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manii]엘지 더블로그 카이스트 한상기 교수님
- 제작년도
- 2010
거슬러 올라가는 대신에 바로 지금 잠시 멈추어 서 보자. 나는 지난해에 몇 편의 영화를 보았다. < 아가씨 > 혹은 < 밀정 >그리고 < 덕혜옹주 >와 < 해어화 >. 그런 다음 약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그 자리에 < 암살 >이 떠오른다. 여기에 변주에 가까운 < 기담 >과 < YMCA 야구단 > < 그림자 살인 > <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 뒤따라온다. 물론 맨 앞에 < 모던 보이 >가 있다. 올해에는 강제징용 간 조선인들이 노역에 지친 나머지 목숨을 건 탈출을 하는 < 군함도 >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경향인지 아니면 시대정신인지 혹은 일시적인 유행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염처럼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부정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는 중이다.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자 갑자기 일제 강점기 문화에로 인문학은 관심을 돌렸다. 좋은 일이다. 나는 언제나 일종의 단절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이 시간적 단층을 언젠가 역사의 담론이 채워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담론들은 단층을 역사화 하는 대신 낭만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메이지유신이 가져온 일본의 근대화는 종종 식민지 경성에 믿을 수 없는 문화적 순간을 마련하였다. 나는 1930년대에 파블로 카잘스와 자크 티보, 알프레드 코르토로 이루어진 카잘스 트리오가 경성을 방문했었다는 기사를 읽고 어떤 쇼크를 받았다. 경성의 ‘모던 뽀이’들과 ‘모던 껄’들은 전설적인 카잘스 트리오의 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가졌었다. 어쩔 수 없는 탄식. 눈앞에서 티보의 저 신비로운 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니, 아니 코르토의 전성기의 미스 터치의 건반을 직접 볼 수 있었다니, 그리고 카잘스의 춤추는 것만 같은 첼로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니, 상상할 수 있겠는가. (다소 역겨운 표현이지만) 식민지 신민들의 과분한 기쁨.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쉬 현악사중주단이 경성에 와서 베토벤 현악 사중주의 레퍼토리를 연주했었다. 이 악보를 역사상 가장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었던 단체의 연주로 들었던 세대. 21세기의 우리는 그걸 고작해야 SP 복각음반으로 수 없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하면서도 도대체 정말 그들의 음색은 어떠했을 지 상상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그걸 들으러 다닌 ‘뽀이’들과 ‘껄’들은 친일분자들의 자식들이었을 것이다. 이미 역사의 저 너머로 스러져버린 조선의 정체성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었을 것이며, 풍문으로 전해온 청산리 눈밭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36년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은 다음 미국에 의해 해방되자 소설가 이광수가 했던 유명한 한 마디. “그렇게 빨리 해방이 될 줄은 몰랐다”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이 말은 수없는 변주의 버전으로 식민지 강점하를 배경으로 한 해방 ‘이후’ 영화에서 마치 알리바이처럼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나는 먼저 한계를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36년을 설명하는 것은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말은 덧붙이고 싶다. 여기엔 아직도 설명되지 않은 (어쩌면 아직도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밀정> (김지운, 2016) <암살> (최동훈, 2015) 한국영화사에는 일제 강점기 36년을 다룬 영화들의 두 시기가 있다. 하나는 1960년대 말에서 1979년까지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지금이다. 나는 앞의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전기 식민지 영화라고 부르고 바로 지금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포스트 식민지 영화라고 부르겠다. 그 둘의 차이는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 무엇보다 먼저 1960년대에 만들어진 전기 식민지 영화들과 바로 지금 만들어지는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 사이의 결정적 차이. 한 쪽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 시대와 직접 맞대면하고 살아보았고 다른 한 쪽은 양쪽 모두 그 시대를 교육을 통해서 학습했다는 사실이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해보고 싶다. 살아보았다, 라는 거의 절대적인 차이. 한 쪽은 영화를 보는 시각적인 리얼리티에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들의 경험이 포함되고 다른 한 쪽은 지식의 상태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물론 경험과 지식의 차이를 단순하게 삶의 문제로 치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수수께끼가 개입한다. 살아본 사람이 대상을 관념화할 수 있는 거리의 한계만큼 똑같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거리의 한계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영화에서 재현의 표식들이 어떻게 공유되었는지를 질문하는 것은 경험이라는 네트워크의 토대를 물어보는 것이다. 별다른 해독을 요구하지 않는 기호들의 기억. 게다가 더딘 근대의 풍경은 아직까지 일제 강점하의 생활을 재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 말뜻은 일제 강점하의 이미지와 말이 여전히 일상 안에 머물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1970년대에 영화를 만들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촬영 팀은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얼마든지 자신들이 살았던 시간의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미지에서 기억은 지속이라는 흐름 안에서 머물고 있다고 일깨워준 베르그송의 조언을 잊으면 안 된다. 순수 지각없이 표상이 성립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것 없이 세워진 포스트 식민지영화들의 향수들이 그리워하는 순수 지각은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여기에 좀 더 복잡한 역사적 논점이 기다리고 있다. 1980년을 경계로 갑작스러운 부동산 산업은 거의 대부분의 도시에서 그 흔적을 폭력적으로 지워나갔다. 여기에 역사의 트라우마에 대한 국가적인 말소 따위란 없다. 오직 자본주의 경제학의 논리만으로 한국사회의 풍경을 바꿔나갔다. 그런 다음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일제 강점하를 오로지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부채 위에 세워진 채 정책적으로 편향되고 부정확한) 자료와 학교 제도의 교육을 통해서만 학습한 세대였다. 그건 만드는 쪽도 그렇고 보는 쪽도 그렇다는 뜻이다.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의 풍경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기호이며 사진을 경유하여 재현된 이차 자료들이다. 여기에는 어디에도 경험이 매개되어 있지 않은 지식의 한계 속에서의 인공적인 세계가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더도 덜도 아닌 < 아가씨 >. <아가씨> (박찬욱, 2016) 임권택 을 설명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나는 그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종종 과도하게 (이런 표현이 용서된다면) 유물론적 경험론에 사로 잡혀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지금 이 표현을 엄밀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화가 일제 강점기를 무대로 건드릴 때마다 거기에는 위태로울 정도로 확신에 찬 어떤 장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거기서 감도는 어떤 정서, 어떤 추억, 어떤 감흥, 어떤 기억, 어떤 흔적, 어떤 시간. 아니 차라리 누군가. 그런 다음 임권택은 이 시간의 선을 망쳐버린 역사라는 법칙 앞에서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져가는 섬광 같은 순간을 붙잡기 위해 애를 쓴다. 임권택의 영화가 아름답다면 그것은 가련한 실패의 수단으로 시청각 기호들이 활동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만 이 무자비한 목적론적 설명. 나는 < 왜 그랬던가 >를 말하기 위해서 여기서는 첫 번째 시기의 일제강점하를 무대로 한 전기 식민지 영화만을 건드려볼 생각이다. 그러면서 이따금 바로 지금 여기의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을 호명할 것이다. 상황을 먼저 설명하겠다. <왜 그랬던가>는 그때 만들어진 거의 하나의 제도적인 장르라고 불릴만한 일제 강점기 독립군 영화중의 한 편이었다. 그냥 간단하게 이 영화들은 인기가 없었다. 이 영화들의 대부분은 마지못해 만들어졌다. 박정희 제3공화국은 북한과의 이데올로기 경쟁 속에서 두 가지 이념을 들고 나왔는데 하나가 (물론) 적대적인 반공주의였으며 다른 하나가 맹목적인 민족주의였다. 한국전쟁의 경험은 가까이 있었고 불씨를 안고 있는 휴전은 반공을 내세워서 민주주의를 향한 어떤 정치적 저항도 무력화시켰다. 그러는 한편 민족주의 이념 전파는 둘로 나뉜 한반도에서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놓고 권력이 헤게모니 장악을 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 되었다. 1960년대 남한 민족주의는 단군의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적 서사(‘우리는 하나다’)와 일제 강점하의 식민지 지배라는 다른 민족에 의한 침략의 경험을 경유시켜(‘소련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북한은 또 다른 식민지이다’, 라는 정식화. 그래서 북한을 괴뢰(傀儡)정권이라고 불렀다) 상상적 공동체로 접합시킨 이데올로기였으며 사실상 그것이 변형된 파시즘이라는 것을 드러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정책 수행과정에서 문화부는 영화를 앞세워 대대적인 이념 홍보를 했으며 (아직 텔레비전이 대중보급되기 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주기 바란다) 영세자본과 탈세, 사실상 암시장 구조에 가까운 배급 체제를 갖춘 그 당시의 한국영화는 검열과 지원 정책이라는 채찍과 당근에 길들여져 정부가 요구하는 것을 순순히 수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힘세고 나쁜 일본, 힘없는 착한 조선으로 단순하고 도식적으로 이분화 되었다. 그런 다음 기괴할 정도로 이 과정에서 민족의 수난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수사로 망설임 없이 가혹한 고문을 개입시켰으며 종종 이 장면에서 여자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육체를 포박당한 채로 전시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훼손당하면서 변태적인 관음적 시선의 에로틱한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소름 끼치게 만드는 순간은 유교를 내세운 검열이 과도할 정도로 성적인 묘사에 히스테리에 가까운 가위질을 하다가도 일제 강점하의 고문장면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해질 때이다. 이를테면 < 아가씨 >의 관음적 마조히즘의 전시와 < 밀정 >에서 잡혀온 다른 ‘남성’ 독립 운동가들을 제쳐놓고 유일한 여자인 연계순을 과도할 정도로 가혹하게 고문하는 장면은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그리고 이 장면들은 전기 식민지 영화들과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 사이의 간극이 서로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들의 논점으로 돌아가자. 여기서 전기 식민지 영화들은 일제강점하 식민지 이야기를 다루는데 아무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건 만드는 쪽도 그렇고 보는 쪽도 그렇다. 남한은 프랑스와 달리 해방 이후 부역자들을 심판하는 일에 실패했다. (아니,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그들만이 부를 성공적으로 축적했다) 그래서 일제 강점하를 다루는 것은 언제나 현실적으로 불편한 일이 되었다. 한국근대사에서 해방은 친일부역자들의 승리의 역사이다. 여기에 복잡한 계산이 끼어든다. 사실상 이 전기 식민지 영화들은 역사를 다룬다기보다는 1960년대 박정희 체제 혹은 1970년대 유신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 블록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국가에 무조건 복종하는 민족주의 이념의 전기 식민지 영화들은 어떤 이해관계에 앞서는 희생을 강요하면서 해방 ‘이후’의 국가에 관한 충성을 어디서 시작하건 동일한 결론에로 이르는 필연적인 정의의 진리인 것처럼 위장시켰다. 그들은 항상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 다음 자발적으로 희생을 받아들였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은 포스트 식민지영화들조차 이런 희생양의 논리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면서 반복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서 보는 것은 우리의 학습 과정이 식민지 강점하의 지식이 아니라 거기서 파생된 해방 이후 이승만-박정희 체제라고 불리는 교육 프로그램이 얼마나 끈질기고 악랄하게 뇌에 달라붙어있는 것인지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이미지 서사들이다. 이를테면 < 밀정 > 혹은 < 암살 >. 여기에는 어떤 전도가 있다. 이 전도를 이론화 시키는 것은 이 지면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지만 정식화시킬 필요는 있다. 이때 이 정식은 일종의 도착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내 선택이 옳기 때문에 내 민족을 위해 희생한다, 로부터 부지불식간에 내 민족을 위해 희생하기 때문에 내 선택이 옳다, 라는 착각에로의 자리바꿈은 나를 국가 앞에 완전히 굴복시키기기를 요구하는 유신정권의 파시스트 정책에 완전하게 부합하는 문화적(이자 동시에 정치적인) 훈련과정의 반복이다. 나는 이 기괴한 정식을 들고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 식민지 시대를 경험했던 세대의 전기 식민지 영화에 대해서 질문해보려고 한다. 「마록열전」 그리고, 그리고 반드시 여기에 셈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은 < 왜 그랬던가 >를 만들었던 해이다. 1975년 11월 15일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그 해 1월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로 통과되었고 4월 8일에 긴급조치로 인민혁명당 재건위 관련자를 체포한 다음 대법원 판결을 내리고 8명을 채 하루가 되지 않아 사형 집행했다. 5월에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었고 온 세상이 숨을 죽였다. 민방위를 창설하였고 무시무시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해 이만희 는 < 삼포가는 길 >을 편집하다가 편집실에서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 바보들의 행진 >은 검열로 거의 사지절단 당하다시피 했다. 가장 나쁜 상황. 임권택 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론 여기서 멈춰야 한다. 나는 지금 전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비평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 순간 왜 당신은 잭 런던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여야 했나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그저 세간에서는 새마을 국책영화를 만들고 B급 다찌마와리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당신을 부르던 시간에, 그저 혼자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내면의 풍경 앞에서, 어쩌면 사정없이 조여들어오는 연좌제의 두려움 앞에서, 왜 위험하기 짝이 없게도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을 만들어야 했나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왜 그랬던가>를 보다가 그 문제의 ‘桃苑茶室’에서 김참의의 아들이 송주희에게 잭 런던의 책을 건네주는 순간 무언가에 감전된 것만 같은 쇼크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아마, 당신도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족보> (1978) <왜 그랬던가> (1975) 나는 몇 번이고 같은 자리로 돌아와서 임권택 의 영화들이 서로를 이루는 방식에 대해서 종종 (데리다의 멋진 표현을 빌려) 서로 대리하거나 보충하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토대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한 가지 단서를 달아야 한다.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종합이란 없다. 그는 자기의 내부를 모순된 사태 그 자체로 내버려두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종종 영화들 사이에서 약간 의아할 정도로 이 영화가 저 영화의 무언가를 폭로하는 듯한 거울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다. 이때 대부분 이 문제를 앞으로만 밀고 나아간다. 나는 오히려 반대의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고 싶어진다. 그 자리에 놓인 영화중의 하나가 < 왜 그랬던가 >이다. 임권택의 영화를 설명하는 대부분의 비평은 <왜 그랬던가>를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는 숨은 걸작, 같은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왜 그랬던가>가 없었다면 < 족보 >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상 두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반복한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단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만이 아니다. 두 영화는 모두 친일부역자였던 아버지가 (서로 다른 이유이기는 하지만) 일련의 시련을 겪으면서 죽음을 대가로 치르면서까지 자기보다 소중한 그 무언가를 지키려고 한다. 같은 말이 반복. 자기보다 중요한 그 무언가. <왜 그랬던가>의 일본 경찰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동포를 밀고하는 마영과 <족보>의 모두로부터 존경받는 수원 유지인 설진영은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서로 전혀 다른 자리에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아가면 그들은 아무 것도 잃지 않고 살 수 있었지만 그것을 내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과 바꾼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일한 과정을 거쳐 같은 결론에 이른다. 심지어 <왜 그랬던가>에는 이야기의 진행과 아무 상관도 없이 조선 총독부의 경감이 기노시타 형사를 세워두고 조선 도자기를 감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경감은 감탄을 하면서 “조센징들이 우리들보다 월등히 앞섰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라는 대사를 한다. <족보>의 설진영은 자살하기 직전에 도자기를 정성스럽게 정리한다. 둘 사이의 유사점은 주인공에서 멈추지 않고 마치 서로 공명현상을 불러일으키기라도 하듯 이상한 곳에서 반복된다. <왜 그랬던가>에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송주희가 일본 형사들에게 고문당하는 것을 마영은 고통스럽게 지켜본다. <족보>에서 딸의 약혼자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설진영을 핍박하기 위해 붙들려가 고문을 당한다. 다소 가혹한 표현이지만 그들 자신은 고문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과정은 동일하게 그들을 자발적인 죽음에로 이끈다. 여기서 왜 구경꾼들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이때 나는 다소 기이하게 반문해보고 싶어진다. 일제 식민지 강점하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차라리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임권택이 일제 식민지 강점하에서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은 무엇일까. 그런데 그 무언가는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동일한 보물로 취급될 수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그 보물은 해방이 되자 거의 돌아보지도 않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을까. 혹시 여기에 전기 식민지 영화(들)의 어떤 수수께끼 같은 핵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이 질문에 대해서 임권택 은 < 왜 그랬던가 >에서 거의 하나의 정식화와 같은 대답을 제시한다. 마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하나의 조건에 놓여있다. 그것은 물론 일제 강점기에 놓여있는 그의 조국이다. 마영이 체포되어 감옥에 끌려 갈 때에도 세상에는 어떤 변화도 감지되지 않는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일은 마침 그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영의 거의 유일한 소망대로 그의 아들은 경성제국대학에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받는다. 그러므로 마영의 변화는 외부 조건의 변화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의 어떤 요구에 따른 것이다. 어떤 정신적 신호. 그리고 응답. 이때 그 설명을 단순하게 마영의 신념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렇게 말해버린다면 차라리 이건 신념이라기보다는 변덕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 어떤 조건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영의 변화를 주변의 누구도, 심지어 그의 가족들조차, 이제까지 아버지를 경멸했던 그의 아들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마영은 이 순간 이제까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속적 성공의 거의 문턱 앞까지 가까스로 도달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걸 자포자기하듯이 버린다. 지금 자신이 하는 행위가 결국에는 실패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무엇이 마영을 이기적이긴 하지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삶으로부터 도무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차원의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희생의 선택에로 이끄는 것일까. 마영이 희생을 한다고 해서 독립운동의 큰 사건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국면이 전환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는 것도 아니다. 마영은 민족, 과 같은 거대한 담론에는 끝끝내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것이 임권택의 영화가 그 주변의 전기 식민지영화들과 결별하는 지점이다. 역사 앞에서 좀 더 냉정하게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일본 식민지로부터 독립운동을 통해서 안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전쟁에 항복함으로써 바깥으로부터 수동적으로 얻어진 것이다. 게다가 <왜 그랬던가>의 인물들에게는 주어진 조건에 대한 어떤 외부적 정보도 주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임권택은 이들의 세계를 어떤 가능성으로부터도 차단된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끊임없이 전선을 확장하고 지칠 줄 모르는 전쟁을 했지만 마영은 세계의 새로운 질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 전혀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가혹하게도 객관적으로 마영은 이 상황에서 그저 희생당하는 것이다. 객관과 주관 사이의 서로 넘을 수 없는 간극.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그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선택은 오로지 그 자신을 위한 결정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이행이 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마영이 자신의 정신적인 매트릭스 자체를 현실적인 조건으로부터 그 무엇인가의 환상에로 옮겨놓은 것이다. 마영은 왜 현실로부터 환상에로 자발적으로 이행하는 것일까. 가장 쉬운 대답은 마영이 윤리적 결단을 내린 다음 그 심연을 횡단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반론은 간단하다. 그렇다면 왜 해방이후에 임권택의 주인공들은 동일한 행위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내 대답은 전기 식민지영화들, 그 영화들 모두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임권택은 오직 여기서만 성립하는 셈을 치루면서 그것이 보물과 바꿀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결단을 내리는 중이라는 것이다. 마영 자객 그 보물은 무엇일까. 그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약간 장황하게 이야기의 윤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영은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일본 경찰에게 밀고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리 빼돌리며 양쪽에서 돈을 챙기는 박쥐같은 인간이다. 하지만 마영은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해서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순간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가 부끄러운 줄 모른다기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자기 자신을 위한 알리바이가 있다. 알리바이? 그렇다.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의 입장. 물론 그 자신도 자기가 무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죄의식을 성공적으로 떠넘긴다. 그때 그의 죄에 대한 책임은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 그의 아버지에게 있다. 마영은 한일합방에 반대한 아버지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쳤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다. 영화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분노한 마영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 그가 살아가는 세계의 밤. 박쥐가 마음껏 날아다니는 시간. 이때 박쥐는 오로지 자기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마치 자기의 망친 삶의 원인을 향해서 복수를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만일 그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다른 기회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는 주변에 자기를 노리는 수많은 자객들에게 쫓기면서 수시로 이사를 다녀야 한다. 마영은 지금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하는 중이다. 첫 시퀀스가 끝나고 집으로 귀가하면서 그를 뒤쫓는 자객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런 다음 자객은 내내 그의 뒤를 쫓으며 기회를 보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이 일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일말의 후회도 없이 수행하는 중이다. 무엇이 그에게 이 일을 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일까. 임권택 은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더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단순해보이지만 그의 삶 전체 내내 진행되어왔던 그 무거운 그림자와의 투쟁. 마영이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배신하고 밀고하는 것은 역사의 이치를 반대한 아버지 때문에 망친 자기 삶에 대한 보상의 요구이다. 약간 따분하지만 좀 더 도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마영의 행위는 아버지의 결정으로 자기 삶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을 과정과의 주관적인 인정투쟁이며 역사의 객관적인 진행을 외면하고 자기 서사의 내면화로 재도식화 해나가는 퍼포먼스이다. 이때 그 밑바닥에는 애처로운 호소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버지, 왜 당신은 당신의 아들의 앞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나요. 당신의 아들이 살아야 할 조선이 한일합방이 된 다음 식민지라는 사실이 되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걸 정말 몰랐나요. 일본 식민지가 되었을 때 당신의 아들은 어떻게 견뎌야 하나요. 아버지의 침묵. 마영의 아버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이미 마영에게 오직 부정하는 것 이외에 대결할 방법이 없는 대상이 되었다. 이때 이 모습은 마영의 절반이다. 그는 집에 귀가하자마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애로운 아버지가 된다. 그런 다음 자신의 아들이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기만을 바라면서 그걸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잠시 후에 마영이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으는 이유가 아직 합격하지도 않은 아들의 대학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이유를 서둘러 충족시키려는 이 간절함. 이때 마영의 행위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행하지 않은 것의 정확한 반복이다. 혹은 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의 재현이다. 나는 내 아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럴 뿐만 아니라 그걸 위해서 내가 무얼 해야 하는 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므로 그걸 해야만 해요. 만일 이것을 마영이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행위라고 읽으면 그건 표면만을 건드린 것이다. 정확하게 마영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하지 않은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데까지 밀고 나간다. 이 부정적 동일화. 혹은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서사와의 동일화. 이때 마영의 동일화는 보편 역사로부터 떨어져 나와 특수하고 개인적인 서사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반대로 이 서사가 마영을 포획하고 그 안에서 텅 빈 서사의 공백을 메우라고 요구하기 시작한다. 비극은 마영이 객관적인 현실 속에서 가상의 대리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그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는 텅 빈 공허 안으로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도 내 청을 들어주시오.” 일본인들에게 폭행 당하는 마영의 아들 “아버지, 이야기나 할까요” 그리고 갑작스러운 중단 갑작스러운 에피소드. 마영의 아들은 합격통지서를 받아오던 날 술에 취해서 느닷없이 아버지에게 질문한다. “나도 아버지 부탁대로 했으니 아버지도 내 청을 들어주시오.”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나는 개의 자식으로 살으리오까, 늑대의 자식으로 살으리오까?” 물론 잭 런던의 책을 빌린 질문이다. 이때 이 책을 읽은 적이 없는 마영은 이 질문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아들이 술 취해 하는 소리로만 생각할 뿐이다. 바로 다음 시퀀스. 마영의 가족은 함께 경복궁에 나들이를 간다. 여기서 백주 대낮에 근정전 앞에서 오줌을 싸는 아이를 수수방관하는 일본인 엄마에게 마영의 아들은 예의를 갖추어 야단을 친다. 하지만 이것을 모욕이라고 생각한 일본인 엄마는 다른 일본인들을 끌고 와 마영의 아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한다. 자기 아들이 폭행을 당하는 꼴을 본 마영이 달려가 말리지만 그들은 함께 가세한 일본인들에게 그저 무기력하게 당할 뿐이다. 그런 다음 이상한 씬이 이어진다. 아들은 이불에 누워있고 마영은 벽에 기대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아들은 아마도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누우세요, 아버님도” 그 말을 듣고 마영은 옆 자리 이불에 눕는다. 그러자 아들이 말한다. “아버지, 이야기나 할까요” 임권택 은 매우 공들여 연출하다가 갑자기 여기서 쇼트의 진행을 중단시킨다.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마영이 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는지, 아니면 한 밤중에 부자지간에 언성을 높였는지, 그도 아니면 이야기는 중단되고 잠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임권택은 이 결정적인 순간을 하나의 블랙홀로 만들어버린다. 아마 보물은 그 블랙홀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임권택이 보물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마스크를 쓴 마영 물론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마영은 그 다음 날 경찰서로 출근하면서 입가에 난 구타 흔적을 감추기 위하여 큰 마스크를 쓴다. 이때 이 마스크는 동시에 밀고가 어제까지의 일이었던 마영이 그 행위를 거절하는 하나의 기호처럼 읽힌다. 그런 다음 마영은 적극적으로 자신이 이제까지 밀고 대상으로 삼았던 김참의 아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독립운동을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다고 갑자기 민족에 대해 자신이 해야 할 어떤 임무를 깨달은 것도 아니다. 이 영화에는 그런 순간이 없다. 다만 이건 마영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의 제스처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는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용으로는 반대이지만 형식적으로 이 행위는 이제까지 마영이 해온 것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다만 그 방향이 세 개의 씬을 사이에 두고 반대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기서 까다로운 운동이 발생한다. 무엇을 하려는 지는 알겠다. 그런데 마영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 대립의 운동에 대해서 먼저 그 성격을 살펴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마영은 이제까지 부정해온 것을 긍정하면서 긍정해온 것을 부정하는 중이다. 이때 목적어는 민족이나 독립운동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아들 사이를 매개하는 텅 빈 자신의 자리이다. 그는 이제까지 아버지와 자신의 선을 끊어내기 위해서 부정의 행위를 맹렬하게 해 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아들의 선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절단도 중단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차라리 이 과정은 만들어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의 반복인 것이다. 늑대는 개가 아니며 개는 늑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늑대는 개가 되는데 실패한다. 세 개의 선은 서로 연결된 것이며 사실은 하나의 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바카야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너희들 왜놈이 아닐까?” 이제 거의 기괴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마지막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임권택 은 여기서 보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마영은 김 참의의 아들을 돕지만 그의 계획은 거의 완전히 실패로 끝난다. 모든 계획은 탄로가 나고 마영은 그렇잖아도 의심의 눈길을 보내던 기노시타 형사에게 체포된다. 마영이 이제까지 해 왔던 밀고 행위에 대해 단 한 번 속죄를 하기라도 하듯 목숨을 걸고 했던 행위는 실패로 끝난다. 더 상황을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은 큰 부자인 김 참의는 총독부에 돈을 바친 다음 사건을 무마시킨다. 김 참의 아들 관점에샬옌뺨摸?여기까지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어떤 장애물도 없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리둥절할 정도이다. 그렇게 되면서 사실상 마영의 행위는 그 자체로 무의미해진다. 그렇다면 이 실패의 서사가 왜 필요해진 것일까. 나는 여기서 이 질문을 더 밀고 나아가고 싶다. 왜 세 개의 씬, 그러니까 블랙홀처럼 막아선 세 개의 씬 다음에 실패가 기다리고 있느냐는 것이다. 편집은 마치 이 실패가 세 개의 씬의 결과처럼 읽힐 수도 있게 배치되어 있다. 잡혀온 마영 앞에서 기노시타 형사는 거만하게 충고하듯 말한다. “바카야로, 아무리 날뛰어봤자 조선은 영원히 일본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거야. 알았나, 바카야로” 그러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영은 기노시타 형사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대답한다. “내가 광복된 조국을 못 본다고 치자, 그리고 또 내 아들이 조국의 광복을 못 본다고 치자, 그러나 아들에게는 손자가 있고, 또 손자의 아들이 있고, 이렇게 우리 민족이 멸망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광복의 날이 온다. 바카야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너희들 왜놈이 아닐까?” 마영이 생각하기에 ‘왜놈’이 정말 깨닫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답은 언젠가 광복의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마영은 자신이 그걸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들도 볼 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 아들의 아들도 볼 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이 선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 마영의 대답에는 만일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광복을 볼 수 있다면 그건 자신이 보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여기에 역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선은 반대로 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성립하는 것이다. 이 대답을 하는 순간 마영은 이제까지 부정한 아버지를 완전하게 긍정하는 것이다. 보물은 여기에 있다. 이 선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 대답을 임권택은 좀 더 정교하고 세련되게 < 족보 >에서 한다. 얼핏 보면 차이를 알 수 없는 그 대답 속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어떤 심연이 있다. 대부분의 전기 식민지영화들이 그 대답을 민족에서 찾을 때 임권택은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 유교에서 이끌어낸다. 유교라는 절대적인 지식. 이때 절대적인, 이라는 표현은 거기에 모든 것이 우선권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에 한계를 부여한다는 뜻에서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권택은 우리가 무엇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엇에로 되돌아오는지를 분명하게 만든다. 같은 동포들 중의 누군가가 해방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임권택은 그것을 분명히 한다. 내 아들이 보아야 하고, 아들의 아들이 보아야 하고,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보아야 한다. 나는 이것이 올바른 대답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대답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 씨받이 >를 다루면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민족주의가 권력의 담론이 되었으며 동시에 법의 통치수단이 되었던 시기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중이다. 영화에서 민족은 권력자의 형상이 되었으며, 그 안에서 국민은 끊임없이 민족으로 환원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임권택은 예기치 않은 것을 꺼내 들었다. 이것은 단순하게 아버지와 아들의 정신분석적인 도식에로의 환원이 아니다. 마영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운명에 이끌리는 오이디푸스와 달리 너무 많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제기된 것은 특수한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유교적 ‘父子’의 귀환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권택은 이 과정에서 마영이 아버지라는 자리를 결국 떠맡게 되는 것을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안에 들어가는 대신 유교라는 의무의 체계 안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뒤집는다. 이것은 비로소 그 속에 나도 포함되었다는 상상이 안겨주는 기쁜 희생이 아니라 결국 그 안에 있어야한다는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반성에 찬 희생이다. 보물은 아들을 아버지로 만들어주는 그 무시무시한 체계 안의 선이다. 그렇다면 뒤따라오는 질문에도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임권택 이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이 귀환은 해방 이후에는 사라졌는가. 무엇이 이 귀환을 가로막는가. 반대로 무엇이 식민지 강점하에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가. 거의 뒤따라 만들어진 < 깃발없는 기수 >나 < 짝코 >에서 그들은 보물을 누릴 기회를 갖지 못한다. 혹은 좀 더 뒤에 만들어진 또 다른 한국전쟁 이후의 정식화인 < 길소뜸 >은 그 보물이 완전히 유실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니, 차라리 해방(과 뒤이은 한국전쟁)은 유교라는 체계를 어떻게 갈기갈기 찢어놓는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때 무엇이 무엇으로 이행하고 있는가. 반대로 < 씨받이 >에서는 비극의 형태로 재빨리 그것이 되돌아온다. 여기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나는 이미 매우 느슨하게 임권택의 영화가 유물론적 경험론에 사로잡힌 것 같다는 표현을 썼다. 임권택은 종종 자기가 경험한 세계를 그 어떤 다른 것으로 환원불가능하게 다룬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그것은 일회적인 세계이며 거기서 발을 빼는 것은 이미 경험한 것을 추상적으로 만든다는 두려움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완강해진다. 이때 그의 영화 안에서 내가 느껴보는 것은 완전히 파악될 수 없는 현실 안을 통과하기 위해서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그 세상을 살아내고 있던 부모의, 부모의 부모의, 태도를 경유해서만 그 거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흐릿한 인상이다. 고향이라는 공동체. 안전한 집.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반복적인 문중제례. 앞으로 나아간다기보다는 원을 그리는 것만 같은 시간의 계절. 여기에 갑자기 단절이 생긴다. 한국전쟁과 가출. 그런 다음 그가 부모 곁을 떠나서 만난 세상과의 관계에서 그는 그 거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처럼 현실과 마주친다. 어떤 우회도 없는 경험. 그는 부모 곁을 떠나는 순간 그 보물을 잃어버렸다. 물론 이 표현이 몹시 위험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차라리 이것은 비평의 언어가 아니라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설명할 수는 있다. 임권택의 영화를 나누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번에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기준으로 둘로 나눠보고 싶다. 임권택은 양쪽 모두에서 현실 속에서 해소되지 않는 적대적인 관계들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 지를 다룬다. 이때 기이하게도 해방 이전을 다룰 때마다 임권택은 그 시간을 일종의 진공상태와 같은 상황에로 밀어 넣는다. 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다시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 그냥 그 자체로 주어진 세계. 그의 영화에서 이 시간이 역사성을 갖게 된 것은 < 개벽 > 이후에서나 가능해진 일이다. 임권택은 매번 이 시간에 이를 때마다 그 자체로 완결된 것만 같은 세계 안에서 사건을 만난다. 사건은 왜 발생하는가. 그것은 이 세계 안에 무언가 불완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건 앞에서 비로소 진공상태는 자기의 형식 안에 결여된 구멍을 내보이고 임권택은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 그 내용을 끌어내는 것으로 자기 서사를 진행시켰다. 이때 주인공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견디는가. 결정적인 차이는 해방 이후의 영화들에서 주인공들이 사건으로부터 소외되어 나간다면 반대로 해방 이전의 영화들은 그 사건 안으로 주인공들이 완전히 동화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 말을 유심히 읽어주기 바란다. 그들은 상황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동화되는 것이다. 이 동화의 과정에서 임권택은 일관되게 유교라는 규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바라보면서 사건의 순환을 더 없이 순종적으로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주인공들이 파괴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련하게 지켜본다. 반대로 이 규율이 파괴되자 임권택은 그 상실감에 가득 차 때로는 우울하게, 종종 차디차게, 그리고 어떤 동정심도 없이, 그저 수수방관하면서 쳐다본다. 거꾸로 뒤집어 세운 카메라 나는 여기서 이제 이 영화가 할 이야기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다음, 그러니까 마지막 장면 다음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불러야 할, 그저 괴이하다고 밖에 달리 말하기 힘든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마영은 호기롭게 기노시타 형사를 꾸짖은 다음 그를 기다리고 있을 감옥에로 향하는데 그때 이제까지 그의 뒤를 쫓으면서 동포를 밀고했던 처단하려고 했던 사내의 기습적인 칼이 날아와 그의 등에 정확하게 꽂힌다. 물론 그 사내는 마영이 이제까지의 그의 행위를 반성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김참의의 아들을 구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이러니한 성공. 매번 실패하던 그 시도는 실패해야할 순간 기다렸던 것처럼 성공한다. 그 사내는 자신의 시도가 성공하자 재빨리 경찰청을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때 등에 칼이 찔린 채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면서 마영은 그 사내를 걱정하듯이, 마치 그 사내가 자기 말을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중얼거리면서 말한다. “잡히지 마라, 잡히면 안 돼, 안 돼, 바보 녀석, 그리로 가면 잡힌다구, 담 쪽으로 뛰어, 그렇게 힘을 내서 뛰어, 잘했어, 왜놈에게 잡히면 안 돼지” 하지만 그게 이 장면의 전부가 아니다. 임권택 은 도망치는 사내를 마영이 쓰러져 누운 채 죽어가면서 바라보는 시선으로(point_of_view_shot) 찍었다. 이때 영화는 도망치는 사내를 아래 위가 뒤집힌 이미지로 보여준다. 그래서 사내가 담장을 넘을 때 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임권택은 이런 방식으로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찍은 적이 없다. 마영은 칼을 맞은 다음 그냥 돌아서서 볼 수도 있었다. 혹은 바닥에 누웠다 할지라도 구태여 카메라를 거꾸로 세워서 찍을 필요는 없다. 아니, 차라리 화면의 아래 위를 바꾸기 위하여 마영을 바닥에 눕혔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임권택의 카메라를 거꾸로 뒤집어 세운 것일까. 나는 여기서 마영을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안으로 통합시키려는 유혹에 대한 임권택의 완강한 거절의 제스처를 느낀다. 마영은 자신과 아들 사이의 관계를 경유하여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회복한 것에 대해서 (어쩌면)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그가 회복한 것은 일제 강점기의 억압받는 민족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뿌리 깊은 유교의 부름인 것이다. 그래서 이 아래 위가 뒤집힌 카메라는 마영이 중얼거리는 그 말, 그가 자신의 등에 칼을 찌르고 도망치는 사내에 게 베푸는 관용에 대해서, 그 오해에 대해서, 그 잘못된 환대에 대해서, 교정하는 시선이다. 여기에는 민족을 향한 어떤 열정도 없다. 그러기는커녕 마영의 저 희생적인 용서에 대해서 아이러니한 감정을 품고, 약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차갑게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이, 그렇게 뒤집는다. 임권택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보물이 무엇이 아닌 지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분리선. 하지만 아직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임권택에게 일제 강점기라는 시간은 그것을 분리해내는 시간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이 모든 질문의 출발처럼 보이는 그 한복판에 선다. 그런 다음 그 안에서 나눔의 질문을 시작한다. 어떤 분류. 모두들 각자의 방식의 분류를 해냈다. 그걸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이 보여준다. 박찬욱의 분류. 김지운의 분류. 류승완의 분류. 최동훈의 분류. 분류의 소음들. 그때 누가 어떤 부름을 따르느냐는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부름들 사이의 차이. 이 차이가 그들의 인물들을 이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각자의 주체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주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 안에서 임권택은 민족적인 주체와 유교적 주체를 분리해낸 다음 한 쪽을 버리고 다른 한 쪽을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이 장면을 대사와 이미지 사이를 둘로 찢어낸 것만 같은 결단의 이유일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주체 앞에 붙어있는 이 술어에 대해서 반복해서 더 많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아마 그래야만 할 것이다. (계속) 1975년 105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우성사 각본 이은성 촬영 이석기 조명 최임춘 편집 김희수 음악 한상기 허장강 박근형 양광남 박지훈
여기서는 장황하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먼저 < 아내들의 행진 >의 포스터를 잠시 보아주기 바란다. 한 여성이 보기에도 힘겨운 돌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번쩍 들어 마치 자신의 아이를 안기라도 하듯 그런 자세로 서 있다. 그녀의 옷매무새가 벌어져 그 사이로 브래지어가 젖가슴을 가까스로 가리고 있고 치마를 걷어 올려 무릎 위 허벅지가 드러나 보이지만 바라보는 사람에게 이 그림의 디테일 어디에서도 성적인 자극을 주는 유혹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당당하고 약간 거만하게까지 느껴진다. 건강함. 하지만 과장된 건강함. 약간 두텁게 칠해진 위에 다시 덧칠한 것이 분명한 터치도 그런 인상을 더 한다. 게다가 전체를 검붉은 색으로 물들인 색채가 약간 위압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온통 불타오르는 듯한 힘, 그 사이를 뚫고 비치는 서광. 붉은 어둠, 혹은 암흑 사이로 내비치는 어떤 계시. 종종 종교적인 그림들에서 마주한 맹목적인 희망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차라리 두렵다고 할까. 그녀가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 주변을 에워싼 인물들에 비해서 필요 이상으로 큰 비례로 그려진 모습이 위압감을 주면서 단지 주인공이 아니라 아마도 그녀 주변 인물들을 이끄는 지도자라는 표지를 전달한다. 마치 괴물처럼 큰 주인공.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이다. 다소 기괴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키는 이 거대한 모습. 그녀는 주변의 얼굴조차 눈 말고는 윤곽이 거의 뭉개져 버린 듯한 한 무리의 사람들에 비하면 또렷한 얼굴의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하지만 내 시선을 끄는 것은 구태여 선명하게 그린 팔꿈치와 무릎 사이로 마치 빠져나올 듯이 버티어선 뼈마디이다. 그녀는 지금 노동을 하는 중이라는 것을 하여튼 보여주고 싶어 한다. 나는 두 개의 지시어를 하나로 합쳐보고 싶다. 노동 지도자. 바로 오른쪽에는 영화를 설명한다기보다는 왠지 그녀를 설명하는 것만 같은 인상을 주는 카피가 그녀와 똑같은 자세로 위에서 아래로, 세로로 내려써서, ‘證言에 이어 내놓은 汎國民映畵!’ 라고 달려있다. 이때 포스터를 보는 우리가 불려가는 카피 안의 자리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에워싼 얼굴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주변의 여자들이다. 汎國民 映畵, 라는 이상한 말. 여기에는 동원의 명령이 담겨있다. 국민이라는 당신, 그런 다음 국민으로 (재)통합하기. 汎, 이라는 강력한 명령. 마치 그 명령을 가시화하기라도 한 것 같은 견고딕의 서체. 그 아래 굵은 먹글씨 풍으로 쓴 제목 <아내들의 行進>. 행진이라는 말에 담겨있는 서사의 시각적 알레고리. 벤야민의 말을 빌리면 이 포스터 위에 놓여있는 제목의 서체에는 조각난 상형문자의 비의적 순간들이 이어지는 어떤 연속이 놓여있다. 어떤 영웅적 서사의 오작동. 이 표현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싶다. 어떤 영웅. 나는 영화에서 이런 형식의 포스터를 사회주의 체제아래에서 만들어진 국영 제작소의 영화들을 위한 다른 수많은 예를 알고 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아내들의 행진>은 잘 알려진 것처럼 새마을운동을 홍보하기 위해 (문화공보부 산하기관 중의 하나인) 영화진흥공사에서 만든 국책영화이다. 자본주의 근대화를 위해서 시작한 새마을운동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들을 계몽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이 시기의 수많은 프로파간다 대중선동 문화 중의 하나였던 영화중의 한 편. 그저 영화 한 편. 그런데 이 포스터는 이상할 정도로 이 체제가 불온시하고 콤플렉스에라도 걸린 것처럼 창백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증오하고 적으로 삼아 내부에서 고발하고 외부에서 대치 중이었던 이데올로기의 문화적 양식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포스터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화 취향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기자도 아니며 제3공화국의 연구자도 아닐뿐더러 이 세대에 속하지도 않는) 내가 여기서 제한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영화에 관한 자신의 견해나 취향에 대한 인터뷰를 한 적이 없으며 영화에 관한 저서를 남기지도 않았다. 아마도 국가 지도자 중에서 영화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저서로 남긴 유일한 예는 김정일 북한 전 국방위원장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북한영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참고문헌을 통해서 저서의 존재를 알고만 있을 뿐이지 그 내용을 알지는 못한다) 이건 사회주의에서도 드문 일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톨스토이에 관한 문건을 남겼으며 고리키와는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인민을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영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글을 남기지 않았다. 에이젠슈테인의 < 이반 대제 일편 >을 보고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스탈린은 1950년 언어학과 마르크시즘에 관한 짧은 테제를 썼지만 (이 글은 미셀 페쉐를 경유하여 알튀세 학파에 적지 않은 영감을 주었다) 영화에 대해서 문건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건 마오쩌둥도 마찬가지이다. 감옥에서 영화를 볼 여유가 없었던 그람시는 대중들의 동의를 끌어내야 하는 헤게모니의 진지전에서 거의 영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람시가 영화를 언급한 건 1916년 8월 26일에 발표한 “연극과 영화”가 전부이다. (그리고 그 글에서 어떤 영화제목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람시는 영화보다는 대중들의 전선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소설, 단테의 「신곡」 중 ‘연옥’편, 루이지 피란델로의 희곡을 연구하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 다음 그람시는 감옥에 갔다.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었던 요제프 괴벨스는 영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아돌프 히틀러가 영화에 관한 글을 쓰진 않았(던 것 같)다. 지도자와 영화, 국민영화. 나는 단순하게 파시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차적 간극에 대한 약간의 설명. 내가 < 아내들의 행진 >을 처음 본 것은 새마을운동이 막 시작되었던 이 영화의 개봉 시기인 1974년 5월 16일 주변이 아니라 그로부터 한참을 더 지나 새마을운동이 민관유착에 의한 부패의 온상이 되고 난 다음 비판에 직면한 새마을 중앙본부가 새마을 중앙협의회로 변신을 꾀하던 1987년 무렵이었다. 나는 오로지 임권택 감독과의 인터뷰를 위해서 이 영화를 비디오로 보았다. 처음 개봉했을 때 국제극장 앞을 지나면서 간판을 본 기억도 난다. 하지만 이 영화에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새마을운동은 그때 음산한 희망의 (거짓된) 약속이라는 걸 모두들 알면서도 애써 침묵을 지켰다. 몇 가지 구호를 외우면 언제든지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는 도덕 과목 같은 것이었고 그렇게 해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시험에서 문제를 풀어낸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어긋남의 지루한 동요 속에서 모두들 새마을운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새마을 국책영화 <아내들의 행진>을 그 자리에 위치 지은 다음 곧바로 잊어버렸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 족보 >를 통해서 임권택을 발견한 다음에도 그 이름과 <아내들의 행진>을 금방 연결시키지 못했다. 내가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순서대로 작품 연보를 정리할 때였다. 그런 다음 <아내들의 행진>을 (비디오로) 처음 보게 되었다. 먼저 줄거리를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지순은 성공적인 새마을운동을 이룬 마을에서 지도자인 오빠와 함께 자란 다음 아직 새마을운동을 시작하지 않은 가난한 마을 한밭골로 시집을 온다. 이 마을에서 우여곡절 끝에 지순은 마을 아낙들을 중심으로 가난의 원흉이었던 장마철 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한 방죽을 세우면서 새마을운동을 시작하고 그녀들의 노력에 감복한 남편들도 함께 힘을 모아 버려진 농지를 개간하여 부자 마을이 된다. 자, 여기까지는 아무래도 좋다. 그런데 나를 당황시킨 것은 마지막 시퀀스 전체였다. 갑자기 기습이라도 하듯이 방향을 틀어서 이 마을에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만수댁의 남편이 무장공비가 되어 돌아온다. 영화는 새마을 영화에서 반공영화로 어리둥절하게 바뀐 다음 잔인무도한 공비들의 만행과 국군장병들의 용감한 대처 끝에 일망타진하는 장면을 보여주더니 갑자기 끝나버린다. 나는 처음에 비디오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에 다시 되돌아가서 문제의 장면부터 반복해서 보았다. 영세한 산업이었던 비디오업체들은 종종 필름 릴을 뒤죽박죽으로 섞거나(< 삼포 가는 길 >의 ‘악명 높은’ 비디오) 때로 90분 테이프의 길이에 맞추어서 제멋대로 영화를 자르거나, 그래서 갑자기 끝나거나, 때로 서로 다른 영화 릴이 엉키고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한편의 제목 아래 이어 붙였다. 하지만 <아내들의 행진>은 외형적으로 (화질이 너무 나쁘다는 문제를 제외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너무 이상해서, 하지만 조심스럽게, <아내들의 행진>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결국 마지막 시퀀스에 대해서 임권택 감독님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때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돌려받았다. “그거는 윤주영 (문화공보부)장관이 넣으라고 해서 들어간 거요, 미치는 거예요, 거기를 박정희 대통령이 넣자고 그런다고, 절대로 넣어야 된다고 그러잖아. 나는 계속, 계속 이게 갑자기 무슨 짓이냐고 해도 소용이 없어”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책에는 질문의 반복이라 누락되어 있지만 그때 나는 대답을 듣자마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반문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 영화를 본 건가요?” “그러니까 다 찍은 영화에다가 그런 이야기를 덧붙이라고 말을 한 거겠죠. 원래 시나리오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니까” 잠시만 멈춰보자. 나는 단순하게 여기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월권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은 매우 폭력적이며 잘못된 처사이다. 하지만 그 일은 이미 벌어졌고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그저 비난을 하고자 한다면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거기에 더 할 수 있겠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은 < 아내들의 행진 >을 보았고 (아마도) 몹시 마음이 들었다. 그를 감동시켰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무언가 여기에 결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몹시 위험한 가설을 세워보고 싶다. 참 훌륭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무언가 빠진 게 있어요. 이 영화가 단지 새마을운동을 계몽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말고 더 밀고 나아가 반공 이데올로기까지 담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해서 지시를 내렸(을 것이)다. 왜 그 둘은 하나에 있을 때 비로소 하나가 된 둘이 아니라 둘 각자의 결핍을 채운 하나가 되는 것일까. 영화감독은 그 둘을 서로 다른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지도자는 그 둘이 하나를 둘로 나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의 이념에 대한 하나의 결정적 판본 역할. 하지만 아직 덧셈이 필요하다. 상황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 4월 22일 한해(寒害)대책을 세우는 자리에서 ‘새마을운동’이라는 정책을 꺼내 들었다. 그는 지금 이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김대중은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한 힘겨운 상대였으며 그가 내세운 ‘청년기수론’은 해방 이후에 태어난 세대의 마음을 움직였다. 게다가 공화당은 눈에 보이게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었다. 그해 5월 6일 새마을 사업추진방안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였다. 국가 단위의 근대화 개혁을 시작하라, 는 이 정책적 명령은 정치적으로 근대적이라기보다는 봉건적인 성격에 가까웠다. 백성들을 계몽하라. 그들을 깨어나게 해서 더 큰 잠에 빠져들게 하라. (지젝이 아도르노를 빌려 설명했던) 억압적 승화. 이듬해 4월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가까스로 김대중을 이겼다. (이 선거에 대한 후일의 역사적 평가에 따르면 부정선거의 개입에 의해서, 라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그걸 판단한다는 것은 내 능력 바깥의 일이다) 모든 일이 평화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선되자 내린 결단은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새마을운동과 국가계엄은 거의 평행해서 진행되었다. 이것은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다. 새마을운동은 그것의 취지에 머물지 않고 그것의 과정을 함께 보아야만 한다. 만일 누군가 반대를 한다면 그는 새마을운동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그는 ‘빨갱이’가 될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고작 20년에 불과하며 여전히 분단 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간첩들이 일상생활에 침투하여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무장공비들이 휴전선을 넘어오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이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인 키부츠에서 가져온 모델이라고 생각했고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이 운동이 소련의 강제이주 집단수용소에 가까운 콜호즈와 비슷한 것으로 보았다. 1972년 3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마을을 직접 시찰하기 시작했다. 모범적인 사례들. 그해 4월 21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직접 ‘새마을 노래’ 가사를 작사하고 작곡했다. 다소 지루하겠지만 당신에게 ‘새마을 노래’ 가사를 불러주겠다. (일절)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후렴)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절)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후렴) (삼절)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 마을 만드세 (후렴) (사절)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 (후렴) 적어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이 가사는 새마을운동에 관한 가장 짧은 형태의 아포리즘처럼 이루어진 강령이자 정감의 언어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이 설명을 읽고 당신은 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이 노래는 국민 누구나 외어야 하는 가사였으며 일상생활의 행동 지침이자 반복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복음이었다. 무조건적인 추종만을 요구하는 노래. < 아내들의 행진 >을 보고 나면 다소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단지 새마을 정책의 이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 가사를 고스란히 서사 안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새 아침이 반복적으로 밝아오고 마을의 새 삶은 농한기에 집에서 게으른 아침을 보내던 마을 사람들이 미처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데서 전환을 맞는다. 옛 마을의 지표는 초가집이고 새 마을의 지표는 형형색색의 슬레이트 지붕이다. 한밭골은 길이 좁아서 리어카를 새로 장만해도 그걸 사람들이 둘러메고 동네에 들어서야 한다. 그런 마을을 새 마을로 만드는 시작은 먼저 이 마을 여인네들의 부녀회를 조직한 다음 그녀들에게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강령을 전파하는 것이다. 잘 살 수 있다. 부자가 될 수 있다. <아내들의 행진>에서 이 말은 일종의 마법의 언어이다. 이 말 앞에서 어떤 다른 반대도 힘을 잃고 만다. 여러분, 새 조국의 미래를 향한 행진 앞에서 다른 한가로운 주장을 할 시간이 없답니다. 민주주의라니요. 이 영화에서 모든 결정은 선동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단 한 번도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지도자의 명령처럼 내려진 가사를 전달하는 영화. 그러면서도 신기하게 이 영화에는 ‘새마을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는다. (비디오 판본)무장공비와 함께 돌아온 남편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 아내들의 행진 >의 어떤 장면에 그렇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 다양한 차원에서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몹시 은밀하고 종종 사소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걸 짐작하는 것은 바보 같은 추론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오로지 결핍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생각이다. <아내들의 행진>의 마지막 시퀀스에는 먼저 판본의 문제가 있다. 내가 본 비디오 판본은 새마을운동이 성공하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벌이던 날 한밭골 새마을운동 부녀회의 회장직을 맡았던 과부 만수댁 집에 한국전쟁에서 납북된 이후 생사를 알 수 없었던 남편이 한밤중에 돌아오면서 이 기괴한 시퀀스가 시작한다. 약간의 부언 설명이 필요하다. 새마을운동을 전파하려는 새댁 지순은 부녀회를 조직하면서 자신이 아직 어리고 한밭골 주민들도 잘 알지 못한다면서 만수댁을 추천한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다기보다는 논리적으로 시나리오에서 만들어진 인물의 배치이다. 한밭골은 아내들이 여전히 구습에 매여 있고 그래서 가정에서 남편에게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마을이다. 만일 누군가 나서서 부녀회 회장을 맡는다면 (이 영화의 장면에 따르면) “북어와 아내는 사흘 걸러 매질을 해야 한다”고 남편들끼리 모여 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마을 어른들은 “자고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가르치는 마을에서 줄거리에 매우 번잡하게 그녀가 남편을 설득하는 과정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없는 아내가 필요해졌고 만수댁이라는 과부가 만들어졌다. 그런 다음 만수댁이 왜 과부가 되었는지 설명할 필요가 생기자 남편이 납북된 인물이라는 설정이 동원되었다. 이 영화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촬영되었고 이야기에 구체적인 지명을 기입하지는 않았지만 등장인물들은 모두 호남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호남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남한 최대 빨치산 조직인 남부군이 활동하였으며, 망실공비로 인한 결손가족은 호남 전역에서 드문 사례가 아니라는 계산이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만수댁은 납북된 날을 남편의 기일로 삼아 제사를 지내고 아직도 그의 실성한 노모가 살아서 아들이 언제 오느냐고 묻곤 한다. (하지만 이 제사 장면이 남편이 돌아오는 설정 이후에 보충 촬영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임권택 감독님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으로 처음부터 일관하고 있고, 현재 남은 시나리오는 심의대본이기 때문이다) 돌아온 남편은 다른 무장공비들과 함께 만수댁에게 밥을 차려달라고 한 다음 곧 한밭골을 떠날 생각이다. 하지만 이미 집은 국군에게 포위된 다음이며 만수댁은 그 위급한 상황에서 남편에게 자수를 권유한다. 지순의 남편은 위험을 무릎 쓰고 양손을 들고 집으로 다가오면서 “여기가 아제의 고향이요, 어디를 또 가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라고 자수를 설득한다. 지순 남편이 다가오자 위기를 느낀 무장공비들이 지순 남편에게 총을 쏘고 그 틈을 타서 만수댁 남편은 그들을 일거에 쓰러트린 다음 재빨리 아내와 문 바깥으로 탈출하여 국군들이 포위한 논두렁까지 달려가다가 그만 총을 맞는다. 다음 장면은 만수댁 부부의 장례식 장면이다. 여기까지가 비디오 판본이다. (또다른 판본)혼자 돌아온 남편 그런데 이번에 영상자료원에서 제공받은 스크리너는 이 시퀀스 전체가 전혀 다른 판본이다. (다시 한 번 반복하자면) 새마을운동이 성공하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벌이던 날 한밭골 새마을운동 부녀회의 회장직을 맡았던 과부 만수댁 집에 한국전쟁에서 납북된 이후 생사를 알 수 없었던 남편이 한밤중에 돌아오면서 이 기괴한 시퀀스가 시작한다. 이때 내가 본 비디오 판본과 달리 여기서는 남편이 혼자 집을 방문한다. 그는 사흘을 굶었다고 말한 다음 저녁상을 먹고 나서 바로 집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안방에 누워있는 노모를 본 다음 마음을 바꾸고 자수를 결심한다. 그래서 한밤중에 만수댁 손에 이끌려 경찰서에 자수를 하기 위해 달려간다. 그런데 길목에서 기다리던 무장공비 무리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남편의 의도를 눈치채고 칼로 찔러 죽인 다음 만수댁마저 잔혹하게 죽인다. 그 둘은 어둠 속에서 죽어가면서 두 손을 꼭 쥔다. 무장공비 무리들의 행방을 더는 알 수 없고 장례식 장면으로 이어진다. 갑자기 장례를 하다말고 지순은 두 손을 움켜쥔 다음 우리들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라고 외친 다음 아내들을 이끌고 새마을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행진한다. 두 번째 판본은 여기서 끝난다. (좀 더 난처한 것은 현재 소장본은 영화가 모두 끝난 다음 내가 이미 말한 비디오 판본이 다시 그 뒤에 붙어있다) 나는 새로운 판본 앞에서 좀 어리둥절해졌다. 그 둘은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 하려는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둘을 두 가지 판본으로 찍어야 할 필요가 왜 생긴 것일까.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훨씬 훌륭한 것도 아니다. 둘 중 어느 쪽이 극장 개봉 당시에 사용된 프린트일까. 어떻게 두 가지 판본이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일까. 둘 다 임권택 이 연출한 것일까, 아니면 둘 중 하나를 (어쩌면) 제작 프로듀서를 한 정진우 가 찍은 것일까. 우리는 정진우가 감독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는 이미 < 증언 >을 제작하면서 영진위의 요구에 따라 임권택이 다음 영화를 찍고 있는 동안 수정 제작본을 위해서 일부 장면을 별도로 연출하고 편집하였다. < 아내들의 행진 >은 <증언>에 이어서 영진위가 제작하고 정진우가 제작 프로듀서를 한두 번째 영화이다. 그런데 둘 중 어느 쪽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택한 판본일까. < 아내들의 행진 >을 도식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성공적인 새마을운동을 해냈다고 안심하지 마세요. 당신이 힘들여 일구어낸 마을을 언제 ‘빨갱이’들이 침투하여 망쳐놓을지 알 수 없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 문제를 덧셈으로 생각하는 대신 뺄셈으로 놓고 원래의 판본으로 되돌아가 이 기괴한 마지막 시퀀스를 삭제하고 다시 보면 즉각적으로 이상한 질문과 부딪치게 된다. 임권택 은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것만으로는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영화감독과 지도자의 차이가 시작되는 것일까. 이 둘 사이의 차이는 단지 반공 드라마가 더해진 것이 아니다. 이 마지막 시퀀스가 당신을 망연자실하게 만드는 것은 명랑한 승리만으로 가득 찬 계몽극을 갑자기 비극으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만일 <아내들의 행진>을 진정으로 심미적인 관점으로 다가간 사람은 임권택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영화를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물론 임권택이겠지만 이 이야기를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어쩌면) 박정희 전 대통령일 지도 모른다. 만일 이 표현이 불편하다면, 이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진심을 다해서 온전하게 껴안은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일 지도 모른다, 고 수정해도 괜찮다. 자신의 이념을 실현한 영화. 말하자면 그에게 <아내들의 행진>은 스탈린에게 < 이반 대제 일편 >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시퀀스를 삭제하면 이 영화는 새마을운동의 인정 미담과 승리에서 멈출 것이다. 그다음은 그래서, 라는 다음 단계에 대한 질문과 과정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밀고 나아가 무장공비들이 한밭골에 침투하여 만수댁을 죽음으로 이끌 때 갑자기 이 모든 과정은 다른 차원에로 도약하듯이 이끌린다. 이제까지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지순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공적인 마을을 이룬 부녀회 회장 만수댁에게 요구되는 지도자의 마지막 단계는 예기치 않은 비극적 사건을 통해 죽어서 이 승리를 더 이상 반박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자(이지만 조연)인 만수댁이 이제 진정한 지도자(이자 주인공)의 자리를 어떤 권력다툼 없이 지순에게 운명적으로 양보하는지에 관한 슬프지만 아이러니한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만수댁이 차지했던 위치를 부언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지순이 한밭골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호의를 베푼 사람이며, 지순이 새마을운동을 시작하려 들자 모두가 적대감을 보일 때도 가장 먼저 그녀에게 협조를 시작한 인물이다. 만일 그녀가 없었다면 (결국 성공하긴 했겠지만) 훨씬 가혹한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만수댁은 지순과 한밭골 새마을운동 사이의 매개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사실상 그녀가 차지할 자리는 공백이 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이 애도의 장면에 감정만이 넘쳐날 뿐이지 어떤 성찰도 없는 것은 삭제의 항목에 관한 질서를 재조정하려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방죽 쌓기 이 질문을 완전히 다른 자리에서 질문해보고 싶다. 모든 새마을운동 이야기는 긍정되어야만 하며 새마을운동에 관한 모든 영화는 성공적인 결론을 맺어야만 한다. < 아내들의 행진 >은 계엄 하에 놓인 국가에서 만들어진 국책영화이며 모든 부정적인 언사는 금지된 영화이다. 그러므로 새마을운동의 지도자에 관한 이야기가 비극으로 귀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 바깥의 지도자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제안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을 체제 안에 있었기 때문에 영화감독이 영화 안에서 하지 못한 것을 지도자가 현명하게 해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읽고 있다면 당신은 내 말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아내들의 행진>은 새마을운동의 페티시즘에 가까운 계몽영화이다. 모든 등장인물은 목적론의 결론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그 과정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제한된 공간. 시간적인 차단. 여기서 하나의 모델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명령. 이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이때 이 모델에는 텅 빈 시간이 음산하게 감돌기 시작한다. 임권택 은 지금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공허한 자리에, 말 그대로, 어떤 비유도 없이, 마치 강제부역을 하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불려 온 것이다. 새마을이라는 낯선 마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고 난 다음, 그러니까 8년 후에 임권택이 찾아간 낯선 마을을 다룬 < 안개마을 >을 떠올려보면 둘 사이의 간극은 더 멀리 느껴질 것이다. 핵심은 <아내들의 행진>에서 영화감독이 가졌던 영화와 모델 사이의 거리를 지도자는 그 자신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느끼면서 가진 거리의 상실이다. 이때 지도자는 이야기 안에 비극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있다. 내게 시련이 필요합니다. 혹은 비극 없이 이야기는 여전히 부족한 결핍상태에 놓여있다고 믿습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당신들은 남한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 시련은 거기가 아니라 다른 데 있습니다. <아내들의 행진>은 장마만 시작하면 강물로 넘쳐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죽을 쌓아올렸을 때 이미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무슨 할 이야기가 더 남았나요. 지순이 시집오고 다음 1시간 39분의 지점,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가 방향을 틀었을 때 지순은 마치 친정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이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만수댁 남편의 귀환은 무언가 이야기가 더해졌다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여기에 덧붙여진 것처럼 보인다. 흔히 진부한 영화들에서 마주치는 것처럼 이미 한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두 편의 영화. 그러나 이것은 미학적 선택이 아니다. 이 괴상하기 짝이 없는 만수댁 남편의 시퀀스를 보고 있으면 몹시 불길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지순이 내내 시련을 겪기는 하지만 <아내들의 행진>은 단 한 순간도 그녀의 운명 때문에 보는 우리를 긴장시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승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불해야 할 노력을 기울이면 어떤 오차도 없이 거기에 대한 응당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아니, 기대보다도 훨씬 큰 보상을 받을 것이다. 현실이라는 외양을 갖추기는 했지만 이 영화는 새마을운동의 법칙이 작동하는 어떤 변수도 없는 말끔한 세계이다. 이때 만수댁 남편이 갑자기 이 안전한 법칙의 세계를 일순간에 뒤흔드는 얼룩의 삽입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끝내 이 과잉하는 장면이 반대로 결핍하는 모델의 약점을 비로소 완성하여 입체적인 이념의 공간에로 도약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지도자의 뜻을 (비판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시퀀스는 이야기 전체의 균형을 완전히 망쳐놓을 뿐만 아니라 가까스로 이루어놓은 승리의 감흥조차 깨트려버린다. 핵심은 거기에 있다. 지도자는 망쳐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깨트려야 한다고 믿는다.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이 시퀀스가 요점에서 빗나가기는커녕 거의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였던 이 모델의 세계에 언제든지 오류가 작동할 수 있는 현실감각을 부여하고 있다. 물론 당신은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것이다. 현실감각이라니요. 이건 그저 모델 옆에 다른 모델을 덧붙여놓은 것에 불과하답니다. 도식적인 설명. 새마을운동은 수없이 많은 승리를 재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 승리란 얼마나 약한 것이며 또한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 승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국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말하자면 국가에로 재통합한 다음 그 하위개념에로 재위치 시키는 확대재생산의 수순. 얼마든지 반론에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좀 더 나아가보고 싶다. 나는 영화감독과 지도자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먼저 말하고 싶다. 그래요, 이 모델은 이미 충만해있어요. 그런데 왜 지도자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시나요. 지도자는 그렇지만, 이라는 단서를 달고 싶어 한다. 그건 말이죠, 너무나 성공적인 이 모델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도둑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로부터? 우리들의 성공을 질투하는 북한으로부터. <아내들의 행진>의 마지막 시퀀스는 승리에 대한 염려이다. 이것이 이 이상한 시퀀스의 불길함이다. 이제 막 시작한 새마을운동은 오직 모델 안에서의 승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도둑질당할까 염려하는 것은 둘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환상 안에서만 맺어진 (거의 도착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착각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염려는 이루어내고, 도둑질 당하고, 되찾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바라보고 싶은 지도자가 새마을운동의 승리를 즐기는 방식이다. 그러니 이 염려는 미처 이루지도 못한 승리를 앞서는 결과에 대한 도둑질의 걱정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자크-알랭 밀레는 좀 더 멋지게 표현했다. 향유의 도둑질. 지순이 도착한 마을의 황폐한 풍경 (비디오 판본)새마을운동 후의 마을 물론 여기서 임권택 이 운동의 동력에 질질 끌려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 아내들의 행진 >을 보면서 임권택이 새마을운동에 반대하기는커녕, 혹은 조롱하기는커녕, 그저 마지못해 진행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종종 진심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과 수없이 마주쳤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 요화 장희빈 >을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장르적인 발견과는 상관없이) 그 자신에게는 거의 추락하듯이 다찌마와리 액션활극과 무국적 만주웨스턴, 쇼브라더즈 무협영화를 카피한 무국적 무술영화들로 이어지던 목록에서 갑자기 방향을 선회하면서 나타난 단절의 순간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사이에 존재하지만 사라진 도서실의 빈칸인 < 잡초 >를 염두에 두고 있다. 아마도 <아내들의 행진>은 <잡초>로부터 그리 멀지 않는 자리에 놓여있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임권택은 <아내들의 행진>을 찍은 다음 (< 장군의 아들 >을 예외로 하면) 두 번 다시 다찌마와리 영화에로 돌아가지 않았다. 또한 만주웨스턴이나 무국적 무협영화를 찍지도 않았다. 이 장르영화들은 물론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어떤 결단. <아내들의 행진>은 임권택에게 어떤 결사적인 방어선 같은 영화이다. 그는 여기 머물지 못한다면 영화 안에서 더 이상 자신이 견뎌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내들의 행진>에는 이따금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몹시 아름다운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에 매달린 비평들은 그 아름다움을 미처 보지 못했을 것이다. 혹은 보았다 할지라도 몹시 불편했을지 모른다. 거기 어른거리는 파시즘의 자동인형들의 그림자. 하지만 <아내들의 행진>은 임권택을 전혀 다른 의미의 맥락 안으로 이끈다. 나는 한국영화에서 등장인물 모두가 예외 없이 호남 방언을 사용하는 영화를 그 이전에는 본 적이 없다. 당신은 임권택이 호남영화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기 영화 세계 속에서 넓혀온 것을 생각해야 한다. 고향으로 가는 먼 길, < 짝코 >. 자기를 부르는 고향의 소리, < 서편제 >. 혹은 고향의 역사, < 태백산맥 >. 그리고 사모곡, < 축제 >. 아마도 호남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판본이라고 할 < 춘향뎐 >. 그런 다음에도 거기 남은 것을 다시 찾으려는 < 달빛 길어올리기 >. 하지만 아직은 이상할 정도로 표준어로만 이루어진 영화들. 한국영화에서 한 편의 대중영화가 방언으로만 이루어진 < 친구 >가 2001년에야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물론 등장인물 중의 누군가 호남이나 영남 방언을 사용하는 수많은 예가 있다. 그때마다 주인공은 표준어의 세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방언은 마치 봉건적인 세계, 혹은 미처 근대화되지 못한 지역(에서 온 사람)에 대한 청각 기호처럼 사용되었다. 때로는 북한에서 월남한 이들, 혹은 공산괴뢰군을 지역적으로 분리시키거나 단순하게 편을 가르기 위해서 (함경도와 평안도 사이를 별 구별 없이 평양 방언으로 통일하여) 대사로 차별화시켰다. <아내들의 행진>은 호남방언으로 이루어진 영화이다. 여기서 이상하게도 지순(과 그녀의 오빠)만이 표준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고향은 어디인 것일까. 문득 편지를 쓰면서 떠올리는 지순의 고향에 대한 기억(flash_back)에 따르면 그녀도 다른 농촌에서 자라서 이 마을로 시집을 온 것인데 그녀(와 그녀 오빠)의 말에는 어떤 방언도 묻어있지 않다. 마치 지순이 받은 교육이 그녀의 방언을 탈색한 것만 같은 말을 들려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순과 한밭골 사람들 사이를 개화(開化)와 몽매(蒙昧)로 분리하는 도식을 세우지만 그 둘 사이가 예민하게 긴장을 불러일으키거나 어떤 대립을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순의 표준어가 여기서는 그녀를 고립시키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무엇보다도 임권택은 지순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별로 우리를 설득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는 한밭골로 전통혼례의 가마를 타고 시집오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가마 안의 지순은 조금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다음 그녀를 따라온 오빠가 다음 날 안개 낀 새벽에 동생의 시댁과 인사도 없이 떠나면서 남기는 말은 미안하다, 는 표현이다. 시집간 여동생에게 왜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일까. 이 말은 마치 이제부터 시작될 여동생 지순의 고난과 시련에 대한 불길한 예고처럼 들린다. 그런데 왜 지순은 이 마을로 시집을 온 것일까. 오빠와 지순의 남편이 절친한 친구 사이도 아니며 그렇다고 시댁과 잘 아는 사이도 아니다. 여기엔 이상하게도 어떤 설명도 없다. 게다가 이 한밭골은 지순에게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고장이다. 영화 중간에 지순이 남편에게 고향 오빠를 만나보라는 말을 듣고 다녀오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임권택은 이 마을로 시집온 지순과 남편 사이의 첫날밤을 찍지 않았다. 그런 다음 영화 전체에서 그 둘 사이의 내밀하게 사적인 다정한 순간을 단 한 장면도 찍지 않았다. 마치 지순은 한밭골에 새마을운동의 임무를 가지고 온 사람처럼, 정말 첫 장면만 삭제한다면 시집을 왔다기보다는 파견된 것처럼, 그래서 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개인적인 그 어떤 기쁨도 버린 사람처럼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에만 매달린다. 이야기가 지순의 활동을 따라가긴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아내들의 행진>의 동선은 산만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인물들이 아니라 풍경이다. 황폐한 풍경. 하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서진 산하. 그런데 왜 그렇게 된 것일까. 긴 일제강점 하의 무분별한 벌목과 한국전쟁을 통과하면서 빨치산을 소탕한다고 무자비하게 잘라낸 나무들. 오랜 시간을 타향에서 보낸 다음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이 기대하는 추억 속에 자리 잡은 풍경의 형상들이 부서지고 사라져버린 것을 확인할 때 품는 분노가 <아내들의 행진>의 전반부를 가득 채우고 있다. 텅 비어버린 추억. 임권택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무능력한 자신에 대한 분노. 그걸 지키지 못한 고향의 남겨진 이웃에 대한 분노. 그 지경이 된 내가 살아온 땅의 역사. 하나의 세계가 사라져 버렸뇩?상실에 대한 탄식. 그때 거기 그것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그저 고향에 머물며 살아가는 현재의 이들에 대한 깊은 미움을 숨기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 흉악하고 이득을 눈앞에 두고 교활하며 종종 비겁하고 폭력적이며 대부분 완고하고 그들의 무지가 때로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데도 임권택은 그들에게 어떤 연민을 품지 않는다. 하나의 예. 이웃의 어린아이가 급성 폐렴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순이 알려주지만 (그런데 의사도 아니며 진료도 하지 않고 그저 한 눈으로 쳐다본 다음 그녀는 병명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돈이 없어 병원에 가보지 못한 채 마을 어른 김 첨지의 민간요법에 의존해서 일시적인 경기로 판단하고 방치하는 바람에 가엾게도 생명을 잃는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말을 할 뿐 거의 무관심하게 다루고 있다. 아이가 아픈 장면과 그 아이가 시신이 된 장면은 서로 떨어져 있으며 그 둘 사이에 전혀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마치 그 아이의 생명을 잊은 것처럼 보이다가 되돌아왔을 때는 이미 죽은 다음이다. 한밭골에서 부서진 것은 풍경이지만 망가진 것은 이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래서 종종 마을이 아름답긴 하지만 대부분 정감 없이 찍혔으며 마을 사람들은 단지 무지할 뿐만 아니라 계몽되기 전의 그들은 종종 폭력에 자주 의지하거나 너무 쉽게 노출된다. 만일 이 모든 것이 그저 이야기에 걸쳐 서 있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별로 우리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내가 단절이라고 부른 것은 이상한 방식으로 여기서 장소와 인물들을 연결시키는 대신 집합의 형식으로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시네마스코프는 반복해서 검토할만한 가치가 있다. 아직 카메라가 멈춰 서서 (< 만다라 >에서처럼) 바라보고 있지는 않지만(long_take) 이미 인물들의 배치는 그럴 준비를 하고 있다. 반원형을 만들면서 앉아있는 인물들. 그때 2.35 사이즈를 위해서 수평으로 늘어선 배치를 보고 있으면 (물론 아직 임권택 은 보지 못했지만 끈질기게 그를 아시아 영화의 전통 안으로 다시 위치 지으려는) 서방세계 비평가들이 그를 미조구치 겐지의 그림자 아래 있다고 설명할 때마다 우리들은 오히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거기 있다고 대답하고 싶어진다. 고작 5년의 차이를 두고 만들어진 동시대의 영화 < 오하루의 일생 >과 < 거미둥지의 성 >에서 동일한 일본 가옥 구조 안에 앉혀놓은 무사들의 배치의 차이를 떠올려보라. < 아내들의 행진 >은 단지 장르 안에서 쇼트의 체계를 완전히 반대의 방향으로 돌이키려는 시도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화 시스템을 좌표상의 영도(degre_zero)에로 되돌려 놓으려고 스스로에게 부과한 어떤 제한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제한? 그렇다. 시네마스코프 화면에서 일단 이렇게 앉혀 놓으면 편집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된다. 그걸 나누기 시작하면 앞의 장면들 전체가 무효가 된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이렇게 배치하면 누가 누구를 보는지 시선의 방향이 그 자체로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임권택이 누구보다 잘알고 있고 누구보다 능수능란하게 진행해온 세계. 그런데 그걸 중단하기 위한 구도를 여기서 자기 손으로 스스로 만들어낸다. <아내들의 행진>은 임권택의 영화에서 형식적으로 무언가를 잡아 뜯어내듯이 버리면서 새로운 관계를 짝짓기 시작하였다. 이때 이 영화 이전 임권택의 영화들과의 결정적인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무대가 농촌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임권택은 스타일을 발명하는 대신 스타일이란 그 영화가 머무는 세계 안의 형식과 조응하는 매개라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오직 그렇게 할 때만이 스타일을 통해서 의미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임권택에게 <아내들의 행진>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새마을운동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농촌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되기 때문이다.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 잡초 >를 제외하면) 장르의 요구를 따르지 않고 지금이라는 시간 안에서 영화를 찍은 건 53번째 영화인 <아내들의 행진>이 처음이다. 그가 배우들과 스태프를 이끌고 농촌으로 간 것은 언제나 조선 가옥이 서 있고 주변에 별다른 근대건물이 없어야만 하는 사극이거나 수많은 엑스트라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때로 건물들을 폭파시켜야 하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었다. 조건과 상황 안에서의 농촌. 그러므로 거기에는 거기 살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냥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이제까지 임권택은 농촌을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도시 사람인 것처럼 청춘영화를 찍었고, 갑작스러운 전후 서울의 근대화 과정 그늘에서 자라난 폭력과 희생을 다루었고, 이따금 도시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애환처럼 연출했다.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추억. 그렇다면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 그곳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한국전쟁이 놓여있다.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폭력적인 시간의 흔적들. 존재했던 것들의 소멸. 고향 사람들의 삶이 변해버렸고 풍경은 부서져 버렸다. 거기서 더 이상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때 임권택은 무엇을 찾아다녀야 하는 것일까. 정확하게 여기서 영화감독과 지도자는 서로 갈라진다. 되찾아야 할 시간과 도래해야 할 시간.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설명해야 할 것이다. < 아내들의 행진 >은 이제까지 임권택 이 만들어본 적이 없는 형식의 영화이다. 그건 이 영화가 교육의 영화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당신은 <아내들의 행진>이 새마을운동에 관한 국책영화라는 사실 때문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를 떠올리면서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반론을 위해서 푸코를 따라 칸트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대신 맞은편에 브레히트의 교훈극에 관한 배움에 따라 고다르가 만든 교육의 영화들을 가져다 놓을 생각이다. 세르주 다네의 그 유명한 명제. “스크린이라는 칠판” 임권택의 교육의 영화는 세 번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임권택은 영화를 만들면서 자기 자신을 위한 배움을 청해가는 방식을 취했다. 단지 그것은 주제에서 배움을 가져오거나 소재를 알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임권택이 그것을 영화로 담기 시작할 때 그것의 모든 지식들이 영화 안의 기호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임권택은 거기서 다시 시작하였다. 나는 아는 것이 없으며 배운 것이 없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서술은 그의 전진이 되었다. 낯선 지식들. 이것은 저것과 함께 갈 수 있는 것일까. 이것과 저것은 왜 대립하는가. 질문이라는 형식. 그 형식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의 리듬. 그는 스님의 만행길을 따라가면서 소승불교를 배우고(< 만다라 >) 그리고 번갈아 대승불교를 배웠다. (< 아제아제 바라아제 >) 그런 다음 자신에게 내린 무병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찾아 나선 중년남자를 따라가며 무속신앙을 배웠다. (< 불의 딸 >) 임권택은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일백년 전 조선말 막 근대가 시작되었을 때 도망치고 또 도망치면서도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상을 전했던 천도교 2대 교주 최시형의 포교활동을 따라가면서 인본사상을 배웠다. (< 개벽 >) 임권택은 계속해서 질문했다. 그는 이제 남도 소리를 따라 다시 유랑을 떠났다. 당신을 부르는 소리. 고향의 소리. (< 서편제 >) 그리고 또 떠났다. (< 천년학 >) 그런 다음 조선화의 마지막 대가 오원 장승업을 따라가면서 배움을 청했다. (< 취화선 >) 그는 멈추지 않았다. 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종이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 달빛 길어 올리기 >) 임권택의 영화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향한 교육의 영화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아내들의 행진>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마치 벤야민이 <아내들의 행진>을 만들 때의 임권택을 위해서 쓴 것만 같은 테제로 마지막 문장을 대신 하겠다. ‘역사철학 테제’ 18개 테제에 관한 부기 B. “시간으로부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했던 점술가들은 확실히 시간을 동질적 시간으로도 체험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과거의 시간이 어떻게 기억을 통하여 체험되어졌던가를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중략)” (계속) 1974년 111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영화진흥공사 각색 신봉승 , 윤삼육 촬영 변인집 조명 최원근 편집 김창순 음악 한상기 김희라 윤미라 윤양하
정리에 관한 의문. 목록을 따라가다가 < 연화 >에 이르면 이 영화는 <연화>와 < 연화(속) > 두 편으로 나뉘어 분류되어 있다. 물론 한 편의 영화를 두 편으로 나누는 것은 신기한 일은 아니다. 클로드 란츠만의 < 쇼아 >는 전체 10시간 13분 상영시간을 각각의 토픽에 따라 네 편으로 나누었으며, 왕빙의 < 철서구 >는 9시간 11분에 각각 제목을 다시 달고 세 편으로 나누었다. 고다르는 좀 더 섬세하게 나누었다. <영화사(들)>은 4시간 24분을 네 개로 나눈 다음 다시 각 분류 안에서 장(chapitre)을 A와 B로 나누었다. 구태여 예를 떠올린다면 미조구치 겐지가 1941년에 만든 <겐로쿠 추신구라(元祿 忠信藏)>일 것이다. 4시간 1분에 이르는 이야기를 겐지는 그냥 간단하게 ‘第 一篇’과 ‘第 二篇’으로 나누었다. 하지만 이 두 편은 경우가 다르다. 분류와 달리 <蓮花>라는 제목으로 1975년 3월 8일 국제극장에서 개봉하였고, 그때 신문광고전단에 따르면 ‘邦畵史上 初有의 3時間 40分 上映!’이라고 되어있다. 그 아래 ‘第 1部 離別篇’ ‘第 2部 復讐篇’으로 친절하게 이 영화가 두 편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되어있지만 현재 남아있는 필름에는 두 편을 나누는 그 어떤 간(間)자막(inter_title)이나 별다른 표시가 없다. 또한 두 편 사이는 16년을 건너뛰고 이야기가 진행되기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第 2部 復讐篇’이 시작될 때 별다른 자막이나 소개가 없으며 앞의 이야기에 대한 간단하게 요약된 줄거리의 소개도 없다. 무엇보다 어디에도 <연화 (속)>이라는 제목을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상영시간을 고려해볼 때 그 당시 상영된 할리우드 영화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나 < 벤허 >, < 아라비아의 로렌스 >에서 볼 수 있었던 휴식시간(intermission)도 없다. 만일 <연화>가 신문 전단처럼 두 편으로 나누지 않고 상영회차를 하나의 단위로 하여 한 번에 전체를 상영했다면 임권택 의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긴 상영시간을 가진 영화일 것이다. 민태호 대감 선혜 옹주 정실 부인 연파 스님 이윤재 연화 이 두 편 혹은 한 편을 둘로 나눈 영화 < 연화 >는 1973년 9월 23일에 첫 방영을 한 다음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이듬해 5월 3일에 종영한 동명의 텔레비전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연화>가 텔레비전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임권택 의 첫 번째 영화는 아니다. 나는 이미 방송 드라마 <불청객>을 영화로 옮긴 < 신세 좀 지자구요 >를 다루었다. 또한 텔레비전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첫 번째 감독도 아니다. 종종 영화관객과 시청자를 사이에 놓고 영화와 텔레비전의 적대적 관계를 설명하는 미디어 경제학자들의 일반론과 달리 1970년대에 한국영화는 텔레비전과 가까이 있었다. 이 영화가 상영시간이 길긴 하지만 이야기가 복잡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 신분을 속이거나 혹은 상대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관계 속에 놓이기 때문에 인물 사이의 관계가 다소 장황하다. 그러니 우선 다소 어수선한 줄거리를 감상할 것. 조선시대. 권세를 차지하기 위해 정적들을 차례로 암살하던 민태호 대감은 선화옹주와 부마인 이윤재 가족을 몰살한다. 그러나 이윤재는 상처를 입고 빠져나오고 선혜옹주는 출산직전의 몸을 끌고 회암사로 흘러들어온다. 마침 민태호의 정실부인이 임신을 기원하는 백일기도를 드리던 마지막 날이었다. 주지인 연파스님은 선혜옹주에게는 출산한 딸을 숨기며 사산했다고 말한 다음 민태호의 정실부인에게는 절로 흘러들어온 여인이 아이를 낳은 다음 사라졌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니 딸로 들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정실부인은 기뻐하면서 민태호 대감에게 이르니 간절히 자식을 바라던 그도 기꺼이 승낙한다. 그런 다음 연파스님은 정실부인에게 지금 양반 댁에서 막 씨받이로 아이를 낳고 빼앗기자 실망한 나머지 절을 찾아온 여인이 있으니 그녀를 젖 물리는 유모로 쓰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 다음 선혜옹주를 추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등장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선혜옹주는 자기를 죽이려던 민태호 대감댁에 양주댁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유모로 들어가 자기 딸에게 젖을 물리면서 목숨을 구한다. 다만 옹주는 그 어린 아이가 아직은 자기 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온갖 우여곡절. 그러는 중에 민태호 대감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옹주를 강제로 겁탈하려 든다. 이에 거의 자포자기한 옹주가 자결을 하려들자 연파스님은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들려준다. 그러는 동안 이윤재는 복수를 하기 위해 민태호 대감댁에 나타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훗날을 도모하며 떠난다. 이때 옹주는 남편인 이윤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 부 끝) 16년이 흘러 어느 덧 연화는 규수가 된다. 혼처가 사방에서 날아들고 그 중에 민태호 대감의 측근이자 이윤재와 선혜옹주의 원수중의 하나인 김초선 대감댁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이 사실을 알자 이윤재는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과 이 결혼을 저지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이윤재가 보낸 자객은 함지기가 함을 들고 가던 길에서 기다리다가 차례로 활로 쏘아 쓰러트리고 그 과정에서 민태호 대감은 양주댁이 선혜옹주이고 연화가 이윤재의 딸이며 이 모든 것이 연파 스님의 계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연화도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위기에 몰렸다고 생각한 민태호 대감은 이들을 모두 감옥에 가둔 다음 참수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이윤재와 마주선 민태호 대감 앞에서 정실부인은 모두를 살리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면서 이윤재에게 기회를 준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은 민태호 대감을 유배 보내고 부마 이윤재와 선혜옹주는 복권한 다음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연화는 원래 부모의 손으로 되돌아간다. (이 부 끝) 아마 줄거리만을 쫓아왔다면 < 연화 >가 당연히 출애굽기의 예언자 모세의 성장담의 변주라는 것을 알 것이다. 죽어야 할 아이.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적의 손에서 자라나 훌륭하게 크는 그 아이. 유모가 된 어머니. 그렇지만 그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모든 것을 비밀로 감추어야 한다. 아들이 딸이 되었고 기독교는 불교로 바뀌었고 이집트는 조선이 되었지만 기적을 행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둘 사이의 유사성은 거기까지이다. 그런 다음 먼저 내가 두 개의 텍스트 사이에서 할 수 없는 불가능에 대한 전제. 가능하면 원작 드라마의 배우들을 그대로 옮겨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방송과 영화의 차이는 연화 역할이 김창숙 에서 이효춘 으로 바뀌었으며, 연화의 아버지 이윤재 역할이 김동훈 에서 윤양하 로 바뀌었다. 나는 원작 방송 드라마를 보지 못했고, 또한 방송으로부터 영화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일부 배역의 교체의 속사정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배역에 대한 연기자의 변화 사이에서 오는 차이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이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인물의 성격에 대한 변화나 연기의 새로운 각색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게다가 텔레비전 드라마가 영화처럼 어린 연화와 선혜옹주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일 편과 시집갈 무렵이 된 성장한 연화와 그녀를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이 편으로 구성한 영화처럼 거의 절반의 비중으로 나누어져 있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드라마의 균형을 갖추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또한 텔레비전 연속극을 연출한 김재형에서 영화를 연출한 임권택 으로 옮겨오면서 아마도 있을(수밖에 없는) 둘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도 비교해볼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영화 <연화>에 의지해서만 말할 것이며 거기서 가끔 건드리는 연속극 드라마와의 비교는 추론이다. 물론 이것은 매우 불편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영화 <연화>는 연속극 <연화>의 성공에 기대어 만들어진 영화이며, 그러므로 이미 텔레비전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이 관객으로 이행될 때 영화는 연속극의 기대의 지평 안에서만 펼쳐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한된 지평. 성공의 전제가 안겨준 감옥. 겉보기에 단순하게 여겨지는 이 질문은 생각보다 기괴한 역설을 담고 있다. 이미 인물들의 운명은 결정되었으며, 영화는 그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연화는 매번 물어볼 것이다. 전 어떻게 하면 되나요. 대답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한 걸 그대로 반복하렴. 그런 다음 거슬러 올라가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읽어주기 바란다. <연화>는 인물들 사이의 역할 놀이이며 구조 안에서 벌어지는 술래잡기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긴장은 누가 술래인지를 알아내는 게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건 시작할 때 이야기 바깥에 있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 핵심은 우리만이 알고 있는 그 지식을 언제 이야기 속의 누군가가 함께 공유하느냐는 것이다. 선혜옹주는 언제 자기가 젖을 물리고 있는 어린 연화가 자기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인가. 그때 민태호 대감이 먼저 알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사이에서 정실마님은 언제 그 지식을 얻게 될 것인가. 왜 매번 이윤재는 사태를 망쳐놓는가. 연화는 언제 자기를 낳은 엄마가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인가. 민태호 대감이 연화가 자기 딸이 아니라 이윤재와 선혜옹주의 딸이라는 것을 언제 알게 될 것인가. 그런 다음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먼저 알게 될 것인가. 서로가 서로에게 대상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 지식의 경주는 연파스님이 쳐놓은 덫이지만 동시에 그 또한 구조 안에 있기 때문에 매번 결정의 순간을 정해야한다. 그리고 그 결정의 시간은 동시에 그 자신의 기회를 그만큼 잃어버리는 반비례의 역학을 작동시킨다. 말 그대로 누구도 예외 없는 구조의 노예들. 무엇이 앞설 것인가. 그 뒤에 따라오던 것이 만일 앞지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여기서 영화의 곤궁.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이미 모두 본 것이며 게다가 충분히 즐긴 다음이다. 취소되어버린 효과. 이미 연속극에서 했던 동작을 구조 안에서 고스란히 반복해야 할 때 시청자들이 관객이 되어 거기서 다시 한 번 보는 고통스러운 눈물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난 이미 잘 알고 있어, 지금은 저렇게 눈물을 흘리지만 곧 이런저런 사건이 벌어지면서 상황은 이렇게 잘 해결될 거야, 그러니 울지 마세요. 그때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동작은 이미 해본 것을 다시 한 번 재현하는 기계적인 일련의 숙련된 행위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여기서 시청자(이자) 관객이라는 이 이상한 자리는 언제나 이야기를 앞서 간다. 그러면서 돌아보는 자리. 항상 돌아보는 자리. 아무리 이야기가 달려가도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돌아보는 자리. 서로 뒤집힌 위상 관계는 단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드라마를 영화관의 스크린에서 반복하는 단순한 관계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다시 바라볼 때 모든 것은 원래의 모습에로 되돌아오는 내내 순수한 겉치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라진 위기. 그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이 차지하는 지위는 매우 보잘 것 없는 것이며 인물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사건이 나온다기보다는 사건을 위해서 인물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거기 머물기 시작한다. 이때 임권택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후렴구처럼 반복하는 말. 곤궁에 처한 영화. < 연화 >에서 영화가 밀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은 텔레비전 드라마가 해낸 그 나머지가 아니라 이미 해낸 것 안에서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몇 가지 외형적인 차이가 있다. (그 당시의 텔레비전 모델에 따라) 모니터 4대 3 비율의 화면을 2.35 사이즈의 시네마스코프로 찍었으며, 흑백 화면을 칼라 스크린으로 옮겼다. 하지만 난처한 약점은 칠 개월에 걸쳐 매주 방영되었던 드라마를 제 일 편은 1시간 46분, 제 이 편은 1시간 49분으로 압축시켜야 하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임권택 (과 신봉승 )은 종종 영화 <연화>의 관객을 이미 드라마 <연화>를 본 시청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단지 요령 있게 압축하거나 일부를 잘라내는 대신 이야기를 단순하게 만든 다음 어리둥절할 정도로 건너뛴다. 그래서 주변의 인물들 중의 일부는 때로 사라지고 한참 뒤에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나오기도 한다. 마치 벌거벗은 것과 같은 상태의 이야기. 임권택은 그 이야기를 영화의 경제학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이 기나긴 이야기는 고작해야 민태호 대감의 99칸 저택(으로 설정된 한옥 가옥) 안의 민태호 대감의 방과 선혜옹주가 유모로 머무는 방, 그리고 정원, 이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감댁 안의 감옥, 그런 다음 회암사의 불당과 그 곁에 자리한 작은 쪽방, 그리고 잠깐 등장하는 이윤재와 그 무리들이 머무는 누추하기 짝이 없는 산채(라고 설정된 외부와 간단하게 지은 세트에서 찍은 내부)가 전부이다. 물론 중간에 오가는 길이 등장하지만 숲속 길로 설정되어 있어서 별다른 엑스트라를 오가게 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이 설정을 무심코 지나갈지 모른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상상해보라. 이 영화는 사극이며 아무리 적은 숫자의 보조 출연자도 조선시대의 의상을 입어야 한다. 게다가 일단 도읍 안으로 들어오면 수십 명의 등장인물이 동시에 움직여야 생활공간이 만들어진다. 영화는 그런 예술이다. 아직 디지털 기술은 등장하지 않았으며 거기 사람이 필요하면 하여튼 거기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설정은 무리한 축소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우리가 그걸 눈치 채지 못하게 항상 가옥 바깥으로 나오면 마치 두 개의 장소, 두 개의 시퀀스를 연결하기 위해서만(bridge shot) 그 쇼트가 필요하다는 듯이 스쳐지나가면서(insert shot) 정보 단위의 기능만을 부여한다. 그런 다음 재빨리 다시 가옥 구조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회암사 로 이동한다. 물론 여기서도 중심을 이루는 장소, 대부분의 쇼트가 진행되는 공간은 민태호 대감의 저택이다. 이야기는 이 집이 모든 인물들을 자석으로 끌어당기듯이 진행되고 그래서 마치 모두에게 주어진 운명처럼 차례로 이 집으로 모여든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연화가 아니라 이 집이다, 라고 이야기 전체를 다시 쓰고 싶을 정도이다. 이때 임권택은 민태호 대감댁 안을 이리저리 오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면서도 이야기만을 오가고 동선을 최소로 연결시키면서 두 개의 방 이외의 어떤 방도 사용하지 않으며, 또한 감옥을 오갈 때에도 모든 쇼트는 감옥 내부에서만 진행되기 때문에 대감 댁의 안채에서 감옥까지 연결하는 동선의 어떤 물리적 장소의 쇼트를 더하지 않고 그냥 건너뛰어 감옥 실내로 들어온다. 물론 여기서 임권택이 한옥 가옥 안으로 들어갔을 때 고작 삼년 후에 보여주게 될 < 족보 >에서와 같은 우아한 동선은 어디에도 없다. <연화>에는 오로지 이야기 안에서 경제적인 방법으로 설계된 동선과 쇼트의 실용적인 사용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권택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연화>에서 어떤 장면들은 양반 저택 가옥 구조 안에서 마치 폐쇄공간처럼 이루어진 희박한 공기들과 그 안에서 매우 제한적인 동선만으로 이루어진 작은 세계를 만들어낸 < 씨받이 >의 어떤 순간들과 공명한다. 혹은 선혜옹주와 이윤재가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면서(flash_back) 두 사람이 운우지정을 나누듯이 가을 낙엽 위를 뒹굴 때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춘향뎐>에서 이몽룡과 춘향의 동일한 조건의 장소에서의 동일한 제스처를 생각나게 만든다. 나는 단지 같은 장면 혹은 같은 분위기의 반복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요점은 그것이 다시 나타날 때 그 안에는 되돌아오는 같은 자리에 대해 임권택이 이미 해본 것으로부터 일정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그런 다음 거기서 자기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재현의 요소를 (임권택의 표현을 빌리면) “의심하면서” 반복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의 사유를 확보하려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권택의 이미지들은 그것이 반복될 때마다 매번 무언가를 상실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이야기와 표현 사이에서 어떤 거리를 확보해나간다는 인상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재현의 이미지들 사이에 점점 더 일사불란한 통일성을 만들어나갔지만 동시에 때로 기괴할 정도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정투쟁을 벌였다. 여기에는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헤겔이 말하는) 불행한 의식이라고 부를만한 유령이 어른거린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 대신 < 연화 >는 처음부터 무언가를 포기한 것처럼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에는 갑자기 멈춰 서서 하나의 씬을 매우 긴 시간 동안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래서 여기에는 임권택 의 영화에서 마주치는 인물에 대한 탐구나 이야기 속의 삶 따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가끔, 아주 가끔 그 어느 순간의 디테일에서 종종 이야기 안의 이질적인 요소에로 이끌려 완전히 다른 공기의 장면이 연출되는 당혹스러운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이 디테일이 다른 전체와의 조화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연화>를 보는 당신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지 모른다. 물론 임권택이 여기서 처음 그런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다. 이미 첫 번째 영화 < 두만강아 잘 있거라 >에서 갑자기 나타나 스키를 타고 달려 내려온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의 전투를 다룬 전멸의 마지막 시퀀스는 마치 영화 바깥으로 빠져나온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또한 ‘원숙한’ 임권택의 영화에서도 갑자기 그런 순간이 나타난다. 그걸 가장 미학적으로 활용한 시퀀스는 물론 < 달빛 길어올리기 >의 마지막 월곡 마을에서 한지를 제작하는 대목이다. 심지어 이 시퀀스는 영화 전체를 구원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연화>에서는 이런 장면들과는 다르다. 그저 인상적으로 말하는 것을 허락해준다면 다른 장면들의 디테일이 보여주는 위험할 정도의 확장은 종종 임권택이 그 무언가에 매혹되어 마치 그 힘에 기쁘게 굴복하듯이 거기에 이끌렸다는 흔적을 남기는 반면 여기서는 이야기로부터 영화를 방어하기 위해서 어느 순간을 잡아채듯이 붙잡은 다음 거기서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머물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애처롭게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표현. 영화를 방어하려는 안간힘. 임권택은 여기서 텔레비전에로 이끌리는 이야기를 어디선가에서 멈춰 세우기 위해 그 장소를 찾으려고 마치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탑골댁 이윤재 두 개의 장소 중의 첫 번째 장소. < 연화 >는 피비린내는 정적의 암살에서 영화가 시작한다. 민태호 대감이 살생부에 적힌 이름들을 붉은 색 먹으로 지우면 다음 장면은 자객들이 무자비하게 암살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조선시대라는 배경 이외에는 어떤 설명도 없는 이 도입부는 거기서 더 반복되지는 않는다. 마치 선혜옹주와 이윤재 부마의 암살이 그 최종 목표이기라도 한 것처럼 이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더 이상 새로운 희생자가 나오지는 않는다. 아직 그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민태호 대감으로서는 아쉽게도 이 한 번의 실패가 그 자신의 운명을 뒤바꾸는 계기가 되고 (이미 말한 것처럼) 마치 연화는 모세처럼 민태호 대감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존재가 된다. 이때 민태호 대감은 무자비하고 교활하며 음모와 술수에 능한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도입부가 끝나고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는 마치 잠시 동안 자신의 역할을 잊은 것처럼 정실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이런 표현이 몹시 어색하지만 그만큼 영화 안에서 어색하게 표현된 그대로) 피비린내 나는 당파싸움으로부터 후퇴해서 가정적인 인물로 축소된다. 이따금 그가 이윤재와 선혜옹주의 행방을 궁금하게 생각하지만 그 둘을 혈안이 되어 추적하지는 않는다. 이때 민태호 대감은 궁궐로부터 그의 저택으로 행동반경의 중심을 옮기면서 그의 관심은 권력에 관한 정치적인 영역에서 욕망이 이끄는 성적인 대상에로 옮겨간다. 물론 좀 따분해지기는 하겠지만 푸코에 의지해서 그 둘이 서로 얼마나 가까이 있으며 심지어 그 둘은 동일한 내용의 서로 다른 판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여기서 임권택 은 민태호 대감이라는 주체가 권력과 리비도 사이에서 어떻게 기호에로 옮겨가는 지를 다루지 않는다. 또한 연화가 어떻게 그 사이에서 교환관계의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가는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그것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섬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혹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임권택은 그걸 하려고만 결심했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임권택은 정념의 예술가이다. 때로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조차 있다. 그건 처음부터 그러했다. 그의 영화 속의 인물들은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일단 정념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신체가 파괴될 때까지 막다른 골목에 간다. 그것이 그렇게 임권택의 영화에서 자주 신체훼손의 장면이 반복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혹은 원작과의 약속이 그것을 가로 막는다. 만일 정말 그 안으로 들어갔다면 영화는 무시무시할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코드들의 활동이 몹시 음란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청자 관객들은 이제까지 자신들이 즐긴 텔레비전 드라마의 이면 앞에서 그 기쁨의 정체를 마주보며 당황했을 것이다. 여기서 민태호 대감을 이끄는 대상은 양주댁으로 분한 다음 (자신의 딸인지 아직은 알지 못하는) 연화의 유모로 별채에 들어간 선혜옹주이다. 정실부인은 아직 얻지 못한 아들을 잉태하기 위한 백일기도를 드리기 위해 회암사에 가느라 종종 집을 비우고 그 순간은 민태호 대감의 기회이자 선혜옹주의 위기가 된다. 나는 (어쩌면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당신에게 좀 더 많은 연상 작용을 끌어내고 싶다. 유모는 배고픈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서 들여놓은 여인이다. 그녀는 아이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매번 자기의 옷고름을 풀고 여민 저고리를 풀어헤쳐 (자기가 낳은 아이에게 물리지 못한 채 차오르기 시작해서) 지금 젖으로 가득 찬 유방의 유두를 아이의 입에 물려야 할 것이다. 아이가 우는 것은 젖을 달라는 신호이다. 이때 이 소리를 안채에서 몸이 달아오른 민태호 대감도 들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이 신호를 받자마자 여기서 아이를 괄호 치고 양주댁의 몸을 떠올리기 시작할 것이다. 환상의 공식은 몸의 부분이 욕망의 대상이라는 자리에 등록하자마자 성적인 가장자리로부터 금방 중심을 탈환할 것이다. 이제 민태호 대감은 양주댁의 유두의 대상이 된다. 이 말을 잘 읽어주기 바란다. 나는 목적어를 반대로 쓴 것이 아니다. 이때 임권택은 재빨리 민태호 대감의 환상에 몰두하는 대신 그가 다가가려는 대상에 대해서 행하는 위계적 부분에 집중하면서 영화의 지위를 되찾으려고 한다. 구조는 좀 더 복잡하고 이야기는 음란해진다. 여기서 임권택은 신호의 응답을 위해 다른 장면을 더한다. 민태호 대감에게는 자식을 얻기 위한 구실로 그의 잠자리를 위한 내당마님인 둘째 부인 탑골댁이라는 젊은 여인이 있다. 그래서 잠자리가 필요할 때마다 민태호 대감은 그녀를 찾는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다소 파격적인 잠자리 장면을 포함시켜 놓았다. 그런 다음 민태호 대감은 두 번 다시 그녀와의 잠자리를 찾지 않는다. 거의 모든 설정을 예상할 수 있는 드라마의 컨벤션 안에서 진행되는 이 이야기에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순간은 탑골댁이 정실부인 흉내를 내면서 회암사에 자식을 갖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러 왔을 때 신분을 숨기고 잠시 거기에 몸을 의탁하러 온 이윤재를 보고 한 눈에 빠져드는 설정이다. 여기서 탑골댁이 이윤재를 탐하는 태도는 민태호 대감이 선혜옹주에 이끌리는 것과 정확하게 동일한 판본이다. 하지만 차이는 단지 그 둘 사이의 전도된 성별만이 아니다. 하나는 여기가 지금 조선시대라는 것이며 유교를 바탕으로 세워진 신분사회라는 조건이다. 탑골댁이 이윤재에게 욕망의 시선을 던질 때 그녀는 단지 도덕적인 금기를 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민태호 대감의 자리에서 권력의 네트워크를 펼치는 것이다. 이때 선혜옹주와 이윤재가 동일한 고난에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임권택(과 신봉승 )은 변주를 가미한다. 이윤재는 탑골댁이 민태호 대감의 내당마님이라는 사실을 알자 복수를 위해서 그 곁으로 다가갈 기회를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 유혹에 응답한다. 그의 목적에 따라 이윤재의 행동이 정당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수단으로 놓인 탑골댁의 자리에서 그녀는 마치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한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것처럼 진행된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거기에 있지 않다. 임권택은 선혜옹주와 이윤재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교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목표는 그 둘의 사연을 우리에게 모두 알려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차라리 그건 부차적인 자리에 머문다. 어쩌면 이것은 임권택의 의도 바깥으로 벗어난 그 어떤 힘이 마치 오작동을 일으키기라도 한 듯 작용하는 것이기도 한데 선혜옹주가 고난을 겪는 동안 마치 이윤재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여기서 가정을 해보고 싶어진다. 만일 선혜옹주가 이 상황을 단지 모면하기 위해서라는 알리바이를 내세우고 민태호 대감의 유혹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섹스를 즐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그런다고 해서 이 상황에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전히 선혜옹주는 자신이 양주댁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할 것이며 민태호 대감은 섹스를 했다고 할지라도 양주댁이 선혜옹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살려둘 리가 없다. 또한 선혜옹주가 침묵을 지킨다면 이윤재는 이 사실을 알 수 없다. 여기엔 단지 하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 티켓 >에서 몸을 파는 막내가 대학생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티켓을 끊고’ 손님과 하룻밤을 마지못해 보낼 때 섹스를 즐기는 장면을 알고 있다. < 창, 노는 계집 >에서 영은은 사창가에서 도망치지만 그녀를 잡으러 온 ‘사냥꾼’에게 붙잡힌 다음 섹스를 할 때 그 행위를 즐긴다. 임권택 의 여자들은 순결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몸의 부름에 대해서 욕망이 거절하는 행위를 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녀들에게 섹스를 하는 것과 사랑을 하는 것은 종종 별개의 행위이다. 하지만 < 연화 >에서 선혜옹주는 사실상 목숨을 걸고 거절을 한다. 이때 이 장면을 임권택은 거의 멈추듯이 세운 다음 갑자기 디테일의 주름에 집중한다. 민태호 대감은 정실부인이 집을 비우고 밤이 되자 탑골댁 자택에 가는 대신 별채에 어린 연화와 기거하는 양주댁으로 위장한 선혜옹주의 방을 찾는다. 말하자면 그는 공개적으로,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도덕적으로 허락된 간편한 잠자리를 포기하고 힘겨운 과정을 거쳐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양주댁에로 향한다. 별채에 들어서면서 민태호 대감은 자신이 여기에 온 것은 딸 연화를 보기 위함이니 야심한 밤에 찾았다 할지라도 이상한 일도 아니며 잘못된 것도 아니라는 설명을 한다. 물론 그건 거짓말이며 그는 연화에게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선혜옹주에게는 이 방문을 거절할 명분이 없다. 이 집은 민태호 대감의 집이며, 이 방은 연화를 위한 방이며, 민태호 대감은 연화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얼룩은 민태호 대감이 아니라 선혜옹주이다. 상황은 탐정소설에서 말하는 밀실공간의 탈출에 관한 퍼즐 게임이다. 민태호 대감이 선혜옹주가 연화와 함께 머무는 별채에 들어서자 이제까지 둔하게 움직이던 이 영화의 기호들이 갑자기 예민하게 활동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민태호 대감이 왜 이 방에 들어섰는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목표로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이때 선혜옹주가 그 행위의 전략을 차단하고 진행을 방해한 다음 다시 그를 내보낼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 찾을 지가 이 시퀀스의 구경거리이다. 구경거리? 어쩌면 이 표현이 다소 잔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임권택 이 여기서 이 작은 형태들이라고 할 디테일을 전체의 구도 안으로 가져올 방법을 찾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말했다.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하면 즉각적으로 관객 시청자는 예상치 않은 배신을 당할 것이며 아마도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워 질 것이다. 이때 임권택 은 자신의 곤궁 안에서 최소의 디테일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민태호 대감은 방 안에 들어선 다음 먼저 시선으로 선혜옹주의 몸을 더듬거린다. 이때 하필이면 아기 연화는 한밤중에 울면서 젖을 달라고 보챈다. 그때 민태호 대감은 연화의 신호에 슬그머니 자기의 메시지를 더하면서 빨리 젖을 물리라고 재촉한다. 선혜옹주가 젖을 물리려면 저고리를 풀고 옷소매를 헤쳐야 한다. 자발적인 탈의. 이때 민태호 대감은 선혜옹주의 몸 한끝에 자신의 몸 한끝을 접촉하기 위해 그 좁은 방에서 미처 일어서지도 못한 채 앉아서 이리저리 방향을 틀면서 접근한다. 그의 자리에서 갖추는 최소의 예절. 어쩌면 당신은 여기서 크게 웃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까지 민태호 대감이 자신의 목표를 얻기 위해서 얼마나 무자비하며 단호한지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선혜옹주는 지금 이 방까지 (연파스님의 표현을 빌리면) “등잔 밑이 어둡다는 계산으로” 피신해 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민태호 대감이 취하는 행동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소심하며 예의바른 태도를 취한다. 당신은 즉각적으로 내게 맞받아칠 것이다. 아니 정말 모른단 말이에요, 이건 섹스에 관한 장면이라구요. 물론 나도 알고 있다. 핵심은 임권택이 여기서 디테일의 긴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선택한 모델이 행위와 목적 사이에 놓인 불연속성의 통사적 종합을 이루는 정념의 위선이라는 것이다. 물론 선혜옹주는 이 위선을 이미 한 눈에 간파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놓여있는 정념의 정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소 공허한 비대칭의 간극이 놓여있다. 민태호 대감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지만 선혜옹주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럼으로써 선혜옹주는 민태호 대감의 접촉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섹스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 여기서 그녀가 지켜야하는 것은 정조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이다. 우리를 다소 따분하게 만드는 것은 이 둘 사이에 선택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정조를 포기했을 때 거기에는 단지 섹스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며 정체의 비밀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반면 정체의 비밀을 포기했을 때 선혜옹주는 생명을 잃을 뿐만 아니라 지금 바로 곁에 있는, 하지만 아직은 미처 알지 못하는, 딸 연화도 포기하는 것이 된다. 만일 여기서 민태호 대감이 자신의 양녀 연화가 바로 눈 앞에 있는 선혜옹주의 딸이라는 비밀을 알고 있으며 그 지식을 동원해서 만일 섹스를 요구했다면 시청자 관객이 겪게 되는 긴장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때 민태호 대감의 제안은 간단하다. 당신이 나와의 섹스를 즐겨준다면 당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당신의 딸(이자 자신의 양녀) 연화의 목숨도 살려 줄 것을 약속하겠노라. 첨언. 그 약속을 지킬 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보다 더 시청자 관객을 괴롭히는 상황은 약속을 지키면서 반복해서 약속의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시청자 관객을 가장 괴롭히는 방법은 반복해서 약속을 지키면서 선혜옹주가 조금씩 민태호 대감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만일 이 역할을 이순재에서 최무룡, 혹은 김진규로 바꾼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임권택은 이 위험한 게임의 거의 근처까지 가본 적이 있다. 나는 이미 < 티켓 > 혹은 < 씨받이 >로 이어지는 주인공과 반대의 가해자 사이에서 성립된 실패한 관계의 이면에 맴돌고 있는 정념의 예를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임권택은 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까지 물러난다. 그래서 민태호 대감이 마치 자기 신분의 본본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은 제스처가 등장한 것이다. 두 개의 장소 중의 두 번째 장소. (편의상 나눈 것처럼 보이는) < 연화 (속) >은 광고에서 소개하는 것과 달리 ‘第 2部 復讐篇’이라기보다 차라리 ‘第 2部 受難篇’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이야기는 갑자기 16년을 건너 뛴 다음 여전히 민태호 대감의 집에서 진행된다. 그 긴 세월 동안 변한 것이라곤 연화가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는 것 밖에 없다. 선혜옹주는 여전히 유모로 남아 연화를 키우고 있다. 구태여 한 가지 더 지적해야 한다면 이윤재가 산채를 짓고 그의 뜻을 따르는 동료들과 모여 복권의 날을 준비하고 있(지만 임권택 은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세월을 건너뛰어서 연화가 세상 이치를 알 나이가 되었을 때 긴장의 중심에는 이제 그녀가 언제 어떻게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그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스스로 이 드라마 안에서 주체로 거듭날 것인가, 라는 데 있을 것이라고 나는 어림짐작했다. 왜냐하면 전편에서 갓난아기 연화는 마치 맥거핀처럼, 혹은 알리바이처럼, 때로 메시지처럼, 비유적으로 (에드가 알랜 포우의) 떠돌아다니는 편지처럼, 그렇게 네트워크 사이를 부유하는 기표처럼 보였다. 물론 이 아기는 그때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열여섯 살이 된 연화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틀렸다. 임권택은 시작하자마자 무언가를 서두르듯이 설명해나갔으며 응답은 앞질러 왔다.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 다음 고작 23분이 지났을 때 연화는 편지를 받고 모든 비밀을 다 안 다음 그 사실을 유모(이자 친모인) 양주댁(으로 위장한 선혜옹주)와 공유한다. 이제 연화가 이윤재와 선혜옹주의 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민태호 대감과 그 아내 밖에 없다. 하지만 민태호 대감은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사실을 떠올린 다음 연화의 출생의 비밀뿐만 아니라 선혜옹주의 비밀까지도 알아낸다. 여기에 별다른 긴장이나 위기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다소 짜증스러울 정도로 이윤재는 사태를 점점 악화시키면서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태를 해결해나간다. 말하자면 이윤재는 사실을 알지는 못하지만 의미를 아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임권택 은 그들 사이의 비밀을 사이에 둔 게임에서 머뭇거리는 대신 이야기를 민태호 대감 댁의 감옥으로 옮겨온다. 모든 비밀을 알게 된 민태호 대감은 연화와 선혜옹주, 그리고 연파 스님을 각각 다른 옥에 가둔다. 연화는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며, 선혜옹주는 비로소 양주댁이라는 거짓된 위장을 버리고 자기의 본래 자리를 되찾은 셈이며, 연파 스님은 이제 자신이 누구의 편인지 분명하게 한다. 여기서 더 남은 게 있을까. 임권택은 갑자기 여기에 속편 이야기의 진수가 담겨있는 것처럼 감옥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작은 옥사로 무대를 옮기면 이제 더 이상 야외에서 진행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때 실내는 기후 조건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무대는 연출의 일정에 따라 자유자재로 운영될 수 있어진다. 둘째, 감옥은 다른 공간과 달리 사람을 감금시키는 곳이기 때문에 원하는 등장인물들을 한 자리에 모은 다음 이야기를 고정시킬 수 있다. 말하자면 장소의 경제학. 임권택은 여기가 단지 경제적인 이유때문만이 아니라 감정의 충돌이라는 액션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 것 같다. 감옥 입구를 기준으로 연화를 왼쪽 윗방에 가두고 선혜옹주를 그 옆방에 가둔다. 그래서 그 둘은 서로 옆에 있기는 하지만 볼 수가 없다. 그런 다음 연화의 맞은 편 감옥에 연파 스님을 가둔다. 이 배치가 효과적인 이유는 선혜옹주에게 다가가 창살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 (가로가 긴 테크니스코프에서) 항상 그 사람의 뒤편에 연파스님이 보이기 때문에 두 사람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종의 후광효과와 같은 미장센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감옥 효과에 대해 설명을 하는 사람은 연파스님이다. 그는 갇힌 다음 민태호 대감의 호위 무사들에게 말한다. “지금 옥에 갇힌 사람이 나인가, 자네들인가” 물론 그들웰엽?말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세 사람을 가둔 다음 차례로 각자의 방법으로 다른 등장인물들이 그들 앞에 나타나는데 여기서 < 연화 >의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그건 우리 생각과 달리 선혜옹주나 이윤재, 혹은 연화가 아니다. 임권택이 처음부터 그 인물을 여러 차례 등장시켰지만 거의 마지막 자리까지 진정한 임무를 미루어 두었다가 여기서 그 결정적인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넘기는 사람은 민태호 대감의 정경부인이다. 약간의 복기. 정경부인은 아이를 낳지 못해 민태호 대감의 후대를 잇지 못하자 한편으로는 첩을 두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회암사에 백일기도를 드리러 갔다가 예기치 않은 연으로 선혜옹주와 이윤재의 딸 연화를 양녀로 입양시키고 선혜옹주를 유모로 집에 들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설명되지 않지만 민태호 대감은 주변의 모든 인물들에게 포악스러우며 무자비한 암살 지시도 망설인 적이 없지만 언제나 정경부인의 뜻을 존중하고 그녀에게 예의를 갖춰 대한다. 그는 다른 이에게 정경부인을 평하면서 “저 사람은 부처님 같은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감옥에서 정경부인의 등장은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정경부인이 감옥에 갇힌 선혜옹주를 찾아올 때이다. 그녀는 먼저 연화와 이야기를 나눈 다음 선혜옹주 앞에 섰을 때 갑자기 큰 절을 드리면서 마치 민태호 대감의 잘못을 자신이 사과하기라도 하듯이 최대한 예를 갖춘다. 이 장면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정경부인이 지금 자신이 가진 모든 우월한 자리를 포기한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을 그녀의 아랫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정경부인은 지금 감옥 바깥에 있으며, 언제든지 남편을 움직여서 선혜옹주를 제거한 다음 연화의 유일한 모친이 될 수도 있으며, 어쩌면 이제까지 자신을 속인 과정에 대해서 분노를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경부인은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기괴할 정도로 여기서 인간적인 모든 반응을 버리고 오로지 제도의 오작동에 대해 사과한 다음 그것이 원래대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선혜옹주 앞에서 미리 항복을 선언한다. 그것은 누구도 그녀에게 그것을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녀 자신의 믿음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교환도 없다. 단지 이것은 정경부인의 호의에 따른 행동이다. 이때 내가 보는 것은 이 드라마의 다소 무시무시할 정도로 흠결을 지워나가는 보수주의적인 태도이며, 그런 다음 거기서 어떤 감흥을 끌어내는 임권택 의 완전한 동의이다. 원래대로, 라는 이 무시무시한 말. 두 번째 정경부인의 방문은 임금의 행차를 위장하고 민태호 대감댁에 이윤재와 그의 동료들이 쳐들어와 감옥에서 민태호 대감과 서로 겨룰 때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이윤재가 민태호 대감을 인질로 붙잡고 그의 목에 칼을 대고 모두를 풀어주라고 외칠 때 민태호 대감의 호위 무사들은 연화와 선혜옹주, 연파스님의 목에 칼을 대고 서로 버티는 중이다. 이때 민태호 대감은 자신의 안위에 신경 쓰지 말고 그들을 모두 참하라고 명한다. 말하자면 파국 일보직전. 모두가 행동을 멈추어선 순간. 여기에 갑자기 정경부인이 나타난다. 그런 다음 “제가 한 가지 스님께 따질 것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연파스님 앞에 다가간다. 연파스님은 다 알고 있다는 듯,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오랏줄에 묶인 채로 그녀를 맞이한다. 민태호 대감은 맞은편에서 이윤재의 칼에 목이 겨냥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도대체 자기 부인이 이 살풍경한 순간에 왜 나타났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이제까지 당당한 모습과 달리, 적어도 이 시퀀스에서는 처음으로 불안한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여기 동일한 장면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개의 시선이 있다. 하나는 민태호 대감의 시선이다. 그는 자기 아내가 연파 스님에게 다가가 칼을 꺼내들 때 그를 해하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말린다. 다른 하나는 연파 스님의 시선이다. 그는 정경부인이 칼을 꺼내들어 자신의 오랏줄을 끊어줄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태연자약하게 기다리다가 정말 그것을 행하자마자 곁의 무사로부터 (자신의 무기인) 죽장을 재빨리 빼앗아 든 다음 그들을 모두 물리친다. 주관적인 두 개의 시선의 교차. 이때 나는 질문의 방향을 정경부인이 올바른 행동을 한 것인가, 라고 물어보는 대신 반대로 그 두 사람에게 돌려놓고 싶다.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각자의 주관적인 착각. 이때 연파스님은 정경부인에 대한 어떤 배려도 없이 오로지 자기를 중심에 놓고 그녀의 행동을 시스템의 신념 안에서만 판단한다. 그때 정경부인에게는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어진다. 반대로 민태호 대감은 자신이 위기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경부인의 행동을 말리려고 할 때 그것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미끼가 사라져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아내가 자신과 달리 손에 피를 묻혀서는 안 된다는 보호에서 온 호소이다. 이때 정경부인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다. 하나는 이미 본 것처럼 스스로 파멸을 선택하고 정의라는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걸 선택하면 이제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다른 하나는 민태호 대감의 호소에 따라 행위를 중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상황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한치 앞을 알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 중단에 대해서 누구도 정경부인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녀는 자신을 속이고 그로 인해 남편을 현재의 상황으로 몰고 갔을 뿐만 아니라 양녀인 연화를 원래의 부모에게로 다시 빼앗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연파 스님의 계획적인 속임수에 대해서 최소한 용서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확한 계산은 그녀가 이 행동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파스님에게 그의 마지막 계산을 좌절시킴으로써 빚을 갚는 방법이 있다. 물론 당신은 하나가 더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것은 민태호 대감의 걱정대로 정경부인이 연파스님을 칼로 찔러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두 번째 선택과 별 차이가 없다. 마찬가지로 다시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가서 계속될 뿐이다. 다만 정경부인과 민태호 대감을 분명하게 한 편으로 묶어낼 뿐이다. 그러나 정경부인이 민태호 대감의 편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세 번째의 선택은 셈에 포함시키지 않을 생각이다. 여기서 우리를 잠시동안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순간은 정경부인의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에 대해서 민태호 대감은 지켜본 다음 조금도 노여워하거나 혹은 정경부인의 행동을 꾸짖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정경부인의 행위에 대해서 침묵으로 대답한다. 말하자면 민태호 대감은 그 행동을 추호도 자신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심지어 민태호 대감은 연파스님이나 이윤재, 혹은 선혜옹주보다 더 정경부인의 행위를 잘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 짧은 순간은 임권택 이 < 연화 >의 이야기 전체를 조롱하는 결단이다. 연파스님과 이윤재, 선혜옹주, (그리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연화는 자신들이 정의를 되찾았다고 생각하면서 원래의 시스템에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기뻐하겠지만 진정으로 이 장면에서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는 정념의 몫은 민태호 대감과 정경부인의 믿음이다. 정경부인은 그런 다음 민태호 대감 앞에 가서 큰 절을 올린다. 민태호 대감은 그 순간 정경부인의 행위가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를 위한 결단이라는 것을 본다. 게다가 그것이 목숨을 건 행위라는 것을 거의 즉각적으로 안다. S#_1 S#_2 S#_3 S#_4 S#_5 S#_6 S#_7 S#_8 S#_9 S#_10 이 설명이 어리둥절하다면 정경부인의 세 번째 방문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무리할 정도로 긴 이 영화에서 정경부인이 감옥에 갇힌 민태호 대감을 찾아오는 이 장면은 < 연화 >에서 가장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씬이다. 이윤재와 선혜옹주는 복권을 하고 연화는 부모의 품으로 돌아간다. 임권택 은 이 장면에 별 관심이 없다. 단지 이야기가 요구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런 다음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간다. 그때 감옥은 민태호 대감이 외로이 갇혀 있으며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주변에 아무도 없다. 감옥으로 되돌아 올 때(master_shot), 그러니까 정경부인이 민태호 대감을 면회하기 위해 이 옥사에 들어설 때, 그녀의 방문을 연파 스님이 갇혔던 감옥 안에서 보여주기 때문에, 두 개의 프레임이 만들어지면서(frame_in_frame) 이중 삼중으로 감옥 안의 감옥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런 다음 정경부인과 민태호 대감을 서로 번갈아(shot_reverse shot) 보여준다. 이때 한쪽에서 다른 한쪽을 바라보면서 찍었기 때문에(over_shoulder_shot) 모든 쇼트는 어느 쪽에 있건 창살 때문에 감옥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정경부인은 민테호 대감 앞에 예의를 다해 앉으며 “대감, 용서하십시오, 소인이 평생 처음으로 대감의 뜻을 거역하였습니다” 라고 말한다. ( S#_1) 민태호 대감은 그녀를 가엾게 바라보면서 “내 죄가 많소, 날 용서해주시오” 라고 대답한다. ( S#_2) 정경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용서라니 당치도 않은 말씀이옵니다. 세상 사람이 모두 대감에게 돌을 던진다 하더라도 소인만은 대감의 뒤를 따를 것이옵니다” 라고 하자( S#_3) 민태호 대감은 “대역 죄인은 삼족을 멸하는 법이니 부인 또한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소이다”라고 말한다. ( S#_4) 그런 다음 갑자기 더 가까이 들어가서 민태호 대감을 찍는다. ( S#_5) 이때 단지 가까이 다가갔다는 것이 요점이 아니다. 이 가까운 거리는 앞의 쇼트와 완전히 다른 장면을 만든다. 민태호 대감과 카메라 사이에 감옥의 철창이 사라진 것이다. 민태호 대감은 그런 다음 덧붙인다. “부디 정경부인의 체통을 잃지 말기 바라오” 이때의 맞은 편 정경부인을 보여줄 때는 여전히 감옥의 창살이 민태호 대감의 시선을 가로 막고 있다. ( S#_6) 정경부인은 크게 흐느끼며 “명심하오리다”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을 민태호 대감의 감옥 안쪽에서 좀 더 뒤로 물러나서 함께(full_two_shot) 보여준다. ( S#_7) 그리고 다시 한 번 앞서 보여준 장면의 (카메라와 인물 사이의) 거리를 반복하면서 철창 없이 민태호 대감을 보여준다. ( S#_8) 민태호 대감은 탄식하듯이 덧붙인다. “고맙소, 부인” 그러자 정경부인은 작별을 아쉬워하듯이 철창 사이로 민태호 대감의 손을 보듬듯이 잡는다. ( S#_9) 그런 다음 떠나가는 정경부인을 바라보는 민태호 대감을 창살 너머에서 바라본다. ( S#_10) 여기서 두 개의 쇼트, 철창 안에서, 그러니까 철창 없이, 찍은 장면은 정경부인이 바라보는(point_of_view) 쇼트가 아니라는 뜻이다. 좀 더 용기를 내서 말한다면 임권택의 방점이다. 잃지 말아야 할 체통.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만든 행위보다도 더 소중한 한 마디, 명심에 대해서 민태호 대감은 고맙소, 라는 말로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왜 이 두 개의 쇼트가 중요해진 것일까. 임권택 은 < 연화 >의 이야기가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드라마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조선시대뿐이다. 조선이라는 기이한 공동체. 임권택은 여기서 조선 사대부 가문의 무시무시한 체통과 법도를 보려고 한다. 거기서 그가 선인지 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이라고 그것을 반드시 지키는 것이 아니며 악이라고 그것을 버리는 것이 아닌 세계의 질서. 이때 민태호 대감의 정경부인에 대한 이해의 바탕에는 그 무거운 사대부 양반 가문의 전통이 그 위에 내려앉는다. 여기에는 조선이라는 전근대 사회의 윤리가 한편으로는 그들이 마주해야하는 실재를 회피하게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들을 둘러싼다. 그때 그들은 언제든지 운명까지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것이 그들의 의도와 아무 상관없이 정의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이끈다. <연화>에서 가장 수상쩍은 대목은 사실상 이윤재와 선혜옹주가 그들의 정의를 회복할 수 있도록 제대로 한 일이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진정으로 작동한 것은 우리들의 시대와 절대적으로 좁혀지지 않는 조선이라는 시간과의 간극 사이에 머물고 있는 윤리의 기호들이다. 여기에 빠진 것은 무엇일까. 그것으로 무엇을 승화시킬 것인가, 라는 대답이다. <연화>는 그 간극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처음 볼 때는 이 영화가 임권택 영화에서 지니고 있는 난처한 의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 왜 그것이 아직은 난처했던 것일까. 임권택은 여기서 참조해야 할 틀을 아직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참조가 잘못되면 순식간에 이 모든 기호들이 잘못된 주인의 윤리 아래서 길들여질 지도 모른다. 그것은 위험한 내기이다. 하지만 <연화>가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는 임권택은 여기서 자신만의 안티고네를 찾았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 자신만의 안티고네가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그 앞에 놓여있게 되었다. 이때 윤리의 기호들은 그의 주인공들을 길들이는 도구가 될 것인지, 혹은 공동체 안에서의 공존이라는 이름으로 항복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마침내 자신을 사랑하는 기술을 익히는 방법이 될 것인지, 라는 자리에서 질문이 되었다. 물론 임권택은 손쉽게 종료하는 길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임권택을 곁에서 바라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임권택에게 유일한 방어의 기술이 있다면 그것은 의심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의심의 윤리학에 관한 체계를 설명하는 것이 내 임무 중의 하나라고 믿는다. 하지만 어떻게? (계속) 1974년 106분/109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한유림 / 신봉승 촬영 손현채 조명 박태수 편집 김희수 음악 한상기 고은아 이순재 박병호 강부자 이효춘 >> <연화> 고화질 VOD 보러가기 << >> <연화(속)> 고화질 VOD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