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덩
- 감독
- 놈디안
- 제작년도
- 2014
- 출연
- 이수민, 김재현, 오세일, 이형동, 임유빈, 김민체
< 아파트 생태계 >는 작년에 고인이 되신 손정목 선생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라는 5권짜리 책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손정목 선생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는 무척 쉽게 읽히면서도 애잔한 감정을 전해주는 책이다. 선생의 거리낌 없는 주변에 대한 디스와 도시 덕후로서의 면모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특히 본인이 서울시의 도시계획국장으로 일했던 1970년대에 대한 서술은 손에 잡힐 듯 눈에 보일 듯 생생했다. 2014년 봄에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다섯 번의 인터뷰 촬영을 진행했고 일상의 모습도 촬영해 두었다. 당시 선생은 자신의 도시계획에 대한 모든 자료를 서울시립대학교에 기증하고 그 기증자료실에 매일 출근해서 새로운 책을 집필 중이셨다. 이때만 해도 이 인터뷰가 어떻게 영화에 쓰일지는 알 수가 없었다. 손정목 선생은 인터뷰 당시 혼자 거주하던 전농동 래미안아파트 내부까지 촬영을 허락하셨고 솔직담백한 말로 자신이 속한 한 세대의 종언을 예고하셨다. 나는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구상을 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손정목 선생에게 작품의 완성 시기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했다. 손정목 선생은 자신도 쓰다가 나중에 완성하려고 쌓아둔 원고 뭉치들이 많다고 했다. 그 비슷한 거냐고 했다. 나는 딱 알맞은 비유라고 답했다. 2015년에 건축가 조성룡 선생에게 연락이 왔다. 올해의 건축가로 선정된 건축가에게 제공하는 작은 전시 기회가 있다고 했다. 그 전시에 본인이 설계한 아시아선수촌아파트에 관한 영상물을 상영하고 싶다고 하셨다. 1986년에 완공된 아시아선수촌아파트는 건축가에게 아파트 설계를 맡긴 파격적인 프로젝트였다. 나는 아파트 단지 곳곳을 둘러보았다. 정말 좋은 아파트였다. 그리고 무지하게 비싼 아파트였다. 다양한 나무들과 다채로운 길들이 공원으로 이어진다. 아파트 단지 안을 거닐면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다. 인간과 인간의 적절한 거리 감각을 아파트에서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최근에 만들어지는 고급 아파트들과 달리 공간들은 열려있으면서도 개인의 사적인 영역은 존중되었다. 진짜 고급아파트라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일주일 정도 촬영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목적으로 촬영된 푸티지들로 올해 봄부터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구성해보기 시작했다. 서울 아파트 역사를 개인들의 삶과 기억을 통해 전개시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큐멘터리 만드는 방식이나 서사에 좀 변화를 추구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장기간 지속되는 다큐 촬영에 지쳤던지라 제작의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고 스토리텔링의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구성해 보고자 했다. 먼저 아파트 전문학자들의 자문과 자료조사를 통해 촬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파트들을 리스트업 했다. 배우를 캐스팅하는 심정으로 아파트 헌팅을 다녔다. 그렇게 세운상가아파트, 여의도시범아파트, 남산제2회현아파트, 서소문아파트, 반포주공아파트, 상계동아파트단지, 목동아파트단지 등을 영화에 담았다. 시민아파트로 시작된 아파트가 어떻게 중산층을 위한 단지형 아파트로 변화했는지를 돌아 보았다. 그리고 주거의 의미에 대해서도 표현해보려 시도했다. 아파트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과, 경제 가치를 위해 그저 아파트를 사고팔고 재건축하기에 급급한 삐뚤어진 사랑 사이에서, 우리가 잊은 것은 없는지 질문해 보고 싶었다. 아파트에도 우리의 역사, 우리의 기억이 있다. 도시의 역사와 함께 형성된 다양한 생태계가 있다. 무책임한 주거정책과 건설자본의 비윤리성에 대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사는 아파트와 도시가 애정과 관심의 대상임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주거 공간에 대한 투쟁을 기록하는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만들어진 김동원 감독의 < 상계동 올림픽 >에서처럼 하루아침에 재개발로 삶의 공간에서 내몰리던 사람들을 기록하며 시작된 것이 한국 다큐멘터리였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이 무단 점유해 삶의 공간으로 변화시켰던 구도심의 산동네와 개천변을 공유지라는 이유로 철거하던 시대를 경유해 이제 그 공간들은 아파트로 빽빽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파트들이 이제는 재건축이라는 새로운 화두에 직면해 있다. 쫓겨나면 갈 데가 없었기에 절박했던 폭력적인 재개발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그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진 공간들이, 이제 재건축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공간 파괴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아파트에 살던 세입자들은 재건축이 결정되면 그냥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다. 이주비를 받아서 떠나는 세입자들에게 재건축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공적인 녹지공간을 줄이고 최대한의 사적 공간 확보와 고층화를 원하는 것이 이전처럼 정부나 서울시가 아니라 아파트 소유자들이 주축이 된 재조합이라는 것이다. 현재 강남3구의 아파트 재조합들과 서울시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나는 과거 국가권력의 폭력적인 철거를 탓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편에 속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내부 안에 아우성치는 아파트 재건축을 통한 불로소득에 대한 통제 불능의 끝없는 욕망은 정말 알아갈수록 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공공성의 잣대로 비판할 수 있지만 내 이웃의 이기적인 탐욕과 욕망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답을 찾기가 힘들다. 재건축을 통해 불로소득의 맛을 본 노령세대의 부동산 사랑은 이제 우리 모두의 열망으로 자리 잡았다. 다들 자기가 사는 아파트의 자산가치가 재건축을 통해 한 번 더 뻥튀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서울은 다시 아파트 재건축의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 아파트 생태계 >를 촬영하며 그 욕망을 비교적 가깝게 볼 수가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를 보여줄 수 있다. 대기업의 불법성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 내부의 부동산 열정을 각성하게 하는 데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집과 거주가 본연의 의미를 찾게 될 수 있을까. < 아파트 생태계 >를 완성해 몇 개의 영화제를 통해 공개했다. < 말하는 건축가 >와 < 말하는 건축 시티:홀 >에 이어지는 건축 3부작의 세 번째 작품이다. 주변에서 언제 극장에서 개봉하는지,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묻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개봉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 다큐멘터리의 개봉이란 나에게 100번의 관객과의 대화를 의미하고, 친구와 지인들에게 각종 민폐성 부탁을 해야 하는 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배급이 결정되지 않은 영화의 창작 활동이 피해갈 수 없는 그! 예정된 가시밭 길을, 이번에는 왠지 피하고만 싶다.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장배급이 아니라면, 어떤 경로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가를 모색 중에 있다. 그 모색에 대한 간단한 생각을 피력하며, 이번 연재분을 마치고자 한다. 많은 개인들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그들은 의뢰를 받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풍덩 뛰어들어 일단 촬영을 시작한다. 만들고 나면 배급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촬영을 하고, 마침내 작품을 완성한다. 그러나 배급의 방법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최근 들어 공적 매체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다양한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의 질적, 양적 성장을 지켜보노라면 놀랍기만 하다. 혼자만의 기대일 수도 있겠지만, 곧 다큐멘터리가 한국영화를 이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방송 쪽에서 창작의 자유를 위해 넘어온 다큐멘터리스트,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려고 미술의 영역에서 다큐멘터리를 시도하고 있는 아티스트들, 데뷔작으로 다큐멘터리를 선택한 신인 감독들까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다른 목표로 다큐멘터리에 입문하고 있다. 그러나 배급에 있어서는 그저 극장용 예술영화 배급시장에서의 개봉만을 바라보고 있다. 독립적인 시선과 개인적인 접근을 허용하는 방송 다큐멘터리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다큐들이 방송 편성권에 들어갔을 때 언제나 완성도 문제를 지적받는다. 매끄러운 전개와 친절한 방송어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송되기가 힘들다. 다큐멘터리의 영화적, 개인적 표현을 인정하고 ‘KBS 독립영화관’ 같은 프로그램으로 독립다큐들을 정기적으로 방송해 주면 좋겠다. 다큐멘터리는 지식이나 정보의 입체적 전달이 가능한, 교양을 쌓는 데 무척 우월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정보나 보도 중심의 다큐가 아닌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시선에 포착된 이야기들로도 충분히 새로운 교양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공영 방송국이 시민 교양의 향상을 위해 제 기능을 다 하기를 바라본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대략 10부작 정도의 시리즈로 만들어 보고 싶다.(계속) #1. 아파트 생태계(Ecology in Concrete) -재개발에서 재건축으로 #2. 말하는 건축 시티:홀(Talking Architect City:Hall) -우리가 공간에 대한 결정에 직면했을 때 #3. 말하는 건축가(Talking Architect)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일
<아파트 생태계>는 작년에 고인이 되신 손정목 선생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라는 5권짜리 책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손정목 선생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는 무척 쉽게 읽히면서도 애잔한 감정을 전해주는 책이다. 선생의 거리낌 없는 주변에 대한 디스와 도시 덕후로서의 면모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특히 본인이 서울시의 도시계획국장으로 일했던 1970년대에 대한 서술은 손에 잡힐 듯 눈에 보일 듯 생생했다. 2014년 봄에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다섯 번의 인터뷰 촬영을 진행했고 일상의 모습도 촬영해 두었다. 당시 선생은 자신의 도시계획에 대한 모든 자료를 서울시립대학교에 기증하고 그 기증자료실에 매일 출근해서 새로운 책을 집필 중이셨다. 이때만 해도 이 인터뷰가 어떻게 영화에 쓰일지는 알 수가 없었다. 손정목 선생은 인터뷰 당시 혼자 거주하던 전농동 래미안아파트 내부까지 촬영을 허락하셨고 솔직담백한 말로 자신이 속한 한 세대의 종언을 예고하셨다. 나는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구상을 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손정목 선생에게 작품의 완성 시기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했다. 손정목 선생은 자신도 쓰다가 나중에 완성하려고 쌓아둔 원고 뭉치들이 많다고 했다. 그 비슷한 거냐고 했다. 나는 딱 알맞은 비유라고 답했다. 2015년에 건축가 조성룡 선생에게 연락이 왔다. 올해의 건축가로 선정된 건축가에게 제공하는 작은 전시 기회가 있다고 했다. 그 전시에 본인이 설계한 아시아선수촌아파트에 관한 영상물을 상영하고 싶다고 하셨다. 1986년에 완공된 아시아선수촌아파트는 건축가에게 아파트 설계를 맡긴 파격적인 프로젝트였다. 나는 아파트 단지 곳곳을 둘러보았다. 정말 좋은 아파트였다. 그리고 무지하게 비싼 아파트였다. 다양한 나무들과 다채로운 길들이 공원으로 이어진다. 아파트 단지 안을 거닐면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다. 인간과 인간의 적절한 거리 감각을 아파트에서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최근에 만들어지는 고급 아파트들과 달리 공간들은 열려있으면서도 개인의 사적인 영역은 존중되었다. 진짜 고급아파트라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일주일 정도 촬영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목적으로 촬영된 푸티지들로 올해 봄부터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구성해보기 시작했다. 서울 아파트 역사를 개인들의 삶과 기억을 통해 전개시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큐멘터리 만드는 방식이나 서사에 좀 변화를 추구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장기간 지속되는 다큐 촬영에 지쳤던지라 제작의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고 스토리텔링의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구성해 보고자 했다. 먼저 아파트 전문학자들의 자문과 자료조사를 통해 촬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파트들을 리스트업 했다. 배우를 캐스팅하는 심정으로 아파트 헌팅을 다녔다. 그렇게 세운상가아파트, 여의도시범아파트, 남산제2회현아파트, 서소문아파트, 반포주공아파트, 상계동아파트단지, 목동아파트단지 등을 영화에 담았다. 시민아파트로 시작된 아파트가 어떻게 중산층을 위한 단지형 아파트로 변화했는지를 돌아 보았다. 그리고 주거의 의미에 대해서도 표현해보려 시도했다. 아파트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과, 경제 가치를 위해 그저 아파트를 사고팔고 재건축하기에 급급한 삐뚤어진 사랑 사이에서, 우리가 잊은 것은 없는지 질문해 보고 싶었다. 아파트에도 우리의 역사, 우리의 기억이 있다. 도시의 역사와 함께 형성된 다양한 생태계가 있다. 무책임한 주거정책과 건설자본의 비윤리성에 대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사는 아파트와 도시가 애정과 관심의 대상임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주거 공간에 대한 투쟁을 기록하는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만들어진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에서처럼 하루아침에 재개발로 삶의 공간에서 내몰리던 사람들을 기록하며 시작된 것이 한국 다큐멘터리였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이 무단 점유해 삶의 공간으로 변화시켰던 구도심의 산동네와 개천변을 공유지라는 이유로 철거하던 시대를 경유해 이제 그 공간들은 아파트로 빽빽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파트들이 이제는 재건축이라는 새로운 화두에 직면해 있다. 쫓겨나면 갈 데가 없었기에 절박했던 폭력적인 재개발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그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진 공간들이, 이제 재건축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공간 파괴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아파트에 살던 세입자들은 재건축이 결정되면 그냥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다. 이주비를 받아서 떠나는 세입자들에게 재건축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공적인 녹지공간을 줄이고 최대한의 사적 공간 확보와 고층화를 원하는 것이 이전처럼 정부나 서울시가 아니라 아파트 소유자들이 주축이 된 재조합이라는 것이다. 현재 강남3구의 아파트 재조합들과 서울시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나는 과거 국가권력의 폭력적인 철거를 탓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편에 속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내부 안에 아우성치는 아파트 재건축을 통한 불로소득에 대한 통제 불능의 끝없는 욕망은 정말 알아갈수록 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공공성의 잣대로 비판할 수 있지만 내 이웃의 이기적인 탐욕과 욕망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답을 찾기가 힘들다. 재건축을 통해 불로소득의 맛을 본 노령세대의 부동산 사랑은 이제 우리 모두의 열망으로 자리 잡았다. 다들 자기가 사는 아파트의 자산가치가 재건축을 통해 한 번 더 뻥튀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서울은 다시 아파트 재건축의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아파트 생태계>를 촬영하며 그 욕망을 비교적 가깝게 볼 수가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를 보여줄 수 있다. 대기업의 불법성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 내부의 부동산 열정을 각성하게 하는 데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집과 거주가 본연의 의미를 찾게 될 수 있을까. <아파트 생태계>를 완성해 몇 개의 영화제를 통해 공개했다. <말하는 건축가>와 <말하는 건축 시티:홀>에 이어지는 건축 3부작의 세 번째 작품이다. 주변에서 언제 극장에서 개봉하는지,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묻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개봉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 다큐멘터리의 개봉이란 나에게 100번의 관객과의 대화를 의미하고, 친구와 지인들에게 각종 민폐성 부탁을 해야 하는 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배급이 결정되지 않은 영화의 창작 활동이 피해갈 수 없는 그! 예정된 가시밭 길을, 이번에는 왠지 피하고만 싶다.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장배급이 아니라면, 어떤 경로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가를 모색 중에 있다. 그 모색에 대한 간단한 생각을 피력하며, 이번 연재분을 마치고자 한다. 많은 개인들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그들은 의뢰를 받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풍덩 뛰어들어 일단 촬영을 시작한다. 만들고 나면 배급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촬영을 하고, 마침내 작품을 완성한다. 그러나 배급의 방법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최근 들어 공적 매체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다양한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의 질적, 양적 성장을 지켜보노라면 놀랍기만 하다. 혼자만의 기대일 수도 있겠지만, 곧 다큐멘터리가 한국영화를 이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방송 쪽에서 창작의 자유를 위해 넘어온 다큐멘터리스트,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려고 미술의 영역에서 다큐멘터리를 시도하고 있는 아티스트들, 데뷔작으로 다큐멘터리를 선택한 신인 감독들까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다른 목표로 다큐멘터리에 입문하고 있다. 그러나 배급에 있어서는 그저 극장용 예술영화 배급시장에서의 개봉만을 바라보고 있다. 독립적인 시선과 개인적인 접근을 허용하는 방송 다큐멘터리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다큐들이 방송 편성권에 들어갔을 때 언제나 완성도 문제를 지적받는다. 매끄러운 전개와 친절한 방송어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송되기가 힘들다. 다큐멘터리의 영화적, 개인적 표현을 인정하고 ‘KBS 독립영화관’ 같은 프로그램으로 독립다큐들을 정기적으로 방송해 주면 좋겠다. 다큐멘터리는 지식이나 정보의 입체적 전달이 가능한, 교양을 쌓는 데 무척 우월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정보나 보도 중심의 다큐가 아닌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시선에 포착된 이야기들로도 충분히 새로운 교양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공영 방송국이 시민 교양의 향상을 위해 제 기능을 다 하기를 바라본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대략 10부작 정도의 시리즈로 만들어 보고 싶다.(계속) #1. 아파트 생태계(Ecology in Concrete) -재개발에서 재건축으로 #2. 말하는 건축 시티:홀(Talking Architect City:Hall) -우리가 공간에 대한 결정에 직면했을 때 #3. 말하는 건축가(Talking Architect)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일
재작년인가, 어느 뜨거운 여름날에 이사 준비를 하던 친구가 있었다. 미대를 졸업하고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먹고 자고 하던 친구였는데, 어떤 이유 때문에 미술 작업을 그만두고 본가로 들어간다고 했다. 엄마 캥거루가 어쩌고, 주머니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다가 저쩌고, 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는데 나는 그 수수께끼 같은 표현이 무슨 말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지만 다 알아듣고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의 작업을 늘 좋아했기 때문에 지금 너의 결정이 슬프고,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 상황이 무척 속상하다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기 때문에 그 마음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이삿짐 차에 주로 실릴 물건들은 그동안 작업한 캔버스 그림들과 자질구레한 미술용품들뿐이었다. 그런데 딱 하나, 이걸 그냥 버릴지, 아니면 팔아서 짜장면이라도 사 먹을지 고민했던 물건이 하나 있었다고 했다. 그건 자취방에 흔히 볼 수 있는 50리터짜리 소형 냉장고였는데, 내가 알기론, 그 냉장고에겐 이름이 있었다. ‘폴 앤 니나 (Paul & Nina)’라고... 그러니까 그 친구의 애칭이 ‘폴’인데, (당시) 그의 여자 친구의 애칭은 ‘니나’였고, 그 두 사람이 작업실 겸 자취방으로 함께 쓸 원룸을 계약하던 날, 그 냉장고도 구입하여, ‘폴 앤 니나’라는 이름을 붙여서.. (한...숨) 암튼, 뻔하기 짝이 없지만 닭살 돋게 소중한 히스토리의 물건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재활용품센터나 중고물품 가게에 들고 가서 짜장면값이라도 받고 팔려고 했는데 막상 천 원짜리 몇 장 받아서 오자니 발길이 안 떨어지더라는 것이다. 하긴, ‘폴 앤 니나’라는 이름까지 붙어있는 냉장고니까... 그래서 그냥 들고 나왔는데 막상 뜨거운 한여름 낮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자니 그만 짜증이 확, 치솟아서 당시 걷고 있던 다리 밑 하천으로 냉장고를 ‘풍덩!’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그 광경이 지나가던 경찰의 시야에 고스란히 잡혔고 친구는 하천 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던 냉장고를 ‘직접’ 건져서 파출소로 끌려갔다. 지금부터 나는 이 친구가 그 후 파출소 테이블에 앉아서 경찰들의 눈총을 받으며 써내려간 반성문을 ‘약간만’ 옮겨보려고 한다, 파출소에서 나올 때 담당 경찰에게 복사를 부탁해 갖고 왔다고 했다. 힘들 때 가끔씩 읽어보고 싶었다나? (예술가들이란~~) 그가 나에게 보여준 이 글을 읽으면서 난 이 반성문을 트리트먼트 삼아 단편영화를 하나 만들어보라고 친구의 예술가적 허세를 부추겼다. “반성문. 안녕하세요. 저는 아침만 해도 이사를 가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쓸 만한 냉장고를 버려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재활용센터 사장님으로부터 그냥 버리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고서부턴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어서 좀 더 시원하게 버릴 수 있을 때까지 무작정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천 아래로 가라앉지 못하고 반쯤 둥둥 떠 있는 냉장고를 보면서 그제야 제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근래 집주인 아주머니께서도 그런 제가 못 미더워 몇 달째 했던 말을 반복하고 계시는데, 밀린 월세를 내라고 하며, 환경을 바꿔보는 게 좋을 거라고도 하고, 제가 너무 게으르다고도 했습니다. 냉장고만 잘 처리하고 나면 이사를 갈 것입니다. 50리터 냉장고... 완벽한 냉동실도, 완벽한 냉장실도 아닌 이 애매함은 그저 예전 여자친구가 남겨놓고 간 것입니다. 또 남은 것들 중에는, 제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선물했던 비싼 색연필과, 한 여자가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 한 점이 있는데... 그녀는 늘 사는 게 헤엄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저희는 이 동네 미대를 나왔습니다. 남들이 인정할만한 직업은 없고, 종종 벽화로 돈을 벌었습니다.... (하략)” 자, 여기까지가, 중고 냉장고를 무단투기하는 현장이 경찰에 적발되었지만 다행히 전후사정이 참작되어 반성문을 쓰는 것으로 훈방 조처된 ‘내 친구’의 이야기로 ‘포장’한 단편영화 <중고, 폴>의 소개 글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영화는 이 반성문을 보고 들으면서, 주인공 남자에게 어떤 일이 생겼던 것인지, 어떤 이유로 냉장고를 버리려고 했으나 결국 버리지 못하고 이사를 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자취방과 작업실을 공유하며 미술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 커플이 이 영화의 제작과 연출을 맡았는데, ‘애지중지 키우던 고추 모종을 몰래 훔쳐간 범인을 찾아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여자’가 주인공인 이야기 <고추가 사라졌다!>가 이들의 첫 영화였다는 걸 떠올려 보면, 이들은 진짜로 자신들에게 벌어졌거나/벌어졌던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거의 아름다울 정도로 단편스러운 러닝타임에 맞춰서 생각해내는 단단한 아티스트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 두 영화가, 비록 영화적인 센스는 위의 소개 글이 주는 기대치만큼 재치가 넘치거나 세련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이것이 실제로 그들에게 벌어졌던 진실한(authentic) 에피소드처럼 ‘보인다’는 것에 나는 즉각적인 호감을 느낀다. “진짜로 있었던 일 맞지?” 친분을 이용해 고집스레 물어봐도 이들은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다. ‘지난밤의 숙취로 어질어질하면서도 도둑맞은 고추 모종을 찾으러 다닌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이 여성감독의 귀여운 경험이고, ‘벽화를 그리며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하고 성실한 미술작가들’은 이들 커플에 대한 실제적인 묘사이지만, 높은 건물에서 벽화 작업을 하다가 크레인이 추락해 사망한, 가난한 미대생의 안타까운 죽음은 어쩌면 순수한 픽션이라서 할 말이 없었거나, 그 세계 속에 살아보았던 사람들끼리만이 짐작하고 숨길 수 있는 비밀이자 상처라서 꼭꼭 숨겨야 했기에 차마 말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영화에서 내가 좀 더 보고 싶었지만 나오지 않았던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가난하고 어두우며 무서운 세계에 대한 이들만의 코멘트였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도 연출자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러더라. 못한 말이 있으면 다음 작업에서 하겠다고. 그래서 나는 이들 커플이 내놓을 세 번째 영화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요즘 이들은 장편 그래픽 노블 작업에 열심이라고 한다. 암튼, 최근 애니메이션 작업이 추가되어 완성된 < 중고, 폴 >이 첫 번째 영화 보다는 좀 더 많은 상영기회를 얻게 되어 이들 커플에게 기분 좋은 차기 작업의 동기가 되었으면 바라는 마음에서 추천사를 참 길게도 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