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픽
- 감독
- 자크 타티
- 제작년도
- 1971
- 출연
- 자크 타티, 마르셀 프라발, 오노레 보스텔, 프랑수와 매송그로스, 토니 네퍼, 마리아 킴벌리, 프랑코 러셀, 마리오 자누엘리
‘IT 기술’의 플랫폼과 ‘교양’의 문제 최근(2017년 12월) 필자의 관심사는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기술(IT)적인 ‘플랫폼’(≒미디어, 매체)이 세계화(글로벌화)되어 발생되는 고전적인 ‘교양’의 ‘해체’라고 불러야 할 상황에 대해 주로 기울어져 있다. 그 때문에 요즘 몇 번 출판계에 기고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마침 이 플랫폼(전자서적이나 웹툰, 웹 소설 등)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었다.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2017년 12월 5일 453호 및 곧 출간 예정인 단행본 『한국의 논점 2018』 등.) 인터넷을 통한 각종 ‘플랫폼’은 주로 ‘IT 계열’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마련이고 (주요 플랫폼 기업이라고 한다면 아마존, 애플, 구글, 우버, 에어비앤비, 텐센트, 국내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를 들 수 있을 텐데 보다시피 대부분 IT 기업으로 출발했다), 그에 따라 종래의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했던 대중(mass)의 ‘매체(media)’의 대표 격인 ‘출판’이 가지고 있던 인문학적 속성과는 조금, 문화랄까 습성이랄까 배경에 차이가 있다고 여겨지는 상황이다. 일본의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는 이런 상황에 대해 설명할 때 주로 ‘구(舊) 교양’이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말 그대로 출판 시절의 매체는 ‘과거의 교양’을 바탕에 둔 것이었으나 현대 인터넷 기반의 IT 플랫폼은 그렇지 않은 측면이 많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이다.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한테 아베 정권이 당당하게 내보였던 일본문화가 트럼프 손녀딸이 좋아한다는 피코타로였고, 하지만 정작 그 손녀딸은 삼자경과 당시(唐詩)를 암송하는 동영상을 시진핑한테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작년에 카와카미 노부오가 현대 일본의 교양은 이미 『소년 점프』가 되었다는 구태의연한 지적을 했던 것을 다시금 통감했다. 카와카미는(중략) ‘지적(知的)인 웃음’을 표현하고자 할 때 인용되는 것이 더 이상 고전이 아니라 『소년 점프』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하지만, 그러한 서브컬처는 트럼프에게조차도 교양으로 치부되지 못한다. 트럼프조차도, 교양이란 곧 고전이란 사실을, 어리석긴 해도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소년 점프』나 피코타로가 ‘오타쿠 문화’라고 할 수 있는지 ‘서브컬처’라고 해야 할지, 그런 세세한 정의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지만, 아베 마리오 코스프레까지도 포함해서 그것들을 한 묶음으로 하는, 지극히 경솔한 무엇인가를 체현시킨 것이 현 시점의 이 나라에선 문화이자 교양이라고 하는 사실이, 아베 정권에 접어든 이후 계속해서 가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이제 슬슬 느끼고 있지 않은가. 아소 타로의 교양이 ‘만화’였다는 것을 이젠 더 이상 아무도 화제로 삼지 않게 되었고, 이시바 시게루, 마에하라 세이지 등과 같은 차세대 국방족 의원들의 ‘교양’은 프라모델 만들기나 철도 오타쿠라는 것이야말로 이 나라 안전 보장에 있어서 최대의 문제라고 아무도 느끼지 않고 있다. 선거전 종반에 여당 당수가 연설 대상으로 했던 유권자는 아키하바라에 모인 사람들이었지 신주쿠 서쪽 출구의 샐러리맨이 아니었다. 논단에서도 젊은 학자나 논객의 ‘취미’가 아이돌에 관한 논의가 되어 있는 정도로는 ‘서브컬처’든지 ‘오타쿠 문화’이든지의 ‘교양화’는 확실하게 진전되었다. ‘오타쿠 문화’ 그 자체는 이제 와선 무한하게 세분화되었지만, ‘쇼와의 끝 무렵’ 시절에는 대략적으로 히라가나 표기의 ‘오타쿠(おたく)’란 단어 주변에 있던 것들(미야자키 쓰토무의 방에 있던 만화는 ‘모에’ 만화가 아니라 극화지와 『젊은 아내의 속옷』이었고, 수천 편의 비디오 컬렉션은 롤리타 포르노가 아니라 CF와 아이돌, 프로레슬링과 애니메이션에 야구 방송 녹화 등, 헤이세이 시대 이후로는 세분화되어버린 ‘오타쿠의 각 소비 영역’을 얕고 넓게 대강 대충 커버하고 있던, 도저히 ‘컬렉션’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이 이 나라의 중심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으나, 교양만이 아니라 정치나 경제나 미디어에서도 분명히 그 일각을 점거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쓰카 에이지, 「아베의 교양과 어디에도 없는 장소의 ‘오타쿠 문화’」, 『최전선』 편집부 블로그, 2017년 12월 7일) 참고로 약간의 해설. 이 글에서 나온 피코타로는 ‘PPAP’란 곡으로 유튜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본의 가수이고, 카와카미 노부오는 일본의 동영상 플랫폼 ‘니코니코동화’를 만들었고, 지금은 대형 출판사인 카도카와쇼텐과 합병하여 만들어진 KADOKAWA(카도카와)란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인물이다. 카와카미는 스튜디오 지브리로부터도 인정을 받아 지브리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을 보좌해온 베테랑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의 ‘제자’로서 미야자키 감독 작품인 < 바람이 분다 >와 타카하타 감독 작품인 < 가구야 공주 이야기 >에 ‘프로듀서 견습생’으로 크레디트되기도 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 대해서도 오쓰카 에이지는 매번 날카로운 지적을 해왔다. (실제로는 오쓰카 에이지는 카와카미와 친분이 있고, 니코니코동화가 주최하는 이벤트나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 ‘아베 마리오’ 코스프레는 일본의 아베 총리가 2016년 리우 올림픽 폐막식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해 슈퍼 마리오 코스프레를 하고 등장했던 것을 가리키는, 일본 매스컴의 유행어(?)이다. 아소 타로는 일본의 전직 총리이자 현재에는 재무대신, 부총리 등을 역임하며 아베 정권의 일각을 담당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는 자민당 간사장을 맡으며 아베파의 일각이었으나 현재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당내의 라이벌처럼 된 정치인이고, 마에하라 세이지는 야당인 민주당 당수였다가 그 뒤를 이은 민진당의 대표를 맡았다가 야당을 깨버리고 상당히 우익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일본 야권의 유력 정치인이다. ‘아키하바라에 모인 사람들’이란 표현은 젊은 오타쿠층(2010년대 일본의 젊은 층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수·우익적이다), 즉 ‘프리터’(프리랜서나 아르바이트 정도를 하고 있는, 사실상 무직인 층)라든지 니트(NEET), ‘넷우익’과 친화성이 강한 층을 지칭하는 것이고, ‘신주쿠 서쪽 출구의 샐러리맨’이라 함은 한국에서 말하자면 ‘여의도나 명동의 회사원들’이란 식으로, 좀 더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회사원층을 뜻한다. (이 회사원들이 보수파가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보수나 진보와 무관하게 그냥 말 그대로의 ‘일반인들’을 지칭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쇼와 시대는 1989년에 끝났으므로 ‘쇼와의 끝 무렵’이라 함은 1980년대 중후반을 가리킬 것이고, 미야자키 쓰토무는 1989년에 도쿄·사이타마 연속 유아 유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고 집행된 인물이다. 그가 당시에 ‘오타쿠’를 대표하는 것처럼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바람에, 그 당시에 코믹마켓 등에 동인지를 내거나 애니메이션을 대량으로 시청하는 소위 ‘오타쿠’ 계층에 대한 일본 사회의 ‘왕따’와도 같은 분위기가 돌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미야자키 쓰토무를 ‘오타쿠’라고 보도했던 주된 원인은 그의 방에 수천 개의 비디오테이프가 있었고 만화잡지를 포함한 책들도 꽤 있었다는 이유였는데, 실제 그 비디오테이프 중에는 불법적인 포르노도 없었고(일본에선 정상적으로 발매되었던 성인용 비디오는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유아 대상의 롤리타 계열도 아니었고 전부 ‘합법적인’ 성인물이었음) 대부분은 CF나 아이돌이 출연한 TV 프로그램과 TV 드라마, 프로레슬링 및 야구 시합의 녹화 비디오였다는 사실이 21세기에 들어 새롭게 주목받은 바 있다. 그 중에 포함되어 있던 애니메이션도 당시 ‘오타쿠’들이 즐기던 작품이라기보다는 < 우주전함 야마토 > <게게게의 키타로> < 요술공주 샐리 > 등 상당히 ‘일반인 취향’의 애니메이션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드라마 역시도 당시 대중적으로 인기 있던 작품이 많았다. 하지만 역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보다는 오타쿠에 가까웠던’ 그가 1980년대 당시 ‘세분화된 특정 장르’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이처럼 폭넓게 ‘오타쿠 문화 혹은 서브컬처’를 섭렵하고 있었다는 점을, 오쓰카 에이지는 현재의 ‘세분화된 오타쿠 문화 혹은 서브컬처’와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오타쿠 계층에서는 미야자키 사건이 있었던 당시 일본 TV에서 대형 동인지 판매전인 코믹마켓을 배경으로 “여기에 10만 명의 미야자키 쓰토무가 있습니다!”라고 옐로 저널리즘스럽게 보도했다는 것이 마치 정설처럼 오랫동안 이야기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런 보도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올해 밝혀지기도 했다. 참조:「‘10만 명의 미야자키 쓰토무’는 있었는가?」, 야후재팬 뉴스 개인(dragoner/블로거), 2017.09.29) 아무튼, 서브컬처가 ‘교양’이 되어버린 시대에 플랫폼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다시 한번 오쓰카 에이지를 인용해보겠다. ‘오타쿠 문화’, ‘서브컬처’는 카도카와 쓰구히코 등과 같은 인물이 말하는 소위 ‘에코 시스템’(이 사회 속에서 말하는 ‘에코’란 ‘에콜로지’(환경)라기보다 ‘이코노미’(경제) 아니겠는가?), 즉 플랫폼 기업은 사람들이 투고나 2차 창작을 자발적으로 행하도록 만들고 있는데, 동시에 그것을 각자 본인의 의지나 자기표현이라고 만족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을 갖춰놓고 있다. (중략) 하지만 이제 와서 거기에 모이는 사람들한테 당신들은 착취당하고 있다고 설명해주어봤자 마르크스주의 등장 이전의 노동자들한테 당신들은 소외당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고, 하물며 아무래도 ‘혁명’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하니 더 이상 설명해줄 기분도 들지 않는다. 2차대전 이후 출생 세대인 구 ‘오타쿠’들은 ‘내용’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차세대인 카와카미 노부오나 히로유키로 대표되는 정보공학계 오타쿠들은 플랫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오타쿠 문화가 경제나 문화의 중추로 편입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그 의미와, 그 결과 초래될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두는 편이 좋다는 것만큼은 경고해두고자 한다. (중략) 어쨌거나 ‘오타쿠’는 이젠 플랫폼 안에 기관의 일부로서 편입되어, 플랫폼 그 자체에 위화감을 느끼지도 않고 회의(懷疑)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 나라 ‘보수’의 기조(基調)라고 할 만한 것이라면, 요즘엔 그런 것들 안에서나 찾아야 할 것이다. (오쓰카 에이지, 위와 동일) 다만 오쓰카 에이지는 이런 식의 구세대 ‘오타쿠 교양’의 붕괴에 대해 “한탄도 찬미도 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에서 몇몇 오타쿠 평론가들 사이에 유행했던 ‘오타쿠 세대론’(세대 차이론)을 주장하는 듯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것은 오쓰카의 다른 최근 책에서도 여러 번, 분명한 사례를 들면서 강조되고 있으니 실제로 진심일 것이다.) 즉 과거의 오타쿠들은 내용(contents)을 만들어내었으니 훌륭하고 요즘 IT 계열 오타쿠들은 플랫폼밖에 만들지 못했으니 뒤떨어진다는 식의 논의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글에서 오쓰카가 언급한 ‘내용’이란 단어는 영어 단어로 보자면 ‘콘텐츠(contents)’에 해당하는데, 이는 서적에서 ‘차례’를 보통 ‘contents’라고 표기하는 것처럼 바로 ‘서적의 본문 내용’을 가리킨다. 또 플랫폼이라는 것은 종이책에서라면 바로 그 ‘종이’, 제본되어 한 권 한 권 묶여진 책의 본체 그 자체를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콘텐츠)과 종이(플랫폼) 사이에 어떤 ‘우열’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플랫폼이 없이는 우리가 콘텐츠를 접할 방도가 없으니 말이다. 오쓰카가 문제로 삼는 것은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에는 ‘콘텐츠’를 만들어냈던 오타쿠들이 (세대는 바뀌었을지언정 결국 똑같은 ‘오타쿠’이니까) 지금은 플랫폼 안에 그 구조물의 부품처럼 편입되어 버렸고 심지어 그 상태를 불편하게 느끼거나 회의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며 안심하고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타쿠들은 인터넷 시대 이후 PC통신의 채팅실에서, MSN메신저와 네이트온과 카카오톡 같은 인터넷 메신저에서, 블로그에서, 그리고 지금은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PC통신 시절에는 모두가 글을 쓸 수 있는 ‘게시판’으로 시작했다가 ‘가입’한 회원만이 글을 볼 수 있는 ‘동호회’란 것이 만들어졌고 그 뒤에는 동호회로부터 ‘소모임’이란 것이 생기는 등 갈수록 ‘좁은 문’을 선택했다. 또한 채팅실에서는 ‘강퇴’(강제퇴장)를 시켰으며, 블로그에선 ‘서로이웃만 보기 기능’을, SNS에선 ‘페친’과 ‘블락’과 ‘뮤트’를 통해서 점점 더 ‘자기가 보기 편한 환경’을 계속해서 추구해왔다. 이것이 바로 ‘플랫폼 안에 부품처럼 편입되어 버렸고 심지어 그 상태에 오히려 편안함과 안심감을 느끼는 상태’라는 말이다. 이는 ‘어떤 장르든지, 창작이든 패러디든지, 만화든 소설이든 평론이든 굿즈든’ 어떤 것에든지 개방된 상태에서, 또한 모두가 다 같은 ‘참가자’일 뿐 누구도 ‘주인’이거나 ‘손님’이지 않은 ‘열린 환경’을 추구해왔던 코믹마켓의 이념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당초에는 인터넷의 이념도 바로 그러한 ‘개방성’에 있었을 텐데, 실제로 그 인터넷상에서 추구되는 것은 ‘끼리끼리 모일 때의 편안함’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당초에는 발언의 자유를 위해서 시작되었던 인터넷의 익명성조차도, 실제로는 수많은 ‘딥 웹’ 방식의 ‘초보자나 타인의 참여를 기피하는 익명성 커뮤니티’를 보게 되면 오히려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곤 한다. 실제로 한국의 익명성 커뮤니티에서는 소위 ‘닥눈삼’, 즉 ‘닥치고 눈팅 삼 년’이라 하여 해당 장소의 분위기 파악을 하기 전까지는 상당한 장기간 동안 글을 쓰지 말고 읽기만 하라는 분위기가 유행했고, 일본에서도 익명 기반의 게시판 2ch(2채널)에서는 ‘ROM’(리드 온리 메모리의 약칭)이라 하여 한국과 똑같이 우선은 글을 쓰지 말고 읽기만 하고 있으라는 분위기가 존재했던 것을 보면, 그런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 인터넷에서 말하는 소위 ‘공기를 읽어라’(분위기 파악을 하라)는 말은 곧 ‘플랫폼에 적응하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플랫폼 안에서 ‘유저’들이 ‘손님’으로서 편안함을 느끼고 싶다는 욕망에 따라서 만들어진 분위기인 것이다. 미국에서 ‘망 중립성’을 폐지한다고 하던 뉴스 역시도, 바로 이런 ‘인터넷 속에서 벌어지는 자유의 제한’의 상징적인 조치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자면, 사회의 방향성이 ‘콘텐츠’에서 ‘플랫폼’으로 변경된 것에서 그다음 단계로, ‘플랫폼’으로부터 더더욱 기술적인 ‘네트워크’로 가버리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 정도이다.) 플랫폼과 유저 마인드의 문제 오타쿠층의 ‘현재’가 과거의 ‘교양’ 시대, 즉 콘텐츠를 창출해내고자 했던 모습에서 지금의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시대로 움직인 것 아닌가 하는 오쓰카의 이 지적은 흥미롭다. 실제로 과거의 오타쿠들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시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일본에서의 ‘1세대 오타쿠’와 한국에서의 ‘1세대 오타쿠’의 시기가 달랐던 것처럼) 초기에는 미야자키 쓰토무와 같이 ‘얕고 넓게’ 다방면의 ‘오타쿠 장르’를 섭렵하던 모습이었는데, 점점 갈수록 자기 자신만의 취향에 기울어져 세분화되어 왔다. 이 ‘세분화’를 나는 ‘파편화’라고 불렀는데, 말하자면 과거엔 오타쿠라면 TV에서 일본애니메이션도 보고 극장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보고 LD나 비디오로 일본의 OVA도 보았다.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관심을 가졌고 주브나일과 판타지 소설에서 유래한 ‘라이트노벨’이란 것이 인기를 끌게 되면 소설도 읽었다. 또 남자라도 TV에서 『들장미소녀 캔디』를 보았고 동호회에서 화제가 되는 작품이라면 (여성 취향의) CLAMP 만화나 『나의 지구를 지켜줘』나 『그 남자! 그 여자!』(카레카노)도 읽었다. 여자들도 『슬램 덩크』를 열심히 읽었으며(여성향 동인지 신(scene)에서 항상 최대의 장르였던 것은 『슬램 덩크』나 『테니프리』 『강철연』 『쿠로바스』 등과 같은 소년만화였다), 차세대 게임기가 나오거나 온라인게임의 유행에도 적극적이었다. 남자가 구체관절인형을 사고 여자가 건프라를 사는 모습이 드물지 않았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완구 판매의 어떤 한 특징으로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은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콘텐츠에서 플랫폼 쪽으로 ‘메인스트림’의 중심이 옮겨가면서 더 이상 ‘얕고 넓은’ 것은 오타쿠층의 ‘기본 소양’이 아니게 되었다. 바로 그 점을 지적했던 것이 ‘얕고 넓은’ 오타쿠 세대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이었다고 할 수 있을 ‘오타킹’ 오카다 토시오(가이낙스 전 대표)가 2006년부터 말해왔던 ‘오타쿠의 죽음(「오타쿠 이즈 데드」)’의 내용인 것이다. (이와 관련되어 2008년에 『오타쿠는 이미 죽었다』란 제목으로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다만 오카다 토시오는 이에 관해 블로그에서 ‘첫 번째 저작 『우리들의 세뇌사회』 때부터 일관적으로 내 입장은 〈닥쳐오는 시대를 거부하지 않는다〉였다. 나는 지난번 이벤트 때에 한 마디도 “요즘 오타쿠는 안 되겠다”, “요즘 애니메이션은 재미가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옛날 같은 오타쿠가 줄어든 것은 당치도 않다”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받아들인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이해의 한계〉인 것이지, 그에 대해서 반발하든 찬동하든 나로선 곤란할 뿐이다’고 답변한 바 있다. [오카다 토시오 블로그 2006.05.27]) 따라서 오쓰카 에이지든 오카다 토시오든, ‘그 좋았던 옛날(벨 에포크 Belle Époque)’에 대한 향수로서 구세대의 오타쿠를 긍정하고 현세대의 오타쿠를 비판하기 위해 이런 말(옛날 오타쿠들은 넓은 분야를 즐겼는데 요즘은 파편화되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오타쿠의 세대론과 무관하게, ‘교양이 존재하지 않는(존재할 필요가 없는)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모든 사람들이 그 플랫폼의 ‘유저(손님)’로서 자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정의하게 되었다는 점을 오쓰카는 지적했던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오랫동안 한국 오타쿠층의, 나아가서는 한국 대중의 ‘손님 마인드’에 관해 지적했던 것과도 연결되는 문제의식이다. 내가 손님 마인드라고 부르는 것은, 말하자면 본인을 항상 ‘손님’의 위치에 두고 타인이 자신한테 ‘서비스’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뜻한다. 소위 ‘감정 노동’의 문제도 결국은 이 손님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실제의 업체-고객의 관계에서도 ‘손님 마인드’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손님 마인드를 모든 방면에 적용시키면서, 스스로를 약자, 피해자 입장에 놓고 타인을 공격하고자 하는 태도인 것이다. 예를 들어 직접적으로 지불하는 금액은 없고 기껏해야 ‘트래픽을 통한 광고’를 보아줄 뿐이면서도 스스로를 ‘손님으로 대접받아야 하는 입장’에 놓고서 연예인이나 웹툰 작가 등한테 심한 악플을 달거나 고자세를 취하는 것이 심각한 사건으로 비화되는 일이 있지 않은가. 물론 돈을 냈더라도 ‘감정 노동’을 하게 되는 종업원 등에 대해 심각할 정도의 안 좋은 태도를 취하는 것도 문제일 테니, 단순히 돈을 내고 안 내고에 달린 문제라고만은 할 수가 없겠지만 그나마 돈을 직접 지불하지도 않은 상황이라면 아무래도 제 3자 입장에서 볼 때에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과거의 오타쿠들은 ‘모두가 똑같은 참가자일 뿐,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업주-고객 관계는 없다’라는 코믹마켓의 정신을 필두로 하여,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 작품이 없다면, 내가 스스로 만들겠다’라는 식의, 말하자면 일종의 ‘참여 의식’이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나를 손님으로 대해달라, 나를 ‘유저(user)’로 대해달라고 하는 마인드가 지금보다는 적었다는 ‘설명’을, 오쓰카를 필두로 한 몇몇 1세대 오타쿠 출신 평론가·연구자들이 지금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유저가 유저 입장에서 ‘유저 마인드’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어쨌든 과거와 달리 오타쿠라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분석 자체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특히 전 세계가 글로벌화되고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 국내에서도 오타쿠층, 혹은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의 세대 분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8월 ‘영화와 공간: 홍콩’ 프로그램이 총 9,212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성공리에 마쳤다. ‘성공’이라는 말을 부연하기 위해 숫자를 동원해보면, 본 프로그램의 경우 317석의 시네마테크KOFA 1관에서 총 33회 상영했으니 평균 좌석점유율은 86.2%라 할 수 있다. 지난 주말(9월 3주)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한 작품은 < 살인자의 기억법 >이며, 주말(금~일) 평균 좌석점유율은 21.8%이다. 두 숫자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이다. 이 글은 이 ‘성공’ 뒤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이자 때로는 가혹하기까지 한 시네마테크KOFA 프로그램 담당자에 대한 이야기다. 2015년부터 특정 도시를 다룬 영화를 한데 모은 ‘영화와 공간’ 시리즈를 매 여름 선보이고 있는데, 우디 앨런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뉴욕 시리즈에 이어 올해 홍콩을 다룬 본 프로그램은 시네마테크KOFA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딱 떨어지는 주제에 유명 감독의 대표작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의 기획과 수급이 일견 수월해 보일 수도 있지만, 고전이라 칭하기에는 지나치게 젊고, 신작이라기에는 이제는 나이 들어버린 8, 90년대 작품이 주를 이루는 본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것은 그리 쉬운 편에 속하지 않는다. 하물며 한국영화 산업만큼 부침이 심했던 홍콩영화계는 저작권자를 찾거나 상영본을 수급하는 측면에서 여간 까다로운 상대가 아니다. 그래서 ‘영화와 공간’을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홍콩은 항상 마음속에서 최상위를 차지하는 도시였지만,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다. 이런 고민 중에, 2016년 여름 한 통의 전화가 운명처럼 걸려왔다. 시작은 이러했다. 홍콩의 중국 반환 20주년을 기념해 홍콩특별행정구는 2017년에 글로벌 문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고, 그 일환으로 홍콩영화 세계 순회 상영을 계획하고 있었다. 본 특별 상영회의 실무를 맡은 홍콩국제영화제의 로저 가르시아 집행위원장은 당시 한국의 로컬 파트너를 찾고 있었고, 나는 ‘영화와 공간: 마틴 스콜세지 인 뉴욕’의 준비를 막 끝내고 내년 기획을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이 얼마나 운명적인 만남인가? 어느 PD님의 소개로 부천에서 만난 우리 둘은 서로의 프로그램이 잘 맞아떨어진다며 기뻐하며, 자세한 건 이메일로 연락하자는 인사와 함께 흡족하게 미팅을 마치고 헤어졌다.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나는 이게 웬 행운이냐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이 운명의 이면에 그만큼의 고난이 함께 한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다른 기관과 공동으로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낸다는 것은 같은 작업을 혼자 단독으로 하는 것에 비해 몇 배의 수고스러움과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번 ‘영화와 공간: 홍콩’은 특히 이 사실을 더욱 혹독히 깨닫는 과정이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넋두리하자면 이렇다. <메이드 인 홍콩> DCP 수급으로 다급했던 26일의 흔적 첫째, 하루에도 수십 통씩 주고받는 이메일 폭탄이다. 2016년 겨울로 접어들면서 ‘영화와 공간: 홍콩’의 기획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가르시아 집행위원장과 서로 적당한 작품을 추천하며 상영작 선정 작업을 마무리할 때쯤, 그와 내 메일에는 점점 한 명씩 참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프로젝트는 홍콩과 중국 내 4개 도시를 제외하고도 전 세계 10개 도시가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당연히 실무를 맡은 홍콩국제영화제 위원회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감당하기 위해 집행위원장 외 기획은 물론 예산, 홍보, 상영본 운송 등을 담당하는 여러 명의 스태프가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영화와 공간’ 프로그램을 맡은 한국영상자료원의 담당자는 단 한 명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더 자세하게 소개할 일이 있겠지만, 시네마테크KOFA 프로그램의 업무 프로세스는 영화제 프로그램팀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영화제가 기획부터 프린트 수급까지 단계별로 세분되어 분업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반면, 이곳은 한 명의 담당자가 하나의 프로그램 전체를 관할하는 개별 책임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A라는 프로그램을 맡은 담당자는 A의 기획부터 상영작 선정은 물론 배급사에 연락해 상영료를 지급하고 상영본을 받는 작업까지 모두 담당한다. 그것뿐이랴. 시놉시스 정리부터 포스터와 리플릿을 어떻게 만들지, 한국어 자막을 대여할지 제작해야 할지를 확인하고, 개막식과 같은 부대 행사라도 진행하게 되면 게스트 섭외부터 심지어 개막식 사회자 대본 작성, 리셉션의 음식 메뉴까지 정해야 하는, 말 그대로 해당 프로그램의 A부터 Z까지 모든 과정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홍콩국제영화제의 Tiffany, Pearl, Lemon, Shing, Nichol 등 몇 명의 담당자가 돌아가며 하루에도 수십 통의 이메일로 자신의 업무를 전달하고, 확인을 요청하면 우리 쪽은 담당자 혼자 그 모든 것을 결정하고 회신하고, 기안을 올리는 데 허덕여야 했다. 더군다나 본 프로그램 준비가 한창이던 올해 초는 ‘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를 마감하고,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2016년 한국영화’와 ‘로버트 알트만 X 폴 토마스 앤더슨’을 막 시작할 때라 아침에 출근해서 쏟아지는 메일에 회신을 보내고, 수십 개의 기안을 올려 업무를 처리한 후 퇴근해도 다음 날 출근하면 다시 산더미처럼 똑같은 업무가 쌓이는 <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해롤드 래미스, 1993)과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라 업무 강도가 평소 몇 배로 높았다. 둘째, 고난의 절정은 프린트 수급이었다. 앞서 말했듯 ‘영화와 공간: 홍콩’은 전 세계 10개 도시 순회 상영회의 일부이다 보니 몇몇 작품의 상영본은 다른 도시에서 상영한 직후 서울로 들어오기도 하고, 서울 상영 후 다음 도시로 바로 출고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말인즉슨 프린트 수급 일정이 매우 빠듯함을 의미한다. 통상 상영본은 최소 2주 전에는 입고되어 검수 과정을 거친 후 상영이 되는데, 이번 프로그램의 경우 상영 바로 며칠 전에 상영본이 입고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기획 초반부터 < 순류역류 >(서극, 2000)의 경우 디지털 복원은커녕 홍콩 내에서도 상영 가능한 필름 프린트를 찾기 어려웠다. 이곳저곳 수소문 끝에 파리의 시네마테크프랑세즈에서 불어 자막본 35mm 프린트를 보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시네마테크프랑세즈에 프린트 대여 협조를 요청하자 프린트 손상을 문제로 두 가지를 조건으로 대여를 허락했다. 하나는 상영을 단 1회로 제한하며, 나머지 하나는 상영 전 프린트 체킹 폼을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실제 프린트 검수를 담당하는 영사실에 이 사실을 알리자 난색을 표했다. 유럽의 경우 프린트 체킹을 사전에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프린트의 스크래치와 손상 정도를 일일이 기록함으로써 상영 전후의 손상 여부를 파악하고, 책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프레임 하나하나를 꼼꼼히 봐야 하는 이 과정은 보통은 몇 시간에서 프린트 손상이 심한 경우 며칠이 걸리는 수도 있는 작업이라 영사실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최소한 상영 일주일 전에는 프린트를 받아야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영사실의 당부에 우리보다 앞서 상영하는 베를린 측에 상영 직후 바로 프린트를 서울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기다리던 중, 7월 20일 페덱스로부터 드디어 연락이 왔다. <순류역류> 35mm 프린트가 인천 세관에 입고되었으며, 통관 심사에 걸려 있으니 필요 서류를 제출하라는 메일이었다. 해외에서 상영본을 수급할 때 인천 세관의 통관 심사에 걸리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다. 이럴 경우 상영 후 원 귀속자에게 재반출됨을 증명하는 서류와 국내 통관을 위한 담보 설정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서류를 모두 준비해 보내자 통관 절차를 시작하겠다는 답변과 함께 한국영상자료원의 다른 물건 중 하나의 관세 납부가 완료되지 않았으니 이 부분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페덱스로부터 받았다. 확인해 보니 다른 부서 담당자가 최근 해외에서 수집한 프린트가 있었는데, 아직 관세 납부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이를 넘겼다. 통관은 보통 하루 정도 걸리기에 7월 21일에 통관이 완료되리라 예상하고, 주말인 22일과 23일에 영사실에서 프린트 검수를 할 수 있도록 페덱스에 토요일(22일) 특송을 요청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프린트가 일찍 도착해 다행(상영은 7월 29일이었다)이라고 생각하며 주말을 보낸 뒤 24일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영사실 담당자에게 프린트 상태를 물었다. 그런데 맙소사! 토요일에 프린트가 배송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잔뜩 화가 나서 페덱스에 전화를 걸었다. 왜 특급 배송이 이루어지지 않았냐는 항의에 페덱스의 답변을 듣고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부서의 관세 미납 탓에 <순류역류> 프린트가 아직 세관에 억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해 통관 업무를 처리해 왔지만, 같은 사업자의 경우 한 건의 물건이라도 관세가 미납된 상태라면 나머지 다른 물건 역시 서로 상관관계가 없어도 억류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부랴부랴 해당 담당자에게 24일 중으로 관세를 납부해달라고 다시 한번 요청하고, 페덱스에 사정 설명을 했다. 다행히 25일 화요일 오후에 <순류역류> 프린트가 극적으로 상암동에 도착해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 다음 날 더 큰 복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이드 인 홍콩> 외장하드만 빈 채 도착한 패키지 최대 위기는 ‘영화와 공간: 홍콩’의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26일에 터졌다. 큰 규모의 부대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같은 부서는 물론 다른 부서 직원들까지 많은 도움을 주지만, 개막식 당일은 홍보물 데코레이션부터 리셉션 세팅, 개막식 리허설까지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오전부터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오후, 영사실로부터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오전에 도착한 < 메이드 인 홍콩 >(프루트 첸, 1997) DCP 외장 하드 박스를 열었는데, 하드 디스크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또 웬 날벼락인가. 영사실로 뛰어 가보니 박스 안에는 하드 디스크 케이스부터 연결 잭까지 모든 것이 다 완벽히 들어 있지만, 정작 하드만 보이지 않았다. <메이드 인 홍콩> 상영은 약 26시간 후인 다음 날 오후 7시였다. 홍콩국제영화제의 필름 트래픽 담당자인 Shing에게 바로 메일을 썼다. 그 역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야 누가 이 황당한 상황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마치 메신저를 하듯 실시간으로 몇 번의 메일이 오가다 안 되겠다 싶어 하드만 쏙 빠져 있는 박스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Shing은 나보다 더 놀란 듯했다. 서울과 홍콩, 그리고 이전 상영 기관이었던 베를린, DCP 원본을 보유하고 있는 우디네 담당자들이 모두 참조된 상태에서 사태 파악하기 위해 서로 메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상황인즉슨 베를린에서 상영을 하기 위해 DCP 하드를 영사기에 삽입해 파일을 복사한 뒤 하드를 빼지 않은 채 박스만 패킹해서 서울로 보낸 것이다. 당시 내가 갖고 있던 백업 상영본으로는 DVD도 아닌 한글 자막 제작을 위해 모 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초저화질 파일밖에 없었다. 만약 DCP를 받지 못한다면 다음 날 상영은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Shing은 우디네 측에 DCP 원본 파일을 이메일로 전송해달라고 요청했지만, 200기가가 넘는 용량의 파일이 정상적으로 들어오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마침 개막식 참석을 위해 극장에 도착한 가르시아 집행위원장도 이 황당한 상황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망연자실한 우리 둘과 달리 Shing은 재빨리 또 다른 대안을 제안했다. 홍콩에서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DCP를 오늘 밤 항공 특송으로 발송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같은 아시아권이라지만, 반나절 만에 패키지를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세관에 걸리지 말라는 보장도 없었다. 눈앞은 깜깜했지만, 준비된 행사는 치러야 했기에 7시에 예정대로 개막식을 시작했다. 마치 기품 있는 실내악이 흘러나오는 파티장에서 긴박한 스코어가 중첩되어 흐르는 스릴러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이제 만 하루도 남지 않았다. 개막작 < 매드 월드 >(웡 춘, 2016)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뒷마무리를 하고 파김치가 되어 사무실로 돌아오자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메일을 여니 정말로 이탈리아로부터 200기가짜리 대용량 파일 링크가 도착해 있었다. 우선 전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이것저것 서류 정리를 한 지 1시간쯤 지났을까? 파일 전송 상태를 확인해보니 겨우 3%밖에 되지 않았다. 새벽 3시쯤 되었을 때 링크로 파일을 받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날 밤 홍콩에서 출발한 또 다른 DCP가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오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더는 앉아 있을 기력도 없어 컴퓨터를 켜 둔 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퇴근했다. 다음 날 아침 눈 뜨자마자 DHL 운송 내역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홍콩에서 출발한 DCP가 정말로 인천에 도착해 있는 것이 아닌가? 희미하게 희망이 보였다. DHL 통관팀에 연락해 혹시라도 세관 통관에 걸리게 되면 우선 물건부터 받은 후 통관 절차를 신청할 수 있도록 미리 협조를 구한 뒤 출근했다. 출근 후, 회의를 다녀오니 기적처럼 내 책상 위에 “EXPRESS 12:00”라고 크게 쓰여 있는 노란 DHL 패키지가 놓여 있었다. 왈칵 눈물이 났다. 그렇게 그 날 오후 7시, 4K 디지털 복원된 <메이드 인 홍콩>이 시네마테크KOFA에서 무사히 상영되었다. 기적과 감동의 “EXPRESS 12:00” 지금까지 ‘영화와 공간: 홍콩’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 시네마테크KOFA의 프로그램 기획부터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기까지의 과정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았다. 이토록 길게 넋두리를 한 이유는 어쩌면 어떤 관객은 스크린 뒤에 보이지 않는 이 과정을 궁금해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그램 담당자 역시 남모를 고충이 있으니 조금은 잘 봐달라는 애교 섞인 투정이라고 바라봐주길 바라서이다. 이번 ‘영화와 공간: 홍콩’도 담당자인 나 역시 꼭 보고 싶은 영화도 많았고 더 나은 매체로도 상영하고 싶었지만, 여러 현실적인 여건상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좌절감이 들 때도 있고, 이게 뭐라고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구는 걸까라며 스스로를 힐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 역시 시네마테크KOFA를 찾는 관객처럼 영화를 사랑했기에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인지라 그간 쌓였던 피로와 열패감은 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순간 사그라든다.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앳된 얼굴의 장국영을 마주할 때 극장 안에 흐르던 그리움의 공기와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꽉 찬 객석을 바라볼 때, 그리고 시네마테크KOFA 프로그램 덕분에 이번 여름이 행복했다는 관객의 짧은 후기를 확인하는 순간, 그래도 이 일을 선택하길 잘 했다는 보람을 느끼고, 다음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이란 변방의 문화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저는 애니메이션을 만듭니다.” 라고 얘기하면 “힘드시겠어요.” 라는 대답을 듣기 마련이다. “취미는 애니메이션 감상입니다” 라고 이야기한다면 속으로 ‘오타쿠 시군요’ 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인식의 벽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국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 애니메이션 산업이란, 가난한 애니메이터들의 고된 노동을 통해 콘텐츠를 생산하면 소수 마니아나 유아들만이 소비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겠다. 실제 만드는 사람들의 자부심이 어떤지, 그 작품의 가치가 어떠한지, 관객이 받는 감동과 재미의 크기는 또 어느 정도인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한 척박한 인식의 토양위에서 이미지를 각자가 새롭게 만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묵묵히 좋은 작품을 만들면 다 해결될까? 이런 환경에선 좋은 작품은 만들기도 쉽지 않거니와 설사 만들어진다고 해도 위와 같은 심리적 장벽이 그 성장을 막는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인식은 더욱 안 좋아지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은 점점 더 나빠진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씨앗이 대중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보다 큰 나무로 커나가기 위해서는 그 이미지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이에 대한 의미 있는 시도 몇 가지를 살펴보자. 쉽게 만든 짧은 애니메이션을 모집하는 인디애니페스트의 <날애니공모전>(상단 이미지)은 ‘애니메이션 제작’이 누구나 쉽게 즐기는 놀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의 보급은 그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최근에는 정말 쉽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다량 출시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날애니’는 게시글의 짤방(짤림방지용 콘텐츠)으로 쓰거나 모바일 매신저로 이모티콘처럼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근성을 발휘한다면 날애니 만으로도 근사한 작품을 제작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자유로운 시도를 통해 다양하고 색다른 애니메이션 기법이 창조되기도 할 것 같다. <10초 애니메이션 페스티발 현장> ‘스튜디오 쉘터’의 <10초 애니메이션 페스티발>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애니메이션의 창작과 향유 전체를 하나의 흥겨운 놀이로 승화시켰다. 특히 ‘러닝타임 10초’라는 제한조건은 정말 쿨하다. ‘오버금지, 숙면권장’등의 세부조항 또한 센스 있다. 기존 애니메이션 창작자들도 여가시간을 즐기듯 만들 수 있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10초애니메이션 페스티발의 백미는 마치 클럽파티와 같은 축제 현장의 풍경 그 자체이다. 만든 사람들과 일반 관객들이 뒤섞인 채로 춤추고 박수치며 논다. 다들 고민 없이 만들었기에 칭찬도 비아냥도 모두 즐겁다. 애니메이션 행사는 아니지만, 제작자를 무대 위로 올려 제한된 시간동안 창작 배틀을 하게 했던 행사도 흥미로운 행사였다. 프로들의 작업과정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승화시킴으로써 마치 스포츠행사처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다른 예들에 비해선 좀 육중(?)하긴 하지만, 메시즘의 <60초애니메이션> 행사 또한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부담을 줄이려는 좋은 시도였다고 본다. <텐트영화제> & <큐알코드영화제> 필자가 ‘스튜디오 요그’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텐트영화제>와 <큐알코드영화제>는 단편애니메이션을 대중들, 특히 젊은층이 보다 접하기 쉬운 장소로 직배송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늘 다니던 길에 텐트가 펴져있다면 분명 눈길이 갈 테고, 심지어 그 안에서 짧고 재밌는 영상을 볼 수 있다면 꽤 매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연인과 데이트 중이라면 둘만의 색다른 경험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대중들이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기를 바랐다. <큐알코드영화제>는 모바일 환경에서 단편애니메이션의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실험해보는 현장이기도 했다. 제2회 큐알코드영화제에서는 단편영화와 단편애니메이션을 절반씩 섞어서 상영했지만 조회수 1, 2위가 모두 애니메이션이었다. 각 작품당 하루에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큐알코드를 찍어 작품을 감상하였다.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수가 2000만이 훌쩍 넘은지 오래고, 대부분 휴식시간, 여가시간, 대기시간에 사용한다. 애니메이션은 작은 화면에서 짧은 시간동안 적은 트래픽으로도 간단히 즐기기 좋은 콘텐츠이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날애니공모전’이나 ‘10초 애니메이션 페스티발’처럼 가벼운 작품들이 모바일에서 매우 경쟁력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된다. <2ne1 - HATE YOU> 최근에 동우애니메이션이 제작한 2ne1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인기 팝아티스트 마리킴이 연출한 이미지가 타겟층 취향에도 적절히 잘 맞는다. K-pop트랜드를 타고 주류 대중문화에 애니메이션이 자연스럽게 섞인 좋은 사례다. 해외의 경우 유튜브를 기반으로 가벼운 시리즈 애니메이션들이 다수 등장했다. 이나 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유튜브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관련 상품이 제작되거나 TV시리즈로 옮겨가기도 한다. 국내에도 한 때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지금, 그 때의 역량이 다시 나와 준다면 10~20대로부터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웹툰의 지분을 일부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구축된 훌륭한 자원들은 그것대로 유지/발전시키되, 끊임없이 다른 영역과 융합함으로써 보다 대중과 가까워지고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소개한 사례들은 모두 멋지고 훌륭하지만 아직까진 그 효과가 미미하다.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더욱 많은 이들에 의해 새롭고 멋지고 이상한(?) 프로젝트들이 시도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시도들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행위’가 얼마나 재밌고 멋지진 일인지,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행위가’가 얼마나 신나고 감동을 주는 일인지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