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의 만화 호기심 천국
- 감독
- 김성환
- 제작년도
- 2005
- 출연
- 최원형, 이미자, 이철용, 은영선, 우정신
<도라지 불고기> 중 타인의 삶이 모이고 흩어지는 한 순간을 카메라로 붙잡기로 결심한 또 다른 순간에 대해, 프레임 밖에서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획 배경 <도라지>의 주인공인 XX형과 나는 대학 동기다. 우리는 시각디자인과 축구 소모임에서 함께 뛰었다. 어느 날 형은 자기가 초·중·고교를 조선학교에서 보냈으며, 그곳은 일본에서 교포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사실에 특별한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 더 묻지 않았다. 2학년을 마친 뒤 나는 군대에 갔고, 형은 휴학 없이 졸업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 포수 >(2022)로 처음 영상 매체를 다루기 시작했을 무렵, 내겐 다큐멘터리를 많이 찾아봐야만 할 것 같은 긴장감이 생겼다. 그러다 조선학교를 다룬 영화를 접하게 되었고, 이어서 비슷한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영화들이 내는 목소리에 대체로 동의할 수 있었다. (동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영화임에도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차별 속에서도 조국과 정체성을 잊지 않고 투쟁하는 영웅’으로 그려져 있었다. 영화는 그들을 ‘우리 민족’이라 강조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일상을 지우는 방식으로 그들을 철저히 ‘그들’로 격리하는 것 같았다. 이 영화들의 시선은 그들이 일본에서 핍박을 받더라도 조국을 잊지 않고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잊고 살아왔기 때문에 ‘늦게나마 돌봐야 할 불쌍한 사람들’이거나, ‘아픈 우리 역사의 교보재’였다. 선과 악, 피해와 가해의 구도가 분명하게 설정된 구조를 보며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라는 소재가 어떤 정치적 필요에 의해 선택된 대상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XX형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지만, 좀처럼 겹치지 않았다. 불온한 이미지 다큐멘터리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대체로 이렇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조선인을 향한 배제는 오늘날 조선학교를 향한 행정적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고교무상화 제외는 제국주의의 잔재이며 우리 민족을 향한 차별이다. 이에 맞서 학교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조선학교 진학을 선택하고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더 훌륭하다거나, 일본인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지탄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는 수만 가지의 삶을 윤리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어쩌면 스스로를 규정하려는 개인에게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은 이제 안식처가 아닌 억압의 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학교와 총련의 영향력이 점점 옅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일 것이다. ‘북한’이라는 짐을 굳이 짊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조선학교가 북한을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등 인권의 가치에서 벗어나는 교육 내용을 유지하는 한, 일본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교육은 정치를 떠나 보편적인 인권의 영역이며, 아이들의 학습권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인권’의 문제가 양쪽 모두에 공존한다. 이렇게 학생 수 감소나 고교무상화 배제의 이유를 일본인의 차별로만 단순화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영화는 이 복잡함을 가린다. <도라지 불고기> 중 밝히자면 나 역시 조선학교가 고교무상화에서 늘 제외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곳은 다양한 정체성의 가능성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이 논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먼저 가려져 있던 것들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슬픈 얼굴들을 앞세워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가리는 수법에 더 이상 진보가 있을까. 감출수록 더 미심쩍게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가려졌던 것들을 드러낸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하고 싶었다. 북한과의 연관성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남한과 일본 사회를 벌벌 떨게 할 만큼 실체적인 위협인지 되묻고 싶었다. 그래서 ‘불온한 이미지’를 원했다. 너무 당연한 모습이지만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을 다루는 영화에서는 금기처럼 여겨질 법한 것들. 그러나 너무 당연한 모습들. 촬영 과정 XX형에게 종종 나고야로 놀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나고야에 갈 바에야 도쿄에 가겠다며 진심을 담아 거절해 왔다. 그런데 막상 ‘찍을 거리’가 생기니 촬영 장비를 꾸려서 쫄래쫄래 나고야에 갈 계획을 세우는 내 모습이 꽤 머쓱했다. 브이로그 형식을 택한 현실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오랜만에 보는 형은 물론, 처음 만나는 사람들까지 대뜸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그러니 비교적 작은 카메라가 서로에게 덜 민망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작업에서 나는 사명감 넘치는 다큐멘터리스트가 아니라 재치 있는 브이로거여야 했다. 앞서 언급했듯, 실재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지우고 그들을 하나의 범주로만 불러내는 방식에 대해 나름의 대답을 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별다른 사건 없는 일상을 담기로 했다. <도라지 불고기> 중 / 편집된 장면 중 다행히 형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무사히 나를 소개해 주었고, 다들 내 카메라를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나 역시 촬영을 위해 웃기고 귀여운 동생처럼 보이려 부단히 노력했다. 어릴 적부터 친구의 부모님에게는 늘 호감을 샀다는 경험에서 나온 자신감도 있었다. 서울과 나고야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많이 가까워졌다. 물론 내겐 꿍꿍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는 된 것 같았다. 덕분에 <불고기>를 촬영할 때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본격적인’ 카메라를 들이밀 수 있었다. 나고야를 방문할 때마다 약과와 참기름, 고춧가루, 안동소주, 도라지즙, 쫀드기 같은 것들을 챙겨갔다. 누나들과 형들의 어머니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정도는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됐다. 비록 나의 불순한 의도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어느새 그들은 내게 소중한 친구들이 되었다. 그래도 이제는 나고야보다 도쿄에 가고 싶다. (상) 편집된 장면 중 (하) <도라지 불고기> 중 / 서울에 놀러온, 나고야에서 만난 친구들 (사진: 양지훈) 지워낸 얼굴 얼굴을 블러 처리한 선택은 예상보다 많은 말을 낳았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이를 두고 “존재를 부정당한 저들의 실체가 없는 아이덴티티의 시각화”라고 리뷰했지만, 그렇게 정의하면 내 의도와는 반대가 된다. 아마도 그 문장은 내 작업을 보호하기 위해 덧붙여진 수사였을 것이다. 보편의 윤리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익숙한 방식으로 묘사하는 편이 모두에게 안전했을 테니까. 블러 처리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나는 누군가 나를 카메라로 찍는 일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특정한 범주로서 누군가의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면, 아마 더 힘들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근원적인 미안함이 있다. 그래서 가렸다. < 도라지 불고기 >(2025)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자연스럽고 정당한 선택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카메라에 기록되어 특정 범주 안에 위치 지어질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 그게 꼭 의미 있거나 유익한 방식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늘 미안함은 욕망에게 지곤 한다. 그들의 삶에 기대지만, 얼굴까지 팔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맨얼굴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었다.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에 대상이라는 매개가 있고,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의 ‘날 것의 얼굴’은 관객에게 가장 좋은 구경거리다.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마주 볼 수 없다. 일방적으로 응시할 뿐, 타인에게 얼굴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가려진 얼굴을 보며 관객들이 이 불균형한 관계를 자각하기를 바랐다. 이미지(를 보는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얼굴을 탐닉하고 점유해 왔다. 그것을 윤리라고 믿는 방식으로. 편집된 장면 중 드러낸 주체성 얼굴을 블러 처리한 선택 때문에 많은 비판을 전해 들었다. 비판은 대체로 한 곳으로 향한다. “감독이 대상의 개별성과 주체성을 소거했다”라는 의견이다. ‘개별성’을 소거했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인다. 얼굴은 그 사람을 증명하는 상징이다. 그 얼굴들을 모두 같게 만듦으로써, ‘재일조선인’이라는 집단화된 이미지를 내가 가장 적극적으로 생산한 모양새가 되었다. 작업의 가장 핵심적인 형식이 정작 작업이 문제 삼으려 했던 것을 스스로 앞장서 재현하고 말았다. 내가 극복하지 못한 부분이다. 하지만 ‘주체성’의 문제에서는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창작자가 누군가에게 주체성을 주거나 뺏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도라지 불고기> 밖에서 그들은 각자 자기 삶의 주인이다. 하지만 작업(영화)의 주체는 작가(감독)이다. 프레임 안에 가둔 대상의 주체성을 드러내 보겠다는 고민은, 어쩌면 감독이 자기 윤리를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이 전권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대상의 주체성을 논하는 일은 그 자체로 시혜적이다. 감독이 ‘드러낸’ ‘주체성’이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며, 편집자의 손끝에서 빚어진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창작자가 제작 과정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는 자신의 욕망을 가장 앞에 두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 욕망을 명분 뒤에 숨길수록, 영화를 향한 비평은 도덕의 문제로 치환되고 만다. 작품이 아닌 ‘의제’를 방패 삼아, 비판하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나쁜 위치에 세워버리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창작자는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숨어든다. 누군가를 위해 카메라를 든다는 사람의 말은 아직까지 믿지 못하겠다. 그 말은 카메라의 작동 원리를 타인에게 전가하며, 자신을 선한 주체의 자리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타인의 삶을 연료 삼아 예술가로 살아가려는 창작자의 야심과, 타인을 안전하게 관음하려는 관객의 시선이 만나는 지독히 탐욕적인 장소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 비대칭적이고 폭력적인 구조를 ‘대상의 주체성’이나 ‘재현의 당위’라는 말로 포장하는 순간, 예술은 비겁해진다. 감독이 ‘구원자’의 탈을 쓸 때 대상은 ‘수혜자’로 전락하지만, 감독이 ‘욕망하는 창작자’로 설 때 대상은 비로소 그 욕망과 거래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당사자가 된다. 물론 당장 이 기울어진 무게추를 평평하게 맞추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대상의 주체성이 생겨날 수 있는 희미한 가능성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불고기> 촬영 현장 (사진: XX형) 양지훈(시각예술가) l 다큐멘터리 제작에 수반되는 본질적인 폭력에 주목하며 다큐멘터리 이미지를 만든다. <포수>(2022), < 테이큰 >(2023), <도라지 불고기>(2025)를 만들었다.
거창한 의미 부여할 것 없다. <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 >(요시하라 타츠야, 2025, 이하 ‘체인소맨: 레제편’)은 소년만화 저변에 깔린 결핍을 건드리는 고자극 드라마다. 원작 만화의 저변에 깔린 온몸 비틀기 삐딱선과 달리 이번 극장판은 떡밥을 뿌리고 정직하게 회수하는 모범생의 면모를 선보인다고 해도 좋겠다. 다만 강렬하고 직관적인 이미지 자극을 곁들여서. 스핀오프처럼 다소 결이 다른 스페셜 이벤트 같은 에피소드였기에 가능했던 잠깐의 일탈, 쉼표, 한여름밤의 꿈 같은 에피소드였다. 마찬가지로 고자극의 작화와 눈알이 시려울 정도로 화려한 액션 시퀀스를 곁들여서. 요란하고 화려한, 사상 최대의 연애 싸움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재밌지만, 시간의 풍화를 뛰어넘는 명작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어떤 지표와 분기로 작용할 만한 깊이를 보장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취향 저격의 안전하고, 검증되고, 무난한 작품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러므로 이 범상한 애니메이션은 매우 사사로워질 자격을 획득했다. 너도 재밌고, 나도 재밌었다는 취향의 확인. 그리하여 의미를 찾아 헤매기보다는 즐거움의 안도감을 안기는 고백적인 작품이다. 영화를 향한 애니메이션, 순애의 재발견 2025년은 애니메이션의 강세가 확연한 한 해였다. 넓게 보면 영화산업의 (쇠퇴와는 결이 다른) 구조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비단 한국 시장만의 흐름이 아니지만 한국 시장에서 더 도드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 주토피아 2 >(자레드 부시, 바이런 하워드, 2025)가 2025년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건 기존의 관성을 비춰볼 때 당연하다. 가족 관객을 타겟으로 한 검증된 IP의 속편이, 완성도와 무관하게 더 큰 흥행을 거두는 건 늘 반복되는 공식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체인소맨: 레제편>을 향한 호감과 열기는 단순히 수치적인 흥행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흥행 면에선 <귀멸의 칼날> 등 재패니메이션과 같은 흐름으로 묶을 수도 있겠지만 작화를 통해 쾌감을 준다는 면을 제외하곤, <체인소맨>은 다른 입장에 서 있다. <체인소맨>이 이번 극장판 레제편에서 맑게 길어 올린 부분은 한동안 일본 만화에 번졌던 유행 같은 감각, 이른바 순애의 연장선에 있다. 후지모토 타츠키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단순한 소년만화의 극장판 확장이 아니다. 차라리 폭력의 세계에 던져진 두 괴물이 서로의 상처를 핥으며 나누는, 가장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보이 미츠 걸(Boy Meets Girl)’의 변주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이 세계는 언제나 젖어 있다.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 그리고 끊임없이 내리는 비의 눅눅함이 화면 너머로 전해진다. 덴지라는 인물은 태생적으로 결핍의 덩어리다. 그에게 욕망은 거창한 세계 구원이나 정의 구현이 아니라, 잼 바른 식빵이나 따뜻한 잠자리, 그리고 이성을 향한 원초적인 호기심 같은 것들에 머물러 있다. TV 시리즈가 덴지의 그 동물적인 감각과 혼돈을 거친 선으로 그려냈다면, 이번 <체인소맨: 레제편>은 그 혼돈 속에 싹튼 ‘첫사랑’이라는 감정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의 심도를 깊게 가져간다. <체인소맨: 레제편> 중 / 사진: IMDb , ⓒ 2025 M/CSMP ⓒTF/S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가 가진 특권 중 하나는 현실의 물리학을 무시하는 과장된 움직임, 흔히 데포르메라고 불리는 의도된 작화 붕괴다. 하지만 <체인소맨: 레제편>은 그 과장됨 속에 기묘한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MAPPA의 제작진은 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 특히 레제의 얼굴에 스치는 홍조나 덴지의 당황한 눈동자 등 감정의 떨림을 집요하게 포착한다. 액션 시퀀스에서의 속도감은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타격의 무게감이 관객의 뼈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태풍의 악마를 타고 도심을 질주하는 장면이나, 덴지와 레제가 공중에서 얽히며 싸우는 클라이맥스는 애니메이션이 도달할 수 있는 역동성의 극단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미묘한 리얼리티의 근간에는 원작자의 시점이 투영되어 있다고 믿는다. TV 오프닝에서부터 고백하고 있듯 후지모토 타즈키 작가의 실천에는 영화, 달리 표현하면 카메라의 위치과 프레임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어 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체인소맨: 레제편> 역시, 아니 더욱 노골적인 방식으로 거의 모든 컷의 근간에 실사 영화에 대한 향수가 묻어 있다. 겪어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첫사랑의 노스탤지어 노스탤지어는 영원히 그곳에 다다르지 못하는 것을 전제로 피어난다. 덴지와 레제가 맺어지지 못하는 것으로 애틋함의 감흥을 자아내는 것처럼, <체인소맨: 레제편>의 동력도 실사 영화에 대한 동경과 애정이 깔려 있다. 이것은 상하 혹은 우열의 관계가 아니다.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화와 다르고 실사 영화가 될 수 없다. 그 구분을 전제로 하여 한없이 영화에 가깝게, 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다르고자 할 때 여타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오리지널리티가 피어난다. <체인소맨: 레제편>의 오리지널리티는 노골적인 애정고백을 바탕으로 한 빽빽한 오마주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덴지와 레제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타포인 이솝 우화의 ‘시골 쥐와 도시 쥐’ 이야기는 덴지와 레제, 두 하이브리드(인간과 악마의 융합체)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으로 치환된다. 시골 쥐의 평온하지만 배고픈 삶과 도시 쥐의 풍요롭지만 위협받는 삶. 덴지는 언제나 도시 쥐의 삶 속에 던져져 있었으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시골 쥐의 안온함을 갈구해왔다. 레제는 그런 덴지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디에 속하고 싶으냐고. 이것은 ‘자유’와 ‘통제’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공안 대마특이과라는 시스템(도시) 안에서 사육되는 덴지와, 그 시스템을 파괴하러 온 외부의 존재 레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진영에 서 있는 듯하지만 실상 누군가의 도구로 쓰인다는 점에서는 거울상처럼 닮아있다. 레제는 마키마의 안티테제로 만들어진 캐릭터답게 첫사랑의 이상향을 응축시켜 놓았다. 진정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다면 악마로 변하는 이들의 능력이 아니라 소녀가 소년을 만나는 상황 그 자체라고 해도 좋겠다. 레제가 덴지에게 가르쳐주는 수영법, 카페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그들이 ‘무기’가 아닌 평범한 ‘소년소녀’로 존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다. 사진: IMDb( 1 , 2 ) 감독은 이 딜레마를 시각적으로 탁월하게 구현한다. 레제의 폭발은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묘사되는데, 그녀의 머리가 폭탄으로 변하고 사지가 터져 나가는 그로테스크한 변신 장면은, 혐오스럽기보다는 일종의 해방감마저 준다. 화약(gunpowder)과 꽃(flower).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처럼, 레제는 치명적이지만 끝내 질 수밖에 없는 꽃이다. 덴지가 그녀에게 건네려 했던 꽃다발, 그리고 마지막 카페 씬에서 들리지 않는 종소리는 이 영화가 결국 ‘실패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임을 상기시킨다. 체인소 역시 피를 뒤집어쓸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존재다. 억눌린 감정이 터져 나올 때의 카타르시스는 체인소의 소음과 겹쳐진다. 그들에게 사랑은 서로를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부수고 태워버림으로써 완성되는 파괴적인 제의(祭儀)와 같다. 그리하여 이들이 빗어내는 시끄러운 소음, 불협화음은 불쾌감 이면에 애잔함을 베이스로 깔고 있다. 폭탄의 악마가 터뜨리는 굉음은 청각을 마비시킬 듯 몰아치지만, 역설적으로 이 영화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폭발의 순간이 아니라, 폭발 직전의 고요함, 혹은 폭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재(ash)의 정적에 있다. 태풍이 지나가고 당신의 뇌리와 망막에 남는 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던 덴지가 레제와 함께 학교 수영장에 잠입해 밤의 유영을 즐기는 시퀀스이리라 믿는다. 물의 질감, 달빛이 부서지는 수면, 서로의 몸짓을 훔쳐보는 시선은 액션 장르의 문법을 잠시 잊게 할 만큼 서정적인 이 장면에는 이뤄지지 못할 순수이기에 성립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마치 도화선에 불이 붙어 타들어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그 불꽃의 반짝임이 예뻐서 넋을 잃고 바라보는 아이들의 위태로운 아름다움. 고백하자면 한동안 좋은 걸 그냥 좋다고 말하지 못했다. 의미를 찾아다니고 가치를 부여해야만 한다는 강박의 저주에 빠진 것 같았다. 때론 있지도 않은 의미를 찾느라 아는 척, 감동 받은 척, 거짓된 취향을 무장한 적도 있다. 어떤 척을 하는 걸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건 갈망이자 방향이며 강렬한 에너지다. 스스로 정한 이상에 도달하려고 발버둥치는 사이 단련되는 부분도 있고, 때때론 그 과정과 행위 자체가 자신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종종 너무 멀리 와버려 지금 어디에 떠 있는지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운 순간이 다가온다. <체인소맨: 레제편>은 그때 발견한 작은 등대 같은 작품이다. 직관적으로 재미있고, 익숙하고 빤해서 더 마음이 가는 쉼터. 재밌는 걸 그냥 재밌다고 말할 수 있는데도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되돌아보니 우리는 모두 한때 덴지였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그저 눈앞의 다정함에 목을 맸던 시절.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한때 레제였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혀야만 내가 살 수 있었던, 거짓말로 진심을 감춰야 했던 시절. 굉음이 남긴 이명(耳鳴)은 꽤 오랫동안 귓가에 머물 것이다. 사진: IMDb 송경원(씨네21 편집장) l 영화 논문, 비평, 기자 글쓰기까지, 영화에 대한 서로 다른 리액션 사이에서 흔들리고 방황한지 15년. 이제야 영화 글쓰기가 나의 직업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2023년 《 씨네21 》 편집장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듯 영화를 보고, 읽고, 쓴다.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 2011년부터 부일영화상, 부천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심사위원 등 역임. 『프로듀서』(2019), 『만화 웹툰 작가 평론선―이충호』(2021),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2021, 공저),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2024) 등 집필.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박: 애니메이션영화제 했었을 때, 아까 <에반게리온> 얘기했었지만. <에반게리온>이나 < 공각기동대 >, 뭐뭐 < 에스카플로네 > 이런 거 했었거든요. 근데 잘 됐었어요. [1] 해당 구술채록문을 읽다 보면, “아까 <에반게리온> 얘기했었지만”이라는 말에서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이 나오기 이전까지 구술에서 단 한 번도 <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안노 히데야키, 1995)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아까 한 이야기’는 인터뷰 사이 잠시 쉬는 시간 동안 나눈 대화를 말하는 것이다. 구술담당자로서 인터뷰에 참관하면서 구술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이렇게 쉬는 시간에 살짝 물어보곤 한다. 그리고 당시 구술자에게 <에반게리온>에 대해 물어본 것은, 내가 에바팬이라거나 그래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 이유는 이제부터 천천히 풀어갈 것이다. 닫힌 영화, 열린 영화제 사실 광주 ‘ 영화로 세상보기 ’ 운영자였던 박상백 구술(2024년 10월 17일 진행) 이전에 그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황: 일본영화 같은 경우는, 사실은 광주 기획을 좀 본따고 그랬는데. 광주 ‘영화로 세상보기’에서 그때 돈을 막 많이 벌었더라고요. 한: 재패니메이션으로? 황: 그래서 액정도 바꾸고. 이게 그때 ‘소년 탐정’인가? <에반게리온> 시리즈. 저는 뭐 내용도 아직도 모르는데, ‘야, 저런 매니아층이 또 있구나.’ 그래서. 저희도 해보니까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이 꽤 오더라고요. [2] 대전 ‘ 씨네마떼끄 컬트 ’의 운영자였던 황규석 (2024년 6월 29일 인터뷰 진행)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고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에반게리온> 상영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라는 사실보다도 ‘저런 매니아층이 있다’라는 깨달음에 있었다. 이러한 관객층을 지금의 관점에서 그냥 ‘오타쿠(オタク)’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반게리온>이 등장했던 시기만 해도, 국내에서는 ‘오타쿠’에 대한 뚜렷한 사회적 인식도 없었고, 특정 애니메이션 작품에 대한 열렬한 지지층의 활동이 눈에 띄지도 않았었다(존재는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적어도 외연적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구술자가 이들을 ‘저런 매니아층’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어느 정도 오늘날 재패니메이션 ‘오타쿠’에 대해 사후적으로 형성된 느낌도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사후적인 인식을 제외하더라도 평소 이상의 어떤 관객층들이 <에반게리온> 상영 당시 몰려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은 누구이고 왜 여기 왔을까? 정: 제 세대뿐만 아니라 바로 윗세대들도, 제 바로 다음 세대들도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어요.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 일본영화. … 유학을 가지 않으면 그건 접할 수가 없는 거니까. 사실은 프랑스영화・독일영화에 대한 갈증보다 일본영화에 대한 갈증이 훨씬 컸어요. [3] 한: 혹시 그런 건 없었나요? 선호하는 영화 통계 같은 거. 조: 있었죠. 한: 아, 있었어요? 조: 네. 일본영화, 뭐 (사이) 제일 많이 봤던 영화가 아마 < 러브레터 >. 수입되기 전에. 그리고 피터 잭슨 < 데드 얼라이브 >, < 천상의 피조물 > 이런 게 공식적으로 소개 안 됐었거든요? … 되게 압도적으로 피터 잭슨 영화하고 일본영화하고 미국의 인디영화들, 이런 영화들이 사람이 많이 왔었어요. [4] 영화평론가 정성일 과 1990년대 문화학교 서울 의 운영자로 일했던 조영각 은 당시 시네마테크를 찾아오는 관객들은 근본적으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에 한국 극장에서는 보기 힘든 프랑스영화, 독일영화, 미국의 인디영화들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지만, 이 영화들이 수입자유화와 함께 쏟아지는 미국영화들 속에서 틈새를 찾아 소규모의 예술영화전용관들을 채울 때조차도 들어오지 못했던, 원천적으로 수입 자체가 금지되어 있던 일본영화,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욕구는, 그것이 문화적・심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시네마테크의 운영자들의 근원적인 고민 역시 있었다.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한국사회로부터 ‘닫힌 영화’들 이기 때문에, 이들의 자료 확보와 상영 활동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 <러브레터>는 처음에 어느 쪽에서 구하셨어요? 곽: (목소리를 낮춰서) 어디서 구했을까요? 어디서 구했을까. [5]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러쉬! 조: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회원가입을 해야 돼요. 그게 저희 문턱이었고. 저희는 그렇게 운영해야지 여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사실 불법이잖아요. 비디오를, 영화를 트는 게 심의를 받은 것도 아니고 우리도 저작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회원제라는 규정을 만든 거고. … 그런 규칙들이 있어서 내부 결속력은 되게 탄탄했던 반면에 다른 데서 보기에는 “좀 폐쇄적이다” 이런 얘기들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6] ‘회원제로 운영되는 폐쇄적 시네마테크를 통해 극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본다’라는 것이 어쩌면 ‘특권’처럼 읽힐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정반대였다. 음지화된 공간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들어온 작품을 보고 있다는 사실, 즉 ‘ 모두 함께 모여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보고 있다 ’라는 비밀(?)은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의 소속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이들의 응집력을 높이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 통신전용망을 이용해 취미와 관심이 같은 사람 또는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토론을 벌이는 개인용 컴퓨터 통신동호회들이 많이 결성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동호회 회원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특정 주제에 대하여 온라인 토론을 벌이는 외에도 전자게시판 기능을 이용, 알리고 싶은 소식을 회원 모두에게 공개하거나 공동 자료실을 만들어 쓰고 있다. - “PC통신 동호인 모임 활발”, 《한겨레》 1990. 8. 14. 8면 기사 “이 영화가 < 미져리 >보다 무섭다는 ‘ PC통신 ’을 보셨습니까?” (《조선일보》 1994. 6. 10. 18면 광고) 1990년대 초 PC통신 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도입되면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사실 이 새로운 공간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정보를 준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김: ‘이제 그런 영화들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어떤 각인? 취향을 드러내게 되는 거죠. … 팬과 마니아라는 거에 대한 나의 소속감 ? 그게 굉장히 컸던 거 같아요. [7] 이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동시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영퀴’를 풀면서 소속감을 다져갔다. 이러한 소속감이 커질수록, 각자의 취향은 숨기거나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고, 그렇게 자신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는지 정보를 공유하며 시네마테크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쉬는 시간을 빌어 구술자 박상백에게 ‘영화로 세상보기에서 <에반게리온>을 상영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본 인터뷰 때 이야기한 것처럼 그 시기가 “닫힌 시대이기는 했지만 좀 알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다 알려져 있던 것들”이었고, 소문만 무성한 그 ‘화제작’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왜 <에반게리온>에 당시 관객들이 그토록 열광했다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을 이어 했고, 이에 대해 “<에반게리온>은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라 당시 시네필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답했다. 확실히 <에반게리온>은 지금까지도 말도 많고 해석도 다양한, 참 어려운 애니메이션이다. <에반게리온>에 대한 세기말 관객들의 관심이 상당 부분 이 ‘해석놀이’에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에반게리온>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시기 재패니메이션의 인기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한 축으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구술자 송정환은 평택의 ‘ 시네마드리밍 ’에서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戰ポンポコ) >(다카하타 이사오, 1994)을 상영했을 때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왔고, 특히나 평택시민아카데미로 공부를 하러 오던 청소년들이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재미있어했으며, 이에 같은 공부방에 있던 아이들끼리 상영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함께 감상을 했던 일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8] 누가 뭐래도 지브리 최고 남주는 ‘ 아시타카 ’다. (필자 개인 의견임) 뿐만 아니라,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과 호응을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 쪽으로 이끌고 갔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단편 애니메이션의 경우 영화제가 아니면 일반 관객에게 상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 시네마테크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전국적인 시네마테크 배급망(전국씨네마떼끄연합은 1997년 결성되었다)을 이용해,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의 작품을 모아 순회상영을 하거나 장편 사이에 단편 작품들을 끼워 넣어 함께 상영하는 등 프로그램을 다양화했다. 박: 그때 해외에서 들어온 독립영화하고 국내 독립 애니메이션을 붙여 가지고 긴 독립영화, 해외 독립영화 장편에 앞서서 마치 인트로를 열듯이, 국내 단편 애니메이션을 상영하고 그다음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딱 이렇게 된다든가, 데이비드 린치의 < 이레이저 헤드 >를 상영하는 데 앞서서 나기용 감독의 단편이 상영된다거나, 이런 식으로 하는 시도들도 있었고. 그리고 독립영화협회하고도 좀 같이하는 활동들이 있었고. 문화학교 서울이라고 지금은 없어졌는데 거기하고 저희랑 같이 해서 상영회를 조그맣게 한다든가 이런 활동들이 더러 있었죠. [9] 손: 저기 문화학교 서울인가, 정말 하꼬방 같은 그런 극장에서. 기억나네. 완전히 다락방 같은 극장이었는데, 거기서 < 생존 > 틀고 이랬을 때 무렵이었거든요? 그러면서 교류를 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저는 모션&픽쳐에 있으면서 독립영화, 시네마테크 이런 쪽 하는 사람들 하고 교류가 되기 시작한 거죠. … 자체 영화제가 이런 때 서울에 있는 작품들 가져올 때도 지역 뭐 같이 해서 틀기도 하고. 그러면서 교류가 많이 일어나기 시작했죠.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시네마테크 활동하던 분들이 독립영화협회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가 맞물린 거죠, 대구도 . 그래 가지고 대구에서도 원승환 이라는 친구하고 이렇게 해서 협회를 만들어보자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 그렇게 이제 모션&픽처하고 독립영화 하는 친구들하고, 시네마테크 하는 사람들하고 이렇게 해서 ( 대구독립영화협회를 ) 만들게 되었죠. [10] <생존>(손영득, 1997)의 한 장면 물론 < 아키라 >(오토모 가츠히로, 1988)나 <공각기동대>(오시이 마모루, 1995)를 보러 왔던 관객들, <에반게리온>의 팬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나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던 관객들이 모두 같은 성격의 관객층이라고 뭉뚱그릴 수 없다. 심지어 <에반게리온> 상영회를 보러 왔던 관객들조차도 하나의 성격을 가진 집단으로 묶을 수 없다. 개중에는 정말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는 오타쿠도, 그저 심도 깊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시네필도 있을 것이고, 혹은 ‘워낙 화제가 되는 작품이라니 나도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네마테크를 찾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너무 보고 싶지만 좀처럼 볼 수 없는 작품이 상영되는 곳 , 그런 작품을 찾는 이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며 모일 수 있는 곳, 배급 경로를 찾지 못한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들고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곳으로서 시네마테크가 다양한 관객층을 끌어모으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관객층들이 2000년대 초반, 흔히 ‘한국영화의 화양연화’라고 이야기되는 시기를 불러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킹덤>의 팬덤 1990년대 가장 ‘힙한’ 공간이었던 이 민간 시네마테크들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을까. 결론을 대신하여 2024년 주제사에서 가장 핫했던 작품 < 킹덤(Riget) >(라스 폰 트리에, 모턴 안프레드, 1994)과 < 킹덤 2(Riget II) >(라스 폰 트리에, 모턴 안프레드, 1997)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두 작품의 상영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시네마테크의 관객층이 갖는 응집력의 폭발 인 동시에 이들이 주류의 문화 안으로 흡수되는 과정 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된 이후로, 부천의 판타스틱영화제・서울여성영화제・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영화제(SICAFF) 그리고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제 들은 영화팬들에게 또 다른 놀이터였다. 영화제는 ‘합법적’으로 새로운 영화를 제공했고 관객들은 그곳에서 마음껏 놀았다. 그리고 영화제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신문 기사나 PC통신 동호회 등등을 통해 참석자들의 뜨거운 후기는 전해졌다. 수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의 열기. < 브레이킹 더 웨이브 >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연출한 무려 4시간 반짜리 영화 <킹덤>이 대표적인 경우. 지난달 30일 자정에 열린 첫 상영에는 4백여 석 극장에 2천여 명이 몰려 급히 다른 극장을 잡아 시차를 두고 두 곳에서 상영했으며 그러고도 수백 명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 “시네마 부천, 9만 관객 갈채”, 《동아일보》 1997. 9. 6. 26면 기사 영화제가 끝난 뒤에도 <킹덤>과 심야영화 의 붐은 계속 이어졌다. 당시 <킹덤>과 심야상영을 찾던 관객 안에는 좋은 작품을 찾아 헤매는 시네필들도 있었지만, 단순히 심야상영 문화를 즐기고 그 열기에 섞이고 싶은 젊은이들도 모여들었다. 최근 들어서는 심야시사회로 일반화되는 추세.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던 예술영화의 재상영 기회 로도 그 몫을 한다. 심야상영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선 값이 싸기 때문이다. 일반영화 한 편 값으로 서너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IMF형 문화상품. 단순한 영화관람에만 그치지 않고 젊음과 영화를 매개로 한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한다는 것도 한 이유. 여대생 박진아 양(22)은 “영화관에 있으면 한배에 탄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전율과 긴장, 공포와 웃음으로 밤을 지샌 뒤 인적없는 새벽거리로 나설 때의 쾌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말한다. - “값싸고 젊음・마니아 상징에 만원사례, 심야상영 신세대문화로 뿌리”, 《경향신문》 1998. 5. 29. 22면 기사 상대적으로 수도권에 비해 문화적 전파가 더딜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도 뒤늦게 <킹덤>과 심야상영을 즐기려는 관객들이 자신의 지역에 위치한 시네마테크에서의 재상영을 찾았다. 박상백은 “전라도의 모든,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다 왔던 것 같다”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표현했는데, 이런 엄청난 관객 동원은 기존 시네마테크를 찾던 시네필들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박: 그때 부천영화에서 이미 상영을 했었고, 필름으로. 저도 그때 가서 봤고. 열기를 봤었고. 자연스럽게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비디오테이프로 그거를 작업해서 돌았었어요 . 그래서 그거를 가져다가 이제 상영을 한 건데. … 심야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게 또 사람들은 새로운 거에 대한 호기심이나 그런 걸 경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잘 이렇게 융합이 돼 가지고 아마 그렇게 많은 관객분들이 오시게 된 단초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잘되니까 다른 시네마테크에서도 했었던 걸로 알고 있고. [11] 원: 그중에서 관객들이 제일 많이 봤던 영화가 <킹덤>이라는 영화였어요. 그 영화가 97년도 부천영화제에서 매진이 되고, 그해 12월에 동숭씨네마텍에서 개봉을 했는데, 대구에는 이 영화가 내려올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한 것죠. 그래서 2월쯤에 그 영화만 가지고 상영회를 했어요. 근데 어느날 배급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가 그 영화 권리를 가지고 있는 회사인데 무단으로 틀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지금 재산상 손해를 이렇게 봤으니까 만나자.” … “그러면 대구에서 <킹덤>이 개봉되는데 홍보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 을 주셨는데, … <킹덤>이라는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흥행했던 영화들하고 다르게 전국 로드쇼를 했던 영화고. 서울 상영이 대박이 터지면서 부산 상영을 했고, 부산에서도 대박이 터지면서 대구로 이제 상영이 옮아온 거고. 그게 12월이었는데 대구가 2월이니까 한 3개월 뒤에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서울에서 홍보가 이미 다 끝났고 지역에서 개봉할 때는 지역 언론사에 별도로 홍보를 해야 되는 필요가 생겼는데. … 또 <킹덤 2> 할 때는 아예 처음부터 ‘지역에 있는 시네클럽들, 시네마테크들하고 홍보를 같이 하자’ 라는 계획을 세웠어요. … 대구에서는 그걸 제가 했던 거고, 광주에는 뭐 광주극장에서 워낙 잘하시니까 그걸 했던 거고. 부산은 뭐 부영극장에서 잘하시니까 그랬던 거고. 대전은 이제 ‘컬트’가 그거를 하게 된 거고. [12] 대전 씨네마떼끄 컬트에서 개최된 ‘킹덤 상영회 포스터’ ※황규석 기증자료 박상백이나 원승환의 말처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킹덤>을 향한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를 확인한 시네마테크들도 앞다퉈 <킹덤> 상영회를 추진했고, 그 열기에 동참하고, 함께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오며 시네마테크에서도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이들은 이듬해 <킹덤 2>의 상영회도 추진하고자 했지만 <킹덤 2>의 정식 수입사인 KJ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 시네마테크의 불법적 상영에 제동을 거는 한편으로, 오히려 이들이 갖고 있는 지역에서의 홍보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여 전국 상영을 진행했다. 그렇게 <킹덤 2> 역시 흥행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제 시네마테크들의 입장에서는 합법적 상영 공간에 자신들의 역할을 내어줄 때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2000년대에 들어서서 일부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은 멀티플렉스에 자리를 빼앗긴 소극장이나 각 지역 대표 단관극장들과 손을 잡고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운영하거나, 자신들의 특기를 살려 독립예술영화 배급 쪽으로 자리를 옮겨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은밀한, 그래서 더 자유롭고 끈끈했던 관객들, 그리고 그들에게 아지트가 되어준 문화공간들은 사라져 버렸지만, 각 지역의 민간 시네마테크들이 남긴 유산은 여전히 한국영화 산업 내에서 여러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지역의 영화문화와 독립・예술영화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KOFA컬렉션을 통해 공개된 2024년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트워크’ 에서 직접 확인해보도록 하자! *** [1] 공영민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1권: 정희섭・박영정・박상백・송정환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217~218쪽. [2]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3권: 이진이・원승환・황규석・강민구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192쪽. [3]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2권: 정성일・이하영・손주연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37~38쪽. [4] 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3권: 안정숙・곽용수・조영각・김영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188~189쪽. [5] 한나리 채록연구, 앞의 책, 101쪽. [6] 한나리 채록연구, 위의 책, 147~148쪽. [7] 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3권: 안정숙・곽용수・조영각・김영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224~226쪽. [8] 공영민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1권: 정희섭・박영정・박상백・송정환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295쪽. [9] 이문주 채록연구,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18권: 박보경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1, 69쪽. [10] 유은정・박지윤 채록연구,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21권: 손영득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1, 95~96쪽. [11] 공영민 채록연구, 앞의 책, 한국영상자료원, 2024, 216~217쪽. [12]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앞의 책, 한국영상자료원, 2024, 142~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