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만도
- 감독
- 파울 로빈손
- 제작년도
- 1988
- 출연
- Craig Alan, 데이빗 라이트, 맥스 로렐
각자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생각해야 할 수많은 올해의 영화들이 존재하지만, 이 지면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헝가리 감독 라즐로 네메즈의 데뷔작 < 사울의 아들 >이다. 개인적으로 더 강렬한 감흥을 받았던 허우샤오시엔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아름다운 영화, < 자객 섭은낭 >과 < 찬란함의 무덤 >을 제쳐두고 이 작품을 소개하려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두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에서의 관람 기회가 요원할 것 같았다(고 적었으나 이 글을 쓴 이후 <사울의 아들>이 내년 2월경 개봉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둘째. 홀로코스트라는 위험한 소재 속으로 대담하게 뛰어든 이 영화의 용감함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셋째. 아직은 낯선 라즐로 네메즈라는 이 신인감독의 이름을 더 많은 한국 관객들이 기억했으면 했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사사로운 이유를 들자면, <사울의 아들>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중 무언가 새로운 것이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내게 처음으로 줬던 작품이었다. 영화제 초반부 상영작이긴 했지만,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사울의 아들>로부터 받았던 방식의 충격과 감흥을 선사하는 작품은 보기 드물었다. < 사울의 아들 >은 1944년,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손더코만도로 일하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 사울의 이틀을 조명한다. ‘손더코만도’라는 낯선 용어에 고개를 갸웃할 틈도 없이,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사울이 이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 어떤 일을 해오고 있었는지 알려준다. 한무리의 유대인들이 알몸으로 샤워실에 들어간다. 사실 그들이 샤워실인 줄 알았던 그곳은 가스가 뿜어져나오는 살육의 공간이다. 이윽고 문이 닫히고, 끔찍한 비명과 절규가 들려온다. 모든 것이 끝나면 사울의 업무가 시작된다. 그는 능숙한 손길로 수감자들이 벗어놓은 코트에서 귀중품을 챙기고, 알몸의 시체들을 가스실 밖으로 끌어낸다. 온갖 분비물로 더럽혀진 가스실 바닥을 닦는 것 역시 사울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손더코만도들이 가스실을 비워내면 또 한 무리의 유대인들이 그곳으로 들어간다. 학살은 그렇게 도돌이표처럼 계속되고, 유대인 포로이지만 수용소 안에서 나치에 의해 고용된 잡역부(손더코만도)인 사울은 기계적으로 죽음의 흔적을 지우는 일을 반복한다. 그에게 죽음은 일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초점 없는 일상을 살아가던 사울에게 뚜렷한 목표가 생기는 순간이 찾아온다. 수용소에서 한 남자아이의 시체를 보고 나서부터다. 사울은 그 소년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소년에게 유대인으로서 합당한 장례를 치러주고 싶어한다. 사울은 아이의 시체를 화장터로부터 빼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수용소 안에서 아이의 장례를 치러줄 랍비를 백방으로 찾아다닌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용소 안에서 나치에 대한 반란을 준비하던 손더코만도 일행을 돕는다. 사울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극영화를 통틀어 가장 당혹스러운 주인공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미 죽은 자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죽은 자의 육신을 합당한 방식으로 거두기 위해 종종 동료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그의 행동은 홀로코스트를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윤리의 질문 저 너머에 있다. 사울에게 살아남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가 반드시 해내야겠다고 결심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내는 것이다. 그 임무가 이치에 맞지 않고 때로는 광기에 가까운 집착처럼 느껴지더라도, 인간성이라곤 절멸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사울의 행동은 가장 인간적인 제스처로 다가온다. 홀로코스트를 재현하겠다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도 여타의 홀로코스트 영화와 < 사울의 아들 >이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아우슈비츠에서 행해진 수많은 살인과 잔혹 행위들의 참상을 재현하고 기록하는 건 이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곳에 무엇이 있게 될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게 홀로코스트에 대한 <사울의 아들>의 접근방식이다. 라슬로 네메즈가 이 영화를 위해 4:3의 화면비를 취한 건 바로 그러한 선택에 따른 게 아닌가 싶다. 107분의 러닝타임 동안 사울의 얼굴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사울의 아들>은 주인공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을 최대한 협소하게 보여준다. 충격적인 오프닝 시퀀스의 가스실 학살장면이나 포로들을 구덩이에 모아놓고 무차별적으로 총살하는 야밤의 비극적인 사건은 오직 사울이 체험하는 범위 안에서만 관객들에게 보여질 뿐이다. 프레임 밖으로 잘려나가거나 흐릿하게 처리된 이미지들의 공백을 메우는 건 사운드다. 단언컨대 < 사울의 아들 >은 올해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사운드를 가장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기억될 것 같다. 철컹거리며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가스실에 갇힌 이들의 소름 끼치는 비명, 감독관들의 호령 소리, 폴란드어, 독일어, 유대어 등 수많은 언어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정체불명의 화음은 관객이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사운드 디자이너 타마스 자니가 만들어낸 <사울의 아들>의 음향은 날카롭고 명확하기보다 강렬한 울림과 긴 여운을 지니고 있는데, 이처럼 풍성하게 연출된 사운드가 제한적이고 압축된 시각적 이미지와 맞물려 효과적인 대구를 이룬다는 건 이 영화가 이뤄낸 기술적 성취를 짐작하게 한다. 장편영화 데뷔작 < 사울의 아들 >로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쥔 라슬로 네메즈는 벨라 타르의 2007년 작 < 런던에서 온 사나이 >의 연출부를 맡았던 경험이 있다. 유려한 페이스의 롱테이크 이외에도 그가 스승에게 물려받았다고 짐작되는 유산이 있다면, 그건 바로 대담함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런 것들을 용감하게 표현하는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 싶고 느끼고 싶다”는 스승의 말대로, 라슬로 네메즈는 여전히 누구라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홀로코스트라는 역사를 소환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금기의 질문들을 용감하게 돌파해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사울의 아들>은 기억되어야 할 영화고, 지지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 사울의 아들 >과 더불어 선정한 영화들에 대한 소감도 이 지면을 빌려 간략하게 전한다. 허우샤오시엔의 < 자객 섭은낭 >은 과연 글이라는 형식을 빌어 이 영화의 미학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색감과 앵글, 리듬과 호흡. 허우샤오시엔의 그 모든 선택과 감각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 영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 찬란함의 무덤 >은 올해 본 가장 인상적인 설치물이 등장하는 작품이자 아피찻퐁의 최근작 중 가장 감상적으로 다가온 영화였다. < 스파이 브릿지 >는 <사울의 아들>과 정확히 반대되는 이유로 좋았는데, 예민한 소재를 누구나 납득 가능한 이야기로 풀어내면서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영화로 만들어낸 스필버그의 연출력을 기억하고 싶었다. < 캐롤 >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배우 때문이다.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 서로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늠하면서도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는 두 여자의 심리 묘사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영화다. < 산하고인 >은 시간과 사람에 대한 지아장커의 애상적인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고 < 폭스캐처 >는 스티븐 카렐의 괴물 같은 연기와 베넷 밀러의 차분한 연출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는 알프스 산맥처럼 정교하고 미스터리하게 흘러가는 내러티브의 묘미, 그리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예상외로 꽤 매력적인 조합이었던 세 여배우-크리스틴 스튜어트, 줄리엣 비노쉬, 클로이 모레츠-의 앙상블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선정했다. <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 >은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던 필립 가렐의 신작인데, 대사의 날카로움은 여전하고 흑백화면은 여전히 파리 특유의 정서(지금은 다른 이유에서 좀 더 특별해졌다)를 머금고 있다. 마지막으로 루카 구아다니노의 < 비거 스플래쉬 >는 정말로 사사로운 이유 때문에 선정한 작품이다. 이 리스트를 선정하기 위해 고심하는 순간, 풀장으로 첨벙 소리를 내며 뛰어들던 <비거 스플래쉬>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프랑소와 오종의 < 스위밍 풀 >과 같은 원작을 공유하고 있는 이 작품은, 여인의 육신보다 입수 장면이 더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몸과 물이 맞닿는 순간의 마찰음,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비거 스플래쉬’를 몹시도 감각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아프리칸 아메리칸을 수장으로 하는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할리우드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1960년대 남부 지방의 인종 차별을 다룬 < 헬프 >(2011)가 큰 사랑을 받더니, < 노예 12년 >(2013)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다. < 셀마 >(2014)는 1965년 투표권 획득을 위해 행진하던 마틴 루터 킹의 모습을 담아냈다. <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2013)는 1952년부터 1986년까지 30년 넘게 8명의 대통령과 함께했던 집사의 이야기다. 스필버그는 노예제 폐지 당시의 역사를 다룬 < 링컨 >(2012)을, 타란티노는 흑인 히어로를 내세운 < 장고: 분노의 추적자 >(2013)를 만들었다. 우연일까? 아니다. 레이건 시절 람보나 코만도 같은 이른바 ‘하드 바디’ 액션 영화들이 등장했듯, 이런 변화는 분명 ‘오바마 효과’의 결과이며, 1980년대 말~1990년대 중반의 이른바 ‘블랙 시네마’(black cinema)를 떠올리게 한다. 차이는 있다. 스파이크 리, 존 싱글턴, 휴즈 형제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블랙 시네마’가 현실을 토대로 사회적 모순을 때론 과격한 방식으로 파고들었다면, 오바마 시기의 이 영화들은 과거로 돌아간다. 노예 제도가 존재했고, 흑인들에겐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그들은 하녀와 집사와 유모로 살아가야 했던 시절. 이 영화들은 흑인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환기시키고, 그들의 투쟁을 복기하며, ‘오바마’라는 현재의 성과를 되새긴다. 이런 현상은 북미 대륙에 한정되지 않는다. 대서양 건너편, 영국에서 제작된 <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 >(저스틴 채드윅, 2013)(이하 <만델라>)은 일종의 반성이다. 이 영화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 정책이 자행되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를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을 통해 바라보면서, 영국의 폭력적인 식민 통치의 과거사를 바라본다. 만델라의 자서전을 토대로 꼼꼼하게 엮어나간 이 영화는, 한 인물에 대한 전기 영화이면서, 매우 선명하게 재현한 역사적 폭력의 영화이기도 하다. <만델라>는 자료 화면과 기록 사진들을 삽입하며,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픽션이 아님을 수시로 일깨운다. 영화를 보기 위해 플레이 버튼을 누른 후, 우린 작은 당혹감에 부딪힌다. 나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넬슨 만델라’에 대해,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전기 영화의 ‘기본적 미덕’인, 한 인물에 대한 연대기적이며 개괄적인 설명에 충실하다. 말 그대로 ‘일대기’라고 할 수 있는 < 만델라 >는 유년기와 청년기에서 시작해, 변호사가 된 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리더로서 투쟁의 전선에 서고, 27년 동안 감옥에 갇히며, 1994년 76세의 나이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만델라를 보여준다. 이 과정은 만델라의 개인사이며 동시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대사다. 만델라를 연기한 배우들: (상단좌측부터 시계방향) 대니 글로버(만델라), 데이빗 해르우드(미세스 만델라), 시드니 포이티에(만델라와 클레르크), 모건 프리먼(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전기 영화의 이런 서술 방식 지니는 가장 큰 난점은, 긴 시간을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가다 보면 드라마의 밀도가 떨어지면서 지루한 스토리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 만델라 >도 예외는 아니며, 때론 교육용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제작진과 저스틴 채드윅 감독의 ‘신의 한 수’는 만델라 역에 < 토르 > 시리즈(2011~ )의 헤임달이자 < 퍼시픽 림 >(2013)의 사령관인 이드리스 엘바를 캐스팅한 것이다. 이미 다른 선택들도 있었다. HBO의 TV 영화 <만델라>(1987)의 대니 글로버는 무난했다. 역시 TV 영화였던 <만델라와 클레르크>(1997)의 시드니 포이티에는, 포이티에 라는 인물이 할리우드에서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떠올려 보면 상징적인 캐스팅이었다. <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2009)의 모건 프리먼은 최고의 싱크로율이었다. 이드리스 엘바와 넬슨 만델라 그렇다면 이드리스 엘바는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의 진짜 모습에 가장 근접하려는 노력이다. 엘바의 만델라는, 우리가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인자하고 온화한 이미지의 넬슨 만델라와 거리가 있다. 190cm의 키에 탄탄한 근육질인 엘바는(만델라는 185cm였다) 대중 앞에서 뜨거운 어조로 선동하고, 육체적 욕망 앞에서 솔직한 만델라를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긴 세월 동안 감옥 생활을 견디는 인동초 같은 이미지로 만델라를 바라봤던 일반적인 관객들에겐 꽤 신선하다. 이드리스 엘바는 묵직한 카리스마와 섬세한 감성을 통해 50년이 넘는 세월을 훌륭하게 연기해내며, 어쩌면 그의 존재감이 이 영화의 전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도 있다. 자서전을 토대로 한 만큼, < 만델라 >는 저항적 정치 지도자뿐만 아니라 좀 더 다각적인 모습의 만델라를 담아낸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동료인 만델라. 이런 접근 역시 이야기를 분산시킬 수 있지만, 두 번째 아내인 위니 만델라(최근 007시리즈의 머니페니 나오미 해리스가 역할을 맡았다)와의 관계는 후반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갈등 구도다. 22세 때 18세 연상의 만델라와 결혼했지만, 남편은 38년의 결혼 생활 중 27년을 감옥에 있었고, 그동안 그녀는 투쟁의 선봉에 서서 갖은 고초를 당했다. 출옥한 후 남편과는 노선 갈등을 빚으며 결국 이혼하게 되는데, 영화는 그녀가 겪었던 일과 넬슨 만델라와의 공적, 사적 관계들을 담담히 보여준다. 이런 대목들은 만델라라는 인물을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 아닌, 인간관계 속에서 고뇌하고 힘겹게 결단하는 평범한 인간임을 보여준다(만델라와 친분이 있었던 U2가 주제가를 맡았다. 제목은 ‘Ordinary Love’. 즉 ‘평범한 사랑’이다. 물론 그것이 결코 쉬운 건 아니지만). < 만델라 >는 그렇게 뛰어난 전기 영화는 아니지만, 채드윅 감독의 영화적 리듬은 분명 좀 더 다듬어야 할 구석이 있지만,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의 진짜 얼굴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접해야 할 작품이다. 영화는 만델라라는 인물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피의 현대사’를 기교와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증오의 마음을 품었고, 그래서 투쟁의 선봉에 섰고, 그 대가로 긴 세월 동안 갇혀 있었고, 결국은 적들을 용서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며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연 넬슨 만델라. 영화 <만델라>는 이 과정을 평이하지만 정직하게 그려낸다. PS: < 만델라 >는 2013년 12월 5일 런던에서 시사회를 가졌고, 이 자리엔 관계자는 물론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 그리고 만델라의 딸인 진지와 제나니 등도 참석했다. 영화가 상영되던 도중, 만델라의 두 딸의 휴대전화엔 당시 병원에서 투병 중이던 넬슨 만델라가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하지만 시사회는 계속되었고, 두 사람을 제외한 관객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상영이 끝난 후 소식을 전해 들은 이드리사 엘바는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만델라의 부음을 알렸고, 2분 동안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1986년 제임스 호너는 이제 막 영화음악가로서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시기였다. 70년대 전반에 걸쳐 UCLA에서 영화음악을 가르치던 그는 종종 미국영화협회의 의뢰를 받아 독립영화들의 음악을 작곡하며 이론보단 실제 작업에 더 큰 매력을 느꼈는데, 결국 가르치던 것을 그만두고 로저 코만의 도움을 얻어 B급 영화 <심해의 공포 Humanoids from the Deep>와 <우주의 7인 Battle Beyond The Stars>을 통해 상업영화에 데뷔하게 된다. 두 영화에서 각각 그 시절 유행하던 두 스타일, 조르지오 모르도와 반젤리스로 압축되던 전자음악과 존 윌리엄스와 제리 골드스미스로 대표되던 대규모 관현악 사운드, 모두 훌륭하게 들려준 바 있는 이 늦깎이 신인을 주목한 건 당연지사. 웨스 크레이븐의 초기작 <악령의 리사>와 올리버 스톤의 <악마의 손> <늑대인간의 습격> 등 다양한 저예산 장르물들을 통해 노련한 감각과 대담한 시도들을 펼쳐 보이며 실력을 인정받는다. 메이저의 발판에 올라서게 된 건 프랜차이즈 SF < 스타트렉 >의 속편과 월터 힐 감독의 액션 코미디 < 48시간 >이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면서부터. 디즈니는 베테랑 영화음악가 조르쥬 들르뤼와 앨머 번스타인이 음악을 맡았던(그러나 해고된) <이상한 실종 Something Wicked This Way Comes>과 <머나먼 시애틀>에 제임스 호너를 대타로 내세우며 그의 실력에 깊은 신뢰감을 보냈고, 이후 < 코쿤 >과 < 코만도 > 등 잇따른 흥행작들을 담당하며 주가가 오르기 시작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 피블의 모험 An American Tail >과 세계적인 지성 움베르토 에코의 베스트셀러를 기반으로 제작된 다국적 프로젝트 < 장미의 이름 >을 앞둔 1986년은 제임스 호너에게 분명 또 다른 분기점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 그리고 또 한 작품. 20세기폭스가 7년 만에 속편 제작에 나선 < 에이리언 2 >의 음악도 그의 몫이었다. 제임스 호너 녹음을 위해 영국 땅에 내렸을 때만 해도 호너는 부푼 꿈과 희망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국은 유년시절 왕립음악학교에 다니며 음악을 배우던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고, 이미 1983년 <브레인스톰>과 < 혹성의 위기 >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와 협연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딱히 어려울 것도 없었다. 더욱이 제임스 카메론과는 앞서 로저 코만이 제작한 영화 <우주의 7인>에서 미술과 음악으로 만난 바 있기에 소통에도 문제가 없으리라 여겼다. 이는 호너의 오판이었다. <에이리언 2>의 작업은 지옥과도 같았으며, 일생일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치욕과도 같은 환경이었다. 영화의 개봉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에게 전달된 촬영분은 전무했다. 작업에 6주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3주가 지나도 촬영은 끝나지 않았고, 편집도 이뤄지지 않았다. 제작자인 게일 앤 허드는 어쩔 수 없이 오케스트라를 먼저 섭외했다. 기다리는 동안 호너는 촬영장과 편집실을 다니며 분위기를 익혀 곡을 쓰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편집이 덜 끝나 전체적으로 화면 분량에 정확히 맞추는 게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녹음이 이뤄질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당시 워낙 노후된 장비들로 차 있어서 전자음마저 제대로 구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에 쫓긴 호너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곡을 쓰고 연주해야 한다고 성토했고, 녹음 하루 전날엔 한 시퀀스가 통째로 편집이 바뀌어 36시간 동안 다시 작업을 해야 했다. 곡에 대한 의견 차이로 호너와 카메론은 수없이 다퉜고, 더 완벽한 사람을 찾아보겠다는 감독의 말에 그만두겠다며 강경하게 응수했다. 결국 호너의 곡은 의도와 상관없이 누더기로 마구 재단되고 반려당하며 삭제되었고, 그는 두 번 다시 제임스 카메론과 작업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호너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음악상에 처음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에이리언 2 여러모로 제임스 호너의 <에일리언 2>는 제리 골드스미스가 음악을 맡은 전편 < 에이리언 >과 닮았다. 고딕적인 호러 분위기를 물씬 풍겼던 1편과 달리 밀리터리 액션 음악에 가까웠던 후속편이지만, 두 작품 다 영화상에서 스코어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1편의 감독이었던 리들리 스콧과 편집자인 테리 로링스는 제리의 스코어가 너무 빽빽하다고 생각했고, 좀 더 미니멀한 사운드를 찾다 결국 제리의 다른 스코어였던 <프로이드>에서 여러 곡을 골라 배치했다. 엔드 크레딧엔 하워드 핸슨의 ‘Symphony No. 2, Romantic’을 삽입했다. 제리 골드스미스는 이를 두고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을 미워(?)했다. 제임스 호너가 음악을 맡은 속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제임스 카메론은 호너의 다른 스코어였던 < 스타트렉 2 >과 3편의 요소(정확히는 클링곤 테마)가 묻어나기를 요구했고, 오프닝과 엔딩 테마에선 아람 하차투리안의 ‘가야네 발렛 슈트’의 곡조를 인용하기를 바랐다.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에서 잠깐 동안의 평화와 안식을 보여줄 때 흘러나왔던 곡으로, <에일리언 2>에서도 모든 상황이 시작하기 직전의 평화스러운 모습과 모든 것이 종료된 이후 안식을 나타내듯 상징적으로 쓰이길 원했다. 호너가 만든 많은 곡들이 빠졌고, 원래 장면과 다르게 잘려져 부분적으로만 사용되거나 또는 다른 곡으로 대체되었다. 편집상에서 아주 드러내 감독판에서만 들을 수 있는 ‘Dark Discovery / Newt’s Horror’를 비롯해 착륙선을 타고 비행할 때 흐르는 ‘Combat Drop’이나 뉴트가 등장하던 장면에 쓰일 ‘Newt’, 그리고 여왕과 리플리가 대면하던 씬의 ‘The Queen’도 생략되었다. 해병대가 연구실에서 에일리언 숙주를 발견하는 장면에 쓰일 ‘Med. Lab’은 거의 음악 없이 진행되는 바람에 아주 적은 부분만 인용되었고, 대기정화시설에서 흐르던 ‘Atmosphere Station’ 역시 작은 레벨로 분위기를 자아내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반면 여러 번 반복돼 사용된 큐도 있다. ‘Queen To Bishop’과 ‘Bishop’s Countdown’이 바로 그 곡들로 특히 후자 경우 녹음 당시 한 곡이 비었다는 걸 깨닫고 호너가 단 하루 만에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 큐였다. 파워풀하고 아주 강렬한 액션 큐로 지금껏 북미 예고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곡으로도 유명하다. 진정한 지옥도를 맛보고 싶다면 ‘Futile Escape’가 제격이다. 이미 앞서 얘기한 ‘Bishop’s Countdown’과 리플리가 해병대들을 구하러 장갑차를 끌고 갈 때 흐르는 ‘Ripley’s Rescue’로 변주되긴 했지만, 진정한 묘미는 8분 30초에 이르는 이 대곡에 있다. 제임스 호너가 작업 중에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와 고통, 분노, 좌절과 실망을 한데 뭉쳐 격정적으로 쏟아낸 것과 같은 이 악곡은 영화상 가장 긴 탈출 (액션) 시퀀스에 쓰인 트랙으로 가히 세상의 모든 아비규환과 절규, 광기와 공포가 흉포하게 담겨있다. 천지개벽이 일어나듯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총공세를 펼쳐대는 관현악의 놀랄만한 비명은 강렬하고도 무시무시하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구나! 를 깨우치게 할 만큼 모든 혼이 울부짖고 브라스가 포효하며 스트링이 빠르게 활강하고 약동한다. 세상의 모든 악기가 내지르는 공포의 처절한 소리들은 너무도 실감 나게 그리고 절절하게 이 악몽을 묘사한다. 어디에도 없는 출구와 뚫려버린 피난처를 찾아 헤매게 되는 심경을 담아낸 아우성은 극도로 강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킨다. 그럼에도 결국 호너는 카메론을 100% 만족시키지 못했다. 카메론은 여전히 전편의 영향력이 남아있기(연장되기)를 바랬고, 그 분위기를 위해 골드스미스의 큐들을 몇 곡 골라 2편에서 그대로 사용했다. 1편 사운드트랙에 있는 ‘Parker’s Death’와 ‘Sleepy Alien’ 등이 그러한 트랙들이다. 2001년에야 이 모든 (생략, 변형된) 큐들을 온전하게 담아낸 디럭스 에디션 버전의 사운드트랙이 출반되었다. 타이타닉, 아바타 두 명의 제임스가 화해하기까지 대략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카메론과 호너는 각각 자신의 분야에서 거장이 되어 있었고, 시간은 완벽주의자인 그 둘을 조금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다. 호너는 카메론이 구상한 < 타이타닉 >의 이야기를 맘에 들어 했고, 카메론은 바로 전 해 작업한 호너의 < 브레이브 하트 >를 만족해했다. 둘은 첫 만남에서 5분 만에 화해하고 3시간 동안 <타이타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카메론과 호너는 이 영화로 처음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다. 다행히도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이다. 이후 둘은 다시 10 여년이 지나 < 아바타 >의 작업을 함께했으며 세상의 모든 영화의 수익에 관련된 기록을 싹 다 갈아치웠다. 그들은 다시 2016년 이후 <아바타> 후속편들로 세상을 지배할 계획 중에 있다. Track List 1. Main Title 2. Bad Dreams 3. Dark Discovery / Newt's Horror 4. LV-426 5. Combat Drop 6. The Complex 7. Atmosphere Station 8. Med. Lab. 9. Newt 10. Sub-Level 3 11. Ripley's Rescue 12. FaceHuggers 13. Futile Escape 14. Newt Is Taken 15. Going After Newt 16. The Queen 17. Bishop's Countdown 18. Queen To Bishop 19. Resolution And Hyperscape 20. Bad Dreams (Alternate) 21. Ripley's Rescue (Percussion Only) 22. LV-426 (Alternate Edit - Film Version) 23. Combat Drop (Percussion Only) 24. Hyperspace (Alternate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