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묘지
- 감독
- 메리 램버트
- 제작년도
- 1989
- 출연
- 데일 미드키프, 프레드 귄느, 데니즈 크로스비, 브래드 그린퀘스트, 마이클 롬바드
< 쇼생크 탈출 > < 미져리 > < 미스트 > < 캐리 > < 돌로레스 클레이븐 > < 하트 인 아틀란티스 > < 그린 마일 > <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Apt Pupil > < 샤이닝 > < 스탠 바이 미 >... 스티븐 킹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중 보편적으로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거나 상업적 성공, 혹은 비평적 성과를 얻어낸 작품을 대략 생각나는 대로 적어 봤다. 10편이다. 셰익스피어를 제외하고 어느 소설가가 10편 이상의 ‘성공적 영화화’라는 결실을 얻어 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킹에게는 ‘망한 영화가 많은 원작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물론 그렇다. 비교적 근래에는 < 셀: 인류 최후의 날 >과 사이파이 채널의 드라마 <헤이븐>이 있었고 <공포의 별장>이라는 제목 등으로 세 번이나 만들어진 「세일럼스 롯 Salem’s Lot」들도 신통치 않았다. 더 옛날로 가 보면 수많은 똥망작들이 도사리고 있는데 < 옥수수밭의 아이들 > 시리즈 중 1편을 제외한 모든 작품들이 그러하며 < 괴물 Graveyard Shift > 등 온갖 희한 야릇한 영화들로 필모그래피가 더럽혀져 있다. 이건 다작을 하는 작가의 숙명이다.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거나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작품들 중에서도 스티븐 킹의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은 적지 않다. < 초능력 소녀의 분노 Firestarter >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초능력 소녀의 분노>라는, 시놉시스를 제목화 해버린 번역제의 1984년 영화 < Firestarter >가 있다. < 캐리 >를 감명 깊게 본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는 ‘유년판 과학 소설 풍 캐리’라는 측면에서 박수를 보낼 수 있다. 특히 번역제에 나와 있는 바로 그 ‘분노’ 시퀀스가 지니고 있는 후련함과 은근한 공포는 나에게 30년 이상 뚜렷하게 각인 돼 있다. 사실 스티븐 킹 원작 영화들이 독특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대부분 베스트셀러임에도 불구하고 B급 상상력으로 도배돼 있는 바람에 B무비로 직행한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지금은 거장이 돼 버린 크로넨버그의 < 초인지대 Dead Zone >가 그랬고 메리 램버트의 < 공포의 묘지 Pet Sematary >라던가 호러의 제왕 존 카펜터의 < 크리스틴 > 역시 1980년대 B무비를 사랑한 이들이라면 꼭 거쳐 간 작품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 자신 역시 B무비의 광팬이라는 사실은 「죽음의 무도」만 읽어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킹은 꾸준히 B무비와 어울리는 스토리들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무생물의 반란’이다. < 맥시멈 오버드라이브 >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들 중 대중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소재들이 예의 ‘무생물의 반란’이다. 그중에서도 기계들이 인간을 해친다는 내용의 영화들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 써스펙트 >라는 제목으로 국내 출시됐던 1995년 작 <맹글러 The Mangler>에서는 세탁 공장의 대형 프레스 다리미를 비롯한 기계가 인간을 학살한다. 2016년작 < 셀: 인류 최후의 날 >은 핸드폰의 전자파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설정이었고, < 크리스틴 >은 저주받은 자동차의 이야기다. 이렇게 하드웨어가 인간을 공격한다는 소재는 그야말로 B급 영화를 위해 최적화돼 있다. 진짜 사물을 배치하고 약간의 장치만 하면 되니까 아트 디렉션에서도 큰돈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단편 「트럭」은 1980년대와 90년대에 두 번이나 영화화됐는데 그중 먼저 만들어진 < 맥시멈 오버드라이브 >는 킹이 직접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전문가 평가와 박스오피스 성적 모두 실패한 것으로 유명하다. 마이클 크라이튼이 < 웨스트월드 >나 < 코마 > 등에서 감독으로서의 재능 역시 증명한 것과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언제나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들의 안정적 간택을 받을만한 정서로 무장했던 마이클 크라이튼에 비해 스티븐 킹은 스스로 B급 정서를 전혀 숨기지 않았다. <맥시멈 오버드라이브>는 한마디로 러스 마이어의 그라인드하우스 영화들, 로저 코먼이나 조지 A 로메로의 저예산 호러들과 그 맥락을 함께 한다. 그 유명한 콜라 자판기의 공격 신이라던가 신체 절단 장면들은 스티븐 킹이 이 영화를 어떤 태도로 만들었는지 증명하는 부분이다. 충격적인 장면을 무표정하게, 때로 잔혹 유머로 버무리는 애티튜드는 킹이 소설을 집필하는 자세와도 동기를 이룬다. <맥시멈 오버드라이브>의 가장 후련한 부분은 바로 음악이다. 작가들만으로 이뤄진 밴드 ‘Rock Bottom Remainders’의 멤버이기도 한 스티븐 킹은 AC/DC의 노래들로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채웠다. 특히 주제곡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Who Made Who’의 호방함은 이 영화가 지닌 자세와 격을 함께 한다. 그렇게 할리우드의 평범한 감독이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은 대단했지만 안타깝게도 배우를 보는 눈과 다루는 방법에서 미숙함을 드러내는 바람에 이 작품은 나 같은 변태들만 좋아하는 컬트영화가 돼 버렸다. 스티븐 킹의 영화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의 원작으로 누구나 좋아하는 영화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좋아하지는 않는 영화도 만들 수 있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영화가 나온다고 해도 하나도 놀랍거나 안타깝지 않다. 그 무한한 의외성. 그래서 언제나 스티븐 킹의 영화를 기다리게 된다.
스티븐 킹의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근심이 앞선다. 만화식 표현으로, 얼굴에 빗금이 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괜찮을까? 소설을 영화화면서 원작보다 재밌기는 쉽지 않다고들 하는, 그런 일반론과는 또 다르다. 스티븐 킹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중 한국에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은 < 캐리 >(1976) < 샤이닝 >(1980) < 쇼생크 탈출 >(1994) < 스탠 바이 미 >(1986) < 그린 마일 >(1999) 정도인데, 이 중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이 독보적인 브랜드로 기능하는 공포 장르에 속한 것은 <캐리>와 <샤이닝> 정도다(참고로 스티븐 킹 소설을 영화화한 중 가장 히트를 기록한 작품은 <그린 마일>이다). 이쯤에서 스티븐 킹의 팬이라면 공포물을 포함한 영화 몇 편은 더 꼽을 수 있으리라. < 미스트 >(2007) <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Apt Pupil >(1998) < 미져리 >(1990)가 그런 영화들이 될 것이며, < 크리스틴 >(1983) < 쿠조 >(1983) < 공포의 묘지 Pet Sematary >(1989)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2017년 8월 현재, IMDb(imdb.com)에 스티븐 킹의 이름이 영상화(애니메이션, 단편, TV 시리즈, 후반 작업 중인 미개봉작, 북미대륙 외의 지역 작품 포함)된 작품 크레디트에 오른 경우는 239편에 이른다. 인터넷 매체 마켓워치(marketwatch.com)는 “왜 큰 예산이 스티븐 킹 영화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나- 스티븐 킹은 이전 어느 때보다 할리우드에서 뜨겁다. 다만 그에게 블록버스터 대우는 하지 말 것”이라는 기사를 썼다. 스티븐 킹의 장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61편의 영화와 28편의 TV 영화를 분석한 결과다. < 다크 타워: 희망의 탑 >의 스코어가 결국 예상을 밑돌자 이런 기사가 나온 것이다. “많은 영화들은, <다크 타워: 희망의 탑>처럼,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기대를 밑돌았다.” 영화 < 그것 >을 비롯해 TV 시리즈 <미스터 메르세데스>와 넷플릭스 영화 <제럴드의 게임> <1922>도 올해 선보인다. 이 기사는 예산이 늘어날수록 상업적 운명은 더 암울하다는 웃지 못할 분석을 곁들인다. 심지어 이런 징크스가 영화 뿐 아니라 TV 시리즈에도 적용된다며 <11/22/63>의 예를 들었다. 스티븐 킹은 2008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기고한 글에서 “나를 정말 겁먹게 한 열 편 남짓한 영화를 떠올려보면, 가장 좋은 공포영화란 누군가의 지하실이나 차고에서 만들어낸 특수효과로 이루어진 저예산 영화들이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데, 참고로 말하면 스티븐 킹은 같은 매체에 오래 칼럼을 연재하면서 자신이 뽑은 자기 소설 영화판 탑10을 꼽으며 < 캐리 >와 < 샤이닝 >을 제외시켰다. <공포의 묘지>는 포함시켰는데, 이 작품으로 말하면 스티븐 킹 자신이 각본작업에 참여했다. 기대가 컸고 실망도 컸으며 어쨌든 스티븐 킹은 < 공포의 묘지 >를 좋아한다. 빼어나게 재미있는 (인기도 있는) 원작 소설이 있으면 영화로 만들기 더 쉽지 않을까? 물으나 마나인 듯한 이 질문은, 그러나, 답하기 영 쉽지 않다. 한국에서야 스티븐 킹이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늘 그의 신간이 주요 매체에서 리뷰되고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오른다(참고로 한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스티븐 킹의 책은 소설이 아닌 에세이 「유혹하는 글쓰기」다). “그는 호러의 제왕이 아니었다. 킹은 이야기의 제왕이다”라고 소설가 정유정은 ‘정유정 작가가 소개하는 스티븐 킹- 제왕을 가슴에 안다’라는 글에서 쓴 바 있는데, 스티븐 킹의 공포물이 유독 원작에 비해 박한 평가를 받거나 부족하게 만들어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스티븐 킹 특유의 공포가 문학적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의 소설을 영화로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진짜 같은 특수효과나 영상기술이 아닌지 모른다. 스티븐 킹의 소설이 나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행복/낙관과 불행/공포를 으깨 하나로 뭉쳐놓고는 나머지는 책 읽는 내가 알아서 상상하게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었다. 「샤이닝」의 ‘아버지’ 잭은 어린 시절을 이렇게 떠올린다. “아버지와 그의 관계는 아름답게 피어날 수도 있었지만, 다 피고 나니 속이 썩어 있는 꽃과도 같은 것이었다. 일곱 살이 되었을 때까지 잭은 두드려 맞고 멍들고 이따금 눈까지 멍들어도, 키 크고 배 나온 아버지를 아무런 미움 없이 열렬히 사랑했다.” 이 기억은 행복인가 불행인가. 둘 다다. 행복을 소환하면 불행이 따라오고 불행을 억누르면 행복도 억눌린다. 그의 이야기에는 가족 단위의(최소한 가족의 선명한 그림자 안에 있는) 주인공들이 많고, “할은 가슴에 걸리는 뭔가가 느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에 수록된 「원숭이」 중에서) 같은 문장이 나오면 이제 진짜 무서운 게 나오리라는 예감에 떨게 된다. 스티븐 킹은 책을 읽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공포의 세계를, 읽는 사람이 저마다의 가장 두려운 기억을 소환해 거기에 자신의 무언가를 걸게 만드는 글을 써왔다. “많은 사람들은 내 이야기가 무섭다고 하지만, 이야기의 결론과 상관없이, 나는 조금도 웃음을 유발하지 않는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라고 스티븐 킹은 쓴 적이 있다. 그게 바로 댁이 무서운 이유야 이 양반아, 하고, 춥지도 않은데 팔을 쓸어내리며 그를 타박하게 된다. 이 기분을 영상으로 표현하기, 만만할 리가 없잖나. 그러니 나는 태어나 생일파티에 불러본 적도 없는 피에로를 한평생 무서워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연관글] #0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by 유성관(한국영상자료원) #1 암흑의 탑으로 향하는 머나먼 길 by 장성주(다크 타워 시리즈 번역자) #2 스티븐 킹의 작품을 영상화 하기 힘든 문제에 대하여 by 이다혜 (북칼럼니스트) #3 아무나 좋아하는, 혹은 아무나 좋아할 수 없는 by 조원희 (영화감독)
소설가 스티븐 킹이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유명해졌을까. 이런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스티븐 킹의 유명세에 비해 한국에서 도통 그의 번역된 소설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시기에 그를 인식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는 영화였다. < 캐리 >(1976), < 샤이닝 >(1980), < 스탠 바이 미 >(1986), < 런닝 맨 >(1987), < 공포의 묘지 Pet Sematary >(1989), < 미져리 >(1990)의 원작자가 모두 한 사람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면서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을 각인했고, 그의 책들을 찾아보려는데 번역본이 왜 이리 없단 말인가, 라는 놀라움과 탄식을 동시에 내뱉어야 했던, 아마도 그 시기는 1990년대 초중반이었을 것이다. 대학 도서관에서 검색 키워드로 ‘스티븐 킹’을 넣고도 그 결과가 허름해 절망하며 겨우 빌린 옛날 판본의 「캐리」를 기숙사 침대 위에서 읽으며 소름 끼쳐 했던 기억이나, 피터 스트라우브와 공저이긴 하지만 비로소 신간 소식으로 스티븐 킹의 소설이 나왔다는 신문 단신을 보고 기쁨에 복받쳐 곧바로 서점에 달려가 사버렸던 「부적 The Talisman」에 대한 기억, 대학교 교직원이 「신들린 도시 It」 읽는 걸 보고 동지를 발견한 듯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날렸으나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던 순간, 후배에게 「멈춰버린 시간 The Langoliers」(「스티븐 킹, 미스터리 환상특급 Four Past Midnight」에 실린 중편)의 줄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이야기해줬던 심야의 자취방 추억. 이때만 하더라도 이 글로벌 스타 작가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나만의 작가이기도 했다. 주변에 아는 이가 없었다. 그러다 슬슬 많은 스티븐 킹의 소설들이 번역되어 나오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프랭크 다라본트의 <쇼생크 탈출>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후, 2000년대 초 황금가지에서 스티븐 킹의 대표작들을 시리즈로 내놓으면서 나는 나만의 작가를 놔줄 수밖에 없었다. 예정된,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로부터도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그는 지금도 내가 읽는 속도보다 더 빨리 글을 쓰는 건 아닌가 할 정도로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성공적이거나 실망스럽거나 관계없이 그의 원작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들도 매년 시도되는 중이다. 특히 올해 여름은 빌 호지스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엔드 오브 왓치」가 번역 출간되었고, 미국에서는 1부인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드라마가 막 시작되었다. 8부작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다크 타워」를 영화화한 작품이 곧 개봉되며 9월이면 많은 사람들이 꼽는 그의 대표작 < 그것 >이 이전 TV 미니시리즈 이후로 처음 영화화되어 개봉한다. 스티븐 킹의 단편 <더 미스트>를 10부작으로 각색한 TV 시리즈가 현재 미국에서 방영 중이고, 이 드라마는 국내에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8월 중 공개될 예정이다. 자 다시, 약간 변형된 질문. 소설가 스티븐 킹은 이제 한국에서 유명한가. 말해 뭐하겠는가. 오래된 스티븐 킹의 팬으로서 이런 여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고 그래서 KMDb에 미니 연재를 기획하게 되었다. ‘스티븐 킹, 여름, 영화’라는 두루뭉수리 한 칼럼 주제 아래 세 명의 필자를 섭외했다. 「다크 타워」 시리즈를 번역한 장성주 번역가의 「다크 타워」에 대한 글을 시작으로, 이다혜 북칼럼니스트의 ‘스티븐 킹의 무시무시함을 의외로 영상으로 옮기기 힘든 이유’와 그다음으로 조원희 감독의 ‘그럼에도 내가 사랑하는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들’에 대한 글이 1주일에 한 편씩 차례로 올라간다. 모두 내로라하는 스티븐 킹의 팬이다. 올여름은 유독 비가 많다. 어둡고 음산한 여름 하늘 아래 여러분은 검은빛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꼬마아이의 한쪽 팔을 뜯어간 피에로가 도사리고 있는 검은 하수구, 돼지 피를 뒤집어쓴 십대 여자아이가 살육을 벌이기 직전 번쩍이는 검은색 눈동자, 리타 헤이워드의 대형 포스터 뒤에 은밀하게 감춰진 검은 동굴, 죽은 시체를 살려 돌려보내는 어둡고 깊은 인디언 묘지, 끝없이 걸어야 하는 소년들을 향해 장전되어있는 검은색 총구, 1963년의 역사를 바꿔버린 후 도착한 현재의 검게 휘몰아치는 하늘, 끝없이 희지만 암흑의 그림자로 가득한 오버룩 호텔의 미로 정원, 사랑한다 말하며 도끼로 내려찍는 애니의 검은 입, 가족에게 떨어져 길을 잃은 소녀가 헤매는 암흑의 숲, 전기의 힘으로 죽음을 초월하려는 목사가 불러내는 어둡고 끔찍한 사후 세계, 진흙이 잔뜩 묻은 이불이 별도 없는 시커먼 한밤에 선사하는 기이하고도 둔탁한 공포. 예상했겠지만 이 목록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