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시지프스: 네팔 포터 이야기
- 감독
- 황준성
- 제작년도
- 2017
‘바라카’는 아랍어로 축복을 뜻하는 단어이자 이슬람교에서 신의 힘이 깃든 거룩한 상태, 혹은 영적인 선물이나 삶의 본질을 일컫는다. 모슬렘들은 알라가 선택한 자에게 바라카를 부여하고, 바라카를 받은 사람이 스쳐 지나간 곳이나 그가 만진 물건, 그의 자손 등에도 바라카가 깃든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도 그 바라카를 받기 위해 이를 많이 지닌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제목이 가진 의미처럼 론 프릭크 감독의 다큐멘터리 < 바라카 >는 거룩하고 장엄한 삶의 선물이자 성스러운 체험이다. 14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5명의 스태프들이 오대륙 24개국 152개의 장소를 돌며 촬영한 영상은 일상적이지만 동시에 일탈적이고 경외감을 갖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하다. 어떠한 편견이나 계몽적인 설명 없이 담백한 시선으로 세상의 본질과 생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고 성찰하려 한다. 거기에는 단 하나의 내레이션이나 그 흔한 자막도 없다. 그저 유려한 영상과 음악만으로 지구 상에 살고 있는 인간과 환경에 대해 스케치한다. 때론 경이롭고, 때론 무서우며, 때론 아름답고 잔인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교차하고 비교하고 대조하며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 자연과 문명에 대해 깊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Koyaanisqatsi <바라카>는 사실 고드프리 레지오 감독의 혁신적인 다큐멘터리 < 코야니스카시 >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론 프릭크 감독이 <코야니스콰시>의 촬영감독이자 공동편집자 겸 공동작가 출신이고, 또 대사나 설명, 내러티브와 캐릭터 없이 오로지 영상과 음악의 힘으로만 하나의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한다는 형식적인 부분이 <코야니스콰시>와 닮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아방가르드한 실험영화들에서 흔히 보았던 특징이지만, <코야니스콰시>는 뚜렷한 메시지에 정신적 자극과 시각적 교란, 청각적 매력의 삼박자를 완벽하게 조화시키며 대중들에게 높은 호응과 폭넓은 교감을 얻어냈다. 론 프릭크는 선동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콰시’ 시리즈에서 벗어나 보다 자연스럽고 순수한 세상을 담아보고자 했는데, 촬영감독 출신이란 이점을 살려 기술적인 극대화도 함께 꿈꾸었다. <바라카>는 그런 욕구가 200% 반영된 자연 다큐멘터리의 역작으로, 압도적인 영상을 위해 <라스트 밸리> 이후 20년간 촬영된 적이 없는 70mm Todd AO 필름으로 촬영되었으며, 8K 고해상도로 스캔 받은 결과물로 후반 작업을 진행해 더없이 맑고 깨끗한 극강의 화질을 자랑하고 있다. 거기에 <코야니스콰시>에서 일부 사용되었던 슬로우 모션이나 타임랩스 기법도 본격적으로 사용하며 흔히 볼 수 없는 장관을 연출해냈다. Baraka 물론 분위기를 좌우하는 건 전적으로 음악의 몫이다. 그 어떤 설명이나 정보가 없기에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제시되는 언더스코어는 가장 쉬운 힌트이자 핵심 메시지가 된다. 그러나 <코야니스콰시>에서 미니멀하지만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필립 글래스와 달리 마이클 스턴스가 맡은 음악은 필요 이상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대부분 정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에 집중하며 때론 음향 효과와 비슷한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 뉴에이지와 (엠비언트 음악의 한 갈래인) 스페이스 뮤직에서 활약한 바 있는 스턴스는 이런 색다른 공간감과 철학, 사유, 명상 등이 어우러지는 사운드스케이프에 최적화되어 있기에 흔히들 명상음악이라고 하는 고고하고 평안한 상태를 충실하게 구현해낸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자연 세계의 원음들을 이용해 코스믹사운드를 창작했던 그는 자연에 동화된 고요와 평정을 통해 론 프릭크 감독이 의도했던 순수함에 가까이 다가간다. 자신이 작곡한 곡들 외에 다양한 뮤지션들의 연주와 직접 채집한 제 3세계의 민속 소리를 결합시켜 월드뮤직의 방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필립 글래스가 중독적이고 주술적인 음악으로 적극적으로 메시지에 관여한 것과 달리 마이클 스턴스는 한발 뒤로 물러나 자유롭고 넓은 어울림을 통해 종교적인 체험과 영적인 기시감을 전달하는데 주력한다. 음악이 주는 카리스마는 고드프리 레지오의 다큐들에 비해 덜하지만 자연주의적인 색채의 사운드가 던지는 경건함과 심오한 스펙트럼은 론 프릭크의 초월적이고 철학적인 주제와 잘 부합하고 있다. 더욱이 여러 아티스트의 참여로 조율된 탄탄하고 압도적인 위용은 스펙터클한 영상의 묵직한 울림과 맞먹는다. 호주 출신의 다크웨이브 듀오 ‘데드 캔 댄스’뿐만 아니라 일본의 현대음악가 사토 소메이와 존경받는 사쿠하치 연주자 미야타 코하치로, 안데스 전통 음악을 들려주는 그룹 ‘인쿠요’와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전통 남성합창 ‘케챠’, 인도의 유명한 카르나틱 음악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 L. 수브라마니암, 그리고 독일 출신의 샤머니즘 음악 연주자 ‘아누가마’ 등 전 세계를 어우르는 그들은 각각 뚜렷한 색채감으로 풍성하고 강렬한 지장을 남긴다. 영화상에선 하나의 흐름처럼 음악이 쓰이고 있지만, 사실 <바라카>의 트랙 구분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곡들에 따라 소주제가 생성되고, 몽타주를 이루며, 느슨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잡아내기 때문이다. 사운드트랙은 곡이 순서대로 실리지 않아 트랙별로 나눠진 영상의 챕터를 구분할 수 있으며, 이를 유념해 살펴보면 좀 더 <바라카>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 Baraka 히말라야 설산의 아찔한 절경을 사쿠하치로 그려내는 ‘Opening/Nepal Morning’을 필두로 가난과 빈곤에 대한 몽타주 위로 그 특유의 처연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리사 제라드의 ‘The Host of Seraphim’과 환경파괴와 전쟁터, 아우슈비츠와 킬링필드의 만행 등 인간의 이기적이고 무신경하며 잔인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일 때 쓰인 ‘Broken Vows/A Prayer Of Kala Rupa/An Daorach Bheac’, 중국 진시황의 무덤과 이집트의 피라미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 갠지스 강의 화장터로 이어지며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서글픈 구음의 ‘Rainbow Voice’ 등 탁월한 선곡과 배치는 영상이 가진 힘을 더욱 증폭시킨다. 특히나 100~200명이 대여섯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져서 각각 다른 리듬을 제창하는 남성합창 ‘Kecak’는 혼란스러우면서도 박력 넘치는 울림을 선사하는데, 지휘자는 없지만 한 명이 ‘슈룰루 푼 푼 푼’ 4박자를 치면서 속도나 강약을 통제하는 게 가히 일품이다. 본래는 역병 평유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춤의 반주로 입신상태의 춤추는 자를 둘러싸면서 몸을 좌우로 흔들고 반 망아 상태로 절규하는 몸짓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 외 도심지의 일상과 대량생산 과정 등을 타임랩스 기법으로 촬영해 현란하고 아찔한 영상을 보여주는 ‘African Journey’가 백미로 스피디하고 규칙적인 영상이 토속적이고 전위적인 리듬과 만나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만든다. Samsara 이후 론 프릭크 감독은 2012년 같은 제작진을 모아 20년 만에 <바라카>의 속편 <삼사라>를 내놓았다. 역시 오대륙 25개국을 돌아다니며 3대의 70mm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은 압도적인 황홀경과 경건하지만 의미심장한 체험을 안겨준다. 그 속에선 여전히 동물과 인간, 불교와 기독교, 이슬람과 유대교, 문명과 원시, 도시와 자연, 시간과 공간 등이 싸우고 충돌하며, 역사와 정신, 의미와 감정이 교차하며 영원과 근원에 대한 하나의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해 묻는다. 그에 대한 답이 될 순 없지만 마이클 스턴스의 치유와 공감의 음악은 새로운 빛이자 구원의 팡파르가 될 것이다. Opening/Nepal Morning Track List 1. Opening/Nepal Morning 2. Organics 3. Kecak 4. Wipala 5. The Host of Seraphim 6. Village Dance 7. Varanasi Sunrise 8. African Journey 9. Rainbow Voice 10. Monk with Bell 11. Broken Vow/A Prayer of Kala Rupa/An Daorach Bheac 12. Finale 13. End Credits
어느 순간부터 김응수 의 영화는 여행 없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때로는 영화촬영 작업이 여행을 위한 구실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사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실제로 그가 여행을 떠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불현듯 그의 영화작업이 시작되어 버리곤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데뷔작 <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1996)에서 < 달려라 장미 >(2005)까지만 해도 분명하지 않았던 여행의 모티브는 별안간 < 천상고원 >(2006)에서부터 노골적으로 그의 영화를 구성하는 틀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사라진 여인의 흔적을 찾아 라다크로 향하는 K라는 사내의 여정을 좇는 로드무비 <천상고원>, 1980년대 학생운동의 기억 주위를 맴돌면서 서울과 남도를 오가는 다큐멘터리 < >(2007), 어머니가 남긴 그림 속의 풍경을 찾아가는 한 청년의 여정을 실험적인 방식으로 담아낸 에세이영화 < 물의 기원 >(2009) 그리고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논쟁적 저서 <요코 이야기>에 묘사된 여정을 따라 일본으로 향한 신작 다큐멘터리(현재 후반작업 중)에 이르기까지, 여행은 김응수 영화의 출발점인 동시에 그것이 그려내는 영화적 탐구의 형상이 되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여행은 언제나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여행으로서 시작되긴 하지만, 흥미롭게도 다른 무엇(들)의 개입에 의해 그 여행의 경로가 어김없이 뒤틀리거나 산란되고 만다. 이는 김응수 영화에서의 여행이란 실은 노정을 일종의 접촉지대(contact zone)로 만듦으로써 여러 우연적 사건들이 안으로 흘러들어와 노정 자체를 변형시키는 과정을 보기 위한 형식임을 드러낸다. 그의 영화 촬영(여행) 중 종종 발생하는 이 변형과정은 고스란히 그의 영화에도 반영된다. <천상고원>에서 (감독 자신이 연기한) K라는 인물이 사라진 여인의 흔적을 찾는 과정은 히말라야의 험한 산길을 오르는 동안 감독이 실제로 겪은 물리적 고통의 기록들로 대체된다. 또한 주인공 K는 비단 허구의 인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감독(K`)과 그 둘이 융합된 복합체(K―K`) 사이를 오간다. 결말부에 이르면 감독 자신이 몇 년 전 라다크를 방문했을 때 촬영한 사진을 그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담은 장면들을 보여주는데, 이 장면들이 영화 안에서 K의 여정의 끝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인지, K`의 촬영현장의 메이킹 필름으로서 갑작스레 끼어든 것인지, 아니면 이 둘 모두인지는 사실 분명치 않다. 확실한 것은 과거(사라진 여인)에 대한 탐색으로 시작되었던 영화가 여기서는 철저히 현재적인 순간의 생생함과 활력을 전달하는 쪽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 길을 돌아온 김응수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의 내성적인 회고의 태도(오래 지속되는 과거 안에 머물기)와 단호히 결별하고 그 어떤 감상도 없이 현재의 강렬함으로 과거와 맞서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부터다. <천상고원>에서 그가 감행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과거를 낯선 것으로서 재발견(<과거는 낯선 나라다>와 그 이후)하기 위한 여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1977 >는 임정규 의 감독 데뷔작이다. 이 작품의 시나리오에 의하면, 1973년부터 장장 4년간 매일매일 방송되던 MBC 라디오 어린이 연속극을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든 것이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 로보트 태권V-수중특공대,1977 >보다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이하 마루치 아라치)>는 근대의 산업화를 통해 인간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기계문명의 잘못된 사용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 <마루치 아라치>가 개봉된 1970년대는 우리나라에서도 경제개발계획이 진행되면서 산업화가 고조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우려들이 예술작품과 산업계에서 전망되고 있었다. < 마루치 아라치 >는 SF(Science Fiction)물이다. SF영화는 신화, 전설, 민담에서 소재를 구하기도 하지만 주요 대상은 과학기술문명이다. 장르 전체로 볼 때, SF는 테크놀로지에 대하여 두 가지의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 첫째는 과학기술이 궁극적으로 문명의 진보를 보장할 것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과학기술이 지닌 파괴적인 측면을 경고하는 것이다. 상반되는 두 가지 입장임에도 SF영화들은 두 가지로 확연히 구분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SF영화의 이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은 흔히 영화 속에서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며, 때로는 내러티브가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입장과 텍스트의 심층적 의미가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임정규 의 작품 중에 두 번째 경향을 대표하는 < 마루치 아라치 >는 산업사회를 기계와 신체의 대립이라는 문제로 부각시켜 과학기술의 파괴적 측면을 드러낸다. 영화 < 블레이드 러너 >나 < 아키라 >에서 보듯이 SF가 보편적으로 미래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의 징후를 포착해 내듯, 그는 기계문명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1969년 7월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와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남긴 인상은 강렬했다. 이후 1975년 7월, 아폴로-소유즈의 우주도킹은 실사영화계에서도 공상과학물이 쏟아져 나오는 계기를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점차 발전하는 기계문명에 대한 전망을 내놓고 있었다. 이런 전망들은 영화계에도 마찬가지이어서 당시 최고 흥행영화였던 <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1977 >, < 007 문레이커 (007Moonraker), 1979 >나 < 스타워즈(Star Wars), 1977 >시리즈는 미래 문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어쨌든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1973년부터 시작된 MBC 라디오의 어린이 연속극 <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의 인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는 태권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 국제대회가 개최되면서 사회적 붐이 일어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또한 라디오극 <마루치 아라치>와 ‘경기(競技) 태권도’의 인기는 태권도를 소재로 <마루치 아라치>와 < 로보트태권V , 1967 >의 제작으로도 이어졌다. < 마루치 아라치 > 라디오 연속극의 원안은 김진희가 썼고, 각본을 민병권 이 맡았다. 그리고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는 민병권의 각본을 송길한 이 각색하였다. 그러나 실제 애니메이션 영화는 임정규 감독이 스토리보드 작업을 하며 대폭 뜯어 고쳤다. 원작이 라디오 극본이다 보니, 작품의 곳곳에 영상적인 장면보다는 설명적인 장면들이 너무 많아 시나리오를 그대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스토리와 캐릭터의 설정에서 많은 부분 수정되었다. 1977년 7월 27일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마루치 아라치>는 당시 세계태권도대회 등 태권도 붐이 일었던 시대적 분위기와 원작 방송의 인기에 힘입어 먼저 개봉한 < 로보트태권V >보다 크게 성공한다. < 마루치 아라치 >의 제작은 당시 일고 있던 태권도의 열풍 때문이었다. 1970년대는 우리 것에 대한 긍지와 주체성을 살리자는 의식이 높았던 시기로 민족문화를 재인식하고 재발견하여 보존하자는 정부정책의 하나로 태권도를 알리는데 노력하던 시기였다. 이런 노력으로 해외에서 태권도 연맹과 협회가 설립되었다. 이어 이들을 초청하는 태권도 국제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면서 국민들에게 우리 민족의 우수함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태권도는 세계 속에 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하며 국민적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자랑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이러한 자부심은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서도 드러나 당시 선진 외국에 주눅 들었던 어린이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었다. 실제 < 마루치 아라치 >나 < 로보트태권V >의 작품 속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태권 소년 ‘마루치’와 ‘훈이’는 외국의 선수들을 물리치고 競技 태권도의 영웅으로 그려진다. 이는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통해 유행하던 로봇물과 결합하여 여러 작품을 내놓게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태권도 유단자로 설정되게 하는 전범이 되었다. < 마루치 아라치 >는 우리에게 친근한 태권도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SF장르의 영화이다. <마루치 아라치>는 ‘미래사회’가 아닌 당대(현재)적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공상과학의 세계를 다루면서도 공상과학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당시 유행하던 공상과학물을 탐닉하는 청소년들에게 심신의 단련이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다루고자하는 세계는 파란해골13호로 상징되는 기계문명의 폐해를 없애고, 태권도를 통해 심신을 단련하는 건강하고 밝은 사회를 그리고자 한다. 그래서 기계문명의 폐해를 극복하는 태권도영웅의 탄생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2] 태권도 수련 SF물이 그렇듯 < 마루치 아라치 >도 단순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처음 과거 회상을 통해 복수의 원인을 보여주고 갈등을 설정한다. 이후 장 선생과 양 사범의 도움으로 체계적인 태권도를 배워 파란해골을 추적하여 복수하는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이다. 마루치와 아라치는 복수로 움직이는데, 복수의 원인이 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면 다음과 같다. 파란해골13호와 대결하는 할아버지의 대각선 인물구도와 붉은 색 배경은 불안을 야기 시키고 이를 통해 사건의 위험성을 알려준다. 이를 지켜보는 어린 마루치와 아라치의 배경도 온통 붉은 색으로 처리된다. 결국 쓰러지는 할아버지와 이를 장 선생에게 전하는 마루치의 눈동자 속에는 동굴 속의 모닥불과 겹쳐지면서 복수를 암시한다. [그림 3] 할아버지의 죽음 이 영화의 희생자는 어린 마루치와 아라치를 키우며 무술을 가르친 스승이며 할아버지이다. 그는 영화의 시작 전에 희생당한다. 이처럼 범죄가 스승이면서 가족이기까지 한 인물에 대한 살인이기에 복수는 더 정당화된다. 복수 플롯의 특징은 범죄를 목격하게 만들면 효과가 커지고, 범죄가 끔찍할수록 호응을 얻는다. 관객이 범죄를 목격하여 정서적으로 사건을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강렬할 뿐만 아니라 관객과 희생자 사이에 강한 연대감을 맺어준다. 이를 통해 감정이입을 느끼게 하여, 이 플롯의 중요 목적인 관객과 복수를 하는 주인공 마루치 아라치와 강한 정서적 다리를 놓아준다는 것이다. 관객은 이들이 소개될 때, 첫 시퀀스에서 산속 동물들이 그들의 숙소 앞에 모여드는 것으로서 이들이 동물들과 교감을 나누며 자연을 지키는 정의로운 사람임을 알게 한다. 그래서 이들의 억울함이 관객들에게도 가슴 깊이 억울함을 느끼게 한다. 관객은 이런 끔찍한 분노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완전한 정의가 세워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러한 플롯을 사용할 때에는 정당한 행위와 정당하지 못한 행위가 무엇인지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한편 주인공이 추구하는 방법은 야생의 정의이기 때문에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야기의 핵심에는 마루치와 아라치가 있고, 그들은 어려서부터 무술을 통해 심신을 단련한다. 그들은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태백산에서 자연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자연친화적이고 불의를 참지 못하며 정의감에 불타는 소년소녀이다. 하지만 이들이 하고자 하는 바는, 스승이며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라 인류의 사회악을 물리치는 것이다. 이로서 영화는 갈등이 설정된다. 마루치와 아라치는 스승이기도 했던 할아버지를 갑자기 잃고 행복을 빼앗기게 된다. 그들은 범죄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다. 아직 파란해골에 대적할만한 힘이 없어 물러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파란해골의 범죄를 목격하였기에 복수를 꿈꾼다. 영화는 마루치 아라치와 파란해골 13호, 장 선생과 양 사범 등 캐릭터의 소개와 주요 갈등인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한 복수의 설정, 태권도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스토리의 세계를 13분 30초라는 짤막한 시간에 탁월하게 설정한다. 또한 중간에 드러날 사건까지 촘촘히 직조해 낸다. 장 선생과 양 사범의 권유로 산을 내려온 주인공들이 양 사범으로부터 체계적인 태권도를 수련하면서 본격적으로 복수를 계획한다. 이들의 훈련 장면에 등장하는 테마송을 보면 이들의 훈련이 무엇을 준비하는지 알게 해준다. 복수의 테마송이 나오는 동안 양사범의 지도로 밤낮과 눈비를 가리지 않고 이들의 훈련은 계속된다. 스틸 컷과 애니메이션으로 이들의 발차기, 격파, 날기 등의 태권도 수련과정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그림 4] 복수의 준비 대개 복수의 플롯은 등장인물의 의미 있는 탐색보다는 복수의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마루치와 아라치의 정의는 야생적이며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 그들만 집행하는 정의이지만 이들의 복수는 관객의 정서를 자극한다. 그래서 마루치와 아라치의 복수가 법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다. 이 작품에서는 타깃이 청소년이기 때문인지, 조력자로 경찰인 김 주임이 함께 동행 한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미약하다. 사실 이들은 처음부터 양 사범과 장 선생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복수를 준비하게 된다. 태권도에 타고난 재능을 지닌 마루치는 양 사범의 훈련으로 더욱 기량이 좋아져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되고, 여기서 뛰어난 재능 때문에 파란해골단의 표적이 되어 비수에 크게 다치게 된다. 이로서 복수를 위한 추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파란해골단은 동해 수중공원에서 열리는 ‘세계핵물리학자대회’에서 장 박사를 납치하고, 마루치는 해룡과 싸우다 크게 다쳐 실종되면서 반전이 발생한다. 그러나 실종되었던 마루치를 인어 유리가 구해주고, 마루치는 유리의 도움으로 해골섬을 찾아내지만 복수에는 실패한다. 이렇게 두 번의 실패로 마루치와 파란해골 13호 간에 팽팽한 긴장이 발생하고, 이제 이들의 극적 대결만 남는다. 파란해골이란 캐릭터는 이 영화에 있어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파란해골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연구하던 과학자였지만, 기계문명을 맹신해 자신의 몸을 없애고 해골만 남은 유별난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 심신이 거추장스럽다고 느껴 기계문명에 영혼을 맡긴 인물이다. 그래서 그가 발명한 기계로 부하들을 모두 기계인간으로 개조한다. 파란해골 13호는 인간의 신체를 기계화하는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태백산에서 마루치와 아라치의 할아버지를 죽인 장본인으로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납치하며 설인국을 파괴하려 한다. 최종적으로 그는 핵물리학자인 장 박사를 납치하여 광속으로 나는 우주선을 만들어 지구와 우주를 정복하고자 한다. 이에 반해 기계문명에 대항하는 마루치와 아라치는 태권도 수련으로 심신을 단련한 정의로운 소년소녀이다. 그들은 인류의 악이자 할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며 외곬으로 마지막까지 달려왔다. 그들은 파란해골을 추적했지만 매번 복수의 기회를 놓쳐왔다. [그림 5] 할아버지의 복수 파란해골 13호는 장 박사와 설인국 공주 쏘냐를 볼모로 잡고, 마루치와 대결하지만 마루치와 아라치의 정의의 주먹에 납작코가 된다. 그들의 복수는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건강한 인류사회를 위한 행동이다. 그래서 복수의 원칙으로 처벌은 범죄와 맞먹는다. 심판은 법이 아닌 마루치와 아라치의 주먹으로 이루어진다. 마루치와 아라치는 할아버지의 복수에 성공하고 인류는 평화를 되찾는다. 복수는 파란해골이 기계문명을 맹신하고 잘못 사용한 자이기 때문에 마루치와 아라치는 그들의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정의의 주먹으로만 응징해야 한다. 그래야 파란해골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 될 수 있다. 산 위에서 자연인으로 살던 이들은 야생의 정의를 실천한다. 산위에서 일어나는 할아버지의 죽음도 문명화 되지 않은 야생이다. 이들에게 산은 야생의 공간이며, 문명이 억압하는 것을 표출하는 공간이다. 산위의 공간에 비해 이들이 하산한 도시의 공간은 문명의 공간이다. 그곳은 기계문명이 번성하는 곳으로 파란해골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에서 파란해골과 첫 대면을 하게 된다. 문명의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 바다 속 수중공원이다. 그곳에서 장 박사는 납치되고, 마루치는 실종된다. 하지만 이들이 야생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시 산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들은 문명화되지 않은, 즉 원시가 그대로 보존된 히말라야의 설인국에서 최후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설인 또한 문명과는 거리가 먼 야생이다. 이들은 파란해골이 공주를 인질로 잡고 있어,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마루치와 대결하게 되나, 결국에는 야생의 자연이기에 마루치를 돕게 된다. 영화는 야생의 산 위에서 시작해서 문명화된 도시로 수중공원으로 이동한다. 이는 다시 야생의 공간인 북극기지에서 또 다시 히말라야의 산 속 설인국으로 옮겨 마지막 대결을 벌여 잘못 사용된 기계문명을 무찌름으로써 복수를 완성하는 공간 구조를 보여준다. 이렇게 야생의 정의가 승리함으로써, 작품의 수직적 공간도 플롯에 상징적으로 기여한다. 이렇듯 < 마루치 아라치 >의 이야기 구조는 전형적인 복수의 플롯에 추적 및 구출의 플롯이 가미된 작품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복수의 플롯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 복수의 원인인 파란해골 13호의 할아버지 살해에 대한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시나리오에서는 파란해골 13호가 태백산에 파란해골단의 기지를 짓기 위해 마루치의 부모와 아라치의 부모를 살해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임정규 는 마루치와 아라치를 산속에서 신비한 무술을 배우는 소년 소녀로 그리고자 부모 대신 도사의 면모를 갖춘 할아버지가 파란해골에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복수의 원인을 설정한다. 그리고 팔라팔라 사령관이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마루치를 보고 산에서 보았던 소년이라고 파란해골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의 원한관계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어야 했다. 하나의 완결 구조를 갖는 장편에서 이 같은 실수는 스토리구조상의 약점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복수는 정서적으로 강렬한 플롯을 만들어낸다. 정의를 갈구하는 상황을 창조하여 강력한 정서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마루치와 아라치, 그리고 파란해골 13호로 상징되는 기계문명에 복수하는 < 마루치 아라치 >는 SF물로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핍진성 있게 그려내었고, 이는 관객에게도 정서적으로 영향을 미쳐 공감을 끌어낸 작품이 되었다. SF물이 미래의 불안한 징후를 드러내듯 작품의 극적 긴장은 냉소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임정규 의 < 마루치 아라치 > 속에서 그려지는 것은 대부분 인간과 과학의 평화로운 공존이 아니라 파란해골 13호로 상징되는, 과학이 제어할 수 없는 진보로 인해 파멸해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면서 임정규 작품의 특이한 점은 보통 SF 작품에서 기계를 파괴하려는 인간, 혹은 기계 문명을 전복하려는 인간은, 그것과 싸우기 위해서 기계문명 내지 과학문명을 이용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기계문명이나 과학문명이 아닌 신체를 단련하여 대항한다는 것이다. 특히 과학기술과 인간성의 충돌을 강하게 부각시킴으로써, 테크놀로지의 지배 아래에 있는 세계가 얼마나 황폐하게 변질되고 있는가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로서 임정규는 당대의 현실을 SF로 변주하여 상징화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능력은 이 작품의 시나리오와 그가 감독한 영화의 스토리텔링의 차이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시나리오에서는 파란해골이 전 세계를 귀신병에 들게 하여 지배하려고 하였으나, 그는 당시 고조되고 있던 산업화의 폐해와 두려움으로 스토리의 갈등 구조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루치가 파란해골 13호에게 어떻게 복수를 해나가는가에서 주제의식이 돌출되는데, 이는 당시 시대정신과도 연관되어 있다. 영화는 일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으로 황폐화되었던 1950년대를 지나,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혼란스런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급격한 산업화로 치닫던 1970년대, 인간의 신체를 기계와 결합시키려는 자본주의적 요구에 대항하는 정신적, 신체적 저항을 보여준다. 인류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마루치의 욕망은 그것을 억압한 시대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기계문명의 폐해와 인류평화를 위한 인간의 확고한 정의감을 대립시켜서 인류의 적인 사회악이 기계문명을 교묘히 이용할 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과 기계문명은 어디까지나 인류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가치가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악의 무리가 조종하는 기계를 정의의 주먹으로서 격파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갖춘 인격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