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시티 22
- 감독
- 미르나 파라미타, 유진 팬지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아리오 바유
사샤 기트리가 영화에 도착했다.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샤 기트리는 프랑스영화의 위대한 이름이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시네필들에게 잘 언급되지 않는 이름. 그가 세상을 떠나자 모든 시네아스트들의 연옥(煉獄)의 왕자라고 불린 사람. 오손 웰즈, 알랭 레네, 프랑소와 트뤼포가 한결 같이 찬사를 바쳤던 감독. 아마 나는 이 연재를 하면서 몇 번이고 그를 이 자리에 다시 초대할 것이다. 사사 기트리는 영화가 발명도 되기 전인 1885년 2월 21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연극을 했고, 그래서 태어나서 무대를 바라보면서 자라났다. 5살에 아버지의 극단에서 무대에 데뷔하였고, 그 무대에서 단지 귀여운 소년이 아니라 그가 타고난 연기자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부모는 사샤 기트리가 좋은 교육을 받기 원했지만 16살에 빨리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그는 단지 연기만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다음 희곡을 직접 쓰기 시작했다. 사사 기트리는 자기가 쓴 모든 희곡. 모든 시나리오에 배우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주연으로 배역을 맡았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위해 쓴 대본들. 자신이 쓴 희곡으로 첫 무대에 오른 작품은 <페이지>였다. 1902년 4월 15일 마튀랭스 극단의 공연이었다. 멜리에스의 공상과학영화 <달에로의 여행>이 상영된 해이다. 그런 다음 그는 아버지의 극단인 르네상스 극단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사샤 기트리는 천재적인 연기와 대중적으로 성공한 대본, 그리고 몰리에르의 전통을 이어받은 연출이 파리의 주목을 끌면서 예술가들의 사교계에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하나의 세기가 끝나가면서 새로운 예술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사샤 기트리> 사샤 기트리에게서 희곡 작가이자 무대 연출가로서의 경력의 절정은 아마도 1910년대였을 것이다. 1912년에 <야간 간병인>과 <멋진 결혼식>, <스코틀랜드 순례자>를 한 번에 발표하였다. 그리고 1914년 <두 개의 식탁>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사샤 기트리는 이미 모두가 존경할만한 예술가의 자리에 올랐다. 이상하게도 연극에 몰두하던 사샤 기트리가 어떤 계기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때 연극계의 사람들은 영화가 자신들의 예술을 위협한다고 생각했으며, 대중 관객들을 뺏어가는 적이라고 공격했으며, 애써 영화는 천박한 구경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샤 기트리가 그때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분명히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하나의 가정. 아마도, 아마도 그때 사샤 기트리는 연극무대를 찍은 ‘필름 다르’ 영화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가 보여주는 어떤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 집의 그들 - 클로드 모네> 사샤 기트리는 이상한 영화를 찍었다. 이미 초기 영화의 편집이 하나의 규범이 되었지만 그는 그것을 무시하고 (정확하게 동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그 태도에서) 마치 뤼미에르처럼 영화를 찍었다. 그 영화가 <우리 집의 그들>이다. 두 가지 놀라운 점. 첫 번째, 사샤 가트리는 19세기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자기 카메라 앞에 세웠다. 누구보다도 위대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그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조각을 다듬는다. 인상주의 풍경화의 대가 클로드 모네가 수련 앞에서 자기 캔버스에 무언가를 그리는 중이다. 파리의 풍경을 담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캔버스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그때 그 곁에 아직 21살이었던 그의 아들(이자 훗날의 프랑스 영화의 대가) 장 르누아르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쾌하게 웃는다.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쓴 작가 에드몽 로스탕이 책상 앞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 출연한 20세기 초 프랑스 연극무대의 전설인 사라 베르나르가 편지를 읽는다. <실베스트 보나르의 죄>, <티아스>를 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아나톨 프랑스도 찍었다. <동물사육제>를 쓴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도 볼 수 있다. 사실주의 연극 무대의 창시자인 앙드레 앙토완느를 만날 것이다. 우리들이 그저 사진으로만 알고 있는 이 위대한 이름들이 어떻게 살아 숨 쉬었는지를 알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기록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때 이미 유명했고, 지금 그들은 예술사의 이정표가 되었다. 하지만 사샤 기트리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 영화를 찍은 것 같지는 않다. 두 번째 놀라운 점. 이 영화를 찍으면서 사샤 기트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예외 없이 화면 속의 예술가들, 카메라 앞의 예술가들이 말하는 쇼트를 포함시켰다. 이 영화는 무성영화이고 영화는 아직 소리를 ‘찍을 수’ 없었다. 마치 그걸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집의 그들>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거기서 이 위대한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집의 그들>은 마치 목소리를 들으려면 영화관이 아니라 연극이 상연되는 극장으로 오라고 알려주려는 것처럼 찍은 영화이다. <우리 집의 그들>이 사샤 기트리의 첫 번째 영화이긴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토키영화가 시작된 다음의 일이다. <우리 집의 그들 - 사라 베르나르> 그럼에도 <우리 집의 그들>에 안타까운 심정을 가진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1915년에 공개된 22분 버전을 바탕으로 사샤 기트리가 책상 앞에 앉아서 후시녹음을 하듯이 장면별로 해설을 하고 내용을 설명하는 44분 버전을 1952년에 다시 작업하였다. 물론 그 내용이 정확한 지에 대해서는 사샤 기트리 외에 아무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목소리, 클로드 모네의 목소리, 로댕의 목소리, 생상스의 목소리, 아나톨 프랑스의 목소리(...)이다. <우리 집의 그들>은 한편으로는 기이한 영화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영화이다.
일본에는 B급 영화의 전통이 선명하다. 메이저영화사가 아닌 소규모의 영화사에서 만들어낸 영화들을 주로 칭하지만 불황이었던 1970년대에는 도에이, 니카츠, 신도호 등의 메이저에서도 기묘한 영화들을 양산했다. 이시이 테루오의 <공포기형인간> <망팔무사도>와 스즈키 노미후리의 <도쿠가와 섹스 금지령> <성수 학원> 같은 ‘불량성감도’영화를 만든 도에이가 선두였다. 그중에서도 도에이의 여반장 시리즈와 공포여자고교 시리즈, 사소리 시리즈 등은 ‘핑키 바이올런스’라고 불렀다. ‘불량’ 여자들의 세계를 그린 야하고 폭력적인 영화들이었다. 80년대에 V시네마로 이어진 B급영화의 전통은 지금도 <라이브>와 <데드스시>의 이구치 노보루, <헬 드라이버>와 < V 소녀 대 F 소녀 >의 니시무라 요시히로 등의 감독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미츠다케 쿠란도의 < 건 우먼 >은 일본 B급 영화의 흐름에 놓인 영화다. 벌거벗은 여인이 등장하여 잔인한 살육을 벌인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여성의 팔에 총을 장착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 이블 데드 > 시리즈의 애쉬처럼 팔에 전기톱을 단 소녀가 등장하는 <머신 걸>이라는 영화도 있었고, 팔에 사이코건을 달고 싸우는 우주해적 코브라도 있다. <건 우먼>의 일본 제목은 ‘여체총(女?銃)’이었다. 그런데 여체가 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체에 총을 집어넣는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에서 제임스 우즈가 배에 총을 집어넣는 장면이 있다. 그 몽환적인 장면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이상한 몽상처럼 흘러가는 괴이한 영화가 <건우먼>이다. 재벌의 아들인 하마자키는 수많은 여성을 강간, 살해했다. 그에게 아내를 잃은 의사 마스터마인드는 복수를 하기 위해 인신매매 조직에서 마유미를 데려온다. 마약중독에서 벗어난 마유미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적을 제압할 수 있도록 사격과 격투술을 배운다. 미국으로 도망 온 하마자키는 늘 보디가드에 둘러싸여 있다. 유일한 기회는 더 룸이라 불리는 곳이다. < 호스텔 >의 그곳처럼, 부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파라다이스 혹은 지옥. 시체애호증인 하마자키는 더 룸에서 변태적 욕망을 해소한다. 보디가드가 따라가지 못하지만 마유미도 무기를 가져갈 수 없고, 경비에게 무기를 빼앗아도 지문 인식이기에 사용이 불가능하다. 벌거벗은 채 시체로 위장해 들어가야 하는 마유미가 총을 가져갈 방법은 단 하나다. 몸을 갈라 총을 집어넣고는 다시 꿰매는 것이다. < 건 우먼 >은 시종일관 비장하다. 그들이 처한 상황, 그들이 하는 행동 모두가 처절하다. 그러나 현실을 연상시키는 리얼리티는 없다. 지극히 과장된 상황과 연기만이 있다. 마유미의 스토리를 들은 킬러가 말한다. “그거 일본 만화에나 나오는 거잖아. 뤽 베송 영화나.”영화 속 캐릭터조차도 딱히 현실이라고 믿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마유미가 자신의 몸을 갈라 총을 꺼낸 후 버틸 수 있는 시간은 22분이다. 그 이상이면 출혈 과다로 죽게 된다. 점점 몽롱해져 가는 상황에서, 온몸을 적신 피가 유니폼이 된 마유미가 악당들과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박력이 넘친다. 적을 바라볼 때의 마유미의 눈은 강렬하게 불타오른다. 너무나 비현실적이지만 마유미가 펼치는 액션은 에너지가 넘쳐 보는 사람을 들끓게 한다. 물론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만 마유미도, 마스터마인드도 모든 것을 걸었다. 마스터마인드는 마유미를 각성시키기 위해 많은 이를 죽였다. 때로 무고한 이도. 하지만 마스터마인드는 말한다. ‘복수를 끝내고 나면 나는 지옥으로 갈 거야.’자신이 나락으로 빠질 것을 알면서도 복수를 해야만 할 때가 있다. 마유미는 그의 도구로 시작했지만, 기꺼이 자신의 의지로 킬러가 된다. < 건 우먼 >의 영상도, 음악도, 마유미를 연기하는 아사미도 모두 70년대의 ‘핑키 바이올런스’를 연상시킨다. ‘핑키 바이올런스’는 단지 여성을 관음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남자를 압도하면서 그녀들은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길로 나아간다. <건 우먼>의 마스터마인드도 그런 말을 한다. “남자는 피의 1/3만 흘려도 죽지. 여자는 2/3을 잃어도 아직 살아 있어. 신은 남자보다 여자를 정교하게 만들었어.” 마유미를 보고 있으면 <여수 701호 사소리>를 비롯해 ‘핑키 바이올런스’의 그녀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드모델로 시작한 아사미는 AV 배우와 영화배우를 겸업했다. 그러다 만난 이구치 노보루 감독에게 ‘핑크 바이올런스’의 여배우들을 닮은 마스크라는 말을 들었고, 주로 미소녀 스타일을 보여줬던 아사미는 점차 액션계열 배우로 이미지를 바꾸게 된다. 2009년에는 AV를 은퇴했고 <고스 로리 처형인> <헬 드라이버> <데드 스시> < 아이언 걸 > 등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 건 우먼 >을 만든 1973년생인 미츠다케 쿠란도 감독은 고등학교 때 단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졸업 후 미국에서 방송과 영화판에서 일하다가 2004년 <몬스터즈Monsters Do not Get to Cry>로 감독 데뷔를 한다. 영화에 뛰어든 계기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격돌Dual>과 미스미 겐지의 < 아들을 동반한 검객 >였다고 한다. 2008년에는 스승으로 여기는 오카모토 키하치에게 바치는 <사무라이 어벤져>의 주연, 각본, 연출, 제작을 했다. 2013년 작인 <건 우먼>은 유바리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고, 2015년 일본영화감독협회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사무라이 어벤져>에서 검, <건 우먼>에서 총을 다룬 미츠다케 쿠란도는 신작인 < 가라데 킬 >에서는 인간의 육체를 무기로 쓰고 있다. 미츠다케 쿠란도는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했으면서도 지극히 일본적인 영화를 만든다. 그것도 B급의 잔혹하고 뒤틀린 영화를. 그걸 일본에서는 ‘에로 그로 넌센스 & 바이올런스’라고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조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는 1930년대 일본에 형성된 오랜 전통이다.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를 쓴 미리엄 실버버그의 말에 따르면 ‘에로 그로 넌센스라는 말은, 정당 정치에 대한 고발이나 거리에 팽배한 호전적 분위기를 무시한 채 감각적 쾌락이 빚어내는 퇴폐에 심취한 것처럼 보였던 데카당트로 표현되는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건 우먼 >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전통이 100여 년 가까이 흐르면서 ‘저패니즘 익스트림’으로 변형되었고 확장되었다. <건 우먼>은 그런 전통의 연장선에 놓인 기묘한 영화다.
2015년 서울독립영화제의 심사를 맡았다. 장편과 단편 극영화부터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화를 봤다. 총 48편이었다. 좋은 작품들과 좋지 않은 작품들이 있었다. 중간은 별로 없었다. 전체적인 심사회의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끝이 났다. 몇 편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좋은 작품’ 들은 명확했다. 시상식을 겸한 폐막식까지의 과정은 순조로웠다. 수상작들은 많은 박수를 받았다. 잔치는 성황이었고, 영화제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끝내 마음속에서 맴도는 작품 하나가 있었다. 수상작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작품과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다가 아깝게 수상을 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심사회의 때 본격적인 언급도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작품이 좋았다. 제목은 < 병구 >. 형슬우 감독. 서현우 , 김이정 주연. 러닝타임 22분. 봄날의 오후. 대학가에 흔히 있을 법한 원룸이 배경이다. 주인공 민지는 가구 배치를 바꾸고 싶다. 힘 좀 써줄 남자가 필요하다. 남친은 없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는데 받는 남자마다 까칠하고 비협조적이다. 아무리 남자가 없어도 얘만큼은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 대학 동창, ‘병구’에게 전화를 건다. 두둥. ‘병구’ 등장. 일단 첫인상부터 덮어놓고 비호감이다. 면도 안 한 까칠한 생김새에 호섭이 머리. 기름때처럼 느끼하게 깔리는 목소리로 구사하는 농담은 하나같이 하찮은데 그걸 또 쉬지를 않는다. 등장부터 영화를 마구 헤집어 놓는 이 청년, 다짜고짜 배는 또 고프다며 집안도 멋대로 뒤져댄다. 가구 옮기는 본업(?)엔 관심도 없는 거다. 병구는 눈치가 없고, 무례하고, 한심하고, 지저분하고, 불쾌하다. 민지가 불쌍하다. 병구의 등장부터 강렬하게 발생하는 코미디는 상황 코미디를 지나 점차 캐릭터 코미디로서의 면모를 갖춘다. 그렇게 차박차박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뜻밖에도 우리는 멜로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병구 녀석은 진심이었다. 순정이 있었다. 민지는 병구를 새롭게 본다. 가랑비에 젖어들어 가듯 어느새 캐릭터에 흠뻑 이입돼버린 우리는 허헛, 참. 멋쩍게도 가슴 한켠, 설레고야 만다. 이야기의 발상부터 완결까지가 흠 없이 유기적이다. 특히 대사들이 좋다. 그걸 또 배우들이 맛깔나게 잘 살려낸다. 두 배우의 호흡은 수준급이다. 맛난 대사들을 신나는 리듬으로 주고받아가며 코미디 호흡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낸다. 특히 병구 역할을 맡은 서현우 의 연기는 깨알 같은 디테일들이 잘 살아있다. 계산에 의한 연기라기보다 숨 쉬듯 편안하게 노는. 보통의 내공은 아니다. 촬영은 안정적이고, 편집도 깔끔하다. 전반적으로 영화 어디에도 이격감이 없다. 맞다, 좋은 완성도다. 그러나, 그렇다. 이렇게 일일이 나열할 만큼 장점들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수상작 후보권에 적극 밀어 넣지 않았다. 영화제 수상작이라면 으레 요구되는 작품의 성향 또는 태도 같은 게 있기 마련이다. 상의 권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건 종종 완성도와 다른 개념이다. 게다가 서울독립영화제 같은 성격의 영화제라면 더더욱 그렇다. ‘병구’에 도발적인 주제는 없다. 파격적인 화법도 없다. 감독의 야망이 뜨겁게 돋보이는 쪽도 아니다. 매끈하고 안정적인, 상업적 화법은 역설적으로 상대 평가를 후하지 못하게 만든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완성도를 깨더라도 어긋나 튀어나온 구석이 있었다면, 좀 다른 해석과 대접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재능있는 젊은 감독은, 이 젊은 배우는, 서울독립영화제의 수상결과 따위와는 무관하게 제 갈 길 뚜렷이 직진할 재목들이라 믿는다. 이미 이 작품 하나로도 성큼 나아갔다. 만듦새를 보니 방향 제대로 잡고 계시다. 지체없이 그냥 가시면 될 듯. 영화제 폐막식 뒤풀이. 화장실에서 형슬우 감독, 서현우 배우와 인사를 나눴다. 영화 잘 봤다고 말을 건넸다. 그러나 상도 안 준 심사위원이 술 취한 목소리로 영화 잘 봤다고 말하는 게 어떻게 들렸을지를 잘 안다. 허나, 잘 봤으므로 잘 봤다는 거였다. 나는 당신들의 영화를, 이만큼 좋아했다. 그래서 여기, 특별히 언급하고 기록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