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곤충 버그파이터
- 감독
- 이시오도리 히로시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정미숙, 정옥주, 차명화, 신성호, 양석정, 은미, 김지혜, 임진응, 이원준, 윤세웅, 김관진, 김경수, 사성웅, 최하나
1 인간은 영화관에 가는 동물이다. -조르조 아감벤 2 정상적인 관객은 자신이 욕망하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 사람이며, 자신이 이미 인생에서 싫어하는 것을 영화관으로 보러 가지 않은 사람이다. -세르쥬 다네 3 일요일의 충무로는 처음이었다.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간 것도 처음… 한때 매일같이 충무로에 가던 시절이 있었다. 충정로에 있던 회사에서 퇴근해 7011번 버스를 타고 매일경제본사 앞에서 내려 영한빌딩까지 걸어가 여자친구가 일을 마치기를 기다리던 20대 후반의 몇 년, 그리고 은평구에 있던 집에서 3호선을 타고 6번 출구로 나와 매일경제본사 맞은편에 있던 ‘동화삘딍’ 4층 사무실에서 아저씨들과 머리를 맞대고 한숨과 담배연기를 번갈아 내뱉으며 시나리오를 쓰던 30대 후반의 일 년.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다. 그때 충무로는 내게 해질 무렵의 골목, 커피와 생맥주, 닭꼬치, 돼지껍데기, 철판스테이크, 복지리, 통북어, 하루종일 가시지 않는 지독한 담배 냄새, 낡은 당구장, 서지 않는 택시 같은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영화였고(여자친구가 참여한), 그리고 영화였다(내가 연루된). 그리고 오늘, 40대가 되어 처음 가는 충무로 역시 영화가 될 예정이었다. 나를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사람들의 영화. 영화들. 얼마나 다행인가? 내 영화가 아니라는 게… 4 영화란 무엇인가?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장 루이 뢰트라와 수잔 리앙드라 기그는 이렇게 요약한다. 코 앞에서 볼 수 있는 진정한 악마의 소굴, 왕관을 다투는 시장, 배움의 장소—말하자면 감정교육, 많은 사람들의 오락, 일부 사람들의 직업, 어떤 사람들의 열정, 여기저기서 채취해 온 1-2시간의 소재, 별 아래서 보내는 온종일, 대낮 같은 밤, 어두운 밤으로 빨려드는 불빛, 친구와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토론, 계속되는 이야기들, 역사의 단편, 움직임-지속의 덩어리, ‘현실’과의 아주 특별한 관계 설정(현실을 회피하시오, 그러면 현실이 당신을 따라가고, 현실을 따라가시오, 그러면 현실은 당신에게서 도망간다!), 위험할 정도로 서로가 닮아 있는 영화 속의 얼굴과 신체들, 진부하거나 기상천외한 대상들과 풍경들, 마치 우리가 항상 살았던 듯한 느낌을 갖는 상상 속의 저택과 또 다른 화려한 저택들, 일시적인 경험, 은밀하고 격렬한 열정이나 몸짓들, 나를 끌어들이고 빨려 들게 하는 방식, 또는 단숨에 혹은 한순간에 불확실하거나 형성중인 사고나 상상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방식, 사회, 사람들이 말한 것, 타인과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꿋꿋한 시선… 5 나는 이 목록에 두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브루스 윌리스와 니콜라스 케이지. 내게 영화는 브루스 윌리스다. 동시에 내게 영화는 니콜라스 케이지기도 하다.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다. 블록버스터와 컬트무비와 허섭쓰레기를 오가는 그들의 긴-긴 필모그래피에서 함께 출연한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그나마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 플래닛 테러 >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 데쓰 프루프 >를 ‘동시상영’으로 묶은 <그라인드 하우스> 중간에 삽입된 4편의 가짜 영화 예고편 중에서 롭 좀비가 연출한 <나치의 늑대여인Werewolf Women of the S.S.>에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한 경우가 가장 근접함). 따라서 브루스 윌리스가 실어증으로 은퇴를 선언한 2022년 3월 31일은 영화가 죽은 날(the day the movie died)이다. 적어도 반쯤은 그렇다… 6 충무로를 다시 찾은 건 『마테리알』이 주최한 릴레이 발표대회 [오픈 스페이스: 영화를 가르는 패스]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아침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4월 16일과 17일 이틀에 걸쳐, 모두 여섯 명의 발표자가 발표를 한다고 했다. 토요일 한국 독립 영화 사운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 최지영(사운드 디자이너) 언제나 밝은 방에서 여러개의 창을 틀어놓고 / 윤원화(시각문화 연구자) 정당화하는 관점: 임흥순에 대한 불만 / 윤아랑(비평가) 일요일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 중에서도 한국 영화 / 함연선(마테리알 편집인) 문화로서 영화: 누가 도대체 진지한 표정으로 영화 이야기를 들을까? 당신도 / 강덕구(작가, 비평공유플랫폼 '콜리그' 운영자) 해적질과 영화 문화 / 한민수 모두 매력적인 주제들 가운데서 특히 내 눈을 잡아끈 것은 함연선의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 중에서도 한국 영화’였다. 때마침 JD와 나는 봉준호, 홍상수, 이창동 같은 이름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고, 관객수로 줄을 세우지도 않으면서 21세기 첫 20년의 한국 영화를 이야기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참이었다. 우리는 그 모든 영화들이 없었던 것처럼 굴고 싶지 않았고, 누구도 모르는 영화를 우리가 ‘발굴’한 것처럼 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행사 안내 페이지를 캡쳐해서 JD에게 보냈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수학 학원 선생님의 질문에 "화산고"라고 대답한 학생은 망신을 당하고 맙니다. '차라리 <스파이더맨>이라고 말했다면 괜찮았을까...?' 수치의 순간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한 사춘기 청소년은, 결국 유사-스노브로 성장하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영화 경험의 근원에는 "비천한 영화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음 원고를 위해 저는 여기에 가야겠어요, 그리고 어쩌면 임창정에 대해 쓸지도 모르겠네요, 쓰고 싶지 않지만요. 쏘옥, 소리와 함께 아이메시지가 전송되었다. 답장은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메시지를 작성 중이라는 말풍선조차 뜨지 않았다. 나도 구태여 오픈 스페이스 날짜가 원고 마감일 이후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원고 마감일을 어길 수밖에 없다는 말은… 7 왜 모든 영화 관련 이벤트(GV, 강연, 세미나, 기타 등등)는 내가 가기 힘든 시간만 골라서 열리는지 모르겠다. 씨네필들은 가정이 없나? 아니면 가정이 없는 것처럼 가정하고 살아가거나… 다네는 말한다. “영화 팬은? 헛되이 두 눈을 크게 껌뻑거리는 사람이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며, 프로다운 ‘영화 팬(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는 삶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는 행위들이다.” 뢰트라와 기그는 여기에 축제가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믿는 표정을 지으면서 최대한 아주 늦게 도착하는 것이 틀림없이 사람들이 영화 팬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이라고 덧붙인다. 물론 나는 영화-어쩌고가 아니며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영화 팬의 핵심을 수행하긴 했는데, 짧게 이야기하면 이렇다. 내가 차를 몰고 갔다는 사실은 앞서 말했다. 오픈 스페이스를 마치고 처갓집으로 아내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철거된 동화빌딩과 매일경제본사 사이에 있는 노상공영주차장(주말과 공휴일에는 무료개방)에 주차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빈자리가 없었고 그래서 (저렴한 금액으로) 주차할 곳을 찾아 빙글빙글 돌다보니 시간이 흘렀다. 결국 (구)극동빌딩 (현)남산스퀘어빌딩에 차를 세우고 오픈 스페이스가 열리는 대한극장 뒷골목의 서울지역영화교육허브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30분도 더 늦은 시간이었다. 문앞에 선 채로 돌아갈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일정에 따르면 첫 번째 발표에는 2시간이 배정되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축제가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믿는 표정 을 지으면서 발표회장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설상가상, 빈자리가 없어 발표자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맨 앞자리까지 빽빽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으며… 8 한숨을 채 돌리기도 전에 발표가 끝나버렸다. 스탠리 카벨은 누구나 자신이 지금 여기 있다는 것, 자신의 인생이 이 시간과 장소라는 지점에 이르게 된 것, 자신의 역사가 펼쳐져서 이 방에, 이 길에, 이 곳에 이르게 된 것을 잠깐이나마 기이하게 여긴 적이 있을 것이라고 썼는데, 그때 내가 그랬다. 질의응답이 시작되었지만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졌다는 생각에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문윤기를 보았고—나와 그는 JD를 통해 알게 된 사이였다—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현실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실은 나와 ‘트친’인 영화평론가이고, 그밖에도 이 좁은 장소에 내가 타임라인에서 보아 왔던 사람들이 득시글하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기이함the uncanny은 영화에서는 보통의 경험이다, 라고 스탠리 카벨은 계속해서 쓴다. 도주, 구출, 우연의 만남이나 근처에 있는 탓에 인생이 변모해버리는 것—이러한 우연과 만남은 영화의 모든 장르를 지탱해주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연한 만남은 우연한 만남일 뿐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 건 또 아닌데, 모든 만남은 크건 작건 우리 안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위대한’ 영화가 우리의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백 편의 ‘비천한 영화’는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제법 높은 확률로… 9 카벨은 음악이나 문학과 달리 영화의 경우에는 보통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높은 레벨의 영화를 진정으로 좋아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영화를 모른다면 높은 레벨의 영화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보통의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다. 카벨 스스로 이미 ‘보통의 영화’와 ‘높은 레벨의 영화’를 구분 짓고 있는 판에 하물며 ‘비천한 영화’는 또 어떻게 말할 것인가? 질의응답 시간에 이어진 것도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에 몰려 있는 비천한 영화들, 혹자는 OCN 영화들이라고도 부르는 그것들이 영화 경험의 근원에 있다고 해도 그것을 굳이 복원시킬—비평적 공론장으로 끌어올릴—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나왔고, 현재의 영화 담론이 특수한 세대적 경험을 보편으로 인준하는 시스템 속에서 작동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영화들을 비평의 언어로 끌어들여 담론장에 균열을 낼 필요가 있다는 반론이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나를 놀라게 하고 두렵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00년생이어서, 02년생이어서, 90년대 후반생이어서 오늘 언급된 < 달마야 놀자 >, < 신라의 달밤 >, < 두사부일체 >, < 조폭 마누라 > 같은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설마 여기서 내가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인가?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 나는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10 항상 12살 짜리가 있는 법이고 그들에게 맞는 책이 역시 있는 법이다. 스탠리 카벨은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걸작이 아닌 다음에야, 예전 그대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어지는 카벨의 목록: 찰스 로튼과 클라크 게이블의 <전함 바운티>, <십자군>, <유니온 퍼시픽>, <새벽의 성찰>, < 캡틴 블러드 >, <알제리>, <찰리 챈>, <폭풍의 언덕>, < 스텔라 달라스 >, <킹스 로우>, <교수와 미녀>, 로날드 콜만의 < 젠다성의 포로 >, < 마음의 행로 >, < 잃어버린 지평선 >, <후아레즈>, <데드 엔드>, <모히칸족의 최후>, <부러진 화살>, <장군, 새벽에 죽다>, <밀드레드 피어스>, <오페라의 유령>, < 스트라이크 업 더 밴드 >, <비에 노래하며>, < 캣 피플 >, <환상의 여인>, <도시의 절규>, <안녕, 내 사랑>, <화이트 히트> 등 그밖에 백 여편의 다른 영화들. 카벨은 계속해서 말한다. 이 영화들과 보낸 시간은 정말 전율의 시간이나 나날이었다. 중대한 순간이었지만 아주 일순간이었다. 기억과 회상에서만 포착 가능한 시간으로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이다. 지금 당신이 이 영화들을 처음 본다면 재미있게 볼 뿐 아니라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 당시 내가 알았던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오해하면 안 된다. 카벨은 지금 정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지식이나 교양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개인의 영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렇다: < 동감 >, < 번지 점프를 하다 >, < 친구 >, < 엽기적인 그녀 >, < 킬러들의 수다 >, < 공공의 적 >, < 결혼은, 미친짓이다 >, < 후 아 유 >, < 라이터를 켜라 >, < 연애소설 >, < 광복절 특사 >, < 품행제로 >, < 클래식 >, < 동갑내기 과외하기 >, < 선생 김봉두 >, < 와일드 카드 >, < 싱글즈 >, < 오! 브라더스 >, < 황산벌 >, < 그녀를 믿지 마세요 >, < 어린신부 >, < 효자동 이발사 >, < 늑대의 유혹 >, < 바람의 파이터 >, < 시실리 2km >, < 알포인트 >, < 슈퍼스타 감사용 >, < 귀신이 산다 >, < 말아톤 >, < 잠복근무 >, < 혈의 누 >, < 사랑니 >, < 광식이 동생 광태 >, < 태풍 >, < 작업의 정석 >, < 싸움의 기술 >, < 흡혈형사 나도열 >, < 음란서생 >, < 달콤, 살벌한 연인 >, < 사생결단 >, < 구타유발자들 >, < 천하장사 마돈나 >, < 미녀는 괴로워 >, < 1번가의 기적 >, < 좋지 아니한가 >, < 이장과 군수 >, < 즐거운 인생 >, < 스카우트 > 기타 등등… 이것은 내가 왓챠피디아에 평가한 1499편의 영화 중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를 구작순으로 필터링한 것 중에서 봉, 홍, 박, 이 등의 작품과 여기에 제목을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작품을 빼고 나열해본 것이다. 모든 영화가 내게 전율을 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한두 장면이라도 재미를 느낀 부분이 있었다고 말해야겠다. 나 역시 빙크스 볼링처럼 “못 만든 영화라도 일단 빠져들면 무척 행복”한 관객이기 때문이다. 11 다시. 문제는 이런 영화를 어떻게 말하느냐다. 카벨은 모든 시대의 12살에게 맞는 공통의 책들이 있는 반면, 서로 다른 시대의 12살에게는 그때그때의 영화들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걸작 리스트는 공유가 가능하지만 어쩌면 평범하거나 비천한 영화들의 리스트는 공유 불가능한 게 아닐까(“지금 당신이 이 영화들을 처음 본다면 재미있게 볼 뿐 아니라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 당시 내가 알았던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사진에 대한 바르트의 구분처럼, 걸작은 문화적으로 구성된 스투디움의 영역이지만 비천한 영화는 보는 사람의 주관에 달린 푼크툼 같은 게 아닐까? 여기에는 다양한 층위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을 위해서는 또 다른 자리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는 21세기 첫 20년의 한국 영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만이 (여전히) 남아 있다. 걸작을 나열하지도, 천만 영화 목록을 훑지도 않으면서. 다시 한 번,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우리는 한국 사람… 12 우리가 하려는 게 비평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둬야겠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내게 필요한 건 책이 아니라 카메라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겠다. 오픈 스페이스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보다는 오픈 스페이스 현장을 찍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말이다. 에세이 필름을 만들어야 하니까. 늘 그랬던 것처럼 영화 그 자체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니콜라스 케이지가. 최근 케이지는 < 참을 수 없는 무게의 미친 능력 >에서 한때 잘나가던 슈퍼스타였지만 이제는 빚더미에 올라 아무 영화나 막 찍는 ‘닉 케이지’를 연기했다. 그가 자신의 광팬이자 억만장자 마약왕인 페드로 파스칼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가 예기치 못한 소동에 휘말리는 이야기라는데 내가 본 건 트위터에 돌아다니는 짧은, 그러나 영감으로 넘치는 클립이다. 으리으리한 페드로 파스칼의 집. 파스칼이 소파에 앉아 있는 케이지에게 와인을 따라준다. 케이지 고마워. (사이) 말 좀 그만 돌리고 대답해봐. 세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가 대체 뭐야?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파스칼, 결심한듯 내뱉는다. 파스칼 패딩턴 2 . 비명을 지르며 잔을 내려놓는 케이지. 케이지 뭐?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이랑 <패딩턴 2>?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 말은, 잘난 척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파스칼 영화 보는 내내 울었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고. 케이지 야, X까! 장면 바뀌면, 화면을 바라보며 코를 훌쩍이는 케이지의 모습. 나는 JD에게 링크를 보내고, 기다린다. 여전히 답이 없다. 말풍선도… *다음 책들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 [영화를 생각하다](장 루이 뢰트라.수잔 리앙드라 기그, 김영모 옮김, 동문선, 2005) [눈에 비치는 세계](스탠리 카벨, 이두희.박진희 옮김, 이모션북스, 2014)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혹시 내가 아는 그 백승빈 ?’ 십몇 년 전의 일이다. 싸이월드 방명록에 내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누군가의 한 줄 글이 올라온다. 그 누군가는 십 대 초중반 시절의 내 정신을 지배했던 이웃집 형이다. 고3 수험생이 되어 그만둘 때까지 한때 나의 수학 과외 선생이었던 그는, 매년 새로 배정되는 우리 반 담임에 관해 꼭 필요한 논평을 해주던 졸업생 선배였고, 일요일 새벽이면 오락실 셔터문을 두드려 가장 먼저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기 앞에 나란히 앉던 친구이기도 했다. 한 살 차이도 괜히 주눅 들곤 하는 어린 시절에 한 번도 같은 건물로 등하교해본 적 없는 세 살 터울의 사이였지만, 우리는 5층짜리 아담한 아파트의 아랫집 윗집에 사는 이웃이었고, 엄마들끼리도 친했으므로 어렵거나 어색하지 않게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형이 없었고 그가 외동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레 형제처럼 지냈다. 형은 야구를 좋아해서 집에 야구장비가 많았다. 그와 취미를 공유하는데 내 운동신경이 형편없다는 사실은 그다지 장애가 되지 않았다. 형은 인내심이 많았고 나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정확히 말해, 흥미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지. 단순히 공을 주고받는 행위에 어떤 우주적 의미나 숨은 재미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탓이다. 그래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17년 현재, 당장에라도 이 외딴 섬 같은 작업실을 뛰쳐나가 미친 듯 노를 저어 형과 캐치볼을 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그 시간에 내가 단순히 흥미를 잃지 않으려고 애만 쓴 것은 아닌 게 확실하다. 캐치볼이 건전한 취미라고 한다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은 그 형의 위험한 습관이었다. 높고 폭이 좁은 담장이나 담벼락, 펜스나 철봉을 발견하면 굳이 그 위를 억지로 기어올라 아슬아슬 걸어보곤 했다. 겁이 많고 의심이 많은 아이인 나는 그를 따라 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생각은 1도 없었지만, 위험천만하게 땅으로 착지하며 별일 아닌 척하던 형은 내게 절대로 자기를 따라 하지 마라고만 했다. 그것만 제외하면, 형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 운동도 다 잘하고, (일부러 져주지 않으면) 스트리트 파이터에 관한 한, 동네 레전드급이었기 때문에 십 대 초중반의 내 정신을 지배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존재였다. 오늘 이 글에서 소개할, 윌리엄 맥스웰의 「안녕, 내일 또 만나」라는 책 속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당시 내가 되고 싶어 하던 유의 아이였고, 나는 어떻게든 노력해 닮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는 얘기다. “너 칼라 보노프 알아?” 어느 날 저녁, 과외 수업 도중에 형이 묻는다. 나는 그게 뭐냐고 질문으로 대답하고, 그는 가방에서 AIWA 카세트 플레이어를 꺼내며 침착하게 설명해준다. “칼라 보노프는 사람이고, 가수야.” 곧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낀 우리는 잔잔한 기타 반주와 함께, 영롱한 목소리의 여자가 나지막이 부르기 시작하는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다. 마치 영어 듣기 평가할 때처럼의 집중력이라, “배 먹어라” 하면서 들어온 엄마가 책상 위에 배 두 쪽을 깎아놓은 접시를 놓고 가도 우리는 이어폰을 빼지 않는다. 당시의 내 귀엔, 엠씨스퀘어 숙면 모드에 가사를 붙여놓은 것처럼 들리는 그 곡은 ‘The Water is Wide’라는 제목의 노래다. 지금부터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고, 윌리엄 맥스웰의 「안녕, 내일 또 만나 So Long, See You Tomorrow」라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윌리엄 맥스웰 윌리엄 맥스웰은 1936년부터 1975년까지 약 40년간 「뉴요커」 매거진의 편집장이었고, 「안녕, 내일 또 만나」는 그가 일흔두 살이 되던 1980년에 출간된 책이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어린 시절 함께 논 적이 있던 친구와 그의 가족을 둘러싼 비극을 대체로 담담하고 아주 사려 깊게 전달하는 이야기지만, 그 아래로 짙게 드리워진 노작가의 회한 섞인 어조는 이 이야기가 작가 본인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토대로 한, ‘자전적 메타픽션’이라는 사실 때문에 조금은 더 구슬프게 들린다. 맥스웰 본인인 내레이터 ‘나’는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면서 새로 재편되는 과정을 겪고 있는 예민한 소년이다. 그러던 중에 잠시 평범한 며칠 동안을 함께 놀았던 친구 ‘클레터스’는 ‘나’가 겪은 것과는 다른 이유로, 그 또한 자신의 세계가 송두리째 뒤바뀌는 사건을 겪게 된다. 여기서 두 아이가 겪은 일에 (독자들이 꼭 기억할 만한)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비극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어느 겨울 새벽, 조용한 마을 농장을 울리는 한 발의 총소리로 시작한다. 죽은 사람은 ‘로이드 윌슨’이라는 삼십 대 남자, 총을 쏜 사람은 친구였던 ‘클레런스 스미스’라는 사십 대 남자였는데, 이들은 서로 이웃에 살던 가난한 소작농들이었다. 깊은 우애와 끝없는 권태를 함께 나누던 이들 가족 사이에 언제부턴가 비밀스러운 불륜이 있었고, 우애와 권태는 폭력과 살인으로 변질되어 결국 모든 것이 끝장나 버린 것이다. 여기서 내레이터인 ‘나’와 함께 놀던 친구 ‘클레터스’는 살인자 클레런스 스미스의 아들이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파토 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두 소년도 그렇게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몇 년 뒤, 시카고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두 소년은 복도를 지나치다 우연히 마주친다. 하지만 ‘나’는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그를 아는 척하지 않고 지나가 버리고, 그 후 평생 자신의 그런 행동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이에 대한 윌리엄 맥스웰의 고백이 담긴, 책의 두 번째 챕터 첫 문단을 옮겨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작농의 피살 사건을 50년도 넘게 기억하는 건 첫째, 살인자가 내가 아는 이의 아버지였고, 둘째,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는 나중에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 사건을 아마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상록이란 이름을 이 글에 붙여도 된다면) 이 회상록은 그때 내 잘못을 우회적으로 사과하려는 헛된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바로, 책의 마지막 문단을 옮겨 적어 그의 ‘헛된 시도’가 어떤 질문과 대답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는지를 얘기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책을 읽을 분들을 위해 그냥 생략하기로 한다. 윌리엄 맥스웰이 이 오랜 이야기의 육중한 문을 어떻게 조심스럽고 사려 깊게 닫고 있는지를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오로지 혼자서 구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읽은 「안녕, 내일 또 만나」라는 책은, 윌리엄 맥스웰이 지난 수십 년간 이야기를 읽고 편집하고 만들어 오면서 해온, 자신의 작가적 고민을, 오래전 고등학교 복도에서 모른 척하고 지나가 버렸던 그 친구에게 보내는 회한 어린 사과문의 형태로 고스란히 담아낸,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다. ‘앨리스 먼로’ 같은 대작가가, 자신이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자기가 썼던 모든 글들을 윌리엄 맥스웰이 해냈던 방식대로 완성하겠다는 말에 소름이 돋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혹시 내가 아는 그 백승빈 ?’ 이쯤에서, 배경음악으로 깔아놓았던 ‘The Water is Wide’를 한 번 더 리플레이 시켜놓고 이웃집 그 형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간다. 그 일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고 그 형은 재수생이던 어느 가을날 밤에 일어난다. 몇 달 전 같은 아파트의 윗집 아랫집에 살던 지난 5년을 끝으로, 우리 가족은 버스로 2코스가량 떨어진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천천히 걸어가도 이십 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 곳인 데다 그 전에 살던 곳과 별반 다르지 않는 평수와 구조의 아파트인데, 왜 굳이 이사까지 간 건지 지금도 난 잘 모르겠다. 그날 나는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으로 와서 “엄마, 라면!”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마침, 온 집안을 벨 소리로 흔들어대는 전화를 신속하게 받아낸 엄마는 잠시 뒤, 내 방문을 벌컥 열어 라면은 네가 끓여 먹으라며 급하게 나갈 준비를 한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이 밤에 어디 가는 거냐고 묻는다. “502호 아줌마 죽었단다.” 502호 아줌마라면... 그 형의 엄만데. 막 벗었던 교복 바지를 다시 추켜올린 나는, 라면은 됐고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한다. 어딜 따라 오냐고 막 소리치는 엄마를 기필코 따라나선 나는 그 어둑한 밤길을 미친 듯이 함께 달린다. 엄마의 입에서 ‘자살’이라는 단어가 들리고 나서부터는 심장이 쿵쾅거려 뛰는 게 겁이 나지만, 우리는 서로의 손을 더 세게 꽉 잡으면서 저 멀리, 텔레비전 뉴스에서 많이 본 것 같은, 한 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자동차 불빛들을 향해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와 동시에, 점점 더 잘 들리게 되는 누군가의 괴성 소리, 그것은... 형의 목소리다. 아파트 주차장을 둘러싼 구경꾼들과 각층의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수십 명의 주민들이 웅성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것은, 그 형이 누군가의 차 위에 올라가서 괴성을 지르며 야구 배트로 차를 내려치고 있는 장면이다. 창문이 박살 나고 지붕이 내려앉던 그 커다랗고 까맣고 비싸 보이는 차의 소유주는 502호 아저씨, 그러니까 그 형의 아버지다. 지금 형은 타오르고 있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고 있다. 놀란 엄마는 이웃집 아줌마들에게 달려가 숨어버리지만 나는 구경꾼들 사이에 꼼짝 못 하고 서 있기만 한다. 미리 도착해 있는 경찰들도 들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형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보고만 있다. 그러다 곧 형이 미끌, 한다. 구경꾼들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소리가 터진다. 바닥으로 쿵, 떨어진 형이 이내 구겨진 자세가 되자 순식간에 달려간 경찰들이 그를 제압한다. 그것도 내가 처음 본 모습이다. 높은 곳에서 형이 떨어진 것 말이다. 형은 이내 또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로 울부짖으며 연신 쌍욕을 내뱉는다. 누군가를 죽일 거라는 말이 내 귀에 꽂힌다. 형이 경찰들에 끌려가며 차에 태워지는 모습을 나는 점점 뒤로 물러가면서 끝까지 쳐다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나는 이제 뒤 돌아 걸어간다. 무섭고 타오르는 것은 절대로 못 본 사람처럼 조용히 걸어서, 집으로. 가로등 불빛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어두운 갓길로만 걸어서, 형을 태운 경찰차가 지나가더라도 어둠 속의 나를 발견하지 못하게 갓길로만 걸어서 집으로 간다. 다음 날 아침에 엄마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는 남편의 오랜 불륜 사실을 알고 난 502호 아줌마가 그날 저녁에 화장실에서 목을 맸으며, 그 모습을 학원에서 돌아온 형이 가장 먼저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엄마에게 물으니, 엄마는 네가 뭘 어떻게 하긴 하냐는 듯 의뭉스런 얼굴이 되었다. 502호 아저씨에 대한 내 기억은 마주칠 때마다 내게 용돈 하라고 만 원씩이나 주는 고마운 분이었는데 이제 고마움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바뀌었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은 곧 트라우마로 바뀔 참이었다. 그해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며 학교를 다녔고, 대학입시성적에 만족하지 못했던 형은 재수생의 길을 선택해 학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 우리 가족이 왜 걸어서 이십 분 거리의 똑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간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사를 가게 되면서 형과 내가 드물게 마주치는 일은 더 드물어 졌고,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초, 중학교와는 달리, 형이 다니지 않았던 학교여서 담임선생에 대해 형이 내게 해줄 논평도 없게 되었다. 우리는 조금씩 별말 없이 멀어지고 있었고, 엄마는 사람 사이란 게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한 번씩 들리는 얘기로 형은 그해에 대학에 가지 않았고, 바로 군대에 갔다고 했다. 나도 몇 년 뒤에 대학에 가고 얼마 뒤에 군대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형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 복학을 하고, 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혹시 내가 아는 그 백승빈 ?’ 내 싸이월드 방명록에 그 형의 이름이 한 줄 글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후 며칠 동안이나 답글을 달지 않았다.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형의 이름을 본 순간, 언젠가 불길에 활활 타오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던 내 몸짓이 생각났다. 나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형은 ‘내가 아는 백승빈 ?’ 이라고만 물었지만, 사실은 그 뒤에 ‘경찰차 안에서 이름을 몇 번이나 외쳤는데, 갓길에서 모른 척 고개 숙이고 걷던 그 백승빈 맞아?’ 를 생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식으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런 걸 두고 죄책감이라고 하는 건가? 하지만 내가 그때 형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경찰차 앞을 가로막고 창문을 두드리며 형을 울부짖었어야 했나? 그러다 다치니까 차 지붕에서 그만 내려오라는 얘기 정도나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난, 갓길의 어둠 속에 숨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에 확인해본 방명록엔 형의 글이 삭제되어 있었고, 나는 그가 며칠 전 글을 남겼을 때 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 ‘혹시 내가 아는 백승빈 ?’ 뒤에 생략되었던 말은 (‘너 칼라 보노프 기억하냐?’) 정도였을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들었다. 참 얄궂기도 하지. 그래서 그날 나는 아마 울었던 것 같다. 칼라 보노프의 ‘The Water is Wide’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곡이 엠씨스퀘어 숙면 모드에 가사만 대충 붙인 것만 같았는데, 언젠가부터 내게 이 노래는 분노와 포효, 비탄과 오열을 예쁘게 숨기는 듯한 가사와 담담한 척하는 목소리에 꾹꾹 눌러 담아낸 아픈 이야기로 들린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서 듣지는 않는다. 그 형도 생각나고, 이젠 세상에 없는 엄마의 손을 꽉 잡고 달려갔던 그 밤길도 생각나고, 뭐... 그렇다. 윌리엄 맥스웰은 나이 든 노인이 되어 오래 전 자신이 모른 척하고 지나쳤던 친구에게 소설의 형태로 아름다운 사과문을 남겼다. 죽기 전까지 수십 년 간, 나보코프, 업다이크, 샐린저, 치버, 오코너 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읽고 쓰고 만들게 했던 그의 작가적 고민이 고스란히 마지막 장편소설 「안녕, 내일 또 만나」에 들어있다. ‘서로 상반된 감정이 너무 많이 얽혀 있어 우리는 삶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이야기꾼이 나서서 상황을 재배치하는 것일 터이다. 어쨌든 과거에 관한 한 우리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Too many conflicting emotional interests are involved for life ever to be wholly acceptable, and possibly it is the work of the storyteller to rearrange things so that they conform to this end. In any case, in talking about the past we lie with every breath we draw.’ 이 책을 내 마음대로 각색해 지금까지 보여준 영화의 주인공은 그 형이었다. 지난 시절에 관한 내 기억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재배치한 것도 있고, 상상에 가까운 짐작도 있다. 하지만, 형의 AIWA 워크맨을 통해 ‘칼라 보노프’를 같이 듣던 장면은 가짜일 수 없고, 차 지붕 위에서 활활 타오르다 떨어져 땅바닥에 구겨진 채 울부짖던 그의 모습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내 기억 속의 화신으로 남을 것이다. 형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기를 바란다. 당장에라도 이 외딴 섬 같은 작업실을 뛰쳐나가 미친 듯 노를 저어 그와 캐치볼을 하러 가고 싶다는 이 글 도입부의 내 마음을 형이 짐작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윌리엄 맥스웰의 방식을 감히 한 번 흉내 내며 이런 글을 써보았다. 내가 각색한 이 영화 안에서 형은, 언젠가 높은 곳에서 쿵, 하고 한 번 떨어졌지만 어떻게 해서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 지금처럼 잘살게 되었는지를 기필코 보여주는, 당차고 아름다운 주인공일 것이다. 그런 주인공이라면 분명히 내게 다시 연락할 것이다. 그래서 별 말 없이 캐치볼을 하게 되는 거지. 그때 깔리는 사운드트랙이 칼라 보노프의 ‘The Water is Wide’라면 좀 이상한가? #1 펀 홈 #2 안녕, 내일 또 만나 #3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4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5 이모와의 여행, 그 외 몇몇
‘혹시 내가 아는 그 백승빈?’ 십몇 년 전의 일이다. 싸이월드 방명록에 내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누군가의 한 줄 글이 올라온다. 그 누군가는 십 대 초중반 시절의 내 정신을 지배했던 이웃집 형이다. 고3 수험생이 되어 그만둘 때까지 한때 나의 수학 과외 선생이었던 그는, 매년 새로 배정되는 우리 반 담임에 관해 꼭 필요한 논평을 해주던 졸업생 선배였고, 일요일 새벽이면 오락실 셔터문을 두드려 가장 먼저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기 앞에 나란히 앉던 친구이기도 했다. 한 살 차이도 괜히 주눅 들곤 하는 어린 시절에 한 번도 같은 건물로 등하교해본 적 없는 세 살 터울의 사이였지만, 우리는 5층짜리 아담한 아파트의 아랫집 윗집에 사는 이웃이었고, 엄마들끼리도 친했으므로 어렵거나 어색하지 않게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형이 없었고 그가 외동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레 형제처럼 지냈다. 형은 야구를 좋아해서 집에 야구장비가 많았다. 그와 취미를 공유하는데 내 운동신경이 형편없다는 사실은 그다지 장애가 되지 않았다. 형은 인내심이 많았고 나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정확히 말해, 흥미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지. 단순히 공을 주고받는 행위에 어떤 우주적 의미나 숨은 재미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탓이다. 그래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17년 현재, 당장에라도 이 외딴 섬 같은 작업실을 뛰쳐나가 미친 듯 노를 저어 형과 캐치볼을 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그 시간에 내가 단순히 흥미를 잃지 않으려고 애만 쓴 것은 아닌 게 확실하다. 캐치볼이 건전한 취미라고 한다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은 그 형의 위험한 습관이었다. 높고 폭이 좁은 담장이나 담벼락, 펜스나 철봉을 발견하면 굳이 그 위를 억지로 기어올라 아슬아슬 걸어보곤 했다. 겁이 많고 의심이 많은 아이인 나는 그를 따라 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생각은 1도 없었지만, 위험천만하게 땅으로 착지하며 별일 아닌 척하던 형은 내게 절대로 자기를 따라 하지 마라고만 했다. 그것만 제외하면, 형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 운동도 다 잘하고, (일부러 져주지 않으면) 스트리트 파이터에 관한 한, 동네 레전드급이었기 때문에 십 대 초중반의 내 정신을 지배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존재였다. 오늘 이 글에서 소개할, 윌리엄 맥스웰의 「안녕, 내일 또 만나」라는 책 속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당시 내가 되고 싶어 하던 유의 아이였고, 나는 어떻게든 노력해 닮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는 얘기다. “너 칼라 보노프 알아?” 어느 날 저녁, 과외 수업 도중에 형이 묻는다. 나는 그게 뭐냐고 질문으로 대답하고, 그는 가방에서 AIWA 카세트 플레이어를 꺼내며 침착하게 설명해준다. “칼라 보노프는 사람이고, 가수야.” 곧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낀 우리는 잔잔한 기타 반주와 함께, 영롱한 목소리의 여자가 나지막이 부르기 시작하는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다. 마치 영어 듣기 평가할 때처럼의 집중력이라, “배 먹어라” 하면서 들어온 엄마가 책상 위에 배 두 쪽을 깎아놓은 접시를 놓고 가도 우리는 이어폰을 빼지 않는다. 당시의 내 귀엔, 엠씨스퀘어 숙면 모드에 가사를 붙여놓은 것처럼 들리는 그 곡은 ‘The Water is Wide’라는 제목의 노래다. 지금부터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고, 윌리엄 맥스웰의 「안녕, 내일 또 만나 So Long, See You Tomorrow」라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윌리엄 맥스웰 윌리엄 맥스웰은 1936년부터 1975년까지 약 40년간 「뉴요커」 매거진의 편집장이었고, 「안녕, 내일 또 만나」는 그가 일흔두 살이 되던 1980년에 출간된 책이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어린 시절 함께 논 적이 있던 친구와 그의 가족을 둘러싼 비극을 대체로 담담하고 아주 사려 깊게 전달하는 이야기지만, 그 아래로 짙게 드리워진 노작가의 회한 섞인 어조는 이 이야기가 작가 본인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토대로 한, ‘자전적 메타픽션’이라는 사실 때문에 조금은 더 구슬프게 들린다. 맥스웰 본인인 내레이터 ‘나’는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면서 새로 재편되는 과정을 겪고 있는 예민한 소년이다. 그러던 중에 잠시 평범한 며칠 동안을 함께 놀았던 친구 ‘클레터스’는 ‘나’가 겪은 것과는 다른 이유로, 그 또한 자신의 세계가 송두리째 뒤바뀌는 사건을 겪게 된다. 여기서 두 아이가 겪은 일에 (독자들이 꼭 기억할 만한)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비극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어느 겨울 새벽, 조용한 마을 농장을 울리는 한 발의 총소리로 시작한다. 죽은 사람은 ‘로이드 윌슨’이라는 삼십 대 남자, 총을 쏜 사람은 친구였던 ‘클레런스 스미스’라는 사십 대 남자였는데, 이들은 서로 이웃에 살던 가난한 소작농들이었다. 깊은 우애와 끝없는 권태를 함께 나누던 이들 가족 사이에 언제부턴가 비밀스러운 불륜이 있었고, 우애와 권태는 폭력과 살인으로 변질되어 결국 모든 것이 끝장나 버린 것이다. 여기서 내레이터인 ‘나’와 함께 놀던 친구 ‘클레터스’는 살인자 클레런스 스미스의 아들이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파토 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두 소년도 그렇게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몇 년 뒤, 시카고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두 소년은 복도를 지나치다 우연히 마주친다. 하지만 ‘나’는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그를 아는 척하지 않고 지나가 버리고, 그 후 평생 자신의 그런 행동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이에 대한 윌리엄 맥스웰의 고백이 담긴, 책의 두 번째 챕터 첫 문단을 옮겨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작농의 피살 사건을 50년도 넘게 기억하는 건 첫째, 살인자가 내가 아는 이의 아버지였고, 둘째,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는 나중에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 사건을 아마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상록이란 이름을 이 글에 붙여도 된다면) 이 회상록은 그때 내 잘못을 우회적으로 사과하려는 헛된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바로, 책의 마지막 문단을 옮겨 적어 그의 ‘헛된 시도’가 어떤 질문과 대답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는지를 얘기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책을 읽을 분들을 위해 그냥 생략하기로 한다. 윌리엄 맥스웰이 이 오랜 이야기의 육중한 문을 어떻게 조심스럽고 사려 깊게 닫고 있는지를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오로지 혼자서 구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읽은 「안녕, 내일 또 만나」라는 책은, 윌리엄 맥스웰이 지난 수십 년간 이야기를 읽고 편집하고 만들어 오면서 해온, 자신의 작가적 고민을, 오래전 고등학교 복도에서 모른 척하고 지나가 버렸던 그 친구에게 보내는 회한 어린 사과문의 형태로 고스란히 담아낸,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다. ‘앨리스 먼로’ 같은 대작가가, 자신이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자기가 썼던 모든 글들을 윌리엄 맥스웰이 해냈던 방식대로 완성하겠다는 말에 소름이 돋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혹시 내가 아는 그 백승빈?’ 이쯤에서, 배경음악으로 깔아놓았던 ‘The Water is Wide’를 한 번 더 리플레이 시켜놓고 이웃집 그 형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간다. 그 일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고 그 형은 재수생이던 어느 가을날 밤에 일어난다. 몇 달 전 같은 아파트의 윗집 아랫집에 살던 지난 5년을 끝으로, 우리 가족은 버스로 2코스가량 떨어진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천천히 걸어가도 이십 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 곳인 데다 그 전에 살던 곳과 별반 다르지 않는 평수와 구조의 아파트인데, 왜 굳이 이사까지 간 건지 지금도 난 잘 모르겠다. 그날 나는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으로 와서 “엄마, 라면!”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마침, 온 집안을 벨 소리로 흔들어대는 전화를 신속하게 받아낸 엄마는 잠시 뒤, 내 방문을 벌컥 열어 라면은 네가 끓여 먹으라며 급하게 나갈 준비를 한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이 밤에 어디 가는 거냐고 묻는다. “502호 아줌마 죽었단다.” 502호 아줌마라면... 그 형의 엄만데. 막 벗었던 교복 바지를 다시 추켜올린 나는, 라면은 됐고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한다. 어딜 따라 오냐고 막 소리치는 엄마를 기필코 따라나선 나는 그 어둑한 밤길을 미친 듯이 함께 달린다. 엄마의 입에서 ‘자살’이라는 단어가 들리고 나서부터는 심장이 쿵쾅거려 뛰는 게 겁이 나지만, 우리는 서로의 손을 더 세게 꽉 잡으면서 저 멀리, 텔레비전 뉴스에서 많이 본 것 같은, 한 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자동차 불빛들을 향해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와 동시에, 점점 더 잘 들리게 되는 누군가의 괴성 소리, 그것은... 형의 목소리다. 아파트 주차장을 둘러싼 구경꾼들과 각층의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수십 명의 주민들이 웅성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것은, 그 형이 누군가의 차 위에 올라가서 괴성을 지르며 야구 배트로 차를 내려치고 있는 장면이다. 창문이 박살 나고 지붕이 내려앉던 그 커다랗고 까맣고 비싸 보이는 차의 소유주는 502호 아저씨, 그러니까 그 형의 아버지다. 지금 형은 타오르고 있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고 있다. 놀란 엄마는 이웃집 아줌마들에게 달려가 숨어버리지만 나는 구경꾼들 사이에 꼼짝 못 하고 서 있기만 한다. 미리 도착해 있는 경찰들도 들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형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보고만 있다. 그러다 곧 형이 미끌, 한다. 구경꾼들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소리가 터진다. 바닥으로 쿵, 떨어진 형이 이내 구겨진 자세가 되자 순식간에 달려간 경찰들이 그를 제압한다. 그것도 내가 처음 본 모습이다. 높은 곳에서 형이 떨어진 것 말이다. 형은 이내 또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로 울부짖으며 연신 쌍욕을 내뱉는다. 누군가를 죽일 거라는 말이 내 귀에 꽂힌다. 형이 경찰들에 끌려가며 차에 태워지는 모습을 나는 점점 뒤로 물러가면서 끝까지 쳐다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나는 이제 뒤 돌아 걸어간다. 무섭고 타오르는 것은 절대로 못 본 사람처럼 조용히 걸어서, 집으로. 가로등 불빛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어두운 갓길로만 걸어서, 형을 태운 경찰차가 지나가더라도 어둠 속의 나를 발견하지 못하게 갓길로만 걸어서 집으로 간다. 다음 날 아침에 엄마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는 남편의 오랜 불륜 사실을 알고 난 502호 아줌마가 그날 저녁에 화장실에서 목을 맸으며, 그 모습을 학원에서 돌아온 형이 가장 먼저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엄마에게 물으니, 엄마는 네가 뭘 어떻게 하긴 하냐는 듯 의뭉스런 얼굴이 되었다. 502호 아저씨에 대한 내 기억은 마주칠 때마다 내게 용돈 하라고 만 원씩이나 주는 고마운 분이었는데 이제 고마움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바뀌었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은 곧 트라우마로 바뀔 참이었다. 그해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며 학교를 다녔고, 대학입시성적에 만족하지 못했던 형은 재수생의 길을 선택해 학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 우리 가족이 왜 걸어서 이십 분 거리의 똑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간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사를 가게 되면서 형과 내가 드물게 마주치는 일은 더 드물어 졌고,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초, 중학교와는 달리, 형이 다니지 않았던 학교여서 담임선생에 대해 형이 내게 해줄 논평도 없게 되었다. 우리는 조금씩 별말 없이 멀어지고 있었고, 엄마는 사람 사이란 게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한 번씩 들리는 얘기로 형은 그해에 대학에 가지 않았고, 바로 군대에 갔다고 했다. 나도 몇 년 뒤에 대학에 가고 얼마 뒤에 군대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형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 복학을 하고, 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혹시 내가 아는 그 백승빈?’ 내 싸이월드 방명록에 그 형의 이름이 한 줄 글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후 며칠 동안이나 답글을 달지 않았다.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형의 이름을 본 순간, 언젠가 불길에 활활 타오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던 내 몸짓이 생각났다. 나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형은 ‘내가 아는 백승빈?’ 이라고만 물었지만, 사실은 그 뒤에 ‘경찰차 안에서 이름을 몇 번이나 외쳤는데, 갓길에서 모른 척 고개 숙이고 걷던 그 백승빈 맞아?’ 를 생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식으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런 걸 두고 죄책감이라고 하는 건가? 하지만 내가 그때 형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경찰차 앞을 가로막고 창문을 두드리며 형을 울부짖었어야 했나? 그러다 다치니까 차 지붕에서 그만 내려오라는 얘기 정도나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난, 갓길의 어둠 속에 숨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에 확인해본 방명록엔 형의 글이 삭제되어 있었고, 나는 그가 며칠 전 글을 남겼을 때 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 ‘혹시 내가 아는 백승빈?’ 뒤에 생략되었던 말은 (‘너 칼라 보노프 기억하냐?’) 정도였을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들었다. 참 얄궂기도 하지. 그래서 그날 나는 아마 울었던 것 같다. 칼라 보노프의 ‘The Water is Wide’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곡이 엠씨스퀘어 숙면 모드에 가사만 대충 붙인 것만 같았는데, 언젠가부터 내게 이 노래는 분노와 포효, 비탄과 오열을 예쁘게 숨기는 듯한 가사와 담담한 척하는 목소리에 꾹꾹 눌러 담아낸 아픈 이야기로 들린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서 듣지는 않는다. 그 형도 생각나고, 이젠 세상에 없는 엄마의 손을 꽉 잡고 달려갔던 그 밤길도 생각나고, 뭐... 그렇다. 윌리엄 맥스웰은 나이 든 노인이 되어 오래 전 자신이 모른 척하고 지나쳤던 친구에게 소설의 형태로 아름다운 사과문을 남겼다. 죽기 전까지 수십 년 간, 나보코프, 업다이크, 샐린저, 치버, 오코너 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읽고 쓰고 만들게 했던 그의 작가적 고민이 고스란히 마지막 장편소설 「안녕, 내일 또 만나」에 들어있다. ‘서로 상반된 감정이 너무 많이 얽혀 있어 우리는 삶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이야기꾼이 나서서 상황을 재배치하는 것일 터이다. 어쨌든 과거에 관한 한 우리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Too many conflicting emotional interests are involved for life ever to be wholly acceptable, and possibly it is the work of the storyteller to rearrange things so that they conform to this end. In any case, in talking about the past we lie with every breath we draw.’ 이 책을 내 마음대로 각색해 지금까지 보여준 영화의 주인공은 그 형이었다. 지난 시절에 관한 내 기억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재배치한 것도 있고, 상상에 가까운 짐작도 있다. 하지만, 형의 AIWA 워크맨을 통해 ‘칼라 보노프’를 같이 듣던 장면은 가짜일 수 없고, 차 지붕 위에서 활활 타오르다 떨어져 땅바닥에 구겨진 채 울부짖던 그의 모습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내 기억 속의 화신으로 남을 것이다. 형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기를 바란다. 당장에라도 이 외딴 섬 같은 작업실을 뛰쳐나가 미친 듯 노를 저어 그와 캐치볼을 하러 가고 싶다는 이 글 도입부의 내 마음을 형이 짐작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윌리엄 맥스웰의 방식을 감히 한 번 흉내 내며 이런 글을 써보았다. 내가 각색한 이 영화 안에서 형은, 언젠가 높은 곳에서 쿵, 하고 한 번 떨어졌지만 어떻게 해서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 지금처럼 잘살게 되었는지를 기필코 보여주는, 당차고 아름다운 주인공일 것이다. 그런 주인공이라면 분명히 내게 다시 연락할 것이다. 그래서 별 말 없이 캐치볼을 하게 되는 거지. 그때 깔리는 사운드트랙이 칼라 보노프의 ‘The Water is Wide’라면 좀 이상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