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레이지
- 감독
- 기타노 다케시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기타노 다케시, 시이나 에이히, 카세 료, 시나 깃페이, 쿠니무라 준, 츠카모토 타카시, 이사바시 렌지, 코히나타 후미요, 스지모토 테타, 미우라 토모카즈, 와타나베 나오코
156분의 러닝 타임 동안 어둠의 한가운데로 인간을 몰아넣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 곡성 >(2016)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라스트 신의 페이드아웃으로 종결된다. < 추격자 >(2008)와 < 황해 >(2010)로 이어지는 전작에서와 같이 나홍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파괴적이 되어가는 서사를 통해 능숙하게 통제된 폭력 장면들을 단계적으로 제공한다. 기이하게 뒤틀린 내러티브와 감정의 격동을 야기하는 대담한 묘사를 내장한 이 영화는 물과 나무, 약초, 동물, 산으로 둘러싸인 전라남도의 작은 마을 곡성을 미스터리에 휩싸이게 한다. <곡성>의 줄거리는 뇌우, 번개, 안개, 악몽, 좀비, 퇴마사, 교수형에 처해지는 사내 심지어 죽은 사슴의 시체를 먹는 악마와 같은 이미지를 통해 조형되는 공포의 확장에 의존한다. 주술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고요한 마을에서 끔찍한 죽음이 발생하고 그 뒤를 좇아 기이한 사건들이 공동체를 압박한다. 동네 경찰이자 아버지인 종구(곽도원)가 미스터리를 조사하는 탐정 역할을 맡는데, 이 순박하고 익살스러운 시골 경찰이 광기와 착란의 상태로 변질되는 과정이 서사의 주조를 이룬다. 이 병증을 퍼뜨리고 있는 용의자는 깊은 산중에 사는 과묵한 일본인(쿠니무라 준)이다. 외지인으로 불리는 그가 불길한 기운을 몰고 오면서 종구의 딸 효진(김환희)에게도 발진이 돋고 험악한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반쯤 벌린 종구는 아버지의 본능이 발동하면서 공격적이고 위협적으로 변한다. 어린 소녀의 천진함에 반해 선과 악의 공존은 인간의 본성이며 감정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비극을 더욱 강조할 수 있는 소재이다. < 엑소시스트 >(1973)와 < 캐리 >(1976), < 유전 >(2018) 같은 전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원을 추정하기 힘든 악령의 공세는 어린 소녀를 향할 때 더욱 끔찍하게 느껴진다. 마을 사람들의 소문, 속담, 신념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공포와 불편함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무기력한 느낌을 전하는, 반복되는 롱 쇼트가 암시하듯이 악령은 공동체 곳곳에 그윽하게 도사리고 있다. 나홍진의 전작들이 도시 환경의 조건을 활용한 착란적인 편집을 구사한 것에 비해, 원시적인 시골 마을을 무대로 한 <곡성>은 쇼트의 지속시간을 늘림(퇴마의식을 묘사하는 신들)으로써 공포의 시간을 부채질한다. 공포가 퍼지고, 스며들면서 도입부에 존재했던 어두운 유머를 빠르게 쓸어버리면서 나홍진은 관객을 마지막 동굴의 공포로 인도하기 위해 그럴듯한 개연성을 만든다. 믿음에 대한 성찰로 장식된 이 무자비한 어둠의 움직임은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영화적 세계를 상정하고 있다. 나홍진은 그가 다루는 영화의 언어 규범을 숙달했다는 증거를 보여주면서 관객을 원하는 곳으로 안내하거나 이야기를 조작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돌리는 데 있어 능숙함을 보여준다. 마을을 휩쓴 테러의 원인이 영원한 수수께끼로 봉인되기 때문에 종구의 탐색과 구조 노력이 무너지고 마을 사람들은 광기와 영적 위기의 가장자리로 내몰린다. 관객은 종구와 마찬가지로 길을 잃고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딜레마를 감수해야만 한다. 당황한 인물들 역시 세상이 점진적으로 사악해져가는 이유에 대해 해명할 길이 없다. 악은 어디서 오는가? 나홍진의 영화는 냉정하게 답한다. 이유는 없고, 인간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먹잇감이고, 악은 상황의 문제일 뿐이다. 등장인물들에게 내리는 폭우도 공포와 유혈 사태를 씻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무력함을 동반한 채 악마가 숨어 있는 지하 통로를 배경으로 하는 피날레는 타협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곡성>이 던지는 질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라는, 영적인 차원에 놓여 있다. 악마의 확연한 존재 앞에서 보이지 않는 신을 믿을 수 있는가? 신성에 대한 의문과 확신 사이에서 동요하는 이 영화는 따라서 보이는 것과 믿는 것 사이의 관계를 형식적으로 구축한다. 기독교의 교리에 근거한 스토리 안에서 나홍진은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 사실과 증거가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애쓴다. 외지인의 존재가 드러나는 방식은 이와 관련된다. 일본인으로 설정된 외지인의 정신은 너무 괴물적이어서 그의 육체적 한계를 넘어 확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에 대한 역사적인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국가 혹은 민족적 경계를 흐리는 이 인물은, 순박한 무지렁이들의 세계를 교란한다. 일본인이 공동체를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관념은 국가 정체성의 형성과정에서 축적된 뿌리 깊은 위기의식을 소환한다. 컨텍스트와는 무관하게 세상에 만연한 악의 본성은 그것이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통제불가능한 것이다. 일종의 보안관인 종구는 가족, 공동체, 민족의 수호자로서 정당한 이유가 없이 횡행하는 악마의 공격에 맞서야 한다. 심리 지리학이라는 관점에서 주목할 것은 외지인이 기거하는 어둡고 허름한 집을 묘사하는 두 개의 신이다. 종구와 그의 동료 경찰 성복(손강국)이 처음 외지인의 집을 탐문할 때 카메라는 안에서 방으로 향하는 종구를 찍고 있다. 조류도감과 음화 등이 발견되는 이 날의 탐사에서 종구는 찢어진 창호지에 난 구멍 사이로 불이 켜진 신당을 훔쳐보다 돌로 자물쇠를 부수고 안으로 진입한다. 종구의 액션이 진행되는 동안 성복의 수색이 교차편집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방 안의 가려진 장소를 들춰내기 위해 문을 여는 성복의 액션과 신당으로 들어서는 종구의 액션이 평행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두 인물은 각자의 시점으로 밀실의 풍경을 본다. 기괴한 형상의 조형물과 무당 의식용 밧줄, 향로, 흑백 사진이 붙은 신당과 죽음의 이미지가 덕지덕지 붙은 사진들의 몽타주를 카메라가 훑는 동안 카톨릭 부제 양이삼(김도윤)의 발을 물고 짖어대는 맹견의 흉포함이 또 하나의 계열을 형성하며 나란히 놓인다. 개에 물려 바지가 뜯겨나가는 소동은 마을에서 벌어진 죽음의 이미지를 촬영한 사진들의 몽타주와 편집된다. 삼분할 액션을 나열한 이미지들의 조합은 연쇄적인 죽음의 모티프를 환기하면서 신성(神聖)의 침탈과 그 대가를 형상화한다. 외지인의 집에 대한 두 번째 방문은 동일한 궤적으로 진행되지만 반대의 방향에서 조망된다. 종구와 양이삼, 두 사람만 등장하는 이 신에서 카메라는 종구의 위치에서 방을 찍는다. 그가 처음 방으로 들어갔을 때 보이는 것은 낡은 상 위에 삶은 닭발이다. 극단적으로 낮아진 위치에서 찍은 로우 앵글의 측면 쇼트는 벗겨진 벽지와 서까래를 배경으로 프레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하는 종구의 위태로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방 안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찢어진 신문지가 너덜너덜 붙은 벽을 배경으로 시효를 다한 향로와 초들이 놓인 신당이 드러난다. 카메라는 마침내 종구가 보는 것을 드러내는데 완전히 꺼진 제단은 그 위에 소용돌이치는 증오와 처벌의 앞날을 예고한다. 첫 번째 방문에서 이삼의 바지를 문 맹견이 종구를 공격하기 위해 방안으로 뛰어들면서 응징이 시작된다. 촬영감독 홍경표는 이때 혼돈의 우주 속 인물의 고립을 강조하고 사건의 임의성을 강조하는 수평적인 와이드 쇼트를 별안간 보여준다. 이성을 상실한 종구가 귀신들린 집 안에서 맹견과 사투를 벌일 때 그 광경을 바라보는 외지인의 모습은 바스트 쇼트에서 익스트림 롱 쇼트로 후퇴하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거리로 퇴각한 카메라는 익명의 눈을 암시하듯 느리게 앞으로 이동한다. 이 시선의 주체는 누구인가? 두 장소 간의 교차편집은 신체의 정신적 혼란과 그 병이 즉각적인 공간으로 확장되는 방식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한다. 외지인의 방은 심리 지리학의 시각적 구현이다. 벗겨진 벽지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흉가가 숨겨진 정신병의 공간화라면 곡성은 그 증상이 발현되는 곳이다. 건축학적으로 이 집은 바깥에서는 그리 눈에 띄는 공간이 아니다. 친숙하고 무해해 보이는 집은 표면은 깊고 불길한 내부 방을 숨기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곡성>의 미장센은 경계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면서 여러 겹의 레이어와 비밀을 숨긴 공간을 설정한다. 나홍진에게 이런 설정은 익숙한 것이다. 데뷔작 <추격자>에서 그는 연쇄살인마의 음울한 내면을 시각화한 집을 <곡성>의 그것과 동일한 형상으로 구조화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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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도착한 < 영웅본색 >은 그 매혹의 강도에서 보자면, 적어도 어떤 세대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만한 것을 만들어냈다. 동시대의 그 어떤 한국영화도 이 영화가 불러일으킨 것과 같은 열광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다’는 저 고색창연한 대사는 소년들의 마음을 움켜잡았다. 그렇다. 의리는 땅에 떨어졌으나, 이 세계의 유일무이한 가치인 바로 그 의리를 세우기 위해 우리의 ‘따거(大兄)’ 주윤발은 홀홀단신 적진을 향해 나아가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소년들은 일시에 검은색 선글라스와 롱코트에 사로잡혔으며, 너도나도 성냥개비를 질겅질겅 씹어대고 싶어했다. 실상 <영웅본색>의 시작은 그렇게 창대하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서울의 화양, 명화, 대지극장에서 1987년 6월 23일부터 7월 9일까지 개봉되었으며, 9만 4천 604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관에서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둔 이 영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뒷골목과 변두리의 ‘동시상영’ 프로가 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급기야는 주인공의 웃차림과 제스추어를 모방하고 수십번씩 같은 영화를 되풀이해 보는 1) 열광적인 팬덤을 낳았다. 팬덤은 이제 막 불붙기 시작한 새로운 매체를 기반으로 장르에 대한 탐닉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1988년을 기점으로 VCR 대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영웅본색>을 필두로 한 홍콩영화는 비디오 가게 선반이 나눠놓은 분류 속에서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로 카테고리화되었다. 이 ‘장르’는 이제 가장 충실하고 열정적인 관객을 갖게 될 터이다. 비디오라는 새롭게 추가된 매체의 영향은 있었으나, 여기에는 분명 1970년대 이래로 동시상영관을 채워왔던 이런 영화들(이른바 1970년대의 홍콩 권격영화)의 관객의 세대적, 젠더적 상속이 있었다. 이들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것은 10대에서 20대의 젊은 남성관객들이었다. 장사치들은 발빠르게 이에 조응하였다. <영웅본색> 이후 단 1년 만에 홍콩영화의 한국 판권은 2배에서 3배까지 치솟았으며, 1988년의 시점에 홍콩영화의 주요 수출국 중 3위로 랭크된 한국은 1990년에 이르면 대만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오우삼과 서극과 임영동의 이름은 이제 막 등장한 ‘시네필’들의 경전에 올랐고, 주윤발, 장국영, 왕조현, 유덕화, 적룡, 이수현, 여명 등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통용되는 이름들은 그 발음만큼 ‘친숙한’ 스타가 되었다. 이 열광을 가능케 한 조건과 근원은 무엇인가? 왜 이곳에서 <영웅본색>은, 나아가 이로부터 촉발된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소위 ‘홍콩 느와르’ 2) 로 불려진 일련의 홍콩영화들은 그토록 강렬한 매혹을 불러일으켰는가? 왜 그때 한국의 10대와 20대 젊은 남성들은 이 세계에 그토록 ‘진지하게’ 심취할 수 있었는가? <영웅본색>은 1987년과 88년 사이라는 한국 사회의 기점적 시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시작된 홍콩 느와르에 대한 열기는 1990년대를 전후하여 절정에 이르렀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분명 <영웅본색>이 불러일으킨 열광의 강도는 놀라운 것이지만, 누가 어떻게 향유, 소비했는가의 방식은 한편으로는 1970년대 이후 이 지역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획득했던 (그러나 그 하위문화적 성격상 거의 담론의 영역에서는 논의되지 않았던) 홍콩산 액션영화(이거나 종종 한국, 대만, 동남아시아 일대의 영세 영화자본들이 합종연횡하면서 만들어낸 출처 불분명의 ‘무국적’ 액션영화)가 소비되었던 방식을 답습하는 한편, 당연한 말이지만 1980년대 중후반이라는 사회적·미디어적 조건과 결부되어 향유되었다. 즉, 여기에는 한국에서 홍콩영화가 차지했던 독특한 위상이라는 종적 맥락과 <영웅본색>이 도착한 1987년부터 이 장르에 대한 열광이 사그라드는 199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이라는 횡적 맥락이 서로 연동되어 개입되어 있다. 1960년대 중후반 한국의 영화관객이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계층별, 세대별, 젠더별 분화를 시작하던 무렵 이른바 무협영화의 형태로 처음 한국 영화시장에 도착한 이래 홍콩영화는 재개봉관, 도시 변두리 소극장과 같은 지극히 남성 동성사회적(homosocial)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소비되며 젊은 남성들의 주요한 하위문화적 자원으로서 기능하였다. 특정 공간과 특정 세대, 젠더가 결합되어 있는 이 향유의 방식이야말로 홍콩영화에 관한 한국 담론 특유의 세대적 노스탤지어의 감각이 생겨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홍콩영화에 관한 서술이 종종 개인적 기억과 그것이 놓여진 시간과 장소로 이끌리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3) 10대, 20대의 남성 하위문화와 강하게 결부되어 있던 홍콩영화에 관한 이해는 내셔널 시네마 히스토리에 기반한 영화사적 계보 이전에 개인적 기억과 결합되어 수용되어왔다. 강력한 스타 시스템으로 운용되는 홍콩영화가 전시하는 친밀한 인종의 얼굴, 스타의 몸이야말로 바로 이 개인적 열망들의 투사체로 작용하였다. 이것은 홍콩영화의 향유 방식에 내재된 독특한 세대론적 감각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세대적 응집성은 강렬한 체험의 강도를 동반한다. 홍콩영화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이 영화들이 한국영화사에서 차지하는 기묘한 위치이다. 홍콩영화는 일본영화가 전면 금지된 이곳에서 오랫동안 한국영화를 제외하고 같은 동양인의 얼굴이 등장하는 유일한 영화였으며, 또한 한국영화와 가장 빈번하게 결합된 영화이기도 하였다. 1970년대 내내 도시 변두리 극장에서 가장 긴 흥행 사이클을 보여주었던 액션영화의 절대 다수는 소위 한국-홍콩 혹은 한국-대만의 ‘위장합작’ 영화들이었다. 1986년의 외국영화 수입 자유화 이후에야 완전히 사라진 이 오래된 관행 속에서 종종 한국어 더빙 버전의, ‘한국영화’로 알려지기도 한 홍콩영화는 익숙한 풍경과 언어를 지닌 것으로 감각되었으며, 그 속에서 홍콩영화의 외래성은 습관적으로 또 의도적으로 지워졌다.(홍콩 영화배우들의 이름이 한국식 한자 독음 표기로 호명되었던 사실은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홍콩영화에 대한 이곳에서의 감각은 외화와 방화 사이에 비스듬히 걸쳐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이 친밀성이야말로 홍콩영화에 대한 한국에서의 ‘번역가능성’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일 게다. 4) 바로 이와 같은 친밀한 방식 속에서 이 영화들에 열광한 절대적인 관객층이 10대와 20대 젊은 남성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영화들이 이 시기 이들의 열망과 분노, 상상적 극복과 같은 것, 즉 어떤 정동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절반쯤 토착화된 영 컬처로서 <영웅본색>은 이 영화가 도착한 바로 그 시간인 1987과 1990년대 초까지 들끓었던 혁명적 열망과 정념과 관련되어 있다. 1987년의 6월 항쟁이 이끈 직선제 개헌 관철의 결과 그해 12월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6월 항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함을 보여주었다. 7, 8월의 노동자 대투쟁과 전대협 결성, 이듬해의 노동법 개정투쟁, 6.10/8.15 남북학생회담 투쟁, 1989년의 전교조 결성, 노동자 총파업, 그리고 문익환 목사, 전대협 대표 임수경, 정의구현사제단 문규현 신부 등의 방북, 1990년의 전노협 결성 등 대규모의 노동자 투쟁과 통일 투쟁이 이어졌다. 한국 사회의 역사적인 동시에 정치, 사회, 경제적인 모순에 대한 거대한 저항이 분출하고 있던 이 시기는 정확히 오우삼 영화에 대한 열광의 시간과 겹쳐져 있다. 한국영화를 포함해서 그 어떤 영화도 이 순간 그의 영화만큼 젊은 남성들의 열광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영화가 1987년의 정치와 정동과의 예기치 않은 충돌 혹은 밀착을 이루어내고 있는가를 역설해주는 것일 게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 <영웅본색>을 필두로 한 홍콩 느와르는 이 영화들의 과도한 폭력성이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로 점철되었다. 그것은 심지어 구체적인 숫자까지 동반하였다. 당시 한 시민단체가 주최한 ‘폭력영화와 청소년 문화환경’이라는 심포지움의 발표에 따르면, 1988년 관객 28만명을 동원한 <영웅본색 2> 전체의 21.9퍼센트가 폭력장면이고 89년 25만명을 동원한 <첩혈쌍웅> 24.3퍼센트가 폭력장면이다. 5) 라는 ‘구체적인’ 퍼센티지까지 제시되고 있다. 이 영화들에 대한 히스테릭한 우려는 더 이상 저질이라는 모호한 어휘를 맴도는 것이 아닌 직접적으로 ‘폭력’에 대한 과도한 염려였으며, 이 영화들에 대한 매혹 또한 액션의 ‘폭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87년 6월 항쟁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의 죽음이라는 기폭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대중이 애도의 공동체로서 형성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자, 또한 국가폭력이 저지른 이 무구한 죽음의 형상은 그 자체로 대항폭력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대항폭력은 ‘87년을 전후로‘ ‘정당한 약자의 무기로 자리잡았’다(김원). 그것은 가두에서 백골단과 구사대가 휘두르는 곤봉과 최루탄에 맞서는 화염병과 쇠파이프의 저항이었으며, ‘약자가 최대한의 도덕적 힘을 발휘한 가장 치열한 무기’(최장집)로서의 분신이었다. 즉, 이 격렬한 대중투쟁의 시간은 도저한 국가 폭력에 저항하는 대항폭력의 시간이기도 하였다. 대항폭력의 정당성이야말로 공안정국을 유지하고자 했던 이 정권으로서는 가장 염려스러운 것이자 하루빨리 탈취해야 할 것이었다. 역설적으로 말해 폭력의 카테고리 안에 묶인 <영웅본색>의 힘은 그야말로 거리의 힘의 상상적 투사물일 수 있었다.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가 각계 주요인사들을 사찰한 ‘청명계획’이 내부고발자에 의해 폭로된 직후 국면전환용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노태우는 “저는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이를 소탕해나갈 것입니다”라고 선언하였다. 범죄와 폭력이 ‘와’로 병렬되고 있는 이 연설은 대항폭력을 범죄화함으로써 이 폭력의 정당성을 삭제하고자 하는 언설 전략의 전형적인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폭력) 대 대항폭력. 한국에서의 홍콩 느와르 전성기와 함께 하는 이 두 폭력의 구도는 왜 이 영화들의 폭력이 어떤 이들에게 그토록 과잉 의식되는지 왜 이 영화들의 향유자들에게는 그토록 매혹적인 것인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준다. 저 영화적 폭력이 죽음과 애도와 긴밀히 연결된 대항폭력의 영화적 형상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분명 폭력 형상이 있으며, 나아가 그것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쾌감이 있다. 게다가 그 폭력은 오로지, ‘형제’를 위해서만 발현되는 것이다. <영웅본색>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 정념의 활극은 오로지 형제애에 기초해 있다. 한때 조직에 발 담갔으나 갱생의 의지를 다지는 남자, 그러나 그의 이전의 삶이 그의 발목을 잡아끄는 이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영웅본색>이 느슨하게 관련된 1967년의 동명 영화로부터 비롯되었다. 감독 용강(龍剛)의 광동어 사회파 드라마인 이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하면서 오우삼은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는 마크라는 전적으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였다. 오우삼은 이 인물을 구축하는 여타의 서사를 지우고, 이 캐릭터를 송자걸과의 관계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마크는 오로지 이 관계의 도덕, 의리라는 하나의 정념으로 움직인다. 젊은 남성들을 열광케 했던 소위 이 영화의 ‘명장면’들이 마크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예컨대 위조화폐에 담뱃불을 붙이는 주윤발, 화분에 심어놓은 총을 꺼내어 춤추듯 유려한 동작으로 총을 쏘는 주윤발. 왜냐하면 이 캐릭터는 클로즈업과 슬로우모션을 통해 제스추어와 표정으로 특권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크에게 가족이 있는가, 그는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는가. 우리는 여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송자걸이 서사의 캐릭터라면, 마크는 제스처의 캐릭터이다.(1974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을 배경으로 마크의 전사를 그리고 있는 < 영웅본색 3 >는 영화의 성취와는 별개로 이 시리즈의 팬들을 얼마나 실망시켰던가. 3편에서 마크는 땅으로 내려왔고, 심지어 여자와 ‘연애’를 한다.) 오우삼은 마크를 통해서 신화적 공간을 창출한다. 단적으로 말해 그 공간은 ‘협(俠)’의 세계이고, 이 ‘협’이라는 세계의 기본원리를 그 자체로 현현해내고 있는 마크-주윤발이야말로 이 세계를 온전히 하나의 세계로서 형성시켜내고 있는 자이다. <영웅본색>을 비롯한 홍콩 느와르의 중요한 특질 중 하나는 이 세계가 ‘아버지’ 없는 세계라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아버지적 존재’는 행위의 동기 혹은 주체로서 기입되어 있지 않다. 이 세계에서 행위의 동기이자 주체가 되는 것은 동년배의 남성들이며 연대란 오로지 그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형제를 위해!). 이 세계를 온전히 하나의 세계로서 구성해내는 원리라고 할만한 것은 다름 아닌 형제들 사이의 ‘의리’와 세계에 대한 ‘인의’이며, 형제를 배신하는 행위야말로 이 세계의 악이다. 오우삼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영화가 폭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의(仁義)와 형제애에 관한 영화임을 역설하였다. 그것은 단지 그의 영화가 과도하게 폭력적이라는 비난에 대한 변명이 아니다. < 첩혈속집 >에 출연했던 쿠니무라 준이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오우삼은 진심으로 자신의 영화 모티브가 인의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소위 인의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삶과 죽음 사이에서도 상대를 지키는, 혹은 상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인간의 관계성의 극단과 같은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남자들 간의 우정이라고 할까. 그것이 내가 영화를 찍을 때의 기본 모티브다.” 6) 오우삼이 인의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삶과 죽음 사이에서도 상대를 지키는……남자들 간의 우정’이라고 언급할 때, 그것은 그의 영화 스승인 장철(張徹)이 ‘피의 형제애 blood brothership’라고 불렀던 것을 상기시킨다. 오우삼 스스로 경외를 바쳐 마지않는 영화사의 선배들 이름을 즐겨 거론하지만(이를테면 장철부터 샘 페킨파, 장 피에르 멜빌까지) 적어도 <영웅본색>에 한해서 말하자면 이 영화는 거의 전적으로 장철에 대한 오마쥬로 보인다. 오우삼이 장철의 영화적 인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 다량의 피, 파열하는 신체, 죽음의 순간을 지속시킬 수 있는 영화적 장치로서의 슬로우모션 등을 반복할 때 그것은 단지 스타일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장철 영화의 미학인 ‘비장’을 발현하는 데에 핵심요소들인 이 인장들의 반복이야말로 <영웅본색>을 그토록 비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장철은 홍콩의 주류 장르를 젊은 남성들의 영화로 옮겨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홍콩 내의 산업적, 인구적 변화와 맞물려 등장한 젊은 남성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그의 영화는 젊은 남성이 말 그대로 ‘죽도록’ 싸우는 영화에 심취해 있었으며, 장철의 관심은 시종 이 싸우는 신체가 어떻게 파열되고 부서지는가에 있었다(<영웅본색>의 적룡은 장철이 사랑해마지 않았던 그 부서지는 젊은 신체 중 하나였다). 이 이야기는 단지 그의 영화가 얼마나 익스트림한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스스로의 영화를 즐겨 ‘양강(陽剛)’ 영화라고 칭했던 장철에게 강력한 남성성(陽剛)은 비장미를 자아내는 데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비장미는 세계와의 대결을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미학이다. 이 대결은 패배를 예정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장을 쏟아가며 선 채로, 끝까지 버티면서 죽음에 이를 때 비장미가 발현된다. 홍콩 영화 최초로 등장한 이 젊은 남성들의 영시네마가 홍콩의 가장 격렬한 정치적 저항의 시기인 1967년과 1968에 등장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우삼이 장철을 다시금 불러오고 있을 때, 이 영화들은 마찬가지로 불의와 폭력의 세계에 대한 정치적 주체의 정동을 반영한다. <영웅본색>이 홍콩영화 사상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던 그해 홍콩은 다가오는 1997년을 어둡게 만드는 사건으로 들끓고 있었다. 1986년 홍콩 센트럴에서 약 50미터 거리인 다야만에 설립될 중국의 핵발전소 건립계획은 홍콩 내의 격렬한 반대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해 4월에 발생한 체르노빌 사건은 이 반대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학생, 노동자, 시민단체 등이 결집한 ‘다야만 핵발전소 건설보류 연석회의’가 중국정부에 제출한 반대서명에는 참여한 숫자는 당시 홍콩인구의 1/5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오우삼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받는 < 첩혈쌍웅 >은 1989년 천안문 사태와 ‘본토’의 폭력을 목격한 홍콩 시민들의 광범위한 불안을 반영하였다. 1987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홍콩 느와르에 대한 한국의 젊은 남성들의 열광은, 홍콩의 정치적 맥락과 전혀 상관없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하나의 정동을 공유하는데, 그것은 인의와 그 인의를 보장하는 투쟁중인 집단의 형제애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왜, 한국의 젊은 남성들에게 주윤발은 ‘따거(大兄)’가 되었는가? <영웅본색>이라는 저 정념의 활극의 핵심은 형제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감내하는 헌신적인 형제애이다. 주윤발의 몸이 말 그대로 무수한 총알구멍들로 뚫려질 때, 그는 온몸을 부서뜨리며 이를 수행한다. <영웅본색> 2편에서 죽은 마크-주윤발의 총알구멍으로 너덜너덜해진 코트가 등장할 때 그것은 형제를 위한 이 죽음의 순간을 거의 물신의 영역으로까지 끌어올린다. 죽음을 무릅쓰는 이 형제애의 감정경제는 1987의 저 광범위한 연대, 세계의 폭력에 저항하고자 하는 (남성) 동지들의 연대와 그 속에 작동하고 있던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젠더적 편향성까지를 모조리 담아낸다. 다시 말해 이 의리란 세계의 부정과 대치하고 있는 (남성) 형제들 간의 의리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영웅본색>의 ‘번역가능성’이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1987의 <영웅본색>은 한국과 홍콩영화 사이의 독특한 관계 속에서 일종의 외주제작된 정념의 ‘번안물’로서 이곳에 도착하고 있었다. (이 글의 내용 일부는 필자의 「형제애의 로망, 1987의 정동—<영웅본색>과 홍콩-한국 커넥션」을 가필 수정한 것임을 밝힌다.) *** 1) ”구회영,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한울, 1991, 205쪽.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홍준이 구회영이라는 필명으로 로드쇼에 연재한 글을 묶어 출간한 이 책은 새롭게 등장한 시네필들의 관람 실천의 안내서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한국에서 홍콩영화가 최초의 ‘컬트적’ 향유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이 관점에서 보자면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 관객들이 처음으로 시네필이라는 ‘세계’관객의 시민성을 향유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2) <영웅본색> 이후의 홍콩 갱스터 영화를 일괄했던 이 표현은 일본과 한국의 저널리즘에서 즐겨 유통되었다. ‘필름 느와르’라는 매우 특화된 역사성과 내러티브-이미지를 지닌 영화 장르명을 원용해오고 있는 이 용어에 대해 우다가와 코우요는 <영웅본색>의 일본에서의 공개 당시, 일본 배급회사 선전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전한다.(野崎歓・宇田川幸洋対談「香港犯罪映画の魅力」, 夏目深雪、石坂健治、野崎歓編, 『アジア映画で<世界>を見る』, 作品社、2013, p.110) 대개의 저널리즘적 표현이 그러하듯 엄밀한 의미를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직관적인 포착이 가능한 이 용어는 거의 같은 시기 한국에서도 즐겨 사용되었다. 한편, 홍콩에서는 <영웅본색> 이후 등장한 일련의 갱스터 영화들에 대해 ‘영웅편(英雄片)’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3) 홍콩영화 향유의 초기부터 있었던 개인적 기억과 결부된 ‘체험’으로서의 홍콩영화에 대한 매혹적인 서술의 사례들로는 다음을 참조. 오승욱, 「어느 장철교 신자의 신앙고백- 나는 왜 그렇게 장철 영화를 좋아하나?」, 『KINO』 2003.7/ 정성일, 「장철의 무협영화에 바치는 피끓는 십대 소년의 막무가내 고백담」,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바다출판사, 2010. 4) 1971년 쇼브라더스에서 장철의 조감독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한 오우삼 자신이 1970년대의 홍콩-한국 커넥션을 직접 경험한 자라는 점은 꽤 의미심장해 보인다. 그의 공식적인 감독 데뷔작 <여자태권군영회 女子跆拳群英會>는 한국 관객들의 홍콩영화에 대한 저 친밀함이 1970년대의 어떤 시각적 경험을 통해서 저변화되어갔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73년 불어닥친 이소룡 영화의 붐 이후 국가적 전략으로까지 제시된 ‘태권도 영화’와 호응하여 만들어진 이 합작영화는 한국에서 올로케 촬영되었다. 김창숙과 남산식물원과 경복궁을 주된 시각적 재료로 삼고 있는 이 영화는 한국에서 1974년 제작사 골든하베스트와 감독 오우삼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동아수출공사가 제작하고 김명용이 감독한 ‘한국영화’ <위험한 영웅>으로 개봉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 오우삼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여자태권군영회>라는 원제목을 달고 한국에서 VHS로(세경) 출시된 바 있다. 5) 『동아일보』 1990.9.20 6) 「国村準インタビュー」, 宇田川幸洋編集, 『キネ旬ムック フィルムマーカーズ⑫ ジョン・ウー』, キネマ旬報社, 2000, p.74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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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 괴수 영화 ‘고지라’가 이번에는 안노 히데아키와 히구치 신지 감독의 작품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왔다. 1998년 일본 문화 개방 이후 < 고질라 24 - 고질라 2000 밀레니엄 >(오카와라 타카오, 1999)(이하 고질라 2000 밀레니엄)이 오리지널 재팬 블록버스터 영화로 소개되어 개봉했다가 흥행에 대참패, 개봉 며칠 만에 간판을 내린 적이 있었다. 당시 할리우드판 < 고질라 >(롤랜드 애머리히, 1998)가 나온 뒤 일본에서 자신감을 갖고 제작한 작품이어서 특수효과에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이 느껴졌지만,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본 <고질라 2000 밀레니엄>은 할리우드판 <고질라>나 한국의 < 용가리 >( 심형래 , 1999)에 익숙해진 관객의 시선으로 봐도 조악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비디오나 책으로 귀하게 접해야만 했던 고지라 시리즈가 정식으로 극장에 개봉하면서 그동안 갖고 있던 신비감이 사라지는 느낌과 동시에 괴리감이 들어 고민했던 기억도 있다. 간절히 바라던 것이 어느 순간 갑자기 이루어지게 되니 뭔가 허무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 후로 일본에서는 꾸준히 고지라 시리즈가 나왔고, 국내에서도 개봉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 고질라 2000 밀레니엄 > 흥행 부진의 여파로 일본영화제 등에서의 소규모 상영 말고는 일본판 고지라가 국내에서 정식개봉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14년에는 또 다른 할리우드판 < 고질라 >(가렛 에드워즈)가 개봉했으나 개봉 당시 악재가 겹치며 국내에서는 흥행에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 신 고질라 >(히구치 신지, 안노 히데아키, 2016)가 오픈 시네마로 선정되어 개막식 다음 날 저녁,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상영되었다. 기술 시사회를 통해 이미 보기는 했지만 야외극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접한 <신 고질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태풍 차바의 상처가 남아있는 부산에서 관람하니 묘한 사실감이 느껴졌고, 부산의 초고층 빌딩과 영화 속 도쿄의 빌딩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관객과의 만남: 와타나베 켄과 이상일(위) 히구치 신지와 하세가와 히로키(아래) 이번 영화제에는 < 신 고질라 >를 연출한 히구치 신지 감독과 주연배우 하세가와 히로키가 내한하여 관객들과 만났다. 거기에 영화 < 분노 >의 주연배우 자격으로 내한한 할리우드판 < 고질라 >(2014)의 와타나베 켄과 < 곡성> 배우의 자격으로 내한한 쿠니무라 준(<신 고질라> 출연)까지, 한곳에서 고지라 출연 배우와 감독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굉장한 기회였다. <신 고질라>가 처음 상영된 10월 7일에는 히구치 신지 감독과 하세가와 히로키가 두레라움 광장과 야외극장에서 연이어 무대 인사를 진행했다. 이날 처음 만난 히구치 신지 감독은 굉장히 유머러스한 모습이었고 하세가와 히로키는 기존 영화에서 본 모습과는 달리 점잖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와타나베 켄은 가만히 있어도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었다. 히구치 신지 감독과 하세가와 히로키는 포토 타임 때 관객들을 위해 <신 고질라> 손 모양을 따라 하며 팬서비스를 해 주었다. 쿠니무라 준까지 보고 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일정 때문에 못 보고 온 게 아쉽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 고질라 >에 자극을 받아 다시 시작된 일본의 고지라 시리즈는 이후 가렛 에드워즈의 < 고질라 >에 의해 다시 한 번 영향을 받게 된다. 그 후 이번에 나온 < 신 고질라 >는 더 이상 할리우드 고지라와 비교를 못 하게 하기 위한, 종지부를 찍기 위해 나온 영화 같다는 느낌이었다. 이번 작품은 1954년 괴수의 왕 <고지라> 1탄 이후 가장 징그럽고 무서운 외양의 고지라가 등장하여 일말의 연민과 동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나온 일본 역대 고지라 시리즈 중 고지라가 무섭게 나왔던 적이 3번 정도 있었는데 신기한 건 이때가 일본이 국제적으로 위기감을 느끼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일본에서 최근 일어난 자연재해와 인재, 외부의 적에 대한 현실이 반영이 된 거라 생각된다. 고지라 시리즈를 포함하여 일본 괴수 영화에 등장하는 괴수의 상징은 일본을 위협하는 재난 혹은 적국을 의미하곤 하는데,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에서 직접적인 전쟁영화나 일본의 군사력을 자랑할 만한 영화를 만들기 어려워지자 그 대안으로 나온 게 바로 괴수와 외계인이 일본을 침공하는 영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 고질라>도 가볍게 볼 수 있는 상업 영화인 것 같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을 생각하면 마냥 가볍게만 볼 영화가 아니기도 하다. 자위대의 지원 하에 재난(고지라) 앞에서 하나가 되어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원폭, 지진, 쓰나미, 방사능 유출 사고를 겪은 일본이 이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국가를 지켜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지라를 공격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하는 일본 각료의 모습과 미국의 도움 부분에 대한 이중성, 언제든 고지라가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암시 등은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입장에서는 그다지 유쾌한 부분은 아니다. 괴수 영화에도 나라 간의 자존심 대결이나 당시의 시대상과 국제문제 등이 반영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 괴물 >(2006)에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미국과의 관계, 그리고 투명하지 못한 언론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괴물>이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일본 관객들이 한강에 괴수가 나타났는데 왜 경찰이나 군대가 출동을 안 하는 모습이나, 현서가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도 경찰이 믿지 않는 장면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쩌면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 신 고질라 >에서 피난 가지 못한 노인을 위해 폭격을 안 하거나 우왕좌왕하긴 하지만 국민을 속이려 하지는 않는 정부 각료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날 부슬비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도 많은 관객이 야외극장에 와서 < 신 고질라 >를 함께 관람했다. 고지라 팬, 에반게리온 팬, 그리고 하세가와 히로키 배우 팬까지 모두 모여 손뼉 치며 환호하며 관람했다.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기념촬영을 하는 관객들도 많았다. 이날 옆자리에 가족과 함께 온 꼬마 관객이 있었는데 긴 러닝 타임 내내 조용히 몰입해서 보고, 영화가 끝난 후 재미있었다고 말했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이번 < 신 고질라 >는 슈트가 아닌,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고지라인만큼 국내 관객들의 눈높이에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한국 관객들에게 지진과 원전의 공포가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기에 고지라가 상징하는 메타포를 이해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논란의 <신 고질라>는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한국 관객과 정식으로 만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원고 내용 중 ‘ゴジラ’는 원발음에 가깝게 ‘고지라’로 표기하였으나, 영화 제목은 개봉 제목을 따라 ‘고질라’로 표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