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 5만장으로한 만우절 집바꾸기 몰카
- 제작년도
- 2010
나에게 여 중고생들과 같이 버스에서 탄다는 것은 멜로보다 하드보일드에 더 가깝다.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쌍욕과 발랄함을 넘어서 괴성에 가까운 웃음소리. 교복은 마치 예비군이 입은 군복 같은 용감함을 심어주는지 그녀들의 거칠 게 없는 에너지에 나는 주눅이 들어버리곤 한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내 중고 시절을 돌이켜보자. 중학교 시절은 무림에 가까웠다면, 고등학교 시절은 감옥과도 같았다. < 더티혜리 >를 만든 이요섭 감독도 말한다. 어느 순간부터 “담배 한 갑만 사주세요.”라고 말하는 중고등학생이 무서워졌다. 그들은 어딘가 화나 보이고 위험해 보인다. 그들에게 하드보일드 장르라는 탈을 씌워주고, 맘껏 움직이게 내버려두고 싶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혜리는 말과 함께 주먹이 나가는 여고생이다. 혜리는 중국집 배달부 수봉이가 자신의 친구 뿅을 임신시키고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수봉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어렵게 수봉을 찾아 시원하게 복수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녀의 주먹은 바른 방향으로 향하였을까? 영화 < 더티혜리 >는 하드보일드 탐정물의 장르를 취하고 있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주제의식보다는 장르가 주는 재미를 더욱 탐닉한다. 혜리가 수봉을 찾기 위해 거치는 캐릭터와 배경 역시 현실성보다는 장르의 특성에 맞게 과장되어있고 미화되어있다. 하지만 이런 장치들이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고, 장르의 리듬을 즐기게 한다. 예를 들어 혜리에게 정보를 주는 오미자의 캐릭터는 도서관에 기거하며, 포스트잇으로 혜리가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건네준다. 도서관의 미장센 역시 탐정영화에서 볼법한 음침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재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수봉을 찾아 헤매는 공간도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차이나타운으로 설정해 놓으면서 이 영화의 관람 방향을 확실히 제시한다. 또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하드보일드 탐정물에서 느껴지는 위스키의 냄새보다는 달달한 캔디향이 난다는 것이다. 이는 탐정물의 클리셰를 여고생이기에 가능한 공간과 행동, 소품들로 차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의 처음과 끝은 감각적인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하며, 위스키 냄새로 채우지 못한 아쉬움을 채워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장르의 테두리 밖에서 보았을 때는 자칫 소품 같은 영화로 보일 수 있다. 이는 장르영화를 단편으로 압축시켰을 때 오는 위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장편으로 옮겨도 훌륭한 하드보일드 탐정영화가 탄생할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정물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 더티혜리 >는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다.
< 와니와 준하 >(2001)는 한 때 붐을 이루었던 ‘1990년대식 한국멜로영화’의 끝자락에 위치한 영화다. 내가 굳이 ‘1990년대식’이라고 부른 이유는 그 시기의 한국멜로영화가 가진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뚜렷한 기승전결적 구조 없이도 관객의 감정을 쥐고 흔들었던 감성적인 멜로영화들 말이다. 2001년에 개봉한 영화를 1990년대식이라 부르는 건 이 영화가 그만큼 불운하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다. 1990년대에 나왔으면 멜로영화의 붐에 맞춰 흥행이라는 토끼를 잡았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그 시기 뒤에 나오면서 영화는 흥행과 거리가 멀어졌고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참 아쉬움이 많은 영화이다. < 와니와 준하 >는 순정만화 같은 애니메이션에서 수줍은 소년이 짓궂은 친구들에게 모자를 빼앗기면서 시작한다. 순정만화와 수줍은 소년은 <와니와 준하>를 상징하는 두 개의 키워드가 되어 관객들을 자기 세계로 안내한다. <와니와 준하>는 순정만화를 영화로 옮겨 놓은 것과 같은 영화다. 영화를 열고 닫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수채화풍의 애니메이션이어서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하지만 정작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순정만화는 예쁜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순정만화가 그리 예쁘기만 한 건 아니다. 순정만화에는 대부분 비극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사랑의 엇갈림은 물론이고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기도 한다. 예쁜 그림체는 그 비극과 만나 폭풍을 일으키고 그 격정이 순정만화의 힘이 되는 것처럼 <와니와 준하>도 그 공식을 따라간다. 애니메이션에서 시작해 실사로 바뀐 화면은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어 엔딩에 이를 때까지 감탄을 자아낼 만큼 충분히 예쁘다. 김희선 과 주진모 , 조승우 , 최강희 네 명의 배우들도 예쁘고 그들이 사는 집과 동네도 예쁘다. 예쁜 화면 안에 꼭꼭 숨겨 두었던 비극이 실타래 풀리듯 풀어져 나오면서 영화는 제 빛을 낸다. 와니(김희선)는 이복동생인 영민(조승우)과 금지된 사랑을 했었고 그로 인해서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비밀을 안고 있다. 소재로만 보면 막장드라마에 어울릴 법한 진부한 것이지만 섬세한 연출과 촬영, 연기와 앙상블을 이루면서 <와니와 준하>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준하(주진모)가 떠난 뒤 홀로 남은 와니가 냉장고에 붙은 포스트잇을 보면서 오열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와니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슬픔의 근원과 만나게 되고 공감하게 된다(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이다). 와니가 순정만화 같은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비극을 잉태하고 있다면 준하는 수줍은 소년이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과거의 준하는 또래 친구들보다 키도 작고 힘도 약하다. 실사로 바뀌고 현재로 시간이 흘러 키도 몸도 훌쩍 커졌지만 덩치에 걸맞지 않게 그는 여전히 수줍은 소년이다. 준하는 와니와 함께 살고 있지만 가부장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 그는 경제권을 쥐고 있지도 못하고(와니는 회사에 소속된 정규직 애니메이터인 반면에 준하는 비정규직 시나리오 작가다) 법적으로 남편의 지위를 획득할 수 없는 동거남이며 와니가 주인인 집에 살고 있다. 준하를 이렇게 수줍은 소년으로 만들면서 < 와니와 준하 >는 뚜렷한 자기 색을 지니게 된다. 마초로 대변되는 강한 한국남자들, 여성의 위에서 군림하는 남자들과는 달리 여성과 동등한 위치거나 오히려 보호 받는 위치에 있는 남자는 현실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동시대 여성들이 꿈꿀 수 있는 캐릭터가 되었다. 앞에서 말한 ‘1990년대식 한국멜로영화’에서 많이 등장했던 수줍은 남자들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지 못한 < 8월의 크리스마스 >의 정원( 한석규 )이나 PC통신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만 적극성을 띠는 < 접속 >의 동현(한석규) 같은 인물들. 준하는 와니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에게 말해달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늘 곁에서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보니 준하는 와니와 크게 다툴 일도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 와니와 준하의 사랑은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담담함을 유지하게 되고 그 담담함 때문에 긴장을 떨어트리거나 지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진폭은 크지 않은데 깊은 울림이 있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장점이 된다. 그 장점을 발견하게 된 관객들이 늦게나마 영화를 재평가하기도 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놓친 관객들의 재평가로 < 와니와 준하 >는 시기를 놓친 불우한 영화에서 벗어나 자기 색을 갖춘 특별한 영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