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경
- 감독
- 김소영
- 제작년도
- 2003
- 출연
- 김소영, 이병원, 한유나, 최은희, 윤정희, 배두나, 윤석남, 박영숙, 임인애, 홍은영, 이애림, 한유나, 자갈치 상인, 국제 상인, 민검연, 진주 영화앵호가
야심한 밤의 주유소, 프레임 오른쪽에 도열한 급유기들과 바닥에 무질서하게 그려진 흰색의 사각형, 후경의 도로 뒤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프레임을 수직으로 가르며 달려와 카메라 앞에서 멈춘다. 프레임 왼쪽에서 주유원이 프레임 인하여 주유구를 열고 기름을 주입하기 시작한다. 이 깊은 공간의 가장 앞쪽에서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을 주는 긴 쇼트가 지속되는 동안 주유가 끝나고 오토바이의 라이더가 시동을 걸자 카메라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넓어진 화각의 카메라는 축축하고 어두운 도로, 전반적으로 컴컴하고 듬성듬성 불이 켜진 건물들, 황녹색 신호등 사이를 달려가는 오토바이를 인도하는 것 같다. 하나의 쇼트로 서술되는 이 신에서 영화의 주인공 태훈(서준영)이 막 도착했고 관객들은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될 것임을 짐작한다. < 회오리 바람 >(2009)은 기대감을 형성하는 설정의 기능을 통해 서사의 심부(深部)로 관객을 끌고 가는 인상적인 프롤로그를 제시한다. 플롯을 주재하는 모티프는 전형적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 구조이다. 태훈과 그의 동급생 여자 친구 미정(이민지)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속초여행을 다녀오는데, 이 일탈적 여행이 초래한 여파, 악화하는 관계의 추이가 내러티브의 골간을 이룬다. 서로에 대한 깊은 애착을 실현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한 소년 소녀에 관한 이 로맨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변주라고도 할 수 있는 익숙한 스토리이다. 이와 같은 유서 깊은 스토리 유형의 장점은 그 익숙함으로 인해 내러티브를 파악하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들은 모두 그런 장면들이다. 장건재 감독의 성취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부유하며, 때로는 격렬하게 요동하는 존재의 상태를 시청각적인 기술(記述)을 통해 서술해낸 것이다. 이를테면 프롤로그 이후 ‘3개월 전, 고2 겨울방학’으로 시간이 점핑하여 속초여행의 끄트머리로 향하는 플롯은 저들의 존재와 앞날을 암시하는 한 신을 제시한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 태훈과 미정은 각각 흰색 콘크리트 기둥과 쇠기둥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다. 쓰레기통에 담배를 비벼 끄고 프레임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태훈을 카메라가 따르는 동안 미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를 외면하는 자세로 선다. 짙은 그림자가 잠식한 프레임 뒤편에서, 숨겨져 있던 쇠기둥들을 걸치고 태훈은 한 사내에게 “서울에서 올라왔는데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여비를 구걸한다. 태훈은 서울로 돌아가 계좌로 빌린 돈을 붙여드리겠다고 청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 사내는 돈이 없다며 거절한다. 곤란한 표정의 태훈이 대합실 입구에서 안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미정은 그가 다음 상대를 골라 프레임 왼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다시 바닥으로 고개를 떨군다. 태훈은 일군의 젊은 여행자들에게 같은 요청을 하지만 용건이 끝나기도 전에 냉랭한 거절의 답을 듣는다. 다시 프레임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대합실에서 나오는 중년의 여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할 때 상황이 반전된다. 태훈의 기색을 살피던 여인은 “얼굴이 아주 심각하구만”이라고 관심을 보이더니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는 듯, “붙여준단 소리 하는 학생은 또 처음 보네, 인상이 좋아서 꿔주는 거야”라며 지갑을 연다. 구제의 가능성이 보이자 “도착하는 대로 꼭 붙여드릴게요”라고 다짐하듯 말하는 태훈에게 이 구원자는 “믿어보는 거지 뭐, 진짜 줄래나 안 줄래나”라고 혼잣말을 한다. 태훈의 이동 경로를 따라 프레임 앞으로 슬그머니 이동한 미정은 콘크리트 기둥 뒤에서 태훈과 여인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관객의 관점을 공유한다. 물경 2분 20여 초 간 지속하는 기나긴 이동 쇼트는 불안한 구도와 기우뚱한 자세로 선 소년 소녀의 현재와 앞날에 대한 적확한 묘사이다. 호의를 보인 구원자의 바람과 달리 태훈이 빌린 돈을 돌려주었을 가능성은 없다. 태훈에게는 서울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여비가 있었으나 다만 초코바와 우동을 사 먹을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 가벼운 배신의 삽화는 다소간 약삭빠른 태훈의 성격을 암시하는데, 이와 같은 캐릭터의 일관성은 PC방에서 마주친 건달들을 속이려다 숨겨둔 돈과 신발을 모두 빼앗기고 린치까지 당하는 장면(이 신은 마치 선의의 구원자를 배신한 이전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보인다)에서 섬세하게 유지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태훈의 움직임과 그를 완전히 외면하지도 가담하지도 못하는 미정의 제스처를 한 호흡으로 담아낸 롱테이크 쇼트는 이후에 진행될 서사의 궤적을 지시한다. 저들은 이 즉흥적인 바다 여행을 빌미로 강제로 이별하게 될 운명이다. 소년은 변덕이 있고, 즉흥적이며, 괴팍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비해 소녀는 주변을 의식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소년은 둘의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착을 보이지만 소녀는 이미 결단을 내리고 그를 외면한다. 태훈은 새로운 관계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미정의 침실 창문을 두드리거나 은밀하게 뒤를 밟아 알아둔 학원을 찾아가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진다. 태훈의 불쾌한 행동과 그를 더 보고 싶지 않다는 미정의 절교 선언은 겨울 바다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이미 예견된 바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두 사람의 선택은 미세하게 갈라지게 된다. 표면적인 이야기 너머를 향하면서 영화의 의미맥락을 풍부하게 하는 영화적 묘사의 힘은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보여주는 후속 신에서도 드러난다. 자식들의 일탈을 눈치챈 미정의 부모가 태훈과 그의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장면이다. 얼마간 거들먹거리는 성격을 가진 미정의 아버지(최효상)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두 아이에게 각자의 행적을 적게 하고 서로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는가를 확인하려 한다. 범죄 조서를 꾸미듯 하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저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 스토리를 적어 냈을 때 미정의 아버지가 갑자기 이성을 잃고 발목에서 칼을 꺼내 나무 탁자 위에 꽂는다. 핸드헬드 쇼트는 극도의 혼란을 전달하고, 점프 컷은 미정의 뺨을 때리고 골프채로 장식장 유리를 부수는 아버지의 광란의 퍼포먼스를 단속적으로 보여준다. 태훈을 향한 아버지의 욕지기는 별안간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괴성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텔레비전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연결된 것임이 밝혀진다. 상이한 타임 라인을 잇는 사운드의 연결 패턴은 이후에도 반복될 것이다. <회오리 바람>의 특이점은 소년, 소녀가 그해 겨울의 체험을 겪어야 했던 이전의 상황이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에 내재해 있는 회귀적인 지향성에 근거하여 그들을 둘러싼 주변이나 세계와의 접점을 공유하지 못한 상태로 표랑하는 열여덟의 특성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외 상황, 캐릭터, 서사를 전달하는 연출의 스타일 전략, 디테일은 잘 조율되어 있으며 디지털 영화 제작의 가능성이 만개하던 시절 DV 캠으로 촬영한 이미지의 생생함, 시간과 주의를 낭비하지 않는 촬영, 섬세한 연기의 세트피스를 보여준다. 빈번한 롱테이크는 나른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기여하고 상당한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세부 묘사는 반항심에 찌든 십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한 바람의 이미지, 텍스처는 거칠지만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기 때문에 미성숙한 시절에 관한 이 가슴 아픈 이야기의 무드와 잘 어울린다. 중국 음식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태훈의 오토바이가 행인을 친 뒤 급격히 암울해지는 분위기는 텅 빈 겨울 바다를 무대로 들려오는 태훈과 미정의 화면 바깥 대화와 대비를 이룬다. 지나 버린 시절의 격정 안에 영화가 포괄하고자 했던 것은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에서 확실해진다. 험준한 산길과 사막을 걷는 태훈이 모습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방황이 오래 지속될 것임을 말한다. 시간이 다시 점핑하여 ‘3개월 후, 열아홉’이 된 미정은 진즉에 상실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체육관 벤치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목엔 태훈이 준 목걸이가 매달려 있다. 얼마 후 부드러운 파도 소리가 들리더니 바닷바람을 맞은 듯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두 사람의 미래가 완전히 암울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시간은 겨울 바닷가 여행이 시작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바람의 이미지는 백사장을 덮은 눈밭 위에 발자국을 내며 태훈이 움직일 때 매섭게 부는 바람의 사운드로 이어진다. 미정 역시 태훈과 마찬가지로 잘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다. 주유소, 터미널, 미정의 집, 바닷가 눈밭에서의 움직임과 정지, 동요는 영화가 묘사하고자 한 ‘바람’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낸다. 바람은 마음을 설레게 하고, 광기를 부리고, 차분하고, 들떠 있고, 안정을 주고, 불안하고, 차갑고, 따스하다. 정제되지 않은 시간과 존재를 흔드는 바람의 색깔은 열여덟의 고뇌와 황홀경, 삶의 혹독함을 이기는 기억을 생생하게 회상하는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6.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1980년대 에로티시즘 영화의 ‘정전’(canon)이라면 < 애마부인 >( 정인엽 , 1982)과 < 산딸기 >( 김수형 , 1982)에서 시작해 < 어우동 >( 이장호 , 1985)과 < 변강쇠 >( 엄종선 , 1986)를 거쳐 < 매춘 >( 유진선 , 1988)에 이르는 계보일 것이다. 당대 상업영화의 트렌드였던 이 작품들은 불륜 멜로드라마, 궁중 사극, 문예 영화, 호스티스 영화 등 한국영화의 장르적 전통을 변형시키며 그 위에 에로티시즘이라는 ‘시대정신’과 여배우를 토대로 한 스타 시스템을 결합시켜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정전의 뒷길엔 ‘외전’의 계보도 존재한다. < 반노 >( 이영실 , 1982)와 < 빨간 앵두 >( 박호태 , 1982)에서 시작해 < 색깔 있는 남자 >( 김성수 , 1985)와 < 사방지 >( 송경식 , 1988)를 경유해 이후 에로 비디오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일종의 ‘B 무비’의 전통이었다. 이 영화들은 ‘에로 정전’들이 지닌 보수적 이데올로기와 나름의 엄숙주의를 파괴한다. 이질적 요소들이 결합되고 내러티브는 불균질적으로 전개되며, 때론 급진적인 테마를 관객에게 갑작스레 들이밀어 당황스럽게 만드는 영화. 지금 소개할 <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 >( 박용준 , 1985)(이하 <서탱고>)는 그 전형이다. 사건은 1박 2일 동안 일어난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가정주부 한수진( 오수비 )은 서울에서 남편의 전화를 받는다. 수진의 남편인 신 박사( 김동현 )는 저명한 가정 문제 전문가. 세미나 때문에 부산에 내려간 그는 아내에게 내려오라고 한다. 오랜만에 바닷가에서 데이트를 즐기자는 제안이다. 경부선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협( 유승무 )이라는 청년은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데, 이후 부산에서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조우한다. 남편은 강연과 방송 출연 등으로 너무 바쁘다. 환영 리셉션 자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새벽에 겨우 숙소로 들어올 정도다. 홀로 남겨진 수진. 여기저기 다녀 보지만, 그 누구도 외로움을 채워주진 못한다. < 서탱고 >가 특별한 건, 이 영화 속엔 1980년대 에로 영화의 굵직한 관습들이 심하게 과장된 방식으로 뒤엉켜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여주인공을 둘러싼 폭력의 시선이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범죄 스릴러가 연상될 정도로 공포스럽다. 수진은 대형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데, 이때 바바리코트에 마스크를 쓴 남자( 배수천 . 이하 ‘마스크 맨’)가 갑자기 그녀를 공격한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수진이 대학생 시절 때부터 쫓아다니던 스토커였다. 영화엔 여러 차례 플래시백으로 마스크 맨과 수진의 과거 장면이 삽입되어, 그녀의 삶 자체가 ‘강간 공포’라는 트라우마로 점철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열차에서 우연히 만나 부산에서 여러 차례 마주치는 청년 협은 수진을 지켜주는 인물처럼 보인다. 수진이 외로울 때나 위험에 처할 때 항상 그는 나타난다. 하지만 그 역시 호시탐탐 수진의 육체를 노린다는 점에서 마스크 맨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 이외에도 해운대의 천막 나이트에서 수진을 바라보던 남자들의 음험한 눈빛이나, 술에 취해 수진의 숙소에 난입해 그녀를 범하려 했던 남자처럼, 그녀 주위엔 항상 남성의 거친 시선이 존재한다. ‘성-폭력’을 동력 삼아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 에로 영화의 민낯은 <서탱고>의 중심 내러티브를 이룬다. < 서탱고 >가 따르는 또 하나의 장르적 관습은 여성의 욕망에 대한 분열증적 표현이다. 1980년대 한국 에로 영화들은 여성의 욕망이 일단 억눌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 애마 부인 >은 선구자적인 영화일 텐데, <서탱고>는 이 전통을 한층 더 기괴한 방식으로 확장한다. 대표적인 장면은 마스터베이션 신이다. 숙소에서 남편만 기다리던 수진의 외로움은 급기야 분노로 변한다. 그녀는 갑자기 숙소를 뛰쳐나와 해변의 숲속으로 뛰어간다. 그녀는 이곳에서 그네 타는 소녀를 발견한다. 소녀는 수진에게, 자신의 엄마는 죽었으며 그네는 아빠가 만들어 주었다고 말한다. 수진은 그네를 타다가 숲속에서 섹스를 나누는 젊은 커플을 우연히 목격한다. 그녀는 다시 뛰기 시작해 아무도 없는 백사장에 도착한다. 그곳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수진. 그녀는 ‘무릎과 무릎 사이’로 밀려드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황홀경에 빠진다. 그 흐름을 따르면, 해소되지 못한 욕정,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 격렬한 섹스에 대한 열망 등이 (< 서탱고 >의 명장면 중 하나인) ‘파도 마스터베이션’ 신으로 마무리되는 셈이다. 실험영화에 가까운 매우 격한 방식의 장면 연결이다. 특히 이 대목에서 밤 장면과 낮 장면은 무질서하게 배열된다(갑자기 낮에서 밤이 되고, 그러다가 낮으로 이어진다). 물론 촬영 과정에서 생긴 실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시퀀스의 급진적인 플롯 구성은 이 영화의 스토리가 마치 여주인공의 의식(욕망)의 흐름에 의해 전개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자의 억눌린 욕망에 대한 테마는, 자연스레 남성 캐릭터가 지닌 모순으로 이어진다. 1980년대 에로 영화에서 묘사되는 부부 관계의 대전제는, 부부 사이에선 절대로 성욕이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대부분 성불구이거나 먼 곳에 있거나 섹스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우연히 만난 젊은 남자’가 차지한다(이것은 < 애마 부인 >이 세운 전통으로, 애마( 안소영 )의 남편( 임동진 )은 교도소에 있고 그 자리를 미술학도 동엽( 하재영 )이 채우는데, < 서탱고 >에선 ‘협’이 그 역할을 한다). < 서탱고 >의 신 박사와 수진은 섹스리스 커플인데, 남편은 아내의 과거가 불결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영화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남편을 가정 문제 전문가로 설정한다. 그는 TV에 출연해 말한다.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건 신뢰입니다. 결혼 전에 일어났던 일은 서로 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성 문제에선 여자보다 좁쌀스러운 게 남자요.” 그러면서 과거에 마스크 맨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고백할 것을 강요한다. 의처증에 걸린 가정 문제 상담가라는 극단적 모순 상황. 이것은 당시 에로 영화가 지녔던 남성 중심적인 보수 이데올로기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 서탱고 >는 당대 한국영화의 트렌드를 한껏 과장하고 뒤틀며 계승한다. < 애마부인 >의 틀을 가져와 그 안에서 < 무릎과 무릎 사이 >( 이장호 , 1984)의 강간 모티프를 변형시키고, < 애마부인 2 >( 정인엽 , 1984)의 히로인 오수비 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러면서 외국 영화의 섹슈얼 코드들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접합시킨다. 내용상 전혀 상관이 없으면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72)를 차용한 제목은 어쩌면 1990년대 이후 성인 비디오 시장을 휩쓰는 ‘제목 패러디’의 효시다(게다가 <서탱고>의 무대는 서울이 아니라 부산이다). 남편이 면도할 때 옆에서 샤워하는 아내를 한 프레임에 담은 장면은 < 드레스드 투 킬 >(브라이언 드 팔머, 1984)에서 가져왔다. 이런 이질성은 <서탱고>를 더욱 불균질적 텍스트로 만든다. 특히 <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메어 자르치, 1979)를 가져온 엔딩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지점이다. 마스크 맨 역할을 맡은 배수천 은 이두용 감독의 ‘발차기 액션’ 영화의 악역으로 유명한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 길이 남을 사이코 연기를 보여준다. “너를 가질 수 있다면 내 인생의 막을 내려도 좋아.” < 서탱고 >의 엔딩은 마스크 맨의 이 대사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협과 처음이자 마지막 정사를 나눈 후, 수진은 숲속으로 달려간다. 그곳 그네에선 마스크 맨이 기다린다. 과거 같았으면 겁에 질렸을 수진은 담담하게 옷을 벗고 그를 받아들인다. 마스크 맨도 마스크를 벗고, 드디어 스토커가 아닌 ‘남자’로서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절정에 오르기 직전의 순간, 그녀는 그넷줄을 올가미로 만들어 마스크 맨의 목에 걸고 마치 교수형 집행자처럼 남자를 나무에 매단다. 욕망에 억눌렀던 수진은 자신의 육체를 무기로 남자에게 복수한다. 하지만 반전과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찰에게 체포되어 수갑을 차고 있는 수진 앞에 남편이 나타나자, 그녀는 말한다. “난 댁을 모릅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난 댁의 여자가 아닙니다. 남의 여자입니다.” 그리고 신 박사에게 싸늘한 시선을 날린다. 이 시선엔 그녀를 욕정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수많은 남성들의 시선을 단번에 뒤엎는 서늘함이 있다. 그리고 이 전복성은 < 애마부인 2 >에서 오수비가 남편에게 했던 대사를 환기시킨다. “이제 난 누구와도 사랑할 수 있어요.” 사실 < 서탱고 >는 ‘한국영화 걸작선’이라는 코너 제목에 어울리는 영화는 아니다. 컬트나 괴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영화?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장황하게 소개한 건, 이 영화를 통해 당대 한국영화가 지닌 분열증의 극단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박용준 감독은 오혜림을 내세워 < 서울의 탱고 >(1986)를 만들었고 <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 2 >(1992)로 ‘탱고 3부작’을 완성했으나 전편의 충격을 넘어서진 못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경이로움을 안기는 체험이 있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았을 때 시간이 빨려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아직 사진으로밖에 접하지 못했지만 핀란드의 청록색 오로라나 남태평양 어딘가의 투명한 바다를 접한다면 그때와 같은 황홀경에 빠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품고 산다. 압도적인 이미지는 때론 그것만으로 세계를 완성한다. 미카엘 두독 데 비트의 < 붉은 거북 >은 아마도 그와 유사한 체험을 지향하는 애니메이션일 것이다. 우리는 대개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즐긴다. 반면 숫자가 많진 않지만 움직임과 이미지라는 본질에 좀 더 몰두하는 작품들도 있다. 시적이고 서정적인 움직임에 집중하는 애니메이터 중 한 사람인 미카엘 두독 데 비트는 이미 여러 차례 대사 없는 단편을 선보이며 평단을 놀라게 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2000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아버지와 딸>은 한 편의 영상시라 할 만하다. 이 작품은 충분한 여백과 온화한 조형미, 움직임의 마술을 통해 언어가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매우 구체적인 형태로 ‘그려’나간다. 미카엘 감독의 스타일은 단순 명확하다. 목소리와 대사를 지우고 확보된 여백을 관객의 상상력과 공감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미지로 표현한다’는 애니메이션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영상시인 마이클 두독 데 비트의 첫 번째 장편 < 붉은 거북 >은 지브리 스튜디오와의 협업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한껏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단편의 성취엔 미치지 못했고 흥행 면에서는 참패했다. 이유야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대사 없이 진행되는 만큼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단편의 뛰어난 영상미학과 시적인 운율도 8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홍보에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름을 끌어들인 것도 패착 중 하나인데 명백한 미카엘 두독 데 비트의 연장에 있는 작품임에도 지브리라는 거대한 기대치가 도리어 이질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실제로 타카하타 이사오가 프로듀서를 맡은 걸 제외하면 대부분 프랑스 애니메이터들이 작업을 했으며 수채화 풍이라곤 하지만 CG를 적극 활용한 만큼 지브리의 색감, 질감과는 거리가 있다. < 붉은 거북 >은 놀랄만한 역작이라고 말하기엔 분명 약점이 꽤 많은 작품이다. 미카엘 두독 데 비트의 시적인 감각이 장편의 호흡으로 거듭나는 걸 기대했지만 새로운 영감보다는 늘어지는 쪽에 가깝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을 적극적으로 변명하고 옹호하고 싶다. 단지 미카엘 감독이 추구하는 애니메이션의 방향성, 움직임 조형, 압축과 상징을 통한 표현에 찬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극장을 나선 이후로도 가슴 속에 꽤 오래 남는 어떤 것을 확실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무인도에 표류하고 번번이 탈출에 실패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섬에 나타난 신비한 여인을 만나 변화를 겪게 되는 이야기 자체는 별다를 것 없다. 아마도 누군가 이 작품의 교훈과 메시지를 묻는다면 거대한 자연 속에서 순환하는 삶의 흐름, 고요함 가운데 빛바래지 않는 삶의 의지 등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 맞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남자의 모습과 그런 남자를 아랑곳하지 않는 듯 펼쳐져는 섬의 영롱한 풍광은 둘 다 아름답다. 대사 한마디 없이 남자의 행동을 원경으로 잡아낸 화면들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 자연과 인간, 양쪽 모두라는 점을 새삼 상기시킨다. 사실 이와 같은 이야기나 주제의식은 이미 익숙하고 식상하다. 중요한 건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인데, 말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의 감흥을 그려내는 빼어난 이미지와 음악이야말로 < 붉은 거북 >의 핵심이자 모든 것이다. < 붉은 거북 >은 단 한 장면으로 마음을 뺏기는 순간들로 충만하다. 대나무 숲의 푸른 빛깔, 수면 아래까지 맑게 비치는 드넓은 바닷속 풍경, 해 질 무렵의 구름떼, 적막한 밤하늘 등등 어느 순간 어떤 화면에 마음을 빼앗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나의 부족한 어휘력이 안타까울 만큼 마음을 흔드는 순간과 이미지들로 빼곡하다는 것이다. 시간이 멈춘 듯, 아니 멈춘 채 계속 머물고 싶은 풍광들. 때론 아름다운 건 그저 아름다운 거로 충분하다. 물론 장편의 이야기와 호흡을 생각하면 마이클 두독 데 비트의 시도가 실패로 기록될 수도 있다. 하지만 80분간 어떤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들어간 극장에서 이야기를 넘어선 이미지를 접했을 때 당신은 또 다른 가능성의 목격자가 될 것이다. <붉은 거북>이 아쉬운 실패가 아닌 의미 있는 도전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