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모상의 배우 황정순
- 감독
- 최석환
- 제작년도
- 1999
- 출연
- 문선희
지난해 12월 12일,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은 “스크린 케미스트리: 스타로 보는 한국영화사”라는 제목으로 1950~1990년대 한국영화계 스타 커플의 관계성을 분석하는 시네포럼을 개최했다. 한국영화사 연구를 수행하는 아카이브로서, 영화연구자는 물론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가진 참여자들이 한국영화사와 관련해 새롭게 논의될 만한 지점을 발견하며 대화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영자원은 매년 이와 같은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학술적인 분석 중심의 발제나 토론이 아니라 발표자들이 청중의 질문을 받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시네포럼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내 주요 스타 커플이 등장한 시기를 네 구간으로 구분하고, 각 구간별로 등장한 스타 커플과 당시 한국영화나 대중문화의 특성 간의 상관관계를 조명했다. 시기별로 논의될 만한 스타들을 미리 설정해놓기는 했지만, 이들의 활동이 갖는 의미는 발표자가 스스로 고민한 후 관객에게 제안하도록 열어뒀다. 1950~1990년대 급변한 한국사회의 분위기와 영화산업의 지형을 참고하면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이 대중에게 남긴 여운을 발표자와 참여자가 함께 추적할 수 있었던 포럼 현장을 요약한다. 1950~1960년대 스크린 속 스타 커플 영화평론가·영화사가 김종원 김종원 평론가는 1950~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커플로 등장한 스타들 간 케미스트리를 발견했다. 1950년대 스타 커플의 역사는 < 출격명령 >(홍성기, 1954)에서 처음 호흡을 맞추고 실제 부부가 되어 < 춘향전 >(이규환, 1955)에서 향단과 방자를 연기한 전택이 와 노경희 부터 시작한다. 배우 노경희는 < 내가 넘은 삼팔선 >(손전, 1951)을 비롯해 < 피아골 >(이강천, 1955) 등에서 해방 이후 스크린을 통해 강렬한 카리스마를 분출하는 여성 배우로 거듭나고 있었으며, < 아리랑 3편 >(나운규, 1936)으로 데뷔한 전택이와 여러 작품에 동반 출연하며 20세기 중반 한국영화사에서 함께 활약했다. 이후 김승호 와 황정순 이 강대진 감독의 < 박서방 >(1960), < 마부 >(1961), 김수용 감독의 < 굴비 >(1963)에서 돋보이며 또 다른 스타 커플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 새로운 맹서 >(신경균, 1947)로 데뷔한 배우 최은희 는, 커플을 구성하는 인물들 간 관계가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당시 시대적 한계에서 벗어나, 케미스트리를 주도하는 여성 인물로 떠올랐다. 김진규 와 신영균 의 상대역으로 등장한 신상옥 감독의 < 동심초 >(1959), < 상록수 >(1961), < 산 >(1967)과 같은 작품들에서 이러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한편, 스타 커플의 일원으로 거론된 적은 드물었지만 멜로드라마 위주의 문예영화 영역 밖의 상업영화 작품들에도 다수 출연하며 입지를 다진 김지미 배우의 행보도 독특했고, 그의 활약은 < 골목안 풍경 >(박종호, 1962), < 불나비 >(조해원, 1965)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60년대에 등장한 ‘트로이카’의 구성원으로, 김종원 영화사가는 배우 엄앵란 , 윤정희 , 문희 를 꼽았고, 그들과 배우 신성일 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했다. 엄앵란은 < 청춘교실 >(김수용, 1963), < 맨발의 청춘 >(김기덕, 1964) 등에서 그와 함께 연기하며 ‘청춘영화’의 전성기를 불러왔으며, 두 배우의 호흡은 한국영화계에서 ‘스타’의 존재를 부각함과 동시에, 이전까지 외화에 치중됐던 국내 관객의 관심이 한국영화로 선회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윤정희는 데뷔작 < 청춘극장 >(강대진, 1966)부터 < 안개 >(김수용, 1967), < 장군의 수염 >(이성구, 1968)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1960년대 한국 예술영화의 주축을 구성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문희 역시 이만희 감독의 < 흑맥 >(1965)과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등에서 신성일의 상대역을 연기하면서 트로이카의 구성원으로서 영화계에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신성일 중심의 트로이카 구도로 대표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스타 커플 구조는, < 결혼교실 >(정인엽, 1970) 속 신성일과 윤정희, 문희, 남정임 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윤정희 X 신성일: 1960~1970년대 개발독재시대의 ‘밀고 당기기’ 영화평론가·영화연구자 금동현 금동현 평론가는 1960~1970년대 대표 배우이자 청춘스타였던 신성일과 윤정희가 동반 출연작에서 연기한 인물들의 관계를 ‘밀고 당기기’라는 용어로 재해석했다. 극중 그들의 배역이 점하는 위치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함께 출연한 87편에 달하는 작품들에서 거듭 역전되고, 둘 간의 케미스트리가 두드러진 <안개>와 < 야행 >(김수용, 1977)에서 이 점이 선명히 관찰된다. 배우 신성일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 아낌없이 주련다 >(유현목, 1962)로 데뷔한 이후 유수의 작품에서 줄곧 주연을 맡았고, 특유의 소년미로 ‘청춘의 영원한 아이콘’이자 현대사회에 완전히 정박하지 못한 무책임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도회적이고 지적인 여성 인물을 대표했던 배우 윤정희는 1972년 석사 논문 「영화사적 측면에서 본 한국여배우 연구: 1903~1946년을 중심으로」를 발표하면서, 배우이자 여성인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는 면모를 보이며 ‘멜랑콜리’한 정서를 중심으로 스타 이미지를 갱신했다. <안개>와 <야행> 중 신성일, 윤정희 / © ㈜태흥영화 일례로, <안개>에서만 해도, 윤정희는 주변 소품이나 인물들 사이에 갇혀있고 신성일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인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야행>의 몇몇 장면에서 윤정희는 자신을 향한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는 연기를 수행함으로써, 1970년대 한국영화가 관객의 시선을 활성화하는 성취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 신성일과의 케미스트리를 일으킴과 동시에 한국영화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구축된 윤정희의 스타 이미지를 참고하면, 금동현 평론가는 그가 ‘보여지는(보이는) 여성’에서 ‘보여주고 보는’ 여성으로 변화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1960~1970년대 한국고전영화 중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인 두 작품의 영화사적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기 위해서는, 당대 형성된 두 배우의 스타 이미지를 반드시 경유해야 한다는 관점도 공유했다. 더불어, 두 사람이 우울하지 않은 명랑한 얼굴로 콤비를 이룬 작품 < 아파트를 갖고 싶은 여자 >(정인엽, 1970), < 모범운전사 갑순이 >(이형표, 1972) 역시 언급하면서, 둘의 케미스트리를 다른 방식으로도 재조명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며 발표를 마쳤다. 장미희 X 안성기 198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 커플 영화연구자 이윤종 이윤종 영화연구자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 장미희 와 안성기 를 다루면서, 당대 한국영화 주요작에 출연하며 강력한 케미스트리를 발휘한 이들을 ‘황금 커플’로 지칭했다. 안성기는 김기영 감독의 1957년작 < 황혼열차 >에서 아역 배우로 데뷔해 연기 활동을 지속하다가 < 애수의 언덕 >(김대희, 1969) 이후 10여 년간 휴식기를 보내고 < 병사와 아가씨들 >(김기, 1977)로 복귀했다. 이때부터 < 바람불어 좋은날 >(이장호, 1980), < 적도의 꽃 >(배창호, 1983), < 고래사냥 >(배창호, 1984),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 등 1980년대 화제작의 주연으로서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을 연기하며 ‘국민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시기 장미희와의 동반 출연이 특히 빛났다. 장미희는 < 성춘향전 >(박태원, 1976)으로 데뷔하고 흥행작 < 겨울여자 >(김호선, 1977)에 출연한 이후, 1980년대에 접어들어 당대 여성 배우 트로이카에도 합류한다. 이후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등에서는 안성기와 상대역으로 만나 열연함과 동시에 흥행까지 거두면서 두 배우 모두 영화계 입지를 굳히게 된다. <적도의 꽃>와 <깊고 푸른 밤> 중 장미희, 안성기 / © ㈜동아수출공사 그런데 이들이 동반 출연한 1980년대 작품들에서 각자가 욕망의 주체(안성기)와 대상(장미희)으로 설정되면서 둘 간의 케미스트리가 ‘파국’의 결말을 통해 발휘된 점이 인상적이다. 안성기는 순수함부터 비열함에 이르기까지 중·하층민 남성의 변화무쌍한 얼굴을, 장미희는 세련된 외관을 지닌 채 심리적 결핍을 겪는 부유한 여성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적도의 꽃>에서는 중년 사업가에게 착취당하는 오선영(장미희)에게 반한 미스터 M(안성기)이 그를 구출하려 하지만 결국 화합에 실패한다. < 황진이 >(배창호, 1986)에서 황진이(장미희)에 대한 마음을 전하지 못한 갓바치(안성기)는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고, <깊고 푸른 밤>에서는 미국 영주권과 돈벌이에 집착하는 백호빈(안성기)이 계약 결혼을 통해 제인(장미희)을 이용하며, 두 인물이 파멸로 치닫는 과정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이 드러난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두 배우는 이렇게 산업화와 군부 독재의 한가운데 드리운 감정 소외나 우울감의 그림자를, 불행의 케미스트리로 스크린에 옮겨왔다. 김혜수 X 한석규: 1990년대 소비문화와 트렌드 신화, 도시의 얼굴 영화평론가·성결대학교 교수 정민아 이전까지 언급된 배우들의 활동이 과거 한국사회의 시대별 흐름에 맞춰 전개됐다면, 정민아 평론가는 1990년대에 두각을 드러내 현재까지도 활발히 필모그래피를 갱신하고 있는 배우로서 배우 김혜수 와 한석규 를 조명했다.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였지만 그들이 함께 출연한 작품은 사실 많지 않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 닥터봉 >(이광훈, 1995)에서 처음 협업한 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 이층의 악당 >(손재곤, 2010)으로 다시 만났다. 그래서 그들이 한 작품에서 발생시킨 케미스트리보다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각자의 역량을 개발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오늘날까지도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는 두 배우의 존재감을 분석했다. (상) 영화 <쉬리>,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 중 한석규 / (하) 영화 <첫사랑>, <내가 죽던 날> 중 김혜수 © ㈜필름쿡플러스, tvN 1990년대 국내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민주화와 세계화가 본격화되며 대중문화 산업의 규모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대중의 취향과 ‘트렌드’에 부합하는 다양한 콘텐츠나 인물이 주목받았던 때로, 이때 등장한 스타들은 대체로 산뜻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로 팬덤을 확보했다. 그중에서도 김혜수와 한석규는 외모와 목소리, 연기,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당시 대중이 선망한 ‘세련됨’을 구현했고, 데뷔 이후부터 현재까지 작품 속에서 쉼 없이 대중과 호흡해왔다. 한석규는 지성과 인품을 겸비한 도시 남성의 이미지를 표방했지만, 드라마 <서울의 달>(1994)에서처럼 냉정한 현대사회에서 불운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처연한 청년의 모습으로도 기억된다. 이는 최근까지 그가 TV 드라마에서 보여준 ‘소시민적’ 영웅의 리얼리티와도 맞닿아있다. 또한 감독에 의해 ‘선택받는’ 배우를 넘어 자발적인 비전에 따라 작품과 장르를 선택하고 신인 감독의 성장까지 견인하는 흥행보증수표 영화인의 시초 격이기도 하다. 한편, 김혜수는 활동 초기에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이나 영화 < 첫사랑 >(이명세, 1993)을 통해 젊고 발랄한 청춘스타의 면모와 특유의 건강미로 호응을 얻었다. 20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보다 다채로운 배역을 맡아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으며, 특히 2020년대 즈음에는 < 굿바이 싱글 >(김태곤, 2016)과 < 내가 죽던 날 >(박지완, 2019), < 밀수 >(류승완, 2023) 등을 통해 독립된 여성 자아가 돋보이는 씨네페미니즘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비디오 에세이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비디오 에세이스트 이무언,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연구원 윤서연 비디오 에세이스트 이무언 과 영자원 학예연구팀 윤서연 연구원은, ‘비디오 에세이’라는 작업의 의미를 소개하며 포럼 주제에 맞는 작업 결과물 한 편을 직접 제작해 선보였다. 이무언은 관객이나 연구자로 하여금, 각자가 작품에서 발견한 특별한 지점을 중심으로 연출과 편집을 주도하면서 영화와 한층 더 친밀해지는 기회로 비디오 에세이를 인식했다. 윤서연 연구원 역시 비디오 에세이가 주제가 되는 대상(물)과 이를 둘러싼 세계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통찰”한 결과이자 “매혹적인 또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한다는 논의 [1] 를 인용하며, ‘오디오 비주얼 크리틱’으로서 비디오 에세이의 영역이 지닌 비평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측면을 소개했다. 이날 소개한 작업은 영자원이 올해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 제작 및 배포 사업’을 수행하던 도중 두 사람이 기획하게 됐다.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는 영화사적·예술적 가치를 지닌 한국영화 몇 편의 공통 소재를 제목으로 하여, 작품별 본편 영상과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자막, 그리고 코멘터리 영상 등을 수록한다. 영화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반을 해외에 소개할 목적으로 매년 해외 공관이나 문화원 등에 비영리적으로 배포되고 있다. 작년에는 “영화와 남성: 영화로 보는 스타 페르소나”라는 제목의 DVD에, 한국사회의 일면과 시대의 감성을 머금고 있는 남성 인물들이 인상적인 한국영화 6편을 수록했다. 그리고 감상자들이 한국에 대해 간략히 소개받을 수 있는 짧은 콘텐츠를 기획해 부가 자료로 함께 수록하고자, DVD에서 다루고 있는 남성 배우 6인 중 한 명에 대한 비디오 에세이를 기획했다. 내부 논의 끝에 최종 선정하게 된 에세이의 주인공은, 순정과 헌신, 소시민의 나약함, 일그러진 욕망 등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한 국민 배우이자 고전과 동시대를 아우르는 스타로 기억되는 한국영화의 얼굴, 안성기였다. 실제 연령대로 비춰볼 때, 안성기는 에세이를 제작한 이무언의 아버지 세대이면서 작품 촬영 당시에는 그(이무언)와 같은 또래였다. 또한 안성기가 극중 인물을 형상화하며 선보인 특유의 ‘얼굴’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한국사회의 각기 다른 국면을 관통함에 따라, 1980년대의 시절이 하나로 통합되는 듯한 느낌 역시 받았다고 이무언은 전했다. “이미지들의 느슨하고 싱거운 연결”을 통해 이러한 인상이 에세이를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반면 윤서연 연구원은 안성기가 각기 다른 영화에서 선보인 대사들 중 인상 깊은 부분들을 모아 1980년대 시대정신과 같은 특정 의미를 강조하여, 작품과 쇼트들의 의미를 비교적 명료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 두 가지 입장은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2017년 시네마테크KOFA에서 그에 관한 특별전을 개최했을 때 제작된 영상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전”을 참고하고, 구술채록 사업 진행 중 그의 구술 내용이 녹음된 파일들을 다시 들어봤으며, 그가 출연한 수많은 작품 중 10편을 골라 실제로 삽입할 쇼트를 신중히 선택했다. 쇼트마다 배어있는 정서를 자막과 음악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특히 서로 다른 작품에 속한 장면을 소품이나 장소 등을 매개로 연결하며 안성기가 작품과 작품 사이를 유기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오가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연출 중 하나는,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 중 덕수궁의 벤치에서 각각 아내( 황신혜 )와 딸에게 자상함을 베풀지만 냉대를 받고 마는 두 장면을 한 화면에 나란히 배치해 동시에 재생한 대목이다.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아내와 딸을 향한 그의 행동이 중첩되는 순간들이 보이는데, 이는 필름이 아닌 디지털 영상이 보편화된 시대에 두 개의 영상을 2채널로 나란히 배치하며 가능해진 실험이라고 윤서연 연구원은 덧붙였다. 한국고전영화 에세이 -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이미지 클릭 후 재생) 관객과의 대화 (질문1)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스타’들에게는,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충족되지 못한 국내 관객의 욕망이 투사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1990년대부터는 이들만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구축됐다는 느낌을 받는데, 한국영화의 각 시기가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에 대해 발표자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답변_이윤종 영화연구자) 고전 할리우드 시기 영화산업은 몇몇 주류 영화 스튜디오가 제작과 배급, 상영을 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됐고, 배우들 역시 각 스튜디오에 소속된 채로 활동했다. (하지만 1948년 미국 대법원에서 이러한 영업 활동이 ‘독점’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면서 여러 스튜디오가 해체됐고, 여기에 소속됐던 배우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불가능했던 측면도 있지만 이러한 스튜디오 중심의 스타 시스템 자체가 확립되지 못한 상태였고, 할리우드의 방식을 모방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해방 이후 신상옥 감독이 이끄는 신필름이 당시 국내 영화산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스튜디오 시스템에 근접한 운영 양태를 보였는데, 1970년대부터는 이마저도 쇠퇴했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감독과 배우, 영화 스태프들 모두가 독립된 개인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1980년대까지는 1990년대 이후에 비해, 영화를 비롯해 여기에 출연한 배우들 역시 대중에게 큰 파급력을 얻지는 못했던 시점인데, 와중에 안성기와 같은 ‘국민 배우’가 탄생했다는 점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질문2) 20대 관객의 입장에서는 < 라디오스타 >(이준익, 2006)나 < 실미도 >(강우석, 2003) 등의 2000년대 이후 작품을 중심으로 안성기 배우를 기억하게 되는데, 과거의 다양한 출연작들을 통해 그의 활동을 한국영화사의 맥락에서 돌이켜볼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비디오 에세이를 제작하면서, 여러 출연작 중에서도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장면들을 구분해내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고 예상된다. 작업 도중 겪게 되신 고충 이 있다면 듣고 싶다. (답변_이무언 비디오 에세이스트) 감상을 공유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인상 깊은 장면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장면을 확인할 때마다 영상의 일부를 이미지로 캡처해두고, 작품 안에서의 타임코드와 함께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를 메모했다. 에세이에서 다룰 모든 작품에 대해 이 작업이 완료되면, 캡처된 이미지들을 훑어보며 관련 장면을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각 이미지를 연결하는 과정에서는, 안성기의 연기를 통해 전달되는 여러 가지 인상들(‘아버지’, ‘남성’ 등)이 쇼트들의 유기적인 연결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지각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안성기 개인의 삶이 연상되거나 관객 스스로가 처한 ‘현실’ [2] 과 작품 속의 ‘허구’가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흥미로웠던 장면들도, 어렵지만 제시하고 싶었다. 또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안성기의 ‘얼굴’ 외에 다른 요소들도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잔을 부딪치며 건배하는 이미지, 수면 위에 반사된 이미지, 극중 시계를 비춘 이미지 등이, 매 장면 돋보이는 그의 다채로운 ‘얼굴’들을 연결해줬다. 한국고전영화 에세이 -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중 시계와 잔이 등장하는 쇼트 (질문3) 1960년대 한국영화의 멜랑콜리적 지식인 주체성에 대해 연구한 바가 있는데, 금동현 평론가의 발표에서 <장군의 수염>과 <안개>가 다뤄져서 반가웠다.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배우들이 담지하고 있는 멜랑콜리적 주체성 이 무엇일지에 대해 여쭙고 싶다. (답변_금동현 영화평론가) 오늘 분석한 작품들에서는 멜랑콜리를 자아내지 않고 ‘체현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물론 1960년대에는 멜랑콜리를 재현하는 몇 가지 요소가 발견될 뿐 멜랑콜리라는 감수성 자체가 이 시기에만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멜랑콜리의 흔적이 관찰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한 대목을 꼽자면, ‘코미디’라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 한국 코미디영화에서 웃음은 모종의 이유로 ‘경직되어버린’ 무언가를 조롱할 때 자주 발생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웃어야 하는 데 웃지 못하는 순간( 이봉래 감독의 영화에서의 몇 가지 장면이 예가 될 수 있다)이 어떻게 보면 멜랑콜리한 상태에서 받는 느낌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질문4) 오늘 언급된 배우 중, 배우 김혜수가 유독 눈에 띈다. 1990년대 당시 그는 확고한 ‘무비스타’로 자리매김한 상태가 아니었고, 광고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아직 다른 스타들만큼의 파급효과를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김혜수 가 자연스레 떠오른다는 것이 독특한 지점이다. 이 시기 스타로서 김혜수의 부상을 분석하실 때 다른 배우들과 비교하여 어떤 접근법을 적용하셨는지가 궁금하다. (질문5) 200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배우 김혜수와 한석규가 선보인 연기 스타일이, 그들이 1990년대에 수행하던 방식과는 달라졌다고 말씀해주셨다. 배우들이 선보이는 연기의 방향성이 재정립되는 데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욕망이 변화하는 현상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시대별로 이념이나 정치성, 관객의 욕망 등의 변화가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 변모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지 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답변_정민아 영화평론가) 두 질문에 대해 한 번에 답변 드리고 싶다. 말씀하신 대로 김혜수 배우가 영화계 스타로서 두각을 나타낸 시점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다른 배우들에 비해 다소 늦다. 하지만 1990년대 화보와 예능, TV를 포함해 대중매체 전반에서 그가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성장한 여정을 고려하면, 그리고 이 시기 관련 콘텐츠를 향유했던 경험을 되새겨보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가 김혜수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는 오늘날 스타가 탄생하는 과정과도 유사하다. ‘영화’와 그밖의 영역(방송 등)이 명확히 구분됐던 과거와 다르게,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배우’의 활동 분야가 대폭 확장됐고 분야 간 경계도 거의 사라졌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분야에서 연기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은 모두 ‘배우’로 호명되며, 그들이 연기를 선보이는 분야 역시 한 가지로 국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스크린을 통해서만 스타로 거듭나기보다, 1990년대 본격적으로 파급된 각기 다른 매체에서 강렬한 영향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스타 이미지를 구축한 김혜수가,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하는 복합적 차원의 배우상을 1990년대부터 선구자적으로 확립한 이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현장 BEHIND CUT * *** [1] 박진희, “ 복혜숙과 석금성을 헷갈려하다 ”, KMDb 영화글, 2023. 7. 27. [2] < 개그맨 >(이명세, 1988) 중 이발사가 이종세(안성기)에게 “어렸을 때부터 그 방면에 재능이 많으셨죠?”라고 물어 아역 배우 시절 안성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거나, < 칠수와 만수 >(박광수, 1988) 중 “우리 쳐다보는 거 아니에요?”라는 대사 이후 배우 박중훈과 함께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 등이 있다.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도시 공간은 과거로부터 켜켜이 쌓여 온 시간의 레이어가 중첩된 결과물이다. 어떤 곳은 레이어의 층위가 그다지 많지 않아 과거의 모습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반면, 어떤 곳은 너무 많은 층위가 겹쳐 불과 수년, 수십 년 전 모습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도시 중에서 사회·문화·정치·경제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서울의 도시 공간은 아마도 대부분 후자에 속할 것이다. 특히 서울 도심부는 불과 1세기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일제강점기, 광복, 6·25 동란, 군사정변과 산업화라는 역사의 격랑을 거치며 무수히 많은 시간의 레이어가 촘촘히 덧씌워져 왔다. 이러한 서울의 역사적 조건은 미시적인 변화상(예를 들면 1960년대 서울은 1950년대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는가)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각각의 레이어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 주도로 제작된 <대한뉴스> 및 각 관청에서 촬영한 행정 기록용 사진들은 여전히 상당수 남아있다. 하지만 이들 기록은 ‘국가의 시선’에서 취사 선택되었다는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 <대한뉴스>의 제작 목적은 국가 정책 홍보와 대국민 계몽이었으며, 관청 사진들 또한 행정 결과 보고라는 목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다면 민간(시민)의 시선에서 날 것 그대로의 도시 공간에 가장 근접한 기록은 무엇일까? 당대 시민의 생활상을 담아낸 영화 작품이야말로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영화 < 마부 >(강대진, 1961)는 서울에 거주하는 서민 가정의 가장을 중심으로 그들이 겪는 희로애락을 그린 작품이다. 김승호 가 분한 가장 춘삼은 1960년대 서울에서 이미 전근대적 운송업으로 취급받기 시작한 ‘마부’이며, 그의 자식들은 당시 서울 시민 대다수를 차지했던 서민 가정의 삶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모든 등장인물이 서울 시내 각지를 방황하는 이야기 전개상 4.19 혁명 직후 서울 시내 곳곳의 모습이 명확하게 포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흑백 영화라는 시대적 한계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거리의 모습 때문에 첫눈에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춘삼네 식구들의 희로애락이 투영된 장소가 지금도 엄연히 우리 곁에 존재하는 서울 시내의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60년 전 서울의 어느 서민 가정을 매개체로 하여 95분의 러닝타임 속에 담긴 60년 전 서울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옥인길에서 촬영된 세련된 오프닝 시퀀스 <마부>의 오프닝 시퀀스는 춘삼의 작은아들 대업( 김진 )이 훔친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내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업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은 그 형태, 그리고 1960년 10월에 치러진 보궐선거(서울시의원 종로 제1선거구) 벽보와 배경의 산세로 보아 지금의 누상동·누하동의 옥인길로 추정된다. 시퀀스로 미루어 춘삼네 집은 옥인길 초입에서 5분가량 걸어올 라가면 나오는 옥인동 47번지 일대의 비탈진 곳에 위치했으리라 짐작된다. 지금은 주거환경개선사업 등으로 인해 한옥과 판잣집을 찾기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영세한 필지만큼은 춘삼네 가족이 머무르던 시절을 담고 있다. 장충동에서의 근대-전근대의 교차 다음으로 주목할 장면은 작은딸 옥희( 엄앵란 )가 남성과 자동차를 타고 가다 마차를 끄는 아버지 춘삼과 길에서 마주치는 씬이다. 숭정문이 저 멀리 내다보이는 가운데, 장충동의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근대의 문물(자동차)과 전근대의 문물(마차)이 사고를 일으킬 뻔했다. 도로를 지배하는 교통수단이 마차에서 자동차로 옮겨간 시대적 배경에서, 이는 춘삼이 겪는 가난이 사회 구조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드러내는 씬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영동 성남극장 극중에서 춘삼과 수원댁( 황정순 )이 영화관 데이트를 즐기는 곳은 남영동의 성남극장이다. 1918년 세워진 ‘경룡관(京龍館)’을 전신으로 하는 성남극장은 서울의 수많은 초창기 영화관이 사라져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극장 건물이 남아있는 드문 사례다. 한강로를 건너는 춘삼과 수원댁의 배경에는 서울전차의 원효로 분기선이, 교차로에는 221호 전차와 1950년대 후반 출시된 미제 닷지 트럭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우마차의 시대가 이미 종결을 고했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은 트럭과 전차의 출연은 당시 서울의 교통 환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물류의 중심지, 서울역 마차를 끄는 춘삼과 수업( 신영균 ), 그리고 ‘서울소화물’이라 적힌 화물 오토바이를 모는 창수( 황해 )는 당시 서울역 북서쪽에 위치한 화물 취급소를 자주 찾는다. 트럭 운송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대부분의 장거리 화물은 기차로 서울에 옮겨졌고, 이를 시내 각지로 운반하는 영세 운송업자들은 자연스레 서울역 서쪽으로 모여들었다. 맞은편 북쪽에는 서울수산시장(1975년 노량진으로 이전, 現 서소문역사공원)이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과는 다른 물류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찻길 옆 시가지, 청파동 춘삼은 기찻길 옆 돌다리 위에서 수원댁과 만나 담소를 나눈다. 오른쪽으로 기차가 지나가고, 개천이 흐르며, 왼쪽으로 시가지가 형성된 점에서 이곳이 옛 만초천을 복개한 청파로 부근임을 알 수 있다. 이 일대가 서울역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임을 감안하면, 화물 취급소로 향하던 춘삼이 자연스레 수원댁을 만났다는 공간적 개연성이 확보된다. 수원댁과 헤어진 춘삼 너머로 보이는 높은 굴뚝은 1930년대부터 존재했던 철공소(청파동1가 183번지)의 것으로, 오랜 세월 청파동의 근대산업유산으로서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마부> 촬영 이후에도 60년 가까이 살아남았으나 2019년에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왼편에 철공소 굴뚝이 보인다. 해당 철공소 건물(1938년 12월 준공, 2019년 철거. 사진: 필자 제공) 불안한 해피엔딩, 중앙청 앞 율곡로 <마부>의 결말은 오프닝과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오프닝의 카메라는 누하동의 굽이진 골목길을 어지럽게 쫓아가지만, 결말의 카메라는 행복한 미래를 맞이한 춘삼네 가족이 중앙청 청사와 옛 경기도청 사이의 율곡로를 걸어가는 뒷모습을 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큰아들 수업의 성공으로 춘삼네 가족이 더 이상 서울역 화물 취급소, 누하동 비탈길, 장충동 교차로를 전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간적 단절을 의미하는 듯하다. 다만, 과연 춘삼네 가족에게 그런 미래가 찾아왔을까? 현실의 서울에서는 수업의 성공으로부터 채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5.16 군사정변이 발발했고, 독재정권이 도시계획을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서울 도시 공간은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춘삼네 가족과 그들의 삶이 투영된 서울 또한, 결말의 줌 아웃을 끝으로 그 이전과 단절된 셈이다. <마부>는 95분의 러닝타임 동안 미처 글에 담지 못한 장소들(노들섬 한강대교, 문배동 오리온 제과공장, 충무로 대한극장 앞)을 포함해 서울 시내 십여 곳에서 직접 촬영을 진행하고, 이를 ‘어딘가에 존재했을 법한’ 서울 사람의 생활 동선으로 엮어내는 데 성공했다. <마부>가 첫 개봉으로부터 6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당대 서울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으로 다시금 조명받는 데는 이러한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영화 속 서울의 모습은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작품 수에 관객 수를 곱한 것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읽어내야 할 과거 서울의 모습이 무궁무진할 뿐 아니라,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서울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켜켜이 쌓여왔음을 의미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이 각자의 시선과 경험, 지식을 바탕으로 영화 속 서울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도가 이어지길 바란다. 김영준 연구원이 들려주는, <마부> 속 서울에 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국영화X공간] 영화 "마부", '1961년 서울의 삶' 클릭! 김영준(도쿄대학 특임연구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미망> 중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잘 가,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난다면 어떤 춤을 추면서 너와 나는 둥글어질까, 여름의 장례식, 우리는 오래 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우리는 오렌지의 영혼을 팔에 안으며 혼자서 둥글어졌다 잘 가, 원점으로 어두워가던 너의 발이여, 오렌지빛의 소풍이여 *주1 - 허수경, 「오렌지」 이렇게 한번 주장해보고 싶어진다. 영화는 군중의 걸음걸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믿어보고 싶다. 영화는 단지 걷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충분히 매혹할 수 있다고. 요약해보자면 < 미망 >(김태양, 2023)은 헤어짐과 장례의 시간으로부터 빠져나온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나란히 걷는 것을 기록한 영화이다. 이들은 낡은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운 정육면체를 쌓아 올리는, 붕괴와 재건의 행위가 끊임없이 갱신되는 서울의 복잡한 풍경 사이를 가로지른다. <미망>을 독해하는 첫 번째 방법(이자 대부분의 감상)은, 영화가 결국 인물들의 관계를 매듭짓지 않음으로써 생성되는 ‘서정’에 주목하는 것이다. 분절된 3편의 이야기와, 각 이야기의 틈에 단단하게 박혀있는 ‘단절’과 ‘공백’이라는 영화적・실제적 시간 *주2 이 이 영화의 고유한 시적 리듬감과 정감을 형성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에 넘실대는 서정을 곱씹어보는 동시에, 엔딩 시퀀스에서 화면 밖으로 서둘러 사라지며 종적을 감춘 남자( 하성국 )의 행방을 계속해서 쫓아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김태양 감독에 따르면, 그의 차기작 <서울 이야기>에는 <미망>의 두 주인공 하성국, 이명하 배우가 다시 등장할 예정이다. 인용한 시구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난다면’이 어김없이 실행되는 곳, 이야기의 지속을 굳게 믿으면서 인물들이 담담하게 작별하고 외화면으로 탈주하는 곳, 이곳은 김태양 감독의 프레임이자 그가 ‘멋진 도시’ *주3 로 명명한 서울의 영화적 설계도이다. 그렇다면 <미망>을 이해하는 두 번째 방식은 감독이 서울을 매핑하는 방식을 가늠해 보는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은 무엇이며 어디일까. 오류로부터 산출된 서울이라는 픽션 “잘못 내렸어요.”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을지로3가역을 비추는 영화의 첫 숏 안으로 사람들이 마치 쏟아지듯 들어온다. 남자는 아마도 만나기로 약속된 사람과의 통화에서 자신이 잘못 내렸음을 알린다. 공사 현장과 초록색 잎사귀가 무성하게 달린 나무 앞을 지나며, 남자는 ‘여기가 이렇게 연결되네요’라고 말한다. 그의 발걸음은 어떤 연결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다음 숏에서 남자는 과거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여자(이명하)와 맞닥뜨린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대화하면서 영화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즈마 히로키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실수로 내리지 말아야 할 곳에 내린 남자는 생경한 장소로 잘못 배송됨으로써 우연성이 내재된 세계로 뛰어든 오배(誤配)의 존재이다. 예정된 곳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어야만 시작되는 이야기. <미망>은 남자의 잘못 내린 행위, 다시 말해 오류로 산출된 행위들로 조합된 서울의 픽션이다. 물론, 우연성에 기대어 영화를 읽는 것은 유별난 발견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상술했던 마지막 시퀀스를 다시 떠올려보자.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창밖으로 뿌옇게 보이는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광화문 광장으로 보이는 곳을 버스가 지나치자 황급히 하차벨을 누르고 프레임의 오른쪽으로 사라진다. 프레임의 왼쪽으로부터 걸어 들어오며 출현했던 오프닝 숏을 환기하는 이 남자의 몸짓은 여자와 헤어진 후 또다시 잘못 내리기를 결심한 것 같은, 즉 불확실성의 세계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행위에 가까워 보인다. 배역의 이름과 플래시백이 부재하는 이 영화에서, 불릴 이름과 기억이 없는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의 신체로 오류를 기꺼이 실천하는 것이다. 적어도 <미망>에서 남자가 잘못 내린다는 것, 그리고 어딘지 모르겠는 미로 같은 서울의 한복판을 걷는다는 것은 끝을 맺지 못했던 관계의 대상과 다시 조우하는 행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망>은 안타까움의 서정과 서울이라는 복잡한 노선도를 해체하며 재회를 향하는 반복적인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이 공존하는 영화이다. <미망> 중 남자와 여자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남자의 발걸음이 길 잃은 사람의 것이라면, 여자의 발걸음은 죽음을 겪고 다시 생의 공간으로 걸어 나온 사람의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고백하는 여자는, 그 후 연락처를 바꿨음을 말하며 남자에게 ‘나 변한 것 없어?’라고 물어본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그녀는 ‘서울극장’이라는 장소의 죽음을 선언하며,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함께 알던 예전 사람의 넋을 기리는 장례식에서 남자와 재회한 후, 광화문 일대를 다시 걷는다. 여자에게 죽음은 지난 관계를 매듭지으면서 새로운 관계로 연결되는 선험적인 사건이며, 그런 그녀가 걷는 걸음이란 장례의 시간으로부터 나와 생의 공간으로 복귀하여, 살아있는 사람과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빚어낸다. 여자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옛 친구에게 ‘난 죽을까봐 운전 못 하겠어’라고 말한다. 운전하지 않는 그녀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을 감각하는 행위이다. 말하자면 <미망>이 그려내고 있는 서울의 거리란 길 잃은 사람과 삶으로 복귀한, (이미지적으로) 환생한 사람이 멈추지 않고 각자의 궤도에 따라 걸으면서 서로의 간격을 좁혀보고자 하는 몸짓들이 조우하는 잠재적인 시공간이다. 영화는 촘촘하게 조립된 서울의 노선도를 해체하고, 출발시간과 도착시간, 환승 방법들이 지겹도록 나열된 정합적인 도시인 서울을 탈영토화시킨다. 세 번째 이야기 중간 즈음, 택시 안에서 이뤄지는 세 사람의 대화 사이에 초월적 시선으로 서울의 저녁 풍경을 담은 익스트림 롱숏이 등장한다. 이 숏은 다시 한 번 나를 부추긴다. 미세혈관처럼 배치된 긴 도로와 그 위를 채우고 있는 차량들, 그리고 그 안에 있을 사람들. 어쩌면 이들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길 잃은 사람들일 뿐이며, 누구와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모르는 우연과 잠재성으로 가득 찬 도시, 서울의 이름 없는 시민들은 아닐까. 그러니까 서울은 순수한 강렬함을 가진 미세한 입자들이 끊임없이 탈주하는 선들로 구성된 기관 없는 신체 *주4 인 것은 아닐까. 이 주장을 견고히 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걷던 길 위로, 배우와 카메라 사이를 개의치 않고 침입하여 활보하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영화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이 어딘가를 향한다. 아니,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걷고 있다고 해야겠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 유기체처럼 조직된 노선도를 벗어나 구태여 길을 잃고, 살아있음을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감각하는 곳. 김태양 감독의 장편 데뷔작 <미망>은 기관 없는 신체, 서울의 픽션을 발명한다. 20세기의 결말 없는 영화와 이름 없는 이들의 발걸음을 호명하면서 두 번째 이야기.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간 어둠 속 스크린에선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 의 < 미망인 >(1955)이 상영되고 있다. 여자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극장 문을 열고 나서면 1955년과 같은 거리를 걷는 것’이라 말한다. 그런가 하면, 여자를 따라나선 남자( 박봉준 )는 피맛골의 유래를 이야기하면서 서울의 뒷골목에 무수히 쌓여온,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상기시킨다. <미망>은 결말이 유실된 20세기의 영화와, 서울의 길거리를 채웠던 사람들의 무한한 발걸음을 호명하면서, 서울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픽션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걸었던 자리를 다시 걸어보는 신체의 반복적 행위가 역사를 환기할 수 있을까? 마지막 이야기에서 여자의 머리 위로 떨어졌던 대낮의 빗방울이, 남자에게는 여자와 헤어진 후 홀로 골목길을 걷던 밤이 되어서야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장면은, 첫 번째 이야기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우던 골목길로 돌아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장면과 대구를 이룬다. 헤어진 존재의 행위를 복각해보면서 지금은 내 옆에 없는 상대방의 마음을 그림자처럼 어렴풋하게나마 추적하는 것. 이것은 <미망>이 서정의 회로를 만드는 방식이자, 신체의 재연을 통해 발현되는 픽션의 역량을 믿어보고 싶게 만든다. <미망> 중 골목의 여자, 그를 따라나선 또 다른 남자 올해 2월 21일부터 3월 1일까지 진행되었던 ⟪ 각각의 영화사 ⟫는 한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 맺는 연속적인 관계를 되짚어보기 위해 마련된 기획전이다. <미망>은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1955)과 더불어 강대진 감독의 < 마부 >(1961), 이용민 감독의 < 서울의 휴일 >(1956)과 한데 묶였다. 나는 이 영화들을 하나의 이미지 집적체로 상정하기 위해, <미망>이 사용한 방식, 즉 행위의 반복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았던 사람들을 마치 하나의 시공간에 있는 것처럼 둥근 나선의 형상으로 모아보는 것. 이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은 영화가 이미 성취한 바 있다. 그 중, 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의 작품 중 < 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2010)의 한 시퀀스를 언급하고 싶다.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식사 장면이 그것이다. 분미와 젠, 통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하고 있을 때 19년 전 죽었던 분미의 아내 후아이의 유령이 나타난다. 늙지 않은 모습 그대로. 이어서, 13년 전 가출했던 아들 분쏭은 원숭이 유령의 모습을 하고 등장한다. 이 시퀀스에서 산자와 망자, 인간과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는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재현 불가능성을 초월함으로써 영화의 한계를 극복한 <엉클 분미>는 한자리에 있을 수 없는 존재들과 그들이 머무는 불가능한 시공간을 태국의 숲으로 한 데 불러 모아 하나의 숏 안에 현시한다.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경탄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안부를 묻는다. <엉클 분미> 중 (사진: " Loong Boonmee raleuk chat ", IMDb) <미망>과 함께 상영된 세 한국 고전을 한 데 묶는 가장 명료한 방법은 사람들과 자동차, 대중교통과 마차가 복잡하게 교차되는 서울의 광장이라는 시공간과 그곳을 누비고 있는 인물들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사건’ 후에 남겨진 사람들이다. 세 고전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은 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형상을 포착한다. 그리고 <미망인>, <마부>, <서울의 휴일> 모두 죽음과 죽음이 촉발하는 인물, 그리고 서사의 변화를 그린다는 점에서 <미망>의 여자와 겹쳐지며 네 영화는 성글게 연결된다. <미망인>은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의 욕망을 대담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마부>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예컨대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의 <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을 떠올리게 하면서, 한국전쟁 후 한 가족이 겪는 질곡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부>에서 첫째 딸, 옥례( 조미령 )가 죽은 후 수원댁( 황정순 )이 이 가족의 비어있던 어머니 역할을 메우면서 네오리얼리즘에서도 두드러졌던 연대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의 휴일>은 살인 사건에 휘말린 신문기자 송재관( 노능걸 )의 행적을 좇는 동시에 남편의 부재로 계획과 다른 휴일을 보내게 된 의사 남희원( 양미희 )의 하루를 채우는 여러 해프닝을 나열한다. 그녀는 우연히 한 여인의 출산을 돕게 되는데, 그녀는 살인자의 아내라는 점에서 죽음이 생으로 변환되는 지점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세 고전과 <미망> 모두, 여성이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어나간다는 점에서도 유사점을 갖는다 할 수 있겠다. (상) <미망인> 중 클로즈업되는 이신자의 발걸음 / (하) <마부>, <서울의 휴일> 중 길 위의 인물들 <미망>의 인물들이 걷던 서울의 길. ⟪각각의 영화사⟫는 이 거리의 형상을 재편한다. 주위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의지로 삶을 이어나가려 했던 이신자( 이민자 )의 굳건한 발걸음, 춘삼의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망설임 없이 내어주며 그들에게 먼저 다가갔던 수원댁의 온정어린 발걸음, 초조한 마음으로 시험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눈길을 헤쳐 나가던 수업( 신영균 )의 무거운 발걸음. 그리고 유혹에 굴하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남희원의 발걸음. ⟪각각의 영화사⟫에서 추출해볼 수 있는 서울이란, <미망>의 인물들이 증언하였듯 사람들의 무수한 발걸음으로 구성된 도시이자 역사이며, 과거와 현재, 서정과 삶의 의지가 역동적으로 진동하는 픽션이다. 비평이라는 퇴행하는 몸짓에 대하여 얼마 전 ⟪씨네21⟫ 편집부로부터 올해 영화평론상 공고문에 들어갈 전년도 수상자의 소감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물론 당선 시점을 생각하면 아직 1년에 한참 모자라지만(그렇게 믿고 싶다), ‘전년도’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원고지 1.6매의 짧은 분량 안에서, 비평을 ‘퇴행하는 몸짓’이라 말했다. 더 겸허한 자세를 취하겠다는 다짐을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건 비평의 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건 내 탓이 아니라는 새침한 변명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누군가는 왜 ‘비평에 대한 생각’은 끄트머리에 짧게 등장하고, ‘비평’만 가득한 것인지 불만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등단 이후 쓴 글 중 가장 요란한 고통의 몸부림을 치게 한 이 글의 개요를 구상할 때부터 이러한 구조를 생각했다. 마지막에 등장하기. 이건 피날레를 장식하겠다는 야망과 무관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비평가는 ‘몫 없는 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먼저 영화라는 텍스트가 선행되어야 할 테고, 그 이후에 텍스트를 중심으로 생성되는 얕은 사유들이 뒤따른다. 이상적으로는 담론을 형성할 것이고,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읽히지 않은 채 ‘요즘에 누가 비평을 읽어?’라는 뼈아픈 비판을 견고히 하는 예시로 사용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평을 가까이하려는 누군가가 ‘혹시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나요?’라고 빈곤한 A4용지 너머로 물어봐준다면, 그제야 쑥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사실은 말이에요’라며 나타나는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비평가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용량을 초과한 이 글의 대부분은 <미망>에 대한 비평일 수밖에 없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미망>을 다시, 그리고 치열하게 보게끔 해준 ⟪각각의 영화사⟫에 대한 단평인 것이다. 이 글을 읽다 지쳐 중간에 떠난 사람들은 마지막 문단을 보지 못할 테지만, 선행하는 글들을 흥미롭게 읽은 사람이라면, 전년도 수상자가 말하는 비평에 대한 이 고백을 읽고 있을 것이다.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는 “영화는 흔한 장소인 공공 공간이다. 그것은 기념비가 아니라 토론과 행동의 공간이다. 그것은 하나의 생태계다.” *주5 라고 말한 바 있다. 비평의 영역을 만들어주는 것 같은 이 말은 조금은 희망적이다. 한편, 연극에 대한 두 철학자, 필립 라쿠-라바르트와 장-뤽 낭시의 논쟁을 다룬 책 『무대』(2020)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혔다. 두 개의 대화가 처음으로 함께 출판되었다. 두 대화는 서로 긴 시간 간격을 두고 이루어졌지만, 그 목표는 언제나 두 대화 상대자 사이에서 새롭게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토론은 필립 라쿠-라바르트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다. *주6 - 장-뤽 낭시 이 책을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문장들과는 별개로, 둘의 대화를 단절시킨 것이 죽음이었단 사실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죽음 외엔 이 사유를 멈출만한 사건이 없었다는 점에서 작은 안도감을 느낀다. 한편에는 비평의 무용함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영화의 죽음을 예견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 어정쩡하게 서 있다. 언제까지 두 목소리 사이를 오가며 비평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말하기엔 아직 못 본 영화들과,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들이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 한 영화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적어도 비평을 쓰는 동안만은 지구상에서 그 영화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내가 되어야만 한다는 허황된 다짐을 하곤 한다. <미망>을 여러 차례 보면서도, 그런 절박함에 휩싸인 순간들이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싶다. 잘 가, 원점으로 어두워가던 너의 발이여, 오렌지빛의 소풍이여 *** 주1. 허수경, 「오렌지」의 후반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 지성사, 2016, pp. 42~43. 주2. <미망>은 두 단편 < 달팽이 >(2020)와 < 서울극장 >(2022), 그리고 중편 <소우>(2022)를 한데 모아 배치한 장편이며, 여기에는 4년이라는 시간이 축적되어있다. 영화는 코로나로 인한 단절의 시간을 겪으면서 완성되었으며, 이로 인해 형성된 공백과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체화한 배우들의 변화는 역설적으로 이야기의 지속을 증명한다. 주3. 지난 3월 1일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김태양 감독은 차기작의 제목을 <서울 이야기>로 정한 배경에 대해, < 동경 이야기 >(오즈 야스지로, 1953), < 타이페이 스토리 >(에드워드 양, 1985), < 뉴욕 스토리 >(우디 알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세이지, 1989)는 있지만 <서울 이야기>는 아직 없다며, 이 ‘멋진 도시’를 영화 제목으로 선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4. 기관 없는 신체(Corps sans organes, CsO)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Pierre-Félix Guattari)가 함께 집필한 『천 개의 고원』(새물결, 2001)에서 인용한 것으로, 이 개념은 잔혹극의 창시자인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주5. George Baker and Pierre Huyghe, An Interview with Pierre Huyghe , The MIT Press, 2004, p. 96. 주6. 필립 라쿠-라바르트, 장-뤽 낭시, 조만수 옮김, 『무대』, 문학과 지성사, 2020. 문주화(영화평론가) l 2024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통해 등단했다. 아직은 비평이라는 퇴행하는 몸짓이 가진 역량을 믿고 있다. 세상이 지겨울 때 영화관을 가고, 좋은 영화를 만나면 세상이 다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