축해낸 세계를 좋아한다. 폭력이 가득한 이 세계는 우울하고 슬프고 황폐하며 차갑다. 끝없는 절망도 섣부른 희망도 없다. 사랑 때문에, 부조리한 구조 때문에 상처받은 영혼들이 살아가는, 그 흔한 로맨스 하나 없는 세계다. 영화 속에 등장한 인물들은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명백하게 변화하지 않을 것 같은 이 세계, 그러나 우리는 이 견고해 보이는 세계조차. 천천히, 보이지 않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세계의 변화는 결국 사람으로 비롯된다는 것도. 지난 수년간 암흑기를 겪었던 우리가 그랬듯, 이 삼부작의 각기 다른 공간 속에서 살아남은 인물들 - <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의 FBI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와 다시 마약 두목이 된 알레한드로(베네치오 델 토로), < 로스트 인 더스트 >의 토비(크리스 파인)과 해밀턴(제프 브리지스), < 윈드 리버 >의 두 아버지 코리(제레미 레너)와 마틴(길 버닝햄)과 살아남은 FBI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 - 도 그럴 것이다. 아니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화 되고 있는 < 시카리오 2: 솔다도 >(2018)와 케빈 코스트너의 출연을 전제로 각본과 연출을 맡은 TV 드라마 <옐로우 스톤>(2018)을 기다리는 나의 이유이다.
2017년은 영화를 보는 게 그렇게까지 즐거운 해는 아니었다. 좋은 영화는 계속 나왔고 내가 놓친 영화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슈퍼히어로와 (김혜리 기자의 표현을 빌린다면) 암청색 양복을 입은 조폭들로 구성된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주류 영화들이 만드는 풍경은 지겨웠고 종종 숨이 막혔다. 사실 올해는 좋아하는 영화보다 싫어하는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이 더 크다. 내 리스트는 언제나처럼 조금 랜덤이다. 아마 평론가들은 드니 빌뇌브가 만든 두 편의 SF 영화 중 < 컨택트 Arrival >보다 < 블레이드 러너 > 속편을 더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영화가 SF로서 매우 게을렀다고 생각하고, 다소 할리우드적으로 통속화되었을지 몰라도 <컨택트>의 성취가 더 크다고 본다. 무엇보다 <컨택트>가 더 훌륭한 주인공을 갖고 있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에 질렸다고 했는데,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싫어하는 건 대단치도 않으면서 쓸데없이 부풀어진 슈퍼히어로 유니버스들이다. 마블과 DC 팬들은 제발 전쟁에서 나를 빼 달라. < 로건 >을 뽑은 것은 이 영화가 슈퍼히어로 유니버스에 속해있으면서 그 우주의 일관성이나 논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마구 질주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나는 < 옥자 >를 SF보다는 <내셔널 벨벳>과 같은 ‘소녀와 동물’을 다룬 전통적인 가족영화의 연장선에서 보았고 그 절절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멜로드라마를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 로우 >는 지금까지 호러 영화가 여성 감독을 외면해왔던 게 얼마나 역사적으로 끔찍한 낭비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사례 중 하나이다. 다큐멘터리를 두 개 뽑았는데, 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허구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보여준다. < 옵티그래프 >가 사적 다큐멘터리의 작은 틀을 통해 그려 보이는 한국 현대사와 < 택시운전사 >와 같은 대작 영화들이 그려내는 지루한 풍경을 비교해보라. < 땐뽀걸즈 >의 생생한 주인공들에 비하면 비슷한 상황을 다룬 한국 학원물의 주인공들은 얼마나 식상한가. 올해 뽑은 두 편의 퀴어 영화인 < 꿈의 제인 >과 < 판타스틱 우먼 >은 모두 트랜스젠더 캐릭터가 주인공이거나 타이틀롤이다. 리스트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彼らが本気で編むときは >와 < 분장 >도 주목할만한 영화였다. 20여 년 전이라면 식상한 방식으로 다루어졌을 주인공들이 조잡한 퀴어베이팅과 위장한 BL 사이에서 빛나고 있다. (< 메소드 >의 욕을 길게 하고 싶지만 그만두기로 한다.) 리스트에서 남은 건 < 배드 지니어스 >와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이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모두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대중적 장르물이고 놀랄 만큼 정통적인 재미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대중영화가 도전적인 아트하우스 영화보다 드물어지고 있는 이 시기에 두 작품은 보다 많이 감상되고 깊이 연구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자. 이 영화의 팬들이 대부분 그렇듯 나는 이 국내 제목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잠재적인 한국 관객들에게 < 칠월과 안생 七月與安生 >이라는 제목이 와 닿지 않을 거라는 걱정 또한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칠월과 안생이라는 두 여자의 14년에 걸친 우정의 이야기다. 둘은 어린 시절부터 단짝친구였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자 둘은 모두 가명이라는 남자를 좋아한다. 갈등이 생긴다. 이 상황은 익숙하기 짝이 없다. 일단 40년대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스럽고, 비슷한 내용을 다룬 국내 연속극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다른 삼각관계 영화와 비교했을 때 가장 튀는 것은 이 관계의 꼭짓점을 이루는 남자 가명의 투명함이다. 달리기가 취미인 멀끔하게 잘생긴 모범생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영화는 이 인물에 대해 끝까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두 주인공이 가명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감정을 깊이 들여다볼 수 없다. 칠월과 안생은 끊임없이 가명의 이름을 언급하지만 가명보다는 가명으로 인해 복잡해지고 까다로워진 자기들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그는 두 주인공의 삶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등장하는 도구적 존재이다. 이렇게 되면 우린 단짝 친구의 남자친구에 대한 안생의 집착이 과연 어떤 종류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둘은 그렇게 오래 알지도 않았고 만난 횟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멀끔하게 잘생긴 모범생이라는 건 좋은 가치지만 그만큼 흔한 가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안생에게 가명의 가장 큰 가치는 단 하나, 단짝 친구 칠월의 남자친구라는 것이다. 안생은 칠월의 모든 욕망을 공유하기를 원한다. 가명은 칠월과 자신을 연결하는 또 다른 다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를 레즈비언 로맨스 영화가 되고 싶었지만 너무 수줍었던 영화라고 생각한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둘의 우정을 연애처럼 그린다.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14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온갖 일들을 겪어도 서로에 대한 둘의 감정은 변하지 않는 상수이며 그들은 아무리 험악한 단계에 접어들어도 이를 당연히 여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지독한 욕은 “이 세상에 너를 사랑하는 건 나밖에 없어!”이다. 요새, 특히 모 시상식장에서 아이유가 자신의 소울메이트 유인나에 대한 감정을 고백한 뒤로 SNS에 자주 등장하는 “A와 B가 친구라면 나는 친구가 없어!”라는 문장은 칠월과 안생의 이야기에도 그럴싸하게 잘 맞는다. 이들의 격정적인 우정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편안한 일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의 친구들이 모두 이렇다면 삶은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왜 우정이 모두 같은 종류여야 하는가. 우정 역시 사랑이지 않은가? 아니,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정은 처음 겪는 사랑의 형태이고 이후 겪을 모든 사랑의 원형이 아닌가? 여러분의 연애 감정이 언제나 우정보다 위였나? 가장 소중한 사람이 언제나 연애 대상이었나? 칠월과 안생의 이야기를 우정으로 위장한 로맨스 영화로 보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분명 이들에겐 서로에 대한 강한 욕망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들이며 이들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로맨스 이야기, 특히 이성애 로맨스와는 다른 길을 간다.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는 삶의 선택, 조금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동아시아 여성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과 그 조건의 돌파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 속에서 칠월과 안생은 언제나 상대방과 반대되는 삶을 사는데, 늘 친구가 하나의 선택을 하느라 놓친 삶의 가능성을 커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선택은 늘 교환이 가능하다. 칠월과 안생이라는 이름을 보라. 영화는 충동적이고 변덕스럽고 자유분방한 소녀에게 安生이라는 이름을, 모범생이며 어른이 된 뒤에도 태어난 도시를 거의 떠난 적 없는 소녀에게 七月이라는 이름을 준다. 이는 초반부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캐릭터의 성격이 생각만큼 당연하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캐릭터 설정은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가, 우리가 이성애 로맨스를 통해 익숙해진 이야기와는 많이 다른 틀에서 전개되는 러브 스토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안생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누군가와 하나가 되어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되기 위해 그 누군가가 포기한 길을 일부러 선택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러브 스토리의 틀은 이성애 로맨스와는 맞지 않는다. 이는 같은 욕망을 갖고 같은 삶의 조건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만약 안생이 남자였다면 이 이야기는 아귀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독하게 얄미웠을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랑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이성애 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극단적으로 제한했고 이 단어가 포함되는 이야기를 편협하게 장르화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랑의 행위와 이야기가 그 장르의 울타리 밖에 버려지거나 울타리 안의 익숙한 몇몇 공식에 맞추어 재해석되게 된다.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의 가장 큰 가치는 이 울타리를 대놓고 무시하면서도 관객들을 거의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는 러브 스토리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칠월과 안생이 그렇듯 우리에게 들려줄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성애적인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그럼 아이유인나는? 남의 사생활이니 우리가 뭐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들도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겠지.
영화 < 콘택트 >가 아닌 < 컨택트Arrival >를 본 관객이라면 오늘 소개할 이 영화의 제목을 듣자마자 ‘논 제로섬 게임’이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나올 텐데 (아쉽게도) 하등의 관계없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지겨울 정도로 자주 만들어지는 ‘가족 영화’이며 스포츠 물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믿고 보는 배우 폴 지아마티가 시작하자마자 러닝을 한다. 집에서는 귀여운 딸이 엄마에게 질문한다. “아빠 뭐 해?” “달리기(Running.)” “왜?(From What?)”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 뜻이 잘 살지 않지만 엄마는 그저 달린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 딸은 그것을 ‘도망’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무엇으로부터?’라고 되물은 것이다. 어쩌다 보니 설명충 같은 이야기를 쓰게 됐는데, 어쨌든 이 간단하면서도 다소 철학적인 조크로부터 이 영화는 시작된다. 관리하지 않아 부러진 관상수도 보여주고, 단란한 가족의 평이한 일상을 보여준 뒤 주인공 마이크, 그러니까 폴 지아마티의 출근길을 배경으로 무심히 감독 크레딧이 뜨는데 그 이름은 토마스 맥카시다. 토마스 맥카시. < 스포트라이트 >로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바로 그 양반이다. 미국은 워낙 변호사가 많은 나라니까, 우리나라의 편의점만큼 많은 게 변호사 사무실이니까 그 대단해 보이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때로는 생활고에 허덕이기도 한다. 여섯 살짜리 딸, 그리고 이제 말하기 시작한 딸. 그리고 현명해 보이는 아내와 함께 생활하는 마이크는 취미 삼아 봉사 삼아 동네 레슬링팀의 코치를 맡고 있다. 이 중년 남성은 웃기는 감초 캐릭터인 친구 테리와 함께 조깅을 하다가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스트레스 때문이다. 스트레스의 이유는 돈이다. 마이크는 레오라는 어느 노인의 변론을 맡았다. 노인은 치매 환자다. 하나 있다는 딸과는 연락조차 하지 않은 지 오래 됐다. 법원에서 금치산 판정을 하고 노인을 요양원에 보내려 하는데 마이크는 자청해서 이 치매 노인의 후견인이 된다. 왜? 돈 때문이겠지. 변호사 사무실에는 돈 들어갈 일 천지. 그리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현재의 수입으로는 턱도 없다. 이 노인의 후견인이 되면 달마다 돈이 나온다. 마이크는 레오를 그의 집에 살게 하겠다고 증언하고는 곧장 요양원에 집어넣어 버린다. 그런데 누군가 마이크를 찾아온다. 바로 레오의 손자 카일이다. 카일을 요양원으로 데리고 가지만 이 노인은 자기에게 손자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마이크는 카일을 자신의 집에서 하루 재우고는 고속버스에 태워 보낸다. 하지만 얼마 후 연락이 온다. 경찰서다. 소년은 골초인 데다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 불량소년이었건 것이다. 그리고 귀찮은 일이 연속으로 생긴다. 마이크는 정의감 넘치는 아내 덕분에 갈 데 없는 미성년자 소년을 떠맡게 된다. 마이크는 할 일도 갈 곳도 없는 카일을 데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레슬링팀의 연습장에 간다. 이런 영화의 주인공이 맡고 있는 팀이라는 게 다 그렇듯이 오합지졸에다가 지지리도 말을 안 듣는 녀석들이다. 이런 영화가 다 그렇듯이 카일은 감독이 정해놓은 대로 레슬링에 관심을 보이고 팀에서 함께 훈련을 하게 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카일은 레슬링 천재였다. 할리우드에서 한 700편쯤 돌아다닐 만 한 이런 설정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묘한 집중력을 가진다. 그 이유는 현재 할리우드 최고의 각본가 중 한 명인 토마스 맥카시가 구성한 시나리오의 힘이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뻔한 플롯 안에 재치있는 농담과 비범한 복선들을 설치하고 또 폴 지아마티를 비롯한 베테랑급 연기자들의 설득력 있는 연기로 봉합한다. 소년 카일 역을 맡은 알렉스 샤퍼는 마치 숀 펜의 어린 시절처럼 보인다. 원래 레슬링 선수였던 카일은 다시 레슬링을 하게 되면서 담배도 끊고 새벽 구보도 열심히 하는 등 성실한 모습을 보이며 불량소년 이미지를 벗어버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마이크의 팀은 이 소년 덕분에 승승장구를 거듭하게 된다. 마이크의 아내 재키는 처음에 좀 꺼려하던 카일에게 자신의 문신을 보여주며 마음을 연다. 부러진 나무도 함께 정리하며 그들은 그렇게 가족이 된다. 이쯤 되면 장애 요소가 하나 등장해 극을 다른 방향으로 틀어 줘야 하는데 그 아이템은 바로 카일의 엄마, 치매 노인 레오의 딸인 신디다. 마약 재활원에 들어가 있던 이 여인은 등장하자마자 가련한 딸 액팅을 하며 2막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 이 글의 목적은 영화의 리뷰가 아니라 영화를 볼 것을 꼬여내는 것이므로 더 이상의 내용 소개는 좋은 감상에 방해만 될 뿐이다. 감독이자 각본가인 토마스 맥카시는 미국에서 흔히 일어나는 가족관계의 상실과 그 회복을 잔잔하면서도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로 조판한다. 언제나 엉뚱한 소리를 해 대는 친구 테리를 이용한 클로짓 게이 농담들이 다소 거슬리는 면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가족 윤리에 대한 짙은 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선한 의도와 악한 의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어른들의 지질한 사정을 그 상태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극의 중요한 맥락으로 활용하고 또 수습한다. < 스포트라이트 >를 감명 깊게 본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 역시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토마스 맥카시는 오래된 차로 캐릭터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기법을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마이클 키튼의 신형 캠리와 마크 러팔로의 구형 캠리를 대조하는 방법을 썼다면 이번엔 마이크의 구형 스바루를 등장시키는 것만으로 그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드러낸다. 소박하고 또 귀여운 유머 감각은 영화 전편을 휩싸고 있다. 감독은 <스포트라이트>에서, 널리 알려진 사건을 관객들에게 환기하고 다시 주목하게 만든 바 있다. 전형성 강한 스토리라인을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볼만한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토마스 맥카시는 잘 알고 있다. 훔치고 싶은 재능이다. PS. 존 본 조비를 좋아하는 분들이 보면 대폭소를 터뜨릴만한 장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