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춤으로 通 [통]하라_컬러풀 국제 춤 페스티벌
- 제작년도
- 2008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소피아 코폴라, 2003)는 소통을 통해 위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도쿄라는 낯선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삶의 고독 속에서 표류하는 외로운 두 미국인 남녀의 정서적 교감을 그린다. 중년 배우 밥(빌 머레이)은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을 방문했지만,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 이질감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오랜 결혼생활을 이어온 아내의 시차를 고려하지 않은 연락은 그에게 공허함과 권태로움만을 안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사진작가 남편의 출장에 동행해 도쿄에 머물고 있지만, 홀로 보내는 나날 속에서 막연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혼란을 느낀다. 두 인물은 공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단절을 겪으며 심리적 고립에 빠져 있다. 영화는 초반 엘리베이터 장면부터 밥을 외부인으로 설정하는 위트 있는 연출의 묘미를 보여준다. 좁은 공간 안에 왜소한 체구의 동양인 무리 사이 홀로 우뚝 솟은 밥의 대비되는 신체 비율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아무런 대사 없이 그가 완벽하게 ‘이방인’이라는 걸 보여준다. 구도와 비율만으로 메시지를 센스 있게 전달하는 장면이다. 밥이 홀로 머무는 호텔방은 고독과 침묵이 가득하다. 지극히 미니멀하고 한없이 적막함이 느껴지는 온기 없는 방이다. 무기력한 밥을 응시하는 카메라는 무심하게 정지한 상태로 여백을 많이 둔다. 배우의 체구가 큰 편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밥의 시선으로 보이는 일본 TV 프로그램 속 기이하고 과장된 이미지들은 그의 문화적 소외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샬롯이 호텔방에서 바라보는 창밖 도쿄 도심은 차갑고 건조하다. 넓게 펼쳐진 도심뷰 창문 앞에 홀로 배치된 샬롯의 뒷모습 샷들은 창문 너머 세상에 대한 동경이거나 혹은 철창 같은 호텔방을 벗어나 해방을 갈망하는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성 꼭대기에 갇혀 있는 고립된 공주처럼 창밖 배경과 인물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고독감은 증폭된다. 방 안에 흐트러진 옷가지와 정리되지 않은 소품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그녀의 내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듯하다. 종이꽃으로나마 방 안을 꾸미려는 샬롯의 행위는 삶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샬롯이 우연히 꽃꽂이 수업 공간에 들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교감하며 꽃 한 가지를 꽂는 장면은 소소하지만 묘한 울림이 있다. 이 장면은 비언어적 교감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3 )", IMDb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샬롯의 시선으로 보이는 혼잡한 도심 풍경을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불안하게 보여준다. 건물의 파사드 광고에 등장하는 공룡들의 이미지는 그녀가 있는 공간을 더더욱 낯설고 모호한 공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홀로 지하철을 타고 찾아가는 신사 또한 서양인에게는 낯설기만 한 공간일 것이다. 영화는 뜻을 알 수 없는 일본어 네온간판들이 가득한 번화한 야경 거리, 파친코 상점, 가라오케 같은, 이들에게 더욱 낯설게 다가올 공간 속에 인물들을 배치한다. 캐릭터의 감정적 소외를 컬러풀한 조명의 시각적 요소와 시끄럽고 알 수 없는 언어의 청각적인 요소에 대비시킨다. 도시의 혼잡함과 인물의 고요함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그들의 정적인 내면을 부각시킨다. 화려하고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도쿄라는 배경은 영리하면서 감각적인 선택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공간을 설정했더라도 이야기는 성립되었겠지만, 의사소통도 감정소통도 할 수 없는 철저한 고립 상태의 이방인으로 만들 수 있는 배경을 택한 거다. 일상으로부터 격리된 낯선 문화 속에서의 혼란과 외로움의 정서가 배경과 어우러져 한층 더 밀도 있게 시너지를 낸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IMDb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단절된 상태였던 이들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긴밀하게 느낀다.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공감대로 맺어지며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이제 프레임 속에서 그들은 각자 홀로가 아닌 둘이 함께 존재한다. 이들이 소통해 나가면서 서구적 시선으로 바라보던 어색하고 불편한 낯선 나라의 문화는 다른 시선으로 바뀐다.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문화를 향유하고 유쾌하게 도시를 경험하며 즐긴다. 홀로 경험하는 도쿄는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둘이 함께 하는 도쿄는 새롭고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지치고 무기력한 눈으로 바라보던 낯선 풍경은 술에 취해 혼미한 시선으로 몽환적이고 매혹적인 풍경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맞이하는 해방감과 설레임이 도쿄거리의 흐릿한 불빛들과 함께 자유로이 부유하는 듯 보인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외피를 썼지만, 이들의 관계는 이성 간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모호한 플라토닉 우정에 가깝다. 한 침대에 누워 함께 밤을 보내는 장면에서 샬롯의 발에 살며시 올려놓은 밥의 손은 묘하게 에로틱하면서도 숭고함마저 깃든다. 무언의 위로와 정서적 교감이 정점으로 느껴지는 최애 장면이다. 마침내 이들은 이렇게 숭고하게 그토록 원하던 깊은 잠에 들며 평온한 밤을 맞이한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이들은 계속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서로가 외롭지도 권태롭지도 않기를 바랄 것이다. 진솔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우수에 찬 마지막 시선은 서로를 보듬어주고 관객들을 위로한다. 이들이 작별하는 엔딩의 도쿄 도심 풍경은 이전에 보여줬던 도심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이전의 도심이 화려한 간판 불빛에 눈부시고 정신 없이 번쩍였다면, 엔딩의 도심은 차분하고 서정적인 감성이다. 동시에 두 인물의 정서적 변화도 느껴진다. 영화는 시종일관 말을 아낀다. 하지만 우리는 설정된 무드의 공간 안에 배치된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한다.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도 탁월하지만 침묵 속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언어 대신 이미지로 말하는 느낌이다.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인물의 공허한 심리묘사를 섬세하게 연출한 영화라는 생각으로 공유하고 싶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스파이크 존즈의 < 그녀(HER) >(2013) 역시 인물의 감정선을 반영한 영상미가 인상적이었는데,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음에도 그 파동이 강하게 전달된다고 느꼈던 소피아 코폴라의 초기 작품을 최종 선택하게 되었다. 공간이 단지 보기 좋은 배경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내러티브와 연계되어 인물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표현하는 서사의 일부로 작용할 때 미장센의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런 미술을 지향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마친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서성경(미술감독) l 이야기에 숨결을 더하는 미장센을 지향합니다. < 사바하 >(장재현, 2018), < 가장 보통의 연애 >(김한결, 2019), < #살아있다 >(조일형, 2020), < 원더랜드 >(김태용, 2024), < 파묘 >(장재현, 2024) 미술감독.
철콘 근크리트? 개봉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건만, 좀처럼 입에 찰싹 달라붙지 않는 몇 안 되는 제목 중 하나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철근 콘크리트를 잘못 발음하는 것에 착안해서 붙여진 제목이란다. < 철콘 근크리트 >는 일본만화계에서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마츠모토 타이요의 3부작 동명 만화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속 세상은 캐릭터와 배경뿐 아니라 대사와 성우 목소리까지 하나하나 섬세하게 묘사되면서 동시에 독창적인 스타일과 연출로 작품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마츠모토의 개성을 그대로 뿌려 놓았다. 여기에 신의 한 수는 그의 작품이 스튜디오 4도씨와 만났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4도씨는 전통적인 드로잉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극복한 독창적인 디지털 애니메이션 테크닉으로 가장 주목받아 온 일본의 크리에이터 집단이다. 이들은 모리모토 코지 감독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2D 기법과 3D 디지털 기술을 넘나들며 독특한 화면구성과 실험성 짙은 영상미를 선보여 왔으며, 일본 내에서도 차별화된 스타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특히 이 작품은 스튜디오 4도씨 설립 이래 처음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하에서 미국 LA 출신의 마이클 아리아스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물의 밀도가 가장 높은 온도가 섭씨 4도씨라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스튜디오 4도씨’라고 작명한 것처럼 밀도 높은 작품을 창작하겠다는 이들의 의지와 철학이 이 작품 곳곳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원작이 기괴한 카메라 앵글을 통해 초현실적인 톤을 보여줬다면, 애니메이션에서는 인간의 눈으로 그릴 수 없는 세상을 광각 렌즈의 독특한 화각으로 도시의 건물들과 거리의 골목골목을 사실적으로 변주하며 빼곡히 담아내고 있다. 이야기는 불량배들과 노숙인들이 모여 사는 다카라쵸라는 곧 개발을 앞둔 무방비 도시에서부터 시작된다. 집도 절도 없이 거리를 떠돌며 지내는 고아 소년 쿠로와 시로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이다. 도시의 빌딩 옥상과 철제 난간을 놀이터 삼아 자유롭게 휘젓고 뛰어다니는 두 소년의 모습은 흡사 파쿠르 선수를 연상시킨다. 쿠로(흑)와 시로(백)는 폭력과 순수, 어두움과 빛의 양면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둘 사이에는 단순히 고아라는 관계 그 이상의 끈끈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마음속 ‘검은 그림자’를 품고 사는 쿠로는 ‘순수’를 상징하는 시로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시로에게 더 많은 정신적 위로를 받는다. 혼자 떨어져 있을 때 둘은 서로 불안하다. 이들은 뭉쳐야 비로소 하나로 완벽해진다. 상처받고 병들어가는 타락한 도시에서 생존을 위한 고아 소년의 몸부림은 아이러니하게도 잔혹함을 일삼는 어른들보다 때때로 더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온갖 부조리의 온상이 되어버린 악의 도시에서 타락한 어른들의 이기심은 더 이상 이들을 순수한 세계에 남아있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병들게 한다. 오염된 사회에서 인간성 회복의 실마리는 고아 소년들의 유일한 바람인 비행기를 타고 바닷가 어딘가에서 살고 싶은 꿈으로 치환된다. 다행히 상처받은 어린 영혼들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깨닫고 다친 마음을 치유하며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지만 그 과정 속에서 소년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폭력은 상당히 잔혹하고 가학적이다. 이 때문일까? 이 작품과 만나는 내내 컬러풀하고 환상적인 연출과 영상미로 눈의 호사는 맘껏 누렸지만 가슴 한구석을 파고드는 먹먹함은 아직도 오랜 잔향으로 남아있다.
실벵 쇼메 감독의 2003년 장편 애니메이션 데뷔작 < 벨빌의 세쌍둥이 >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매 장면이 기괴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실벵 쇼메를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 반열에 올려놓은 이 작품이 올가을 13년 만에 국내 정식 개봉했다. 혁신적이라 평가받았던 연출은 지금 봐도 탁월하다. 무엇보다도 애니메이션 < 일루셔니스트 >와 실사영화 <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으로 작품 세계가 확고해진 실벵 쇼메의 13년 전이 거기 있다. 2D 애니메이션의 미학을 추구한 젊은 애니메이터의 초심, 씨네필로서의 취향이 한껏 녹아 있다. 이야기는 파리 외곽에 사는 노부인 마담 수자와 외로운 어린 손자 챔피언이 ‘벨빌의 세쌍둥이’가 나오는 TV 쇼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작된다. TV를 봐도, 강아지를 안겨줘도, 통 웃지 않는 소년 챔피언. 실은 자전거에 관심이 있다. 마담 수자가 자전거를 선물하자 신나게 자전거를 타던 챔피언은 세월이 흘러 사이클 선수로 성장한다. 하지만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에 참여했다가 대회 도중 마피아들에게 납치당한다. 곧 반려견 브루노와 함께 손자를 찾아 나선 마담 수자. 손자를 납치한 마피아들의 배를 쫓아 낯선 도시 ‘벨빌’에 도착하고, ‘왕년의 스타’ 세쌍둥이를 우연히 만난 후 함께 챔피언 구출 작전에 돌입한다. < 벨빌의 세쌍둥이 >는 그림이 주는 힘이 압도적이다.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니콜라 드 크레시의 영향을 받은 그래픽 스타일의 배경부터 캐리커처 느낌으로 그려진 캐릭터들까지 개성이 뚜렷하다. 게다가 모든 캐릭터들은 대사가 거의 없다. 그 대신 캐릭터마다 각자 독특한 동작으로 성격을 드러내고 감정을 전달한다. 마치 컬러풀한 무성영화를 보는 기분인데, 실제로 자크 타티,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을 사랑하는 ‘씨네필’ 실벵 쇼메가 의도한 바다. 그로 인해 이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사람의 일상과 움직임, 사물의 쓰임새를 예민하게 관찰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애니메이터들이 캐릭터의 액션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시간 집중할 수 있도록(!) 자동차, 자전거, 마피아들이 타는 배 등등 ‘탈 것’은 3D로 작업했다. < 벨빌의 세쌍둥이 >는 그렇게 캐릭터의 움직임과 이미지 자체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면서 사운드를 절묘하게 조화시킨다. 대표적인 장면이 마담 수자와 세쌍둥이가 ‘벨빌’의 다리 밑에서 처음 만나 연주를 하는 장면, 그리고 세쌍둥이의 레스토랑 공연 장면이다. 마담 수자가 세쌍둥이와 우연히 만나서 함께 ‘벨빌 랑데부’를 연주하는 첫 장면은 그야말로 기발하고 유쾌하다. 이 장면과 중반 이후 나오는 세쌍둥이의 레스토랑 공연 장면은 실벵 쇼메 감독이 ‘스톰프’ 공연에서 영감을 얻었다. 레스토랑 공연에서는 세쌍둥이가 신문을 접었다 펴고, 냉장고 안 받침대를 튕기고, 진공청소기로 소리를 내서 음악을 만든다. 여기에 마담 수자가 자전거 휠을 실로폰처럼 두드려 환상적인 합주를 완성한다. 그런데 이 떠들썩한 순간, 마담 수자는 매서운 눈초리로 마피아 보스가 읽고 있던 신문 기사를 통해 그들의 음모를 알아낸다. 몇 개의 컷으로 짧게 표현되지만 애니메이션다운 편집 효과를 확실히 보여준다. 일상적인 장면들도 지나칠 수 없다. 마담 수자가 훌쩍 커버린 챔피언과 극한 훈련을 하고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 장면은 대사 없이 오직 사운드만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창문 밖으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반려견 브루노가 짖는 소리, 축음기의 음악 소리 등으로 집안의 공기와 일상의 리듬을 전달한다. 마담 수자가 진공청소기로 챔피언의 다리를, 잔디 깎기로 챔피언의 등을 자연스레 마사지해주는 광경은 또 어떤가. 자크 타티와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이 봤다면 흐뭇하게 웃어줬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세쌍둥이 자매가 자기 전 침대에 앉아서 TV로 실사영화(자크 타티 영화 < 축제 >의 한 장면)를 보며 깔깔대는 광경도 기막히다. 영화 후반 마피아들과의 엄청난 추격전까지, 말없이 많은 것을 말하는 이 기묘한 유머 감각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다. 공간 디자인도 눈여겨 볼만하다.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역시 ‘벨빌’이다. 1960년대 캐나다의 몬트리올과 퀘백, 미국 뉴욕의 건축 양식을 혼합해 디자인했다. 2m 길이의 종이에 애니메이터들이 직접 초고층 빌딩들을 그린 후 스캔을 해서 작업한 도시 전경이 압권이다. 뚱뚱한 자유의 여신상이 빅 버거를 들고 있고, 거리엔 온통 비만 체형의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벨빌’은 마담 수자가 살아온 파리의 동네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실벵 쇼메는 자신이 경험했던 미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차이를 ‘벨빌’을 통해 다양하게 풍자한다. 그곳에서 유독 호리호리하게 나이든 세쌍둥이는 자신들처럼 대도시의 외곽에서 수수하게 살아온 마담 수자와 의기투합하는데, 이들을 둘러싼 묘한 대구와 공통점, 아이러니한 설정은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한다. 실벵 쇼메는 자신이 사랑해온 문화적 유산, 어린 시절 파리 외곽에서 살았던 추억, 애니메이터가 된 후 영국과 캐나다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한편의 애니메이션에 담았다. 유쾌하고 멜랑꼴리한 스릴러 < 벨빌의 세쌍둥이 >는 오랫동안 아끼고 추구해온 많은 것들이 일상에 뿌리를 둔 상상력을 통해 하나가 된 작품이다. 그리고, 그 상상력이야말로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이 세상을 들여다보는 좋은 창이 되는지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