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사랑
- 감독
- 정진우
- 제작년도
- 1971
- 출연
- 나훈아, 문희, 노주현, 정민, 김신재, 방성자, 신숙, 김철, 김경란, 이상우, 이용진, 조경숙
한번 생각해 보자. 학창 시절, 사고로 죽었던 친구가 귀신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난다면? 그리고 그 죽음의 이유가 나와도 관련이 있다면? 나로서는 무척 두렵거나 공포스러운 상황일 것 같다. 자, 그러면 이 귀신에, 몇 가지를 더해보자. 이 친구는 나의 첫사랑이었으며, 그동안 흘러버린 세월만큼 성장해 있는, 몹시 그립고도 생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예의 설정에서 나올 수 있을 법한 여러 장르 중에서도 드라마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어떤 장르들보다 매끄럽게, 묘한 감동과 즐거움을 일으키며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초등학교 시절, 철수가 영희를 좋아한대 아니래, 이런 이야기만으로도 하루가 떠들썩하고 흥겹게 지나던 때, 한없이 가볍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의 때, 여물지 못해 쉽게 상처가 생기기 쉬운 마음의 때, 바로 그때 일어난 사건으로 천진하게 즐겁기만 하던 이야기가 힘 있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단짝인 친구들 여섯이서, 함께라는 것만으로 하루하루가 즐겁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사고로 죽게 된다. 멘마. 죽은 소녀의 이름은 멘마이다. 함께 만든 비밀기지에 모여 서로의 풋사랑을 떠보는 미묘한 상황에서, 멘마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게 된다. 허허벌판에서 소나기를 만나듯 불시에 찾아온 그 사건은, 남겨진 친구들의 내면 군데군데를 성장이 멈춰버린 아이로, 그 시간 속에 얼어붙게 만든다.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감싸내지 못하고 각자의 기억과 감정 속에 묶이고 만다. 미뤄두거나 감춰두고 있던 것들, 가볍고 유치한 마음들마저 단단한 죄책감들로 변해, 벽돌처럼 쌓여 서로를 바라볼 수 없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흐르지 못하는 시간들이 쌓여가며 이들 사이의 간극은 더 넓어져만 간다. 더해 가는 나이에 맞춰 흉터도 자라가던 어느 날, 단짝 친구들 중 리더였던 남자 주인공, 진땅 앞에 느닷없이 멘마가 등장한다. 다른 사람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진땅 만큼은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있는 멘마가 나타난 것이다. 해맑은 유령과 혼란스럽기만 한 진땅은, 우여곡절 끝에 단짝이던 친구들 모두에게 멘마가 진짜로 나타났다는 것을 이해시킨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되어 고민에 빠지게 된다. 왜? 왜 멘마는 성불하지 못하고 다시 나타난 것일까? 이 귀여운 유령 소녀는 살아있을 때 맹하던 그 모습을 배반하지 않고, 다시 나타나서도 이렇게 말한다. “왜 돌아오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헤헷.” 이라고 말이다. 친구들은 멘마가 잘 성불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방법을 찾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리고 이 와중에 서로 엉켜있던 감정의 끈들, 미묘하게 꼬인 추억들이 하나씩 풀려나간다. 각자의 얼어붙은 시간들이 다시 함께 모여 흐르기 시작한다. 사실 이 애니메이션은 총 11부작, 15세 이상 관람가인 TV 시리즈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TV 판에 나오는 내용들을 군데군데 짜깁기하고 인물들의 회상을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구성이 좋아서 사전 정보 없이 극장판만을 보아도 기분 좋게 이야기 안으로 따라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이런 류의 애니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TV 판부터 보는 것을 권장한다. 시리즈에서 주는 감성이 훨씬 더 깊고, 이후 극장 판을 보면 배가 된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본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과연, 몇 년이 지나도 성불하지 못하고 다시 나타난 멘마의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자신에게 일어난 사고와 죽음을 이유로, 잘라내는 것 외에 방법을 찾기 힘들 정도로 꼬여버린 친구들의 관계가 멘마의 혼령 또한 묶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그것들을 풀어나가다 보면 성불을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멘마가 리더인 진땅 앞으로 다시 나타난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단지 엉킴만을 풀어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모쪼록 그 이유는, 직접 애니메이션 안에서 찾아보면 좋겠다. 달달 하고 저린 마음을 문질러 가며 말이다.
한국영화계에서 영화작가를 논할 때, 편애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작가영화를 거론하되 리얼리즘 색채가 강한 작가를 우위에 두는 것으로 멜로드라마 작품보다 사회성드라마를 연출하는 감독을 영화작가로 대접하겠다는 한국영화비평계의 편향성이다. 정진우 는 ''사랑의 부재''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랑의 작가''로 < 초우 >(1966년) 이후 멜로애정물에 애착을 갖고 있는 영화작가이다. 정진우가 말하는 사랑의 부재는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에서부터 일제와 민족분단 그리고 군부독재 권력에 의해 무너진 인간적 존재에 대한 물음까지 광범위하다. 어쨋든 사랑타령하는 영화를 주로 만들어 왔던 그의 영화에 대한 영화작가로서의 홀대는 영화비평계의 편견에 있다. 그러나 정진우 의 영화작가정신은 작품세계는 물론 한국영화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을 고취하는 그의 노력에서 더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영화수준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한국 영화작가로서 정진우의 작품평가가 인색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정진우의 한국영화의 세계화를 부르짖는 실천력은 치열하였고 그 성과도 무시할 수 없었다. < 섬개구리 만세 >가 1972년 제 23회 베를린영화제에 참가할 때, 인도 레이의 <천둥소리>가 수상하고 <섬개구리>는 후시녹음때문에 대사와 입이 안 맞는 영화라고 현지의 매스콤에서 망신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때 정진우는 인도영화보다 기술적으로 뒤진 한국영화의 현실을 개탄하고 동시녹음만이 한국영화 세계화의 첫걸음임을 확신하였다. 결국 그는 < 율곡과 신사임당 >(1978년)에서 동시녹음을 시도하여 후시녹음을 전적으로 하였던 한국영화 제작풍토를 쇄신하는 데에 공헌하였다. 이후 기술의 세계화에서 내용의 세계화를 모색하던 그는 < 심봤다 >(1979년) 등 일련의 향토물로 한국영화 세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정진우 의 한국영화의 세계화는 작품에만 승부를 걸지않았다. UIP파동 이후 미국메이저회사에 대항하여 한국영화 공급과 배급체계의 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시네마 콤플렉스 <시네하우스>를 건립하였고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멀티콤플렉스 극장은 한국영화 세계화의 경쟁력을 고취하는 데에 일조하였다. 정진우는 한국 사실주의 영화의 맥을 이어 온 최인규 의 문하생 정창화 감독 밑에서 연출수업을 하여 1963년 < 외아들 >로 감독 데뷔하였다. 이후 1969년 우진필름을 창립하기 전까지 무려 27편의 작품을 연출하였고 1970년부터 그가 운영하는 우진필름에서 직접 제작하거나 연출한 작품까지 계산하면 99편에 이르렀다. 여기에 타영화사에서 의뢰받아서 연출한 30작품을 합하면 무려 129편의 한국영화를 혼자서 만들고 제작하였다. 척박한 한국영화계에 뛰어들어 나름대로 한국영화를 위해 열심히 살아 온 정진우 는 1938년 1월 17일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 양곡리 골말에서 부친 정원모 鄭元謨와 모친 황을순 黃乙順의 4남 5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김포와 강화에서 36년간을 교육에 종사해 온 그 일대에선 존경받는 교장선생님으로 통했다. 정진우는 고향에서 양곡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김포중학교와 농사에 대한 야심으로 김포농고에 진학하여 축산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참가하게 된 학생연극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낙농의 꿈과 먼 다른 길을 열망하게 된 것이다. 그가 중앙대학 법대를 진학한 것은 연극영화학과가 없었던 당시 연극부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였던 중앙대에 입학한 것이다. 그는 연극부 써클에서 활동하며 연극부 회원인 최무룡 선배의 소개로 영화계에 단역배우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본격적인 영화계 입문은 1958년 박상호 의 < 장미는 슬프다 >에서 강범구 촬영기사의 조수로서 였다. 그는 촬영경험을 거치지 않고는 열악한 한국영화계의 제작여건을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후 정진우 는 한국 액션영화의 거장인 정창화 의 조감독으로 활동하다가 25세에 < 외아들 >을 연출해서 한국 최연소 감독이 되었다. ''신필름''의 신상옥 감독 이후 한국영화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겨냥해 다양한 장르를 연출하고 제작해 온 감독으로서도 기억되어야 한다. 정진우 의 한국영화에 대한 신념과 그 실천에 대한 한국영화인들의 공감은 1985년 그를 ''한국영화인협회'' 원장으로 추대하였다. 이 자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실감한 정진우는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영화의 주체인 영화인의 복지향상을 증진하여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으며 지금도 ''한국영화인 복지재단''의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관주도로 거행되었던 ''대종상영화제''를 영화인협회 주관하에 영화인 손으로 영화제를 치를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이러한 정진우 의 작품활동을 시기별로 분류하면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1963년 < 외아들 >로 데뷔한 이후 1969년 ''우진필름''을 설립하여 제작자로서 활동하기 전까지의 시기이다. 정진우 는 영화작가로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이 시기에 자기 중심적인 인간드라마의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영화 < 외아들 >은 정진우 의 자서전적인 영화임을 짐작케 한다. 정진우의 성장배경에서 들어나듯이 부친이 돌아가신 이후 정진우의 청소년 시절은 농촌에서 어머니와 농사지으면서 많은 고생을 겪었고 집을 떠나 온 이후 <외아들>로 감독 데뷰하기까지 숱한 사람을 만나면서 그가 경험한 인생공부는 인간의 이중적 심성인 선악의 갈등을 체험케 하였다, 그의 휴머니즘은 바로 인간의 양면성을 극복한 참 인간상의 표현으로 표출되었다. <외아들>의 주인공은 정진우의 이념으로 그려지고, 그의 이념으로 채워진 작품세계는 정진우의 현실적 삶에서 원동력을 얻어 그 중심에 자리잡은 정진우의 작가정신인 주제의식으로 강조되었다. 정진우 를 한국영화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첫 작품으로서 < 초우 >는 그의 초기영화 특징을 잘 보여주었다. 소재와 영화적 기법 그리고 주인공들의 연기가 눈에 띄게 신선하여 그 당시 비교적 잘 만들어진 작품으로 알려졌다. <초우>는 현실성이 부족한 인물묘사로 단점이 들어나기도 하였지만 영상기교의 놀라운 일면과 일상적인 규격 속에서 탈피해 보려는 두 주인공의 내면을 포착하였다. 청춘영화 <초우>는 흑백 영상의 밀도를 높힌 작가의 의욕으로 정진우 스타일을 구축하여 그의 영화작가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둘째, <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1970년)과 <동춘>(1970년)을 계기로 중견 감독으로 부상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정진우 는 역사의식으로 민족의식을 추구하는 한편 멜로드라마의 깊이를 모색하였다. 역사의식에 눈을 뜬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은 일제에 대한 반제국주의 의식을 피력하였고 < 국경의 밤 >(1970년)은 분단된 민족의 비극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그렸다. < 동백꽃 피고지고 >(1970년)는 일제에서 6.25를 거친 근현대사를 통한 한민족의 한맺힌 마움을 평범한 가족 이야기를 통해 풀어 갔다. 정진우 는 척박한 한국 근현대사의 극복을 위해 일제침략과 동족상잔의 6.25동란으로 겪어야 했던 민족의 비극사를 그의 역사의식으로 조망하였다. 셋째, < 심봤다 > 등 향토물로 동시녹음과 영화기술의 세계화에 매진하여 < 무궁화꽃이 피었읍니다 >로 개화하던 한국영화의 세계화를 모색하던 시기이다. 멜로애정물이나 민족의 비극사를 떠나 더 원류적인 우리의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한 정진우 는 한국영화의 세계화로 우리의 정체성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1980년)는 정진우의 연출 기량이 가장 두드러진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데, 그 시작은 원시종교 무속을 내세운 < 석화촌 >(1972년)에서 시작하여 < 심봤다 >(1979년)부터 정진우의 향토물로 자리잡았다. 이 작품은 한국영화의 전통성과 정체성을 포착하기 위해 토속적인 경향을 띤 영화로 스케일보다는 깊이있는 내면을 탐색하려는 노력이 드러난 정진우의 다섯 번째 동시녹음 필름이다. 정진우의 향토물은 주인공들의 삶의 공간이 다를 뿐 부당한 힘의 횡포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가정신은 일맥상통하게 향토물의 모든 작품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이제 정진우 는 진화된 주제의식과 영화기술력으로 우리의 주체성을 주장하고 정체성을 정립하여 한국영화의 세계화를 향한 주제의식을 탐구하고 있다. 김진명 원작 < 무궁화꽃이 피었읍니다 >(1994년)는 그 첫 시도로서 내용상으로는 ''침략자는 예고가 없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모토아래 강국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대내외의 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자는 의지를 과시한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기술상으로는 시각적인 특수효과와 동시녹음으로 한국영화의 세계화에 매진하였으나 한국영화계의 현실은 정진우의 이상을 실천하기엔 그의 끈질긴 실천력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정진우 의 영화작가 정신은 우리사회의 사랑의 부재를 극복한 사랑의 쟁취를 통해서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인간군상들을 묘사하였다. 하지만 영화적 현실로 표현된 정진우의 영상은 그의 영화작가적 의지를 충분히 담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영화의 세계화라는 정진우의 집념을 그의 작품세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김수남 (영화평론가) / 2002년 <프로필> 1938년 1월 17일 경기도 김포 출생 1960년 중앙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1962년 외아들 로 감독 데뷔 1967년 감독협회 창립 (부회장) 1969년 (주)우진필름 설립(대표이사) 1973년 영화진흥공사 창립 초대 제작 상임이사 문교부 교육의 날-< 섬개구리 만세 > 국민 훈장 수여 1981년 한국영화제작협동조합 수석 부회장 한국영화 자율정화 위원장 1985년 복합극장 '씨네하우스' 설립 한국영화 복지재단 설립(원장) 1987년 사단법인 한국영화인협회 원장 / 한국예술총연합회 이사 1994년 프랑스 문화훈장 기사장 수상 1999~ 현 한국영화인 복지재단 원장 ㅇ 정진우 감독 작품 1962 외아들 1964 배신 , 국경 아닌 국경선 , 목마른 나무들 1965 밀회 , 난의 비가 , 가을에 온 여인 , 무정의 40계단 1966 초연 , 8240KLO , 초우 , 하숙생 , 악인시대 1967 밀월 , 하얀까마귀 , 4월이 가면 , 춘희 , 폭로 , 정부마농 , 구름 , 별아 내가슴에 1968 파란 이별의 글씨 , 미로 , 여여여 1969 국경의 밤 , 황진이의 첫사랑 , 청춘 , 차라리 남이라면 , 항구무정 , 동백꽃 피고지고 , 돌아오지 않는 밤 1970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 동춘 1971 풋사랑 1973 황소타고 시집왔네 1975 애종 , 초연 1978 율곡과 신사임당 1979 심봤다 , 가시를 삼킨 장미 1980 바다로 간 목마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1981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1982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1984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 자녀목 1991 사랑과 죽음의 메아리1 , 사랑과 죽음의 메아리 2부 1994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ㅇ 수상 경력 초우 -서울대학생 최악 영화상 동춘 -제7회 한국일보 연극영화상 작품상/부일영화상 작품상, 감독상 석화촌 -제9회 청룡상 최우수작품상/부일영화상 작품상, 감독상 섬개구리 만세 -제10회 청룡상 감독상/베를린 영화제 최초 본선 경쟁부문 진출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제10회 대종상 계몽 및 우수작품상/아시아영화제 최우수 청년감독상 율곡과 신사임당 -제17회 대종상 특별상(한국영화 최초 동시녹음 작품) 심봤다 -제18회 대종상 감독상/ 한국영화 기자상 작품상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제19회 대종상 우수작품상 자녀목 -제23회 대종상 작품상, 감독상/ 동경국제영화제 '세계영화 베스트30'선정 베니스영화제 본선 진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춘사영화예술상 심사위원 특별상
'겨울 공화국'으로 불리던 유신정권 아래의 한국영화는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올 줄을 몰랐다. 그렇게 어둡고도 막막한 1967년 초반의 극장가에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거의 무명에 가까운 문여송 감독이 만든 하이틴 영화 < 진짜 진짜 잊지마 > 가 흥행의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광고도 별로 하지 않지 않았거니와 제작자 쪽에서도 '' 버린 자식 '' 쯤으로 취급한 작품이었는데도 개봉 첫날부터 중, 고등학생 관객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이때부터 춤무로 하이틴 영화는 봇물이 터진 듯 제작되기 시작했다. 1976년에 만들어진 한국영화는 모두 100편이었는데, < 진짜진짜 잊지마 > 는 흥행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다. 문여송 감독은 같은 해에 발표한 또다른 하이틴 영화 < 정말 꿈이 있다고 > 까지 흥행 8위에 올려놓았다. 1932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동경대학 예술학부를 마친 문여송은 1966년 고은아 와 남궁원 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판박이 반공영화 < 간첩작전 > 으로 감독에 데뷔했다. 그는 3년 뒤 풍자적 시선으로 시대상을 응시한 < 부인행차 > 를 내놓았으나, 평단과 관객 어느 쪽에서도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 진짜 진짜 잊지마 > 는 오랫동안 실의에 젖었던 '' 중고 신인 '' 문여송 감독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자율성과는 거리가 먼 영화계 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온통 가짜가 판을 치는 세태 탓인지 < 진짜 진짜 미안해 > ( 1976 ), < 진짜 진짜 좋아해 > ( 1977 ) 로 이어지는 문여송의 '' 진짜 시리즈 '' 는 전국의 수많은 청소년들을 사로잡았다. 문여송이 발굴한 여고생 임예진 은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고, 특유의 과장된 액션을 선보인 이덕화는 성격 배우로서 몸값을 높였다. 고등학교 교실 안팎을 무대로 잡은 문여송 의 영화는 판에 박힌 몇 가지 공식이 있다. 새침데기 여학생과 반항적인 남학생이 티격태격하면서 풋사랑을 키워가면 그들을 에워싼 부모와 교사들의 걱정거리가 끼여든다. 여학생은 백마 탄 기사 같은 남자를 기다리거나 불치병에 걸리고, 남학생은 경찰서를 들락날락할 정도로 말썽을 피우지만 밉지는 않다. 문여송은 '' 여고생 시리즈 '' 의 김응천 감독, '' 얄개 시리즈 '' 의 석래명 감독과 트리오를 형성하여 < 우리들의 고교시대 > ( 1978 ) 라는 옴니버스 영화도 만들었다. 하이틴 영화가 양산된 까닭은 제작비가 적게 드는 데다 당국의 서슬퍼런 검열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당시 평론가로서 필봉을 날리던 하길종 감독은 하이틴 영화들을 비판대에 세웠다. ' 문여송 의 < 정말 꿈이 있다구 > 와 김응천 의 < 푸른 교실 > 이 그럭저럭 볼 만했고, 나머지 작품들은 한결같이 얄팍한 감상주의로 포장된 상식 이하의 활동사진이다. 이들 하이틴 영화의 일시적인 붐은 불황에서 헤어나려는 우리 영화인들의 열띤 노력의 하나였지만, 질적 수준을 높이지 못한 채 장사꾼들의 목적물로 타락함으로써 그 본래의 참뜻도 평가받기가 어렵게 되었다. ' 6편의 하이틴 영화를 2년에 걸쳐 쏟아낸 문여송 감독이 변신을 꾀한다. 이정호의 중편 소설 < 길 > 을 각색한 < 아스팔트 위의 여자 > ( 1978 ) 로 성인층 겨냥에 나선 것이다. 이 영화의 캐릭터와 상황 설정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대표작 < 길 > 을 닮았다. 가수의 꿈을 가진 소녀 남순 ( 김영란 ) 은 젤소미나처럼 좀 모자라면서 순진하다. 카메라는 떠돌이 약장수 ( 백일섭 ) 를 무작정 따라 나서는 그녀가 도시 또는 문명을 상징하는 아스팔트에 오르기까지 향수를 자아낼 만큼 아련한 한국의 늦가을 풍광을 선사한다. 남순은 약장수에게 순결을 빼앗기고 방황하다 닥터 신 ( 신성일 ) 의 가정으로 들어간다. 남순이 서서히 악녀로 변하는 과정에서 문여송 의 연출은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미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얼핏 김기영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여인의 이상 심리와 남자의 강박증이 맞물리는 시퀀스가 경쾌하고 더러는 섬뜩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약장수가 느닷없이 등장하는 후반부터 드라마는 작위성을 드러내면서 삐그덕거린다. 재미와 의미를 모두 확보하겠다는 욕심 때문에 너무 자주 어수선해지는 게 흠이지만, 정신 장애를 일으킨 남순이 햇빛 쏟아지는 아스팔트 위를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감독의 세태에 대한 발언으로 읽힌다. 문여송 감독은 이른바 '' 문예영화 '' 쪽으로도 눈을 돌려 김유정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 산골 나그네 > ( 1978 ) 를 연출한다. 두메산골을 배경으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떠꺼머리 총각 ( 백일섭 )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낙네와 ( 김보미 ) 와의 결혼에는 성공하지만 결국 낭패를 당하다는 내용인데, 산골 풍경은 빼어나게 보여준 반면 나그네의 비밀스런 심상 풍경은 제대로 잡아내지는 못했다. 김유정 문학이 지닌 해학의 깊이와 토속어의 짜릿한 맛을 살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 영화다. 사실, 1년에 4편의 영화를 잇달아 연출한다는 것은 감독의 피로감과 졸속 제작의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 독신녀 > ( 1979 ) 는 전병순 의 동명 소설에서 한 대목만을 차용했다. 여자가 아이를 낳겠다는 남자에게서 완전한 씨를 찾아다니는 부분을 끌어들였는데, 독신녀 ( 김영란 ) 의 지독스런 추적이 관객에게 황당하면서도 엉뚱한 재미를 맛보게 했다. 문여송 의 원작 소설에 대한 집착은 아내인 김이연 의 단편 소설 < 환녀 > 를 각색한 < 세번 웃는 여자 > ( 1980 ) 로 이어진다. 말괄량이 처녀와 성불구자인 건축회사 사장과 젊은 화가를 주요 인물로 설정한 이 작품은 원작의 제목대로 꿈 속에서 본 것 같은 여인과 현실에서 만난 여인의 괴리감에 연출의 초점을 맞춰나간다. 기승전결이라는 드라마의 틀을 깨면서 새로운 스타일을 구사하려는 문여송의 노력은 평가할 만하지만, 작품 전체에서 치정극과 실험극이 뒤엉킨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신인 여배우를 찾아내는 문여송 감독의 능력은 탁월하다. 임예진 과 김영란 을 스크린의 샛별로 키워낸 문여송은 이번엔 최선아 라는 신인을 발굴하여 1983년 < 사랑 만들기 > 와 < 짧은 포옹 긴 이별 > 에 계속 주연으로 기용하면서 가능성을 타진한다. 두 작품은 '' 진짜 시리즈 '' 의 업그레이드라고 불러도 좋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문여송의 이전 하이틴 영화처럼 단순한 사랑 놀이에 그치지 않고 일그러진 현실의 이면을 과제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은 작품들이다. 문여송 작품답게 시퀀스마다 풋풋함과 잔재미로 가득하지만, 작위성과 상투성이라는 고질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재간둥이 대학생 이규형 이 시나리오를 맡은 < 사랑 만들기 > 는 미술대 여학생과 작가를 지망하는 국문과 남학생의 발랄한 사랑 만들기를 보여준다. 전반부는 럭비 경기, 강의실, 술집 등 대학생활의 밝고 건강한 면을 스케치했고, 후반부는 동거생활에 들어간 두 주인공의 불안과 좌절을 파고든다. 수재로 알려진 어느 대학생의 투신 자살 사건을 전, 후반을 연결하는 고리로 사용하는 재치가 돋보인다. 일기장을 읽어주듯 내레이션으로 풀어가는 < 짧은 포옹 긴 이별 > 엔 불치병에 시달리면서도 삶의 의욕을 잃지 않는 소녀와 그를 사랑하는 친구,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다. 두 작품 모두 아서 힐러의 < 러브 스토리 > 를 곁눈질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도 있겠으나, 확실한 것은 문여송 의 연출 감각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다룰 때 더욱 싱싱해진다는 점이다. < 비황 > ( 1992 ) 은 자잘한 사랑의 이야기로 채워진 문여송 의 필모그래피에서 본다면 조금은 의외라는 느낌을 주는 영화다. 도자기 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우리 선조들의 사랑과 한이라도 주제도 이채롭거니와 일본과의 합작이 불가능해지자 문여송 감독이 직접 제작에 나섰다는 점도 거론할 만하다. 누구보다 일본을 많이 이해하고 파악한다는 문여송은 일본 기업체와의 합작이 무산된 점에 대해 '' 모든 게 근시안적인 정책 때문 '' 이라며 당국에 직격탄을 날렸다. 서기원의 < 사금파리의 무덤 > 을 문상훈이 매만진 이 작품의 무대는 1920년 경기도 광주의 도자기 마을이다. 영화는 도공의 아들 창길 ( 이동준 ) 과 환장이의 딸 분례 ( 박현숙 ) 의 사랑으로 드라마의 큰 줄기를 만든 뒤 철사호문호라는 백자에 얽힌 조선인과 일본인의 갈등을 덧붙인다. 이런 주제일수록 고증이며 세팅이 철저해야할 터인데, 제작비가 모자란 탓인지 도자기를 비롯한 소도구의 허술함이 눈에 거슬린다.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여자 주인공이 겪은 파란만장한 사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문제까지 담아보려는 의욕은 대단하지만, 큰 것을 너무 많이 얘기하려다 작은 것조차 놓치고 만 영화라는 인상을 남긴다. 군데군데 짜깁기한 아픔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는 어렵다. 휴식에 접어든지 10년이 지나 어느덧 고희에 들어선 문여송 감독이 인간의 깊고 그윽한 향기가 스며나오는 작품으로 영화인생을 아름답게 마감하기를 기대한다. 박평식 (영화평론가) / 2002년 <프로필> 1932년 6월 8일 제주도 한림 출생 1935 일본 이주 동경대학교 예술학부 졸업 1963 귀국 1966 < 간첩작전 > 데뷔 작품명 1966 간첩작전 1968 부인행차 1976 진짜진짜 잊지마 / 정말 꿈이 있다구 / 진짜진짜 미안해 1977 처녀의 성 1978 우리들의 고교시대 / 아스팔트위의 여자 / 당신만을 사랑해 / 산골나그네 1979 로맨스 그레이 / 독신녀 1980 그때 그사람 / 미워할 수 없는 너 / 세번 웃는 여자 1983 당신은 나쁜 사람 / 연인들 / 짧은 포옹 긴 이별 1984 여자의 성 / 입을 연 석류 1985 도오꼬 안녕 1986 그대 원하면 1988 잡초들의 봄 1991 비황 등 30여 편 수상 경력 1977 < 처녀의 성 >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특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