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리스크
- 감독
- Stelvio Massi
- 제작년도
- 1993
- 출연
- Stéphane Ferrara, Isabel Russinova
장난감(Toy), 변신(Transform), 교육(Teaching). 최근 한 메이저급 제작-배급사가 보도자료를 통해 내 놓은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의 주요 키워드이다. 변신하는 로봇이나 캐릭터가 등장하여 교육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캐릭터 시장에서도 괄목할 만한 수익을 창출해 낸다는, 말하자면 최근 애니메이션 산업의 제작과 수익구조의 수요관계를 정확하게 집어낸 것이다. 투자, 제작, 방영 및 노출, 그리고 수익으로 이어지는 애니메이션의 산업적 과정 내부가 워낙 하이리스크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적어도 예의 키워드는 흔한 말로 안전빵(?)과 같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성공한 애니메이션들은 “교육적인 변신 장난감이 주인공”이었다는 것. 부분적으로는 동의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이 어색한 문장의 내부를 천천히 살펴보면 동의하는 지점 너머에 불쾌한 무언가가 있다. 먼저, 변신(Transform). 변신이라는 말은 애니메이션의 오래된 특성이자 강력한 무기 중의 하나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하나의 점, 선, 면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면서, 플라즈마 같은 속성으로 “이것으로부터 저것으로 옮겨가는” 이미지의 특성을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에이젠슈타인과 발터 밴야민과 같은 이들이 애니메이션에 호감을 가졌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애니메이션의 속성은 신체와 신체, 신체와 사물 등으로의 이행, 즉 ‘~이 되기’가 익숙한 어린아이들에게는 상당히 주요한 커뮤니케이션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가면을 사용하여 신체를 변화시키거나, 신체와 결합하거나, 아니면 성장의 시간을 압축시켜 사건을 전개하는 방식 - < 요술공주 밍키 >와 같은 변신물 - 의 경우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수많은 설화들을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변신은 다양한 이야기소로 변형/재가공 되면서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며, 서사를 풍부하게 만들어낸다. 하지만 예상했다시피, 여기 (3T)에서의 변신은 그런 것이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변신하는 기계 또는 로봇이다. 여기에는 이후에 도달하는 다른 키워드 ‘장난감(Toy)과 결부’되는 지점이 있는데, 이는 형상의 변화와 다양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닌, 변신로봇이라는 고정된 캐릭터를 의식하는 것이다. 그냥 냉정하게 변신 로봇이라 말하자. 두 번째, 장난감(Toy). 엄밀하게 말하자면 5세 이하 (남자)아이들을 위한 완구 시장을 염두에 두고 한 표현이다. 가장 폭발적인 소비시장으로 자리 잡은 이들의 구매력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적절한 상품미학이 결합된 로봇 완구는 높은 구매 충성도까지 형성하며 재구매의 효과까지 가지고 있다. 문제는 완구의 타겟 특성상 노출과 소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완구가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와 결합한다. 애니메이션은 홍보와 노출이라는 마케팅의 요소가 되고, 제품은 완구로 대체된다. 그러다 보니 작품의 이야기나 캐릭터들의 디자인은 완구를 위한 디자인으로 고착된다. 예컨대, 캐릭터의 팔과 다리는 가늘어서는 안 되고, 완구로 만들어졌을 때 안정적으로 바닥에 고정될 수 있어야 하며, 변형이나 가동의 방식이 복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캐릭터라는 것이 작품의 이야기라는 내부에서 설정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인물의 성격이나 외연에서 구성되는 이미지는 배제되고 만다. 이러한 설정 내부에서 인간이라는 캐릭터가 남아있기/끼어들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 덕에 작품에는 이야기가 구축되기보다는 이야기가 끼어드는 형국이 되기 쉽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육(Teaching). 예의 두 키워드가 장난감(Toy)으로 귀결되고 마는 상황에서 교육은 서사에 대한 일반적인 키워드가 될 수가 있다. 이야기의 기본적인 설정은 미취학 아동들에게 필요한 인성 교육 등이 될 터인데, 우정, 협동, 배려심 등의 것들일 것이다. 분명 캐릭터들의 구축 방식을 따르자면 작품의 성격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함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끼어든 것에는 서브 타겟으로 볼 수 있는 부모세대에 대한 어필이라 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모순적 양식이 발생한다. 변신하는 로봇이 등장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에 교육적 요소를 심어야 하는 부담감이다. 그러니 모두 협동이 필요한 ‘구조대’다. 선악의 관계망에서 번민하거나 갈등하지 않으면서도 변신하는 로봇의 액션이 필요하니 당연히 구조대 만큼 좋은 요소는 없는 셈이다. 게다가 최근의 화두들이 ‘힐링’과 ‘안전’이라는 표제 아래에 줄 서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같은 바람도 이해가 가능하다. 어쩌면 3T는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현황과 지속가능성, 그리고 발전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키워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키워드가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장담해 줄 요소는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함정에 가깝다. 상업적 성공만을 위한 애니메이션의 기획이 여전히 이러한 안전빵 내에 머물려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 키워드라는 것이 그냥 문득 툭툭 뱉어진 듯 구성된 허술하거나, 모순적인 형국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의 키워드를 언급하였던 예의 보도자료를 뿌렸던 국내 굴지의 대기업도 스스로 안전하다는 주문을 거는 듯한 모습이라 간혹 실소를 짓게 한다. 냉정하게, 아주 냉정하게 5세 이하 미취학 아동들의 완구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점에서는 박수를 보내 주겠다. 그러면서도 그곳이 아주 통 크게 다양한 우리 애니메이션도 배급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에겐 정다희 감독의 < 의자 위의 남자 >, 정유미 감독의 < 연애놀이 >도 있고, 장형윤 감독의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 안재훈 , 한혜진 감독의 작품들도 있으며,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도 있다. 여전히 건재한 이성강 감독의 작품들도 있으며, 홍덕표 감독의 < 발광하는 현대사 >나, 단편 문학을 그려낸 <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도 있었고, 그리고 한지원 감독의 < 생각보다 맑은 >(등)도 있다.
2011년 한해는 유난히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한 시기였다. 물론 이야기의 중심에는 < 마당을 나온 암탉 >의 성공과 그 배경에 맞춰져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올해 초의 < 소중한 날의 꿈 >의 개봉과 하반기 각종 평단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한 문제작 < 돼지의 꿈 >도 빠뜨릴 수 없는 작품들이다. 그 때문일까? 일각에서의 풍문에 의하면 많은 영화 제작사들이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것이 비온 후 죽순이 될지, 아니면 비온 후 더욱 탄탄한 땅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적어도 투자상 소위 하이리스크로 분류되어 지독한 제작난에 허덕이던 한국의 장편 애니메이션계에는 고무적인 일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단기적이고, 심리적인 제작 호재라는 것이 한국의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매번 널뛰기를 해왔던 상황을 기억해 본다면, 그리고 예가 그리 길지 않았던 상황을 떠올리면, 지금의 상황이 마냥 반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즈음에서 우리는 올해 등장한 애니메이션 진흥 법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1년 4월에 국회에서 발의되었던 애니메이션 진흥 법안은 지난 6월말에 한차례 공청회가 열리면서 조용히 ― 지금도 몇몇 관계자 이외에는 많은 이들이 이 법안에 대해서 소문정도로만 알고 있다 ― 등장하였다. 말하자면 정책적으로 한국의 애니메이션을 부흥시키겠다는 것이다. 법안을 둘러싼 내막은 잘 모르더라도 이 얼마나 반가운 이야기인가? 게다가 애니메이션은 타이밍이 중요한 요소인데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었던 2011년, 올해 등장하였으니 이 또한 기막힌 타이밍이다. 법안의 주요내용은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분야를 지원·육성하여 애니메이션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이를 위해 “애니메이션 진흥위원회와 애니메이션의 발전 기금 설치, 한국애니메이션자료원 설치, 애니메이션 공제조합, 애니메이션분쟁조정위원회, 법률·회계 관련 무료 애니메이션상담센터 운영”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많은 부분들이 아마도 지금의 영화진흥법과 영진위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법안의 규모나 중요성으로 보았을 때에는 분명 큰 정책 사업임은 분명하다. 물론 사업의 중요성만큼이나 법안의 몇 가지 사항들도 되짚어볼 필요는 있다. 예컨대, 콘텐츠진흥원이나 애니메이션센터와 같은 기존 지원 단체와의 업무조정이나, 기금마련을 위한 방식, 만화진흥법 등과의 조율, 한국영상자료원과 기타 아카이브와의 공조, 애니메이션의 이론과 미학 연구에 대한 지원, 심지어는 포괄적인 의미인 애니메이션의 경계 설정에 이르기까지 큰 매듭이니 만큼, 풀어야 할 것도 많다. 무엇보다 지금 이 법안을 들여다보고 꼼꼼하게 살펴야 하는 이들은 애니메이션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실무자들이다. 가끔 예술인들에게는 정책이라는 게 정치와 행정이라는 다소 수직적이고 경직된 사고로 맞물려 돌아가는 오물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미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작동하는 기저가 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한국영화가 있기까지에는 ― 물론 상황이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 수많은 영화인들의 노력과 함께, 10여년이 넘게 진행된 영화진흥위원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상자료원 등과 같은 정책적 지원사업의 성과를 간과할 수 없다. 이들은 모두 문화와 산업, 그리고 교육 등을 통해 영화 시장의 토대형성에 상당한 기여를 한 셈이다. 앞으로 애니메이션 진흥 법안과 관련된 사항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미지수지만, 관심 있게 들여다보자. 지금의 관심이 10년 이후를 좌우할지도 모르니까. 지금 인터넷 검색창에 “애니메이션 진흥 법안”을 쳐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