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er
- 감독
- 박한빈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박채희, 유영빈, 허진영, 임정은
1980년에 출판된 미국 인명사전 「마르퀴스 후스 후 인 아메리카 Marquis Who’s Who in America」에는 렌 라이(1901-1980)가 ‘모션 컴포저(Motion Composer)’로 등재되어 있다. 직역하면 ‘동작(움직임) 작곡가’가 될 이 합성어는 드로잉, 회화, 직물염색(납염, Batik), 사진, 영화, 키네틱 조각, 시와 산문 등의 매체로 작업해왔던 라이가 본인의 작업을 ‘움직임의 형상(figure of motion)’으로 압축해서 표현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를 대표하는 단어의 조합으로서 매우 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모션 컴포저’가 다양한 매체를 가로지르며 운동의 리듬을 탐구했던 라이를 대변한다면, 1958년에 첫 상영되었던 <프리 래디컬스 Free Radicals>는 그의 작업 이력 전체를 함축하고 대표하는 작품이다. <프리 래디컬스>를 라이의 대표작으로 꼽는 이유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열할 수 있다. 프리 래디컬스는 화학용어로서 유리기라고 번역되는데, 홀전자(unpaired electron)를 갖는 원자나 분자를 의미한다. 보통의 원자나 분자에서 전자는 회전 방향이 반대인 두 개의 전자가 쌍을 이루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빛이나 열과 같은 에너지가 가해져서 전자의 결합이 끊어지면 홀전자가 되고, 이는 다른 원소들과의 반응을 촉진하는 불안정한 상태를 야기한다. 라이는 전 작업을 걸쳐서 신체와 물질을 탐구했었고, 자신의 창작이론을 진화론, 신경과학, 양자역학, 유전학에서의 발견들을 통해 확인하고 설명하는 것을 좋아했다. 라이는 신체와 물질 각각 뿐만 아니라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교환 역시 에너지로 생각했고 안무를 에너지에 헌정된 예술로 간주했다. 그가 자주 썼던 용어로 표현하면, 인간의 ‘오래된 뇌(old brain, 이성이나 문자를 거치지 않고 직관적인 앎을 가능하게 하는 몸의 깊숙한 곳)’와 유전자(태고부터 내려오는 인간의 활동들이 각인된 저장소)는 사물의 운동(에너지)와 공감각적으로 공감(empathy)한다. 라이의 필모그래피에서 색채, 댄스, 리듬 등의 단어가 눈에 띄는 것은 운동에 대한 그의 관심을 반영한다. 그러나 <프리 래디컬스>에서는 제목이 뜻하듯, 하나의 형상이 전개되고 다른 형상으로 변주되는 과정이 화학적인 촉발과 반응처럼 구성되었고, 아프리카 바기르미족(Bagirmi)의 드럼 음악(인간의 원초적 에너지)에 맞춰 안무 되었다는 점에서 라이의 관심사가 응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프리 래디컬스> 별표 시퀀스의 일부 출처: http://thethird-eye.co.uk/free-radicals-by-len-lye <프리 래디컬스>를 라이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제작을 위한 재정적 후원을 받는 것을 포기하고 영화가 예술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다소 결연한 의지로 만들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라이의 영화들은 제작비의 출처에 따라 여섯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런던 필름 소사이어티(the London Film Society, 1925년에 설립되어 1939년까지 지속되었던 영국 최초의 영화 협회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캐럴 리드와 같은 감독들도 회원이었다)로부터 제작비 일부를 충당했던 1929-34년, (2) 영국 중앙우체국(GPO, the General Post Office)의 영화과 등에서 제작비 지원을 받았던 1935-40년, (3) 영국 정보부(MOI, the Ministry of Information)의 사실주의자 영화과(Realist Film Unit)에 소속되어 나치에 대항하는 선전영화를 만들었던 1941-43년(공교롭게도 MOI는 라이의 영화를 보고 선전영화는 더 직설적이고 덜 영화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4) 1944년에 뉴욕으로 옮겨서 <마치 오브 타임 the March of Time> (타임 사에서 제작했던 단편 뉴스릴 영화 시리즈로 극장에서 본영화 전에 상영되었다) 시리즈의 연출가로 뉴스릴 영화를 만들었던 1944-51년, (5) 제작비 대부분을 스스로 충당했던 1952-59년, (6) 키네틱 조각을 만들다가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그의 고국 뉴질랜드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던 1979-80년이다. (지면의 한계로 작품의 상세한 목록을 생략한다. http://sensesofcinema.com/2002/feature-articles/lye-2/#filmo을 참고하기 바란다.) 1945년 경 <마치 오브 타임>의 사무실에 있는 렌 라이 사진의 왼쪽은 라이가 디자인한 시리즈의 로고 출처: http://www.art-newzealand.com/Issue101/lye.htm <마치 오브 타임> 시리즈의 일부를 연출했던 시기까지 라이는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안정되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존 그리어슨이 이끌던 GPO의 영화과로부터 지원을 받게 되면서, 일 년에 두 편 정도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시기 작품들의 장르를 엄밀히 따지자면 광고에 해당한다. 작품 제작을 지원했던 단체 혹은 회사들(예를 들면, 임페리얼 Imperial 항공사)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어슨은 작품 제작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데 있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만을 달았을 뿐, 라이가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었다. 만약 라이의 대표작을 색채의 관점에서 꼽아야 한다면, 단연코 <컬러 박스 Colour Box>(1935)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거의’ 처음으로 필름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거의’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기록상으로 이탈리아 미래파 작가인 아르날도 지나(Arnaldo Ginna)와 브루노 코라(Bruno Corra)가 1908년 필름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착상을 했고, 1910년에 네 편의 추상영화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1910년대에 한스 스톨텐베르그(Hans Stoltenberg)나 앙리 스토크(Henri Storck)도 유사한 방식으로 작업했다는 기록이 있다. 라이는 필름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다이렉트(direct) 필름’이라고 불렀다. 이를 지칭하는 유사한 용어로는 ‘카메라 없는 영화(Cameraless film)’나 ‘필름 위에 그린 애니메이션(Drawn-on-film animation)’이 있고, 좀 더 폭넓게는 ‘핸드메이드 필름(Handmade film)’도 해당된다. <컬러 박스>는 영국 전역에서 수백만 명에게 보였기 때문에, 대중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첫 다이렉트 필름이라고 할 수 있다. (<컬러 박스>는 1935년 브뤼셀 국제영화제의 판타지 영화 부문에서 명예상(Medal of Honor)을 받았고, 이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때 영화를 본 나치 관객들은 오스카 피싱거의 추상영화에 비해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혹평했다. 형태가 지나치게 자유분방하고 작품에 사용된 재즈 음악이 흑인적(negroid)이라는 이유에서였다.) 1935년에 영국에서 이 작품을 본 노만 맥라렌(1936년부터 1939년까지 GPO에서 일했다)은 “여기 손으로 그린(handpainted) 영화의 개척자가 있다...그것은 마치 내게 꿈이 실현되는 것과 같았다...렌 라이는 그 방식을 능숙하고 훌륭하게 보여주었다”라고 말했었다. 라이는 이 시기에 듀페이컬러(Dufaycolor), 가스파르컬러(Gasparcolor), 테크니컬러(Technicolor)와 같은 컬러 필름들을 실험하는 데 집중했었다. <컬러 박스>의 스틸 이미지 출처: https://filmcolors.org/2014/04/18/dufaycolor-films-by-len-lye 1951년에 라이가 <마치 오브 타임>을 그만두고, 1952년에 자신과 부인 앤(Ann)만 속했던 영화사의 이름을 다이렉트 필름으로 정했던 것은 카메라로 찍는 영화를 그만두고, 다시 손으로 그리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았다. 어쩌면 라이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안정되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환경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그의 영화사 이름에 담았을지도 모른다. 라이는 한스 리히터의 초청을 받아서 뉴욕시립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뒤이어 콜롬비아대학, 뉴욕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그러나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라이는 다이렉트 필름을 설립하고 나서 첫 영화로 <컬러 크라이 Color Cry>(1952)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라이의 영화 작품 포맷은 16mm로 바뀌었다.) 이 영화는 라이가 틈틈이 해왔던 포토그램(photogram, 필름 위에 사물 등을 올려놓고 빛에 잠깐 노출시켜서 상을 맺게 하는 방법) 작품들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라이는 모슬린 천에 새겨진 점(dot) 패턴을 마음에 들어 했고, 포토그램 방식으로 필름 위에 점 패턴을 복사했다. 이때 라이가 품고 있던 생각은 “춤추는 원자”였다. 원자에 대한 관심은 그가 <마치 오브 타임>을 연출할 당시에 시리즈 중의 하나였던, 아인슈타인과의 인터뷰를 담은 영화를 보고 난 이후부터 커져 왔다. 라이는 다이렉트 필름의 두 번째 작품으로 <리듬 Rhythm>(1957)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크라이슬러 자동차 공장을 찍은 푸티지들을 점프 컷으로 구성해 만든 1분 길이의 파운드푸티지 작품이다. 이 작품의 도입부와 후반부에도 점과 선의 패턴이 나온다. <리듬>은 1957년 뉴욕 아트 디렉터스 페스티벌(New York Arts Directors Festival)의 텔레비전 광고 부문에서 수상했지만, 크라이슬러사가 영화에 사용된 음악을 싫어했고 광고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상이 취소되었다. 1957년에 라이가 <프리 래디컬스>를 만들 전의 상황이 이러했다. 그런데 1958년 브뤼셀 엑스포와 함께 열릴 예정이었던 실험영화제 EXPRMNTL로부터 작품을 보내달라는 초청을 1957년에 받았다. (EXPRMNTL은 일명 크노케-르-주트 실험영화제이다. 이 영화제는 1958년부터 74년까지 총 다섯 번 개최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던 실험영화작가들이 상호 교류를 시작하면서 서로를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영화제가 우리에게 좀 남다를 수 있는 이유는 동시대적인 의미에서 실험영화를 사용한-필자가 현재까지 확인했던바 내에서-첫 공식기록으로, 1957년 6월 23일 자 「국제실험영화제」라는 동아일보 기사가 해당 영화제의 작품 공모를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필자가 본 연재에서 맡은 유현목의 <손>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수도 있을 것 같다.) 라이는 초청을 받고 약 8개월간 <프리 래디컬스>에 집중했었다. 이 작품은 라이가 품어왔던 ‘춤추는 원자’의 실현이자, 블랙 리더(leader)로만 만든 첫 영화이다. 라이는 16mm 블랙 리더의 이멀전(emulsion)을 일상의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해서 긁어내어 형상을 새겨 넣었다. 필름 이멀전을 벗겨내어 만드는 영화를 ‘스크래치(scratch) 필름’이라고 한다. <프리 래디컬스>는 스크래치 필름이기 때문에, 곧잘 맥라렌의 <블링키티 블랭크 Blinkity Blank>(1955)와 비교되기도 하고 이 작품에 라이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맥라렌의 작품은 검은 배경에 색채가 강조되는 작품이고, 라이의 <프리 래디컬스>는 흑백으로 필름의 투명한 부분을 통과하는 빛이 스크린에 투사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스크래치는 라이가 이전에도 사용했던 방식으로, 영향 관계라기보다는 작업 태도를 공유하는 작가들에서 발견될 수 있는 유사성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라이는 <프리 래디컬스>로 EXPRMNTL의 2등 상을 받았다. 대상은 폴란드의 발레리안 보르보츠크(Walerian Borowczyk)와 얀 레니차(Jan Lenica)의 <돔 Dom>(1958)에 돌아갔다. 심사위원은 만 레이, 존 그리어슨, 노만 맥라렌, 알렉산더 알렉세예프, 에드가 바레즈였다. 라이는 상금으로 5천 달러를 받았다. 이 성과에 힘입어 라이는 <프리 래디컬스>가 미국 내에서 성공적으로 배급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공식 상영된 곳은 아모스 보겔이 개최했던 ‘시네마 16’뿐이었고, 상영료로 50달러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 라이는 제작 후원을 구하고 실험적인 영화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기 위해 마지막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고(비서로부터 답장을 받긴 했다), 미국 해외공보처, 문화교류재단 등에도 편지를 보냈지만 성과는 없었다. 뉴욕현대미술관에 <프리 래디컬스> 프린트 가격으로 4천 달러를 제시했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라이는 1959년에 「영화는 예술인가? Is Film Art?」라는 글을 쓰고 영화작가로서 파업을 선언한 뒤 키네틱 조각으로 전향했다. 1960년대 피터 쿠벨카는 여러 차례 라이에게 회고전을 열고 싶다고 요청하였으나, 그는 자신은 키네틱 예술가라며 번번이 거절했다. 이와 같이 <프리 래디컬스>는 일련의 영화작업이 수렴되었던 마침표이자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기 위한 쉼표와 같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라이의 대표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프리 래디컬스>가 라이의 작품 이력에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가 1979년에 키네틱 조각에서 영화로 돌아와 다시 대면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프리 래디컬스>는 1979년에 라이가 재편집했던 판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라이가 키네틱 조각을 경유하면서 받은 영향들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라이의 키네틱 조각 작품들의 제목과 작업 방식을 보면 차라리 <프리 래디컬스>가 이후의 작품들을 예비했다고 볼 수 있다. 라이가 품었던 ‘춤추는 원자’라는 생각은 그의 키네틱 조각들에서 더욱 다채롭게 전개되었다. 라이의 키네틱 조각은 최소한 32개의 작품이 만들어졌거나 고안되었다. 이 작품들의 목록은 새로 발굴되는 자료가 추가되면서 지금도 확장되고 있는데, 그중에 작품들의 제목을 일부 나열하면 <원자적 춤 Atomic Dance> <벨 막대기 Bell Wand> <춤추는 원자 Dancing Atom>, <뒤집기와 두 개의 회오리 Flip and Two Twisters(일명 삼부작 Trilogy)> <우주 Universe(일명 루프 Loop)> 등이다. 라이는 이 개별 작품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한데 모아놓고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일부에서 번개의 신으로 숭배되었던 샹고(Shango)의 신전을 만들려고 했다. 라이는 개별 조각 작품들의 복제품을 만들었을 때, 같은 스케일로 제작한 적이 없고 늘 변주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제목도 하나 이상인 경우가 많다. 관람객이 촬영한 <우주> 관람객이 촬영한 <뒤집기와 두 개의 회오리> 라이는 키네틱 조각을 만들 때, 그가 낙서(doodling)라고 부는 행위에서부터 출발했다. 낙서는 재료를 만지고 흔들거나 휘어보면서, 재료에서부터 파생되는 운동(에너지)의 형상을 몸으로 느껴보는 행위를 의미했다. 낙서는 그가 영화를 만들었을 때에도 작업 방식을 설명하는 핵심어였다. 라이는 조그만 필름 표면 위에 일상의 다양한 도구들로 그리거나 긁어내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재료를 느끼며 형상을 낙서해나갔다. 낙서는 초현실주의의 자유연상과 유사한 방법인데, 라이가 뉴질랜드에서 런던으로 이주했던 직후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했던 영향이 반영된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라이는 초현실주의가 지나치게 문자적이고 상징적이라고 비판했고 언제나 몸을 중심에 놓고자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라이의 낙서는 추상표현주의자들이 그리는 행위를 강조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에 있다. 라이가 주로 사용했던 재료는 금속으로, 가늘고 긴 조각(strip), 막대, 판(sheet), 롤(roll) 등의 기본 형태들을 선호했다. 이러한 형태들은 필름 재료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키네틱 조각에서도 필름의 물성 자체에 대한 라이의 관심이 연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라이는 금속 재료로 기본 형태를 만든 뒤에 모터나 전자석을 붙여서 움직이게 만들었는데, 이 과정을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렀다. 또한 그의 키네틱 작품들은 지속시간이 그의 영화들의 평균과 같이 4분에서 5분 정도였다. 라이는 재료에 열처리를 하거나 표면을 사포로 긁어내서 질감에 변형을 주고, 이에 따라 반사되는 빛의 차이들을 실험했다. 재료의 소리도 중요했다. 라이는 키넥틱 조각품에서 나는 소리들을 따로 녹음에서 사운드트랙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 사운드트랙은 아이튠즈에서 판매 중이다.) 그는 키네틱 작품을 전시할 때, 각각의 작품들에서 반사되는 빛과 소리가 대위(counterpoint)를 이루도록 배치했다. 이러한 작업 방식들은 아래에 삽입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에 잘 드러나 있다. [영상 3] <낙서: 렌 라이의 인상들 Doodlin’: Impressions of Len Lye>(1987) [영상 4] <뒤집기와 두 개의 회오리 Flip & Two Twisters>(1995) 라이는 <프리 래디컬스>를 재편집한 이후 <공간 속의 소립자들 Particles in Space>(1979)을 만들었다. 평자들에 따라서 후자를 더 중요한 작품으로 간주하기도 하는데, 스탠 브래키지는 특히 이 작품을 좋아했다. 물론 <프리 래디컬스>에 대해 “믿을 수 없이 엄청난 걸작”이라는 평가도 빼놓지 않았다. <공간 속의 소립자들>에서 사용된 소리는 라이의 키네틱 조각에서 나는 소리들이 녹음된 것이다. <프리 래디컬스>와 <공간 속의 소립자들> 사이에 라이의 키네틱 조각을 놓으면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떠오른다. 스케일이다. 개인적으로 <프리 래디컬스>를 라이의 대표작으로 꼽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그 답을 스케일에 대한 경이로운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라이는 소립자의 운동과 태양의 운동은 에너지란 측면에서 같고, 서로 통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영화로 번역하면 16mm의 작은 표면 위에 새겨진 미세한 운동은 영사기를 통해 투사되는 이미지의 운동과 에너지라는 측면에서 같다. 다만 필름이 스크린에 투사되어 확장되었을 때, 필름 표면 위의 미세한 운동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증폭되고, 기념비적인 스케일의 움직이는 조각이 된다. 조각은 삼차원이고 영화 스크린은 평면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라이가 필름 위에 몸으로 새긴, 그래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힘의 차이는 필름 이멀전의 두께를 다르게 만들고, 이는 스크린 상에서 깊이의 환영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머리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케일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몸으로 반복해서 느껴야만 터득될 수 있다. 영화의 초창기, 그토록 많은 조형 예술가들이 영화에 매료되었던 것은 기념비적인 조각을 구현할 때 직면해야 하는 수많은 현실적 장애들을 영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매혹적이고 경이로운 경험은 오늘날 컴퓨터로 영화를 만들고 보던 학생이 영화제의 상영작으로 꼽혀 처음으로 자신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을 때 느끼는 당혹감이 되어버렸다. 대부분 이 당혹감을 자신의 미숙함을 탓하며 부끄러움 속에 감추어버리지만, 사실 이러한 스케일의 차이는 탐구되어야 하는 영역에 속한다. <프리 래디컬스>를 볼 때에는 가능한 작은 스크린을 통해서 먼저 본 이후(만약 스마트폰에서 본다면 가급적 세로로), 최대한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보기를 권하고 싶다. ※ 이 글에서 언급된 영화들과 렌 라이에 관한 사실들은 로저 호록스(Roger Horrocks)가 2001년에 펴낸 「렌 라이: 자서전 Len Lye: A Biography」과 2010년에 출간한 「움직이는 예술: 렌 라이의 작품 Art that Moves: The Work of Len Lye」을 참고하여 정리한 것이다. 렌 라이에 관한 문헌 목록은 http://sensesofcinema.com/2007/great-directors/lye/#film에 잘 정리되어 있다.
10년 전인 2003년, 한국영화는 절정이었다. < 지구를 지켜라! >로 시작해 < 살인의 추억 >과 < 장화, 홍련 >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와 < 황산벌 > < 원더풀 데이즈 > < 바람난 가족 >과 < 싱글즈 > < 실미도 >가 함께 개봉됐던 해. 양적인 팽창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공까지 이뤄낸 황금기였다. 그리고 그 정점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 올드보이 >가 있었다. 복수에 관한 지독하고 놀라운 영화. 연출과 연기, 각본, 촬영과 함께 잊혀지지 않는 매력을 선사했던 건 다채로우면서 세련된 음악의 힘도 한몫했다. 조영욱 음악감독은 3명의 작곡가에게 스코어를 부탁했고, 그중 가장 많은 곡을 매만진 심현정 은 이제 막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두 편의 상업영화에 참여한 신예 음악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유명한 장도리 액션 씬에 쓰여 처연한 인상을 남긴 대수 테마 ‘The Old Boy’와 유난히도 가슴 시린 슬픔과 아름다움을 선사한 미도 테마 ‘The Last Waltz’ 등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보이며 세상에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다. 다음 해 < 누구나 비밀은 있다 >로 영화음악가로 홀로선 그녀는 지난 10년간 영화와 TV를 부지런히 오가며 ‘유일한’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독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대표적인 여성 영화음악가가 되었다. 특유의 섬세한 서정과 귀를 사로잡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보는 이로 하여금 손쉽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심현정의 영화음악은 영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포용력이 만나며 극대화된 결과다. 전국에 원빈 열풍을 불러일으킨 < 아저씨 >를 비롯해, 동화풍의 복고적 판타지 < 늑대소년 >뿐만 아니라 ‘눈물’ 시리즈로 명명된 일련의 MBC 고품격 다큐멘터리 < 북극의 눈물 > < 아마존의 눈물 > < 아프리카의 눈물 > <남극의 눈물> 등을 통해 흥행과 감동,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거머쥐는 기염도 토했다. 할리우드에서조차 드문 여성 작곡가라는 한계와 벽을 딛고 자신의 음악세계를 확고히 구현하고 있는 그녀에게 대한민국에서 여성 영화음악가로 활발히 활동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문득 직접 듣고 싶었다. 감독님 작품 중 가장 최근 개봉한 < 피 끓는 청춘 >은 코미디입니다. 그답게 음악이 굉장히 짧고 기능적으로 사용됐는데요, 그러면서도 < 그해 여름 >이나 <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처럼 서정적이고 복고적인 색채의 따뜻한 사운드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연우 감독님이 요구한 콘셉트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연우 감독님은 영화에서 음악이 주로 선곡 위주로 가길 바랐고, 작곡되는 음악으로는 피아노나 기타 솔로 정도의 깔끔한 사운드를 원하셨어요. 특히 작곡되어서 기능하는 음악의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면서도 효과적이고 깔끔한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신경 썼어요. 기타나 아코디언 등의 향수를 자극하는 악기를 사용해 복고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이 들도록 작업했죠. 스코어에서 특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요? 80년대라는 시대 배경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시대적인 느낌의 사운드를 만드는데 주력했어요. 영화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이 단편적으로 사용되어 다른 역할을 하는데요. 추억의 아코디언, 일진의 일렉 기타, 라틴풍의 기타, 미니멀한 피아노 등 다양한 음악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시대와 배경을 뛰어넘고 영화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음악이 필요했는데요. 특히 어린 시절의 애틋한 기억과 가족의 정이 느껴지는 단순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가 중요했어요. 이는 영화 후반에 피아노와 기타 등의 악기로 변주되기도 하는데 짧지만 임팩트 있는 멜로디를 만들려고 노력했죠. 본격적인 (청춘) 코미디 장르는 거의 처음이셨는데, 어떤 지점이 어려우셨는지요? 역시 코미디는 제게 여전히 어려운 장르더라고요. (웃음) 코미디를 즐겨보기도 하고, 보는 건 재밌고 즐거운데 이를 음악으로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제겐 아킬레스건과 같아요. 앞으로 많은 연습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해요. (웃음) 이연우 감독의 전작인 < 거북이 달린다 >도 그렇지만 충청도라는 지역적 특색에서 오는 사투리와 독특한 코미디의 리듬이 있었는데요, 그런 점들이 음악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건 없었나요? 감독님의 전작을 매우 재미있게 봤어요. 충청도라는 영화의 배경이 풋풋한 농촌이어서 구수한 시골스러움도 중요했지만,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현시대의 젊은 세대도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대적인 느낌이 들도록 음악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음악으로 충청도 사투리의 느낌을 구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 같아요. (웃음) <그해 여름>처럼 <피 끓는 청춘>도 삽입곡이 많이 쓰였습니다. 김창완 의 ‘개구쟁이’나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녀’, 팝송으로는 엔딩에 흐르는 스타쉽의 ‘Nothing’s gonna stop us now’와 롤러장에서 나온 놀란스의 ‘I’m in the Mood for Dancing’, 소풍 갔을 때 데비 분의 ‘You Light Up My Life’나 들고양이들의 ‘마음 약해서’, 조이의 ‘Touch By Touch’ 등... 선곡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건가요? 이연우 감독님은 학창시절 대중음악을 좋아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을 직접 선곡하셨는데요. 그러다 보니 고액의 저작권료를 지불해야하는 부담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풍성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했었죠. 선곡 음악은 주로 감독님께서 선정하셨고, 2곡 가량은 저희 음악 팀과 함께 리서치를 통해 선곡했어요. 작업하다 보니 80년대 음악에 또 심취하게 되더라고요. (웃음) 영화의 주제곡 ‘피 끓는 청춘’은 듀스의 이현도 씨 작업물인데요, <늑대소년>처럼 박보영 씨가 직접 주제가를 불렀고요. 주제가를 따로 의뢰하게 된 건지, 아님 <아저씨> 엔딩 곡처럼 아예 별개의 작업으로 이루어진 건지 궁금합니다. ‘피 끓는 청춘’ 곡은 이연우 감독님과 친분 있는 이현도 씨가 영화를 위해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이에요. 저와는 별도로 진행된 작업이었죠. 원래 같은 곡을 럼블피쉬가 불러서 영화 중 가능한 부분에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딱히 들어갈 자리를 찾지 못했고... 그래서 엔딩 크레딧에만 박보영 씨 보컬 버전이 들어가게 되었어요. 노래가 매우 깔끔하고 서정적이어서 마지막을 잘 장식해준 거 같아요.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화음악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 여쭤볼게요. 애초에 관심이 있으셨던가요? 제가 어렸을 때 피아노를 취미로 치고 있긴 했지만, 중학교 때 다니던 성당이 재건축을 하면서 오르간이 기증될 때였어요. 오르간이라는 악기가 당시 흔하지 않다 보니까 미사 때 연주해줄 반주자가 필요했고, 성당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몇몇 지망생을 데리고 오르간 교육을 시킨 거죠. 그때 오르간을 연주하며 음악이 너무 좋아져서 전공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 들었어요. 하지만 대학교의 오르간 학과는 모두 피아노로 시험을 쳤고, 피아노로 전공을 준비하던 사람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져 낙담하고 있을 때, 우연히 작곡과에 대한 권유를 받게 됐어요. 그때는 작곡과를 나와서 뭘 하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여성 작곡가’를 본 적이 없었는데, 레슨을 받고 공부를 하다 보니 매우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작곡과에 진학하게 됐어요. 4년의 학부를 마치고 졸업 연주를 하게 됐는데, 친구와 가족들을 잔뜩 초대해서 그동안 고생해서 만든 작품을 연주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안 좋은 거예요. 당시 조성이 아닌 무조의 현대음악을 작곡했는데 주로 공포 영화에 많이 들어가는 불협화음 류의 음악을 연주했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지금도 생소할 수 있는 거죠. 전 나름대로 고민해서 음악을 만들었는데 다들 편하게 와 닿지 않는 거예요. 그때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좀 더 사람들이 좋아하고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해야 겠다 하고 마음을 먹게 됐죠. 학사를 마치고 뉴욕대학교로 유학을 가게 됐어요. 마침 뉴욕대학교에 영화과가 있어서 그런지 영화음악 수업이 있더라고요. 수업을 듣고 과제를 발표하다 보니 재미도 있었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영상 음악에 재능이 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뉴욕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치고 2000년에 한국에 들어오니까 영화산업이 막 붐을 타기 시작했고, 전문 인력도 필요했던 때였어요. 특히 영화음악 분야에 인력이 필요했고 때마침 알맞은 공부를 하고 와서 그런지 빨리 입봉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영화를 처음 시작하신 것은 < H >하고 < 밀애 >였어요. 스텝으로 참여하셨는데 쟁쟁하고 유명한 조성우 와 조영욱 음악감독의 작품이었습니다.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 조성우 음악감독님을 처음 소개 받았는데요. 제가 뉴욕에 있을 때 이명세 감독님께서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개봉하고 뉴욕에 오셨어요. 그때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의가 있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영화를 찍으려면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해서 뉴욕에 거주하는 한국 유학생들과 어학 공부도 하시던 중에 저와도 알게 된 거죠. 친구 분이 안무가이셨고 일인 무용 공연을 하시는데 감독님이 직접 연출을 담당하셨죠. 공연 시 음악이 필요했고 유학생 소개로 저에게 음악을 의뢰하시어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답니다. 당시 이명세 감독님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비롯해서 조성우 음악감독님과 작업을 많이 하셨어요.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이명세 감독님이 조성우 음악감독님께 장문의 편지 즉 추천서를 써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성우 음악감독님 스튜디오에 가게 됐는데, 처음에는 그곳에 김준석 , 박기헌 , 최용락 음악감독과 같은 쟁쟁한 스텝들이 몇 년 동안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고, 저는 일종의 낙하산으로 들어가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웃음) 조성우 음악감독님이 당시 영상원에서 강의를 하셨는데 학생들과 단편영화를 작업하는 기회를 주셔서 경험을 쌓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조성우 음악감독님의 스튜디오 M&F에서 < H >를 작업할 수 있었답니다. 그러는 동안 제가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음악 강의를 했었는데 동료 시나리오 작가 강사분이 조영욱 음악감독을 소개해 주셔서 <밀애>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죠. <밀애> 에서 작곡은 한 곡했고 주로 클래식 음악의 편곡 또는 녹음진행을 담당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 이어지는 작품 <올드보이>에서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죠. 그러고 보니 < H >에서도 오르간곡이 있어요. 맞아요. 그 영화에 조승우 씨가 연기한 사이코패스 주인공이 있었고 종교적이거나 숭고한 느낌이 필요한 거 같더라고요. 급하게 조성우 음악감독이 작업하신 테마곡을 오르간 곡으로 편곡을 해서 영화에 사용했답니다. 그다음이 가장 유명한 <올드보이>네요. 어떻게 작업하시게 된 거예요? 얼떨결에 하게 됐죠. (웃음) 상업 영화음악으로는 <밀애>와 < H >에서 몇 곡밖에 작곡하지 않았는데, 조영욱 음악감독님께서 <올드보이> 시나리오를 주셨고 거의 메인 작곡가로서 일을 하게 된 거예요. 솔직히 작품 의뢰를 받고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껴서인지 굉장히 긴장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작품이 주는 영감이 컸기 때문에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여지까지 공부한 걸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하루에 잠도 4시간만 자면서 신나게 작업했나 봐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열심히 작업한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네요. (웃음) 최승현 음악감독이 4곡정도 작업하시고, 이지수 음악감독이 5곡정도 참여했는데, 어떤 식으로 공동 작업이 이루어진 건가요? 최승현 감독은 당시 < 빙우 >를 동시에 작업하고 있었고, 이지수 감독은 <실미도>를 작업하고 있었어요. 지수 씨는 재학생이었고 우진의 테마를 가지고 와서 영화에 여기저기 배치하되 조금씩 변형시켜서 입히게 되었어요.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작업을 병행하느라고 바빴지만 조금씩 서로 도와가며 <올드보이> 작업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제가 메인으로 작곡 작업을 하다 보니까, 막판에는 시간이 몰려서 친구에게 도움까지 요청해가면서 밤을 꼴딱 세며 악보 작업을 했던 기억도 있네요. 장도리 씬 ‘대수의 테마’는 장도리 씬에서 흘러요. 원래는 굉장히 많은 컷으로 이루어진 장면인데 롱테이크로 한 번에 찍으셨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합에 맞춘 음악이 아니라 느슨하게 진행되는데 처연한 장도리 신의 액션과 트럼펫이 잘 어울렸던 거 같은데 어떤 식으로 작업하셨는지? 그 시퀀스가 <올드보이> 영상물 중 가장 처음 받은 장면 중 하나에요. 그 시퀀스를 보면서 음악적 중심을 잡아나가기 시작하고 테마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죠. 장도리 액션씬을 보고 개인적으로 좀 어설프다 (웃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액션의 임팩트가 잘 안 느껴지고 주먹을 헛치는 대도 넘어지고 굉장히 길고 지루하게 싸움을 하는 듯이 느껴졌어요. 자기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과 끝도 없는 지리멸렬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게 처연하기도 하고 비장하기도 하다는데서 공감대가 형성된 거 같아요. 그래서 트럼펫을 선율로 하는 음악이 나왔고, 당시 제가 좋아했던 뮤지션인 린킨 파크와 필립 글래스의 느낌이 많이 묻어 나오기도 했던 거 같습니다. 이지수 음악감독의 ‘우진의 테마’와 심 감독님의 ‘미도의 테마’가 모두 왈츠에요. 서로 다른 두 곡이 모두 왈츠인데 애초에 그렇게 의도하신 건가요? 왈츠라는 설정은 조영욱 감독님의 의도였고 초반부터 제시한 지수 씨의 음악 ‘우진의 테마’가 왈츠였기에 저도 쓰게 됐던 거죠. 작곡 후 박찬욱 감독님이 ‘미도의 테마’를 들으시고 영화의 개미 시퀀스와 엔딩에 넣으시게 된 거랍니다. 수록곡 하나하나가 색채감이 뚜렷한 영화인 거 같아요. 박찬욱 감독이나 조영욱 음악감독이 제시한 콘셉트는 어떤 게 있었나요? 조영욱 음악감독님이 당시 보기용 샘플 음악 몇 곡을 제시했는데, 저는 대체로 템프(temporary) 트랙 즉 참고용 음악들은 음악적 색깔 정도만 참고하고 제 임의대로 작업한답니다. 주로 영상에 맞춰서 제가 받은 영감으로 작업하는 편이죠. 그래서 음악을 제가 하고 싶은 데로 미니멀리즘으로 작곡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굉장히 튄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수용하실 수 있었던 분이 박찬욱 감독님이셨던 거죠. 그런 음악은 일반적이지 않아서 영화에 잘 수용되지 않는 편인데 음악에 굉장히 조예가 깊으신 박찬욱 감독님은 잘 받아주시고 격려해 주셨답니다. 조영욱 음악감독님은 작곡과 출신이 아니신데, 보통 영화음악가 하면 작곡 전공을 떠올리잖아요? Composer와 Supervisor의 차이점인건지요? 조영욱 음악감독님은 뮤직 슈퍼바이저이신 거죠. 작곡은 안 하시지만 영화와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작곡자들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해서 영화음악을 만드세요. 그리고 그 전에는 < 접속 >과 같은 많은 영화에서는 최고의 선곡을 하셨죠. 예전에는 음악감독님들이 LP판을 잔뜩 가지고 와서 선곡하는 일을 많이 했다고 하던데 이를 뮤직 슈퍼바이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컴포져는 영상에 맞추어 음악을 작곡하는 일을 하죠. 요즘은 점점 할리우드식으로 변해 영상편집을 한 후에 음악을 작곡해서 입히는 일이 더 많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이 작업하신 최승현 음악감독과 이지수 음악감독도 영화음악가로 독립하시고, 심 감독님도 독립을 하셨는데, <올드보이>가 주는 의미가 남다를 거 같아요. <올드보이>는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그 작품 바로 다음 해에 입봉을 할 수 있었죠. (웃음) 30대 초반 너무 어릴 때에 홈런을 쳐서 그때는 나이 먹어 보이려고 나름 노력했던 거 같아요. <누구나 비밀은 있다>로 입봉을 하셨어요. 선 굵은 남성 멜로를 찍으시던 장현수 감독님이 연출 하셨는데, 특이하게 로맨틱 코미디로 하셨어요.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나요? 당시 < 이공 프로젝트 >라고 영화 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이 모여서 20분짜리 단편을 만드는 작업이 있었어요. 그 때 김의석 감독님의 단편을 작업하면서 장현수 감독님을 소개받고 알게 되었죠.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할리우드의 <어바웃 아담> 이라는 원작을 리메이크한 영화였어요. 감독님께서 영화의 음악을 할 수 있겠냐고, 자신 있냐고 질문하셨고 저는 자신은 없지만 한 번 해보겠다고 대답했는데 입봉을 하게 된 거죠. 지금까지 가장 공을 많이 들여서 만든 OST 중 하나로 기억되네요. 처음 입봉작이다 보니까 욕심을 가지고 음악 장르를 다 다르게 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션들과 작업하고, 처음이라 좌충우돌 힘들기도 했지만 매우 야심차고 뜻 깊은 작업이었답니다. 욕심이 묻어나는 이유가, 세 자매에게 각각 다른 장르를 주셨어요. 첫째가 탱고 살사와 같은 라틴, 둘째에게 클래시컬한 음악, 셋째가 재즈 가수였잖아요. 삽입곡도 굉장히 많은데 어떤 식으로 선곡하시고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시 입봉작이라 경험이 부족해 뮤직 슈퍼바이저로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있었어요. 광고 음악계의 선배로 평소 알고 있던 분이었는데, 선곡과 녹음 또는 편곡자 섭외와 같은 도움을 요청했죠. 영화중에서 세 자매 중 유부녀인 첫째 추상미 씨에게는 살사나 탱고의 라틴 스타일, 공부벌레 둘째 최지우 씨에게는 클래식 음악, 재즈가수였던 셋째 김효진 씨에겐 재즈음악으로 음악 컨셉을 잡았어요. 당시 재즈가수로 분했던 김효진 씨는 이미 임희정 재즈 가수에게서 서너 곡을 사사 받고 연습하고 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OST라고 할 수 있지요. 다음 작업하신 게 실질적으로는 < 사과 >였어요. 촬영이 2005년에 됐는데 3년이 미뤄졌어요. 힘드신 점은 없었나요? 이야기 자체는 홍상수 감독님 영화의 조금 더 심각한 버전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화에서 음악이 약간은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두드러지는 게 있어요. 소소한 일상의 관찰을 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밋밋하게 느껴질까 봐 음악으로 색을 강렬하게 팍팍 입혀준 거죠. 그때도 욕심을 내서 음악 공연장을 통째로 대관해서 현악기만 15명 이상 연주했고 제대로 멋진 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영화가 핸드헬드로 찍은 화면이라서 음악하고 붙여 놓으면 잘 어우러지는 거 같더라고요. 촬영을 손수범 감독이라고 뉴욕대학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는데 지금은 < 페티쉬 >로 감독 데뷔를 하셨죠.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촬영을 잘 한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한국에 와서 우연히 함께 작업하게 된 거에요. 영화전체를 다 핸드헬드로 작업해서 몸이 피로해 고생하셨다고 들었어요. <사과>에서 끝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쓰셨어요. 영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클래식 곡이기도 한데 이 곡을 선곡하신 이유가? 그 곡은 제가 선곡한 건 아니고요. 감독님이 선곡하셨어요. 음악감독님으로서 감독님이 미리 곡을 선곡한 경우 어떠신지? 영화와 잘 맞으면 좋아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영화랑 잘 안 맞으면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알려드리고 서로 최대한 의견 수렴이 잘 되도록 노력하죠. 그 영화(<사과>)에서는 직접 출연도 하셨어요. 오르간 반주자로 잠깐 출연했었죠. 정동교회에서 촬영하는데 바로 전날 촬영 일정이 결정된 거예요. 아침 일찍 촬영장에 갔는데 연주자 섭외며, 비용이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그냥 제가 직접 성가 복을 입고 반주하게 된 거죠. 지금도 교회에서 반주를 하니까 실은 오르간 반주가 제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또 현장에서는 음악감독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지루하지도 않고 즐거웠답니다. (웃음) 현장에도 자주 가세요? 자주는 못 가는데 적어도 한 번은 가려고 해요. 가서 영화 분위기도 파악하고 감독님과 스텝들과 얘기도 하며 서로 친해지게 된답니다. 물론 후반 작업 때 감독님을 자주 보지만 음악 작업에 집중하다보니까 워낙에 예민하고 긴장해 있을 때라 촬영할 때 보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없죠. 강이관 감독님하고는 < 시선 너머 >에서 <이빨 두 개>도 작업하셨어요. 호흡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강이관 감독님도 음악을 일반적이지 않게 가고 싶어 하는 감독 중 한분이세요. <이빨 두 개>도 어떻게 보면 밋밋할 수 있는데 음악으로 색깔을 강하게 집어넣었던 거 같아요. 제가 당시 <늑대소년>을 하는 바람에 <범죄소년> 을 함께 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둘 다 제목이 ‘소년’이네요. (웃음) 그럼 먼저 의뢰도 왔던 건가요? 강이관 감독은 가깝게 지내는 영화인 지인중 하나예요. <사과>가 몇 년 동안 하도 개봉을 못 하는 바람에 스텝들이 친해지게 됐죠. 당시 만나서 술 마시며 서로를 위로하며 가까워진 거 같아요. (웃음) 다음이 조근식 감독의 <그해 여름>이에요. 보면 ‘해변으로 가요’ ‘흔들리지 않게’ ‘ 고개’ ‘Yesterday When I was Young’ 등의 곡들이 쓰였는데, 사운드트랙에는 실려 있지 않아요. 저작권 때문이었나요? 그렇죠. 거기서 가장 중요한 노래가 엔딩에 흘렀던 ‘Yesterday When I was Young’ 저작권 때문에 앨범에 실리진 않았어요.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매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곡이죠. 선곡 시 수십 곡을 가지고 열댓 명이 모여서 오랜 시간 회의를 하면서 이게 좋으니 저게 좋으니 망설이다가 마지막으로 결정된 곡이었어요. 개인적으로 강력히 지지하던 곡이었고 영화의 엔딩곡이 된 거죠. 보면 작품들이 모두 과거와 연관된 작품들을 많이 하셨어요. <올드보이>도 그렇고 < 더 파이브 >도 그러고 <아저씨>와 <늑대소년>도 보면 과거 장면들이 중요하고요. < 조용한 세상 >도 과거와 왔다 갔다 하고요. 그러네요? 전 들어오는 영화를 주로 하는 편인데... 어떤 분은 제 음악을 듣고 ‘서사적’이라고 표현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걸 보면 그런 이야기가 처음은 아니네요. 그래서 감독님들이나 제작자 분들께서... 섭외를 저에게 하시나 봐요. 그러실 수도 있어요. 조의석 감독님의 <조용한 세상>을 다음으로 하셨는데요. 스릴러인데 스릴러 같지 않고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처음 좀도둑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코믹하기도 하고요. 어떤 의도로 작업을 하신 건지요? <조용한 세상> 영화는 음악 작업 과정이 쉽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스릴러인데 감동이 들어간 스릴러라서 차가운 스릴러로만 갈 수도, 따뜻한 휴머니즘으로만 갈 수도 없는 영화였죠. 그렇게 감동 코드가 중간 중간에 들어가야 하다 보니까 차갑고 이성적인 스릴러를 끌고 가기가 어렵더라고요. <올드보이> 영향 때문에 계속 이쪽 장르 제의를 받으시는 거 같아요. 그런 거 같아요. 보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나와요. 선곡은 어떻게 하셨는지? 그것도 감독님이 선곡을 해서 왔어요. 그래서 저작권 문제 해결하고, 편곡해서 합창으로 부르게 했죠. 합창곡도 사운드트랙에는 없더라고요. 그것도 저작권 문제 때문이었죠. 다음 작품이 하명중 감독님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예요. 굉장히 의외의 선택이신 거 같아요. 하명중 감독님의 < 혼자 도는 바람개비 > 이후 17년 만의 작품이었는데요. 나이도 좀 있으시고. 어떻게 작업하게 되셨나요? 제가 유학을 마치고 와서 처음으로 연극 음악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 이종사촌 언니인 전혜정 미술감독과 같이 작업했었고 <러브레터>라는 미국 원작의 연극이었죠. 주연배우였던 하상원의 아버지가 하명중 감독님이셨고, 또 M&F의 소개로 저에게 영화음악 의뢰가 들어왔어요. 연극 작업 때는 영화작업 때와는 다르게, 음악 작업만 한 게 아니라 번역도 하고 소품도 만들고 여러 가지를 해야했어요. (웃음) 또 연극 음악을 하고 싶으신 생각도 있으세요? 연극보다는 무용 음악 쪽을 하고 싶어요. 기회는 아직 안 닿았지만 예전부터 무용음악에 관심이 있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하고 싶더라고요. 하명중 감독님과 세대차이가 느껴지신다 거나 그러시진 않았나요? 해외 영화를 보면 거장이라는 호칭을 듣는 50대, 60대 이상의 감독들이 그 나이 대에 하실 수 있는 말씀이 있잖아요. 세상을 포용할 수도 있고 보는 시각도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도 있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는 거 같아요. 세대 간의 협업이 잘 안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인호 씨의 소설이 원작이에요. 작업하면서 어머니 생각도 많이 하고, 할머니 생각도 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그리고 어둡고 슬플 수 있는 이야기를 발랄하고 경쾌하게 끌고 가서 음악작업을 하면서도 매우 즐거웠답니다. 특히나 시간과 세대를 초월하는 작품을 하게 돼서 저는 매우 기뻤고요. 배우와 스텝이었던 두 아들들이 감독님을 잘 도와줘서 작업이 잘 진행되었던 것 같고 지금도 제가 작업한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기억에 남네요. 곡의 분위기가 보면 < 인생은 아름다워 > 같은 게 있더라고요. 굉장히 슬픈데 음악은 또 밝고. 경쾌하고요. 어떻게 보면 눈물이 나는 영화잖아요. 그런데 밝은 톤으로 가게 된 이유가 있으신지요? 감독님께서도 이야기를 신파로 슬프게 하고 끌고 가고 싶지 않아 하셨고, 극에서 직접 연기를 하셨는데 아주 유머러스하게 푸셨죠.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말이죠. 영화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게 슬프게 보일 수도 있지만 슬픈 거보다는 좀 더 승화시킨 정서라고나 할까요. 저도 감독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본 지인들도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최인호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부모님 속 썩인 사람들은 영화 보면서 다 울었을 거라고. (웃음) 이때 즈음부터 다큐멘터리 음악을 맡기 시작하셨어요. MBC 다큐 <난징 대학살>부터 시작하셨는데, 어떤 제의로 하게 되셨는지? 보통 TV 쪽에서 제의가 오게 되면 드라마 음악을 하게 되잖아요. MBC 방송국의 조준묵 피디가 <올드보이>를 보고 음악이 하도 세서 <난징 대학살> 음악을 부탁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난징에서 있었던 일본인의 만행을 고발한 책을 기반으로 만든 다큐인데요. 내용이 강하다 보니 강한 음악을 만들었던 저를 섭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진행 중이던 영화 작업이 없었던 터라 감사히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게 되었어요. 다큐 음악이 극영화 음악과는 많이 차이가 있는 거 같은 데요? 많이 차이가 있어요. 다큐도 다큐 나름인데 제가 작업한 다큐는 주로 이야기의 스케일이 컸어요. 한 인물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주로 다루는 영화보다 담고 있는 내용이나 촬영해온 영상의 크기가 달랐죠. 당시 한국영화에서 멋있는 자연의 그림이나 끝없는 설원 등 항공촬영으로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이 흔하지 않답니다. 영상음악을 하는 사람은 이런 멋있는 그림에 음악을 넣어보는 게 소원이에요. (웃음) 특히 ‘눈물 시리즈’는 영국의 BBC 다큐 항공촬영 전문팀에게 촬영을 맡겼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화면이 만들어졌던 거죠. 멋진 화면을 보니까 영감도 받고, 또 다루고 있는 내용도 제가 좋아하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까 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신나게 작업했죠. 그것도 시리즈로 4년이나 연속해서 음악작업을 하게 되서 운이 매우 좋았던 거 같아요. ‘눈물 시리즈’를 보면 해외에서 작업을 하셨어요. 체코 프라하 심포니에타. 해외에서 레코딩하는 건 어떤 차이가 있나요? ‘눈물 시리즈’는 자연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이다 보니까 음악도 스케일이 커야 했어요. <북극의 눈물>의 영상물을 처음 받아 보고는 매우 당혹스러웠어요. 북극에는 소리가 정말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작진은 클래식 악기구성의 음악으로 설원의 넓은 공간을 채워달라고 부탁했어요. 참고로 음악 작업시 TV용 음악은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녹음하지 않고 컴퓨터로 샘플 사운드를 만들어 작업합니다. 오케스트라 녹음을 하려면 파트별로 악보로 만들어서 연주자들에게 연주시키고 녹음, 믹싱, 마스터링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거죠. 영화와 비교해 장단점이 있는데 시간이 부족한 대신 간섭을 많이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어요. 시간에 맞추어 음악이 잘 나와 주면 다행인거죠. (웃음) 그런데 영화용으로 극장에서 상영될 때는 좀 다른 이야기에요. TV는 스피커가 작아서 실제 연주와 가짜 소리의 차이를 크게 구분하기 힘든데 비해서 극장은 5.1 사운드 시스템의 크고 좋은 스피커로 깜깜한 데서 집중하며 듣다 보니까 인공적인 컴퓨터 소리의 티가 너무 많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극장용 음악작업으로 제작비를 받아 오케스트라 녹음을 처음 하게 된 거랍니다. 곡이 나오면 바로 쓰는군요. 방송국에선 후반작업 할 시간이 없어서 선곡을 주로 해요. 부족한 시간 때문에 TV에서 음악감독의 역할은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장면에 맞는 음악들을 찾아서 영상에 집어넣는 업무를 담당하죠.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야심차게 기획한 다큐멘터리여서 음악 작곡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오케스트라 곡을 완성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어요. 그래도 덕분에 지금은 음악 빨리 만드는 선수가 되었답니다. (웃음) 2탄 <아마존의 눈물>과 3탄 <아프리카의 눈물>은 부족민 말소리도 있고, 환경적인 면에서 작업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아마존의 눈물>의 경우는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어요. 주로 원초적으로 생활하는 부족민의 이야기로 실제로 본적도 없는 몸에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는 태초의 인간들을 보는 것 같은 신기한 영상이었죠. 그러다 보니까 문명의 부산물인 클래식 악기보다는 자연에서 날법한 소리들을 사용하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밀림이 습한 지대가 되서 그런지 소리가 울려서 새소리, 동물소리 등등이 비교적 시끄럽게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은 조용히 깔리되 현장 소리처럼 만들어 태초의 소리 같은 악기를 활용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컴퓨터의 샘플(실제 녹음된 소리)을 뒤져서 부족민들이 사용할 법한 악기들, 동물 울음소리 같은 음색을 찾아서 음악 작업을 했는데 내용과 잘 어울렸던 거 같아요.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작업상의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죠. 그럼 <북극의 눈물>에서 전혀 소리 없는 그림을 음악으로 채웠다면 <아마존의 눈물>은 완전히 반대인 거겠네요? 완전히 반대인 거죠. 아마존은 워낙에 말도 많고 주변 소리도 많으니까 음악을 줄이되, 악기도 그 동네에서 날법한 소리로 자연스럽게 느끼게 작업했어요. TV에서 PD와 불일치가 날 땐 어떻게 하나요? 부딪힐 시간이 없어서 잘 안 부딪혀요. (웃음) 그게 TV 작업의 좋은 면이에요. 다행히 함께 일한 피디님들이 저를 잘 신뢰해 주셔서 감사했답니다. 예를 들면 <북극의 눈물> 피디는 음악이 들어갈 자리를 잡아주곤 했는데, <아마존의 눈물> 피디는 음악 들어갈 자리를 안 잡아줬어요. 제가 내용을 봐가며 음악 큐를 잡는 거죠. 전문가에게 완전히 맡겨버리는 건데 TV는 시간에 쫓긴다는 단점을 제외하고는 일하기는 조금 더 수월했던 거 같아요. 그쪽의 전통음악이나 그런 게 들어갔나요? 전통음악, 예를 들면 <북극의 눈물>에는 이누이트들이 부르는 ‘쓰롯 싱잉(Throat Singing)’ 이라는 헉헉대며 특이하게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를 제작진들이 현장에서 녹음해 왔고 이걸 음악적으로 한번 활용하자고 하더라고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개썰매를 타고 신나게 사냥하러 가는 장면에 쓰이게 됐답니다. 초반에는 쓰롯 싱잉의 헉헉헉 소리가 나면서 기존의 악기인 마림바나 실로폰 같은 타악기가 함께 연주되는 음악이 되었지요. 그리고 또 다른 트랙으로 이누이트들이 북을 치면서 노래하는 행사가 있는데, 이 곡에 현악기를 함께 연주해서 오로라가 나오는 장면에 집어넣은 게 있답니다. 또 다른 전통음악으로 아마존에서 갖고 온 노래의 경우, 부족민들이 키우는 강아지 소리 등과 같은 주변소음이 많아서 짧게 OST에만 겨우 실을 수 있었고요. 쓰롯 싱잉이 생소한데요. 네 쓰롯 싱잉이라는 창법이 있더라고요. 재미있어서 OST에 수록했는데 이누이트들의 전통음악으로 사냥하러 갈 때의 흥분된 마음을 표현하는 노래라고 하더라고요. 김건 감독의 < 패밀리마트 > 작곡가가 아닌 슈퍼바이저 역할을 하셨는데, 어떤 차이점이 있으신지요? 슈퍼바이징 역할도 매우 중요해요. 작곡가와 감독님과 소통을 잘 해야 하고, 특정 음악장르 작업에 강한 작곡가를 분별해 작곡을 맡겨야 하죠. 음악이 들어갈 자리와 음악의 종류를 잘 파악해서 제시해야하는 건 기본이구요. <패미리마트>는 <아저씨>를 같이 작업하게 된 스텝들이 작곡했고 <페이퍼 로드> 다큐도 같이 작업했답니다. 팀의 개념인 건가요? 그렇죠. 영화는 주로 팀의 개념으로 작업한답니다. TV는 팀으로 일할 시간이 없는데, 영화는 혼자 하기에는 버거운 양이죠. 그래서 영화마다 다르긴 하지만 1~3명의 스텝과 팀을 꾸려 같이 작업하는 편이에요. 소상민 감독의 가 <피 끓는 청춘> 전까지는 유일한 코미디 같아요. 그나마 그것도 블랙 코미디에요. 독립영화 음악이었는데, 환경이 충무로와는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 친구가 아카데미 출신인데, 재기발랄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어요. 저는 슈퍼바이징을 담당했죠. 가끔 독립영화음악 작업도 하죠. 좋은 독립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많이 소개되고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다음이 이정범 감독님의 <아저씨>입니다. 액션영화였는데 할리우드에서도 여성 음악가가 액션영화 하는 건 거의 없잖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전 <올드보이> 때부터 그랬어요. 장도리 씬 등.. 개인적으로 액션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웃음) 어렸을 적에 무용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액션이 몸의 동작이 표현이 되는 거잖아요. 물론 총 쏴 죽이고 끝날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을 담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올드보이> 장도리 씬도 그렇고 <아저씨>의 터키탕 씬도 그렇고 3분짜리의 긴 시퀀스인데요. 요즘은 편집으로 다 짜깁기가 되서 그런지 3분을 한 음악으로 미는 영화가 거의 없는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기억에 남는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죠. 이정범 감독님이 딱히 요구하신 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정범 감독님과는 마이클 만 감독을 이야기 하면서 < 라스트 모히칸 > <히트> <콜래트럴> 영화 이야기를 했어요. 특히 <콜레트럴>에서 특정 씬의 음악을 언급했는데, 일렉 기타가 사용됐어요. 또 LA 불빛이 인상 깊은 도시적인 느낌을 영화에서 참고로 하게 됐죠. <아저씨>에서는 기타 사운드로 ‘도시의 외로운 늑대’를 표현해보자는 제안을 하셨어요. 이 정도로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전 생각 못 했어요. 정신없이 그것도 촬영이 끝나자마자 개봉까지 시간이 굉장히 짧았어요. 그래도 짧은 시간 내에 작업했던 것치고는 신나게 잘 작업했던 거 같아요. 삽입곡들은 작업을 하신 건가요? 엔딩 곡을 제외하고는 우리 음악 팀에서 작업을 했답니다. 엔딩 곡은 초반부터 작업을 미리 시작하긴 했지만 원하는 가수나 뮤지션 그리고 제작비 등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 관계로 예고편 음악작업을 했던 팀인 매드 소울 차일드의 ‘Dear’라는 곡이 들어가게 됐죠. 그 뒤로 바로 작업하신 작품이 조성희 감독의 <늑대소년>이에요. 이 작품도 성공을 했습니다. 1960년대 과거를 다루는 이야기, 현실이 아닌 판타지 이야기. 영화가 그런데요, 음악도 그렇게 접근하신 건가요? 그렇죠. 일단 판타지를 베이스로 했죠. 여기서도 체코에서 녹음하신 거 같아요. 극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잘 아시네요.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아직까지는 (웃음) 그것도 운 좋게 동료가 녹음을 하러 가는 김에 함께 좋은 조건으로 녹음할 수가 있었어요. 적어도 한 달 전에 녹음 예약을 해놔야 하거든요. 후반에 작업 시간이 좀 있으셨나 봐요. 작업 시간이 많진 않았어요. 영화음악 작업시간은 늘 많진 않다고 느껴요. 편집을 완료하고 나서부터 음악작업 기한을 길게 주지는 않는 편이죠. 그리고 일정을 예측할 수 없어서 녹음 작업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주 우연히 김준석 음악감독이 녹음할 날을 예약해 놓고 있었어요. 거기에 추가로 덩달아 녹음하다 보니 가능할 수 있었죠. 덕분에 사운드가 훨씬 풍부해졌어요. 그때 김준석 음악감독은 어떤 작업 때문에 체코에 가신 건가요? TV 드라마였어요. TV 드라마는 녹음을 미리 해놓을 수 있어 일정이 가능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초반에 코믹한 느낌이 나요. 멜로디언도 사용되었고. 후반부는 퍼커션을 많이 사용해서 호러적인 느낌이 나고요. 음악의 폭이 큰데 균형 맞추기가 힘드셨을 거 같아요. 그게 힘들었어요. 전반부와 후반부의 영화 톤의 차이가 컸었죠. 작업이 쉽진 않았는데 주인공 두 사람의 러브테마를 초반부터 계속 가지고 가면서 전후반부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게 통일성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박보영이 부른 ‘나의 왕자님’이 메인 테마였잖아요. 조성희 감독님은 어떤 주문을 하셨는지요? 조성희 감독님은 이미 시나리오에 가사를 써주셨어요. 가사가 좀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는데 (웃음) 예전에 만든 음악 중에서 쟁여둔 걸 뒤지다가 지금의 ‘나의 왕자님’이 떠올랐어요. 멜로디가 단순하게 만들어진 게 아마추어가 만든 음악이라는 설정에 잘 어울리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가사를 붙이고 노래로 만들게 된 거죠. 이 음악은 영화가 들어가기 전에 만들어져서 박보영 씨가 두 달 동안 기타 레슨을 받아가며 연습을 했어요. 배우가 직접 연주한 건가요? 직접 연주한 거예요. 그렇게 많이 연습했는데도 촬영 날 되니까 배우도 떨더라고요. 그래도 여러 번 촬영한 것 중 하나를, 실수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에 편집해서 넣었답니다. 감독님은 약간의 실수가 나온 게 더 자연스럽다고 하시더라고요. 조성희 감독님은 어떠셨어요? 조성희 감독님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중간에 요구하시는 게 굉장히 디테일하시더라고요. 처음 감독님을 만났을 때 마침 길을 지나던 고양이를 보며 동물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제가 작업한 ‘눈물 시리즈’를 좋게 보셨고 그 안에 나오는 동물 이야기로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거기서 공감대를 형성했던 거죠. 영화의 주인공도 어찌 보면 동물과 인간의 중간인 존재였잖아요. 작업하면서 나중에 스토리보드를 영화 러닝 타임과 똑같이 동영상으로 만들고 거기에 감독님이 직접 인물별로 대사도 입히고, 음악도 입혀서 보여주셨어요. (웃음) 참고가 되었지만 한국도 이제 할리우드처럼 작업하게 되나보다 했었죠. 그래도 한국 배경의 한국인들이 연기하는 그림에 맞추어 새로운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아까도 언급되었고, 방금 말씀하신 템프 트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템포러리 트랙(Temporary Track)이란 건데요. 할리우드에서 주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참고용 음악’인 거죠. 이 시퀀스엔 이런 음악, 저 시퀀스엔 저런 음악 등 보기가 되는 음악을 찾아와서 미리 붙어보는 거죠. 한국에서도 최근에 이런 방식으로 음악작업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편집실에 음악 라이브러리가 구비되어 있어서 기존의 음악을 붙여보며 편집을 하기도 하죠. 편집본을 보고 오리지널하게 영감을 떠올려 작곡하는 게 아니고 비슷한 류의 데이터로 정리되어있는 라이브러리 음악에서 적당한 음악을 골라 편집본에 붙여 보는 거예요. 음악이 들어갈 위치 정하고 그럴 때.. 그렇죠, 음악이 들어갈 위치와 종류를 알려주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는 워낙 기성화된 공식이 있고 비슷한 게 많아서 이 작업방식이 통용되어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도 점차 작업방식이 바뀌고 있는 거 같긴 해요. 그러니까 감독이 음악을 기존의 음악으로 보기를 주문하는 거겠네요. 맞아요. 음악이란 건 말로 표현하는 게 참 뜬금없잖아요. 예를 들어 특정 시퀀스에 ‘애틋한 음악’을 주문하다고 하면 이를 전달하기 위한 너무나도 다양한 음악적 표현 방식이 있으니 말로 설명하기가 너무 힘든 거죠. 그러니까 보기가 되는 음악을 직접 골라 와서 영상에 넣어보는 거랍니다.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너무 참고하다보면 모방이 되는 경우도 생기니, 나름대로 감독의 의도를 잘 알아듣고 새로운 접근 자세로 음악작업에 임할 필요가 있죠. <남극의 눈물> 음악을 들어보면 미니멀한 사운드가 있어요. 필립 글래스처럼. 그렇게 미니멀한 사운드를 쓰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미니멀 음악을 좋아해요. 대학교 때는 무조, 즉 조성이라는 중심을 탈피해서 음계를 만드는 음악사의 흐름을 공부했답니다. 낭만파 이후에 조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자는 움직임에서 나온 작곡법이었는데요. 그 이후 고전시대의 삼화음으로 다시 돌아가되 옛날 고전음악과는 다르게 변형이 된 형태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를 미니멀리즘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현 시대의 새로운 음악적 흐름이기도 했고 제가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됐던 거죠. 신세계를 경험한 거예요. 새로운 음악작풍이 좋아서 <올드보이>에도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박찬욱 감독님도 흔쾌히 좋아하시고, 이는 영화에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이후 다른 영화에서는 일반적인 조성음악보다 틔는 미니멀 음악을 소화하는 영상이나 영화를 만나지 못했어요. 하지만 ‘눈물시리즈’ 특히 <북극의 눈물><남극의 눈물> 등에서 보이는 영상들이 떼를 지어 가는 동물이 많았어요. 순록 떼, 펭귄 떼 등 수많은 비슷한 동물들이 무리지어 가는 게 제가보기에는 미니멀한 느낌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음악도 미니멀하게 작곡했습니다. 작년 말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곤충 그 위대한 본능>은 ‘지구 시리즈’에서 벗어나서 약간 미시적인 게 필요하셨을 텐데, 어떤 느낌으로 작업하셨어요. 제가 벌레를 징그러워해서 음악이 잘 나올지 모르겠다고 고민했더니 피디님이 ‘벌레’가 아니라 ‘곤충’이라며 (웃음) 애정을 갖고 작업해달라고 부탁하셨죠. 그런데 막상 촬영본을 보니 아주 재미나더라고요. 곤충들의 먹고 먹히는 그들만의 생존방식을 마치 전쟁영화처럼 매우 비장하게 그렸죠. 제게 있어서 곤충의 세계는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와도 같았어요. 그래서 음악도 기존의 악기구성으로 나는 소리가 아닌 색다른 사운드를 시도했답니다. 곤충들의 미세한 날갯짓,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어 음악도 엠비언스적이면서도 일렉트로닉하게 작업했습니다. <아마존의 눈물>에서처럼 새로운 시도를 한 거죠. 기존에 작업하셨던 다큐멘터리 느낌과는 많이 달랐겠어요. 음악적으로 많이 달랐죠. 완전히 일렉트로닉한 음악으로 스코어 전체를 구성한건 첫 시도였어요. 그런데 재미있더라고요. 전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많은 흥미를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는 TV 다큐멘터리가 상업영화보다 더 용이했던 거 같아요. 상업영화에 비해 TV 다큐는 짧은 시간 안에 음악작곡을 완성해 주기만 하면 순조롭게 OK가 났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 데로 신나게 작업이 가능했답니다. (웃음) 다시 극영화로 돌아오겠습니다. 작년 11월에 개봉한 <더 파이브>는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요, 원작자이신 정연식 작가님이 직접 연출을 맡으셨는데요. 어떻게 작업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저 아니면 안 된다고 하기에.. (웃음) 감독님께서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비련의 여자 주인공 설정을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음악감독으로 같은 여자인 저를 이미 염두에 두셨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제 음악을 하도 잘 봐주셔서 같이 기쁘게 작업을 하게 되었답니다. 감독님께서 콕 집어서 선택을 하신 건가요? 네. 저 같은 경우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와서 여러 편 중에서 하나를 열심히 고를 줄 아는데 그렇지만은 않아요. 그때그때 시간이 맞춰 들어오는 게 인연인가보다, 하고 맡는 경우가 더 많아요. 시간적인 사정 때문에 또는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부득이하게 거절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주로 숙명처럼 받아들인답니다. (웃음) 이 작품이 웹툰인데요. 비주얼이 먼저 존재했잖아요.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작업하시고, 스토리보드를 작업하시는 과정에서 그게 발전한 것이 웹툰이었다고 하던데요. 작업을 진행하셨을 때 이미지가 미리 나와 있기 때문에 좀 편하셨을 것도 같아요. 그렇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설정상의 캐릭터와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시나리오와 그림으로부터 영화가 시작하기는 하지만 특정한 사람(연기자)이 영화에서의 특정 캐릭터의 옷을 입고 새롭게 탄생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시나리오 때와는 완전히 다른 작업인 거 같아요. 누군가는 시나리오를 보고 테마음악을 작곡한다는데 저는 그렇게 못하겠어요. 더 파이브, 웹툰 영상을 먼저 보시고... 영상을 보고 작곡을 시작하게돼요. <아저씨>같은 경우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로 시나리오 상에 설정되어 있었지만 원빈이라는 배우가 그 캐릭터를 맡음으로써 완전히 다른 아저씨가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음악도 그에 맞추어 분위기가 달라져야 하는 거고요. 그래서 저는 일단 영상물을 보고, 배우의 연기 또는 이미지 등을 통해서 음악 작업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어떻게 그림이 찍혔는가에 따라서 음악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더라고요. 작업시간이 많이 빠듯하시겠어요. 항상 빠듯하게 느끼죠. 특히 제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편집본 안에 없을 때 음악을 막 끄집어내려고 노력할 때 이래저래 소모가 많아요. 영상 안에 내용과 연기로 충분히 정보가 전달될 때는 영감을 받아서 작업도 빨리 진행되고요. 웹툰에서는 감독님께서 직접 사운드트랙까지 넣으셨어요. 그게 영향을 미치셨는지. 음악적으로 많은 걸 요구하실 거라고 짐작하고 그래서 좀 힘들겠구나. 걱정했었죠. (웃음) 그런데 이전 만화의 세계에서 나아가 영화라는 살아있는 세계로 다시 태어나는 거잖아요. 이야기가 좀 더 입체적인 차원이 되는 과정이니만큼 새롭게 영화적 접근을 하려는 노력을 했어요. 감독님께서는 전혀 영향을 안 주셨나요? 감독님께서는 참고로 들어보라고 감독님의 자작곡 음악을 들려줬고 스코어 음악은 전적으로 저에게 맡겨주셔서 순조롭게 음악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더 파이브>가 자신을 걸고 복수 하는 내용이었잖아요. 감정적으로나 시각적으로 굉장히 세고 불편한 부분들이 있는데, 전작들에 비해서 유독 소름끼치거나 음산한 사운드들이 많이 들리더라고요. 사이코패스 온주완 씨 캐릭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진행하셨는지요? 인물이 사이코패스이기도 하고 영상에 이펙트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도록 찍으셨어요. 초·중반 까지는 거의 음악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서보다는 효과성 음악만 쓰였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중후반부터는 대사보다는 음악이 극을 끌고 나가야 했어요. 이 영화가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인데 제가 작업한 전작에 비슷한 류의 영화들이 많아요. (웃음) 어둡고 뒤틀려있거나 불안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었죠. 그런데 <더 파이브> 웹툰을 원작으로 한 사이코패스 이야기는 의외로 그 인물이 현실적이지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덜 괴로운 것도 있었고요. <올드보이>의 경우는 좀 더 현실적인 인물이라 작업하면서 더 괴로웠던 거 같아요. <올드보이>가 정서적으로 인물을 이해하고 따라가서 음악으로 표현했던 것에 비해, <더 파이브>는 인물의 내면을 따라간다기보다는 영화의 내용을 따라가면서 음악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작곡을 했어요. 그러고 보면 진짜 필모에 진지하고 어두운 영화들이 많으세요. 코미디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러게 말이에요. (웃음) 어쩌다보니 주로 피가 나온다거나 19금의 영화들이 많아요. 그래서 어린 우리 조카들이 볼 수 있는 영화가 별로 없답니다. <아저씨>는 케이블TV에서 편집 등이 되어 방영되어서 그나마 저희 꼬마들이 볼 수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가족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는 거의 없는 거 같아요. 그나마 ‘눈물시리즈‘ 다큐멘터리가 모두가 볼 수 있는 영화랍니다. 영화를 선택하시는 기준이 원래 그런 쪽을 좋아하신 건 아니죠? 의뢰 들어오는 영화가 주로 어두운 영화들이 많았어요. 개인적으로 코미디 영화 보는 걸 굉장히 즐거워한답니다. 그런데 코미디 영화를 작업할 때는 내용이 재미있으니까 웃으면서 즐겁게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은 반면, 음악을 작업할 때 재밌기로는 무언가 얽혀있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나가는데 매력을 느끼는 거 같아요. 제가 스릴러 장르를 딱히 선호하는 건 아닌데 초반부터 각인된 영화가 <올드보이> 이다보니까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의뢰받는 거 같아요. 재즈 가수 이소정 씨가 엔딩 주제곡을 불렀어요. 독특하고 몽환적이었는데, 그분을 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감독님께서 초반에 이소정 씨의 앨범 중에서 ‘쇼팽 앤 더 걸(Chopin And The Girl)’이라는 음악을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본인은 이소정 씨 노래를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우연히도 저와 이소정 씨는 오랜 친구였답니다. 예전에 제가 한국에 와서 처음 영화음악을 시작할 때 이소정 씨도 M&F 회사 소속 가수로 앨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알게 돼서 10년 이상 친분이 있던 지인이었죠. 그런데 인연이기도 하고 우연이기도 하게도 <더 파이브>로 드디어 함께 작업 할 수 있게 된 거죠. 결과적으로 감독님도 매우 좋아하셨고 우리 모두 즐겁고 기쁘게 작업할 수 있었답니다. <더 파이브>는 개봉한 지가 꽤 된 다음에 사운드트랙이 출반됐습니다. <피 끓는 청춘>과 다르게 음원뿐만 아니라 CD로도 발매가 되었는데, (거의 사운드트랙이 발매되지 않는 현실에서) 늦게 발매된 상황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몇 년 전부터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디지털 음원만 발매하고 음반 발매를 하지 않는 추세로 변하고 있어요.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음반 시장을 의식한 거죠. 실은 저도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저의 경우, 물리적으로 소장할 수 있고 음악을 만든 사람들의 장인 정신과 노고를 확인할 수 있는 음반을 선호해요. 하지만 투자배급사가 영화 OST를 발매하는 환경에서 디지털 음원 시대의 전반적인 추세를 따라가 온라인 발매만 하다 보니, 뮤지션들의 음반을 귀중히 여기고 이를 수집하는 진짜 영화음악 애호가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게 아닌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실제 한 애호가로부터 <더 파이브> 음반 발매 문의를 받고 망설이던 마음을 굳혀 공이 더 들어가는 CD를 발매하게 되었죠. ‘대중’이 아닐지라도 ‘애호가’들이 있는 한 이들의 관심과 사랑이 영화음악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믿게 되었어요. 여성 음악가로서 국내에서 대표적으로 활동하고 계신 데 한계나 편견이나 이런 것들과 많이 부딪히셨을 거 같은데요. 주로 남자들이 많다보니 저도 많이 남성화 되었죠. (웃음) 여자는 남자에 비해 비교적 추진력과 네트워킹에 약한 거 같아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술도 열심히 마시고 사람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답니다. 그런데 실은 여성 음악가로서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어떻게 살아갈 지를 고민하는 게 힘든 거 같아요. 부딪혀보니 한국에는 예술가에 대한 개념이 대충 다른 인종쯤으로 보는 것 같아요. (웃음) 제천 영화제에서 만난 걸 계기로 독일에서 <올드보이> 영화를 상영해준 예술가 부부가 계신데요. 기타 연주자이신 마뉴엘 괴칭 Manuel Goettsching 과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일로나 지옥 Ilona Ziok으로 두 분 다 저보다 10~20살 많으세요. 그분들과 친분을 맺어 독일에도 다녀오고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하면서 가까이서 지켜보니 예술가는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참고가 되었답니다. 제6기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 제천음악영화제에서 음악 아카데미를 맡아서 여러 감독님과 함께 영상음악전문가 과정을 하시는데, 어떤 커리큘럼으로 하시는지요? 지금은 우리나라가 영화와 실용음악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교육하는 거 같아요. 제가 처음 2000년에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영화교육을 하는 기관이 몇 개 없었어요. 기존의 전통적인 영화학교 즉 동국대, 중앙대, 한양대, 영상원이 새로 생기고 한국영화 아카데미 정도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영화과가 없는 학교가 없을 정도로 대학교마다 영상 및 영화과가 생겼고 더불어 실용음악과도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이런 학과 과정과 다르게 제천영화제 아카데미는 일주일 남짓 하는 기간 동안 캠프 형식으로 단편 영화음악을 직접 작업해 보는 프로그램이랍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영화음악가가 하는 일이 뭔가, 또는 내가 이 길을 갈 수 있을까를 공부할 수 있는 거죠. 또 현장에서 활동하는 기성 영화음악가와 인맥도 형성하고, 동료들도 알게 되고, 이 일을 하기 위해 자기가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 지도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 거죠. 지금은 제가 추계예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영화음악을 하고 싶다는 친구를 만나면 아카데미를 추천해요. 수강생들 대부분이 여자들이 많답니다. 저와 비슷하게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는데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많이 지원을 하고요. 그 학생들에게는 감독님이 롤모델이겠네요. 70~80%가 다 여자이니까요. (웃음) 저의 경우 함께 일하는 스텝들을 주로 제천 아카데미에서 뽑았어요. 저한테 가끔 이메일로 영화음악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문의가 들어오면 제천 아카데미 참가를 권유하죠. 저뿐만이 아닌 현직 음악감독들도 아카데미에서 만나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지금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도, 동료 음악감독의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도 아카데미 출신이 많이 있답니다. 어떻게 보면 제천 아카데미를 통해서 영화음악 인재들을 발굴한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영화음악으로 어디까지 작곡가의 개성이 드러날 수 있을까요? 한계가 있고 장벽이 있는데요. 음악가랑 기술인 사이에서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거 같습니다.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작업은 자신과 뜻이 맞는 작품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기술이란 건 그 영화에 맞는 옷을 잘 입혀서 표현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서로서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잘 만나는가를 찾아가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자기와 뜻이 잘 맞는 사람들과 또 자기가 공감하는 이야기의 작업을 하게 되면 가장 신나게 작업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석양의 무법자> 마지막 장면 가장 좋아하시는 영화음악가와 작품이 있다면요?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라스트 모히칸> 등등의 사운드트랙을 좋아하죠. 그중 엔니오 모리꼬네의 <석양의 무법자> 마지막부분에서 세 명의 총잡이들의 숨 막히는 ‘눈치 보기’ 씬이 있는데요. (웃음) 수업 교재로 보여주면서 저기에 음악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음악을 기본으로 하고 영상을 편집해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싶은 장면이에요. 이 OST에는 당시의 엔니오 모리꼬네의 재기발랄함이 들어있는 거 같아요. 말발굽 소리, 권총 소리, 휘파람소리 등을 활용해서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한 거죠. 문서를 참조해보니 당시에 음악 제작비가 부족했다고 하더라고요. 오케스트라를 쓰고 싶었는데 제작비가 없으니까 아이디어를 낸 거죠. 그런데 오히려 재치 있고 잊히지 않는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게 된 거에요. 엔니오 모리꼬네의 또 다른 주옥같은 OST <미션> 이 미국의 상업영화음악의 흐름을 좀 탔다면 <석양의 무법자>는 훨씬 작곡가의 개성이 넘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천사와 악마> 개봉당시 조선일보 주선으로 한스 짐머와 전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인터뷰 도중에 엔니오 모리꼬네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스 짐머는 모리꼬네 음악에 바흐가 있다고 언급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종교음악에 심취해 음악을 시작한 저도 모리꼬네의 그런 요소들이 좋아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국내 영화음악 분야에서 도전해보고 싶다는 지점이 있다면, 이를테면 한계점이나 시스템의 제약을 고치고 싶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아쉬운 부분이 있지요.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커지고 있는 건 확실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각종 분야의 전문인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거 같아요. 조감독만 전문으로 하는 전문 조감독이 있는 게 아니라 감독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조감독이 존재하는 거죠. 예전에 <밀애>영화작업을 할 때 영화 조명 팀이 폴란드 분이 오셨데요. 그중에는 달리 즉 카메라 이동차를 전문으로 돌리는 장년(60대 가량) 분이 오셨는데 기계처럼 정확히 이동차를 옮기신다고 하더라고요. 한 명의 수장이 있고 나머지는 다 조수가 아니라 다양한 전문분야에 특정적으로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앞으로 한국 영화계가 더욱 발전하고 뿌리내리려면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다양한 역할들을 알고 이를 전문적으로 인정해줘야 할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음악의 경우, <노팅힐> 과 같이 선곡이 많은 영화는 뮤직 슈퍼바이저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존 윌리엄스가 음악을 하는 영화의 경우에는 뮤직 슈퍼바이저의 역할이 없을 때가 많죠. 선곡이 아니라 작곡이 주가 되는 영화이니까요. 그런 경우 전문 오케스트레이터 (관현악 편곡자)가 필요해요. 최근 한국영화음악도 할리우드처럼 클래식 악기구성이 많은 추세이지요. 존 윌리엄스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영화음악 작곡가들은 항상 함께 작업하는 전문 오케스트레이터가 따로 있답니다. 시간과 비용이 모자란 한국 영화음악 제작 환경에서는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테마음악이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 변주되어야 할지 또는 어떠한 음악을 넣을지 참고음악을 넣어보는 역할 등을 하는 전문 음악 편집자(뮤직 에디터)도 필요합니다. 또 음악 녹음 시 연주자 및 유명 뮤지션을 섭외하고 녹음을 진행하는 코디네이터도 필요하고요. 등등 영화음악 제작에는 여러 분야가 있을 수 있는데 저를 비롯한 동료들을 보면 주로 음악감독이 이일을 다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물론 한국은 할리우드의 영화산업과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도 않고 구지 그들과 똑같이 작업해야 하는 이유는 절대로 없어요. 하지만 영화산업이 뿌리 내리려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들을 인정하고 양성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희 같은 일반인들은 영화음악가 하면 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 같은 사람을 떠올리지, 그런 세세한 분야는 잘 모르겠어요. 많은 분들이 오케스트레이터도 생소해 할 것 같습니다. 오케스트레이터는 관현악 편곡을 하는 사람이죠. 영화 엔딩 크레딧을 보면 한스 짐머가 음악을 하는 영화에서 오케스트레이터만 5명에서 7명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어요. 클래식 악기 구성으로 웅장한 영화음악을 만들 때는 클래식 음악을 전문하는 사람이 편곡을 해야 하는 거죠. 악기라는 게 얼마나 공부해야 할 게 많고 소리가 다 다른데요. 작곡하는 사람, 편곡하는 사람, 프로그래밍 하는 사람 등등이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영화에 삽입곡으로 기존 곡을 쓸 경우, 담당 음악출판사와 연락을 취하고 승인을 받아내며 음악 저작권만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요. 또 템프 트랙(보기로 선곡된 음악)만 작업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이는 특정 장면에 어울릴만한 음악을 보기로 제시하는 거죠. 방송국의 음악감독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영상에 필요한 적당한 음악을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골라 영상에 집어넣는 일을 하죠. 또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영화계와 대중음악계와 연결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에요. 동료 음악감독들을 보면 대략 친분으로 대중 가수들과 OST 작업을 하곤 하는데 제작비의 제약 때문인지 인식의 문제인지 잘 연계가 되질 않습니다. 기타 등등.. 전반적으로 제가보기에 우리나라 영화제작 파트 중에서 음악분야에 대한 지식(관심 말고)이 가장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음악의 작곡이나 편곡 작업이 이루어지는지, 악보작업을 통해 연주되는지, 악기소리가 다른지, 연주자들의 녹음과 믹싱이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등, 음악이 영상에 입혀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냥 완성된 결과물만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아무쪼록 앞으로 제작자들의 많은 관심으로 영화음악 분야의 발전을 기대해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요. 프랑스 여류작가의 원작소설 ‘Woman of Straw’를 영화화한 <은밀한 유혹>이라는 작품을 하고 있어요. 할리우드에서 1964년에 이미 만든 영화의 리메이크 작인데요. 임수정, 유연석, 이경영의 주연으로 호화 유람선에서 벌어지는 돈을 담보로 한 애정 관계를 이야기하는 영화랍니다. 올가을 개봉예정이구요.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끝났어요? 어우. 끝이 나기는 나는구나. _ 인터뷰: 문상윤 _ 정리, 사진: 유성관
김지운 감독의 < 악마를 보았다 >에서 발견된 건 비단 인간의 내재된 흉폭성과 잔인함 그리고 그간 터부시 되어왔던 고어의 미학뿐만이 아니었다. 이 영화로 처음 상업영화에 모습을 드러낸 ‘ 모그 ’라는 괴물 신인 영화음악가의 등장 또한 반겨야 했다. 그 진한 피칠갑의 향연 속에서, 또 뜨겁고 차디찬 복수의 공방 속에서 점점 악마가 되어가는 두 남자를 애달프게 지켜보고 대신 눈물 흘려야 했던 모그의 비정하면서도 감성적인 사운드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공명이었다. 이 논란 많은 영화에서 만장일치의 갈채를 이끌어낸 모그의 영화음악은 강렬하고 아름다웠으며 동시에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이미 정점에 올라선 탁월한 베이시스트로서 특유의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솜씨였다. 프로 연주자이자 아티스트였던 그는 재즈와 라틴, 록과 블루스, 일렉트로니카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일리쉬하고 새로운 시도들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어려서부터 여러 환경 속에서 본능적으로 연주해온 덕택에 탄력적인 감성과 날카로운 직관을 지녔으며, 야성적인 그루브 밑에 숨겨진 애수와 특유의 서정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구사했다. 베이스라는 악기의 한계를 장점으로 승화시킨 그의 앨범들은 트렌디한 감각과 열정, 실험과 모험이 가득한 퓨전의 정수였고, 낭만의 끝이었다. 음악 시장이 눈에 띄게 개편되던 2000년대 중후반 몇몇 단편들과 다큐를 시작으로 영화음악에 뛰어든 그는 임필성 , 김지운, 장준환 , 황동혁 등의 감독들 눈에 띄었고, < 플래닛 비보이 > 이후 5년이 갓 넘은 시간 동안 착실히 필모를 쌓아가며 자신의 지장을 확실히 남겼다. 길이와 장르, 공동작업과 국적을 가리지 않은 전천후 행보였다. 모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Hot)한 영화음악가다. 2010년 <악마를 보았다>를 필두로 2011년 < 도가니 >, 2012년 < 광해 >, 2013년 < 화이 >로 데뷔 이후 4년 연속 국내 영화 시상식 음악상을 거머쥐었고, <도가니>와 <광해>는 도합 1,700만에 이르는 관객몰이에 성공하며 많은 공감대를 얻어냈다. 게다가 < 라스트 스탠드 >로 한국 영화음악감독 최초의 할리우드 상업영화 스코어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대중을 사로잡고, 영화감독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킨 비밀이 궁금했다. 최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하셨고, 역시나 꽤 센 영화입니다. 제가 예전부터 하드보일드와 스릴러 장르 영화들을 좋아했어요. 일로서 하려면 영화라는 거 자체가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잖아요? 진행되기 위해서 투자도 필요하고. 네임 벨류 있는 감독이 네임 벨류 있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드림팀을 짜듯이 하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처음 했던 게 <악마를 보았다>였어요. 그때 이런 배우와 이런 감독이 아니면 평생 못해보겠다 싶었는데, <화이>도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를 볼 때 이런 조합이 아니면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캐스팅 전에 먼저 시나리오를 받아보신 건가요? 아뇨, 캐스팅이 어떤 어떤 분들이 되었다는 것만 대략 알고 (있었고), 그 전에 < 카멜리아 프로젝트 > 중 ‘러브 포 세일’을 장준환 감독님과 함께했었기 때문에 왕래가 간혹 있었어요. 근황을 묻다가 <화이>가 들어간다고 해서 ‘책 보내줄게’ (해서 작업하게 되었죠). 장준환 감독님은 홍경표 촬영감독님이 소개로 알게 되었어요. 홍경표 감독님은 영화 일 하기 전부터 지인을 통해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러브 포 세일> 때 소개받고 작업을 같이 하게 됐죠. 장준환 감독님과 작업은 어떠셨어요? 작업 스타일이나. 감독님들이 다 다르세요. 작업하면서 감독님들이 연기에서 끌어내고자 하는 것들이 있고, 음악에서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까, 그런 디렉션을 어떻게든 잘 따르려고 많이 노력했죠. 기대치라는 게 생기니까, 그 영화의 기대치 때문에 더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는 거고, 제가 저를 더 괴롭히게 되죠. 이 정도면 됐는데 하는 지점이 점점점점 상향 조정 되다 보니까. 부담감이 좀 있으시겠어요. 그죠. 끝나고 나면 허탈해 하고. 장준환 감독님이 좀 천재과라 하잖아요. 꼼꼼하게 디렉팅 하시는지? 네, 되게 꼼꼼하신 편이에요. 장준환 감독님은 지점 지점마다 집착이 강하세요. 그래서 그 집착을 채워주는 게 제일, 늘 어려웠어요. <화이>에서는 한 번 보면 안 보이는 부분들이 되게 많아요. 저도 여러 번 보다가 발견한 지점들이 되게 많고요. 편집본을 보면서 여기서 왜 이 컷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이 소리가 왜 나는 건지. 소리까지도 (신경을 썼죠). < 지구를 지켜라! >때도 한번 보여주셨지만 상징적인 것들을 좋아하세요. 뭐 (예를 들어) <화이>에서는 탄피가 떨어져서 굴러가는 씬(중반의 병원)에서 보면 사운드 디자인하고 믹싱할 때 탄피 굴러가는 소리만 제가 몇 시간을 찾고 그랬어요. 그게 굴러감과 동시에 화이 생모를 죽이러 오는 살인청부업자의 휠체어 바퀴 소리가 딱 물리는, 그런 묘한 상징적인 지점들을 많이 만들어놔서요. 그 음향을 피해서 또 음악은 존재를 해야 하고. 괴물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괴물이 된 자와, 괴물이 되어가는 자가 싸우는 이야기인데. 그전에는 악마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어요. 음악이 전체적으로 강하고 파괴적일 거 같은데 그보단 애수 어리고 서정적인 거 같습니다. 의도하신 건가요? 감독님이랑 그런 것들을 끄집어내서 그 주제들로 두 시간 동안 화면 안에서 관객들에게 밀어붙이면 불편한 것들이 많이 생기고 그러니까, 음악으로 이런 (감정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거죠. 귀에 들리는 건 멜로적인 음악이 많이 들리는 거고, 그 사이 사이에는 미니멀한 음악이라든지, 제 나름대로 장치적으로 구성해놓은 음악들이 전체적인 드라마와 사건을 끌고 가는 데 힘을 보태주는 거죠. 처음에 설계를 할 때는 작정하고 비틀려고 많이 설계를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극장에서 두 시간 동안 그 뒤틀림을 볼 때, 상업 장편영화다 보니 대중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어쨌든 <화이>라는 영화가 소년이 킬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적으로 슬픈 인간의 모습이라 감정적인 지점을 계속 건드릴 필요도 있었어요. 관객들이 호응할만한 상황을 만들 필요도 있었고요. 주제가를 요조 가 작사 작곡을 했는데요, ‘앨리스 인 위어드 랜드(Alice in weird land)’요. 그건 어떻게 선택하게 된 건가요?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제가 요조 씨에게 의뢰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 빠져있던 70~80년대 영화에는 주제가라는 게 있잖아요. 아카데미에서도 주제가상이란 걸 따로 주고 스코어 부문이 따로 있는데. 제가 주제가를 작업한 적이 없는 거 같더라고요. 근작 중에도 007를 보면 잭 화이트가 주제가를 따로 작업하고, 스코어는 데이빗 아놀드가 맡고 했었는데, 그런 것처럼 곡을 써서 가수에게 주는 것 보다는 장면을 보여주고 여기서 영감을 받아 곡 작업을 해보자, 가사도 이렇게 써보고 하면서. 그래서 ‘위어드 랜드’라는 게 이상하다 못해 공포감을 주는거잖아요. 공포감을 주는 이상한 느낌의 영화 <화이> 전체를 말하기도 하고. ‘앨리스’가 소년 ‘화이’의 얘기를 담아낸 거죠. 그 음악이 들어가는 씬에 그런 스타일의 곡이 필요했기 때문에, 요조가 작사 작곡을 한 것을 제가 편곡했어요. 그 장면과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정서를 전체적인 편곡이나 악기 사운드를 통해 배가하려고 했죠. 엔딩 크레디트의 그림들과 곡이 잘 어울렸어요. 장 감독님이 소년 감성을 놓치고 싶지 않아 했어요. < 아저씨 > 같은 영화 보면, 인간 감성이 별로 안 느껴지는데, ‘화이’라는 캐릭터는 그렇지만 항상 소년 감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킬러와 소년 감성을 교차하고 싶어 했죠.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교복 입고 그렇게 동년배 아이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보여주니까, 교복을 입고 총을 쏘는 장면 같은 것들도 뒤틀리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생기는 거잖아요. <화이>는 음원으로만 출시됐어요. CD로는 발매 계획이 없으신 건가요? 결국은 CD를 사려고 돌아다녀도 살 곳이 없더라고요.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상점이 안 보이다 보니까 별로 그렇게 의미가 안 생겨서요. <화이> 같은 경우는 비매품으로 소량 만들긴 했어요. 사운드트랙 CD들이 말씀하신 대로 오프라인에서 구매하기가 힘들잖아요. <광해>같은 경우는 벌써 절판이 됐더라고요. < 회사원 >이나 < 남자 사용 설명서 >는 음원조차 없고요. 음원을 출시할까 생각을 했었는데요, 영화 자체가 어느 정도 흥행을 하고 제작사나 배급사에서 동의를 해줘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회사원> 같은 경우는 그 당시에 음악저작권협회와 문제가 있을 때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자 배급사에서 약간의 리스크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은 하더라도 나중에 (하자 했어요). 근데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김지운 감독님과는 작업을 많이 하셨습니다. 단편부터 쭉 하셨는데요. 어떤 부분에서 호흡이 잘 맞는 거 같으세요? 제가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공부가 많이 돼요. 영화적인 설명이나 디렉션을 굉장히 잘 해주세요. 상황 상황, 여기서 필요한 게 무엇이다, 라는 걸 잘 가르쳐 주시죠. 일단 제 영감이나 상상력에 맡겨 놓다가 그게 일치하는 부분은 그냥 가고, 어떤 부분들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프로페셔널한 것들을 체크해주세요. 저 같은 아티스트 베이스가 있는 영화음악감독들은 가다 보면 한없이 옆으로 빠질 수 있는데 그걸 잡아주시죠. 장영규 감독님도 김지운 감독님과 작업을 하셨는데, 굉장히 많이 들려주신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레퍼런스 같은 게 확고하신 듯하고요. 김지운 감독님은 음악을 평소에 이것저것 많이 찾아 들으시면서, 이런 류의 음악을 꼭 써보고 싶다, 클래식도 이런 건 어떤 장면을 찍을 건데, 거기 쓰면 좋지 않겠냐, 미리부터 염두하는 부분도 있어요. 찍어놓으시고 나서 이렇게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이런 것도 있고요. 상업 데뷔작이었던 <악마를 보았다>는 수위가 셌습니다. 시나리오를 받으셨을 때부터 애초에 그렇게 센 수위를 예상하셨나요? 전 그게 그렇게 사람들이 그렇게 힘들어할지 몰랐어요. 제 입장에서는 인간의 내면을 미학적으로 다른 지점에서 다뤄주는 것들, 예전에 <시계 태엽장치 오렌지> 같은 것도 살육하는 게 적나라하게 나오진 않지만, 주인공의 악마와도 같은 패륜성을 끝까지 보여주잖아요. 그런 걸 현실로서 접할 수 없고, 문학과 같은 예술로 접할 수 있고, 또 그걸 비주얼의 세계로 옮겨오기도 하는데, 사진과 그림도 그런 게 많이 있죠. 그런데 유독 영화이다 보니까 더 생생하게 다가갔던 거 같아요. 이만하면 상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저도 점점 바뀌게 되는 거 같고요. 대중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 나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절감하는 거죠. 그러니까 <악마를 보았다>도 피드백을 통해서 그게 세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못 보겠더라’ 하지만 난, 왜 못 보지? 그런 거랑 비슷한 거 같아요, 오페라를 지루한지 모르고 봤는데, 어떤 사람들은 보다 자기도 하듯이 사람들마다 예술을 이해하는 폭이 다양하고 다르니까요. 그럼 <악마를 보았다>를 통해서 감독님의 대중적인 수위가 일반 대중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신 거잖아요. 그 이후에 음악 작업에 있어서 영향이 있었던 건가요? 그죠, 작품을 보는 시각이 계속해서 저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는 거 같고요. 계속 환경으로부터 생기는 학습이 쌓이니까요. 그래도 상업영화 첫 작품에서 그런 충격이랄까, 그런 게 왔었네요. 네, 전 잘 될 줄 알았어요. (웃음) 그 영화가 <아저씨>와 1주일 간격으로 개봉했는데, <악마를 보았다>가 개봉하면 <아저씨>가 2위가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여자가 아니다 보니 원빈 씨가 그렇게 멋있다는 데이터도 없었고요. (웃음) 이 영화도 영화가 센 만큼 음악이 무척 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화이>처럼 감성적인 접근은 하신 게 있으신 거 같더라고요. 보사노바 음악도 사용되었고요. 음악 감독으로서 일반 고어무비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시나리오 때부터 감독님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일반 고어무비와는 다른 지점들이었어요. 고어무비에서는 인간의 내면 같은 거 생각도 안 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의 주제는 결국 인간의 내면에서 샘솟아 나오는 처절한 복수심 때문에 잘근잘근 한이 풀릴 때까지 몰아붙이는 영화거든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악을 구체적인 형상화로 잘 만들어 놓은 영화였고, 그걸 전달해야 했어요. 어떻게 보면 내면이 가지고 있는 악도 슬픔의 한 종류죠. 그게 없으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면에서 그런 선과 악이 싸우기 때문에 그냥 법에 맡기자, 쟤도 인간인데, 그렇게 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택하고 느끼는 지점으로 계속 복수하는 걸 찍은 거기 때문에 슬픔이 더 강하게 전달되도록 했고, 음악 자체가 멜로적인 끈적임을 많이 느껴지도록 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의 제목은 <아열대의 밤>이었어요. 그래서 처음 음악 스케치 할 때는 열대의 후끈한 열기와 끈적함을 지점으로 삼았죠. 남미영화들 있잖아요. 전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이런 영화를 꼭 해보고 싶었다라는 영화가 < 성스러운 피 >였거든요. 그 음악도 좋고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렬함을 좋아해서요. OST 속지를 보면 ‘스릴러의 백미는 영화음악’이라고 적혀있는데, 스릴러 음악이 관객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기능적인 음악일 수도 있는데요, 어떻게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전에 음악을 하면서 다다르고 싶었던 지점이 형이상학적인 음의 배열과 어떤 리듬과 화성 같은 부분이었어요. 항상 스릴러 영화, 특히 고전으로 갈수록 히치콕 영화 같은 데 보면 클래식 쪽의 현대음악, 컨템포러리 같은 그런 기법부터 해서 재즈 쪽의 프리뮤직 같은 스타일도 많이 쓰이니까, 그런 영화들을 보게 되면 제가 동경했던 음악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서 (흥미가 있었죠). 버나드 허먼의 < 택시 드라이버 > 음악을 들으면 되게 격조 높고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으로 가다가 갑자기 형이상학적으로 틀어지면서, 그때 주는 엄청난 충격과 파장이 있잖아요. 그래서 <악마를 보았다> 음악도 되게 서정적으로 가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뒤틀기도 하고요. 녹음할 때도 일반 클래식 녹음할 때 같이 따뜻하게 녹음되는 걸 최대한 피하려고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가 할 때 쓰이지 않는 마이크나 장치들을 사용했어요. 들을 때 뭔가 이렇게 기분이... 나빠진다기보다는 불편한 지점들이... 왜 그랬을까? 그런 거 있잖아요. (웃음) 과도한 리버브 사용이라든지. 과도한 저음의 사용이라든지. 그런데 영화음악이 아니라면 제가 따로 음반 작업을 하면서 그런 작업을 하기는 힘들어요. 어떤 스릴러를 좋아하세요? 80년대 이전 스릴러들이 많이 참고가 되었다고 하셨던데요. <택시 드라이버>도 있고요, 히치콕 영화들 많이 좋아해요. 버나드 허만이 작업한 스코어가 있고 모리스 자르가 작업한 <토파즈> 같은 작품이 있는데, 전 버나드 허만 보다는 모리스 자르를 더 좋아했어요. (히치콕의) 후기 음악들이 어떻게 보면 더 낭만적인 부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 프렌치 커넥션 >도 좋아해요. 그 영화에선 재즈에서 사용되는 악기들을 가지고 형이상학적인 음들을 많이 만들었죠.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 큐들을 짧은 편입니다. 영화음악은 그런 식으로 시간의 제약이 강한데 그에 대한 한계나 불편함은 없으셨나요? 처음에는 불편하다 생각을 했는데요, 나중이 되니까 그에 대한 재미가 있더라고요. 도전이 생기니까요. 되게 짧게 큐를 구성해놓고 효과가 극대화될 때 내가 작업을 잘하고 있구나. (웃음) 40여 곡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요, OST에 다 실으신 건 아니시죠? 네, 엠비언스 같은 음악들을 많이 썼기 때문에 그런 곡들을 감상하시라고 내놓기는 좀 그렇죠. 시나리오를 먼저 받으셨죠?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에는. 보통 촬영 중에 편집이 끝난 다음에 작업을 하시는 편이세요? 아니면 시나리오 받자마자... 그것도 영화마다 다른 게,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게, 상업영화로서는 심플한 상황도 아니고 김지운 감독님도 스릴러를 처음 도전하시는 거니까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작업을 하면서 감독과의 정서를 상의하며 여기선 유혈이 낭자한데, 이런 느낌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음악 설계가 먼저 들어갔죠. <라스트 스탠드> 같은 경우는 파이널 편집이 다 끝난 상태에서 (들어갔어요). 할리우드 영화 같은 경우는 특히 음악이 끊이지 않고 계속 들어가기 때문에 신나게 처음부터 끝까지 팝콘무비로 달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 음악도 마찬가지로 연속성 있는 느낌 필요했던 거죠. 영화마다 다 다른 거 같아요. 어떤 방식이 유리한지는 감독님과 제가 고민해서 정하게 되는 거죠. 그다음 작품은 좀 편한 작품을 하시나 했더니 <도가니>였습니다. 굉장히 무겁고 어두운 작품이었는데, 감정적으로 지치시지는 않았는지요? 음식도 그렇잖아요. 막 매운 걸 먹고 나서는 다신 먹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또 다음 날 되면... (웃음). 굉장히 징하게 작업을 하고 나서 한동안 허탈해 하다가 <도가니> 시나리오를 보는데, 내가 아직 완전 연소가 안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는 게 있구나. 결혼도 안하고 아이들과 가까이 있을 일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는데, <도가니>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까 이 안에서 막... <악마를 보았다>를 읽을 때 같은... (웃음) 또 다른 <악마를 보았다>를 보는 느낌. 감독님들은 다 다르신 데, 저 혼자 <화이>까지 ‘악마’ 삼부작을 작업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고발극이고 사회 드라마라서 톤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초반에는 스릴러 느낌도 나고, 후반의 법정 장면은 자칫하면 신파로 빠질 수도 있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과잉이 될 수 있는데, 음악이 절제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항상 음악을 부족하게 쓰는 영화가 좋지 않을까, 하는 편이에요. 특히 어떤 주제 자체가 엄청나게 센 파장이 있는 경우는 더더욱이요. <도가니>에서는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스타일로 스케치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도가니>는 피아노곡이 많던데요. 네, 너무 레퍼런스를 받은 게 있으니까 그걸 치환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피아노로 치환하고, 기타라는 악기보다도 아이들과 매치시키기 좋은 악기가 피아노라고 생각해서 작업하고, 중간 중간에 약간씩 기타 연주를 넣었죠. 황동혁 감독님의 전작이 < 마이 파더 >였는데, 아무래도 신파에 대한 강박이 있었나요? <도가니>가 상업적으로 울리는 것도 필요한 작품이죠. 중요한 것은 실화를 다룬 거기 때문에 이 작품을 작업할 때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게, 그 사람들의 아픔을 우리가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고요. 어떤 부분은 다큐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음악이 존재감 없는 것도 좋겠다. 황동혁 감독님도 워낙 머리가 좋으신 분이라 수 싸움을 잘한 거 같아요. 다른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들보다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을 많이 만들려고 하셨어요. 원작에서 보면 조성모의 노래라고 되어 있었는데, 영화에서도 직접 조성모의 ‘가시나무 새’를 넣으셨어요. 감독님의 의견이셨나요? 그건 황동혁 감독님이 소통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알만한 대중가요가 여기선 필요한 시점인데, 원작 책에도 조성모가 있으니 가시나무 새’를 쓰는 게 가장 좋지 않겠느냐고 했던 거죠. 제가 <남자 사용 설명서>같은 영화에서는 선곡에도 관여를 많이 하게 되는데 <도가니>에서는 워낙 대중과 소통하는 지점이 필요해 (감독님이 직접 하셨고), ‘가시나무 새’ 뿐 아니라 노래방 룸살롱 장면이 있는데, (교직원들이) 여자들이랑 술을 마시고 흥건히 취해서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부르는 장면도 모두 감독님의 선곡이에요. 가사와 정반대의 상황인 거잖아요. 실질적인 데뷔작은 단편 <멋진 신세계>였죠? 2006년에 작업하셨으니까요. 그땐 그런 스타일의 영화들이 나의 영화다, 라고 생각했었죠. (웃음) 그 영화가 개봉을 못 하고 < 인류멸망보고서 >로 묶이게 되었잖아요. 단편들을 모두 따로따로 작업하신 건가요? 네, 그 프로젝트가 변형이 많이 됐어요. 한재림 감독님까지 세 분의 감독님(김지운, 임필성)이 작업을 하게 됐다가 아무래도 일반 상업영화가 아니라 실험을 하기 위한 프로젝트성이기 때문에 투자가 흔들릴 때마다 상황이 많이 바뀌게 되었죠. 그래서 결국 <인류멸망보고서> 패키지로 나오게 된 거죠. 그럼 한 작품 끝나고 시간 지나서 또 한 작품을 하시고... 그럼 작품 간격이 굉장히 길게 있었겠네요. - 네. 뭔가 그런 영화들을 작업해야 내 삶이 진짜 예술을 하는 느낌도 들고, 몸도 더 건강해지는 거 같고. 회복도 잘되고... (웃음) 쉽지 않은 SF물, 좀비물도 있고 그랬는데, 어떤 식으로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것들이 매력적이었고요, 좀비물들, < 새벽의 황당한 저주 >를 보면서 이건 좀비물인데 이런 블랙코미디가 많이 생기고, 또 조지 로메로 감독의 <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 같은 좀비물들을 보며 거기서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들 뽑아서 (참고했죠). 제가 작업하는 방식이, 형사들의 칠판 보셨죠? (벽면에 사진과 메모가 붙은) 그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거든요. 작업이 다 끝나면 꼴도 보기 싫고 그래서 다 버리지만요. 집착증 환자처럼 보드에다 영화라든지 OST의 관계도들을 점점점 그려 나가요. <화이>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데가 아닌, 저만 볼 수 있는 벽장 안쪽에 보드를 설치해서 매일 그거 들여다보면서 작업을 했어요. 또 우리나라 흥행 영화의 데이터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도 놓고 이 영화와의 간극, 이것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 이런 걸 색깔로 해서 신파적인 요소가 강하다, 하면 빨강색. 이런 식으로 보드를 만들어 나갔어요. 감독님이 영화를 비주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지만 저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두 시간짜리의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한 큐가 끝나면, 쉼표를 길게 줄까 짧게 줄까, 아니면 끊지 않고 갈까를 설계를 해놓게 되죠. 여기서 여기까지는 최근 영화들이 클리셰들을 많이 써서 소통이 된 거 같으면 이번에는 클리셰를 좀 써주자. 그런 식으로. 단편작업을 굉장히 많이 하셨어요. 장편하고는 많이 다른 데, 그런 부분들이 어떠셨나요? 장편은 항상 대중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방금 말씀드렸던 복잡한 관계도를 만들어 작업을 하게 되는데, 단편은 오히려 관계도 없이 리액션만 가지고 할 수 있으니까 덜 정치적인 작업을 하게 돼요. 음을 덜 정치적으로 쓰게 되는 거죠. 아무래도 상업영화는 무서운 게 소수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드는 영화는 거의 없으니까요, 단편영화는 그렇지 않으니까 소수만 볼 수 있는, 소수에게 그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툭툭 던질 수 있는 기회인 거죠. 거의 프리토크와 같은 작업인 거죠. 그림 보면서 한 번에 보고 끝내버리기도 하고. 오히려 그런 게 덜 정교해도 더 맛이 있는 지점도 있어요. < 사랑의 가위바위보 > 같은 경우는 특이하게 음원이 출시됐습니다. 그런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만약 장편이었으면 하다 지칠 수도 있는 건데 단편이라 즐겁게 할 수 있었죠.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보다는 제 추억을 하나 남기는 걸로 (작업을 했죠). 그게 왜냐하면 <라스트 스탠드>로 김지운 감독님이나 저나 만신창이가 된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가볍게 해보려고 해서, (웃음) 풋풋한 느낌의 나의 기념품이 되었으면 하는 작품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있는데요, 특이하게 공동 작업이었습니다. 김준성 음악감독과 공동 작업이었는데, 어떤 계기로 하계 되셨나요? 장영규 음악감독님 작업하시는 걸 보면 달파란 음악감독님과 공동작업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혼자 외롭기도 했어요. 그러다 김준성 음악감독님의 작품을 듣게 되었고, 저는 정식 음악 공부의 길을 걷지 않고 음악을 한 사람인데, 김준성 음악감독님은 클래식을 전공하셔서 뭐랄까... 저의 동경을 살 수 있는 분이었죠. 마침 저작권협회 관련 모임을 통해 친분을 쌓을 수도 있었고요. <광해>는 제가 먼저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저의 음악 포인트는 음악을 최소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의 기대치는 스펙터클의 끝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있었고, 제가 해석했던 방향을 감독님과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다크 나이트> 와 같은 해외 대작 영화들이 개봉을 하게 된 거예요. 결국 음악이 너무 많이 필요한 작업이 되어 버린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저는 이걸 빨리 마치고 <라스트 스탠드>를 하러 넘어가야 했고, 그래서 이럴 때 공동작업을 해보지 언제 해보겠냐는 결론에 도달했고요. 원래는 김준성 음악 감독님께 부탁드리며, 제작사 대표님과 감독님한테는 제가 요 정도까지 했으니까 이러저러한 분이 작업을 하게 되셨고 전 이제 사라지겠습니다,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그냥 같이 공동작업 하는 상황이 되어서 클래시컬한 사운드를 김준성 감독님이 하셨죠. <광해> 인트로를 보시면 완전히 제 스타일이고요,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악사들의 정서고, 중간중간 클래시컬하게 귀족 냄새가 나는 음악들은 죄다 김준성 감독의 작품이죠. (웃음) 영화 시작할 때 이병헌 이 손질 받던 장면에 나오던 음악도 꽤 클래시컬하게 들렸는데요. 그게 사실은, 전 그런 음악들은 그렇게 클래시컬하다고 생각 안하고요. 어떻게 보면 탱고나 유럽 변두리 지방 왈츠가 많이 가지고 있는 정서고, 정말 클래시컬한 건 오스트리아 느낌? 의 그런 음악들인 거죠. 맘 단단히 먹고 콘서트를 가야 할 거 같은 그런 음악이요. (웃음) 사극이었는데 애초에 국악은 전혀 고려 안 하신 건가요? 제 의도는 변두리 지방, 집시 클래식 느낌으로 다 밀고 가려고 했어요. 왜냐면 시나리오 자체에서 왕이 주인공이 아니라 광대가 주인공이고 광대가 왕의 자리에 앉으면서 벌어지는 일인데, 전 그 재미를 음악적으로 배가시키려면 장중하거나 우리나라의 국악 같은 느낌보다는 약간 하이브리드가 필요한 게 아닐까. 제 해석은 그랬어요. 저는 이 작품을 사극이라 생각하지 않고, 일본 애니메이션 보듯이, 일본 애니메이션 보면 이탈리아 음악도 나오고 온갖 스타일이 나오고 그러잖아요. 어떻게 보면 할리우드 대작 느낌이 좀 들었어요. 클래시컬한 느낌. 김준성 감독님이 베이스가 단단하셔서 그런 걸 진짜 잘 잡으세요. 베이시스트였던 경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에 대한 감각이 좋으신 것 같아요. <화이>나 <도가니>, <악마를 보았다> 모두 현의 부분들이 굉장히 센 데, 오케스트레이터 작업은 따로 하시는 건가요? <악마를 보았다> 때는 제가 거의 다 했고요, 점점점 가면서 저와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과 나눠서 (하게 되죠). 저는 주로 피아노 건반에서 화성적으로 제가 구현하고 싶은 것들을, 일반 재즈 피아니스트들이 화성 진행을 눌러가듯이 만들고 그 후 현으로 치환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저와 같이 작업하는 음악팀 친구들 중에는 클래식 전공한 친구들이 있어서, 어쨌든 음악은 보는 관점이랑 접근하는 시선이나 지점에 따라서 다른 정서를 뿜어낼 수가 있으니까요. 처음엔 제가 작가주의적인 음악감독이 될 줄 알고 그렇게 살아야지, 하고 영화음악감독을 시작했다면 지금은 너무 필요한 것들 많더라고요. 영화라는 게. 내가 좋다고 느끼는 지점보다도 남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많으니까요. 산업화, 기능화가 되어가는 거 같아요. 그렇죠. 점점 그게 더 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기능화에 대한 압박도 심해지고요. 그 스트레스를 어쩌면 단편으로 풀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 단편으로 푸는 게 가장 건전한 방법인 거 같아요. (웃음) 이병우 음악감독님과도 약간 비슷한 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음악을 시작할 때 많이 힘이 됐던 선배님들 중에 한 분이세요. 왜냐하면 그 분도 연주자였고. 연주자와 영화음악 모두 가장 호황일 때 활동하신 선배님이시죠. (웃음) 그런 선배 음악감독님들의 작업들을 많이 참고해서 작품마다 저만의 레시피를 만들어서 작업을 하게 돼요. 이병우 감독님은 아티스트 베이스이지만 조영욱 감독님은 선곡과 프로듀싱 능력을 가지고 작업을 하시니까 그 분만의 시각을 작업하는 데 참고를 많이 하려고 하고 있죠. 달파란, 장영규 감독님은 또 다른 지점에서 오신 분들이고. 영화 나올 때마다 보면서 이런 한 수가 있었구나, 이런 것들을 확인하곤 해요. (웃음)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되는 <라스트 스탠드>에 대한 질문인데요, 결과만 놓고 보면 많이 아쉬웠어요. 이정도 참패하리라고 생각하셨나요? 처음에는 이렇게 될 거라고는 그 누구도 못했어요. <라스트 스탠드> 개봉이 1월 이었는데,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개봉 전까지 수도 없는 총기사고가 일어나고 그 때 총기에 관한 모든 영화가 다 망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전주에 개봉한 영화 < 갱스터 스쿼드 >도 망하고 < 브로큰 시티 >도 잘 안되고. 그것 때문에 요즘 < 컨저링 >같은 영화의 붐이 일어난 것도 같아요. 더 이상 총은 사람들이보고 싶지 않다는... 제 입장에서는 어쨌든 총 쏘는 영화를 언제 해보겠냐 했었는데, 저도 서부영화를 동경하면서 자란 세대였고요. 그 영화 자체가 지극히 서부영화적인 상황이었어요. 말 없고 자동차 이런 식이었거든요. 메인 테마를 들어보면 정말 웨스턴 느낌이 납니다. 표현하고 싶었던 게, 21세기의 웨스턴 음악이란? 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어요. 처음에 김지운 감독님이 영화에 대해 짧게 설명할 때, < 하이눈 >과 함께 비교해 주셔서 머릿속에 딱 들었던 생각이 옛날 서부영화음악 작곡가와 같은 스코어를 만들고 싶은데, 그런 스코어는 현대물에는 잘 붙이기 어렵기 때문에 전자음악과 잘 믹스된 새로운 웨스턴 음악을 해보자고 했던 거였어요. 흥행까지 잘 됐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웃음) 전체적인 음악을 들어보면 할리우드 음악 같아요. 큐들이 굉장히 길고, 스피디한 질주 씬에선 일렉트로닉도 나오고요. 엔딩 타이틀, ‘모그 심포니’에서는 오케스트라 작업도 하시고요. ‘모그 심포니’는 영화에 나오는 곡들의 하이라이트들을 다 모아서 리믹스 버전을 (만든 거죠). 요즘 음악 추세가 리믹스가 많이 나오잖아요. 예를 들면 다프트 펑크 앨범이 하나 나오면 리믹스 버전, 혹은 어레인지된 버전만 한 100개 이상 나오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쓰였던 큐를 잘 이어서 리믹스 버전 하나로 만들어서 마지막 엔딩롤 올라갈 때 쓰려고 ‘모그 심포니’를 OST에 집어넣었죠. 국내 영화음악과는 다른 거 같아요. 국내 영화음악은 큐들이 짧게 들어가는 데 할리우드 음악들을 길게 사용하고 있잖아요.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정서가 없잖아요. 그게 제일 힘들었던 건데, 워낙 그쪽 산업시스템이 글로벌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감정이란 것을 배제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동양에서 슬픈 것이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음악으로는 감정을 주는 것보다 속도감을 높여줘야 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리고 동기부여 같은 기능들이 필요한 거고요. 한국영화들보다 훨씬 더 기능적으로 음악을 사용하고 있는 거군요. 그렇죠. 한국영화들이 훨씬 더 음악의 오리지널리티 쪽에 가깝고 할리우드에서는 어차피... 제일 어려운 게 그거예요. 저랑 감독님이랑 이렇게 하자 해서 만들고 끝내는 게 아니고, 특히 음악 같은 경우는 임직원분들 중의 관리하시는 분들이 다 컨펌을 해요. 할리우드는 말이나 음악을 들려주고 시작하는 게 아니고 제가 항상 문서를 만들어요. 질문사항이 딱 있으면, 큐 24-A의 시작점에 대해서 모호하게 생각한다, 그러면 반성문 쓰듯이 글짓기를 해야 해요. 내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해서 이런 건데 너희들의 생각이 그러면 요렇게 만들어 줄 수 있고, 그런 걸 다 글로 설명을 하고 작업을 해서... 완전히 논리네요. 논리적인 피드백을 거쳐서 음악이 나오게 되는. 그렇죠. 제가 그렇게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어요. (웃음) 아침마다 이메일을 열면 그런 몇몇 담당부서에서 답변을 달라는 메일이 와있어요. 그런 그 답변을 쓰고 작업실로 가면 낮 한 시쯤 돼요. 집에서부터 산타모니카에 있는 작업실로 가게 되는데, 한스 짐머의 작업실에 세 들어 있다 보니까 필요한 것들을 바로바로 오전에 이야기하면 오후에는 다 와있어요. 그.. 산업의 첨병에는 항상 유통이 있는 거 같아요. 보도 듣도 못한 기타도 관심이 있다고 하면 어디서든지 오후에 다 와있더라고요. 그런 좋은 것이 있는 반면에 수많은 글짓기를... (웃음) 작가 분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될 정도였죠. 어휘력과 글에 대한 한계를 매일매일 절감했거든요. 제가 스마트폰, 구글링, 어플리케이션 같은 거에 되게 경계가 많았는데 바로바로 번역을 해주니까 다 쓰게 되더라고요. 거기서는 음악감독이 아니고 그냥 컴포져잖아요. 뭔가 어떤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거리도 생기고, 존경심도 부르고 그렇게 되는데, 컴포져 composer, er은 별로 그런 걸 수반 안하는 거 같아요. (웃음) 그냥 직책인 거 같아요. <라스트 스탠드>는 국내에 사운드트랙이 안 나왔고요, 해외에는 나왔는데 조금 늦게 발매가 됐더라고요. 영화 개봉이 좀 지난 다음에. 그 영화가 마니아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있어서 DVD 같은 게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참 사람 욕심이 특이한 게 존 카펜터 영화 같은 경우는 극장에서 보고 싶진 않은데, 꼭 비디오나 DVD, OST를 다 사서 모으는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라스트 스탠드>도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존 카펜터 영화처럼 그런 컬트 레전드가 되어가고 있다, 좋은 거다, 고 하더라고요. 전 뭐 좋을 수도 있죠. 아티스트가 볼 땐 제가 작업한 영화가 컬트 레전드야... (웃음) 옛날에 80년대 그런 영화들 많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이나 제작사는 극장에서 수입을 만들지 못해서... 어디 OST 오덕들의 차트를 보니까 그런덴 워낙 게임 OST가 많아서 전체 순위는 100위 중에서 13위 였는데, 지난주까지 <라스트 스탠드>가 영화중에서 3위였어요. 감독이나 제작사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라스트 스탠드> 음악 작업한 게 있거든요. 컬트스러운, 일반 할리우드 영화음악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것들이요. 씨네21 인터뷰를 보면 뮤직 에디터의 필요성을 지적하셨어요. 뮤직 에디터란 정확히 어떤 직책인가요? 작곡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곡에 칼을 잘 못 대요. 원곡이 있는데, 영화의 편집에 따라 순서를 바꾸는 게 영화적으로 도움이 된다, 하면 그걸 하는 거에 있어서 전 굉장히 거리감이 있고 불편한데 그걸 뮤직 에디터가 편하고 합리적으로, 음악 감독이 이해할 수 있고 또 감독이나 스튜디오에서도 이해하괏옥졀?큐레이터 같은 역할을 해주는 거죠. 또 제가 음악 작업을 하기 전에 템프 뮤직(편집자 주: 영화를 편집하고 작곡가에게 음악을 의뢰하기 이전에 감독이 의도하는 음악의 분위기를 지정해 주기 위해 임시적(Temporary)으로 사용하는 음악)을 필요한 곳에 적재적소 배치를 해서, 음악이 이런 형식으로 연결돼서 이어지는 효과를 스튜디오와 감독에게 보여주는 역할도 하게 되고요. 우리나라에서 현장편집과 같은 느낌이네요. 그렇죠. 미국은 현장편집이 없어요. 대신 뮤직 에디터가 있어요. (웃음). 재미있는 게 뭐냐면 암암리에 미국에서는, 할리우드에서는 음악의 중요도가 높다고 생각을 하고,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현장의 중요도가 높고 후반작업의 중요도가 낮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후반 쪽에 가면 미국에서는 에디터들 있잖아요. 총 슈퍼바이저 같은 역할을 해요. 믹싱하는 데까지 가서 소리도 지르고. 감독이 편집권을 못 갖게 되면 에디터가 왕이 되는 거죠. 그처럼 할리우드는 후반작업에 힘을 굉장히 많이 실어주고, 또 그쪽에 투자, 배분이 많이 되어있는 거겠죠. 미국은 대부분의 할리우드 음악은 오케스트라 어디서 녹음할래, 그런 얘기들을 쉽게 해요. 베를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웃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거예요. 물론 시장의 사이즈 때문에. 그래서 저도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영어로 만드는 영화가 세계적으로 가다 보면 언어적으로 전달 못하는 뉘앙스들을 사운드와 음악으로 줄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에 그런 쪽에 더 힘이 실리고 투자가 많은 게 아닌가 싶어요. 미국영화 말고 일본의 타케 마사로 감독의 < 에덴 >이란 작품도 작업 하셨는데, 영화는 못 봤는데, 게이 바의 드래그 퀸이 나오는 영화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작업하시게 된 건가요? 한국에서 씨네콰논 극장을 하시던 이봉우 대표가 오랜만에 제작하신 작품이고, 일본 영화도 작업을 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시기가 잘 맞아서 하게 된 거죠. <도가니> 딱 다음에 작업을 하게 됐어요. 제가 정말 모르는 다른 나라의 이상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죠. 다큐멘터리 작업도 하셨어요. <플래닛 비보이>와 < 뒷담화 >. <플래닛 비보이>는 좀 더 다큐고, <뒷담화>는 페이크 다큐였죠. 어떻게 보면 장르적이지도 않고 내러티브도 없고, 캐릭터도 약간 흐릿한데 작업하실 때 극영화와 차이점이 있나요? 다큐멘터리는 덜 계획적으로 소스를 수집한 다음에 관객들이 가장 보기 좋은 지점으로 조화롭게 배열하며 만들어가는 거여서 해프닝이 많이 생겨요. 해프닝에 대한 재미가 있는데, 예상하고 작업하는 게 아니고, 마음가짐에 없다가 문득 이런 게 부각되면 더 재미있을 거다 그런 게 있죠. 함께 작업하는 스태프들이 내는 작은 아이디어들부터 고민을 하다 보면 하나의 큰 얼개가 나오게 되기도 해요. 좀 더 작업방식이 자유스럽네요. <플래닛 비보이>는 아무래도 미국 영화니까 템프 트랙을 깔고 시작하다 보니까 (그렇게 자유스럽진 못해요). 다큐멘타리인데도요? 네. 그런데 한국에서 이재용 감독님과 함께 작업할 때는 훨씬 자유스럽죠. 작업기간은 좀 더 길수밖에 없죠. 처음부터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작정을 하고 끌어가는 게 아니다 보니까. 촬영 전부터 콘셉트를 잡지 않고 후반에 하게 되는 건가요? 전체 콘셉트를 잡아놓는데, 중간 중간 계속 소스나 상황에 따라 이걸 더 부각시키는 게 괜찮겠다 하면, 처음 콘셉트와는 좀 다르게 되는 경우가 생겨요. <남자 사용 설명서>에서는 코미디를 하셨는데, 굉장히 음악이 많이 나오는 영화였어요. 약간 B스러운 코미디와도 잘 어울렸고요. 음악이 얼마나 사용되었나요? <라스트 스탠드>보다 더 썼을 거예요. 짧게 짧게 계속 쓰였거든요. 이원석 감독이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했고, 미국 B무비에 대한 동경이 많았어요. 사실 영화 자체도 한국에서는 구현하기가 힘든 상황의 영화잖아요. 결국 만들어내면서 미국 B무비를 하듯이 그런 주묍엔였?해서 음악 작업을 하다 보니까 거의 그만큼의 음악을 쓰게 된 거죠. 이 영화에서 보면 마카로니웨스턴에서 나올법한 음악들도 나와요. 어떻게 보면 더 <라스트 스탠드>보다 더 서부극 같은... 네, 아예 대놓고. (웃음) 그래야지 더 B무비의 코미디가 가지고 있는 질펀함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으니까요. 모든 씬들의 오리지낼리티를 최소화 하다보면, 그 다음에 그런 것들을 모두 합쳐놓고 보면 오리지낼리티 있게 영화가 나오는 게 사실 B무비거든요. 그런 실험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동생으로 가깝게 지내던 감독이어서 그런 요구가 사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으면, 부드럽게 오는데 전혀 뭐... ''형 이거 우리 해줘야 돼!!'' 이렇게 와서 (웃음). 이런 거 있잖아요. ''아 왜 그거 그렇게 안돼~??'' (웃음) 이원석 감독님이 굉장히 상상력이 많으신 분 같아요. 웨스 앤더슨 같기도 하고 미쉘 공드리 같기도 하고. 그런 세계를 워낙 동경했던 감독이고,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있고, 음악도 많이 알고 좋아하고요. 이원석 감독이 재밌는 게, 어렸을 때 디제이도 했었어요.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낼 때, 파티들이 많으니까. LP 시절의 디제이를 하고, 아직도 그때 당시의 향수가 있더라고요. 사실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저와 작업하시는 감독님들, 김지운 감독님, 장준환 감독님, 이원석 감독님, 임필성 감독님. 영화감독이라기에는 음악을 너무 많이 들어요. 너무 많이 알고. 그래서 그게 좋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디테일한 걸로 들어가다 보면 두루뭉술하게 할 수가 없는 (애로사항이 있죠). 김지운 감독님은 소리에도 굉장히 예민하셔서 제가 스트링에 톤만 조금 트래블을 올렸다고 하면 그걸 감지하시면서 고음이 좀 더 올라간 거 같애, 하시니까 그게 어떤 면으로는 섬뜩할 때가 있죠. (웃음) 되게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아니, 음악 하는 사람도 이런 건 잘 판단 못 하는 데. 그래서 제가 훨씬 더 치밀하게 해야 해요. 예를 들어 저음부를 2Db를 올렸다면, 그걸 안 적어 놓으면 ‘저번엔 이렇지 않았다니까’ 이런 말을 듣고 되돌릴 때 힘들죠. <남자 사용 설명서>에서는 삽입곡도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나체로 활보하다가 검문 당했을 때는 ‘네순도르마’도 나오고요, 엔딩에서는 고리엘라의 ‘리가야’도 쓰였고요. 그럼 곡들은 디제잉을 하셨던 이원석 감독님이 선택하신 건가요? 저랑 그런 의견을 조율하는 거죠. ‘리가야’ 같은 경우도 저희 어렸을 때 클럽에 가면 (항상 나오던) 파티 음악이었거든요. (그 곡을 부른) 고리엘라가 듀엣인데 그 중 한명이 티에스토였어요. DJ였던 그가 데뷔한 그룹이기도 한데, 그런 것들 때문에 (사용하게 됐죠). 이런 음악들은 만드는 것보단 이 파티 음악을 그대로 쓰는 게 낫겠다고 감독도 강하게 주장을 했죠. 그런 선곡을 하면 항상 예산이 발생이 되기 때문에 제작자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곱지만은 않은 (입장이에요). 사운드트랙이나 음원을 기대했는데 안 나와서 섭섭했습니다. 예, 저도. 원래 제작하셨던 대표님이랑 300만 넘어가면 OST를 내주시겠다 했었는데... (웃음) (흥행이란 게) 배급시기라든지 배급의 힘 등에 좌지우지 많이 되는 거 같아요. 그 영화는 어떤 극장에서는 첫날부터 교차 상영이 되기도 했었어요. 굉장히 코미디 장르도 잘 어울리실 거 같은데, 코미디가 거의 없으세요. 코미디를 하시고 싶은 계획이 있으신가요. <화이> 다음으로 하는 작품이 < 수상한 그녀 >라는 코미디에요. 심은경 , 나문희 선생님 주연작이고요. <남자 사용 설명서>와는 다른 지점의 좀 더 대중적으로 소통하기 좋은 작품이에요. 제가 우울증이 심하고 평소에는 정서 자체가 가라앉아있기 때문에, 조증이 갑자기 생길 때가 있어서 <화이> 작업할 때도 어떻게든 에너지를 조증을 만들면서 버티고 했었는데, 코미디 장르를 다음 작품으로 하니까 덜 가라앉아서 음악을 하게 되지 않을까. 굉장히 기대가 큽니다. 삽입곡 같은 경우도 보니까. <회사원>에서는 이미연 씨가 전직 가수로 나왔는데, 부르던 곡도 따로 작업하셨다고요. 네. 그건 제가 사이드로 아는 뮤지션 친구들과 습작 같은 작업을 해놨다가 영화와 매치가 잘 돼서 그걸 여기다 쓰자, 했던 거죠. 직접 이미연 씨가 부르신 건가요? 네, 이미연 씨가 부른 파트가 있고요, 어떻게 설정이 되느냐면, 전직 여가수의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구간은 이미연 씨가 부르시고, 몽타주로 이어지면서 영화의 느낌을 부각시켜줘야 하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그런 게 튈 수가 있으니까 가수분이 불러주셨죠. 그걸 리믹스하듯이 절묘하게 이어지게 하는 것이 작업할 때 조금 어려웠었죠. 음악이 좀 80년대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 같았어요. <회사원> 영화의 그런 톤들을 감독이 만들고 싶어 했어요. 인터뷰에서 보면 좋아하시는 작곡가로 데이빗 샤이어나 랄로 쉬프린을 꼽으셨어요. 어떻게 보면 70년대 가장 핫했던 분들인데요. 장르영화들을 많이 하시던 분들이었죠. 제가 볼 때는 70~80년대가 영화음악의 황금기였던 거 같고요, 그 뒤부터 워낙 좋은 사운드 시스템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영화음악은 훨씬 더 입지가 좁아진 거 같아요. 사운드가 음악의 역할을 많이 대체하게 되는 상황이 되니까. 그분들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의 음악들은 한 큐 때문에 주먹을 불끈 쥐게 해주고, 또 그런 역할을 해주던 그 시기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죠. 정말 좋은 시절을 사셨구나. (하지만) 막상 저 같은 사람이 그 시기에 영화음악을 하라고 하면 못했겠죠. 이분들은 거의 악보를 탈곡기에서 뽑아내듯이 작곡을 해내시니까. (웃음) 자기 빅밴드와 오케스트라와 녹음하고 막. 또 빌 콘티와 같은 작곡가도 좋아했었어요. <록키>는 그냥 음악 나오면!! 개인적으로 좀 더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으신가요? 영화음악가 중에서요. 요즘에는 (소더버그와 작업한) 클리프 마르티네즈 같은 요즘 작곡가 좋아하고요. 미니멀한 작업하시고요. 산타올라야 같은 분도 좋아하고. 기타 하나 가지고... 한국 영화음악 하시는 분들의 음악도 많이 들어요. 한국 감성을 채우는 방식은 또 다르니까요.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꾸준히 작업하셨는데, 작업 속도가 빠르신 것 같아요. 그렇게 팀을 셋업을 해놨어요. 처음에 혼자 작업할 때는 정말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어떤 형태를 끄집어내기 전에 내가 그 형태를 잃어버릴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아예 팀을 셋업하고 파트를 나눠서 이쪽에서는 에디팅만 하게 하고, 이쪽에서는 소스만 컬렉팅하게 하고, 그럼 제가 아이디어가 생기면 필하모닉 한 60인조 소스 좀 해줘, 그럼 빨리빨리 그게 나오니까, 금방금방 제가 근사치를 확인해볼 수 있으니까, 훨씬 빨라진 거죠. <악마를 보았다>는 거의 혼자 했어요. 오퍼레이터 하는 친구와 둘이 하다가, 아무래도 영화음악을 계속 하고 영화 사이즈가 점점 커지고, 영화라는 게 저와 맞닥뜨렸을 때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량과 인내심과 감정싸움이 필요하다 보니까, 그렇게 팀이 있으면 상처도 덜 받고, 덜 지치게 되더라고요. 모그에 있어서 영화음악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단독 개인앨범 작업보다는 점점 영화음악 쪽에 치중하시잖아요. 산업이 변화하는 것에 거스를 수도 없고요. 단독 작업이란 것 자체가, 앨범이란 것을 손에 쥘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공기처럼 떠다니게 하는 음악 작업이 힘들더라고요. 받아들이기가. 어쨌든 영화음악이란 작업은 제약도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작업인 거 같아요. DVD라는 것도 만들 수 있고요. 손에 잡히는 결과물에 대한... 습관처럼 생긴 저의 집착인지도 모르겠지만, 예전에 연주하면서 세션을 할 때는 그게 다 크레디트에 남는 세상에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어느 아티스트의 작업에 참여해도 그 아티스트의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세상에 살아야 된다는 게 너무 슬프더라고요. 음원을 보면 또 그런 게 안 나오죠. 그렇죠. 어떤 사람이 음악을 듣는데, 음반을 사서 그 안에 적혀있는 글부터 해서 이건 어디서 녹음을 했고, 누가 참여를 했고, 편곡은 어디서 했고, 이런 데이터들을 쌓고 음악을 들어왔다면, 요즘은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 자체도 되게 힘든 세상이라는 것 자체가 감당이 안 되거든요. 특히 전 베이스를 치던 사람이라서 이런 걸(스마트폰)로 음악을 들으면 베이스는 들리지도 않아요. 존재감도 없고요. 스펙트럼이나 다이나믹한 것들이 전혀 안 느껴지고, 질감 같은 것들이 무시되는 세상에 살게 되니까요. 사실 영화음악이 그것의 피난처 역할을 해주고 있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좋은 오디오 시스템에서 들을 수 있는 환경, 앨범이란 게 나올 때만 해도 아는 분들 중에서 마니아들이 있으면 좋은 앰프와 스피커가 구비되어 있으면 거기서 한 번 들어봐야지, 하면서 차 한 잔 마시며 음악을 듣곤 했었는데, 점점 그런 게 없어지죠. 음원이란 것도 정액제로 확 묶어놓다 보니 진짜 1회용이 되어버려서 사람들이 데이터(음원)를 넣었다가 공간이 차면 또 비워내고. 음원 공유 시스템 자체가 아티스트의 에고나 존재 자체를 지워놔 버려서요. 차라리 영화음악을 하는 게 그 아티스트 경계의 안과 밖에도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정말 아이덴티티가 안 생기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영화관이라는 좋은 시스템 안에서 음악을 들을 수가 있게 된 거네요. 그게 유일한 해소 지점이 된 거 같아요. 차기작으로는 어떤 작품이 있나요? 아까 말했던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가 내년 1월 중에 개봉할 거 같고요, 이재규 감독의 <역린>, 박흥식 감독의 <협녀>를 준비하고 있어요.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정말 몰랐습니다. _ 인터뷰 : 문상윤 _ 정리, 사진 : 유성관 _ 2010.10.17, 미래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