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티파니가 빠진 8인조 소녀시대 축하공연 현장
- 제작년도
- 2010
영화와 자동차에 관해 글을 써보겠다고 달려들긴 했는데 우습게도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다소 황당한 무면허(?) 칼럼 연재를 감행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방에 뒹굴고 있는 수백 대의 자동차 모형 장난감 때문이다. < 고스트버스터즈 > < 배트맨 > < 빽 투 더 퓨처 > 등의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을 나이 들어 다시 보면서 그 영화의 감동을 소유(?)할 수 있는 캐릭터 피규어나 장난감 구매에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모형 자동차 역시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영화 굿즈의 품목 중 하나였다. ‘배트모빌’이나 ‘엑토-1’, ‘범블비’ 같은 가상의 자동차들을 보며 모형을 구매할 생각만 했지 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아무튼 < 007 >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몰던 ‘애스턴 마틴 DB-5’나 < 분노의 질주 > 시리즈에 등장하는 브라이언(폴 워커)의 분신 같은 ‘토요타 수프라’ 등의 실제 자동차 모형을 구매하려면 적어도 제조사와 모델명은 알고 있어야 했다. 나의 자동차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시작됐다. 가상의 캐릭터 자동차를 제외하고 영화에 등장한 수많은 실제 자동차 가운데 가장 먼저 장난감 모형을 찾아보기 시작한 모델은 1968년 작 < 블리트 >의 포드 머스탱이다. 피터 예이츠 감독이 연출하고 스티브 맥퀸이 출연한 이 영화를 보자마자 배우뿐만 아니라 그가 몰았던 자동차에도 푹 빠져들었다. 해외 쇼핑몰을 뒤져 장난감을 구하는 과정에서 그 차가 영화 제작연도 즈음에 포드사에서 만든 머스탱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1967~8년형 머스탱은 뒷좌석 천장이 짧고 경사져 있는 ‘쿠페’식인데 전체적으로는 날렵한 디자인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묵직하고 위협적으로 생겼다. 차체의 전면은 보닛과 범퍼에 잘못 부딪히기라도 하면 그대로 신체 일부분이 뜯겨져 나갈 것 같은 위압감이 흐른다. ‘패스트백’ 형태의 뒤꽁무니에서 부다다다 울리는 시끄러운 배기음은 마치 제멋대로 사건을 추적하는 영화 속 주인공 형사 프랭크 블리트(스티브 맥퀸)의 성격이나 태도와 닮아 보였다. 혹시 류승완 감독의 영화 < 베테랑 > 개봉 당시 일부 관객들이 조태오( 유아인 )가 ‘포드 머스탱 GT’라는 차를 모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던 걸 기억하시는가? 영화의 설정상 조태오 정도의 재력가라면 초고가의 스포츠카 ‘맥라렌’이나 ‘부가티’ 정도의 차는 타고 다닐 것 같은데 왜 상대적으로 저렴한 머스탱을 썼는가? 라는 물음이었다. 류승완 감독은 이에 두 가지 뜻이 있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예산 문제 때문에 비싼 차를 섭외할 수 없었던 탓이 크고, 두 번째는 피터 예이츠 감독의 <블리트>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기왕이면 극 중 스티브 맥퀸이 몰았던 자동차와 같은 차로 선택하고 싶었다고. 류승완 감독다운 선택이었다. 그의 선택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또 이야기하도록 하자. < 블리트 >의 1968년형 포드 머스탱, 스티브 맥퀸 피터 예이츠 감독의 < 블리트 >는 카체이스 영화의 흐름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영화다. 카체이스가 이 영화의 주요 소재는 아니지만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카체이스 촬영과 편집, 거기에 스피드광이었던 스티브 맥퀸이 만나 놀라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요즘 관객들은 < 분노의 질주 > 시리즈 같은 영화에 나올법한 멋진 할리우드식 카체이스 장면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영화들의 카체이스 장면은 화려하긴 하지만 <블리트>처럼 거칠고 과감한 박력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 제이슨 본 >(2016)에서 본(맷 데이먼)을 뒤쫓던 킬러(뱅상 카셀)가 탱크에 가까운 거대한 차량을 이끌고 라스베이거스 도로를 질주하며 엄청난 양의 차량을 산산 조각내는 장면이 있다. 엄청난 물량 공세에 감탄이 나올 법도 한데 별 맥락도 없이 액션에 힘을 주니 아무런 박력이 느껴지지 않은 실패한 장면이 되어버렸다. 단지 많은 수의 차가 부서지는 것만이 카체이스 액션 영화의 전부가 아니다. 카체이스 장면의 생명은 화려함보다는 박력이고 그 박력의 대부분은 어떤 차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블리트>는 카체이스 영화, 더 깊게는 머슬카의 매력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영화였다. 머슬카는 8기통(VB) 엔진과 같은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고성능 자동차를 일컫는 말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유행하던 경주에 적합한 고성능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 모델로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의 유럽형 슈퍼카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머슬카는 가격 면에서 대중적인 차는 아니었다. 당시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사의 부사장이었던 아이아코카는 1960년대 초에 미국 자동차 시장 경제를 주도하던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해서 ‘포드 팔콘’이란 차를 새로운 스타일로 재창조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그렇게 당시 급변했던 소비자 구미에 맞는 차를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는데 그 차가 바로 포드 머스탱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했던 전투기 ‘P-51 머스탱’의 이름과 야생마라는 의미가 담긴 로고를 박고 등장한 포드 머스탱은 1964년 첫 모델을 본격적으로 출시한다. 웬만한 자동차 애호가는 다 알만한 개념이겠지만, 포니카라는 용어가 있다. 일반 소비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머슬카 즉 작은 차체에도 고성능 배기량을 가진 차를 뜻하는데 포드 머스탱은 시장 변화를 제대로 내다본 아이아코카가 만들어낸 작은 머슬카, 포니카였다. 이른바 ‘포니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 블리트 >에 등장하는 1968년형 포드 머스탱은 여러 머스탱 시리즈 중에서 성능보다는 디자인을 중요시했던 머스탱 라인의 초창기 1세대 모델이다. 피터 예이츠 감독은 머스탱의 매력을 영화에 담기 위해서 10분이 넘는 카체이스 장면에 엔진과 타이어 소리 외에는 어떤 음악도 삽입하지 않았다. 당시로써는 무모한 카체이싱 장면에 도전한 것인데 일단 이 장면 자체가 대본에도 없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었다. 대본의 도시 배경은 로스앤젤레스였으나 갑자기 배경이 샌프란시스코로 바뀌면서 주택가 언덕 추격 장면을 찍을 여건이 마련된 것. 예이츠 감독은 또 스티브 맥퀸이 평소 ‘과속 촬영(운전)’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촬영을 밀어붙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스티브 맥퀸의 모든 운전 장면은 배우 자신이 직접 운전했다. 예이츠 감독에 따르면 그는 예전부터 운전할 때는 대역을 쓰지 않는다는 연기 철칙을 가지고 있었다고. 참고로 극 중 블리트 형사(스티브 맥퀸)의 머스탱과 경쟁하듯 질주하다 전소되고 마는 ‘닷지 차저’를 운전한 배우는 빌 힉맨이란 사람인데 그는 당시 카체이스 전문 스턴트맨이기도 했다. 스티브 맥퀸과 함께 빌 힉맨의 멋진 스턴트 주행이 없었다면 <블리트>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 블리트 >의 카체이싱 당시에는 또 이런 카체이싱 촬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장소 대여 관계로 2주라는 짧은 촬영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예이츠 감독은 이 기간 안에 10여 분 넘는 장면을 모두 찍어야 했기 때문에 두 대의 카메라를 뻗쳐놓고 찍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때 현장에서 맥퀸이 탄 머스탱이 언덕 위에서 질주하며 내려오다가 사거리 코너에 설치해놓은 카메라와 부딪쳐 카메라가 박살이 나기도 했는데 해당 장면은 영화에 그대로 삽입됐다. 카메라와 부딪친 이후에 이어서 멈춘 차를 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맥퀸이 후진을 하면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후방을 살핀다. 예이츠 감독에 따르면 맥퀸이 현장에서 촬영을 구경하는 일반인들에게 차를 운전하는 배우가 자신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일부러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더라는 거다. 스티브 맥퀸의 여유롭고 허세 섞인 열연에 힘입어 포드 머스탱은 영화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서 카체이싱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히는 데 일조했다. 영화 매체를 통해 미디어 마케팅의 재미를 톡톡히 보게 된 포드사는 바로 이어서 애스턴 마틴 DB5를 상징적으로 몰던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에게도 포드 머스탱을 안겨준다. 1971년 작 <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는 악당 블로펠드(찰스 그레이)가 다이아몬드로 무시무시한 무기를 만든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가 잠입해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이야기다. 제임스 본드는 영화의 주요 배경인 라스베이거스에서 본드걸 티파니(질 세인트 존)가 몰던 차를 대신 몰고 다니는데 이 차가 바로 새빨간 색상의 ‘머스탱 마하1’이다. 이 모델은 기존 68년형 머스탱의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킨 모델이다. 극 중 본드가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네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옆으로 세워서는 두 바퀴로 달리는 곡예를 선사하는 명장면도 탄생시켰다. 1960년대와 70년대 당시 한국 최고의 스타였던 배우 신성일은 국내 수입차 1세대인데 그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리무진과 함께 고속도로를 달릴 때 탔던 수입차가 인디언 레드 컬러의 ‘머스탱 마하1’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식스티 세컨드>의 쉘비 GT 500 1960년대 후반 머스탱을 만들어 1년 사이에 60만대가 넘는 차를 팔아 치웠던 포드사는 당시 1세대 모델보다 성능이 더 좋은 스포츠카 형태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수용해 유명 레이서였던 캐럴 쉘비와 협업해서 제품 개발을 진행했다. 이때 1세대 모델에는 없던 8기통(V8) 엔진을 튜닝해서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킨 ‘쉘비 GT350’, ‘코브라 G.T.500’ 등의 모델이 만들어졌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스포츠카 절도단 이야기를 다룬 액션 영화 < 식스티 세컨드 >는 전설적인 머슬카 ‘쉘비 GT 500’을 스포츠카의 끝판왕처럼 묘사한다. 영화 내내 유럽산 슈퍼카들이 쏟아지듯 등장하지만 주인공인 절도단들은 ‘쉘비 GT 500’을 훔치는 것을 자신들의 최종 목표라고 말한다. 미국산 머슬카의 아름다움 혹은 위대함을 널리 알릴 목적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였다고 해야 할까. 조지 밀러 감독의 1973년 작 < 매드맥스 >는 또 어떤가. 주인공 맥스(멜 깁슨)의 차는 머슬카의 상징과도 같은 고성능을 탑재한 ‘8기통(V8) 인터셉터’로, 1970년대 초반에 개발된 ‘팔콘 XB GT 쿠페 1973‘가 실제 모델이다. 황량한 허허벌판 대륙을 질주하며 횡단하기에 더할 나의 없이 좋은 성능을 지닌 차들이다. 또 1969년에는 포드사가 머스탱을 업그레이드한 ‘보스’라는 제품을 출시해 모터스포츠 계에서 활약하는데 이 모델은 ‘보스 302’, ‘보스 429’ 등의 모델로 나뉘어 제작된다. 특히 보스 429 엔진은 표기된 출력보다 성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유명해졌다. 왠지 이름이 낯익은 모델이라고?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 존윅 >에서 동네 건달들의 자존심에 금을 가게 해준 차가 바로 존 윅이 애지중지하던 1969년형 ‘머스탱 보스 429’다. < 존윅 >의 1969년형 머스탱 보스 429 포드 머스탱으로 대표되는 미국산 포니카는 천둥소리 같은 배기음을 쏟아내는 8기통의 박력이 다른 모든 자질구레한 성능의 장단점을 잊게 만든다. 사실 이 머스탱은 한국 실정에 비추어 보면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차다. 가장 현실적으로는 엄청난 연비를 자랑하는 통에 기름값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베테랑 >의 조태오는 왜 포드 머스탱을 몰았을까? 머슬카 특유의 가오 때문이 아니었을까. 명동 한복판 8차선 도로를 꽉 막은 차들 사이로 육중한 차체를 들이밀며 홍해 가르듯 부수고 지나갈 수 있는 힘 좋은 자동차로 포드 머스탱만 한 차가 또 있을까? 설정상 조태오가 벤츠나 아우디를 몰았다면 재벌의 리얼리티 정도는 살려줬을지라도 후반부 명동 카체이스 장면에서의 머스탱 전용 박력은 사라져 버렸을지 모를 일이다. < 베테랑 >의 포드 머스탱 GT, 조태오 최근에 포드 머스탱과 관련한 흥미로운 뉴스가 공개됐다. 얼마 전 포드사가 전 세계 기자들을 말리부 해안가로 불러모아 2018년형 신모델의 시승식을 가졌는데 이때 많은 기자들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당황했다고 한다. 8기통 5.0L의 가솔린 엔진에 회전 한계를 7500rpm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엔진 성능 때문이 아니라 머스탱 역사상 최초로 반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고. 포드사는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ASBS), 차선이탈 경고시스템(LDWS),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LKAS) 등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전을 중시한 모델임을 강조했다. 물론 세계적인 흐름을 따른 당연한 결과이자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지만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머스탱 정신’과는 조금 다른 행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소식은 지구에서 사라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던 < 블리트 >의 실제 촬영모델 머스탱을 발견했다는 소식이다. <블리트>에서 스티브 맥퀸이 직접 몰았던 차량 소품 머스탱은 총 2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 대는 개인 소유 차량이고, 나머지 한 대는 자취를 감춘 채 사라져버려 찾을 수 없었다. 스티브 맥퀸이 죽기 직전까지 평생 동안 이 차를 수소문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연은 자동차 애호가 사이에서 유명하다. 멕시코에서 발견된 < 블리트 >의 머스탱(기사 보기) 그런데 최근 멕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주의 어느 폐차장에서 자동차 커스텀이나 복구를 취미로 즐기던 두 남자가 녹슬어 폐차된 머스탱 잔해를 찾아냈다. 그들은 이 잔해를 가지고 < 식스티 세컨드 >의 쉘비 GT 500으로 커스텀 제작을 하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들이 남아있던 원본 부품을 포드사에 문의한 결과, 이 망가진 차의 잔해가 실제 < 블리트 > 촬영에 썼던 머스탱임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이들은 <식스티 세컨드> 대신 <블리트>에 등장했던 원래의 모습 그대로 차를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최신식 머스탱 모델의 변화 소식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음을 몸소 보여준 유물 머스탱의 발굴 소식이 기가 막히게 대비된다. 이제 포드 머스탱은 8기통 엔진을 마음껏 돌려도 석유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던 호황기의 유물로서 DVD와 장난감 모형 속에 영원히 갇혀 버렸지만 그 끝내주는 ‘가오’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장난감을 사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돈이 없어 못 사지, 가오가 없어 못 사나?”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만행에 대한 증언으로 위안부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올라온 지 25년이 흘렀다.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 1992년에 시작한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는 1,200회를 넘겼고, 60대였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대부분 돌아가셨으며, 생존해계신 소수의 할머니들은 어느덧 90대가 되셨다. 그리고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로부터 10억 엔의 출연기금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불가역적인 한일 위안부합의를 맺은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상징인 소녀상은 외교적 논란의 대상으로 비화되어버렸다. 캐나다 출신 티파니 슝 감독의 < 나비의 눈물 >(개봉제: <어폴로지>)은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한국, 중국, 필리핀 출신 세 할머니의 일상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는 수요시위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스위스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위안부 문제를 증언하는 활동가의 삶을 바쁘게 살아낸다. 중국의 카오 할머니는 이 추위에 무슨 장작을 패냐는 딸의 타박에도, 아흔이 넘은 노구를 부지런히 움직여 땔감용 장작을 패놓는다.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자식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지만, 같은 마을의 위안부 피해자 모임에 나가는 용기를 낸다. 노래를 부르고 TV를 보고 장작을 패고 끼니를 챙기고 춤을 추고. 할머니들의 삶은 얼핏 보면 평범한 삶의 감각으로 채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문득 그들이 눈을 감고 긴 한숨을 내쉴 때 그리고 무언가를 더듬는 듯한 눈길로 창밖을 바라볼 때, 주변의 소리와 흐름을 멈추고 정지하는 카메라는 그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채워져 있음을 암시한다. 새어 나오는 긴 한숨 소리와 흔들리는 동공, 그리고 떨리듯 내뱉는 “(고통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어 (It’s still there)”라는 목소리는, 전쟁 중 성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어떻게 이들로부터 평범한 삶의 감각을 앗아갔는지 드라마틱한 장치의 도움 없이도 그 자체로 천둥처럼 증언한다. 영화는 유난히도 특정한 신체적 접촉에 주의를 기울인다. 함께 발맞추어 걸어가는 발, 꼬옥 잡고 쓸어주는 손, 옆으로 포개져 누운 채로 함께 이야기하며 안아주는 자식과 활동가의 몸은, 할머니들의 전 인생을 지배해 온 한숨과 정적의 순간을 마치 위로하듯 이불처럼 덮어준다. 여성의 몸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취급을 감내한 육체를 쓸어주고 껴안아주는 손은 보는 이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 타인에게 이처럼 소탈한 방식으로 온기와 존중을 전달해 줄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받아야 할 마땅한 대접임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의 몸은 비단 전시뿐만 아니라 평화 시에도 성적인 약탈과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것일까. 정희진 선생에 따르면, 전시에 일어나는 피점령지 여성에 대한 강간은 상대 남성 공동체를 파괴하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전략의 일환으로 실행된다.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그 여성 자체가 아닌 여성을 소유한 남성에 대한 모멸과 위협으로 의미화되기 때문에, 전쟁 시 집단 강간은 상대 집단의 재생산과 문화 및 정체성을 파괴하는 궁극적인 승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20만 명의 아시아 여성을 유린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일본군의 도덕적 타락에서 기인한 특수한 악행이 아니며, 남성중심적인 전쟁과 정복의 인류사에서 배태된 결과라는 측면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카오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일본군으로 인해 두 명의 아이를 낳았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 아이들을 죽였다. 카오 할머니의 딸은 버려진 자신을 입양해 이날 이때까지 키워준 엄마의 놀라운 고백 앞에 잠시 할 말을 잃는다. 그러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딸에게도 해줄 것이냐는 감독의 물음에 “해야죠. 아이가 좀 더 크면 꼭 얘기해줄 거에요” 하고 다짐한다. 아델라 할머니는 죽은 남편의 묘에서 일본군에게 강간당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아들에게도 뒤늦게 이 사실을 밝히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건 내 인생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아들의 몫”이라며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 할머니는 아들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돌아온 뒤 “무거웠던 영혼이 가벼워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델라 할머니는 영면에 든다. 13세에 공장에 취직하는 줄 알고 일본에 갔다가 위안부가 된 길원옥 할머니는 5년간의 위안부 생활이 끝나고 고국으로 가는 배를 탔지만, 당도한 곳이 고향인 평양이 아닌 인천임을 알게 된다. 곧이어 북한으로 가는 국경이 막히고, 낯선 남한 땅에서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할머니는 자신이 몸을 의탁하던 곳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받아 자신의 아들로 키워낸다. 비록 끔찍한 트라우마로 얼룩졌지만 이들이 살아낸 삶 그 자체가 바로 용기의 증명이다. 그리고 그 용기는 그들에 의해 구원받고 살아남은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왜 이런 전쟁을 합니까? 무기를 사들이는 게 평화가 아닙니다. 휴전선에 봄이 와야 진정한 해방입니다.” 위안부 피해자를 ‘조선인 창녀’라 조롱하며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는 일본 극우세력,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 협상의 대상으로 여기는 외교 부처, 그리고 남성 중심적인 전쟁과 폭력의 역사에 맞서, ‘아직 해방 받지 못한’ 할머니들의 몸은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저 너머 어딘가 있을 평화의 땅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나비는 날아올랐다. 폭풍우가 치게 하는 건 이제 우리의 몫이다.
“김 대리, 지난주 <미생> 봤어?” “응, 딱 우리 회사 얘기더라” “그러게, 너무 공감돼서 짜증 날 정도였어” 지금은 종영된 드라마 <미생>이 방영되던 때 월요일이면 어느 직장에서나 있을 법한 대화이지 않았을까? 각자의 위치에 따라서 누군가는 ‘장그래’일 것이고, 누군가는 ‘김 대리’이며, 또 누군가는 ‘오 차장’일 것이다. 물론 ‘부장’도 ‘전무’도 있다. 회의 시간에 “너흰 요즘 <미생>도 안 보느냐?”며 닦달하는 상사도 있었다니까. 회사 생활은 어렵다. 어디든 비슷할 것 같다. 게다가 IT 기술의 발달로 1년 365일, 어디든 직장이 된다. 3~4종류의 메신저는 시시각각 소식을 전하고, 직장과 개인 이메일로도 수많은 정보와 업무가 쏟아진다. 아, 지친다. 정말.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없던 50년 전에는 어땠을까? 이메일도, 문자메시지도, SNS도 없던 50년 전에는 다들 어떻게 소통하며 살았을까? 우리 부모님 또는 조부모님 세대는 어떻게 연애를 하고, 결혼도 했을까? 이러한 질문 속에 떠오르는 독립 단편영화가 박동훈 감독의 2005년 작 < 전쟁영화 >이다. 50년 전인 1965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커플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드리 헵번 주연 영화 < 티파니에서 아침을 >의 메인테마인 ‘문 리버’가 감미롭게 흘러나오는 오프닝 속 60년대 거리 모습은 실제로 그 당시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준다. 맞선 이후, 세 번째 만남을 갖는 커플은 이름도 거창한 ‘국제중앙다방’에서 만나 데이트를 한다. 50년 전 데이트를 영화로 보는 것은 흥미진진하며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해방 전에 태어나 6.25 전쟁을 치른 남녀는 피난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 가까워지고, 결혼까지 약속한다. 영화가 마지막에 다다를 때, 전쟁장면 하나 안 나오는 이 발랄한 영화가 왜 ‘전쟁영화’라는 제목을 달았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해의 지점은 바로 ‘공감’이다. 그 엔딩은 언제 보아도 애틋함을 준다.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 부모님의 연애 이야기도 궁금했다. 두 분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도 궁금했다. 낡은 앨범 속 흑백사진에 담긴 부모님의 모습 외에는 알지 못한다. < 전쟁영화 > 속 주인공들처럼 힘든 삶도 로맨스도 있었을 텐데 난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묻지 못했다. 내 ‘전쟁 같은 삶’이 버겁다는 핑계로. 드라마 <미생>에선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그럼 가족과 가정은 무엇일까? 쉽게 답이 나오진 않는다. 그냥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 같다. 굳이 답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관심을 두고 공감을 하는 것. 가끔 가족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연말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전쟁 같은 삶에서 가족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바로 각자의 ‘전쟁영화’가 되리라고 생각해본다.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고 보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모두 이런 주제 아니던가?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