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 of Illusion: 100 Years of Hollywood Special Effects
- 감독
- Stephen Rocha
- 제작년도
- 1995
“마법사는 없단다” 마술사 타티셰프는 자신을 따르던 소녀 앨리스에게 이런 메모를 남기고 떠난다. 소녀는 그래서 환영의 허깨비를 벗어던지고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게 된 걸까? 마술사로서는 나름의 배려였다. 자기가 없더라도 소녀는 살아야 한다. 실뱅 쇼메의 < 일루셔니스트 >는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마술사와 여전히 마법으로 자신의 작은 욕망이라도 채워야 살아갈 수 있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프랑스 희극 배우 겸 감독인 자크 타티가 자기 딸에게 들려주기 위해 쓴 원작 이야기에 기반하고 있고, 타티의 열렬한 팬인 쇼메는 기꺼이 그의 우상에게 헌정하고자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 마술사의 몸동작은 기꺼이 타티의 페르소나인 윌로씨를 따른다. 허나, 쇼메의 전작인 < 벨빌의 세 쌍둥이 >와 마찬가지로 < 일루셔니스트 >는 여전히 영화에 대한 영화, 또는 영화에 대한 애니메이션이다 (이때, 영화는 라이브 액션이 아니라 시네마를 지칭한다). 단지 타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든지, 작품 중간에 라이브 액션의 장면이 삽입되었다든지 때문만은 아니다. <벨빌의 세 쌍둥이>와 <일루셔니스트>는 분명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삼지만 (전자는 모호하지만 2차대전 무렵, 후자는 1959년),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끊임없이 영화의 탄생기로 되돌아가게 된다. <벨빌>의 세 쌍둥이가 전성기를 누렸던 보드빌 시대라든가, <일루셔니스트>의 마술사가 전성기를 누렸던 마술쇼의 시대로 말이다. 이들은 현재는 쇄락했지만, 왕년에는 나름 잘 나갔다고 여긴다. 그 잘나갔던 왕년이 바로 영화가 등장하던 무렵이다. 시네마토그래프를 비롯한 초기 영화는보드빌과 마술쇼의 연장선 위에 놓여있다. 그리고 이 두가지 퍼포먼스 전통은 초기 영화의 ‘보여주기’exhibitionism 매력의 핵심적인 두 주춧돌이다(하물며 ‘벨빌’도 초창기 고몽 스튜디오가 있던 지역 이름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원의 오버랩을 배경으로 삼아 중심에 놓이는 것은 인간의 몸짓이다. < 벨빌 >의 핵심 사건인 납치극이 목적으로 삼은 것은 사이클 선수의 노동력이다. 이는 불법 사이클 도박을 위해 영상을 만들어내는 원천으로 쓰인다. < 일루셔니스트 > 역시도 마술쇼의 트릭을 만들어내는 것은 마술사의 기민한 손동작과 관객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는 다양한 제스쳐이다. 뿐만 아니라 마술사가 등장하는 쇼의 다른 등장인물들인 곡예단이나 인형극 복화술사 또한 몸을 통한 표현이 중심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몸짓, 볼거리로서의 몸짓을 재배치한 것이 바로 영화였다. 영화는 카메라 앞에 이들의 몸짓을 피사체로 세우고 필름에 기록하였다. 그 이후, 사람들이 바라본 것은 살아있는 피사체의 몸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에 의해 투사된 이미지였다. 기실, 영화 매커니즘은 상영 공간에서 인간 몸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지워나갔다. 납치된 사이클 선수처럼, 영사기의 크랭크를 손수 돌려가며 움직임을 만들어냈던 영사기사는 처음에는 관객 사이에 있었지만, 곧 영사실로 격리되고 이내 모터로 자동화되었다. 마술사의 트릭은 편집 기술로 넘겨졌다. 스크린은 무대를 대체하였고, 스크린과 영사기 사이에서 인간은 사라지고, 기계 장치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 일루셔니스트 >의 핵심은 마술사 타티셰프가 극장 안에 들어갔다가 그 곳에서 실제의 자크 타티 영화와 마주하는 장면이다. 그것은 단지 타티에 대한 감독의 소소한 오마주에 불과하지는 않다. 그 장면에서 애니메이션과 라이브 액션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마치 거울처럼. 앨리스가 타티셰프의 모습을 보았던, 그래서 타티셰프가 한사코 다시 서기를 거부했던 백화점 쇼윈도우와 대비되는 설정이다. 쇼윈도우는 상품에 대한욕망을 ‘환영’illusion으로 보여주는 장치이다. 영화 스크린과 유사한 원칙으로 움직이되, 스크린이 2D라면 쇼윈도우는 3D인 셈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3인조 곡예단과 마술사가 함께 작업했던 간판 그림이 매개체로 역할을 해왔다. 초기 애니메이션의 선구자 중 하나였던 제임스 스튜어트 블랙턴도 이 직종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 쇼메의 작품을 영화에 대한 영화, 혹은 영화에 대한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이유는 이 지점이다. 영화의 기원과 인간의 실종 (때론 멸종)을 다루는 그의 작품들은 2D와 3D의 경계에서 이루어진다. < 벨빌 >과 < 일루셔니스트 >는 2D의 따뜻한 손맛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3D 이미지가 곳곳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둘 사이에 어색한 긴장감이 흐르기 보다는, 2D에 기반한 현실 공간으로부터 3D로 구현된 환상과 상상, 혹은 일탈과 자유로움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굳이 실뱅 쇼메의 라이브 액션 작품인 <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이미 그의 작품들 속에는 라이브 액션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2D와 3D라는 이질적 세계들이 서로를 침투하며 녹아들고 있다. 이는21세기에 비로소 등장한 융복합적 영상 현상이 아니라, 영화의 역사 초기에 애니메이터들이 카메라를 만지작대면서 이미 넘치도록 쏟아냈던 산물들과 닮아있고, 닿아있다. (사족을 달자면, 그 당시 animated pictures는 라이브 액션 영화를, animated cartoon은 애니메이션을 가리켰다)
어두운 도시. 밤 12시가 되면 모든 게 멈추고 모두가 잠든다. 신데렐라 속 마법처럼 자정은 환상이 깨지는 시간이다. 깨어있는 건 기억을 잃고 벌거숭이로 호텔 방에서 발견된 남자와 그런 그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주겠다고 사정하는 말더듬이 박사, 그리고 창백한 안색에 검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수수께끼의 대머리 집단뿐. 그 멈춰버린 시공간에선 은밀하게 거대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들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잠든 도시를 동분서주하는 남자의 이름은 존 머독.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누명을 뒤집어쓴다. 존의 뒤를 집요하게 뒤쫓는 건 시니컬한 형사와 바로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옷의 대머리 사내들. 그가 기억에 한발 한발 접근할수록 그들의 방해도 더욱 직접적이고 거칠게 다가온다. 우연히 도시가 조용히 ‘튜닝’되어지는 걸 목도한 존은 박사의 도움을 얻어 도시를 깨우고 광명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어두운 도시 알렉스 프로야스의 < 다크 시티 >는 저주받은 걸작이다. 기존의 온갖 SF 컨벤션들과 만화적 설정을 가져와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비전뿐만 아니라 철학적이고 사유적인 재미를 선사한 결과물은 상당히 독특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프란츠 랑의 < 메트로폴리스 >나 < M >을 떠올리게 만드는 누아르적인 스타일뿐만 아니라 오토모 카즈히로의 < 아키라 >와 같은 재패니매이션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만화적 비주얼까지 결합시킨 이 잡탕의 영화는 이미 봤지만 전혀 본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의 작품을 창출해냈다. ‘위대한 영화’의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를 그 해 최고 작품 중 하나로 선택했으며, 아직도 많은 이들이 비슷한 주제와 분위기를 가진 < 매트릭스 >보다 <다크 시티>를 먼저 뽑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매트릭스>는 이 영화의 자양분 위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다크 시티>의 세트를 가져다 일부 장면을 촬영했으니 기시감이 생기는 것도, 유사점이 발견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장대한 스케일과 허를 찌르는 상상력으로 중무장한 SF 누아르임에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2,700만 달러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흥행엔 처참히 실패하고 만다. 제목처럼 어둡고 지나치게 무거운 탓 외에 개봉한 지 2개월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극장가를 맹폭한 < 타이타닉 >이라는 거대한 빙벽 때문이었다. 스틸 어레이란 독특한 영상기법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매트릭스>와 달리 <다크 시티>의 비주얼은 초라한 예산에 걸맞게(!) 아날로그적이며 투박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를 완벽하게 커버해준 건 바로 음악, 트레버 존스의 압도적인 사운드트랙 덕택이다. 남아프리카의 오래된 영화관 맞은편에 살며 이미 어린 시절부터 영화음악이 가진 힘과 매력에 경도돼 장래희망으로 영화음악가를 지망했던 이 조숙한 소년은 영국으로 건너가 12년간의 교육을 마치고 존 부어맨 감독에게 발탁돼 바그너와 칼 오르프의 클래식 사이에 들어갈 부분적인 스코어를 작곡하게 된다. 그러나 그 대가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솜씨를 발휘한 존스는 이후 < 폭주기관차 >나 < 라스트 모히칸 >, < 클리프 행어 > 등 굵직굵직한 작품에서 가슴에 각인되는 테마들로 자신만의 족적을 뚜렷하게 남기며 과거 바람대로 성공한 영화음악가의 길을 걷는다. < 노팅힐 >이나 < 니키와 지노 >, < 로잔나 포에버 > 등 서정적이고도 아름다운 사운드도 일품이지만, 뭐니 해도 그의 진가가 유난히 발휘되는 장르는 < 프롬 헬 >이나 < 미시시피 버닝 >, < 엔젤하트 > 등과 같은 다크한 스릴러나 < 다크 크리스탈 >, <대마법사 멀린>, <클레오파트라>, < 젠틀맨 리그 > 등과 같은 시대극/판타지 계열에서였다. 단선적인 일렉트릭 사운드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사적이고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사하되 감상적으로 빠지지 않는 절제되고 냉철한 시각은 그를 여타의 영미권 작곡가들과는 확연하게 구분 짓게 만든다. 트레버 존스 <다크 시티>는 그런 트레버 존스의 잿빛 색채감이 잔뜩 묻어나는 스코어로 여태껏 나온 그 어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육중하고 파워풀한 쾌감을 선사한다. 마치 트레일러를 잔뜩 싣고 달려오는 화물열차를 바로 코앞에서 마주친 것과 같은 압도적인 위용의 사운드인데 둔탁한 무게감을 전달하는 금관악기의 진한 쇳소리는 물론, 공(gong)과 팀파니, 스네어, 거기에 힘차게 박동하는 일렉트릭 리듬을 덧입힌 다양한 퍼커션까지 결합해 묵직한 깊이의 울림을 만들어내며 황당무계한 상상력과 만화적인 비주얼을 진중하게 눌러준다. 누아르적인 분위기를 따로 살리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암울하게 부유하는 엠비언스와 낮디 낮은 남성성부의 샘플링과 신디 톤, 섬세하고 잔망스러운 스트링이 합류하는 몇몇 큐들을 통해 감성적이고 스산한 디스토피아의 잔재를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이는 존이 기억의 실마리를 찾아 삼촌네 집을 방문했을 때 깔리는 ‘Memories of Shell Beach’나 제니퍼 코넬리가 연기한 엠마라는 캐릭터의 테마 ‘Emma’, 박사가 도시에 대한 진실을 알려줄 때 흐르는 ‘Living an Illusion’에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건 일곱 개의 음으로 구성된, 짧지만 강렬한 상승과 하강의 기운을 담아낸 <다크 시티>의 모티브다. 묵시록적인 비장함과 존재론적 고독을 토해내듯 뿜어내는 금관악기의 거친 포효는 영화 내에서 여러 차례 변주되며 존과 이방인들이 대치된 상황에서 ‘힘’의 주도권을 상징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프닝 타이틀 격으로 나온 ‘Into the City’를 제외하곤 이 테마는 그들의 대결이 펼쳐지는 액션 씬에서 주되게 흘러나오는데(‘No more Mr. Quick’이나 ‘The Wall’), 특히 후반 액션 및 결말 시퀀스 13분을 통째로 책임지는 대곡 ‘You have the Power’는 가히 사운드트랙의 백미라 말할 수 있다. 기존 모티브에서 몇 배 이상 알레그로, 크레센도된 강력한 편곡으로 스피드와 박력, 고통과 환희, 그 온갖 감정들과 두 종족 간의 운명을 건 대결을 담아낸 채 힘껏 내지르는 사운드의 위력은 한마디로 굉장하다. 그 어떤 비주얼이나 연기로 커버할 수 없는 사운드의 깊이와 크기를 간직한 이 장엄한 스코어는 영화가 가진 예산상의 한계를 음악적 상상력으로 훌륭하게 커버해냈다. 아니 오히려 그 파워가 너무 세서 초라한 영상을 압도할 정도다. 대결이 끝나고 난 뒤 곡의 후반으로 접어들며 절대자가 되어 도시를 새로 건설하는 존의 뒷모습에 덧입혀지는 오르간 사운드나 서정적인 스트링 위주의 편곡은 종교적인 후광에 숭고함과 거룩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트레버 존스의 미칠 듯한 존재감의 스코어 외 사운드트랙엔 모두 6곡의 삽입곡이 실려 있는데, 그중 3곡은 영화상에 등장하지 않는 상업적인 선택이라는 점이 많이 아쉽다. 이방인들이 주문처럼 쓰던 말을 제목으로 삼은 휴즈 홀의 ‘Sleep Now’는 짧지만 몽롱한 기운을 선사하고, 극 중 클럽 가수로 나오는 제니퍼 코넬리가 부르는 달달하고 섹시한 올드 넘버 두 곡 ‘Away’와 ‘The Night has a thousand eyes’는 모두 아니타 켈시 버전으로 커버되어 영화의 감흥을 더한다. Track List 1. Sway - performed by Anita Kelsey 2. The Information - performed by Course of Empire 3. Just a Touch Away - performed by Echo & The Bunnymen 4. Dark - performed by Gary Numan 5. Sleep Now - performed by Hughes Hall 6. The Night Has a Thousand Eyes - performed by Anita Kelsey 7. Into the City 8. No More Mr. Quick 9. Emma 10. The Strangers are Tuning 11. Memories of Shell Beach 12. The Wall 13. Living an Illusion 14. You Have the P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