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액션영화의 대부, 영화감독 정창화
- 감독
- 장정혜
- 제작년도
- 2003
- 출연
- 안지환, 김수용, 김시현, 남궁원, 임권택, 전우열, 조영정, 진봉진, 허문영, Sam Ho
1. 1973년 싱가폴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아영화제를 참관하고 돌아온 신상옥은 위기의 한국영화가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하지 못하면 재생할 길이 없다”고 일갈한다. 1) 그에 따르면 “몇 년 전만해도 일본영화와 함께 정상을 달렸던 한국영화”가 “전근대적인 작품으로 관객으로부터 유리되는 인상은 참으로 영화산업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한국을 제외한 9개 출품국의 영화들이 한결같이 “액션과 섹스물로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제작된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 좋다고 출품한 작품은 기복이 없는 너무나 평범한 작품”이라는 데에 있다. 그는 “오늘의 관객은 평범하고 짜증이 나는 영화를 보려는 것이 아니고 액션이나 청춘이 불타오르는 충족 표현을 보려는데 있는데 우리 여건은 이러한 것들을 제작하는데 너무나 많은 제약을 받고 있음”을 지적하며, “빠른 시일 내에 해외 진출의 돌파구를 열어줘야 한다”고 강변한다. 신상옥 이라는, 1960년대 이후 한국영화 산업의 최전선을 담당했으며, 공인된 국제통이 전하는 이 진단이 흥미로운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액션이나 청춘이 불타오르는 충족표현을 보려”는 “오늘의 관객”이라는 범주.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적어도 이들이 1960년대 신필름의 기틀을 다지는 기폭제가 되었던 영화 < 성춘향 >(1961)이 구성해냈던 관객들, <연산군> 시리즈(1961-1962)와 쇼브라더스와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 달기 >(1964), < 대폭군 >(1966)에 이르기까지의 스펙터클 시대극이 소구했던 그 관객이 더 이상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한국영화 산업은 주지하다시피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였다. 여러 위기의 원인 중 가장 먼저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은 다른 지역들에서 그러한 것처럼 TV의 급격한 보급에 따른 절대 관객수의 감소였다. 1969년 절정에 달했던 영화관객수는 1972년에 이르면 2/3 수준으로 급감했으며, 1975년에는 전성기의 1/10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신상옥의 언급이 있던 1973년 TV 수상기 보급대수는 100만대를 돌파했다. 이와 같은 수치가 보여주는 것은 단지 영화관객의 감소라는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관객구성체라고 할만한 것이 완전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에 따라 영화의 위상 또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장년 관객이 TV로 대거 이동한 이후 이 자리를 채운 것은 젊은 관객들이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여파는 도시 저임금 노동자라는 새로운 관객층을 급부상시켰으며, 서울과 같은 도시 내부의 공간 재편은 이 관객들이 점유하는 새로운 공간의 창출을 가능하게 했다. 그렇다면 “액션이나 청춘이 불타오르는 충족표현을 보려”는 “오늘의 관객”이란 바로 이러한 관객에 다름 아닐 것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홍콩-일본을 잇는 강력한 커넥션의 구축자이자(아시아영화제는 바로 신상옥이 이 국제적 커넥션을 만들어냈던 중요한 장이었다), 동시대 누구보다 민감한 국제적 감각의 소유자였던 신상옥은 영화의 위상 변화를 절감하고 있었다. 두 번째, 그런데 이 위상의 변화, 더 정확히 말하면 관객의 변화에 따른 이 위상 변화란 일국 레벨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각국의 영화는 액션과 섹스물로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전언이 의미하는 바는 단지 한국영화가 얼마나 시대에 뒤처져 있는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액션과 섹스’라는 취향을 공유하는 국경을 넘어선 공통의 관객이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경을 넘어선 공통의 관객. 유신시대 한국이라는 이 극도로 폐쇄적인 장소에서조차도 이 공통 관객의 형상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아마도 그 대표적인 사례는 이 연재에서도 다룬 적 있는 196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무협영화, 쿵푸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1973년의 이소룡 붐을 극적인 전기로 삼아 지역을 막론한 장사치들의 이합집산으로 만들어진 소위 홍콩식 권격영화들의 광범위한 유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례, 어떻게 여기에 섹스가 결합되는가. 신상옥의 1976년 영화 < 여수 407호 >/< 속 여수 407호 >는 한 시기의 가장 마이너하지만 동시에 ‘초국적’으로 소비되었던 한 장르의 ‘지역적’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이다. 이 장르는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하위 장르 중 하나인 여감방 영화, WiP(Women in Prison)로 불리웠던 영화인데, 간단히 말해 남자 간수들과 여자 죄수들로 구성된 감옥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들의 ‘진정한’ 볼거리는 (문자 그대로) 헐벗은 여성들에 대한 성적 착취라고 할만한 것이다. 감옥이라는 이 절대적 위계의 공간은 집단 누드, SM, 윤간, 레즈비언 성애까지 ‘자유자재’의 성적 표현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더없이 효율적인 공간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제스 프랑코, 잭 힐, 게리 드 레온 같은 이름들이 ‘악명’을 떨치고 있던 이 장르를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처음으로, 가장 창조적인 방식으로 흡수해온 것은 일본이었다. 1972년 일본에서 <The Big Doll House>(잭 힐)가 <잔혹여형무소>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어 인기를 모았다. 이미 포르노액션이라는 섹스와 폭력이 결합된 장르를 열정적으로 실험중이던 도에이는 재빨리 시노하라 토오루의 만화 『사소리』의 영화화를 서둘렀고, 그 결과 만들어진 <여수 701호-사소리>(이토 슌야)는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이 영화는 곧 시리즈로 이어졌으며(<여수 사소리-제41잡거방>(1972), <여수 사소리-짐승의 방>(1973)), 주인공 카지 메이코(梶芽衣子)는 일약 도에이의 간판 여성스타로 등극하였다. 이 영화는 남자의 배신, 강간, 감옥 수용, 탈출, 복수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여감방 영화 스토리를 변주하지만 또한 남자로부터의 배신이라는 사적인 원념으로부터 시작하여 체제에 대한 원념으로 나아가며(이 남자는 경시청 간부이고 여타의 ‘남자들’ 또한 모두 국가 권력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맺고 있는 자들이다) 격렬한 젠더대립과 체제 전복에의 의지로 충만해 있다. 그럼으로 <사소리>는 여감방영화라는 공통 장르에 기대는 동시에 우먼 리브(women’s liberation)와 국가 폭력에 대한 대항 폭력이라는 일본의 포스트 68적 주제를 정확히 반영해낸다. 두 번째로 이 지역에서 등장한 WiP 영화는 1973년 홍콩 쇼브라더스가 제작한 < 여집중영 女集中營 >(퀘이치훙)이었다. 일본군 수용소에서 ‘다채로운’ 인종의 여성 수감자들이 그야말로 다종다양한 성적, 육체적 착취에 신음하는 이 영화는 곧 아시안 WiP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한국에서 역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2. 1973년, 신상옥이 세계적 동시성을 호소했던 그해 말 신프로덕션은 ‘합작’ 타이틀을 내걸고 가장 뻔뻔스럽고, 가장 노골적이며,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갖게 될 한 편의 영화를 시장에 내놓았다. < 여감방 >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개봉한 <여집중영>은 1974년 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네 편의 영화 중 한편으로 기록되었다.(참고로 말하자면 1974년의 최대 히트작은 한국영화의 흥행기록은 갱신한 < 별들의 고향 >(50만)이었으며, 나머지 두 편은 영화진흥공사가 제작한 < 증언 >과 < 아내들의 행진 >이었다. 당시의 한 신문기사는 국책영화 <증언>과 <아내들의 행진>을 제외한다면 10만을 넘은 한국영화는 <별들의 고향>과 <여감방>에 불과하다고 한탄하고 있다.) 한국어 더빙을 거친 <여집중영>은 정말로 극적으로 ‘한국영화’ <여감방>으로 탈바꿈하였다. 당시 한국 개봉 버전을 유추할 수 있는 심의대본(영상자료원 소장)에 따르면 이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인’ 독립군 김대만은 죽기 직전 ‘조선인’ 아내 정숙에게 군자금의 은닉장소를 알려준다. 정숙은 기독교 병원의 백인 여간호사들과 함께 일본군이 세운 여자 수용소로 끌려가는데, 이곳은 상시적인 능욕과 때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문, 잔학한 일본인 여장교에 의한 레즈비언 강간을 포함한 집단윤간이 횡행하는 장소이다.(이 장면들이야말로 이 영화가, 이 영화를 포함한 여감방 영화들이 진정 보여주고 싶어하는 볼거리라는 점에 주의하자.) 여자들은 살기 위해 탈출을 꿈꾸고, 위장 일본군 장교로서 은밀히 작전을 수행중인 ‘박대령’이 그녀들을 돕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가 위의 설정을 믿을만하게 만들어줄 어떤 장치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여집중영>→<여감방>으로의 이동이 진정 흥미로워지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먼저 이 영화의 ‘조선인’ 등장인물이라고 설정된 자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중국인’으로서의 그들의 표식을 전혀 감추지 않는다. 중국 복장의 이들은 중국 가옥에서 살고 있다. 한국-홍콩 합작 프로젝트를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얼마나 ‘한국영화’로의 전이에 무심했는가는 배우 로례의 존재로부터도 확인가능하다. 일단 ‘박대령’으로 기술되어 있는 그는 이미 한국 영화시장에 <금연자>(한국 개봉제목: 심야의 결투 )와 <용호투>(한국 개봉제목: 용호의 결투 ), 그리고 < 철인 >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 <죽음의 다섯 손가락>으로 익히 알려진 홍콩배우였다. 이 이야기는 이 영화의 표면으로부터 그 어떤 ‘한국성’ 혹은 ‘한국성’의 위장 따위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당시 본격화되기 시작한 소위 ‘위장합작’ 영화들의 거개가 그러한 것처럼 이 영화 또한 몇몇 한국인 배우들의 존재로 아슬아슬한 합작의 암묵적인 최저 조건에 부합하려고 한다.(이 영화에는 고상미, 나하영 등의 한국인 여배우들이 출연한다.) 그러나 반라의 학대받는 여성들의 육체 중 하나로 기입되어 있을 뿐인 그녀들의 국적이 한국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여집중영>→<여감방>이 한국영화로의 전이에 이토록 무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명하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여기에 무심하기 때문이다. 중국인인가, 한국인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간악한 일본군이라는 적이며, 이 공동의 적 앞에서 벌거벗은 채 학대받는 여성들은 하나로 묶인다. 심지어 백인 여성들 또한 오로지 벌거벗은 육체로 다채로운 육체적, 성적 학대를 견디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인종적 위계 혹은 차이도 없이 학대받는 ‘아시안’ 여성들과 하나가 된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간악한 일본군이라는 적또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설정을 믿을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한국과 홍콩 양쪽의 공통된 민족적 공분일 터이지만, 생사여탈권을 쥔 이 절대악의 형상은 이런 류의 영화들에서 익숙한 것이다. 이를테면 70년대식 WiP 영화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러브 캠프 7 Love Camp 7>(1969)은 나치 수용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사 Ilsa> 시리즈로 대표되는 1970년대 내내 이어질 나치 수용소 배경의 WiP 영화, 이름하여 나치 익스플로이테이션의 효시가 될 이 영화는 나치 수용소에 끌려간 여성 유태인 박사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잠입한 연합군 여성요원을 중심으로 수용소의 여성 수감자들이 겪는 능욕과 고문, 집단윤간, 새디스틱한 레즈비언 섹스를 그리고 있다. 요컨대, 이 영화들에서 배경이란 다채로운 방식으로 학대받는 여성들이라는 진정한 볼거리를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물론 이 볼거리는 국제적으로 순환하는 동시에 각각의 지역적 맥락이 부여하는 노골적인 성적 판타지와 결합한다. <여집중영>→<여감방>의 최대 볼거리가 기독교 병원의 간호사들로 설정된 백인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능욕이라는 것이야말로 아마도 이에 대한 가장 뻔뻔스러운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채로운 육체적, 성적 학대의 대상이 된 이 벌거벗은 백인 여성들의 존재가 아시안 남성들에게 가져다주었을 노골적인 인종적, 젠더적 쾌감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3. 어쨌든 <여감방>의 성공은 아마도 이 시기 신상옥을 가장 고무시켰던 사건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여기에서 홍콩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공통 관객’에 대한 확신을 얻은 것 같다. <여감방>의 히트 이후 신상옥은 곧바로 신프로덕션 제작의 < 혼혈아 쥬리 >를 일본인 감독을 초청해서 완성, ‘여감방 시리즈 제2탄’으로 개봉했으며, 그 스스로 <여수 407호>/<속 여수 407호>를 만들었다. <여수 407호> 시리즈는 ‘액션과 섹스’라는 공유 트랜드에 대한 신상옥의 확신이 어떤 형태를 얻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만주국의 수도 신경. 간호사 강희는 의사 하윤과 약혼한 사이이다. 어느날 밤 그들의 병원에 강희의 오빠 동민이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실려온다. 마침 강희가 일본군을 따돌리기 위해 나간 사이 유격대원인 동민은 금궤가 묻힌 장소를 하윤에게 알려주고 죽는다. 강희와 하윤은 부상당한 다른 유격대원들을 치료하기 위해 산에 오르고, 하윤은 강희에게 관동군 군의에게 가서 약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약을 구해 돌아오자 유격대는 일본군에게 일망타진당한 상태. 강희 또한 어느날 밤 쳐들어온 네 명의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 중 한명을 가위로 내리꽂은 강희는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강제노역과 여자들에 대한 학대가(왜인지 이 학대받는 여죄수들 중에는 금발의 백인 여죄수도 끼어 있다) 만연한 이곳에서 유일하게 조선인 소장만이 여죄수들에게 온정적이지만, 이곳의 실권은 일본인 부소장 가토가 쥐고 있다. 가토의 노골적인 성적 착취를 견뎌내는 강희에게는 이곳에 같이 들어온 춘자만이 유일하게 마음을 열 상대이다. 그러던 어느날 옛 동료 하연이 이곳에 새로 수감된다. 강희는 하연으로부터 하윤이 오빠를 죽이고, 혼자 금궤를 독차지하기 위해 일본군과 밀통하여 유격대를 몰살시켰으며, 이제 그 모든 일을 도왔던 하연마저 만철 총재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버렸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복수를 결심한 강희는 호시탐탐 감옥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남자의 배신-강간-감금-탈출-복수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 구조는 WiP 영화의 한 전형이기도 하지만 더 직접적으로는 <사소리> 시리즈의 반복이다. <여수 407호>/<속 여수 407호>가(이 두 영화는 주인공 강희 역을 맡은 홍콩배우 엽영지와 가토 부소장 역의 장패산의 스케쥴 때문에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다) 신상옥이 <사소리>를 강력하게 참조하고 있음은 <속 여수 407호>에서 <사소리>의 화재 장면이 유사하게 반복되고 있는 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적극적인 참조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여수 407호>에서는 <사소리> 시리즈의 저 격렬한 젠더 대립과 체제전복적인 폭력이 거의, 전적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 영화의 배경이 식민지 시기이며, 그럼으로써 <여집중영>이 그러한 것처럼 절대악으로서의 일본, 일본인이라는 설정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설정의 결과 적은 민족적으로 ‘외재화’되고, 체제전복의 폭력적 열망은 사라진다. 아직 오지도 않은 ‘국가’를 어떻게 ‘전복’할 수 있겠는가. 여자를 배신한 남자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본과 내통한 자, 독립군을 밀고한 자, ‘밀정’이며 이것이야말로 그가 악당인 이유이다. 이 악당을 제외한다면 ‘한국인’ 남성들은 정말로 세심하게 그들의 윤리적 지위를 보호받는다. 그들은 정의로운 독립군이거나, 나라가 없음을 통탄하는 인정많은 조선인 소장이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이 조선인 소장일 것이다.(의미심장하게도 그를 따르는 유일한 부하는 중국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캐릭터가 흥미로운 이유는 내러티브의 전개 속에서 그가 전혀 ‘무능’하기 때문이다. 이 조선인 소장은 공정한 ‘법’에 기대어 이 여감방을 정의롭게 운영하고 싶어하나 법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악독한 일본인 가토 때문에 빈번히 좌절에 이른다. 그는 내러티브의 전개상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캐릭터의 존재 이유를 내러티브 내에서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 이유는 1976년 한국이라는 영화 바깥에서 찾아야 한다. 긴급조치의 시대에 등장한 이 공정한 공권력에 대한 기대, 그러나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이 형상은 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1970년대의 한국이라는 ‘리얼리티’를 담보하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이 존재는 마치 동시대의 한국 액션영화가 태권도라는 애매한 기표로 위장하고, 반일/반공의 서사들로 최소한의 정당화 기제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이런 류의 섹스플로이테이션 영화가 한국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최소한의 장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수 407호>/<속 여수 407호>는 곧 홍콩에서 <老虎嶺女子監獄 1, 2>로 공개되었으며, <Girls in the Tiger Cage>/<Revenge in the Tiger Cage>라는 제목의 ‘언컷’ 버전으로 전세계에 유통되었다. 이 유통과정까지를 포함한다면 <여수 407호>/<속 여수 407호>는 섹스와 폭력(종종 이 둘의 결합)이 낳은 전지구적인 영화 네트워크 속에 어떻게 한국산 영화가 개입해들어갔는지는 보여주는 유감없는 사례이다. 4. 1970년대 한국에서 만들어진 <여수 407호>가, <사소리> 시리즈에서 노골적으로 보여준 성정치와 전혀 무관한 지점에서 성립되고 있었다면, 30년 만에 한국에서(즉, 1990년대를 통과한 이후의 한국에서) <사소리> 시리즈에 대한 어떤 응답과 마주하는 것은 기이하고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박찬욱 의 < 친절한 금자씨 >(2005)는 아마도 WiP 영화라는 관점에서만 보자면 여기에 대한 가장 진지한 장르적 성찰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시네필’ 박찬욱은 <사소리> 시리즈를 경유함으로써, 이 장르가 보여준 성정치를 말 그대로 동시대적 차원에서 구현해내었다. 동시에 공통장르로서의 WiP를 창조적으로 전유해온 이 사례는 한국영화가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해나갔는가에 관한 하나의 사례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 1) 「亞洲영화제를 보고, “邦畵제작에 새 돌파구를”」, 『경향신문』, 197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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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도사나이 >(1969)를 시작으로 < 실록 김두한 >(1974)과 < 협객 김두한 >(1975), 그리고 허경 필자가 소개한 < 김두한형 시라소니형 >(1981)에 이르기까지 김효천 감독의 ‘김두한 사랑’은 남달랐다(<팔도사나이>와 1982년작 < 종로 부루스 >에서는 주인공이 김두한으로 짐작이 가긴 하나 구체적으로 호명되지는 않는다). 물론 김두한의 흔적이 지워진 액션영화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매력적인 영화는 일본 야쿠자 장르와 반공영화가 결합한 < 오사카의 외로운 별 >(1980)이다. 그 매력의 핵심은 역시 김희라 의 화끈한 남성미로 인한 것이다. 장동휘 , 박노식 , 이대근 , 김희라, 이강조 , 윤승원 으로 이어지는 ‘김효천의 남자들’ 리스트에서 그는 단연 돋보인다. 장동휘, 박노식, 이대근이 카리스마와 별개로 뭔가 ‘토속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면 이강조는 실력에 비해 유명세가 떨어지고, 김효천 액션영화의 피날레라 할 수 있는 < 일본대부 >(1989)의 윤승원은 뭔가 더 보여줄 것이 남은 상태로 작별을 고했다. 그에 반해 김희라는 진정 세련되고 멋지다. 남자 중의 남자다. 김효천 의 남자들, 장동휘 박노식 이대근 김희라 이강조 윤승원 영화가 시작하면 오사카 아오야마 조직의 ‘오야붕’이 습격당하고, 평소 그를 친아버지처럼 여겼던 가네모도( 김희라 )가 혈혈단신 복수를 하러 떠난다. 적의 본거지에 도착한 그는 자신을 ‘아오야마가의 불사신 가네모도’라고 (자기 입으로 직접) 밝히고는 분노의 주먹을 날린다.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 문을 확 열어젖히는 박력부터 남다르다. 역시 김희라! 그리고는 단검 하나로 여러 개의 좁은 다다미방을 저벅저벅 옮겨 다니며 싸운다. 굳이 ‘가오 상하게’ 뛰어다니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적들 앞에서도 ‘어차피 너희들은 다 죽었어’라는 듯 시종일관 언짢은 표정으로 대결에 임하는 그 표정이 딱 ‘쓰바키 산주로’ 도시로 미후네의 그것이다. 상대 오야붕 신타로( 배수천 )가 마사오( 조춘 )를 이용해 가네모도를 처리하고자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잠시 수세에 몰리려는 찰나, 가네모도의 동생 아라이가 멋지게 슬로모션으로 마당에 등장해 졸개들을 화려한 돌려차기로 제압하기 시작한다. 발기술이 약한 김희라의 우직함을 보완하는 김효천 감독 특유의 연출이리라. 그래도 무게중심이 아라이로 기울 수는 없는 법. 가네모도가 창호지 문을 뚫으며 몰래 숨어있던 야쿠자를 주먹 한 방으로 제압하는 장면도 일품이다. 하지만 저 멀리서 경찰차 소리가 들려오고 가네모도는 아라이에게 당장 여기를 떠나라고 말한다. 남자답게 혼자 뒤집어쓰겠다는 말일 것이다. 도망치라 했다고 진짜 혼자서 달아나버린 아라이가 야속하긴 하지만, 뭘 거추장스럽게 줄줄이 끌려간단 말인가. 혈혈단신(feat. 스틸과 캡쳐 화질의 간극) 이처럼 도입부부터 숨 가쁘게 펼쳐지는 습격신은, 김효천 감독 특유의 박력 넘치는 액션 연출과 김희라 의 선 굵은 연기가 결합하여 탄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제야 영화제목이 뜨면서 체포와 동시에 히로시마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가네모도의 모습, 그렇게 감독이 ‘갔다 왔다 치고’라고 말하는 듯 역시 숨 가쁘다. 또 다시 이어지는 크레딧 ‘제작 김치한’. 바로 김효천 감독의 다소 민망한 본명이다. ‘치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초 감독이라니. 그의 액션영화를 흠모하는 것과 별개로 < 오사카의 외로운 별 >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빨갱이를 극도로 혐오하는 우파 감독의 성향으로 인해 불편한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이미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고나 할까. 그렇게 다시 도시로 돌아온 김치한, 아니 김희라의 뒤로 “사나이 전성시대... 외로운 별, 세월은 간다... 낭만은 있다...”라는 가수 김동아의 주제가가 흐른다. 히트곡 ‘나를 두고 가려무나’로 유명한 김동아는 1970년대 초반 불난 집에서 아버지를 구하려다 화상을 입어 반년 이상 입원했고, 결국 그 흉한 얼굴로 인해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가수다. 뭔가 그러한 사연도 김효천 감독의 남자영화에 어울리는 느낌이다. 이제 가네모도는 출소와 함께 못 다한 복수를 완성해야 한다. 하지만 복수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일본 라멘을 먹는 모습이 귀엽다. 하지만 몇 젓가락 밖에 되지 않는 일본 라멘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먹고 난 다음 젓가락을 아그작 뽀개버리는 모습 또한 박력 넘친다. 그리고 술이 빠질 수 없다. 제목도 어울리게 ‘이방인’이라는 바에 들른 가네모도에게 나이 많은 바텐더가 묻는다. “여행을 다녀오셨나 보군요.” ‘깜빵’ 생활을 여행으로 돌려 표현한 바텐더에게 가네모도는 미소를 띠우며 답한다. “인생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길이야.” 이윽고 바텐더는 ‘귀향’이라는 이름의(물론 자체 작명) 술을 건네는데, 가네모도가 “난 돌아갈 고향이 없네”라고 말하자 “그럼 (고향을 몰라도 그리워한다는 의미에서) 망향이라고 부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여행과 유학, 그리고 고향과 망향, 거의 직접 시나리오를 썼던 김효천 감독 특유의 낭만성이 부각되는 장면이다. 심지어 바텐더는 자신의 가게를 처음 찾은 손님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다며 ‘또 들러 달라’고만 한다. 마초의 낭만 “자네 망향 잊지 않겠네.” “난 술을 이렇게 마십니다.” 다시 출출해졌는지 그는 한 초밥집에 들른다. 알고 보니 재일교포 겐이찌( 한지일 )와 하루미( 이경실 )가 운영하는 초밥집이다. 초밥을 2인분으로 달라고 하고, 술은 5인분으로 달라고 하는 가네모도에게 하루미는 하트를 뿅뿅 발사한다. 심지어 하루미가 술을 따라준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원래 술을 이렇게 마십니다”라며 도쿠리를 원샷하는 신공을 선보인다. 그렇게 배를 채운 가네모도는 신타로 일당의 도박장으로 찾아가 속임수를 쓰는 도박사의 손목을 단검으로 잘라 버리고 “주인의 복수를 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어 7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며 ‘히로시마의 표범’ 마사오의 목숨마저 가져간다. 그러다 숨어있던 다른 졸개에게 허벅지에 칼이 찔린다. 하지만 눈을 부릅뜨고 “이리와, 이리와!”라는 단 두 마디에 칼을 찌른 그 놈은 얼어붙는다. 진정 카리스마 넘친다. 말 그대로 감독 또한 배우의 매력에 빠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다리에 찔린 칼을 뽑으며 “이리와, 이리와!” 졸개는 정말 이리와서 얻어 맞는다. 얄궂지만 얻어 맞는 건 고화질로...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일본 야쿠자 영화의 모방인가? 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겐이찌와 하루미가 조총련의 협박을 받는 재일교포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게다가 가네모도는 물론 그를 보살폈던 오야붕이 한국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조총련=북괴’라는 등식의 반공영화 컨벤션이 침투해 들어온다. 당시 영화포스터에도 ‘이 영화는 일본영화가 아닙니다!’라는 카피가 덧붙여져 있었다. 특이하게도 김효천 의 이전 김두한 시리즈가 일종의 반일(反日)적인 성격을 띠었다면, 이제 북괴가 등장하며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는 형태를 취한다. 아오야마가의 새로운 오야붕이 된 쟈니( 박근형 )가 가네모도의 빨갱이 소탕을 적극 돕고 나선 것이다. 가네모도와의 대화 도중 영국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는 등 어딘가 낭만적인 모습의 쟈니는(그래서 그는 ‘센티멘털 쟈니’라 불린다), 북조선의 만경봉호가 뭔지도 모르는 그를 향해 “가끔은 자네처럼 신문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부럽기도 해”라며 은근히 ‘디스’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조총련에 속아서 북송선을 타기 위해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물로 최후의 대결을 벌이러 떠난다. 그들이 결전을 준비하며 일본도를 닦고 온천에서 피로를 풀 때 흘러나왔던 사운드트랙은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1악장’이다. 난감하다고 해야 할지 비장하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그 대목에서, 어쨌건 그들은 국경을 초월한 형제애를 나눈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며 이미 죽을 각오까지 하고 아래위는 물론 넥타이까지 하얀 색으로 ‘깔맞춤’ 한 가네모도에게 쟈니는 말한다. “나도 함께 가는 거다. 난 회장님의 복수를 하고 아우의 큰일을 돕고, 내가 가야할 이유는 너무나 많아.” 죽음을 예상하고 거의 즐기는 표정으로 싸우는 가네모도와 ‘폐병’을 앓으며 힘겹게 싸우는 쟈니의 모습은 거의 장철 감독 영화의 적룡과 강대위를 연상시킨다. 심지어 싸우는 와중에 남자들끼리 간절히 손을 맞잡는 마지막 장면의 정서(오우삼의 < 첩혈쌍웅 >에도 수혈됐던)는 장철의 < 대결투 >(1971)의 판박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센티멘털 쟈니는 “너 때문에 내가 멋있게 죽을 수 있다”며 오히려 그를 다독인다. 반공영화답게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가네모도의 마지막 모습만 아니었다면, < 오사카의 외로운 별 >은 더욱 진하게 가슴에 새겨졌을 것이다. 남자들이 손을 맞잡는 마지막의 비장함 끝으로, 김효천 의 액션영화를 흠모했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발췌해 본다. 감격스럽게도 < 킬리만자로 >(2000) 이후 두 번째 영화 < 무뢰한 >을 촬영 중인 오승욱 감독은 <한국 액션영화>에서 “밑바닥 사내들의 야비함과 비겁함, 그리고 그들의 이상향적인 <수호지>적인 의협, 이런 것에 대한 과잉 애정이 너무나 지나쳐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어버린 과잉의 영화”라며 ‘노골적인 빨갱이 혐오’ 정서에 대해서는 “그 꽉 막힌 혐오와 증오가 왜 우리의 바탕인지를. 그의 영화를 보며 우린 그 시대의 오줌 지린내 고약한 우리 동네의 뒷골목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썼다. 또 < 돌려차기 >(2004)를 만들기도 했던 남상국 감독, 남정욱 이 쓴 「한국영화, 황금기를 찍다」에서는 김효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상찬하고 있다. “김효천 감독의 영화에는 ‘감정’이 있다. 어지러운 시대에 살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사나이의 격한 감정이 살아있다. 주인공을 분노의 끝까지 몰아넣고, 관객이 마음 속 깊이 주인공이 복수를 해 주길 원할 때, 마음 같아서는 관객이 스크린으로 뛰쳐 들어가 악당들을 쳐 죽이고 싶을 때, 바로 그 때! 주인공의 분노를 터트리고, 주인공의 주먹에 악당들은 지리멸렬 나가떨어지고, 관객들은 가슴이 뻥 뚫리면서 주인공의 복수에 박수를 치게 하는 그런 연출의 대가다.” 김희라 이경실 박근형 감독: 김효천 각본: 김효천 개봉극장: 중앙(서울) 관람인원: 30,271(서울)
1930년 경성. ‘황금정 독수리’ 황룡은 신마적에게 기습을 당한다. 상처 입은 채 도망가던 황룡은 염천교 다리 밑을 지나는 도중 죽음에 이르려는 찰나, 그 아래서 거지 생활을 하던 덩치 좋은 사내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의 이름은 김두한.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며 거지들의 왕초인 사나이. 김두한 시리즈 포스터 이 영화를 연출한 김효천 감독은 이전에 김두한이 ‘나의 반생을 그린 영화’로 직접 언급한 적이 있었던 < 팔도 사나이 >를 연출 했고,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5편까지 제작된 < 실록 김두한 > 시리즈의 초기 연출자이기도 했다. (1, 2편 김효천 3, 4편 고영남 5편(여기서는 < 서대문 1번지 >를 의미함. 이혁수 감독의 <김두한 5부 오형제>라는 작품의 시나리오와 포스터는 있으나 개봉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이혁수 연출) 이 정도면 김두한 전문가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물론 지금 세대가 생각했을 때 김두한 영화의 끝판왕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임권택 감독의 < 장군의 아들 > 시리즈가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러나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이 좀 더 예술적인 영역에 다가가려 노력한 액션 영화라면 이전에 제작된 김두한 영화들은 말 그대로 다찌마리 영화였다. 때리고, 부수고, 죽인 다음에 ‘의리’, ‘조선을 위해’ 어쩌고 하면서 ‘협객’의 풍류를 내세우며 영웅시하고 마는 그런 영화 말이다. 1981년에 제작된 < 김두한형 시라소니형 >은 앞서 언급한 김두한 영화들 이후 외전격으로 제작된 영화다. 이른바 ‘협객시대’에 가장 이름이 높았던 두 사람의 이야기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 영화는 둘의 주먹 대결을 떡밥으로 관객을 낚아 올려 농담 같은 영웅담으로 마무리시킨다. 사람들은 ‘누가 이길까’하는 궁금증에 표를 끊지만, 나올 땐 스크린에 넘실대는 살색의 물결에 충격을 받고 길을 나서게 됐을 것이다. 그렇게 떡밥을 물고 만 3만여 명의 관객들…….(KMDb에 기록된 관객 수. 33,000여 명) 가슴은 아프지만 어쩌겠나. 이대근 김두한과 이강조 김두한 한국 액션영화 전문가로서 이쪽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오승욱 감독은 김효천 감독을 일컬어 “감독이기 전에 협객이라 불러도 좋을 사람”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이유를 과감한 배우기용에서 찾는데 그는 스타시스템이 공고한 충무로 판에서 가능성이 보인다면 신인이든 무명 배우든 가리지 않고 기용했던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대단한 히트를 기록했던 < 실록 김두한 >의 주인공 이대근 은 당시 TV에서나 조금 얼굴을 알린 풋내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닌데, 수년간 단역, 조연을 전전하던 이강조 를 기용해 딱히 큰 재미는 보지 못한 영화가 < 김두한형 시라소니형 >이다. 연기도 그렇고 뭐 대단한 매력이 있는 배우는 아니기에 이 영화 이전에 왜 몇 년간 빛을 보지 못했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만은 주연으로 그럴싸하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김두한과 상당히 닮은 듯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징으로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인물에 닮기만 한 사람을 갖다 놓으면 웃기려고 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법. 그게 진지해지면 의도치 않게 더더욱 웃겨지게 되고... 김두한은 황룡의 수하에 들어가 신·구마적을 처리하고 종로의 오야붕이 된다. 그러나 이를 탐탁하게 여긴 야쿠자 오야붕 고노에와 총독부의 미와 경부는 조선인들의 단결을 흔들면서 이들도 제거하기 위해 신의주 최고의 주먹 시라소니를 불러온다. 그렇게 싸움을 붙이려 하지만 서로의 호걸 됨을 알아본 둘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심지어 시라소니는 ‘나이수(nice)’라는 영어도 김두한에게 가르쳐주며 교감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태양이 둘일 수는 없는 법. 그들은 사내로서 대결을 피할 수는 없는데... 사실 시라소니는 김두한과 그렇게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시라소니의 명성을 진작부터 듣고 있던 김두한은 종로에 시라소니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있던 다방에 부하들과 찾아간 김두한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김두한의 부하가 다짜고짜 시라소니를 공격했다가 얻어터진 것이다. 평소라면 당연히 주먹이 불을 지르고 발이 얼굴에 가 턱을 돌려놓았을 것인데 의외로 김두한은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칭하며 부하들의 경거망동을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자 시라소니 역시 사과를 했고 이 두 대인배는 이후에도 큰 트러블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시라소니는 쌀이 좋은 고장 이천에서 온 일명 ‘마렌코프’, 대권의 야욕까지 있었던 주제 모르는 정치깡패 이정재와 평생에 걸친 원수였는데 드라마 <야인시대>에도 이런 부분이 잘 묘사되어 있다. 결전 이렇게 실제로는 크게 사이도 나쁘지 않았던 두 주먹이 한 영화에 호출 것은 높은 명성 탓에 ‘슈퍼맨하고 배트맨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하는 식의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이 둘은 싸우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야쿠자 고노에, 기무라패와 총독부 미와 경부의 연합이 김두한, 시라소니가 함께한 9인의 결사대와 결전을 치르는 것이다. 앞서 다른 잔잔한 재미들이 있지만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서오릉이 분명한 릉에서 싸우는 것부터가 이상하지만, 왜 일본인 오야붕들이 막부시대 쇼군들처럼 의자에 앉아 부하들을 지휘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 그건 넘어가자. 그래도 조선인 건달 9명을 상대하는데 50명은 되어 보이는 일본인들이 칼을 들고 설치는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고노에가 “일본인의 명예가 달린 싸움이다!”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 안쓰러울 지경이다. 게다가 정말 이 시퀀스가 참을 수 없는 것은, 그 50여 명의 일본인이 훈도시만 걸친 채 스크린을 살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점이다. 이쯤 되면 거의 스크린에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는데 우리의 김두한형 시라소니형의 멋지게 싸우는 모습을 보자니 어쩔 수 없이 보긴 봐야겠고 보자니 훈도시... 아 힘든 것이다. 마지막의 호탕한 외침, ‘나이수!(nice)’ 그들의 활약을 멋지게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이런 대규모(?) 다찌마리 씬이 들어갔을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처음부터 단도직입의 연출을 보여주기 때문에 디테일이나 맥락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깡패영화는 유난히 미화되는 부분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때는 그런 영화들이 주류가 되기도 했을 만큼 많이 제작되었고 또 흥행도 되었다. 나는 늘 그런 유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명분으로 아무리 포장을 한들 깡패는 깡패고 폭력은 폭력이다. 게다가 그것이 실존 인물을 가져와 말도 안 되는 스토리를 시치미 뚝 떼고 펼치는 것이라면 위험은 더 할 것이다.(결국 ‘ 조양은 ’이 직접 출연까지 한 < 보스 >라는 영화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땐 정말 갈 데까지 갔구나 싶었다. 심지어 각본이 송능한 !) 사실 김두한이라는 인물도 이견이 많다. 그는 정말 조선인을 위해서 주먹을 썼느냐, 아니면 그저 이권을 따라 움직이면서 포장을 위해 그런 명분을 갖다 쓴 것이냐. 어쨌든 어설픈 영웅주의는 싫다. 그래서 이 영화의 앞뒤 없는 호쾌한 연출이 좋다. 짧은 시간 내에(영화의 러닝타임은 87분이다) 후루룩 일본놈들을 때려잡고, 김두한형과 시라소니형이 ‘나이수!(nice)’를 외치고 호탕하게 정리되는 이 영화는 차라리 그저 ‘농담 한 번 해봤습니당 헤헤 시원하시죠?’ 하는 느낌이 들어 나 역시 호걸이 된 듯 크게 웃고 마는 것이다. 이강조 신우철 장미희 원미경 감독: 김효천 각본: 이일목 개봉극장: 대한 관람인원: 33,537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