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렐라인: 비밀의 문
- 감독
- 헨리 셀릭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다코타 패닝, 테리 해처, 존 호지만, 돈 프렌치, 제너퍼 손더즈, 키스 데이빗
최근 한국 애니메이션이 두 편이나 연달아 개봉을 했다. < 소중한 날의 꿈 >과 < 마당을 나온 암탉 >이 그 작품들. 한국 애니메이션의 제작 상황을 생각했을 때 웬만해선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그중 <마당을 나온 암탉>이 황선미 작가의 베스트셀러 동화가 원작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걸 본 계기로 한국아동문학에 관심이 가고, 나아가 유명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사랑해온 걸작 동화들이 새삼 궁금해졌다. 가장 먼저 로알드 달의 원작들이 떠오른다. 헨리 셀릭이 연출한 <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와 웨스 앤더슨의 <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가 달에게 거대한 빚을 지고 있다.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에서 갈매기들에게 매달려 푸른 밤바다 위를 날아가는 거대한 복숭아의 모습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한밤중 거대한 복숭아 위에서 듣는 지네 아저씨의 바이올린 연주는 또 얼마나 가슴 설레는지. < 스티브 지소와 해저생활 > < 다즐링 주식회사 >를 연출한 전방위 아티스트 웨스 앤더슨이 자신의 색깔을 한껏 살린 첫 애니메이션 <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도 나무랄 데 없다. 닭장을 털고 농장을 습격하는 미스터 폭스를 통해 보여준 로알드 달의 유머 감각이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에도 그대로 적용돼 황홀했던 기억이 있다. 달이 생각해낸 미스터 폭스의 캐릭터나 미스터 폭스 식구들, 그리고 악질 농장주 삼인방은 어느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캐릭터. 나무 밑 여우굴의 이미지나 농장주들에게 쫓기던 미스터 폭스가 대반전을 꾀하는 결말도 유쾌하고 발랄한 여운을 남긴다. 어른들의 규범과 관습에 어긋날지라도 아이들이 원하는 반전을 그려냈던 로알드 달의 비틀린 유머 감각은 단연 최고다. 그의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이 나올 때마다 그의 동화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새삼 놀라곤 한다. 감독 스파이크 존즈가 모리스 샌닥의 동명 그림동화를 꿈같은 화면으로 되살려낸 < 괴물들이 사는 나라 >도 빼놓을 수 없다. 몇 페이지 안 되는 원작 속에 ‘괴물처럼 아우성치며 외로워하는 어린이’에 대한 철학을 담아놓은 샌닥의 심오한 상상력이 없었다면 절대 나올 수 없었던 작품이다. 스파이크 존즈도 그만큼 원작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건드린 동화들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나 어슐러 르 귄의 <게드 전기>이나 메리 워튼의 동화 <마루 밑 소인들>. 오리지널 스토리가 바탕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보다는 파급력이 덜했지만, 지브리에 새로운 상상력을 수혈해준 동화들이었음은 사실이다. < 백설공주 >에서 < 라푼젤 >에 이르기까지 디즈니가 숱하게 작업해온 클래식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도 수많은 동화 원작을 입체적으로 만나왔고, 윌리엄 스테이그가 쓴 동화 <슈렉>이 애니메이션으로 4편까지 장수하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에게도 물론 정채봉의 <오세암>이나 권정생의 <강아지똥>이 있다. 판매부수 100만부가 넘은 한국아동문학의 베스트셀러 <마당을 나온 암탉>까지 애니메이션이 됐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여전히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 마당을 나온 암탉 >의 완성도에도 이견이 있는 상황에서, 더 다양한 색깔의 한국 동화를 많이 발굴할 필요가 있다. 오리지널 스토리의 중요성도 크지만, 이미 이야기와 캐릭터의 완성도를 갖춘 동화 한 편이 주는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 아동문학을 샅샅이 뒤져본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아동문학의 조류나 성향도 잘 모르고,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되기 적합한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아동문학에 살을 붙이고 가지를 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콘텐츠도 없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골라보라면 요즘 한국 아동문학의 ‘핫 이슈’라 할 백희나 작가의 <달 샤베트>를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싶다. 일면식도 없지만 작가가 직접 그리고 세트를 지어 사진 촬영한 입체 일러스트가 대형 아이맥스 화면에서 살아 움직이는 걸 보고 싶다. 그녀의 전작 <구름빵>이 이미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된 바 있다. 하지만 더운 여름밤 잠 못 이루는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반장인 여우 할머니가 달로 샤베트를 만들어준다는 <달 샤베트>의 그림과 이야기는 왠지 더 시네마틱하다. ‘한국의 웨스 앤더슨’ ‘한국의 헨리 셀릭’이 혜성같이 등장해 원작의 색감과 질감을 살려 스크린에 옮겨주길 괜히 기대해본다.
<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란 애니메이션을 처음 본 것은 꽤나 오래전으로 기억된다. 극장에서 개봉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출시된 비디오로 접했으니 벌써 십년도 훌쩍 넘은 것 같다. 독특한 비주얼 이미지와 뒤틀린 유머로 큰 반향과 색다른 감동을 주었던 < 크리스마스의 악몽 >의 팀 버튼이 이 작품에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꺼이 이 비디오를 구매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추호의 의심도 없이 팀 버튼이 <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의 감독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 크리스마스의 악몽 >도 그때까지 팀 버튼의 연출작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두 작품 모두 바로 헨리 셀릭이라는 스톱 모션의 거장에 의해 창조된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동안 팀 버튼이라는 거장의 명성에 가려져 크게 주목받지 못한 점도 있었지만, 실제로 애니메이션 타이틀에서조차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으로 알려진 탓에 이런 오해들이 제법 생길만도 했다. 어쨌든지 내 나름대로 이 작품을 통해 마땅히 제대로 크레딧을 인정받아야 할 숨겨진 창조자를 새롭게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1930년대 영국의 어느 바닷가 작은 마을. 주인공 제임스는 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부모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행복도 잠시! 제임스의 부모는 우스꽝스럽게도 동물원을 탈출한 코뿔소에 의해 비극적인 사고를 당하게 된다. 졸지에 고아가 된 제임스는 악덕하고 심술 맞은 친척 이모들에게 맡겨지고 그때부터 불행한 삶이 시작된다. 여기까지 듣고 보면, 언뜻 디즈니표 가족용 애니메이션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고 식상한 감동 스토리의 결말이 보이기 시작한다.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은 소년은 결국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그런 전개로 지루해질 즈음부터 바로 헨리 셀릭과 팀 버튼 두 콤비 특유의 상상력과 유쾌한 비틀기가 더해지면서 모험 활극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에서는 순종만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단순한 권선징악형의 디즈니 영화 공식이 답습되지 않는다. <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 >의 캐릭터들이 아이와 벌레들이 의인화되어 등장한다고 해서 자칫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라고 치부하면 곤란하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동화와 같이 환상적이고 아름답게 펼쳐지지만, 저변에 깔린 의식의 배경은 절대 권력의 약자들로 그려진 이들의 모험담과 더불어 1930년대의 시대상을 다소 냉소적인 시선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은 실사 영화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환타지 어드벤처물로서 당시로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비주얼적인 완성도 면에서도 큰 찬사를 받았다. 특히, < 마틸다 >와 < 찰리와 초콜릿 공장 > 등으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작가 로앨드 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일관된 테마는 바로 어린이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다. 단순히 교훈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험을 겪는 과정에서 웃음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선사한다. 학대의 테마에서 극복, 정의, 성장의 코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그 위에 아름다운 선율까지 실어 비주얼적인 환상의 전환을 이뤄내며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최첨단 신기술을 앞세워 화려한 볼거리의 CG 영상으로 점철된 요즘 영화들 속에서 가끔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 한 편 감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Oldies-but-goodies. 새삼스럽게 느끼지만, 명작이란 타이틀 앞에서는 시간의 흐름은 무색하기만 한 것 같다. / 추혜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