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MAIN OF THE MOMENT
- 감독
- 스탠 브래키지
- 제작년도
- 1977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사진: " REMEMBERING DAVID BORDWELL "(Rataj-Berard 촬영), NYU Tish School of the Arts 지난 2월 29일에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이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였다. 영화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보드웰이라는 이름이 낯설 수는 없다. 이론과 비평 및 영화사를 넘나들며 공저를 포함한 2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으며 한국에도 여러 권이 번역되어 있다. “영화 연구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영화의 내적 구조와 위상을 밝히는 일에 중요한 이론적 거점 노릇을 해왔다. 영화학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럽겠지만, 내게는 좀 더 각별한 편이다. 그의 책을 번역했다는 인연 말고도 여러 면에서 빚을 졌기 때문이다. 현대소설에서 영화로 전공을 바꾸면서 ‘문학적’ 틀이라는 자기 한계와 맞닥뜨려야 했던 내게 그의 책들은 영화형식의 독자성을 알려준 요긴한 길잡이였다. 최고의 영화 교과서라 일컬어지는 『영화예술(Film Art: An Introduction)』(1979)은 영화가 예술로서 갖는 위상에 눈 뜨게 했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규범과 다양한 스토리텔링 패러다임을 논한 『영화의 내레이션(Narration in the Fiction Film)』(1985)은 영화적 서사가 작동하는 내적 논리와 양식들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영화 스타일의 역사(On the History of Film Style)』(1997)는 제작 관행 및 기술과 긴밀한 관련을 맺으며 변화해 온 영화 스타일의 다양한 양상들을 접하게 했으며 『포스트-이론: 영화학의 재구성(Post-Theory: Reconstructing Film Theories)』(1996)을 통해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고 감정을 유도하는 구체적인 과정들을 알려주었다. 그 외에도 할리우드와 유럽, 아시아의 중요 감독들에 관한 그의 저작은 시대와 지역이라는 조건에 따라 다르게 현현하는 영화 스타일의 세계로 안내했다. 데이비드 보드웰의 저서 중 일부(개정판 포함) / 사진: " Books ", David Bordwell's website on cinema 다루는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그의 작업에서 공유되는 것은 영화의 예술성에 대한 옹호이다. 그에게 있어 영화는 자기만의 형식과 원리를 지닌 예술이며 영화의 예술성은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 속에 존재한다. 그는 영화의 세부를 형성하는 규범과 원칙을 밝혀내어 영화가 예술형식으로 자리할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 스펙터클을 예술적 표현의 형태로 읽어내었다. 이러한 작업들의 지층에, 영화연구는 텍스트를 통한 사유가 우선되어야 하고 텍스트의 역사를 통해 정신의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놓여 있음은 물론이다. 책을 보면 그것을 쓴 사람이 보인다. 그는 어려운 이론적 용어로 독자를 현혹하거나 현란한 지식을 과시하지 않는다. 거대한 이론적 틀에 의지하여 영화현상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경향에 매 순간 저항했다. 그의 논의는 텍스트를 직접 분석하여 얻은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지식에 의거한다. 스스로 형식주의자이기를 고집하며 고전적 정전을 찾는 일에 전념할 때에도 우선시한 것은 실제 분석이었다. 수많은 텍스트에 대한 정밀한 검토에 기반하여 영화의 내적 질서를 벼리어내고, 그것과 관계하며 구성되는 지역적이고 역사적인 다양한 나이테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일에 몰두해왔다. 당연히, 다루는 영화들의 방대함에서 보드웰의 저작들은 가히 압도적이다. 더구나 그가 주요 저서를 썼을 때는 지금처럼 손쉽게 영상 자료를 얻을 수 없던 상황이었다. 스캔 기술은 물론이고 홈 비디오도 없던 시절에, 영화의 이미지들을 선명한 상태로 책에 담기 위해 어두운 극장이나 편집실에서 실제 필름을 스틸 카메라로 직접 촬영하고 보정하는 데 쏟았던 엄청난 노고에 관한 목격담도 전해진다. 영화형식의 비밀을 푸는 작업에 그가 기울인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이다. 막대한 시간을 투자하여 영화들을 분석하고 그 결과물을 명징한 언어로 전달함으로써, 직접 보고 확인한 것만이 지식으로 쌓일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학자라 할 수 있다. 사진: " A Celestial Cinémathèque? or, Film Archives and Me: A Semi-Personal History ", David Bordwell's website on cinema 2002년 11월에 지근거리에서 그를 볼 기회가 있었다. 한국영화학회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강연을 했던 그는 엄정한 이론가나 날카로운 비평가라기보다는 영화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 찬 시네필에 가까워 보였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엄밀한 분석을 펼쳐내었지만 그러한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게 들떠 있는 소년마냥 열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알아차린 ‘놀라운’ 영화형식의 세계를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다는 에너지로 가득한 그의 모습을 보며 느낀 것은, 그의 책들이 보여주는 정확성과 치밀함이 개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간의 작업들이 지적 관심을 넘어서 영화에 바치는 우회적인 방식의 애정 고백임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시네필적인 열렬함을 잃지 않으면서 영화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균형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론이 조화롭게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 꽤 예외적인 영화학자로 그는 내게 기억되어 있다. 영화를 향한 그의 사랑의 농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없었던 듯하다. 1973년부터 2004년까지 일하던 대학 강단을 떠난 이후에 오히려 블로그나 비디오 에세이, DVD 컬렉션 등으로 반경을 넓히며 더욱 생산적으로 활동했다. 디지털 기술의 고속 성장으로 영화의 존재 방식이 더욱 복잡해지는 상황에서도 보드웰은 영화형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누락시키지 않으면서 영화 매체의 변화 가능성을 꾸준히 탐문해 왔다. 뛰어난 통찰력으로 영화를 논한 학자들은 많다. 그러나 한순간도 한눈팔지 않고 오랜 기간 영화를 향해 열정과 수고로움을 쏟은 정도와 깊이에 있어서는 보드웰을 능가할 자가 없어 보인다. 눈을 감기 며칠 전에도 자신의 블로그( davidbordwell.net )에 글을 썼을 만큼,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화와 함께 있었다. 영화가 당면했던 사회현실적인 조건과 문화적 위상에 주된 관심을 두게 되면서 한동안 그의 책들을 열어보지 않고 있던 차에 그의 부고를 접하게 되었다. 그처럼 독보적인 ‘영화주의자’를 다시는 만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허전함을 지울 길 없다. 늦었지만 그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1976년, 전 덴마크영화박물관 본부 앞에서, 데이비드 보드웰. 사진: " A Celestial Cinémathèque? or, Film Archives and Me: A Semi-Personal History ", David Bordwell's website on cinema 마지막으로, 만약 우리가 현재의 우리를 사로잡는 영화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 호기심은 역사적 사고를 통해 충족될 수 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어제 일어난 일로부터 야기된다. 영화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영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Finally, if we have any curiosity about the films that captivate us now, we can start to satisfy it by thinking historically. What happens today springs from what happened yesterday. By trying to understand film history, we better understand the movies of our moment. -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 " Doing Film History ", David Bordwell's website on cinema 오영숙(성공회대 동아시아 연구소 HK연구교수) l 영화가 공동체의 심리적 현실과 맺는 유의미한 관계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쓰고 있다. 『1950년대, 한국영화와 문화 담론』(2007), 『탈북의 경험과 영화 표상』(2013), 『근현대 한국영화의 마인드스케이프』(2024) 집필. 『진짜 눈물의 공포(The Fright of Real Tears)』(슬라보예 지젝, 2004), 『영화의 내레이션(Narration in the Fiction Film)』(데이비드 보드웰, 2007) 번역.
견자단의 전성기는 뒤늦게 찾아왔다. 이연걸과 동년배이고, 유덕화나 양조위, 주성치보다 한두 살 정도 어린 편이니, 그들이 90년대 초부터 정상에 있었던 걸 감안해보면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데뷔가 늦었던 건 아니다. 원화평 눈에 띄어 1984년 <소태극>으로 데뷔한 그는 < 특경도룡 >이나 < 철마류 >같은 자신만의 인지도를 쌓은 작품도 만났다. 조연이든 악역이든 마다하지 않고 출연했으며, < 황비홍 2 >에서 이연걸과 마지막 액션을 장식한 것도, < 신용문객잔 >의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도 바로 그였다. 무도가 집안에서 태어나 정통 무예를 익힌 배우 출신답게 자연스레 여러 격투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 노호광 >, < 영춘권 >의 무술감독은 물론 < 전랑전설 >에선 감독 데뷔에, < 블레이드 2 >, < 상하이 나이츠 > 등으로 할리우드까지 진출해 착실히 자신만의 경력을 쌓아나갔다. 대중에게 그렇게 조금씩 친숙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갔을 무렵 바야흐로 시대가 변했다. 성룡과 홍금보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고, 이연걸 또한 액션보단 연기를 원했다. 지금도 쌩쌩하니 주먹과 발차기를 현란하게 구사하며 몸을 아끼지 않고 마샬아트를 시연할 배우는 견자단 말고 없었다. 그의 전성기는 그렇게 도래했다. 견자단 그 중 엽위신 감독과 함께한 2000년대 중후반 일련의 액션영화들은 전설의 핵심이었다. < 살파랑 >과 < 용호문 >, < 도화선 > 삼부작은 견자단을 정점에 올려놓은 작품들로 스피디하고 강렬한 액션과 화려한 연출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다양한 격투기의 향연에, 뛰어난 아이디어가 결합된 이 무술백화점 같은 영화들은 단순하지만 폭발적이었고, 견자단 스타일의 완성을 만천하에 공인시켰다. 더욱 강하고 더없이 빠른 영화가 이어질 거라 예상했지만, 그러나 그들의 차기작은 조금 다른 선택이었다. 실존 인물 ‘엽문’에 관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춘권의 대가이자 이소룡의 스승이기도 했던 엽문은 생애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게다가 이미 왕가위와 양조위가 < 일대종사 >라는 같은 ‘엽문’ 영화를 준비 중에 있었다.(결국 이 작품은 세 편의 엽문 영화가 나오고 나서야 개봉되었다!) 하지만 엽위신과 견자단은 그 도전과 모험을 기꺼이 감수했고, 홍콩 박스오피스와 금상장영화제을 뒤흔든 < 엽문 >은 그들의 가장 성공한 영화이자 대표작이 되었다. 스피디하고 파워풀한 액션은 여전하지만 기존의 공격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의 ‘열혈’ 견자단 대신, 방어적이고 내면적인 ‘고수’ 견자단의 품격이 묻어난 작품이었다. 그 품격을 더욱 고양시키는 건 바로 웅장하고 숭고한 음악의 몫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중화민족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난 선율을 매만진 건 일본인 작곡가 카와이 켄지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귀여운’ 이름의 작곡가 카와이 켄지는 오시이 마모루의 음악적 파트너로도 더 잘 알려져 있는데, 1957년 동경 태생으로 토카이 대학 원자력 공학부에 다니다 마즈다 대학 사운드 페스티벌에서 우승한 걸 계기로 미련 없이 학업을 포기하고 전업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밴드활동 및 CM 음악을 담당하다 유명 성우이자 배우인 마츠야 유지의 연극 음악을 맡게 된 걸 계기로 각종 사운드트랙에 참여하게 된다. 초기에 맡은 애니메이션 <메존일각>의 놀라운 성공과 <붉은 안경>으로 인연을 맺게 된 오시이 마모루와의 협업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이후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의 모든 시리즈와 <란마 1/2>, <무책임함장 테일러>, < 공각기동대 > 등 90년대 히트작 애니메이션 음악들을 담당하며 정상의 자리에 올라섰다. 이와 동시에 세기말 나카다 히데오와 손을 잡은 <링> 의 폭발적인 히트로 상업영화로 분야를 넓혔으며, 2005년엔 임필성 감독의 < 남극일기 >를 필두로 중국의 < 묵공 >, 프랑스의 TV다큐 <아포칼립스, 제 2차 세계대전> 등의 음악을 맡아 무대를 세계로 확장했다. 카와이 켄지의 장점이라면 매체나 장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각적으로 시도하고 모험하는 확장성과 놀라울 정도의 꾸준한 생산력인데, 애니, 게임, TV, 영화, 다큐멘터리, 대중음악은 물론 호러, 드라마, 코미디, SF와 판타지, 시대극에 이르기까지 편식 없이 모든 스타일을 구사할 수 있는 그의 사운드에서 사실 한계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시간과 조건만 맞으면 어떤 작품이라도 한다는 프로페셔널한 자세로, 아티스트란 생각을 배제한 채 자신의 음악관을 고수하기보단 철저히 감독이 요구하는 대로 작업한다는 방식이 오히려 카와이 켄지만의 고유 스타일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다. 카와이 켄지와 그의 작품들 <엽문>은 그의 프로의식과 실력을 유감없이 접할 수 있는 사운드트랙으로, 이미 <용호문>에서 한번 호흡을 맞췄던 엽위신, 견자단 콤비와 함께 박진감 넘치는 액션 스코어의 진수를 선사한다. 빠르고 강력한 타격기를 갖춘 견자단의 액션 스타일에 맞춰 카와이 켄지는 약동하는 퍼커션을 전면에 배치해 청각적인 액션 쾌감을 노리고 있는데, 거기에 한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탁월한 테마(‘一代宗师 Maestro’)를 얹어 듣는 순간 영화의 숙명적인 분위기를 짐작케 만든다.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국적불명의 판타지스러웠던 <용호문>이 기존에 카와이 켄지가 작업했던 여타 유수의 일본 아니메 사운드트랙들을 떠올리게 했다면, 얼후와 코러스를 사용해 예의 멋스러운 중국색이 강하게 묻어나는 <엽문>의 스코어는 고전적이고, 위엄에 가득 차있다. 특히나 엽문이 구사하는 영춘권 자체가 여성에 의해 만들어진 권법인 만큼 부드럽고 우아한 품격이 느껴져야 하는데, 카와이 켄지는 얼후의 나긋나긋한 음색과 강렬한 타악의 대비로 부드러움과 강함을 동시에 잡았다. 거기에 밑받침되는 두터운 보이스와 스트링의 조화는 휴머니즘을 극대화시키는데, 액션 스코어가 놓치기 쉬운 감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이전에 <란마 1/2>을 작업하며 의도적인(다분히 희극적인) 중화풍의 컨벤셔널한 사운드를 들려준 바 있지만, <엽문>에선 전통적인 색채에 집착하지 않고 일렉트릭 사운드를 병행하며 상처 입은 시대상의 암울한 분위기를 엄숙하고 장중하게 담아낸다. 전체적으로 곡들은 그리 길지 않다. 1분 미만의 짧은 큐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꼼꼼히 영화의 순서대로 30트랙에 걸쳐 모두 담아낸 <엽문> 사운드트랙은 그야말로 완벽하다. 보통은 빠질법한 예고편용으로 작곡된 음악까지 맨 마지막 트랙에 포함돼있다. 아쉬운 건 홍콩 워너에서 발매된 이 앨범이 너무나도 빠르게 절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 그리고 다른 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호쾌하고 장렬한 사운드의 쾌감은 이전의 <용호문>에 비해 덜 할 수 있지만, 심장 박동처럼 시종일관 두근거리는 퍼커션과 일본점령하의 불안하고 참담한 기운을 간직한 스트링, 불길하고 비애감 넘치는 신디가 직조해내는 선율의 깊은 울림은 기존의 단순하고 명료한 액션 스코어와는 차별화된 질감을 가지고 있다. 료사부의 죽음에 열 받아 무도장에서 엽문이 일본군을 상대로 1:10의 싸움을 벌일 때 흐르던 ‘死而後已 Dic For It’나 마지막 일본인 장교 미우라와 대결하던 장면에 깔린 대곡 ‘仁义之战 Battle For Righteousness’이 그렇다. 개인으로선 누구보다 강하지만 총과 군대를 가진 국가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고수의 암담한 심정을 오롯이 토해내는 건 카와이 켄지의 이 두근거리는, 두 주먹 불끈 쥐게 만드는 음악 덕분이다. 이미 수많은 아니메와 영화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액션 큐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운드를 선사하는 장인답게 그는 액션에 감성을 실었고, 능숙하게 퍼커션의 강약과 속도를 조율하며 극의 흐름을 고조시킨다. 딱히 장면에 맞춘 미키마우징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솜씨가 놀랍다. 마지막 결투 카와이 켄지는 2010년 엽위신과 견자단이 다시 한 번 뭉친 < 엽문 2 >에서도 여전히 음악을 맡아 속편의 법칙에 충실하게 더 빨라지고 더 강력하며 더욱 애잔하고 장엄한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여전히 그 중심에는 ‘一代宗师 Maestro’ 테마가 자리 잡아 심금을 울린다. 마치 어느 인터뷰에서 예술가보단 장인이 되고 싶다고 밝힌 카와이 켄지 자신에게 바치는 사운드트랙 같기도 하다. Track List 01. 一代宗师 Maestro 02. 融乐 Harmony 03. 切磋 Wanna To Fight 04. 嚣 Arrogance 05. 傲 Insolence 06. 泰然自若 Take Thing Easy 07. 悲城 City Of Sadness 08. 惘然 At A Loss 09. 徒然 In Vain 10. 腐 Decayed 11. 困 Stuck In A Moment 12. 代价 Pay For It 13. 战 Fight 14. 死而後已 Dic For It 15. 叶问 Ip Man 16. 涅盘 "Nirvana" 17. 亡命之徒 Desperado 18. 小念头 "Siu Lim Tau" 19. 纠缠 Entanglement 20. 无惧 Fearless 21. 赴汤蹈火 Going Under 22. 本觉 "Rigpa" 23. 危境 In Danger 24. 沉 Sinking 25. 剑拔弩张 Ready To Fight 26. 仁义之战 Battle For Righteousness 27. 岁月 Remembrance 28. 断 "Harakiri" 29. 圆 Completion 30. 一代宗师—贰 Maestro II 31. 预告 The Trai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