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홀린 피에로
- 감독
- 브루스 라브루스
- 제작년도
- 2013
“물속에서 눈을 뜨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보여요” 사랑에 관한 가장 시적인 찬가 < 라탈랑트 >(장 비고, 1934)에서 이제 막 결혼식을 치른 젊은 아내는 남편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의 이야기를 그저 조롱하며 비웃는다. 영화 <루스, 장 비고에 관하여>는 <라탈랑트>의 바로 이 장면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수를 하는 남편에게 물속에서 눈을 떠보라고 말하는 아내, 그런 아내를 놀리는 남편의 장면이 이어질 때 화면 안으로 또 다른 남자가 성큼성큼 들어온다. <라탈랑트>를 연출하던 29살의 청년 장 비고였다. 장 비고의 유일한 딸이었던 루스 비고는 < 라탈랑트 >의 현장 촬영분을 바라보며 여전히 젊은 청년으로 머물러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애잔한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 비고의 여러 영화적 장면들에 대해 그녀는 애절한 한 마디를 내뱉는다. “아, 카메라가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현장에 있는 우리 아버지가 보일 텐데” 장 비고 감독 프랑스의 여성 감독 레일라 페로 레비의 다큐멘터리 < 루스, 장 비고에 관하여 >는 우리에게 시적 리얼리즘으로 대변되는 장 비고와 그의 딸 루스 비고에 관한 영화이다. 1905년에 태어난 장 비고는 1934년, 고작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총 4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초현실주의와 아방가르드, 기존 예술가들이 영화라는 매체의 매혹과 실험으로 다양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던 그 시기, 장 비고는 보리스 카우프만이라는 예술적 동지(지가 베르토프의 동생. 장 비고 영화 전체를 촬영했으며, 이후에는 할리우드에서 오토 프레밍거 등과 작업했다. 시드니 루멧의 < 12명의 성난 사람들 >, 엘리아 카잔의 < 워터 프론트 >의 촬영 감독이다)를 만나 영화를 시작했다. 그의 영화들에는 국가와 체제에 대한 무정부주의적 저항, 세상을 시적인 서정과 추상으로 사유할 수 있었던 예술가의 영감, 그리고 이십 대 청년의 맹목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매혹이 담겨 있었다. 니스라는 휴양도시에 관한 계급적이고 실험주의적 몽타주라 할 수 있는 < 니스에 관하여 >, 물에 대한 장 비고 특유의 매혹을 잘 드러내는 <수영왕 타리스>, 린제이 앤더슨과 고다르, 트뤼포의 오마주를 이끌어냈던 학생 반란에 관한 영화 < 품행 제로 >, 그리고 초현실주의와 계급적 현실을 넘나드는 사랑에 관한 찬가 < 라탈랑트 >까지. 장 비고의 영화적 필모그라피는 길지는 않았지만 강렬했다. '루스, 아빠, 엄마' < 루스, 장 비고에 관하여 >는 바로 그 영화사의 전설이 된 장 비고를 아버지로 둔 루스 비고의 기억과 고백에 관한 영화이며 내밀한 가족사에 대한 진술이다. 루스 비고는 아버지를 세 살 때 잃었다. 그리고 얼마 후 병약했던 엄마 역시 사망한다(장 비고와 그의 아내는 결핵에 시달렸고, 이들은 각자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머물렀던 요양원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어 외조부의 손에 맡겨지지만 그 역시 금방 사망한다. 루스 비고는 어린 나이에 기숙학교 등을 떠돌며 성장해야 했다. 부모를 잃을 당시 그녀는 너무 어렸으며,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거의 지닐 수 없었다. 그러나 루스 비고는 아버지가 남긴 영화적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1931년생인 그녀는 이후 영화평론가로 성장했으며, 여러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도 활동하였다. ‘장 비고 상’ 수상위원회의 책임자이기도 한 그녀는 아버지로서의 장 비고와 영화사의 거장으로서의 장 비고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 < 루스, 장 비고에 관하여 >는 장 비고의 여러 영화적 주요 장면들과 루스 비고가 살고 있는 집 내부의 여러 사적인 공간과 흔적들을 정교하게 연결하고 교차 편집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루스의 집안은 흡사 수집가의 거대한 자료실처럼 빈 벽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영화인으로 80여 년을 살면서 쌓아온 삶의 흔적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보물처럼 자리하고 있는 장 비고에 관한 자료와 유품들. 그러나 이제는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루스 비고는 쌓아두었던 물건 중 가장 중요하게 간직했던 박스 하나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레일라 페로 레비의 카메라와 그녀의 아들 앞에서 처음으로 그 박스를 공개하고 설명하기 시작한다. 장 비고의 친필 시나리오를 비롯하여 각종 사진들, 여러 서한들, 비고의 영화에 실제로 쓰였던 영화적 소품들, 그리고 장 비고의 아버지였던 알머레이다에 관한 기록들. 알머레이다 비고는 프랑스의 정치적 스캔들을 일으킨 유명한 아나키스트였으나 삼십 대 초반에 검거되어 바로 다음 날, 수감된 감옥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다. 이 사건은 어린 장 비고에게 정치적, 경제적 트라우마로 남았고, 훗날 청년 장 비고의 영화적 세계의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유년기에 아버지를 잃어야 했던 장 비고의 삶은 고스란히 루스 비고에게도 이어졌다. 이 영화 속에서 루스 비고의 아들은 처음으로 알머레이다로부터 장 비고, 그리고 어머니로 이어지는 가족사의 내밀한 상처들을 직접 듣게 된다. 루스 비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그녀가 프로그래머로 수십 년을 일 하면서도, 그녀는 장 비고에 대한 그 어떤 프로그램도 진행하지 않았다. 아들은 어머니, 루스가 어떠한 성장기를 거쳤는지, 그녀에게 장 비고에 관한 자료가 어느 정도 남겨져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감히 물어볼 수 없었다. 박스를 공개한 후, 루스는 아들과 함께 장 비고의 영화들을 함께 보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영화감독 장 비고의 유산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루스 비고가 아버지의 흔적들을 아들에게 알려주는 과정에 가까우며, 이 영화에서 가장 애절한 순간이기도 하다. 루스는 장 비고의 영화 장면들 속에 감추어진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모습들을 발견해낸다. <라탈랑트>의 카페 신에 손님으로 앉아있는 어머니의 얼굴, 혹은 화면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버지라는 사실, 또 단역으로 등장하는 피에로가 다름 아닌 장 비고임을 그녀는 알아채고 아들에게 알려준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장면들 혹은 다른 캐릭터들에 의해 얼굴이 거의 가려진 존재가 어머니임을 그녀는 알아본다. 아들이 루스에게 “어떻게 알았나요? 누군가 말해 줬나요?”라고 질문하자, 그녀는 처연한 눈빛으로 응답한다. “내가 딸이니까 알 수 있지”. 그리고 이어지는 루스 비고의 탄식, “아, 카메라가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현장에 있는 우리 아버지가 보일 텐데”. 그녀는 장 비고의 영화들 속에서 필사적으로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 품행제로 > 이 영화 < 루스, 장 비고에 관하여 >는 공적인 역사가 되어버린 영화사의 거장 장 비고와 그를 기억하고 간직하는 딸 루스 비고의 사적인 애정과 기억에 관한 기록이다. 절묘하게 편집된 장 비고의 영화 속 장면들과 루스 비고의 현재의 모습들. 알머레이다로부터 장 비고, 그리고 루스와 그녀의 아들로 이어지는 가족의 긴 역사와 상처, 그리고 남겨진 유산들에 대해 이 작품은 매우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담아 묘사하고, 오마주를 바친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과 함께 이어지는 <품행제로>의 기숙사 반란신. 여전히 유효한 장 비고의 시대정신과 영화가 묘사할 수 있는 매혹과 열정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ps. 이 영화 촬영이 끝나고 얼마 후(2017년 2월), 루스 비고가 사망한다. 루스의 집안을 정리하던 아들은 비단 루스가 그에게 공개한 상자만이 아니라 집안 곳곳에 엄청나게 많은 자료들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그 자료들은 현재 시네마테크 혹은 다른 영화자료실 등으로 어떻게 기증할 것인지를 논의되고 있다.
스티븐 킹의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근심이 앞선다. 만화식 표현으로, 얼굴에 빗금이 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괜찮을까? 소설을 영화화면서 원작보다 재밌기는 쉽지 않다고들 하는, 그런 일반론과는 또 다르다. 스티븐 킹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중 한국에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은 < 캐리 >(1976) < 샤이닝 >(1980) < 쇼생크 탈출 >(1994) < 스탠 바이 미 >(1986) < 그린 마일 >(1999) 정도인데, 이 중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이 독보적인 브랜드로 기능하는 공포 장르에 속한 것은 <캐리>와 <샤이닝> 정도다(참고로 스티븐 킹 소설을 영화화한 중 가장 히트를 기록한 작품은 <그린 마일>이다). 이쯤에서 스티븐 킹의 팬이라면 공포물을 포함한 영화 몇 편은 더 꼽을 수 있으리라. < 미스트 >(2007) <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Apt Pupil >(1998) < 미져리 >(1990)가 그런 영화들이 될 것이며, < 크리스틴 >(1983) < 쿠조 >(1983) < 공포의 묘지 Pet Sematary >(1989)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2017년 8월 현재, IMDb(imdb.com)에 스티븐 킹의 이름이 영상화(애니메이션, 단편, TV 시리즈, 후반 작업 중인 미개봉작, 북미대륙 외의 지역 작품 포함)된 작품 크레디트에 오른 경우는 239편에 이른다. 인터넷 매체 마켓워치(marketwatch.com)는 “왜 큰 예산이 스티븐 킹 영화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나- 스티븐 킹은 이전 어느 때보다 할리우드에서 뜨겁다. 다만 그에게 블록버스터 대우는 하지 말 것”이라는 기사를 썼다. 스티븐 킹의 장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61편의 영화와 28편의 TV 영화를 분석한 결과다. < 다크 타워: 희망의 탑 >의 스코어가 결국 예상을 밑돌자 이런 기사가 나온 것이다. “많은 영화들은, <다크 타워: 희망의 탑>처럼,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기대를 밑돌았다.” 영화 < 그것 >을 비롯해 TV 시리즈 <미스터 메르세데스>와 넷플릭스 영화 <제럴드의 게임> <1922>도 올해 선보인다. 이 기사는 예산이 늘어날수록 상업적 운명은 더 암울하다는 웃지 못할 분석을 곁들인다. 심지어 이런 징크스가 영화 뿐 아니라 TV 시리즈에도 적용된다며 <11/22/63>의 예를 들었다. 스티븐 킹은 2008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기고한 글에서 “나를 정말 겁먹게 한 열 편 남짓한 영화를 떠올려보면, 가장 좋은 공포영화란 누군가의 지하실이나 차고에서 만들어낸 특수효과로 이루어진 저예산 영화들이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데, 참고로 말하면 스티븐 킹은 같은 매체에 오래 칼럼을 연재하면서 자신이 뽑은 자기 소설 영화판 탑10을 꼽으며 < 캐리 >와 < 샤이닝 >을 제외시켰다. <공포의 묘지>는 포함시켰는데, 이 작품으로 말하면 스티븐 킹 자신이 각본작업에 참여했다. 기대가 컸고 실망도 컸으며 어쨌든 스티븐 킹은 < 공포의 묘지 >를 좋아한다. 빼어나게 재미있는 (인기도 있는) 원작 소설이 있으면 영화로 만들기 더 쉽지 않을까? 물으나 마나인 듯한 이 질문은, 그러나, 답하기 영 쉽지 않다. 한국에서야 스티븐 킹이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늘 그의 신간이 주요 매체에서 리뷰되고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오른다(참고로 한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스티븐 킹의 책은 소설이 아닌 에세이 「유혹하는 글쓰기」다). “그는 호러의 제왕이 아니었다. 킹은 이야기의 제왕이다”라고 소설가 정유정은 ‘정유정 작가가 소개하는 스티븐 킹- 제왕을 가슴에 안다’라는 글에서 쓴 바 있는데, 스티븐 킹의 공포물이 유독 원작에 비해 박한 평가를 받거나 부족하게 만들어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스티븐 킹 특유의 공포가 문학적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의 소설을 영화로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진짜 같은 특수효과나 영상기술이 아닌지 모른다. 스티븐 킹의 소설이 나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행복/낙관과 불행/공포를 으깨 하나로 뭉쳐놓고는 나머지는 책 읽는 내가 알아서 상상하게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었다. 「샤이닝」의 ‘아버지’ 잭은 어린 시절을 이렇게 떠올린다. “아버지와 그의 관계는 아름답게 피어날 수도 있었지만, 다 피고 나니 속이 썩어 있는 꽃과도 같은 것이었다. 일곱 살이 되었을 때까지 잭은 두드려 맞고 멍들고 이따금 눈까지 멍들어도, 키 크고 배 나온 아버지를 아무런 미움 없이 열렬히 사랑했다.” 이 기억은 행복인가 불행인가. 둘 다다. 행복을 소환하면 불행이 따라오고 불행을 억누르면 행복도 억눌린다. 그의 이야기에는 가족 단위의(최소한 가족의 선명한 그림자 안에 있는) 주인공들이 많고, “할은 가슴에 걸리는 뭔가가 느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에 수록된 「원숭이」 중에서) 같은 문장이 나오면 이제 진짜 무서운 게 나오리라는 예감에 떨게 된다. 스티븐 킹은 책을 읽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공포의 세계를, 읽는 사람이 저마다의 가장 두려운 기억을 소환해 거기에 자신의 무언가를 걸게 만드는 글을 써왔다. “많은 사람들은 내 이야기가 무섭다고 하지만, 이야기의 결론과 상관없이, 나는 조금도 웃음을 유발하지 않는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라고 스티븐 킹은 쓴 적이 있다. 그게 바로 댁이 무서운 이유야 이 양반아, 하고, 춥지도 않은데 팔을 쓸어내리며 그를 타박하게 된다. 이 기분을 영상으로 표현하기, 만만할 리가 없잖나. 그러니 나는 태어나 생일파티에 불러본 적도 없는 피에로를 한평생 무서워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연관글] #0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by 유성관(한국영상자료원) #1 암흑의 탑으로 향하는 머나먼 길 by 장성주(다크 타워 시리즈 번역자) #2 스티븐 킹의 작품을 영상화 하기 힘든 문제에 대하여 by 이다혜 (북칼럼니스트) #3 아무나 좋아하는, 혹은 아무나 좋아할 수 없는 by 조원희 (영화감독)
소설가 스티븐 킹이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유명해졌을까. 이런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스티븐 킹의 유명세에 비해 한국에서 도통 그의 번역된 소설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시기에 그를 인식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는 영화였다. < 캐리 >(1976), < 샤이닝 >(1980), < 스탠 바이 미 >(1986), < 런닝 맨 >(1987), < 공포의 묘지 Pet Sematary >(1989), < 미져리 >(1990)의 원작자가 모두 한 사람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면서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을 각인했고, 그의 책들을 찾아보려는데 번역본이 왜 이리 없단 말인가, 라는 놀라움과 탄식을 동시에 내뱉어야 했던, 아마도 그 시기는 1990년대 초중반이었을 것이다. 대학 도서관에서 검색 키워드로 ‘스티븐 킹’을 넣고도 그 결과가 허름해 절망하며 겨우 빌린 옛날 판본의 「캐리」를 기숙사 침대 위에서 읽으며 소름 끼쳐 했던 기억이나, 피터 스트라우브와 공저이긴 하지만 비로소 신간 소식으로 스티븐 킹의 소설이 나왔다는 신문 단신을 보고 기쁨에 복받쳐 곧바로 서점에 달려가 사버렸던 「부적 The Talisman」에 대한 기억, 대학교 교직원이 「신들린 도시 It」 읽는 걸 보고 동지를 발견한 듯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날렸으나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던 순간, 후배에게 「멈춰버린 시간 The Langoliers」(「스티븐 킹, 미스터리 환상특급 Four Past Midnight」에 실린 중편)의 줄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이야기해줬던 심야의 자취방 추억. 이때만 하더라도 이 글로벌 스타 작가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나만의 작가이기도 했다. 주변에 아는 이가 없었다. 그러다 슬슬 많은 스티븐 킹의 소설들이 번역되어 나오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프랭크 다라본트의 <쇼생크 탈출>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후, 2000년대 초 황금가지에서 스티븐 킹의 대표작들을 시리즈로 내놓으면서 나는 나만의 작가를 놔줄 수밖에 없었다. 예정된,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로부터도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그는 지금도 내가 읽는 속도보다 더 빨리 글을 쓰는 건 아닌가 할 정도로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성공적이거나 실망스럽거나 관계없이 그의 원작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들도 매년 시도되는 중이다. 특히 올해 여름은 빌 호지스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엔드 오브 왓치」가 번역 출간되었고, 미국에서는 1부인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드라마가 막 시작되었다. 8부작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다크 타워」를 영화화한 작품이 곧 개봉되며 9월이면 많은 사람들이 꼽는 그의 대표작 < 그것 >이 이전 TV 미니시리즈 이후로 처음 영화화되어 개봉한다. 스티븐 킹의 단편 <더 미스트>를 10부작으로 각색한 TV 시리즈가 현재 미국에서 방영 중이고, 이 드라마는 국내에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8월 중 공개될 예정이다. 자 다시, 약간 변형된 질문. 소설가 스티븐 킹은 이제 한국에서 유명한가. 말해 뭐하겠는가. 오래된 스티븐 킹의 팬으로서 이런 여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고 그래서 KMDb에 미니 연재를 기획하게 되었다. ‘스티븐 킹, 여름, 영화’라는 두루뭉수리 한 칼럼 주제 아래 세 명의 필자를 섭외했다. 「다크 타워」 시리즈를 번역한 장성주 번역가의 「다크 타워」에 대한 글을 시작으로, 이다혜 북칼럼니스트의 ‘스티븐 킹의 무시무시함을 의외로 영상으로 옮기기 힘든 이유’와 그다음으로 조원희 감독의 ‘그럼에도 내가 사랑하는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들’에 대한 글이 1주일에 한 편씩 차례로 올라간다. 모두 내로라하는 스티븐 킹의 팬이다. 올여름은 유독 비가 많다. 어둡고 음산한 여름 하늘 아래 여러분은 검은빛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꼬마아이의 한쪽 팔을 뜯어간 피에로가 도사리고 있는 검은 하수구, 돼지 피를 뒤집어쓴 십대 여자아이가 살육을 벌이기 직전 번쩍이는 검은색 눈동자, 리타 헤이워드의 대형 포스터 뒤에 은밀하게 감춰진 검은 동굴, 죽은 시체를 살려 돌려보내는 어둡고 깊은 인디언 묘지, 끝없이 걸어야 하는 소년들을 향해 장전되어있는 검은색 총구, 1963년의 역사를 바꿔버린 후 도착한 현재의 검게 휘몰아치는 하늘, 끝없이 희지만 암흑의 그림자로 가득한 오버룩 호텔의 미로 정원, 사랑한다 말하며 도끼로 내려찍는 애니의 검은 입, 가족에게 떨어져 길을 잃은 소녀가 헤매는 암흑의 숲, 전기의 힘으로 죽음을 초월하려는 목사가 불러내는 어둡고 끔찍한 사후 세계, 진흙이 잔뜩 묻은 이불이 별도 없는 시커먼 한밤에 선사하는 기이하고도 둔탁한 공포. 예상했겠지만 이 목록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