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연인
- 감독
- 정호현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정호현, 오리엘비스 파드론
내 나이 34살, 결혼할 시기가 다가오니 남들의 퍼스트 댄스(영미권에서 신부 신랑이 맨 처음 추는 춤을 일컫는 말)에 눈이 간다. 정호현 감독의 < 쿠바의 연인 >, 지민 감독의 < 두개의 선 >은 곧 노총각 대열에 합류할 나에게 ‘결혼은 왜 하려 하는가?’ 묻는 좋은 결혼지침서였다. 정소희 감독의 < 퍼스트 댄스 >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 솔직히 < 퍼스트 댄스 >의 정보를 접했을 때 영화 보기를 잠시 망설였다. ‘오래된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이야기, 음... 그들이 이 사회를 살아오면서 겪었을 아픔이 지독하게 나열되어있다면 영화 보기가 쉽지 않겠는데...’ 라는 우려는 첫 인터뷰가 진행되는 순간 흐뭇한 미소로, 아니 부러운 눈빛으로 바뀌었다. “두 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을 행복하게 담고 싶었다.” 는 감독의 의도는 정확하게 구현됐다. 대학교에서 만나 5년 동안 사랑을 이어온 선민과 로렌, 두 사람은 주변의 허망한 죽음을 보며 ‘더 이상 미루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결심한다.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다. 모두에게 축복받는 결혼을 하고 싶지만 선민의 가족은 커밍아웃한 선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로렌과의 결혼은 더더욱 인정할 수 없다. 맘고생으로 말라가던 선민을 로렌과 친구들이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 선민과 로렌은 보스턴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개최되는 날 게이 휴양지인 ‘프로빈스 타운’ 해변에서 결혼을 한다. 영화의 구성은 단순하다. 결혼식 준비 과정과 결혼식, 선민과 로렌, 그리고 친구들과 가족의 인터뷰가 교차된다. 3~4일밖에 안 되는 촬영 기간에 감독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잘 찍은 결혼식 동영상으로 보일 수 있는 영상이 진심 어리고 심도 있는 인터뷰와, 이런 단순한 형용사들을 사용해 그들의 결혼식을 표현하기 싫지만 달리 떠오르는 단어가 없어, 정말 부럽고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결혼식은 어떤 영화의 그것보다 행복하게 값지게 다가온다. 인터뷰를 떼 보면 동성애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 동성 결혼의 합법화 문제, 동성 결혼에서 아이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 등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로렌 친구의 인터뷰 중 “우리가 이성애자인 것처럼 로렌도 그냥 동성애자인 거다. 그녀가 그녀 됨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라는 말은 2014퀴어문화축제에서 ‘이들의 죄를 용서해달라.’ 는 기도와 함께 깊게 이야기 나눠야 할 부분이다. 결혼정보회사에 전화 한 통 넣는 것을 끝으로, 딴딴따다 20분 만에 결혼식을 마치고 뷔페식당에 쪼로록 앉아 밥 한 끼 때우고 돌아가는 문화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에게 선민과 로렌의 결혼식은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빡빡한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라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결혼식을 보고 있노라면 진한 감동이 닿는다. 드넓은 해변, 파란 하늘 아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선민과 로렌이 ‘오직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지되는’ 후파 아래 서있다. 후파는 사방이 트여있다. 모두가 선민과 로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볼 수 있고, 어떤 이가 선민과 로렌의 결혼을 지지하고 함께 지탱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결혼 서약을 하고, 반지를 교환한다. 그리고 큰 담요로 선민과 로렌을 두른 후 결혼식에 참가 한 모든 이들이 두 사람을 감싸 안는다. 이 순간 우리에게 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된다.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이들과 공동체를 이뤄 함께 살아가는 것! 선민은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커밍아웃하지 못한 동성애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라고 했다. 공포의 순간들이 다가올 테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들이 찾아올 테니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선민의 바람과는 달리 영화 한 편이 전하는 메시지로 가부장적 문화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커밍아웃하기란 이 사회가 너무 폭력적이다. 선민의 바람처럼 그녀가 디딘 첫 스텝을 보고 누군가가 용기를 낸다면 영화가 행하는 기적의 순간이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 퍼스트 댄스 >는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아주 잠시 위로를 전해줄 것이다. 그리고 결혼 못 한 나에게도...
나는 3년 전, 영화 < 쿠바의 연인 >을 찍고 있던 정호현 감독과 애인이었던 오리 엘비스를 만났다. 쿠바 사람을 직접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쿠바하면 떠오르는 체게바라에 대한 인상이 강해서일까? 검붉은 피부에 돌돌말린 레게머리, 그리고 크고 까만 눈이 우리를 한눈에 사로잡았다. 아홉 살과 여섯 살이던 내 아이들은 인사를 하러 다가오는 오리 엘비스를 피해 소파 뒤로 숨었다. 여섯 살 딸아이는 급기야 울기 시작했다. 무섭다고.. 순간 오리 엘비스에게 미안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오리 엘비스는 큰아이에게 그림을 그려주기 시작했고, 큰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캐릭터를 보자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아서 웃고 놀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는 여전히 멀리 앉아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문화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새삼 놀랐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와 적당한 시간이 있으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차이를 극복하면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가끔, 머리가 햇님 같은 그 형은 잘 있는지 궁금해 한다. < 쿠바의 연인 >은 정호현 감독이 쿠바에 살고 있는 한인 3세를 촬영하기 위해 그곳에 갔다가 쿠바청년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다. 영화는 한인 3세들의 삶을 통해 쿠바 사회주의의 힘든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중반부에 들어서는 감독과 쿠바 청년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에 오히려 초점이 맞춰진다. 쿠바의 사회주의와 춤, 그리고 음악을 좋아한 정호현 감독. 그녀는 체게바라의 사진이 걸려있는 아바나 대학에서 오리 엘비스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이해하는 시간들로 그들의 사랑은 채워져 간다. 오리 엘비스의 가족들은 좁은 집안에서 끓임 없이 춤을 추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배 나온 아버지도 거침없이 빠른 음악에 몸을 맡기고, 부엌에서 음식을 하던 어머니도 춤을 춘다. 정호현 감독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그들. 풍족해 보이진 않지만 행복해 보인다. 정호현 감독과 결혼하기 위해서 한국에 온 오리 엘비스는 그녀의 가족을 만나게 된다. 딸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가능하다면 엄마는 딸이 결혼 하지 않길 바라는 엄마,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들 거라고 걱정하는 오빠와 새 언니들... 하지만 가족들은 그녀를 사랑한다. 그들은 결혼을 하고 캐나다에서 살고 싶어 한다. 모두가 평등하지만 너무 가난한 쿠바.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만 끊임없이 소비하고 노동해야 하는 한국. 오리 엘비스는 쿠바에 살고 싶지만 그곳에선 그녀와 살기가 힘들다. 한국에선 둘 다 일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지만, 이방인에 대한 배타가 너무 심하다. 세상에 완벽한 나라는 없다고 말하는 오리 엘비스. 하지만 사랑하는 그녀와 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괜찮다고 한다. 사랑의 힘으로!! 그들에게 아이가 생겼다. 이들 쿠바의 연인과 그 아이의 인생항로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이 영화는 섹시하게 살사 춤을 추는 여인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보기 힘든 섹시함과 경쾌함이다. 또한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반나신를 볼 수 있다. 아마 극장개봉을 한다면 다큐멘터리로는 처음으로 청소년 관람불가영화가 되지 않을까? 경쾌한 쿠바 음악과 감각적인 편집,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영화는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정호현 감독의 < 엄마를 찾아서 >라는 전작을 보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느껴지고, 깊이 있는 인터뷰와 재치 있는 자막 편집이 감독의 가능성을 느끼게 한다. < 쿠바의 연인 >은 전작과 함께 정호현 감독의 기발함과 상상력 그리고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영화이며, 한국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재미를 볼 수 있는 영화다. 정호현 감독과 영화 <쿠바의 연인>(2009)은 요즘 다큐멘터리 편집을 하고 있는 나에게, 끊임없는 질문과 자극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