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서랍
- 감독
- 김지곤
- 제작년도
- 2015
< 리틀보이 12725 >(2018, 김지곤 )는 김형률의 고귀한 삶에 논평을 더하거나 업적을 기리기보다는 그의 내밀한 마음과 생각이 무엇이었고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더듬어 보려는 시도에 더 가깝다. "삼촌 책상에 앉아서 창문을 봤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 사셨을지 궁금하더라고요". 조카의 인터뷰는 영화의 태도와 일치한다. 그 쇼트 이전에 카메라는 어두운 방에서 오랫동안 창을 응시했고 이후엔 김형률이 실제로 봤을 풍경들-창밖에 눈이 오는 휴대폰 동영상, 창에서 내려다보이는 부둣가 사진-을 본다. 방대한 사료 가운데 그가 쓴 일기와 메모들, 시를 읽는 데에 많은 쇼트들을 할애하게 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 일이다. 아파도 치료비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아프고 싶다는 바람, 추운 날씨에 집 안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지만 봄이 되면 훨훨 살아날 것이라는 의지, 배움에 자격은 없다는 열의, 평범하게 직장에 다니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고백. 그와 뜻을 함께한 운동가들이나 관련된 책을 쓴 작가들은 인권운동에 투신한 그의 놀라운 집념을 자주 언급했는데, 이를 추동하는 힘은 그처럼 소박하고 단단한 마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김형률의 고통은 원폭 피해자 2세를 만든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오프닝씬은 티니언-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의 행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다음엔 합천에서 부산으로, 다시 말해 어머니에게서 자식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이 슬픔의 경로를 불러다가 역사와 그 영향 아래의 개인에 대해 생각한다. 리틀보이가 히로시마에 도착한 8월 6일은 이제 유등을 띄우고 평화를 기원하며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원폭기념일이 되었다. 나가사키에도 추모객은 밤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1945년의 폭탄 구조물은 아직 티니언에 있다. 리틀보이와 팻맨이 남아있다면 희생자들도 살아있겠죠.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그것을 가정하는 내레이션이 물안개 피어나는 합천의 강가에서 한번, 김형률의 방과 어머니의 히로시마 생가 전경에 걸쳐 한 번 반복된다. 이 때 내레이션은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어머니가 피폭되지도, 아들을 그렇게 잃지도 않았을 거라는 말처럼 들린다. 영화는 사람들의 외면이나 무지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역사도 침묵하지 않고, 현재의 시간 안에 과거가 존재한다는 걸 믿고 있다. 원폭을 견딘 건물의 잔해들과 녹음(綠陰), 그 뒤로 현대식 건물들이 보이는 히로시마의 강변 풍경에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영화는 유유히 흐르는 히로시마의 강물을 바라보며 욱일기 아래에서 만세를 부르는 사진,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전함과 잠수함 등을 교차해 바라보며 과거사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묻는다. 김형률이 등산을 좋아했다는 진술에 이어지는 산의 전경엔 삶에 대한 의지 대신 비극의 단초인 핵실험을 새겨 넣기도 한다.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와 함께 기장 앞바다, 고리원자력발전소에 이어지는 히로시마의 숲 쇼트들, 거기에 교차되는 원폭투하 당시의 무시무시한 먼지와 화염은 도시교향악처럼 보이던 일련의 쇼트들에 이상한 생명력과 섬뜩함을 남긴다. 하지만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매우 조심스럽다. 이를테면 아버지는 김형률이 이룬 성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평가된다. 누군가와 만났을 때는 물론이요 토론회, 기념식, 행사와 시위 등등에 다니며 찍은 기념사진마다 아버지가 곁에 있다시피 하니 그의 노고를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도 영화는 그를 비중 있게 다룬 적이 없다.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투 쇼트(two shot)에서도 거의 말이 없고, 집에 손님들이 왔어도 배경인 것처럼 뒤에 조용히 앉아있다. 2층 방을 만들어 주게 된 사연의 내레이션, 아들이 자기 나름대로는 살아보려고 등산을 많이 다녔다는 인터뷰, 추모제에서 인사말을 하는 정도가 아버지를 다룬 쇼트의 전부다. 또한 영화는 김형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주변인들에게는 묻지만 그에게는 묻지 않는다. 아들의 못다 이룬 뜻을 이어가는 아버지에겐 무용한 질문인 까닭이다. 어머니의 심정은 금강경에서 드러난다. 12년째 (독송을) 하고 있으니 좋은 데 갔겠지.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그의 독송에는 자꾸만 울음이 섞인다. 가슴에 묻는다는 자식을 어찌 잊을까. 카메라는 어머니의 얼굴을 도무지 볼 수가 없다. 나는 < 할매-서랍 >(2015, 김지곤)로 김지곤 감독을 기억한다. 옷가지며 이불들이 그대로 있는 김형률의 방을 느린 팬으로 살피거나 몇 쇼트에 걸쳐서 조용히 바라볼 때, 혹은 액자의 유리에 비친 사물의 상(相)을 관찰할 때, 티니언과 히로시마, 합천 등지에서 종종 물가나 돌담, 사소한 풍경 앞에 머물러 오래 그것을 살필 때. 그 자리에는 사물들과 장소를 응시하며 본질에 다가가려는 감독 특유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가 한 장소에서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보여주던 디졸브는 이 영화에서 노을 지는 티니언의 바다에 히로시마의 강을 겹쳐내며 아예 동일한 장소처럼 보이는 데 쓰인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묶여있으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티니언의 어두운 숲에서 시작한 영화는 김형률의 일기장 마지막 빈 페이지에서 끝난다. 그렇지만 거기에 담긴 고통과 슬픔과 문제 제기는 과거형이 되지 못했다. 어머니는 오늘도 당신의 아들을 위해 금강경을 욀 것이다. 김형률‘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원폭 범죄에 가담해온 우리 사회 내부의 책임을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느냐는 15년 전의 질문은 여전히 묵직하게 가슴을 때린다.
김지곤 은 2009년 어느 날, 오랜 시간 산복도로에서 살아오신 할머니들을 만났다. ‘말필 할매’와 ‘청바지 할매’는 비가 오는 날이면 술잔을 기울이면서 노래를 부르고, 손자들(할머니들은 감독을 포함한 스태프를 이렇게 부른다)이 놀러 오면 수제비나 라면을 뚝딱 만들어서 술판을 벌인다. 한국의 부패한 정치 풍토, 이웃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 젊은이들의 연애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오랜만에 만난 스태프가 반가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할머니의 시간과 기억은 그들의 주름진 얼굴과 굵은 손마디로 포착되거나, 오랜 시간 할머니 곁을 지켰던 사물들(못, 낡은 대야, 이름 모를 풀과 꽃, 시멘트 바닥)의 응시로 이어진다. 김지곤 이 < 할매 >(2011)와 < 할매:시멘트 정원 >(2012)에 이어 < 할매-서랍 >(2016)을 만드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우선 제목이 눈에 띈다. 할머니가 단독으로 등장하다가 할매와 시멘트, 정원은 콜론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되비치는 관계에 놓인다. 최근작에서 할매와 서랍 사이에 놓인 하이픈은 시간(2009-2015), 관계(이 놈-손자), 공간(집과 폐허), 사물(시멘트로 구성된 집과 벽-풀과 꽃)의 연결이 부각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할머니들은 정든 집을 떠나 여러 차례에 걸쳐 이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동네 친구였던 말필 할매와 청바지 할매는 더 이상 이웃으로 지내지 못한다.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 반주(飯酒) 공동체는 말필 할매의 아들들과 스태프 모두를 포함하면서 점점 대가족이 되어간다. 마치 산복도로가 자생적인 골목과 계단으로 구성된 유기체가 된 것처럼 <할매> 연작을 통해 스태프도 산복도로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실제로 김지곤은 할머니들의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기력이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할머니들은 술과 노래를 사랑하고, 막걸리 사 들고 찾아오는 손자들을 살갑게 맞아준다. 온정으로 이어진 소박한 이웃을 억지로 떼어놓고, 오랜 기간 살았던 집을 강제로 허물고 있는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정책을 비롯한 부산시의 고압적인 행정은 오랜 시간 그 지역을 지켜왔던 사람들과 사물들에 무관심하다. 처음에는 공원을 조성하겠다던 부산시의 계획은 빌라 건축으로 변질되었고, 할머니들의 집터는 몇 년에 걸쳐 서서히 폐허로 변해갔다. 할머니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기록하는 카메라에 담기는 대상 또한 변해간다. 철저하게 목소리로 등장하던 감독의 존재(< 할매 >)는 프레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 할매:시멘트 정원 >, < 할매-서랍 >)으로 변했으며, “카메라 치워라”고 얘기하던 할머니는 어느새 카메라를 들고 스태프의 얼굴을 찍게 된다. 할머니들은 카메라를 쳐다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신들을 찍고 있는 기계에 대해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기에 할머니와 카메라의 거리감은 감독과 할머니의 거리감을 좁혀나가는 표지가 된다. 하지만 5년이 흐를 동안 이별과 해체가 이어지기도 한다. 말필 할머니의 개 해피는 이사 간 집을 찾지 못해 실종되었고, 스태프들은 일자리를 찾아 부산을 떠났다. 무엇보다 계단-골목-계단으로 연결되는 산복도로의 비좁고 구불거리는 길들은 평평한 땅이 되었다. < 할매-서랍 >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김지곤 과 스태프가 할머니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한 축으로 삼고, 다른 쪽에 철거가 진행되는 과정을 담은 공간과 사물 인서트들을 디졸브한 이미지로 구성한다. 사람과 공간의 머무름/사라짐은 이미지의 겹침으로 인해 시간과 공간의 상실을 극대화한다. 또한 이 영화는 ‘할매’ 연작의 마지막 영화임을 분명히 지시하고 있다. 첫째로 전작에서 사용하지 않는 구체적 날짜를 명기한 자막이 13차례 등장한다. 산복도로의 정의와 ‘산복도로 르네상스’에 대한 부산시의 발표를 제외하면 태풍이 불어 닥친 어느 날의 기록, 해피가 있었다는 사실, 영정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할머니의 말, 할머니들의 이삿날, 할머니의 79세 생일잔치, 평상을 만든 기념으로 함께 먹은 삼겹살 등 감독이 체감한 산복도로에서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둘째로 영화의 타이틀이 러닝타임의 중간쯤에 삽입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할머니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된 김지곤의 카메라는 산복도로의 이웃이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그럼에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여전히 이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철거 후에도 할머니의 집터에서 몇 년의 시간을 버티고 있는 버려진 냉장고와 무성하게 자라나는 풀들을 끈질기게 응시하는 것이 서랍을 여는 행동처럼 느껴진다. 서랍을 닫는 형태는 할머니의 대가족으로 편입된 스태프의 모습과 산복도로의 계단을 걷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술을 마시던 할머니들의 공간이 서서히 사라졌다는 기록이다. 특히 전작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산복도로의 조감도는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이곳을 바라보라는 감독의 요청 같다. 폐허가 된 집터에서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는 시선에 담긴 산복도로는 긴밀하게 연결된 길과 계단,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의 움직임으로 인해 마치 동맥을 흐르고 있는 피처럼 보인다. 그 사이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처럼 덩그러니 놓인 할머니의 집터를 포함한 산복도로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전체를 스스로 드러낸다. 참혹한 조망이긴 하지만, 김지곤이 포착한 그곳의 자생적인 생명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시멘트를 뚫고 풀이 자라날 것이며, 천막으로 덮어놓은 땅에서도 꽃이 피어난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