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영상] 신인배우 유다인 첫 주연 〈혜화,동〉언론시사회에서 만나다
- 제작년도
- 2011
강릉씨네마떼끄 90년대 중반,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한국의 모든 씨네마떼끄들이 그러했겠지만 강릉씨네마떼끄의 꿈도 전용관을 갖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영화를 큰 스크린에서 여럿이 함께보고,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강릉씨네마떼끄의 목표였지만 현실은 그런 꿈을 실현시키기에는 많이 부족하기만 했다. 찾아오기도 힘든 4층건물 꼭대기에 이십명 앉기에도 비좁고, 앞사람 머리에 가려 자막도 잘 안보이는 좁은 상영관이 우리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우리는 영화를 함께 봤고, 정동진독립영화제를 준비했고, 독립영화를 강릉시민에게 줄기차게 소개해왔다. 씨네마떼끄의 좁은 상영관에서 < 파업전야 >를, 단오문화관을 빌려 < 우리학교 >를, 대학 소극장을 빌려 < 고갈 >을, 미디어센터를 빌려 < 혜화,동 >을 상영해왔다. 신영극장 1996년 창립 이후로, 16년 넘게 지역에서 씨네마떼끄 활동을 하고, 독립영화를 소개하면서 느꼈던 점은 안정적이면서도 접근성이 좋은 공간의 필요였다. 그러다가 2011년 10월, < 돼지의 왕 > 강릉개봉을 추진하는데 기존에 섭외해오던 몇몇 공간들의 장소섭외가 잘 안되서 고민하던 와중에 이빨이 아파서 치과를 갔다. 물론, <돼지의 왕> 개봉공간 섭외의 고민 때문에 치통이 찾아온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가 주로 가던 그 치과는 3층이었고, 4층엔 강릉의 대표적인 극장이었으나 그당시엔 폐관중이었던 신영극장이 있었다. 순간이었다. 정말. 그 순간,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에 4층으로 갔고, 예전 그 모습 그대로 있는 신영극장을 만나고야 말았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묘한 느낌이 왔다. 옛날에 자주 와서 영화보던 공간이었지만 문닫은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는게 신기했고, 여기서 우리가 영화를 상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바로 관리사무소로 가서 문의를 했다. 얼마냐고. 그게 시작이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돈이 없었고, 그러니 돈을 만들어야 했고, 돈으로 해결해야하는걸 직접 해결했다. 일단, 건물 임대보증금을 준비해야 해서 [나는 주인이다]라는 보증금마련 후원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목돈을 후원한 분들의 이름을 좌석에 새겨주는 프로젝트였는데 ‘이게 될까?’싶기도 했지만 놀랍게도 어마어마한 속도로 200석의 좌석을 모두 후원받았다. 배우이자 감독인 유지태님이 선뜻 홍보모델도 해주셨고, 이런 쪽에는 늘 아낌없이 주는 배우 권해효님 등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다. 결정적으로 공무원노조 강릉시지부같은 강릉의 수많은 시민사회문화단체들과 강릉시민들이 흔쾌히 참여해주셔서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릉씨네마떼끄가 주최하는 정동진독립영화제의 예전 표어중에 ‘핸드메이드 영화제’라는게 있었다. 스크린부터 모깃불까지 모든걸 직접 만든다는 뜻의 문구였는데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도 ‘핸드메이드 극장’이 되버렸다. 돈으로 해결하면 되는걸 재정이 불안하다보니 극장 스탭들과 강릉씨네마떼끄 회원들이 직접 해결했다. 극장 간판도 우리가 직접 달고, 티켓박스도 MDF를 사서 직접 자르고, 붙여 만들었다. 극장 내부의 방염흡음시설도 우리가 직접 붙였다. 그러다보니 정작 중요한걸 놓치고 가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지만 ‘우리가 직접 만든 극장’이라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더 좋은 것 같다. 신영에서 신영으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전신인 신영극장은 강릉의 시내중심가에 위치한 극장이다. 1960년대부터 강릉시민들에게 사랑받아온 극장이었고, 가장 큰 극장이었다.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는 ‘신영극장에서 보자’라는 강릉시민들의 약속장소이기도 한 일종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다. 극장 문을 닫은지 꽤 됐지만 아직도 건물 앞 버스정류장 이름도 신영극장이다. 비록 기술발전과 영화관람문화의 변화에 밀려 사라졌던 극장이지만 그 극장에 담겨있는 수수함과 강릉사람들이 갖고 있는 추억을 버리기 싫었다. 그래서 ‘신영’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거다. 사실, 강릉에서는 “신영극장”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우리가 이름을 뭐라고 붙이든 상관없이 ‘강릉사람들은 한동안은 그냥 신영극장이라고 부를거 같아서‘라는 이유도 조금은 있다. 개관 8개월여 가까이 극장 개관을 준비하면서 온갖 난관을 넘어왔다. 이런저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강릉씨네마떼끄 회원, 강릉시민들 그리고 전국의 독립영화인들 도움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개관은 했다. 그러나 극장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만은 않은거같다. 물론, 우리는 열심히 할거지만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문제들은 발에 채일정도로 언제나 주변에 널려있다. 독립영화나 규모가 작은 영화들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 한국영화산업의 현실 덕분에 극장의 내일에 대한 걱정은 늘 가득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강릉씨네마떼끄가 우리지역에서 영화제를 하고, 상영회를 해오면서 만났던 강릉의 관객들을 믿는다. 씨네마떼끄의 아버지라 불리는 씨네마떼끄 프랑세즈의 초대관장 앙리 랑글루아가 이야기했다. “좋은 영화, 나쁜 영화는 없다. 오직 봐야할 영화만이 있다” 우리 극장의 비전이 바로 그 말에 담겨있다. 좋은 영화, 나쁜 영화의 구분은 아마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면 돈빨로 밀어붙이는 나쁜영화고, 예술영화관에서 하면 좋은 영화라는 구분은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지금은 좋은 영화, 나쁜 영화의 구분 이전에 더 심각하면서도 더 원초적인 구분이 있다. 바로 “볼 수 있는 영화와 볼 수 없는 영화”다. 독립영화만 해도 1년에 60편 이상의 장편이 만들어지는데 그중에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영화가 몇편이나 될까? 어렵게 어렵게 준비해서 극장개봉을 한다해도 그 영화를 내가 사는 동네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는 관객은 몇 명이나 될까? 영화를 볼 수 있다는걸 행운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시절인 것이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판단할 기본적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래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목표는 ‘볼 수 없는 영화의 소멸’이다. 더 이상 < 두 개의 문 >을 보기위해 멀티플렉스 극장을 대관하지 않아도 되도록, < 레드마리아 >를 보기위해 강릉인권영화제가 열리는 12월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도록, < 줄탁동시 >를 보기위해서 서울독립영화제 순회상영회가 강릉을 찾기를 학수고대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영화 한편 안본다고 해서 인생 망가지지 않는다. 영화를 본다는건 그야말로 삶의 질을 풍부히 하는건데 지금까지는 < 말하는 건축가 > 한 편을 보기위해 개인과 지역사회가 감내해야 하는 경제적, 사회적 기회비용이 너무나 컸다. “내가 보고싶은 영화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목표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고작 스크린 한개짜리 극장에서 뭘 할 수 있을런지 의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 모퉁이만 돌면 햇빛이 쨍하게 비추고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개관 이후 조금씩 조금씩 극장을 찾는 관객들도 늘어가고 있다. 신영에서 개봉하는 모든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단골관객들도 생겨나고 있다. 적극적으로 개봉요청이 들어오기도 하고, 홍보부족을 꼬집는 질책을 관객에게 듣기도 한다. 지금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상황이 그리 희망적이진 않지만 희망이 보이기는 한다. 그래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강릉의 관객들을 믿고, 또한 관객들에게 신뢰를 줄 것이다. 그리고 강릉의 관객들과 함께 달려볼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독립한지 올해로 10년째가 되어 간다. 그 기간 동안 총 3개의 집을 거쳐 갔다. 원룸이 한번, 오래된 연립이 한번, 그리고 조금 덜 오래된 연립이 지금의 집이다. 아무래도 내가 집의 유일한 거주자이다 보니, ‘집’이라는 것이 예전에 부모님과 함께 살던 때와는 조금 다른 개념처럼 느껴지곤 한다. 단순히, 피곤한 내 한 몸 고이 누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동거인’과 같은 개념으로서 느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행이나 영화 촬영처럼 오랫동안 집을 비우거나 소홀히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마치 토라진 여자 친구마냥 차가운 기운만 내뿜는다. 왠지 휑하고 썰렁한 그런 기운 말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집에 머물며 정성어린 손길과 관심을 쏟아 주면 냉랭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토라진 마음을 돌리는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면 바로 가구 배치를 바꿔주는 일이다. 생활 패턴이나 계절 변화 등의 이유로 가끔씩 가구 배치를 바꿔주면 왠지 어린 자식 목욕탕에 데려가 목욕과 이발을 동시에 시키고 난 기분이 든다. 집 역시 나에게 목욕 후 요쿠르트를 먹는 것과 같은 상쾌한 기운으로 답례해준다. 내가 집에 대해 더 많이 신경 쓰고 보듬어줄수록, 그 에너지가 포근한 기운으로 반사되어 나오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작가님은 새 집에 이사를 오게 되면, 그 집 구석구석뿐만 아니라 집 앞의 풀과 나무와도 인사를 하고 하나하나 손으로 쓰다듬어준다고 말씀 하셨다. 그 스킨십이 공간과 사람 사이에 친화력을 만들어내고, 그 친화력에서 애정이 생겨나며, 그 애정은 좋은 기운의 형태로 다시 사람에게 돌아온다는 말씀이셨다. 그만큼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은 존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이런 긴 서론을 주저리주저리 쓴 이유가 있다. 바로 오는 5월, 독립영화의 ‘집’이 생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또 많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민간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광화문에 있는 ‘미로 스페이스’에서 개관을 하게 된 것이다. 너무 기쁜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집에 이사를 왔으니, 이제부터는 ‘인디스페이스’라고 하는 소중한 공간과 어떻게 친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해 봐야할 것 같다. 인디스페이스가 ‘독립영화인들만의 집’으로서가 아니라 보다 많은 관객들을 함께 포용할 수 있는 조금 더 넓은 의미의 집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또한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딱딱한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관객과 함께 독립영화를 호흡할 수 있는 일종의 ‘동거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부산에 있는 독립예술 영화전용관인 ‘국도예술관’이 좋은 예인 것 같다. 작년 <혜화,동> 개봉 당시 몇 차례 방문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관객들이 극장의 주인처럼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관객이 GV의 사회를 보고, 관객이 주도하여 뒤풀이 자리를 만드는 등의 모습을 보며, 이 극장이 단순한 ‘공간’을 넘어 사람들과 함께 살아 숨 쉬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과 객의 구분이 없고, 영화와 공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느낌. 물론 이는 단시간 내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도예술관의 경우도 오랜 시간 온라인 까페를 통한 활발한 교류와 ‘올빼미 상영회’같은 이 극장만의 신선한 기획들이 쌓여져 만든 결과이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를 발굴하고, 새롭고 신선한 기획들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관객들을 내 식구로 만들고, 보다 많은 이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쏟는 것. 이러한 것들이 바로 집을 만지고, 집 앞의 나무를 만지는 행위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작고 소중한 스킨십들이 쌓이고 쌓이면 새로 개관하게 될 ‘인디스페이스’라는 공간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의미의 ‘스킨십’도 잊지 말자. 5월! 새로 개관하게 될 인디스페이스에 가게 되면, 극장 건물과 나눔 자리 이름으로 새겨진 좌석과 스크린의 끄트머리들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첫 인사를 나누고, 우리의 애정과 기운을 듬뿍 불어넣어보자.
이전 칼럼에서 독립영화와 장르에 대한 글을 썼었다. 많은 독립 영화를 거론한 글이었지만 막상 ''''장르적''''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딱히 규정하고 말을 꺼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장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여러 특징들을 뭉뚱그려 가리키는 뜻으로 ''''장르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독립영화에 대한 색다른 관점을 엿볼 기회로 생각해줬으면 하는 뜻에서 글을 썼다. 이번에는 최근에 본 두 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첫번째 영화는 < 혜화,동 >이다. 이 영화는 지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구축된 영화다.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이 상당히 복잡한 사고를 하도록 요구하며, 게다가 관객이 이를 선뜻 받아들이게 하는 놀라운 매력까지 지니고 있다. 영화가 어떤 이야기인지 알기 위해서는 영화가 어떤 논리로 진행되는 중인지 학습하고 이후를 예측해야 하며, 때로는 예측이 불가능한데도 관객은 어쨌든 영화에 압도된다. 관객을 압도하는 치밀한 논리에서 감정을 끌어내는 것은 장르적이라고 불리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 인셉션 >을 예로 들어보면 어떨까. 토템이 넘어질지 그렇지 않을지 관객이 숨죽이고 기다리게 만들듯이, < 혜화,동 >도 혜화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혜화의 마지막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관객이 궁금하도록 만든다. 이런 점이 <혜화,동>에 숨어있는 장르적 경향으로 보였다. < 혜화,동 >은 본격적인 장르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의 지적인 태도는 모범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본격적인 장르 영화라고 해서 장르적 경향이 항상 뚜렷이 드러나며 항상 모범적인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에서 장르 영화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고 그 문제들을 해결할만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구체화하기는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좋은 장점을 가진 장르 영화가 드문 듯 하다. 두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영화가 바로 이런 ''''좋은 장점을 가진 장르 영화''''이다. 최근 이응일 감독의 < 불청객 >을 봤다. 이 영화는 B급 장르 영화를, 특히 막장 영화, ''''디시인사이드'''' 스타일의 영화, 극초저예산으로 만든 괴상한 블랙코미디 SF 등을 표방한 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장점은 잘 만든 B급 영화인 것이 아니라 잘 만든 SF 영화라는 점이다. < 불청객 >은 위에서 언급한, ''''한국에서 SF 영화를 만들려면 넘어야 하는 어려움'''' 을 감독이 몇년의 시간동안 치밀하게 고민한 결과가 담겨 있다. 영화에 특수효과를 사용하려면 몇백억대의 예산으로만 가능하고, 그렇다면 큰 예산에 맞는 상업적인 이야기가 필요한데, 그 이야기가 감독이 지향하는 이야기와 다를때 어떻게 타협을 할 것인가, 그리고 ''''특수효과 한두장면 넣고 SF/SFX 라고 주장하는 여타의 영화들''''과 다르려면 영화에 특수효과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 것인가, 등등의 상당히 복잡한 난점에 대한 해답을 감독은 영화를 통해 제시했다. 절반은 상당히 많은 분량의 특수효과를 결국 구현해낸 성실함으로, 나머지 절반은 일본 만화나 B급 장르 영화, 특촬물 등의 영향을 받은 괴팍한 감성으로 이 문제들을 돌파해냈다. <불청객>은 이전의 한국 SF 영화들이 내놓지 못한 해답을 제시한 영화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장르 영화가 나올지 기대하기엔 여전히 한국에는 장르 문화의 수용 폭이 넓지 않다. 지금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예술가가 우연히도 나타나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존의 좋은 ''''한국형 장르 영화''''들도 그런 식으로 등장했고, < 불청객 >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장르 애호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칼럼을 쓰는 것 정도이다. 상투적인 표현이겠으나, 이 짧은 글이 좋은 장르 영화가 등장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