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수염
- 감독
- 이성구
- 제작년도
- 1968
- 출연
- 신성일, 윤정희, 김승호, 김성옥, 김동원, 김신재, 곽규석, 박옥초, 전창근, 한은진, 정민, 정애란, 문오장, 여운계, 박기택, 유하나, 조덕성, 임해림, 임성포, 권일정, 윤신옥, 황인철, 백일섭, 이일웅, 최창호, 송창수, 공시훈, 이영호, 박철, 손전, 장현호, 김세라, 김웅, 고설봉
1980년에 출판된 미국 인명사전 「마르퀴스 후스 후 인 아메리카 Marquis Who’s Who in America」에는 렌 라이(1901-1980)가 ‘모션 컴포저(Motion Composer)’로 등재되어 있다. 직역하면 ‘동작(움직임) 작곡가’가 될 이 합성어는 드로잉, 회화, 직물염색(납염, Batik), 사진, 영화, 키네틱 조각, 시와 산문 등의 매체로 작업해왔던 라이가 본인의 작업을 ‘움직임의 형상(figure of motion)’으로 압축해서 표현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를 대표하는 단어의 조합으로서 매우 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모션 컴포저’가 다양한 매체를 가로지르며 운동의 리듬을 탐구했던 라이를 대변한다면, 1958년에 첫 상영되었던 <프리 래디컬스 Free Radicals>는 그의 작업 이력 전체를 함축하고 대표하는 작품이다. <프리 래디컬스>를 라이의 대표작으로 꼽는 이유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열할 수 있다. 프리 래디컬스는 화학용어로서 유리기라고 번역되는데, 홀전자(unpaired electron)를 갖는 원자나 분자를 의미한다. 보통의 원자나 분자에서 전자는 회전 방향이 반대인 두 개의 전자가 쌍을 이루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빛이나 열과 같은 에너지가 가해져서 전자의 결합이 끊어지면 홀전자가 되고, 이는 다른 원소들과의 반응을 촉진하는 불안정한 상태를 야기한다. 라이는 전 작업을 걸쳐서 신체와 물질을 탐구했었고, 자신의 창작이론을 진화론, 신경과학, 양자역학, 유전학에서의 발견들을 통해 확인하고 설명하는 것을 좋아했다. 라이는 신체와 물질 각각 뿐만 아니라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교환 역시 에너지로 생각했고 안무를 에너지에 헌정된 예술로 간주했다. 그가 자주 썼던 용어로 표현하면, 인간의 ‘오래된 뇌(old brain, 이성이나 문자를 거치지 않고 직관적인 앎을 가능하게 하는 몸의 깊숙한 곳)’와 유전자(태고부터 내려오는 인간의 활동들이 각인된 저장소)는 사물의 운동(에너지)와 공감각적으로 공감(empathy)한다. 라이의 필모그래피에서 색채, 댄스, 리듬 등의 단어가 눈에 띄는 것은 운동에 대한 그의 관심을 반영한다. 그러나 <프리 래디컬스>에서는 제목이 뜻하듯, 하나의 형상이 전개되고 다른 형상으로 변주되는 과정이 화학적인 촉발과 반응처럼 구성되었고, 아프리카 바기르미족(Bagirmi)의 드럼 음악(인간의 원초적 에너지)에 맞춰 안무 되었다는 점에서 라이의 관심사가 응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프리 래디컬스> 별표 시퀀스의 일부 출처: http://thethird-eye.co.uk/free-radicals-by-len-lye <프리 래디컬스>를 라이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제작을 위한 재정적 후원을 받는 것을 포기하고 영화가 예술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다소 결연한 의지로 만들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라이의 영화들은 제작비의 출처에 따라 여섯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런던 필름 소사이어티(the London Film Society, 1925년에 설립되어 1939년까지 지속되었던 영국 최초의 영화 협회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캐럴 리드와 같은 감독들도 회원이었다)로부터 제작비 일부를 충당했던 1929-34년, (2) 영국 중앙우체국(GPO, the General Post Office)의 영화과 등에서 제작비 지원을 받았던 1935-40년, (3) 영국 정보부(MOI, the Ministry of Information)의 사실주의자 영화과(Realist Film Unit)에 소속되어 나치에 대항하는 선전영화를 만들었던 1941-43년(공교롭게도 MOI는 라이의 영화를 보고 선전영화는 더 직설적이고 덜 영화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4) 1944년에 뉴욕으로 옮겨서 <마치 오브 타임 the March of Time> (타임 사에서 제작했던 단편 뉴스릴 영화 시리즈로 극장에서 본영화 전에 상영되었다) 시리즈의 연출가로 뉴스릴 영화를 만들었던 1944-51년, (5) 제작비 대부분을 스스로 충당했던 1952-59년, (6) 키네틱 조각을 만들다가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그의 고국 뉴질랜드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던 1979-80년이다. (지면의 한계로 작품의 상세한 목록을 생략한다. http://sensesofcinema.com/2002/feature-articles/lye-2/#filmo을 참고하기 바란다.) 1945년 경 <마치 오브 타임>의 사무실에 있는 렌 라이 사진의 왼쪽은 라이가 디자인한 시리즈의 로고 출처: http://www.art-newzealand.com/Issue101/lye.htm <마치 오브 타임> 시리즈의 일부를 연출했던 시기까지 라이는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안정되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존 그리어슨이 이끌던 GPO의 영화과로부터 지원을 받게 되면서, 일 년에 두 편 정도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시기 작품들의 장르를 엄밀히 따지자면 광고에 해당한다. 작품 제작을 지원했던 단체 혹은 회사들(예를 들면, 임페리얼 Imperial 항공사)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어슨은 작품 제작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데 있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만을 달았을 뿐, 라이가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었다. 만약 라이의 대표작을 색채의 관점에서 꼽아야 한다면, 단연코 <컬러 박스 Colour Box>(1935)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거의’ 처음으로 필름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거의’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기록상으로 이탈리아 미래파 작가인 아르날도 지나(Arnaldo Ginna)와 브루노 코라(Bruno Corra)가 1908년 필름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착상을 했고, 1910년에 네 편의 추상영화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1910년대에 한스 스톨텐베르그(Hans Stoltenberg)나 앙리 스토크(Henri Storck)도 유사한 방식으로 작업했다는 기록이 있다. 라이는 필름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다이렉트(direct) 필름’이라고 불렀다. 이를 지칭하는 유사한 용어로는 ‘카메라 없는 영화(Cameraless film)’나 ‘필름 위에 그린 애니메이션(Drawn-on-film animation)’이 있고, 좀 더 폭넓게는 ‘핸드메이드 필름(Handmade film)’도 해당된다. <컬러 박스>는 영국 전역에서 수백만 명에게 보였기 때문에, 대중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첫 다이렉트 필름이라고 할 수 있다. (<컬러 박스>는 1935년 브뤼셀 국제영화제의 판타지 영화 부문에서 명예상(Medal of Honor)을 받았고, 이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때 영화를 본 나치 관객들은 오스카 피싱거의 추상영화에 비해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혹평했다. 형태가 지나치게 자유분방하고 작품에 사용된 재즈 음악이 흑인적(negroid)이라는 이유에서였다.) 1935년에 영국에서 이 작품을 본 노만 맥라렌(1936년부터 1939년까지 GPO에서 일했다)은 “여기 손으로 그린(handpainted) 영화의 개척자가 있다...그것은 마치 내게 꿈이 실현되는 것과 같았다...렌 라이는 그 방식을 능숙하고 훌륭하게 보여주었다”라고 말했었다. 라이는 이 시기에 듀페이컬러(Dufaycolor), 가스파르컬러(Gasparcolor), 테크니컬러(Technicolor)와 같은 컬러 필름들을 실험하는 데 집중했었다. <컬러 박스>의 스틸 이미지 출처: https://filmcolors.org/2014/04/18/dufaycolor-films-by-len-lye 1951년에 라이가 <마치 오브 타임>을 그만두고, 1952년에 자신과 부인 앤(Ann)만 속했던 영화사의 이름을 다이렉트 필름으로 정했던 것은 카메라로 찍는 영화를 그만두고, 다시 손으로 그리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았다. 어쩌면 라이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안정되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환경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그의 영화사 이름에 담았을지도 모른다. 라이는 한스 리히터의 초청을 받아서 뉴욕시립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뒤이어 콜롬비아대학, 뉴욕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그러나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라이는 다이렉트 필름을 설립하고 나서 첫 영화로 <컬러 크라이 Color Cry>(1952)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라이의 영화 작품 포맷은 16mm로 바뀌었다.) 이 영화는 라이가 틈틈이 해왔던 포토그램(photogram, 필름 위에 사물 등을 올려놓고 빛에 잠깐 노출시켜서 상을 맺게 하는 방법) 작품들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라이는 모슬린 천에 새겨진 점(dot) 패턴을 마음에 들어 했고, 포토그램 방식으로 필름 위에 점 패턴을 복사했다. 이때 라이가 품고 있던 생각은 “춤추는 원자”였다. 원자에 대한 관심은 그가 <마치 오브 타임>을 연출할 당시에 시리즈 중의 하나였던, 아인슈타인과의 인터뷰를 담은 영화를 보고 난 이후부터 커져 왔다. 라이는 다이렉트 필름의 두 번째 작품으로 <리듬 Rhythm>(1957)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크라이슬러 자동차 공장을 찍은 푸티지들을 점프 컷으로 구성해 만든 1분 길이의 파운드푸티지 작품이다. 이 작품의 도입부와 후반부에도 점과 선의 패턴이 나온다. <리듬>은 1957년 뉴욕 아트 디렉터스 페스티벌(New York Arts Directors Festival)의 텔레비전 광고 부문에서 수상했지만, 크라이슬러사가 영화에 사용된 음악을 싫어했고 광고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상이 취소되었다. 1957년에 라이가 <프리 래디컬스>를 만들 전의 상황이 이러했다. 그런데 1958년 브뤼셀 엑스포와 함께 열릴 예정이었던 실험영화제 EXPRMNTL로부터 작품을 보내달라는 초청을 1957년에 받았다. (EXPRMNTL은 일명 크노케-르-주트 실험영화제이다. 이 영화제는 1958년부터 74년까지 총 다섯 번 개최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던 실험영화작가들이 상호 교류를 시작하면서 서로를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영화제가 우리에게 좀 남다를 수 있는 이유는 동시대적인 의미에서 실험영화를 사용한-필자가 현재까지 확인했던바 내에서-첫 공식기록으로, 1957년 6월 23일 자 「국제실험영화제」라는 동아일보 기사가 해당 영화제의 작품 공모를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필자가 본 연재에서 맡은 유현목의 <손>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수도 있을 것 같다.) 라이는 초청을 받고 약 8개월간 <프리 래디컬스>에 집중했었다. 이 작품은 라이가 품어왔던 ‘춤추는 원자’의 실현이자, 블랙 리더(leader)로만 만든 첫 영화이다. 라이는 16mm 블랙 리더의 이멀전(emulsion)을 일상의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해서 긁어내어 형상을 새겨 넣었다. 필름 이멀전을 벗겨내어 만드는 영화를 ‘스크래치(scratch) 필름’이라고 한다. <프리 래디컬스>는 스크래치 필름이기 때문에, 곧잘 맥라렌의 <블링키티 블랭크 Blinkity Blank>(1955)와 비교되기도 하고 이 작품에 라이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맥라렌의 작품은 검은 배경에 색채가 강조되는 작품이고, 라이의 <프리 래디컬스>는 흑백으로 필름의 투명한 부분을 통과하는 빛이 스크린에 투사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스크래치는 라이가 이전에도 사용했던 방식으로, 영향 관계라기보다는 작업 태도를 공유하는 작가들에서 발견될 수 있는 유사성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라이는 <프리 래디컬스>로 EXPRMNTL의 2등 상을 받았다. 대상은 폴란드의 발레리안 보르보츠크(Walerian Borowczyk)와 얀 레니차(Jan Lenica)의 <돔 Dom>(1958)에 돌아갔다. 심사위원은 만 레이, 존 그리어슨, 노만 맥라렌, 알렉산더 알렉세예프, 에드가 바레즈였다. 라이는 상금으로 5천 달러를 받았다. 이 성과에 힘입어 라이는 <프리 래디컬스>가 미국 내에서 성공적으로 배급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공식 상영된 곳은 아모스 보겔이 개최했던 ‘시네마 16’뿐이었고, 상영료로 50달러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 라이는 제작 후원을 구하고 실험적인 영화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기 위해 마지막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고(비서로부터 답장을 받긴 했다), 미국 해외공보처, 문화교류재단 등에도 편지를 보냈지만 성과는 없었다. 뉴욕현대미술관에 <프리 래디컬스> 프린트 가격으로 4천 달러를 제시했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라이는 1959년에 「영화는 예술인가? Is Film Art?」라는 글을 쓰고 영화작가로서 파업을 선언한 뒤 키네틱 조각으로 전향했다. 1960년대 피터 쿠벨카는 여러 차례 라이에게 회고전을 열고 싶다고 요청하였으나, 그는 자신은 키네틱 예술가라며 번번이 거절했다. 이와 같이 <프리 래디컬스>는 일련의 영화작업이 수렴되었던 마침표이자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기 위한 쉼표와 같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라이의 대표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프리 래디컬스>가 라이의 작품 이력에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가 1979년에 키네틱 조각에서 영화로 돌아와 다시 대면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프리 래디컬스>는 1979년에 라이가 재편집했던 판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라이가 키네틱 조각을 경유하면서 받은 영향들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라이의 키네틱 조각 작품들의 제목과 작업 방식을 보면 차라리 <프리 래디컬스>가 이후의 작품들을 예비했다고 볼 수 있다. 라이가 품었던 ‘춤추는 원자’라는 생각은 그의 키네틱 조각들에서 더욱 다채롭게 전개되었다. 라이의 키네틱 조각은 최소한 32개의 작품이 만들어졌거나 고안되었다. 이 작품들의 목록은 새로 발굴되는 자료가 추가되면서 지금도 확장되고 있는데, 그중에 작품들의 제목을 일부 나열하면 <원자적 춤 Atomic Dance> <벨 막대기 Bell Wand> <춤추는 원자 Dancing Atom>, <뒤집기와 두 개의 회오리 Flip and Two Twisters(일명 삼부작 Trilogy)> <우주 Universe(일명 루프 Loop)> 등이다. 라이는 이 개별 작품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한데 모아놓고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일부에서 번개의 신으로 숭배되었던 샹고(Shango)의 신전을 만들려고 했다. 라이는 개별 조각 작품들의 복제품을 만들었을 때, 같은 스케일로 제작한 적이 없고 늘 변주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제목도 하나 이상인 경우가 많다. 관람객이 촬영한 <우주> 관람객이 촬영한 <뒤집기와 두 개의 회오리> 라이는 키네틱 조각을 만들 때, 그가 낙서(doodling)라고 부는 행위에서부터 출발했다. 낙서는 재료를 만지고 흔들거나 휘어보면서, 재료에서부터 파생되는 운동(에너지)의 형상을 몸으로 느껴보는 행위를 의미했다. 낙서는 그가 영화를 만들었을 때에도 작업 방식을 설명하는 핵심어였다. 라이는 조그만 필름 표면 위에 일상의 다양한 도구들로 그리거나 긁어내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재료를 느끼며 형상을 낙서해나갔다. 낙서는 초현실주의의 자유연상과 유사한 방법인데, 라이가 뉴질랜드에서 런던으로 이주했던 직후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했던 영향이 반영된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라이는 초현실주의가 지나치게 문자적이고 상징적이라고 비판했고 언제나 몸을 중심에 놓고자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라이의 낙서는 추상표현주의자들이 그리는 행위를 강조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에 있다. 라이가 주로 사용했던 재료는 금속으로, 가늘고 긴 조각(strip), 막대, 판(sheet), 롤(roll) 등의 기본 형태들을 선호했다. 이러한 형태들은 필름 재료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키네틱 조각에서도 필름의 물성 자체에 대한 라이의 관심이 연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라이는 금속 재료로 기본 형태를 만든 뒤에 모터나 전자석을 붙여서 움직이게 만들었는데, 이 과정을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렀다. 또한 그의 키네틱 작품들은 지속시간이 그의 영화들의 평균과 같이 4분에서 5분 정도였다. 라이는 재료에 열처리를 하거나 표면을 사포로 긁어내서 질감에 변형을 주고, 이에 따라 반사되는 빛의 차이들을 실험했다. 재료의 소리도 중요했다. 라이는 키넥틱 조각품에서 나는 소리들을 따로 녹음에서 사운드트랙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 사운드트랙은 아이튠즈에서 판매 중이다.) 그는 키네틱 작품을 전시할 때, 각각의 작품들에서 반사되는 빛과 소리가 대위(counterpoint)를 이루도록 배치했다. 이러한 작업 방식들은 아래에 삽입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에 잘 드러나 있다. [영상 3] <낙서: 렌 라이의 인상들 Doodlin’: Impressions of Len Lye>(1987) [영상 4] <뒤집기와 두 개의 회오리 Flip & Two Twisters>(1995) 라이는 <프리 래디컬스>를 재편집한 이후 <공간 속의 소립자들 Particles in Space>(1979)을 만들었다. 평자들에 따라서 후자를 더 중요한 작품으로 간주하기도 하는데, 스탠 브래키지는 특히 이 작품을 좋아했다. 물론 <프리 래디컬스>에 대해 “믿을 수 없이 엄청난 걸작”이라는 평가도 빼놓지 않았다. <공간 속의 소립자들>에서 사용된 소리는 라이의 키네틱 조각에서 나는 소리들이 녹음된 것이다. <프리 래디컬스>와 <공간 속의 소립자들> 사이에 라이의 키네틱 조각을 놓으면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떠오른다. 스케일이다. 개인적으로 <프리 래디컬스>를 라이의 대표작으로 꼽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그 답을 스케일에 대한 경이로운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라이는 소립자의 운동과 태양의 운동은 에너지란 측면에서 같고, 서로 통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영화로 번역하면 16mm의 작은 표면 위에 새겨진 미세한 운동은 영사기를 통해 투사되는 이미지의 운동과 에너지라는 측면에서 같다. 다만 필름이 스크린에 투사되어 확장되었을 때, 필름 표면 위의 미세한 운동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증폭되고, 기념비적인 스케일의 움직이는 조각이 된다. 조각은 삼차원이고 영화 스크린은 평면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라이가 필름 위에 몸으로 새긴, 그래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힘의 차이는 필름 이멀전의 두께를 다르게 만들고, 이는 스크린 상에서 깊이의 환영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머리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케일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몸으로 반복해서 느껴야만 터득될 수 있다. 영화의 초창기, 그토록 많은 조형 예술가들이 영화에 매료되었던 것은 기념비적인 조각을 구현할 때 직면해야 하는 수많은 현실적 장애들을 영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매혹적이고 경이로운 경험은 오늘날 컴퓨터로 영화를 만들고 보던 학생이 영화제의 상영작으로 꼽혀 처음으로 자신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을 때 느끼는 당혹감이 되어버렸다. 대부분 이 당혹감을 자신의 미숙함을 탓하며 부끄러움 속에 감추어버리지만, 사실 이러한 스케일의 차이는 탐구되어야 하는 영역에 속한다. <프리 래디컬스>를 볼 때에는 가능한 작은 스크린을 통해서 먼저 본 이후(만약 스마트폰에서 본다면 가급적 세로로), 최대한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보기를 권하고 싶다. ※ 이 글에서 언급된 영화들과 렌 라이에 관한 사실들은 로저 호록스(Roger Horrocks)가 2001년에 펴낸 「렌 라이: 자서전 Len Lye: A Biography」과 2010년에 출간한 「움직이는 예술: 렌 라이의 작품 Art that Moves: The Work of Len Lye」을 참고하여 정리한 것이다. 렌 라이에 관한 문헌 목록은 http://sensesofcinema.com/2007/great-directors/lye/#film에 잘 정리되어 있다.
... (네 번째 이야기) 영화 안에 영화가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걸 지젝은 외설적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 순간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등장인물 중의 누군가가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는 순간과 마주하는 장면은 영화사 속에 수 없이 등장한다. 아마 누군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버스터 키튼의 < 셜록 주니어 >를 떠 올릴지 모르겠다. 정반대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지가 베르토프의 < 카메라를 든 사나이 >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있다. 나는 그냥 별다른 검색을 하지 않고도 이 자리에서 백편 이상의 제목을 열거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영화 안의 영화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먼저 여기서 내가 다루려는 영화 안의 영화는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영화 안의 영화는 두 가지 영화가 있다. 하나는 버스터 키튼이나 지가 베르토프처럼 영화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영화 안의 영화를 (말 그대로) 만들어내야 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영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갑자기 영화 속의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이 영화를 보러가는 바람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게 되는 경우이다. 이때 이 영화는 여기서 다시 둘로 나뉜다. 하나는 영화의 필요에 의해 그 영화를 만들어내는 경우이다. 금방 떠오르는 예. 우디 앨런의 < 카이로의 진홍빛 장미 >. (하지만 어쩌면 이 영화는 첫 번째 설명의 예가 될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그저 무턱대고 다른 영화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영화 안에 끼어드는 경우이다. 물론 오로지 다른 누군가의 영화를 보러 가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차이밍량의 < 안녕, 용문객잔 >은 내내 호금전의 < 용문객잔 >이 상영되는 극장에서 배회하면서 그 영화를 보다말다 하기를 반복한다. 그런 다음 이 사이에 수많은 변주가 있다. 영화가 영화 안으로 들어갈 때 즉각적으로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왜냐하면 영화 안의 영화는 그 영화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일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영화는 한편으로 서로에게 의지하지만 동시에 모든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영화 안의 영화는 자기를 표명하는 대신 자기의 존재 방식을 실천하기 시작한다. 어떤 영화는 대화를 나누지만 어떤 영화는 침묵을 지키기도 한다. 가장 이상한 경우는 독백을 하기 시작할 때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 둘은 고스란히 겹쳐지지 않는다. 같은 말이지만 (반대의 방향에서 즉각적으로 저항하자면) 그 위에 덧씌워지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영화 각자의 고유한 존재의 권리 행사. 이때 영화 안에 영화가 들어오는 순간이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만큼 항상 아방가르드한 것은 아니며 대중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이 영화에서 저 영화에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상한 말이기는 하지만 영화 안에 영화를 감금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반대로 영화 안에 영화가 들어올 때 영화의 환대란 순환이라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어떤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안의 영화는 그 영화가 꾸는 꿈이 아니다. 차라리 영화 안의 영화는 영화의 안에 들어온 바깥이다. 영화 안의 영화는 가까스로 하나로 모아놓은 영화의 서로 다른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면서 영화 안의 모든 기호들을 분산시키려들 것이다. 그런 다음 지금 보고 있는 영화의 경험에 대한 한계를 일깨우고 갑자기 그 바깥으로 나가려 들 것이다. 영화 안의 영화는 단지 +1이 아니다. 블랑쇼의 말처럼 바깥이란 보이던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들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든다. 이때 영화 안에서 영화를 잡아당길 때, 끌어들일 때, 감싸 안을 때, 잠시 한눈을 팔 때, 원컨 원치 않건 그 안으로 단지 다른 영화가 들어서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역사가 끼어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단지 구조 안에서의 대화에 머물지 않고 여기에서 저기로, 그런 다음 다시 저기서 여기로 이행할 때 그 과정 중에 전혀 다른 두 개의 리듬이 공존한다는 것은 서로의 다른 존재가 역사 안에서 견뎌가는 자기의 근거를 내세우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근거의 지평. 근거의 각자의 전술. < 외아들 一人息子 > (오즈 야스지로, 1936) 나는 곧장 임권택 의 두 편의 < 장군의 아들 > 안에 머무는 두 편의 영화 안의 영화로 달려가기 전에 두 편의 경험을 먼저 말하고 싶다. (좀 수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다 말고 영화 안의 영화를 보게 된 적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즈 야스지로의 < 외아들 >을 보다 말고 갑자기 빌리 포르스트의 <미완성 교향악>을 보게 되었을 때 어떤 쇼크를 느꼈다. 이 영화는 오즈의 첫 번째 토키이다. 언제나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진행하던 영화가 35분 19초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와 아들은 제국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두 세 개의 텅 빈 방안 장면을 보여준 다음 보는 쪽은 아무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게도) 느닷없이 <미완성 교향악>의 한 장면이 마치 다음 쇼트처럼 이어진다. 물론 오즈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영화를 보기 위해서 극장까지 가는 장면을 찍지 않았으며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들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빌리 포르스트가 1934년에 연출한 첫 번째 영화 <미완성 교향악>의 쇼트가 아무렇지도 않게 갑자기 이어질 때 누구라도 멈칫 거기 서버릴 것이다. 마치 영화가 중단된 듯한 기분. 프란츠 슈벨트와 소프라노 가수 카롤린의 사랑을 담은 이 영화의 원제는 연가곡 ‘백조의 노래’ 중의 한곡인 ‘세레나네’의 첫 구절 “Leise flehen meine Lieder (나의 노래를 나지막이 노래하네)”이지만 일본에서 <미완성교향악>으로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크게 성공했고 비평가들로부터도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오즈가 이 영화를 좋아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1936년에는 매년 써 오던 일기를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오즈는 슈벨트와 카롤린을 보여준 다음에야 비로소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는 어머니와 아들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그런데 자꾸만 몰려오는 졸음을 참아가며 그만 고개를 떨군다. 아들은 약간 부끄럽지만 금방 그런 어머니를 미소를 머금으며 쳐다본다. 두 개의 영화는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오가기 시작한다. 오즈의 카메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멈춰 서 있지만 빌리 홀스트는 화면의 크기를 바꿔 가면서 두 연인을 보여주다가 밀밭 사이를 걸어가는 카롤린을 따라 수평으로 바람결처럼 쫓아간다. (horizontal_tracking) 두 영화는 서로 다른 체계, 다른 리듬, 다른 원칙, 다른 배우, 다른 국적, 단지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멀리 있다. 여기서는 어느 쪽도 어느 쪽에 안주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오즈는 <미완성 교향악>의 장면을 그대로 가져오긴 했지만 <외아들>의 진행 리듬에 맞추어 잘랐기 때문에(decoupage) 기괴하게도 원래 영화의 장면은 알겠는데 빌리 포르스트의 리듬을 가늠할 수가 없다. 뭐랄까, 여기엔 잘 설명하기 힘든 불화 속의 무효가 있다. 오즈는 <미완성 교향악>으로부터 아무 것도 이용하지 않는다. 두 영화 사이의 침묵.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에서 분할의 관계는 일단 구조 안에 들어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립적이고, 더 적대적이며, 더 주관적이고, 더 분명하게 서로의 주권을 놓고 다투게 된다. 말하자면 여기서 (그것이 원래의 의도인지 아닌지를 주장하긴 어렵지만) 결국 쇼트가 연결된다는 것은 서로를 잡아당기면서(attraction) 다시 한 번 에이젠쉬테인 프로그램 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이젠쉬테인이 종종 인용한 윌리엄 브레이크의 말. “내가 체계를 세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체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 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 Film en douze tableaux > (장 뤽 고다르, 1962) 두 번째 예. 물론 가장 잘 알려진 예는 고다르의 < 비브르 사 비 >이다. 12개의 장으로 나뉘어진 이 영화 세 번째 장 <아파트 관리인, 폴, 잔 다르크의 수난, 저널리스트>에서 안나는 극장에서 칼 드레이어의 < 잔 다르크의 수난 >을 본다. 하지만 오즈처럼 느닷없는 것은 아니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insert_shot)이 먼저 나온다. 고다르는 그걸 약간 카메라를 비스듬히 누여서 한밤중에 극장에 매달려 있는 두 개의 네온사인으로 시작한다. 하나는 여기가 극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왼쪽에 매달린 사인인데 CINE만 보이고 MA는 꺼져있다. 이 극장이 별 인기없는 변두리 극장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며, 아마도 그런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라면 지금 하는 영화는 철지난 영화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른쪽 아래 비스듬히 < JEANNE D’ARC >라고 제목이 걸려있는 네온사인이다. 잘 알려진 잔 다르크에 관한 영화는 세 편인데 하나는 칼 드레이어의 < 잔 다르크의 수난 (La Passion de Jeanne d’Arc) >이고 다른 하나는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으로 나온 (빅터 플레밍 연출의) < 잔 다르크 (Joan of Arc) >,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의 < 잔 다르크 재판 (Le proces de Jeanne d’Arc) >이다. 그런 다음 한참 뒤에 자크 리베트는 <잔느 성처녀>라는 제목 아래 <전쟁터>와 <감옥>을 찍었다. (나는 여기서 구태여 뤽 베송의 잔 다르크는 셈에 넣지 않았다. 물론 몇 편의 잔 다르크 영화가 더 있다) 다만 브레송은 고다르가 <비브르 사 비>를 찍고 있을 때 그 영화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미처 고다르(의 주인공들)은 보러갈 틈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구태여 한글 제목 옆에 원제를 병기한 것은 아래 비스듬히 보이는 제목 < JEANNE D’ARC >라는 네온사인은 아무래도 <비브르 사 비>를 위해서 제작한 것 같기 때문이다. 드레이어의 영화 앞에는 < La passion... >이 붙어있고 빅터 플레밍은 영어식으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 번째 장을 시작하면서 ‘...잔 다르크의 수난...’이라고 표기했지만 이것이 영화 제목이라는 별도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극장 간판이 보이고 난 다음 나나는 극장에 들어간다. 화면을 향해서 바라보는 관객을 오른쪽에서 수평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는 화면에서 무슨 영화를 상영중인지 알 수가 없다. 불이 꺼져있기 때문에 영화를 상영중이라는 건 알겠는데 아무 소리도 없기 때문에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무슨 영화를 상영중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화가 무성영화라는 것이다. 뒤에 앉은 남자는 따분하게 바라보고 있고, 앞에 앉은 남자는 옆에 앉은 여자의 어깨에 팔을 올려놓는다. 나나는 그들을 지나 더 뒤에 가서 앉는다. 고다르는 나나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보여주는 대신 그 다음 장면에서 갑자기 잔 다르크를 연기하는 팔코네티의 커다란 클로즈업을 보여준다. (잔혹연극으로 알려진) 앙토넹 아르토가 연기하는 사제가 잔 다르크에게 화형이 구형되었음을 알려주러 온 그 유명한 대목이다. 사제는 약간 비웃는 듯도 하고 또 그만큼 가련하다는 듯한 얼굴로 그 소식을 전한다. “사형이 결정되었습니다” 잔 다르크가 묻는다. “무슨 형인가요?” “화형입니다” (물론 이 대사는 자막으로 진행된다) 그때 아무런 분장도 하지 않은 채 머리를 짧게 깎은 팔코네티가 연기하는 잔 다르크는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는 눈꺼풀을 참아가면서 극심한 두려움을 참아낸다. 그저 단지 이 얼굴을 클로즈업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피로에 지친 피부. 자기도 모르게 감기는 것만 같은 눈. 생명이 거기서 증발하고 있다. 그때 그 얼굴은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만 같은 시선. 드레이어는 그 장면에서 기적에 가까운 쇼트를 만들어낸다. 그녀는 눈을 뜨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마치 자기의 시선을 거두는 것만 같은 표정. 영화에서 불가능의 성립. 그때 고다르는 재빨리 이 클로즈업에 나나가 마치 넋을 잃어버린 것처럼 바라보는 클로즈업을 이어 붙인다. (reverse_shot) 물론 잔 다르크의 시선 없는 표정은 나나의 얼굴이 바라보는 시선과 (노엘 버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접합되지 않는다. 그때 이 접합의 핵심은 나나를 (앞의 쇼트인) 잔 다르크에서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나를 (다음 쇼트인) 사제가 바라보는 것처럼 연결시키고 있다. 시네마데크에서 머물러 살다시피 한 고다르는 이 쇼트를 잊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고다르는 나나가 영화(속의 잔 다르크)를 바라보는 모습을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상상선을 따라가면서 찍었다. 영화 이론은 이 장면을 고다르가 브레히트를 따라 이화작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마치 누군가 훔쳐보고 있는 것처럼 찍었다고 다소 따분하게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설명한다. 누가? 바로 우리가. 그래서 이 장면을 우리에게 영화란 훔쳐보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도덕적인 쇼트라고 불렀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나의 쇼트를 잔 다르크를 바라보는 시선의 이미지라고 설명하는 대신 사제가 바라보는 쇼트라고 설명하게 되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판본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사제는 두 사람을 겹쳐놓고 바라보는 것이다. 이때 한 명은 물론 잔 다르크지만 다른 한 명은 나나가 된다. 물론 이 두 개의 쇼트는 단순하게 교환되지 않는다. 고다르의 믿음. “씬을 어디까지 지속해야할 지를 아는 것은 이미 몽타주이다” (<나의 멋진 근심, 몽타주>) 지속의 문제는 동시에 중단의 문제이다. 이때 무엇을 무엇과 연결시킬 것이라는 결정은 본다는 동사가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서 어떻게 활동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우리는 고다르가 영화를 종종 (구조주의자들과 아무 연관 없이) 언어처럼 다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두 개의 주어. 하나의 목적어. 그 사이에서 고다르는 동사를 구부러뜨린다. 영화 안의 영화를 영화의 안과 바깥으로 나누는 대신 영화 바깥을 영화 안으로 밀고 들어간 다음 두 명의 주인공을 영화 안에서 바라보게 만들 때 나나는 잔 다르크의 자리로 간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나나의 눈물을 정말 브레히트적인 방법으로 쳐다볼 수 있게 된다. 벤야민은 브레히트를 설명하면서 중단을 끌어들인 다음 거기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에도 비유할만한 감정이입의 전도를 본다. 고다르는 그 방법을 영화적인 판본으로 조금 더 밀고 나아간다. 나나는 잔 다르크처럼 자본주의적인 방법으로 화형을 당하게 될 자신의 운명을 거기서 말 그대로 자기 눈으로 자신의 미래를 본다. 마지막 장면. 총에서 불을 뿜으면서 추운 겨울날 대낮 거리에서 버림받은 개처럼 죽게 될 신세. 임권택 은 조금 다른 경로를 따라간다. < 장군의 아들 >에 갑자기 다른 영화가 침입하는 순간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첫 번째 편이고, 다른 한 번은 두 번째 편이다. 그리고 세 번째 편에는 영화 속의 영화 장면이 없다. 두 번 모두 물론 오즈처럼 느닷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고다르처럼 감정교육의 프로그램에 따라 구성한 것도 아니다. 임권택은 우리에게 충분히 준비를 하게 만든다. 우선 세 편의 <장군의 아들> 중 첫 번째 영화 속의 영화 장면을 둘러싼 줄거리에 관한 약간의 설명. 이제 막 수표교 굴레방 다리 거지패을 떠돌던 김두한은 극장표를 얻었다가 그것 때문에 종로패 ‘똘마니’들과 시비가 붙고 거기서 보여준 주먹 솜씨 때문에 쌍칼의 눈에 든다. 하지만 김두한은 극장에서 일하기를 원하고 쌍칼은 그런 김두한을 우미관의 주먹패 우두머리인 김기환에게 데려간다. 아직 김두한의 솜씨를 모르는 김기환은 그에게 극장 안에서 상영 전에 좌판을 메고 객석 사이를 돌아다니며 군것질 거리를 파는 일을 맡긴다. 임권택은 여기서 삶을 불어넣기 위해 김두한의 생활을 묘사하는 디테일을 살려 놓는다. 이 장면을 둘러싸고 겹겹이 종로의 시장통 일상생활이 담기고(insert_shot) 여기서 쇼트는 종종 초상화와 장르화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그 사이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이 장면들은 단지 활기를 불어넣거나 혹은 화면에 대한 믿음을 불러 일으키려든다기보다 그 이상으로 종로 거리 자체를 하나의 고유한 시간 질서를 지닌 세계로 이끌어 올린다. 말하자면 여기서 이 일상의 디테일들은 다른 시간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 다음 그 질서의 리듬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그 사이에서 인물과 일상 사이의 친화성이라는 관계 안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임권택이 영화 안에 영화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시간의 질서라는 리듬 안에서 찾아야 한다. < 국경 > ( 최인규 , 1939) 김두한이 우미관에서 일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영화의 무대는 종로 2가 89번지에 자리한 극장 앞으로 옮겨온다. 한국영화사 속에서 수많은 영화 이야기가 여기서 모이고 흩어지곤 했던 전설적인 우미관은 1912년 12월 9일 개관을 한 1,000석 규모의 대형극장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극장이었다는 뜻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미관은 한국전쟁 중에 전관 소실되었고, 휴전 이후 다시 문을 열었지만 1959년 화재로 전소한 후 재개봉관으로 바뀌었고 그 이후 쇼 무대와 영화를 번갈아하면서 역사 속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은 1939년이다. 단성사와 함께 경성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극장. 오늘 오후 신마적 엄동욱과 구마적이 우미관 앞에서 종로 상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벼르던 대결을 벌일 것이다. 그 하루를 시작하면서 종로 빵집 유리창 너머로 우미관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간판이 슬쩍 보인다. 간판에는 < 國境 >이라는 제목과 함께 그 아래 감독 崔寅奎 , 그리고 주연에 金素英 , 李錦龍 , 崔雲峰 , 이라고 써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국경>은 한국영화사에 두 편이 있다. 한편은 1923년 1월 24일 단성사에서 단 하루 개봉하고 (기술상의 이유로) 간판을 내린 김도산 의 연출 작품이고, 다른 한편은 1939년 5월 20일에 개봉한 최인규의 연출작품이다. 나는 < 장군의 아들 2 >와 < 일대종사 >의 상상의 연표를 재구성하면서 이 두 편의 영화 사이에서 1940년에 서로 우연히 스쳐지나가듯 이어진 서로 다른 계절의 각자의 대결에 대해서 셈했다. 그 셈에 따르면 < 장군의 아들 > 일편은 그 전해인 1939년의 이야기일 것이며 여기서 상영중인 <國境>이 최인규의 영화인 것은 연대기적으로 당연하다. 하지만 <국경>은 한국영화사 속에서 사라진 영화중의 한편이기 때문에 <장군의 아들>에서 사용된 장면은 임권택 이 연출한 영화(found_footage)이다. 하지만 여기에 약간 복잡한 문제가 있다. 이때 임권택 은 간판에 최인규 의 < 國境 >를 내걸고 있지만 그걸 장면에 담으면서 이 영화를 참고한 것 같지 않다. KMDb의 줄거리 소개에 따르면 “K국경지대의 밀수단 두목 이금용 에게는 애첩 김소영 이 있었다. 애첩 김소영은 기회만 있으면 도망치려 한다. 한편 이금용의 부하 전택이 는 김소영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전택이는 김소영을 도와 밀수단 소굴에서 탈출한다. 이금용 일당이 그들을 추격한다. 격투가 벌어졌다. 피투성이가 된 전택이는 사력을 다해 이금용 일당을 때려눕히고 김소영과 함께 국경을 넘어간다”라고 되어있지만 아마도 이 줄거리는 1923년에 만든 김도산 의 < 국경 >의 줄거리인 것 같다. 같은 KMDb의 줄거리 소개에 따르면 “국경지대의 밀수단 두목의 애첩과 그 부하간의 사랑을 위한 도피행각을 그린 영화”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최인규의 <국경>은 김도산 영화의 리메이크가 아니다. 좀 더 믿을만한 최인규의 <국경>의 줄거리 소개는 다소 장황하지만 이렇게 이어진다. “압록강 상류 어느 벽촌에 사는 빈농에 사는 김용태에게는 외딸 영자와 그의 약혼자 이세림이 있었다. 세림은 어렸을 때부터 용태가 키워온 고아였다. 늙은 용태에게는 그들의 성장과 혼례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들을 키우기 위하여 생긴 채금(債金)이 항상 붙어 다녔다. 어여쁜 영자에게 딴 마음을 두고 있는 박동일도 그 채권자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용태에 대한 그의 수단을 볼 때 양자로써의 세림의 눈에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급기야 세림은 동일에게 얼마만한 기한을 약속하고 영자나 용태에게 아무 말 없이 마을을 떠나 신의주 밀수자들의 무리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 그러나 모처럼 꿈꾼 일확천금의 꿈은 흩어지고 몸까지 상하여 가지고 그는 뜻에 없는 귀향을 하게 된다. 세림이가 돌아온 그날 밤 세림과 동일 사이에는 영자를 중심으로 대소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를 두려워하여 사랑하는 양인(兩人)이 아무 미련 없이 마을을 떠날 수 있게 하려는 마음으로 용태는 늪에 몸을 던지나 한편 세림도 또한 그릇하여 칠성이란 백치의 사내를 죽이게 된다. 이리하여 고향은 그들에게 안주(安住)를 허락지 않고 세림은 치사죄로 팔년의 징역을 간다. 영자는 감형운동으로 평양에 공소(控訴)하기 위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몸을 팔았으나 결국 무죄는 안 되고 삼년의 감형이 되었을 뿐이다. 그 대신 영자는 몸값 삼백 원 때문에 상술집 계집으로 창녀라는 윤락의 길을 밟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림에 대한 사모의 염(念)은 영자로 하여금 여급으로까지 구하여낼 수 있었다. 마을의 비극 이래 동일은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행방불명이 되나 삼년이 지난 어떤 날 안동에서 영자와 기이한 해후를 한다. 영자는 그가 너무나 양심적 인간으로 변한 것에 고민하나 그러나 압제(壓制)할 수 없는 복수지념(之念)에 이끌려서 품었던 비수로 동일을 찌를 때 도리어 실수하여 절벽에 다리를 떨어져 다리를 상한다. 일 년 후 절름발이가 된 영자는 동일의 호의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애처로운 여자였다. 어떤 날 밤 은(銀)밀수를 밀고한 이가 밀수자에게 붙들렸을 때 영자는 비로소 동일을 떠나서 살 수 없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운명의 장난! 영자는 그저 동일의 품에 안겨서 흐느껴울 뿐이었다. 그리하여 또 한 해가 지나갔다. 아름다운 생활을 꿈꾸면서 평양의 감옥을 나온 세림이가 본 영자는 이미 동일의 아내였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스런 어린 것까지 있었다. (끝)” (동아일보 1937년 5월 7일자, 이 소개 중 한자를 한글로 표기했으며, 지금과 다른 맞춤법 일부를 수정한 이외에 그대로 옮겼다) 그러나 < 장군의 아들 > 속의 <國境>을 보고 있으면 임권택은 김도산의 판본과 최인규의 판본 어느 쪽도 따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간판에 따라 최인규의 <국경>을 염두에 두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은 이 영화가 무성영화라는 점이다. 최인규의 판본은 토키영화이며 개봉 당시에 이 영화는 “빼어난” 녹음으로 당시 신문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최인규 자신도 “보기 좋은 영화의 첫째 조건으로 나는 화면과 음향이 깨끗해야한다고 믿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철학적인 것보다도 그 형식이 미려한 것을 취하고자 합니다. (...) 내가 <국경>을 연출하는 데 취한 첫 의도는 그렇게 화창한 것이었습니다” (동아일보 1938년 11월 16일자)라고 대답했다. 임권택은 (꼭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한국영화사 안에 존재하는 <국경>을 영화 안으로 가져온 다음 최인규의 영화와 상관없는 <國境>을 만들 때 이 디테일은 단지 시대적인 고증과 상관없이 (혹은 심지어 그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미 영화 안의 영화로부터 영화의 일부에로 옮겨간 것이다. 그런데 <국경>은 너무 유명한 영화이기 때문에 만일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면 다소 까다로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나는 임권택이 영화 안에서 얼마나 디테일의 세부 안으로 들어가서 그 자체로 하나의 증언이 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여기서 <國境>이 <장군의 아들> 서사 안에 개입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일부를 연결하거나 혹은 어떤 계기, 전환의 순간, 희미하지만 둘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 설명을 시작하는 사건(이나 인물 사이)의 환유, 아니면 결정적인 궤도의 이탈, 때로 전혀 상이한 맥락에서 마주치게 되는 두 개의 상황 사이의 텔레파시, 그런 것도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國境>은 내게 단지 일부가 잘못된 지식이 아니라 잘 알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무언가 다른 것을 지칭하면서 거기 그렇게 머물고 있는 측면 원근법적 장치의 일부가 아닐까, 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S# 1 S# 2 S# 3 S# 4 S# 5 S# 6 S# 7 S# 8 S# 9 S# 10 S# 11 S# 12 S# 13 S# 14 S# 15 S# 16 나는 먼저 영화와 영화 안의 영화 사이의 수직적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우미관에서 상영하는 < 國境 >의 간판을 보여준 다음 영화가 상영하는 극장 안까지 들어오기 위해서 임권택 은 거의 굽이굽이 안을 돌아가듯이 한참을 극장 건물 안 여기저기를 돌아본 다음에야 비로소 객석으로 들어온다. 표를 사지 않고 창문을 넘어 몰래 화장실 변기통 밑에 숨어 있다가 영화를 보려는 아이들을 따라가는 것은 단지 한 시대의 풍속이라기보다는 (물론 그런 이유도 있지만) 서사의 경제성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이 아이들은 김두한의 어린 시절을 압축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한 (김두한을 상상하는 우리들의) 감정적인 진동판을 건드린다. 그런 다음 붙잡힌 아이 중의 하나를 끌고 가서 대걸레로 씻겨주고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객석에 들어설 때 (그게 다소 상투적이라 할지라도) 인격의 일부로서의 행동을 보여주는 절차가 된다. 하지만 임권택은 영화 <國境>을 시작하기 전에 갑자기 김두한의 동선을 끊어낸다. 누구라도 여기서는 멈칫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 마치 줄거리 바깥으로 나온 것처럼 슬그머니 극장 무대 커튼을 걷고 (관객이 얼마나 찼는지를 보기 위해) 객석을 몰래 쳐다보는 변사의 얼굴이 보인다. ( S#_1) 나는 여기까지 보면서 단 한 번도 변사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어떤 소개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갑자기 시선의 방향이 옮겨갔다. 마치 여기서부터 극장이라는 건축이 자기의 시선을 갖고 활동하듯이 슬그머니 시선의 주도권을 가져간다. 임권택의 연출이 종종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내기의 순간, 슬그머니, 라는 보이지 않는 단락(短絡). 마치 그걸 우리에게 확인이라도 시켜주듯이 순간적으로 마치 암전된 것처럼(fade_out) 검은 화면을 그 사이에 넣기라도 한 듯 카메라 앞을 완전히 가로 막았다가 지나쳐서 변사가 무대 위로 올라온다. 마치 막이 다시 열리는 듯 한(wipe_out) 검은 화면의 순간적인 이동. 변사가 의자가 앉으려는 순간 저 멀리 왼쪽 화면 끝에서 거의 같은 동작으로 극장 맨 끝자리보다 더 뒤에 자리한 입검석(立檢席)에 일본 경사 두 명이 앉는 것이 보인다. 그러면 극장 불이 꺼지고 변사가 대사를 낭독하기 위해 책상 위의 전등을 켠다. 저 멀리 영사실에서 영사기의 불빛이 한줄기 쏟아져 나온다. 말하자면 영화가 시작된다. ( S#_2) 갑작스러운, 차라리 이제까지 < 장군의 아들 >을 보던 관객들에겐 난데없는 흑백화면에 그려진 그림. 그때 변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국경, 아 살얼음 치는 국경!” (voice_over) 나는 여기서 멈칫 설 수밖에 없었다. 무성영화 시대에는 1.85 사이즈의 영화가 없다. 그런데도 <國境>은 태연자약하게 이 화면 사이즈로 시작한다. 물론 위아래를 잘라낸 것도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1.33 화면은 무조건 양 옆을 검게 만들 것이다. (black_masking) 그러면 <國境>과 <장군의 아들>은 서로 완전하게 떨어져나가게 될 것이다. 임권택은 두 영화 사이를 흑백과 칼라로 나누는 정도에서 멈춘다. 그런 다음 그 둘을 변사의 목소리로 이어 붙인다. ( S#_3) 이어지는 변사의 목소리. “조선과 만주를 가르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한 많은 강물은 흘러 흘러 어디로 가느냐. 서해로 가느냐, 태평양으로 가느냐,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이때 화면은 이미 영화가 시작한 극장 안으로 김두한과 소년이 들어오는 것을 보여준다. ( S#_4) 즉각적인 질문. 그렇다면 <國境>의 첫 장면을 김두한은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때 우리는 약간 까다로운 논제와 마주치게 된다. 만일 우리가 김두한을 경유하지 않고 영화 안의 영화를 보게 된다면 우리의 시선(sight)이 머무는 자리(site)는 어디인가? 나는 뒤늦게 극장 안에 도착한 김두한이 만들어낸 균열이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나는 여기서 김두한이 <國境>을 본다기보다는 <國境>을 보는 김두한을 본다고 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이때 뒤이은 <國境>의 장면은 김두한이 그 장면을 보기 때문에 되돌아왔다기보다는 마치 잠시 김두한에게 한눈을 팔았기 때문에 원래의 화면에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여겨진다. ( S#_5) “한편 여기는 국경도시 의주, 쫓기는 사나이들이 있었으니 앞선 사나이는 김영철이오, 또 한 사나이는 박동일이었다” (변사) 당연한 말이지만 임권택은 무성영화를 찍은 적이 없다. 단지 흑백으로 찍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장군의 아들>을 따라온 우리에게) 이 첫 화면의 구도와 질감은 이상하게 보인다. 전체 구도가 모두 초점 거리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deep_focus) 약간 과도할 정도로 밝게 찍혔다.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한국영화는 아직 디지털 색 보정이 도입되기 전이라는 사실을 계산에 넣어두기 바란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인물로부터 카메라가 너무 멀리 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이 전체를 보여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master_shot) 경사진 이 동네의 지붕들과 저 멀리 하늘이 조금이나마 보여야 하기 때문이라 할지라도 너무 멀리 있다. 물론 회화를 염두에 두고 무대와 같은 구도(tableau)를 만든 초기 무성영화에 관한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와 운동)의 이론이 있다. (David Bordwell, Ben Brewster, Noel Burch, Richard Abel, Charles Musser, Thomas Elsessar, Tom Gunnung, AND...) 하지만 그걸 염두에 두어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이다. 인물의 동선을 화면 아래쪽에 배치한 다음 왼쪽 골목에서 나와서 오른쪽 담벼락에 몸을 숨긴다. 이때 김영철과 박동일은 단지 아래서 찍었기 때문이 아니라(low_angle)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코트자락에 감춰지기는 했지만 거의 무릎까지 보인다. (knee_shot) 그들을 추적하기 위해서 나타난 인물들도 화면 아래 부분에서만 오갈 뿐이다. 만일 이 장면을 보기 위해서 귀로 듣는 대신 자막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면 당신은 김영철과 박동일을 추적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자막에 가려 거의 보지 못할 것이다. 추적자를 다른 길로 따돌린 것을 보면서 김영철이 박동일에게 (변사) “동일아, 우리 하루삔에서 만나자” 라는 대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하자면 오로지 그 이유 때문에, 마치 그 장면에서 대사를 클로즈업 하듯이 다가가서 다시 찍은 것(bust_shot)은 쇼트 분할의 낭비이다. ( S#_6) 임권택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했다. 나는 처음 볼 때 다시 영화 안의 영화에서 빠져나와 김두한에게 돌아오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 S#_7) 다음 장면은 내리막길에서 서로 재회를 기약하며 손을 흔들면서 각자의 길을 떠나는 두 사람을 할 수 있는 한 멀리서 찍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듯 변사는 목소리를 높인다. (변사) “이들은 왜 쫓기는 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는가” 마치 김두한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혹은 이 세 개의 쇼트는 한 씬이기 때문에 서로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듯, 서로 이어 붙어있다. 그런 다음 마치 대꾸를 하듯이 영화 안의 영화를 보는 영화 장면의 쇼트가 연이어 세 개 이어진다. ( S#_8) 변사는 영화에 빠져든 표정으로 마치 웅변이라도 할 것처럼 낭독한다. (변사) “아! 드디어 때는 바야흐로 시베리아에서 휘몰아쳐오는 북풍한설이 매운 기세로 휘몰아쳐오는 엄동시절에...” ( S#_9) 재빨리 이어 붙은 입검석에 앉아있는 두 명의 일본 순사. 한 명은 <國境>에는 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다가 객석을 쳐다보기를 반복하고 다른 한 명은 대본을 들여다보면서 변사의 낭독을 감시한다. (변사) “.... 조선의 백성들은 추위와 허기에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 S#_10)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영화에 완전히 빠져든 김두한과 그가 데리고 들어와 옆에 앉힌 (몰래 화장실을 통해 공짜로 영화 구경을 하려다 붙잡힌) 소년(과 그 곁의 몇몇 관객)을 보여준다. 그때 변사의 낭독은 절정에 달하고 있다. (변사) “아! 조선의 백성들아, 백성들아!” 이 세 개의 쇼트에 대한 세 가지 질문. 첫째, 영화 안의 영화로부터 나와서 <國境>을 바라보면서 진행 되자 변사의 낭독에는 대사가 없고 지문만 있다. 단지 영화가 영화 안의 영화를 바라보는 순간에는 <國境>의 대사 안으로 침입할 수 없다는 듯이 갑자기 이야기 바깥으로 나온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두 번째, (앞의 질문에 이어서) 게다가 이 지문은 줄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이건 일제 식민지 강점하 조선의 상황에 대한 심정의 비분강개에 가까운 웅변이지 지금 진행 중인 <國境>을 위해서는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세 번째. 낭독하는 변사와 입검석의 두 명의 일본 순사, 그리고 김두한과 소년, 이 세 개의 쇼트는 각자 영화 안의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접합되어 있다. 변사는 <國境>의 목소리라는 방식으로 영화 안의 영화 바깥에서 활동하는 기계장치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이 쇼트는 ( S#_8) 영화 안의 영화의 외부적 확장이다. 혹은 이 쇼트를 보는 것은 <國境>의 장면을 청각적으로 ‘보는’ 것이다. (두 번의 ‘본다’라는 설명이 서로 다르게 활용되고 있음을 유심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반대로 입검석에 앉아있는 두 명의 일본 순사는 ( S#_9) 영화 안의 영화를 쳐다보고 있지만 동시에 <장군의 아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역사적 기호 이외의 어떤 기능도 하지 않는다. 이 쇼트는 양쪽 모두에 기생한다. 그 당시의 모든 영화는 그렇게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에도 다시 검열 받았다. 입검석에 앉아있는 두 명의 일본순사는 1939년 영화의 일부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모든 개봉관에는 입검석이 반드시 맨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자리는 영화 검열을 위한 자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 대한 감시의 체제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극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언제나 그런 장소는 의견의 광장이자 일순간에 흩어진 힘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했다. 권력은 언제나 공개적인 장소를 감시했다. 내가 아니라 푸코가 한 말이다. 입검석은 1939년 극장의 일부이다. 그런 다음에야 영화 안의 영화를 보는 김두한의 쇼트가 등장한다. ( S#_10) 김두한(과 소년)은 약간 지나칠 정도로 영화에 빠져들어서 바라본다. <國境>은 <장군의 아들>과 직접적으로 접합되지 못한 채 우회의 경로를 택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다시 <國境> 안으로 되돌아간다. ( S#_11) 옥순의 집 안 방문 앞에서 문을 열고 옥순이 나와 김영철과 포옹을 한다. (변사) “옥순아! 하루삔으로 가자, 어서! 어서!” 영화 안의 영화로 돌아가자 변사는 재빨리 다시 복화술사처럼 영철의 목소리를 대신 한다. 두 가지 지적. 첫 번째, 신기할 정도로 정교하게 영화 화면과 목소리를 연결한 때 두 번 모두 영철의 목소리만이 일치한다. 두 번째. 이 화면은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이상하다. 이 구도는 의도적으로 방문을 중심에 놓은 다음 양 옆에 어떤 장식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왼쪽은 조명이 닿지 않아 그림자마저 생겼다. 나는 전체 화면을(master_shot)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집의 구조를 알지 못한다. 이때 방문을 중심으로 이 화면은 기묘하게도 1.33 사이즈의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내게 좀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은 정면으로 찍은 구도이다.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정면 쇼트와 마주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장군의 아들>에서 두 사람을 세워 놓은 다음(two_shot) 정면으로 찍는 경우는 없다. 구태여 그렇게 앉은 장면은 하야시 구미(組)가 다다미 실내에 앉아있는 일부 쇼트들뿐이다. 정면으로 인물을 찍으면 영화는 다음 장면의 진행에서 심각한 문제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그렇게 찍었다. 그때 이 장면은 두 사람을 장면 분할 없이 진행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영철의 대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장면을 변사로 옮겨갔다. ( S#_12) 변사는 두 손을 가슴에 모아가면서 옥순의 대사를 낭독한다. (변사) “못가요, 못가요! 부모 형제를 놔두고 어찌 만리타국으로 가야 한단 말이에요” 그런 다음 목소리를 바꾸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영철의 대사를 한다. (변사) “옥순아, 우리는 가야 한다” 이 정면쇼트는 오랜 시간 동안 내게 머물러 있었다. 뭐랄까, 여기서 만들어진 이상한 디테일의 사실감이 <장군의 아들> 전체의 어느 장면보다도 1939년이라는 인상을 만들어냈다. 나는 구태여 여기서 느꼈다, 는 말 대신 만들어졌다, 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 디테일이 만들어낸 것은 정확하게 무엇일까. 그런 다음 화면은 ( S#_13) 영철이 옥순의 손을 잡고 문을 나서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변사) “부모냐 사랑이냐, 망설이던 옥순은 애인을 따라 나서고 말았으니 이들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장면은 <國境>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것처럼 현대적인 방법으로 찍혔다. 카메라는 집을 나서는 옥순과 그녀를 잡아 이끄는 영철을 재빠르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따라가면서(pan_shot) 동시에 눈에 보이게 이동하고 있다. 멀리 사라져가는 두 연인은 <國境>의 두 번째 장면, 김영철과 박동일이 쫓기던 그 골목으로 사라져간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이 장면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國境>이 한창 상영되고 있을 때 김두한(과 소년)이 앉아있는 뒤편 입구, 그러니까 입검석 바로 옆에 난 문으로 종로패 사내가 두리번거리면서 들어온다. ( S#_14) 그가 김두한에게 귓속말로 이르자 김두한은 잠시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다 말고 나간다. 물론 변사는 아랑곳없이 더 열을 올리며 낭독을 한다. (변사) “여기는 압록강, 김영철과 옥순은 인정 많은 어부를 만나 쪽배를 구할 수 있었으나, 아 그러나 아뿔싸, 그 자가 경찰의 끄나플일 줄이야, 그 누가 꿈엔들 알았으랴” 김두한이 우미관 앞마당에 나왔을 때 막 신마적 엄동욱과 구마적이 대결을 벌이기 위해 마주보고 있었다. 그리고 구경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 S#_15_16) 영화 속의 영화 <國境>은 여기까지이다. 그런 다음 김두한도, 임권택도, 영화도 <國境>을 잊어버린 채 진행된다. 두 번째 편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 사실의 환기. < 國境 >을 보는 내내 이상한 것은 자막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당시의 관객들 상당수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변사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막은 당시 영화의 일부였다. 무성영화에서 무자막 형식이 시도된 것은 1924년 프리드리히 W. 무르나우의 (종종 <최후의 인간> 혹은 미국 개봉제목인 < 마지막 웃음 >으로 알려진) <밑바닥 인간(Der Letzte Mann)>에 이르러서다. 물론 지금 <國境>을 보는 건 1939년의 일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영화사에서 무자막 형식의 무성영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무자막 무성영화의 역사는 매우 짧다. 왜냐하면 첫 번째 토키영화 <재즈 싱어>가 1927년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잠시 후에 다시 이 질문에로 돌아올 것이다. 두 번째 영화 안의 영화는 < 장군의 아들 > 두 번째 이야기에 나온다. 약간의 설명. 김두한이 구치소에서 나오자 혼마치깡 하야시 구미(組)가 기다렸다는 듯이 새벽에 기습을 한다. 어이없이 패배한 다음 김두한은 종로 한복판에서 종로 상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야시 앞에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한다. 뒤이어 구치소에서 종로패의 두목인 김기환이 출소한다. 상황을 파악한 김기환은 김두한과 함께 혼마치깡의 사쿠라(櫻) 카페에 가서 하야시와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맺는다. 여기서 그만 술에 취한 김두한은 모자를 두고 온다. 그래서 사쿠라 카페의 여주인 세츠코는 김두한에게 모자를 돌려주기 위해 종로를 찾아온다. 둘은 종로 빵집에 마주 앉지만 김두한은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녀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종로패 중에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워싱톤을 부른다. 옆에 쪼그리고 앉아 워싱톤이 그녀에게 묻는다. “무슨 말이었습니까?” 세츠코는 약간 수줍게 대답한다. “영화도 구경할 겸해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워싱톤이 김두한에게 “영화를 보러 왔대요”라고 전해주자 김두한이 호기롭게 대답한다. “내가 보여주겠다고 그래” S# 1 S# 2 S# 3 S# 4 S# 5 S# 6 S# 7 S# 8 S# 9 바로 그 다음 장면에서 상영중인 영화 간판을 보여준다. ( S#_1) 영화 제목은 <最後の復?>. 내게 1940년 일본영화 연감이 없기 때문에 이 영화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감독 이름이 나를 미심쩍게 만든다. 감독 池田忠雄(이케다 다다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이 시기에 활동한 일본 영화인 이케다 다다오는 시나리오 작가이다. 그는 오즈 야스지로의 1930년 영화 <아가씨>를 시작으로 1947년 <세입자 인명록>까지 각본을 썼다. 그런 다음 노다 고고와 함께 오즈는 < 만춘 >을 쓰고 그의 유명한 가족의 순환이라는 우주로 들어선다.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동명이인의 영화감독이 있을지 모른다. 또한 <最後の復?>라는 영화가 정말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경국립근대미술관 내 국립영화박물관에서 <最後の復?>는 검색되지 않으며 이케다 다다오는 각본작가의 이름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하필이면 (누구라도 떠올렸겠지만) 김두한을 찾아온 카페 여주인의 이름은 <만춘> 이후 오즈 영화의 영원한 노처녀 하라 세츠코(原節子)와 동명이인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오즈로부터의 연상을 멈출 생각이다. 김두한은 호기롭게 세츠코를 대동하고 우미관 극장문으로 들어선다. ( S#_2) 우미관 안쪽에서 들어서는 김두한을 바라보면서 서 있는 것이 전부인 장면. 입구에 기도가 서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표도 끊지 않고 극장 안으로 들어선다. 이제 더 이상 첫 번째 이야기, 그러니까 작년의 김두한이 아니다. 앞에 서있던 기도도 김두한에게 구십 도로 허리를 숙여 어서 옵쇼, 라고 목청 높여 인사를 한다. 그는 여기에 늘 이런 식으로 드나들 것이다. 뒤를 따라오던 세츠코는 기도를 보고 멈칫 서서 망설인다. 김두한은 들어서다 말고 돌아서서 그냥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자 그녀는 기쁜 기색으로 따라 들어간다. 그 뒤를 따라오던 종로패 부하들은 멀리 서서 그 모습을 보면서 “개판이다, 개판이야”라고 빈정거린다. 아마도 돌아온 김기환은 하야시 구미(組)에게 세금까지 바쳐 가면서 종로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고 김두한은 그런 상황에서 일본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 장면은 우미관 간판과 영화 안의 영화 <最後の復?> 사이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임권택 은 다시 한 번 우미관 극장 안의 디테일을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설명이긴 하지만 김두한은 세츠코에게 우미관을 소개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 장면 진행은 다소 교묘해 보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 영화 안의 영화 < 國境 >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 장면으로 타이틀 자막이 있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타이틀 자막을 보여주는 대신 우미관에 매달려있는 간판 <最後の復?>를 정면으로 보여주면서 제목과 감독, 주연배우, 여기에 더해 이 영화의 장르가 찬바라(チャバラ,칼과 칼이 ‘찬찬찬’ 부딪치는 시대 활극물(時代 活劇物)) 라는 것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장르에 성차(性差)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40년 경성 종로에 있는 유명한 극장 우미관에서 하는 찬바라 영화를 보러 세츠코가 찾아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설정이다. 경성에 영화관이 단 하나 뿐은 아니었으며, 그 시대에 찬바라 영화는 남자들의 장르이며 나미나(淚, 멜로) 영화는 여자들의 장르라는 식으로 멋대로 구분해버린 다음 찬바라를 여자가 보는 것은 흉한 광경이라고 생각하는 시절이었다. 당신은 모던 걸의 시대이기도 했다고 반박하고 싶을지 모른다. 세츠코는 혼마치깡에서 종로까지 김두한을 찾아오면서 기모노를 입고 온 여자이다. 그런 다음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신식의상을 입은 적이 없다. 게다가 그녀는 하야시 오야붕이 종로패 김기환과 화해(를 빙자한 협상)의 술자리를 가질 때 찾아갈 만큼 고급 요정의 마담이다. 그러므로 세츠코는 ‘가오(顔)’를 중요시여길 것이다. 그런데도 김두한을 만나서 영화를 보겠다고 한 다음 우미관에 <最後の復?>를 보러왔다. 당신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반대로 말하면 모자를 돌려주기 위해 종로까지 찾아온 세츠코에게 고맙다고 김두한이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한 다음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치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 데려온 것이 아니다. 게다가 김두한은 이미 이 영화를 여덟 번이나 보았다. 그렇다면 왜 <最後の復?>를 보러 온 것일까. 좀 이상하게 들리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싶어 온 사람은 임권택이다. 몇 가지 가설. 첫 번째, 세츠코를 따라서 (일본 영화사전의 분류에 따라) ‘인정(人情)’ 영화나 ‘연애(戀愛)’영화를 보러 간다면 원래의 영화인 < 장군의 아들 >이 만들어놓은 ‘다찌마와리’로 돌아오는데 (임권택의 표현을 빌리면) “애를 먹거나” 아니면 “한참 다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 번째 가설에 더 기대고 싶다. 임권택은 <장군의 아들>을 통해서 자신이 1970년대에 보낸 ‘다찌마와리’의 시절로부터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지 보고 싶었다고 몇 차례고 대답했다. 아마도 그 대답을 <장군의 아들> 일편에서 만족스럽게 얻었을 것이다. 1990년의 관객들은 기꺼이 이 영화를 환영했고 비평적으로도 환대를 받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를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임권택은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이후 ‘살아남은 거장’의 대접을 받기 시작했지만 <장군의 아들> 이전에 흥행의 시장에서 성공한 적이 없다. 다른 한 가지. 1980년대 비디오의 백화제방을 통과하면서 성장한 (아마도 박찬욱으로 대표되는) 완전히 새로운 시네필 세대는 B급영화와 컬트영화들을 새로운 고전의 반열에 올리면서 비평의 엄숙주의와 전투를 벌였고 영화와 미학 사이에서 새로운 접속 방식을 찾아낸 다음 그 사이에서 이루어진 긴장을 때로 통과하고 때로 가로 막으려는 도그마와 전투를 벌이면서 새로운 바깥의 출구를 찾고 있었다. <장군의 아들>은 제 시간을 찾아서 도착했다. 그런 다음 임권택은 두 번째 <장군의 아들>을 만들면서 영화 안의 영화로 자신이 1970년대에 만들었던 ‘다찌마와리’ 영화들보다 더 천대받았던 ‘으악새’ 영화를 끌어안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칼을 한 번 휘두르면 엑스트라들이 일제히 ‘으악’ 소리를 내면서 죽는다고 충무로 내에서조차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장르. 물론 그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무언가 여기에는 대면의 느낌이 있다. 물론 여기서 더 밀고 나아가면 안 된다. 여기가 비평의 임계점이다. 나는 재빨리 우미관으로 돌아올 생각이다. 아니, <最後の復?>로 들어갈 생각이다. ( S#_3)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김두한이 세츠코와 함께 우미관에 들어서자 다음 쇼트는 <最後の復?>의 장면이다. <國境>과 같은 점. 두 영화 모두 흑백으로 찍었다. 그리고 영화 안의 영화 장면을 보여줄 때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극장 풍경의 중계 없이 곧장 영화 안의 영화를 보여준다. 다른 점. <最後の復?>는 토키영화이다. 그러므로 <國境>에서 볼 수 있었던 변사가 없다. 물론 상당한 기간 동안 토키와 무성영화는 공존하였으며, 일본영화에서 토키는 1931년에 만든 <이웃집 부인과 나의 아내>에서 시작되었다. 오즈도 한참을 망설인 다음 1936년에야 첫 번째 토키영화 < 외아들 >을 만들었다. 내 관심을 끈 것은 두 번째 다른 점이다. 여기서 <最後の復?>는 1.33 사이즈로 상영된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제까지 1.85로 진행되던 화면에서 양옆을 어둡게 한 다음 첫 장면을 볼 수 있다. 임권택은 이 화면 사이즈를 만들면서 단지 양 옆만을 어둡게 잘라내는 대신(masking) 위아래도 지워내면서 화면 전체를 영화 안의 영화라기보다는 영화관에서 바라보는 기분을 내면서 두 편의 영화, 영화 안의 영화와 그 영화를 바라보는 영화를 공존시키고 있다. 그때 이 장면에서 바로 앞 장면, 그러니까 김두한이 세츠코와 함께 우미관에 들어서던 장면의 구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장군의 아들>은 좁은 세트를 넓게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 이상으로 양옆을 펼쳐놓거나 수평으로 만든 쇼트들의 구도로 진행된다. 그건 세 편 모두 그렇다. 다만 대결 장면을 벌일 때에만 종종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실내로 들어간다. 그런데 우미관이 야외에 지어진 세트인데도 불구하고 김두한이 세츠코와 우미관에 들어설 때 극장 안에서 두 사람이 들어서는 것을 수직의 구도로 찍었다. 출입구이기 때문에 양 옆은 유리문으로 닫혀 있고 오로지 앞과 뒤로만 인물의 동선이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 쇼트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지만 김두한이 들어선 다음 나가려다 말고 뒤 돌아서서 세츠코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 그래서 우미관으로 두 사람이 들어간 다음 그 뒤를 따라오던 종로패들이 “개판이다, 개판이야” 대사까지 모두 하는 장면을 고정된(fixed) 카메라로 편집없이 모두 찍었기 때문에(long_take) 심리적으로 길게 느껴진다. 물론 이 쇼트를 불필요한 편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롱 테이크로 찍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이때 이 방법은 전형적인 학습의 쇼트이다. 무엇을 위한 학습? 1.85를 좁은 구도로 좁혀놓은 다음 어떤 개입도 없이 이어진 쇼트에서 1.33의 구도로 전개될 <最後の復?>를 준비하고 있다. ( S#_3) 숲속에서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달려가며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라고 외치고 화면 바깥에서, 아마도 그녀의 뒤에서, 그러니까 화면 오른쪽 바깥에서 그녀를 쫓아오면서 “거기 서”라는 소리가 일본어로 들린다. 이때 자막은 오로지 지금 영화를 보는 당신을 위해서만 제공된다. 만일 1940년 우미관에서 그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위해서였다면 당연히 화면 왼쪽에 세로 쓰기로 씌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1937년 내선일체를 강요한 일본은 이듬해 조선어 교육 금지를 명령하였으며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1940년은 창씨개명이 요구된 해였다. 그날의 우미관 관객들은 일본어로 영화를 보아야 했을 것이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달려가는 것과 거의 같은 속도로 숲속을 카메라가 수평으로 이동한다. 그러면 같은 속도와 같은 거리만큼 떨어진 카메라가 다시 한 번 그녀를 쫓는 검은 옷을 입은 자객들을 따라서 거의 동일한 방법으로 이동한다. ( S#_4) 교과서에서 금기시된 방법. 하지만 임권택은 여기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냥 반복한다.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 S#_5) 왼쪽에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 더 멀찍이 물러나서 이동하던 카메라를 저 멀리 있는 세 그루의 나무가 멈춰 세우기라도 하듯이 거기 그렇게 문득 서 버린다. 나무 뒤에서 홀연히 등장하는 한 남자. 우리는 협객물의 약속을 잘 알고 있다. 여인이 자객들에게 쫓길 때 그 앞에 나타나는 남자는 언제나 구원자이다. 이 낯선 남자를 향해서 자객들은 저마다 “비켜라” “누구야”를 외치지만 모두들 흠칫 물러선다. 이 세 개의 쇼트는 모두 수평의 동선과 구도로 진행된다. 하지만 세 번째 쇼트 다음 장면은 낯선 남자와 자객들 사이의 ‘찬찬찬’ 검술 살진(殺陣)이 아니라 <最後の復?>를 보고 있는 김두한과 세츠코의 모습이다. 세츠코는 열심히 영화를 보고 있지만 김두한은 따분한 표정을 짓다가 하품마저 하고 만다. ( S#_6) 물론 내용이 재미없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화면에서는 칼을 빼든 자객들로부터 “죽여라”(voice_out_of_frame)는 외침이 터져나오면서 이제 막 결정적인 활극장면이 펼쳐질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은 영화 안의 영화 <最後の復?>를 (이론적으로만 설명하면) 김두한이 아니라 세츠코를 경유해서 보는 중이다. 서사의 차원에서 설명은 단순하다. 우미관은 김두한의 ‘나와바리’이고 게다가 <最後の復?>은 찬바라 영화이기 때문에 김두한은 시간이 날 때마다, 달리 할 일이 없을 때마다, 혹은 순전히 재미로 수없이 보았을 것이다. 그건 하나도 이상한 제스처가 아니다. 내 질문은 거기에 있지 않다. 김두한과 세츠코의 쇼트는 자유자재로 옮길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자리에 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 쇼트는 마치 <最後の復?>의 결정적 순간을 보려는 관객들, 그러니까 영화 안의 영화를 보려는 우리들을 불만족스럽게 만들려는 의도의 자리에서 몰입의 리듬을 방해하고 있는 중이다. 김두한과 세츠코의 감정적 관계는 아직 아무 관계도 아니며 이후에도 (함께 영화를 본 다음 데이트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들의 궁금한 기다림에 대답이라도 하듯 다음 쇼트는 다시 영화 안의 영화로 돌아간다. ( S#_7) 기모노 여자는 나무 뒤에 서서 바라보고 있고 낯선 남자는 자객들과 일대 사로 대결을 한다. 이때 이 장면의 구도는 기이하게도 남자와 자객들 사이의 일대 사의 대결이 막 시작되려는 광경을 눈 앞에 펼치는 대신 나무 뒤에 숨은 기모노 여인의 뒤에 (두 개의 뒤라는 말을 염두에 두어서 이 장면을 다시 보라) 서서 바라보고 있다. 칼 바람소리와 비명소리가 날 때 기모노 여인은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close_up) 쳐다보고 있다. ( S#_8) 낯선 남자는 자객 네 명을 모두 쓰러트린 다음 조금도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은 채 칼을 절도있게 칼집에 넣는다. 나무 뒤에 숨어있던 여자가 나와 무릎을 꿇고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고 (카메라가 서 있는 맞은 편으로) 성큼성큼 걸어 떠나간다. ( S#_9) 김두한은 그걸 보다가 하품을 하면서 눈을 감고 잠이라도 잘 기세다. 그러자 영화에 빠져들었던 세츠코는 김두한을 보면서 “面白くないですか (재미없습니까?)”라고 물어본다. 그 말을 못알아듣자 손바닥을 가로 흔들며 “ゼミ(재미) ないですか” 라고 다시 물어본다. 일본말을 못하는 김두한은 변명이라도 하듯이 손가락 여덟개를 펴 들고 “나, 저 (영화) 여덟 번째야, 여덟 번”이라고 말한다. 세츠코는 그 모습을 보고 입을 가리며 웃는다. 그런 다음 장면은 없다. 그 낯선 남자가 누구인지, 기모노 여인은 왜 쫓겼는지, 그 여인의 운명은 어찌되었는지, 자객들의 복수는 이루어졌는지, 무엇보다도 최후의 복수는 성공했는지, 아무 관심도 없이 영화 속의 영화 <最後の復?>는 거기서 끝나고 화창한 초여름날 야외에서 데이트하는 김두한과 세츠코로 옮겨간다. 내 질문은 간단하다. 왜 영화 속의 영화를 거기서 끝내도 괜찮은 것일까. 얼핏 보면 거기서 <最後の復?>의 한 시퀀스가 끝났기 때문에 우미관 극장 안의 씬과 영화 속의 영화 <最後の復?>의 숲 속의 대결 씬을 맞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때 내 반론은 그렇게 되면 김두한과 세츠코의 이야기도 거기서 끝난 다음 재빨리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서사의 진행에서 차라리 방해라고 할만한 두 사람의 고궁에서의 데이트 장면에로 옮겨간다. 이 씬은 우미관 장면의 감정적인 연결이다. 여기서 핵심은 세츠코가 김두한의 손가락 여덟 개를 펼쳐든 모습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제스처에 있다. 입을 가리고 웃을 때 세츠코는 이미 기모노 여인의 운명에 관심이 없다. 그녀의 운명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최후의 복수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그 제스처는 영화 안의 영화가 더 이상 영화 안으로 침입해 들어오는 것에 대한 거절의 동작이다. 왜 거절의 제스처가 성립하는 것일까. 나는 영화 속의 영화 <最後の復?>의 타이틀이 미처 우미관에 들어가기도 전에 마치 영화 속에 삽입(indert_shot)되었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이 영화는 김두한이 보고 싶어서 세츠코와 온 것이 아니라 세츠코가 보고 싶어서 김두한이 함께 온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속의 영화에 이끌리는 시선은 김두한이 아니라 세츠코를 중심으로 이끌린 응시와 그 반응이다. 심지어 김두한은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는 하품을 하고 눈을 감고 금방이라도 잘 것만 같다. <最後の復?>에서 우리가 보는 첫 장면은 이 영화를 보는 세츠코와 일치를 시키기라도 하듯 숲 속을 달리는 기모노의 여인으로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다소 기계적인 동일화의 도식을 따라가볼 생각이다. 물론 영화는 그렇게 단순하게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장군의 아들>이 장르영화라는 것을 먼저 염두에 두고 여기서 시선의 네트워크가 불러 일으키는 문법적인 전이 효과만을 계산에 포함시킬 것이다. 그런 다음 문득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 낯선 남자가 등장하기까지의 장면( S#_3_4_5)은 단조롭긴 하지만 이상하지는 않다. 그러나 하품을 하는 김두한과 곁에서 온통 영화에 빠져든 세츠코가 화면을 바라보는 장면( S#_6) 이후는 마치 영화를 보는 쪽에서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를 분리해낼 수 있다면 기모노 여인을 구하러 나타난 낯선 남자가 자객들과 마주하는 장면( S#_5) 다음 쇼트는 ( S#_7) 나무 뒤에서 기모노 여인이 숨어서 대결을 바라보는 것을 그녀 뒤에서 찍은 장면이다. 두 개의 쇼트 사이에 김두한과 세츠코의 장면이 없었다면 이 두 개의 쇼트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혹은 순간적으로 연결시킨다 할지라도 이상할 정도로 어색해보인다. 왜 그렇게 이상해진 것일까. 그건 대결을 나무 뒤에 숨어서 훔쳐보는 기모노 여인의 얼굴(close_up)을 보기 위해서이다. ( S#_8) 그렇지 않으면 대결이 중심에 있는 화면에서 그 바깥에 있는 여인의 얼굴을 잘라 들어가는 것은 완전히 흥을 깨는 일이다. 그때 이 여인의 얼굴은 세츠코가 이 씬을 바라보면서 감정을 몰입하는 주관적인 쇼트처럼 보인다. 혹은 영화를 바라보는 세츠코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영화 안의 영화 바깥으로 나갔다 되돌아올 필요없이 두 쇼트를 하나로 겹쳐놓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동일화 효과이다. 말하자면 쇼트의 경제성. 기모노 여인이 아니라면 이 순간 세츠코는 도대체 누구에 의지해서 <最後の復?>를 보고 있겠는가. 가장 이상한 쇼트는 낯선 남자가 자객들을 물리치고 나자 나무 뒤에 숲어있다가 나타나는 기모노 여인의 장면이다. ( S#_9) 그녀가 무릎을 꿇고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지만 낯선 남자는 돌아보지도 않고 떠난다. 나는 그녀가 나타난 방향 때문에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해졌다. 도대체 어떤 원칙으로 이 숲길에 상상선을 그은 것일까. 숨어서보던 그녀는( S#_7) 반대쪽 방향에서 나와서( S#_9) 인사를 한다. 두 가지 원칙. 첫째, 네 개의 쇼트는 카메라가 모두 정지해 있다. 그러기 위해서 액션 장면을 모두 담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하지만 장면의 성질로 볼때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서 찍었다. 둘째, 이 네 개의 쇼트는 180도를 기준으로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한다. 왜 그렇게 찍은 것일까. 유일한 이유. 언제든지 진행을 중단할 수 있다. 네 개의 쇼트는 어떤 원심력도 갖지 못하고 모두 제각각 떨어져나간 것이다. 이때 이 쇼트의 진행을 멈출 수 있는 절단의 힘은 그저 세츠코가 관심을 잃으면 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最後の復?>를 보는 까닭은 세츠코가 보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다. 그때 세츠코가 영화 속의 영화로부터 눈을 거두고 감두한에게 눈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영화 안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라도 한듯 세츠코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김두한을 보는 것은 하나의 중단이자 새로운 연결의 신호이다. 아쉽지만 <最後の復?>는 이 순간 이미 끝난 것이다. < 장군의 아들 3 > 엔딩 아쉽지만 < 장군의 아들 > 세 번째 편에는 영화 속의 영화 장면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상한 기시감이 든다.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난 다음, 그러니까 김두한과 김동회가 힘을 합쳐 혼마치깡에 쳐들어가 하야시 구미(組)와 최후의 대결을 벌인다. 세 편의 <장군의 아들>에서 수없는 대결장면이 있었지만 이렇게 혈겁(血劫)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광경은 거의 유일하다. 그런 다음 김동회는 김두한을 부축하여 떠난다. 그런데 김두한은 종로를 떠나서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이 장면은 내게 두 가지 이미지로 다가온다. 하나는 이제 이 긴 연작이 끝났다는 작별인사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힘겹게 비틀거리면서 떠나가는 두 남자. 여기에는 그 동안 김두한을 둘러싸고 등장했던 어떤 인물도 곁에 없다. 그들은 마치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것만 같다. 하나의 계열의 소멸. 더 이상 작동할 것이 남아있는 않은 장르 기계. 저물어가는 석양의 햇살. 여기에 남은 쓸쓸한 기호들. 물론 이것은 해석이 아니라 그저 덧붙여진 감상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의 감상을 더 할 생각이다. 이 장면을 보았을 때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장군의 아들> 일편에서 본 영화 속이 영화 < 國境 >에서 찍지 않은 쇼트를 본 것만 같았다. 갑자기 이 장면만을 마치 기억 속의 한 장면처럼 희미해보이게 찍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fog_filter) 나는 김두한과 김동회가 사랑도 잃고 조국도 잃고 오직 그 둘만이 서로를 의지하며 그들의 유일한 고향인 종로를 떠나는 뒷모습에서 김영철과 박동일의 마지막 모습, 아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國境>의 마지막 장면을 본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가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만 같은 착각을 보았다. 물론 이 설명은 그저 부질없는 소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중얼거렸다.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 사이의 화해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영화에서 영화 속의 영화를 말하는 것은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세르주 다네가 말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부활의 시간을 설득하려는 것이다. 나는 그 둘이 대립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에서 과거에로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할 때 그와 동시에 이미 본 영화의 과거의 시간이 지금 보고 있는 영화의 현재의 시간 속에서 운동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설명하고 싶다. 나는 영화 안의 시간을 무한정 팽창시키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거의 유일한 임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번 이야기 끝, 그리고 계속)
... (세 번째 이야기) < 장군의 아들 >은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 반지의 제왕 >과 달리 이 세 편은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이면서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실 내가 할 이야기는 일편에서 모두 다 했어요. 원래는 그런 다음 연출부를 했던 김영빈 감독이 이편으로 데뷔할 예정이었지요. 그런데 이게 흥행을 해도 너무 많이 한 거예요. 나는 다른 영화를 할 생각이었는데 이태원 사장이 나를 설득한 거예요. 이건 이편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라는 게 있는데 그걸 배신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거참, 내가 그 설득에 말려들어간 거예요” 아마 임권택 자신도 당황했던 것 같다. 그는 그저 잠깐 쉬어가며 1960년대 자신을 한번 돌아보면서 자기 자신의 현재를 점검해보고 싶었다, 라고 이 영화를 설명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여기서 어떤 활력을 발견했다. 1987년 민주화 대항쟁(의 승리),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순위). 무언가 부글거리는 사회적인 에너지. 거기서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는 기분. 무언가, 라는 기대. <장군의 아들>은 그 자리에 도착했다. 물론 그것이 올바른 도착인지를 물어보는 것은 또 다른 질문이다. 나는 여기서 단지 임권택의 자리에서만 대답할 것이다. 임권택은 이 장르의 영화, 좀 더 간단하게 <장군의 아들>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건 <장군의 아들> 이전에 자리한 < 개벽 >이 설명하고 있다. 거기서 좀 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확신하게 된다. 반대로 <장군의 아들> 이후로 밀고 나아가도 대답은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장군의 아들> 일편 ‘이후’에 그것을 동일한 제스처로 반복해야 할 때 생긴 것이다. 모순의 자리. 거기서 멈추어도 안 되지만 더 밀고 나아가도 안 된다.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만일 <장군의 아들> 이편이 일편과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하면서 갑자기 역사의 고증을 바탕으로 김두한의 실제 모습을 다루는데 집중했더라면 대중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당신은 세 편의 이야기가 예외 없이 일제 강점하에서 멈춘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식민지의 경험. 김두한은 서른 살이 되기 전에 해방을 맞이했고, 그런 다음 한국전쟁을 겪었으며, 1965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다. 세 편의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은 성장하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문학적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생겨났다. 그런 다음에도 이편을 만들어야 한다. 이야기가 모두 소진되자 <장군의 아들> 이편은 이상한 모습으로 성립되었다. 사뮤엘 베케트의 표현.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시도하기. 다시 한 번 실패하기. 다시 한 번 더 잘 실패하기. 거기서 무엇이 더 가능할까. 거기서 무엇을 더 실현시킬 수 있을까. 막다른 골목에서 약간의 우회. 먼저 이 영화는 다시 시작하면서 동시에 일편에 대한 후일담의 형식을 가졌다. 아마도 일편의 대중적인 성공이 이 영화의 줄거리와 등장인물에 대한 하나의 약속이 되었을 것이다. 세 가지 좌표. 이것은 지켜져야만 한다. 동시에 너무 여기서 멀리 벗어나면 안 된다. 그렇지만 이 줄거리를 반복하면 안 된다. <장군의 아들> 이편은 이 삼각형의 긴장 어딘가에 놓여있다. 이때 무엇이 이편을 작동시키는 힘이 될 수 있었을까. 전차(電車). 아니, 차라리 더 단언적으로 < 장군의 아들 > 이편의 영화적 주인공은 전차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전차는 조선시대 말 고종때 한양에 1898년 12월 25일 지금의 서대문에서 청량리에 이르는 구간이 개통하면서 처음 모습을 보였다. 이듬해 다시 종로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2호선이 열렸다. 이 구간을 1900년 1월 원효로 4가까지 연장하였고, 1901년 남대문에서 서소문을 거쳐 서대문에 이르는 구간을 완성하였다. (그런 다음 이 구간은 여러 종점을 늘려가면서 계속 확장되었다) 전차는 서울 시민들의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지만 1969년에 이르러 다른 교통수단들과 도로 점유율의 실용성 문제로 전면 철거되었다. (그리고 당신이 잘 아는 것처럼 곧 뒤이어 지하철 공사에 착공하게 되었다) <장군의 아들> 이편에서 보여주는 전차는 (아마도) 2호선인 종로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노선일 것이다. 그러나 한성은 경성을 거친 다음 한국 전쟁 때의 폭격, 1960년대 이후 끊임없는 재개발을 거치면서 원래의 길목을 알아볼 수 없게 바뀌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이 노선이 어떻게 이어지는 지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1954년에 처음 서울에 올라온 (다음 여기 머물면서 충무로를 드나들며 제작부를 거쳐 연출부를 시작하고 1962년에 첫 영화를 찍은) 임권택 은 (김두한이 종로통을 풍미하던 일제 강점하는 아닐 지라도 여전히 남아있는) 이 전차가 통과하는 길목(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장군의 아들> 이편에서 무대가 된 경성의 지리를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사에 따르면 <장군의 아들> 일편과 이편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6개월이다. 김두한은 큰형님 김기환을 구하기 위해 혼마찌깡에 달려가 기꾸치에서 일대접전을 벌리고 김동회를 물리친 다음 마지막 장면에서 (일본 경찰에 붙어 앞잡이 노릇을 하는 창씨 개명한 한국인) 구니모또 형사가 호명하는 데서 끝난다. 그런 다음 이편은 김두한이 (아마도 그로 인해 구치소 생활을 한 다음) 경찰서를 나서는데서 시작한다. 종로패는 김두한에게 큰 인사를 드리면서 “형님이 들어가신 지” 육 개월이 되었다고 우리에게 일러준다. 그런데 우리는 그 수많은 종로에서의 싸움을 보면서 한 번도 전차를 본 적이 없다. (이미 연표를 제시한 것처럼) 전차는 역사적으로 그 사이에 들어선 교통수단이 아니다. 정확하게 무대가 된 시간적 배경을 거의 설명하지 않지만 이야기 안의 시간적 지표 중의 하나인 박계주 작가의 <순애보>를 미루어 짐작컨대 <장군의 아들> 이편의 시간은 1940년 그해 여름일 것이다. 박계주는 <순애보>를 매일신보(每日新報)에 1939년 1월 1일부터 6월 17일까지 연재하였고 그런 다음 같은 해 10월 매일신보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장군의 아들> 이편의 계절은 여름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김두한은 어린 남녀학생을 불러 박계주의 <순애보>를 읽게 한 다음 그걸 들으며 눈물을 훔친다. 약간 셈을 하고 싶다. 김두한은 실존 인물이며, 1918년 5월15일에 태어난 그가 23살 때의 이야기이다. <장군의 아들>은 이제 막 어른이 되려는 소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장군의 아들>에 넘쳐나는 청춘 예찬의 기쁨이라는 감정의 기호들. 어렴풋한 사랑. 서투른 첫 경험. 되찾은 우정. 혹은 은혜는 갚아야한다는 공명과도 같은 공감. 왜 김동회가 김두한에게 갚아야 할 마음의 빚에 대해서 하야시가 감흥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말하자면 잘 설명되지 않는 내밀한 공동체. 종종 그들의 배움은 불완전하고 서로에게 베푸는 예절은 때로 불가능한 규칙인데도 불구하고 그걸 지키기 위해서 그들 사이에 때로 적대감은 어떤 우애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안에서 장르의 규칙은 그들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청하는 배움 때문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 위반 자체가 <장군의 아들>에서 우리들에게 다소 기괴하게 여겨지는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장군의 아들>이 단지 1991년에 갑자기 부활한 1960년대 ‘다찌마와리’ 영화의 변주라는 지적에서 멈추면 안 된다. 이 영화가 우리들을 건드리는 것은 거기서 더 나아가 장르를 지나친 다음 불가능한 가능세계에 가 닿으려고 애를 쓸 때 문득 마주치는 파토스의 헌신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물론 이 세 편의 연작을 공격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그저 이 세 편이 일제 강점하라는 무대를 빌려 폭력을 심미적인 차원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장군의 아들>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그들의 시간을 헛되이 쓰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제 강점하의 경성 종로에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고 믿으면서 사실은 상인들에게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뜯어내는’ 중이다. 착각의 왕국. 그들은 자신들이 협객이라는 착각에 빠진 깡패들이다. 도착적인 위로에 심취한 폭력. 하지만 그걸 누가 모를까. <장군의 아들>에 냉소적으로 다가갈 때 우리는 차라리 이 영화를 보지 않는 편이 낫다. 핵심은 반대로 현실에서 불가능한 삶의 긍정적인 태도(중의 일부)가 왜 일제 강점하를 무대로 한 가상세계에서는 성립되느냐는 것이다. <장군의 아들>을 채우는 것은 어떤 현대적인 해석도 배제한 채 거기 머물고 있는 향수이다. 이때 여기에는 나른한 낭만주의와 갑자기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불화의 도전이 있다. 이 불화는 전적으로 과거의 가치 기준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왜 적용되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나온 것이다. <장군의 아들>은 단지 그 시대적 배경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그 가치의 체계 안에 순응하는 자리에로 반복적으로 호명하는 영화이다. 여기에는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한 충만했다고 할 만큼의 탄식에 가득 차서 거기에 머물고 싶어 한다는 인상이 도처에 남아있다. 다소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장군의 아들>에는 도올 김용옥이 그려낸 동양학 안에서의 철인(哲人)의 철인화(鐵人化)라고 부를만한 육화가 있다. (김용옥은 일편의 시나리오에 관여했다) 물론 김용옥은 이 영화가 장르영화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장군의 아들>은 흥미롭게도 가장 세속적인 밑바닥의 삶을 장르화 시킨 다음 그들에게 규칙의 윤리에 대해서 존중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편은 김용옥 대신 (희곡작가이자 연극 연출자인) 이윤택이 이어서 시나리오를 썼지만 여전히 일편에서 세워진 불화의 바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무엇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거기서 더 밀고 나아갈 때 영화는 더할 나위 없이 기호적이 되어간다. 나는 여기서 따분하게 기호학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성립시키는 시청각 기호들. 그것들만으로 만들어내는 형식들의 강도. 부서져나가는 것을 견디는 강도의 내밀성. 어떤 점에서 <장군의 아들> 이편은 세 편의 영화중에서 오로지 형식만 남은 영화, (만일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형식만으로 견디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 내밀성의 중심에 전차가 있다. 우선 배치의 문제. 전차는 종로 한복판을 계속해서 가로 지르고 있다. 이 전차는 화면을 기준으로 가로로만 움직이고 있다. < 장군의 아들 > 이편에서 단 한 번도 이 기차가 세로로 오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실용적인 설명. 이 세트장은 우리가 지금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므로 각도를 벗어나면 곧장 세트의 헐벗은 이면이 드러날 것이다. 이때 이 영화는 두 개의 카메라 위치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종로 한복판(이라고 가정된) 사거리의 교차점을 중심에 놓고 세로축을 기준으로 화면을 가로 지르는 전차 철도의 이쪽과 맞은편이라는 두 개의 공간만을 사용할 수 있다. 같은 설명의 다른 판본. 그렇게 되면 오른쪽과 왼쪽에는 카메라가 들어서지 못한다. 단지 이것은 좌우 화면만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세로 축 중앙에서 45도 안에서만 카메라가 이동할 수 있으며 그 바깥을 사용하여 중앙 교차점을 기준으로 마름모꼴을 형성하여 움직이는 배치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좀 더 간단한 설명. 종로 한복판은 네 개의 꼭지점 중 세로축의 양쪽 끝을 포기하고 가로축의 위와 아래만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전차는 <장군의 아들> 이편에서 스펙터클하지만 동선을 진행하는 과정의 블랙홀이 될 수밖에 없다. 드러난 시각적 스펙터클. 과정 안에서만 보이는 시각적 블랙홀. 첫 등장. 시작하면 (혼마치깡의 하야시 구미(組)들과 김동회를 먼저 소개한 다음) 구치소에서 나온 김두한은 전차를 타고 종로에 돌아온다. 이 장면은 김두한의 전차에 대한 영화적 전유를 과시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러나 그 곁에 구니모토 형사가 타고 함께 도착한 다음 이 전차로 이동할 수 있는 김두한의 (경성 내에서의) 반경거리를 줄거리 안에서 제한한다. 김두한의 신분에 대한 설명. 그리고 이야기의 경제성. 두 번째 등장. 김두한이 구치소에서 나오자 이튿날 아침 일찍 하야시 구미(組)가 종로에 쳐들어올 때에 전차가 지나간다. 이때의 전차는 명백히 와이프(wipe) 효과를 내면서 화면을 지워나간다. 이들은 운당여관에서 잠든 김두한과 종로패를 기습하여 승리를 거둔 다음 김두한을 종로 한복판에 무릎 꿇린다. 그때 하야시는 지나가는 전차를 멈춰 세우고 김두한의 굴욕적인 패배를 전시한다. 같은 장면의 다른 설명. 하야시는 종로통 조선상인들 앞에서의 이 부끄러운 순간을 지우려는 와이프 효과를 멈춰 세우고 그 시간을 할 수 있는 한 연장한다. 이야기 바깥에서 주인공을 돕기 위해 나타난 영화적 효과. 그것을 중단시키는 또 다른 등장인물의 요구. 세 번째 등장. 하야시와 (뒤이어 구치소에서 나온 종로패의 큰 형님) 김기환은 혼마치깡 사쿠라(櫻) 카페에서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맺는다. 그때 김두한은 술에 취해 모자를 두고 온다. 그 모자를 돌려주러 사쿠라 카페의 주인 세츠코가 종로를 찾아올 때 전차를 타고 온다. 네 번째 등장은 반복이다. (롱테이크로 연출된) 김기환이 종로패 부하들에게 수모를 당한 다음 떠나자(마자 기다린 것처럼) 김두한과 세츠코를 태운 전차가 도착한다. 전차는 마치 김두한만을 위해 운행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다섯 번째 전차의 등장이 내가 설명하려는 장면이다. 김두한을 찾아온 김동회는 종로 한복판에서 대결을 신청한다. 전형적인 서부극의 컨벤션. 두 가지 지적. 첫째, 일편에서 김두한과 김동회의 대결은 이야기의 절정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편에서는 영화가 시작하고 37분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영화의 사분의 일이 지나자마자, 둘을 마주치게 만든다. 말하자면 이편에서는 김동회가 중심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대결 이후 곧 이 인물이 이야기 바깥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 대결 이후 김동회가 즉시 바깥으로 빠져나가지는 않았지만 중심의 외곽을 맴돌다가는 마지막 종로에서의 집단 대결 장면이 오기 전에 경성을 떠나 만주로 간다. (그런 다음 삼편에서 만주로 도망친 김두한과 다시 만난다) 둘째, 이 대결은 예를 갖춘 대결의 절정에 해당한다. 장르에서 언제나 절정은 맨 마지막까지 숨겨두는 법이다. 이걸 서둘러 보여줄 때 이제 < 장군의 아들 >에서 예(禮)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다. 김동회와의 대결이 끝나자 이편에서는 마치 한 시대가 끝난 것처럼 일편과 같은 협객들의 예를 갖춘 대결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돌아온 김두한은 평화를 깨고 종로 주변의 선배들을 찾아다니면서 세금을 요구한다. 선배들은 대결에서 패배했을 때 자신의 ‘동생’들을 맡기고 ‘나와바리’를 떠나는 대신 (일편과 달리)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거기서 연명한다. 이제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이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 대결 이후에 김두한은 더 이상 김동회와 대결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이 힘겨운 대결에서 얻을 게 없다. 과잉적인 제스처 속에서 선택된 태도. 더 이상 그것을 하지 않을 때 언제나 거기에는 그것을 하지 않는 이상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S#_1 S#_2 S#_3 S#_4 S#_5 S#_6 S#_7 S#_8 S#_9 S#_10 S#_11 S#_12 S#_13 S#_14 S#_15 신기한 첫 장면( S#_1). 김동회가 김두한과 대결할 때 그들이 종로 한복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신 다짜고짜 둘이 마주선 것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시작한다. 말하자면 이 쇼트는 마치 다음 쇼트와 순서가 뒤바뀌었거나 앞질러 나온 것처럼 등장한다. 그런 다음 장면에서( S#_2) 여기가 종로 한복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master_shot) 서로를 마주보면서 자신들의 동선을 원형으로 그려 나갈 때 이 모든 상황에 무심하다는 듯 느리게 두 대의 전차가 양쪽으로 마주보고 온 다음 서로 교차해서 지나간다. 물론 그 화면 효과는 우리들이 보고 싶어 하는 김두한과 김동회의 대결 장면을 정확하게 가로 막은 다음 다시 무대의 막이 열리듯이 그 둘을 다시 보여주면서 각자 제 갈 길을 따라 이동한다. 설명의 반복. 화면 안에서 다시 화면을 만들고(re_cadrage) 두 대의 전차는 화면을 지운 다음 다시 연다. (wipe_in_out) 그때 카메라는 이 모든 움직임을 허용하기 위해서라는 듯 둘이 마주보는 자리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전차가 교차하는 길목을 넘어서, 그런 다음에도 구경꾼들로부터도 더 멀리 떨어져서, 아마도 이 장면에서 가장 먼 구경꾼의 자리에 머문다. 김두한과 김동회, 이 둘은 이때 아무리 격렬한 대결을 벌인다 할지라도 (전차가 교차하는) 사거리 너머로 넘어오지 못한다. ( S#_3) 왜냐하면 이 둘이 그걸 넘어오기 위해서는 사거리의 저편으로부터 이편으로 넘어온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bridge_shot) 피할 수 없는데 그때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이어진 세로의 방향과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걸 보여주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거기에도 세트를 지어야 한다. 임권택 은 먼저 세트의 조건을 받아들인다. 남은 방법은 그들의 대결을 저 교차점으로부터 넘어오지 않게 진행하는 것이다. 이 씬에서 김두한과 김동회의 액션 연출 자체는 간단하다. 그러나 전차가 교차하고 있는 종로 한복판에서 세트를 인정하고 그것을 성립시키는 것은 단지 이야기의 안에 들어온다는 문제가 아니다. 이 공간이 장소로서 구멍이 뚫린 결함을 지닌 사각형이며 두 명의 벡터는 서로의 힘을 자유로이 사용하면서 이 공간의 영화적 한계와 완전히 무관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때 이 공간은 어떤 수단을 써서 이들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만들면 즉각적으로 한계가 드러나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임권택은 먼저 여기에 하나의 가상원을 그린 다음(imaginary circle) 김두한과 김동회가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전차가 교차하는 선을 넘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종로 한복판을 가로로 가상선을 그은 다음(imaginary axis) 전차가 교차하는 세로선을 180도로만 오고 간다. 이 공간을 임권택의 장소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나는 몇 번이고 임권택이 세트를 세운 다음 그 공간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의 제한을 재빨리 받아들인 다음 동선과 시선을 분리하여 이야기의 줄거리가 진행되는 작은 공간과 그것을 바라보는 큰 공간으로 만든 다음 두 개의 공간을 조립하는 방식을 현장에서 혹은 영화에서 보았다. 이때 둘 사이를 보충하는 것은 물론 영화를 보는 우리들이 자발적으로 시선의 결함을 메우는 상상적인 지도 그리기의 능력이다. 이때 약점은 시선을 구부려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원과 직선만이 활동할 뿐이다. 임권택은 하나의 시선을 더한다. 그건 누구의 시선도 아닌 영화의 시선인데 물론 그 쇼트는 대결하는 둘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는 이 대결 장면의 첫 쇼트를 설명하게 수 있게 되었다. 명성바에서 종로 한복판으로 갑자기 옮겨왔을 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첫 장면( S#_1)은 이 시퀀스의 전체 운동을 위한 마스터 쇼트이다.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그때 기준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퀀스를 성립시키는 역량의 존재론과 연관 지어진다. 언제나 유기적인 쇼트들의 활동. 임권택은 쇼트가 문득 차원을 이동하여 견인되거나 혹은 반대로 갑자기 뒤로 물러나서 측량되기를 원치 않는다. 변화하는 전체 안에서 던져진 시간은 무엇을 표현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 마치 교차선 너머로 온 것에 스스로 깜짝 놀라기라도 하듯이, 혹은 그 자리에 대한 반작용이 있기라도 한 듯, 김두한과 김동회가 서로 주먹을 교환하고 동시에 나가떨어질 때 카메라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위에서 아래로 두 개의 힘을 내려다본다. ( S#_4) 그러자 다시 마치 앞의 쇼트가 우리들의 시선을 방해하기라도 한 듯이, 그게 마치 일시적으로 디테일을 보기 위해 삽인 된 쇼트이기라도 한 양(insert_shot), 거의 동일한 위치로 다시 한 번 반발하듯이 앞의 자리로 돌아온다. (S#_5) 이때 김두한과 김동회, 이 두 개의 힘이 시선의 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구경하러 온 종로통 상인들이 구경꾼들 사이에 끼어든다. ( S#_6) 겹겹이 둘러싼 시선. 하지만 이때 이들의 자리가 어딘지는 분명치 않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추론은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이 시선을 선행한 장면이 위에서 아래로 찍었기 때문에 이 장면의 시선이 45도로 세워졌다 하더라도 그건 거의 의미 없는 규칙이다. 물론 우리는 김두한의 후견인들이라 할 종로 상인들이 서 있는 자리 뒤편의 상점들을 미루어 짐작해서 길 건너편 왼쪽 자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영화의 규칙 안에서 얼마든지 배신이 허용된 설명이다. 이 짧은 시선의 쇼트로부터 재빨리 영화는 다시 김두한과 김동회가 대결하는 그 장소에로 돌아온다. 하지만 좀 더 가깝게, 좀 더 안으로 다가간다. ( S#_7) 임권택은 여기서 두 개의 리듬을 번갈아 교차시킨다. 하나는 김두한과 김동회를 멀리 보여준 다음 다른 쇼트와 번갈아 되돌아올 때마다 계속해서 앞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둘을 바라보는 시선의 자리를 유지하면서 김두한과 김동회의 대결이 만들어내는 원을 포함하면서 고립시키는 것이다. 이때 두 개의 리듬이 모두 영화로만 성립하는 운동의 교차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 두 개의 리듬은 어느 것도 이야기에 매달리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이야기 바깥에서 영화를 진행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요구에 응답한다. 이 운동은 한편으로 기계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순서대로 오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꾸만 새로운 힘을 더해간다. 더 들어가자마자 다시 바깥으로 빠져나올 때 이번에는 구니모또 형사가 새로이 이 시선의 덧셈에 끼어든다. ( S#_8) 나는 이 편집의 순서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논리 정연한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이 있다. 이를테면 임권택은 이미 < 길소뜸 >에서 단 하나의 장면도 예외가 없는 논리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게 지나치게 엄정해서 거의 숨 막힐 정도로 진행된 순서. 김두한과 김동회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의 쇼트가 있다. 하나는 종로 상인들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구니모또 형사의 시선이다. 이때 왜 앞의 것이 뒤에 오면 안 되는가, 라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대답은 다음 쇼트이다. 갑자기 김두한과 김동회를 이제까지 보았던 자리에서 뒤집어서 반대의 방향에서 그 둘을 바라보고 있다. ( S#_9) 단순하게 기술적으로 말하겠다. 이건 넘어갈 수 없는 선을 그냥 넘어간 것이다. 당신은 그게 지나치게 도식적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영화에서의 선이라는 도식은 문법에 속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오히려 당신의 걱정은 이걸 지속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면 도식적인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해야 옳다. 그리고 물론 임권택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는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두 개의 힘을 향해 다가가던 리듬을 갑자기 중단하고 좌표 안에서 반대의 자리에로 건너올 때 거기에는 그 쇼트를 잡아당길 수 있는(attractive) 돌발적인 변화의 새로운 차원을 더해야만 한다. 이때 하나는 김두한에게 긍정적인 관계의 쇼트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관계의 쇼트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구니모또 형사의 쇼트는 단지 서로 다른 시선의 요구에서 생겨난 것이(일 뿐만) 아니라 바로 다음 쇼트의 반대의 자리, 종로 한복판의 세로 선을 따라서 앞으로만 진행되던 카메라를 반대 방향으로 뒤집기 위해서 필요해진 반대의 자리에 놓인 인물(antagonist)의 쇼트이다. 두 개의 시선. 두 개의 반대의 힘. 그때 형식은 이야기를 경유해서 영화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킨 다음 그 반작용의 힘으로 순식간에 반대의 자리에로 넘어온다. 이때 이 쇼트는 이 시퀀스 전체에서 가장 이상한 구도로 보여 진다. 약간 위로 올라가 있지만(high_angle) 이와 비슷한 구도로 보았던 장면( S#_2)의 맞은편에서 찍은 것 같은 효과(reverse_shot)를 구태여 피하고 있다. 임권택은 이 쇼트를 음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이 둘 안으로 더 가까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퀀스가 끝나면 이제 이 둘 사이에서는 새로운 우정(과 예기치 않은 한 여자의 등장으로 인한 본의 아닌 패배)의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파고 들어가야 하기라도 하듯이 서로 순식간에 주먹을 교환하는 김두한과 김동회를 따라 더 가까이, 그저 주먹을 휘두르면 맞을 것만 같은 거리까지(medium_shot) 다가간다. ( S#_10) 대결과 시선 사이의 기계적인 교환. 다음 장면은 다시 구니모또 형사가 바라보는 쇼트로 돌아온다. ( S#_11) 임권택은 이 교환의 도식을 지키면서 한편으로 기계적인 반복이 가져올 수 있는 구태의연함을 하여튼 피하고 있다. 이 반복은 재빨리 돌아가는 대신 반대로 더 멀리 뒤로 물러난다. 물론 아무리 멀리 물러나도 전차가 교차하는 길 건너편 이 길목을 빠져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보았다. ( S#_2) 임권택은 두 사람을 좀 더 잘 보고 싶어 하기라도 하듯이 한껏 위로 올라간 다음 그걸 전봇대에 올라가서 구경하는 아이의 뒤에 서서(over_the_shoulder_shot) 바라본다. ( S#_12) 그 시대의 구경의 방식. 구경의 자리. 그 시대의 풍속. 낯선 위치를 시대 안에 자리 하기. 가장 멀리 빠져나간 다음 쇼트는 이 대결에서 가장 가까이까지 다가간다. 두 개의 클로즈업. 김동회( S#_13)의 얼굴과 김두한의 얼굴( S#_14). 마치 가 닿을 것만 같은 거리. 하지만 동시에 이 두 개의 쇼트가 유일하게 이 두 사람을 하나의 쇼트로부터 둘로 찢어낸 분리의 절단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 다음 맨 처음, 이 대결이 시작했을 때의 첫 번째 자리, 다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재빨리 둘 사이의 마지막 주먹을 교환하고 김동회가 쓰러진다. (S#_15) 가장 단순하게 보는 방법. 김두한과 김동회의 정정당당한 대결은 김두한의 승리로 끝났다. 시나리오의 순환에 따라 설명하는 방법. 여기서 김두한이 지면 이야기는 더 이상 진행이 안 된다. 게다가 그것은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대결에서 지면 김두한은 규칙에 따라 종로를 떠나야 하고 종로패는 하야시 구미(組)의 아래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미처 대결도 하기 전에 여기서 김두한의 승리를 누가 의심할까. 이때 단 한 사람, 임권택은 의심스럽게 쳐다본다. 하나의 쇼트라는 경기장 안에서 반복적으로 함께 활동하는 두 힘을 두 개의 쇼트로 찢어낼 때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김두한을 보여준 다음 김동회를 보여주는 대신 그 반대의 순서를 선택한다. 나는 이 영화가 장르영화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장르의 규칙. 컨벤션이라는 약속. 이때 대결의 장면에서 리듬은 두 개의 방향을 갖는다. 순방향과 역방향. 김두한에서 김동회에로 흐르는 대신 김동회에서 김두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순서. 주인공을 압도하는 맞은 편 대결하는 상대방. 우리는 일편에서 김동회가 마지막 순간 김두한과의 대결에서 갑자기 그 둘 사이의 긴장을 찢고 들어오듯이 외치는 목소리, “두한아, 넌 조선의 자존심이야, 지면 안 돼, 저 놈은 쪽바리다, 비록 조선의 피가 흐른다지만 왜놈들 개 노릇을 하고 있잖아, 죽여라, 죽여”라는 외침에 갑자기 대결을 포기해버린 것처럼, 좀 전과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맥없이 김두한에게 일방적으로 맞고 쓰러진 것을 보았다. 여기서는 갑자기 쇼트의 순서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 다음 이 두 사람의 대결을 오로지 바라볼 수 있을 뿐인 자리, 그 둘 사이의 대결에서 어떤 감정적인 교환도 바라볼 수 없는 애매한 자리에로 옮겨간 다음 이 대결을 마무리 한다. 가장 시시하게 대답하는 방법. 그건 두 사람의 (무술) 대역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위치에요. 단지 그것뿐일까. 나는 그렇게 연출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없이 두 사람 사이의 액션을 진행한 연출의 예로 세 편의 < 장군의 아들 >로부터 열 개 이상의 시퀀스를 제시할 수 있다. 임권택은 우리를 모호한 자리로 데려간 다음 단지 결과만을 보여주면서 일편의 여운을 고스란히 남겨 놓는다.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김동회는 이 대결이 끝난 다음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물론 끝내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도 대결 직후에 김두한이 위로하기 위해 데려간 명성 바에서 우연히 마주친 송채환을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져들었고, 그럼으로써 다른 세계에로 도약할 준비를 하는 순간이라고 설명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김동회의 패배는 송채환을 만나기 전의 일이다.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지만 그런 다음 김동회는 자기의 손가락을 자르고 하야시 구미(組)를 떠나 만주로 간다. 무언가 여기에는 잘 설명되지 않는 상위의 관점 같은 것이 있다. 하나의 세계가 사라지고 거기서 다른 세계가 자기의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생겨나는 것만 같은 순간. 이미 주어진 세상을 다시 재구성하는 것만 같은 단절.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 주어진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이야기의 법칙이 생겨난다. 나는 미처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 일대종사 >에로 돌아오고 싶다. 내가 전차를 이야기하는 순간 이미 당신은 눈치 챘을 것이다. 여기서 다루려는 장면은 엽문이 (홍콩에 잠시 머물렀던) 궁이를 찾아와 궁보산의 영정에 인사를 한 다음 “궁가 64수를 보여주시오”라고 청한 다음 시퀀스이다. 엽문이 궁이에게 1937년 동북에 있는 높은 산을 찾아가려 했지만 전쟁이 나는 통에 찾아가지 못하고 외투는 저당 잡힌 채 단추만 남았다면서 책상에 단추를 올려놓고 그녀에게 밀어 넣자 궁이가 그걸 만지작거리면서 “엽선생, 십년 전 섣달그믐 밤, 내가 어디 있었는지 아세요?”라고 마치 자문하듯이, 탄식하는 것처럼 말한, 그 다음 시퀀스이다. 그러면 이야기는 십년 전으로 갑자기 옮겨간다. 기차역이 보이고 “1940년 섣달그믐 밤 동북” 이라는 자막이 뜬다. 궁이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제자 마삼에게 복수하기 위해 지금 진천 북역에서 기다리는 중이다. 아마도 오늘은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타야할 것이며 그렇다면 여기에 오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시계는 11시 28분을 가리키고 있다. 전구 불빛이 깜빡거리고, 사람들은 고향 가는 길에 발길을 재촉한다. 난로는 장작을 때우면서 활활 타고 있지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왕가위는 한껏 기차의 도착을 늦추면서 시간을 음미한다. 기다리는 시간. 서로 다른 성질의 쇼트가 번갈아 오가기 시작한다. 세상사에 관심도 없는 눈발. 궁이의 복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고향길. 제 시간이 되자 기차는 천천히 도착한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지만 주인 곁에서 한껏 긴장한 원숭이. 일본군 점령하의 전구는 마치 금방이라도 꺼질 듯 깜빡 거린다. 역사의 기호들. 모든 것이 한 자리에 모여들 때 그 모든 쇼트들은 궁이와 마삼의 대결이 아니라 기차의 도착과 출발에 따라 서로 연결되고 분리된다. 슬로우 모션과 스텝 프린팅의 교차. 서로 다른 속도. 종종 이미지들은 뭉개지고 그때 인물들은 그저 형상만 어른거리듯 지나친다. 카오스처럼 보이면서도 기계 톱날처럼 서로 연결된 편집의 리듬. 그 안에서 세 개의 힘이 서로 각자의 법칙에 따라 활동하기 시작한다.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눈이다. 이 눈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바닥에 쌓여만 간다. 종종 많은 액션 활극들은 그렇게 눈이 내릴 때 바닥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걸 이용하기도 한다. 때로 미끄러지는 헛발질. 왕가위는 그런 따분한 클리쉐를 여기서 활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무술의 고수들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눈은 쇼트들 곳곳에 스며들어서 섣달그믐 추운 겨울날 한기를 ‘보여’준다. 두 번째 힘은 마삼이 타고 가야 할 기차의 도착과 출발이다. 이때 왕가위는 궁이가 기다리는 대합실을 왼쪽에 설정하고 마삼이 오는 역의 입구를 오른쪽에 배치한 다음 기차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들어오게 만든다. 마삼은 이 기차를 타야 고향에 가서 만두를 먹을 것이다. 기차가 도착하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은 원숭이이다. 역 벤치에 앉아 눈을 맞으며 기다리는 궁이의 집사가 쓴 모자의 털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돌아보는 집사. 대합실 창문에 비치는 기차의 불빛. 초조하게 궁이의 주변을 이동하는 카메라. 하지만 궁이는 미동도 앉고 앉아있다. 신호등을 들고 눈발을 맞으며 역무원이 막 들어오는 열차를 맞이하러 간다. 들어오는 열차. 이때 왕가위는 기차가 들어오는 것을 단지 소리만으로도 간단히 알려줄 수 있는데 (물론 더 간단한 방법은 그냥 역에 들어오는 기차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걸 누가 모를까?) 그 위에 음악을 덮은 다음 기차의 도착을 간접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세 번째 힘. 기차의 도착에 맞춰 마삼이 도착한다. 궁이와 마삼의 대결. 마삼이 도착하자 멈춰있던 궁이가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때 조각난 세계가 갑자기 일사불란하게 하나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사방으로 흩어진 시선이 하나로 모여들고 그 중심에 궁이와 마삼이 있다. “빚 독촉보다 더하군. 섣달 그믐날 집에도 못가게 하고” 궁이는 마삼에게 그 기차를 탈 수 있는 기회를 가져갈 것이다. 그것만이 궁가의 무술을 되찾는 방법이다. “만두는 솥에 있지만 넌 못 먹을 걸, 제를 지낼 놈은 제를 지내고 밥을 먹을 놈은 밥을 먹듯이 해야 할 일은 하늘이 무너져도 해야지, 궁가의 것을 돌려받겠다” 이 두 개의 시퀀스는 전차 혹은 기차를 사이에 놓고 진행하는 대결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규칙도 동일하다. 한쪽이 쓰러지면 끝난다. 이 두 개의 대결은 공개적이며 구경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다. 심지어 이 두 개의 대결은 (물론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아마도 같은 해, 1940년 단지 서로 다른 장소에서 벌어졌을 뿐이다. 차이라면 < 장군의 아들 > 이편은 종로 한복판 한여름이었고, < 일대종사 >는 중국 동북부의 기차역 정도이다. 하지만 그 둘은 단지 서사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관계에 의지하고 진행된다. 그러므로 두 개의 시퀀스는 같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장군의 아들> 이편을 중심에 놓고 <일대종사>를 곁에 놓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중이다. 비스듬하게 바라보기. 무대의 연출이라는 면의 좌표에서 궁이와 마삼의 대결은 김두한과 김동회의 대결보다 훨씬 조건이 나쁘다. 지금 막 도착한 기차가 궁이와 마삼이 서있는 공간에서 한쪽 180도를 모두 사용할 수 없게 차단해 놓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절반의 공간. 마삼은 그 기차를 타야하고 궁이는 마삼을 무릎 꿇게 만들어 궁가 무술의 필살기 노원괘인을 받아갈 것이다. 아마도 기차는 잠시 동안만 역에 정차할 것이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섣달 그믐날 밤은 금방 밝아오지 않을 것이다. 왕가위는 마삼을 기차가 가는 방향에서 오게 만들었고 궁이를 마치 기차를 멈춰 세우듯이 반대편에서 마주 걸어오게 동선을 그어서 두 개의 선, 그러니까 기차의 철도와 두 사람의 대결의 선을 평행으로 놓았다. 순방향과 역방향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선. 그 선에 무관심한 철도의 선. 두 개의 평행선. 두 개의 트랙. 물론 왕가위가 구태여 이 장소에서 대결을 선택한 이유는 궁이와 마삼의 대결과, 기차의 도착과 출발이 만들어내는 정지와 활동이라는 기계적인 동작, 두 개의 운동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작동시키려는 것이다. 마치 스쳐 지나가듯, 늦은 시간을 보여주기 위해, 그 자리에 매달려 있던 시계는 이 순간 그 어느 것도 멈출 수 없다는 힘의 기호가 된다. 여기서 모든 것은 오로지 앞으로 갈수만 있을 뿐이다. 기차의 출발시간. 궁이와 마삼의 대결. 내리고 또 내리는 눈. 이때 이상할 정도로 이 대결의 장면이 (이런 비유적인 표현을 허락한다면) 두텁게 칠해졌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어딘가 둔하게 여겨지는 공간의 구석들. 나는 필요 이상으로 섬세하게 이루어진 금루를 환기시키고 싶다. 왕가위는 의도적으로 일부를 지워나가고 있다.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지워진 장소. 어떤 흐릿함. 지워져가는 흔적. 바라보는 시선들을 가로 막는 성에 낀 창문. 거기 내려앉은 어둠. 섣달 그믐밤은 그림자가 깊기도 하다. 우리는 이 시퀀스 전체가 궁이가 돌아보는 시간(flash_back)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두 개의 시간. 십년이라는 시간의 간격.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선들의 다발. 각자의 선들의 방향과 힘. 그 사이에서 시간의 간격은 무엇을 남겨놓고 무엇을 지운 것일까. 기억 속의 대결. 그런데 궁이는 갑자기 왜 엽문에게 십년도 더 지난 이 이야기를 꺼내든 것일까. 엽문은 마삼에게 아무런 감정적인 원한이 없으며 또한 그가 궁이를 대신해서 그녀의 아버지인 궁보산의 복수를 행해야할 의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엽문과 마삼, 그 둘은 그저 스쳐 지나가듯이 금루에서 한번 보았을 따름이다. 엽문은 지금 오로지 궁이가 궁금해서 만난 것이다. 궁이는 단추를 돌려주기 위해서 만난 것이다. 그런데도 궁이는 마치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만났다는 듯이 힘겹게 마지막 순간에 이야기를 꺼내든다.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궁이가 이 대결에서 마삼에게 졌다면 궁이와 엽문에게는 기회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엽문의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났고 궁이는 이제 궁가 무술의 유일한 전수자가 아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패배는 궁가 무술의 권위를 마삼에게 넘겨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승리는 궁이에게 사랑의 패배에 다름 아니다. 삶의 쓰디 쓴 아이러니. 하지만 여기엔 다른 해석이 하나 더 있다. 다시 한 번 환기하지만 궁가 64수 무술의 최고의 경지인 노원괘인의 마지막 필살기는 돌아보는 것이다. 돌아보는 제스처. 돌아보는 시간. 후회.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막을 수 없는 칼날 같은 아픔. 지금 이 장면을 바로 그 돌아보는 마지막 한 수, 노원괘인의 필살기로 엽문에게 대결을 청하는 것이라고 읽을 수는 없는 것일까. 궁이는 금루에서 엽문과 아버지 궁보산의 대결을 보았다. 그때 궁보산은 엽문에게 제안한다. “엽선생, 오늘은 내 마지막 대결이니 우리 생각을 겨루세” 생각을 겨룬다는 것. 두 개의 생각. 사유의 대결. 감정의 대결. 여기서는 사유와 감정 사이에서 우위를 논하지 않을 생각이다. 물론 두 사람은 이미 금루에서 그들의 대결을 ‘즐겼다’. 마치 포옹이라도 할 것만 같았던 순간들. 마치 입술이 거의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간 클로즈업의 슬로우 모션. 서로 가장 가까이 다가가본 시간. 개념들은 이번에는 정감의 기호들에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하지만 아마도 이 돌아보는 시간의 대결은 궁이와 엽문의 마지막 대결이 될 것이다. 누가 돌아보는 시간을 견딜 것인가. 그런데 그 대결에서 승자가 있을 수 있을까. 지금 이 장면의 한 장면, 한 쇼트, 한 순간, 하나의 제스처, 하나의 액션, 하나의 동작, 한마디의 말, 하나, 하나가 마삼을 경유하여 고스란히 엽문에게로 향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퀀스 안의 모든 시청각 기호들을 읽어나갈 때 그것이 모두 이미지로 옮겨진 궁이의 말이며 엽문을 향한 치명적인 노원괘인의 필살기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돌아본다는 것. 이때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은 기차이다. 여기에는 두 대의 기차가 없다. 단지 한 대의 기차가 거기 잠시 멈추어 선 다음 제 시간이 되면 망설이지 않고 떠나갈 것이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진 것일까. 나는 다소 자유자재로 시간을 뒤섞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이건 왕가위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만일 계보를 세워야한다면 왕가위는 명백히 오손 웰즈에서 알랭 레네를 지나 사방으로 시간의 거미줄을 쳐나간 네트워크를 따라가고 있다. 약간의 디테일. 기차는 마삼이 오기 전에 도착했고, 마삼은 이 기차를 타기 위해 막 역에 도착했다. 그런 다음 기차를 언제 떠나보낼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십년 전 이날, 궁이의 기억 속에는 오로지 기차만이 남아있는 것처럼 모든 운동은 이 기차의 도착과 출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니, 차라리 기차 시간표라는 운동 안에 이끌려 들어와서 화면 안의 모든 기호들이 그 안에서 활동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오로지 여기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만이 자유로울 따름이다. 아니, 그것조차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궁이와 마삼의 대결이 시작되자 마치 그들의 대결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듯이 그 순간 그만 멈추고 만다. 우리는 이미 금루에서 궁이의 64수를 보았다. 혹은 그녀는 엽문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이 대결이 끝난 다음 나눈 궁이와 엽문의 대화를 환기시키고 싶다. 지금은 생각을 대결하는 중이다. 필살기 노원괘인의 필살기는 돌아보는 것이다. 궁이는 엽문에게 말한다. “엽선생, 64수를 보여드린 건 이걸 말하기 위함이에요. 사람밖에 사람 있고 산 너머 산 있듯 주먹이 앞만 보고 뒤를 못 보면 안 되죠, 여기서 많은 걸 깨우치시길” 그러자 엽문이 대답한다. “바둑에 같은 바둑판은 없는 법이죠, 잎사귀 밑에 꽃을 숨길 수 있는지 나중에 봅시다” 궁이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한다. “그래요, 기다리죠” 이미 궁이는 노원괘인의 필살기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 왜 엽문은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보자고 한 것일까. 말하자면 이건 약속인 것일까. 나는 자막에 ‘한 마디 약속은 산보다 무겁다’라고 써 있었을 때 그 약속이 무엇이었는지를 한참 생각했다. 궁이는 엽문의 그 말에 기다리겠다고 대답했다. 무엇을 기다린 것일까. 궁이가 엽문에게 들려주는 십년 전의 섣달 그믐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엽문은 홍콩에서 약국하면서 머물고 있는 궁이를 찾아왔을 때 첫 인사가 당신이 보고 싶어서 왔소, 라는 말 대신 궁가 64수를 보여주시오, 라고 청했다. 물론 문학적으로 이 말을 살짝 비틀어서 당신이 보고 싶어서 왔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서 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아마 모두들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어 할 것이다. 나는 반대로 묻고 싶어진다. 정말 그 말이 엽문이 하고 싶었던 말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궁이는 그 말에 대답한다. 만일 문지방을 넘자마자 그 말을 했다면 한바탕 대결을 하고 만두를 대접했을 텐데요. 나는 지금 만두를 생각하는 중이다. 오늘은 섣달 그믐날이다. 고향에 돌아가서 만두를 먹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마삼은 기차를 타러 온다. 궁이는 마삼에게 말한다. “만두는 솥에 있지만 넌 못 먹을 걸, 제를 지낼 놈은 제를 지내고 밥을 먹을 놈은 밥을 먹듯이 해야 할 일은 하늘이 무너져도 해야지” 오늘 궁이와 엽문은 아무도 만두를 먹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 홍콩은 고향이 아니다. 그들은 돌아갈 기회를 놓쳤다, 그 말을 한 다음 탄식하듯이 궁이는 십년 전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방점은 탄식(歎息), 에 있다. 이 말을 조심스럽게 음미해주었으면 좋겠다. 궁이는 마삼과의 대결에서 이겼다. 마삼은 피를 토한 다음 눈 바닥에 누운 채 말한다. “궁가의 것을 돌려줬다” 궁이는 할 수 있는 한 거만하게 내려다보면서 대답한다. “말은 바로 해야지. 네가 돌려준 것이 아니고 내가 되찾은 거다” 멈춘 줄 알았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이미 기차는 떠나간 다음이다. 궁이는 이 대결에서 힘겹긴 하지만 마삼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걸 다시 떠올리면서 여기에는 승리에 대한 어떤 도취감도 없다. 왜 그녀는 탄식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난다. 시간은 약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52년 일천선의 백장미 이발소로 옮겨간다. 그런 다음 엽문과 궁이는 마지막으로 경극을 보고 헤어진다. 영화는 그 이년 동안 엽문과 궁이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이 오갔는지, 어떤 시간을 가졌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약간의 실험을 했다. 이상하게도 내 동료들은 섣달 그믐날 이야기를 나눈 다음 경극을 보고 궁이와 엽문이 헤어지는 장면을 연이어 붙여놓고 기억했다. 그 두 개의 씬 사이에 이년이라는 간극이 있으며, 게다가 분명히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일선천의 이발소 장면이 그 사이에 있었는지조차 어리둥절하게 생각 했다. < 일대종사 >는 엄격하게 엽문의 전기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며 궁이와의 인연은 지어낸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나는 반대로 물어보고 싶어진다. 왜 마삼과의 대결 이야기가 끝난 다음 궁이와 엽문과의 이별 장면을 진행하면 안 되는 것일까. 이년 동안 별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며 게다가 마삼과의 대결을 보여준 다음 이어서 일선천의 이발소를 보여주고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다시 경극으로 돌아와서 궁이와 엽문의 이별 장면을 진행한다. 무언가 여기에는 궁이와 엽문 사이의 인연에 대한 (영화 바깥에 있는) 우리들의 기억 위에 기억을 겹쳐놓고 싶어한다는 인상이 있다. 인상의 연상과 기억의 순서 사이에서 벌이는 내기. 기술적으로만 설명하면 이 탄식은 궁이와 엽문의 이별에 대한 감정을 이어 붙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그 사이에 이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필요해진 것일까. 그런 다음 다시 그 간격을 지워버리고 있다. 궁이와 엽문의 섣달 그믐밤의 만남, 이 만남에서 궁이가 하는 십년전 섣달 그믐밤의 대결, 그리고 난 다음 이년 후의 일선천의 백장미 이발소, 그리고 다시 경극을 본 다음 이별하는 궁이와 엽문이 걸어가는 한밤 중의 길, 이 길에서 우리는 두 사람 이외에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마치 유령들이 거니는 것만 같은 그림자들. 텅빈 건물. 어떤 집에도 들어오지 않은 등불. 여기서 누가 구경꾼인가? 이 모든 장면의 광경들을 보는 사람은 우리들 뿐이다. 거의 서로 통하지 않는 조각들. 그것들을 영화라는 고유한 능력의 관점으로 묶어낸 다음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 자리. 하지만 여기서 기억에 대한 진정한 내기가 시작된다. 왕가위는 그 자리를 잘 정리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때로 희미한 공통점을 놓아두고 종종 중단시킨 다음 그 안에서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시간 감각을 증발시키려 든다. 희박해져가는 기억. 궁이는 이야기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등불처럼 보인다. 그때 그건 엽문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감각이다. 영화 속의 여러 개의 생명의 리듬. 그때 하나가 여기서 지워져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보는 내내 마치 영화의 어떤 기능이 마비되어 작동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일대종사>는 잠시 동안 상승한 다음 내내 하강한다. 나는 두 장면 모두에서 불투명성을 설명했다. 그런 다음 구태여 여기서는 장면이라는 말 대신 광경이라는 말을 사용하려고 한다. 이때 (< 장군의 아들 > 이편의) 전차와 (< 일대종사 >의) 기차는 장면의 디테일(detail_particolare)이 아니라 광경의 디테일(detail_dettaglio)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둘이 여기서 정확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경계는 모호하고 어딘가에서 그 둘은 서로를 오간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따분하게 그 둘을 도식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혹은 앙드레 고드롤과 톰 거닝이 제시한 매혹의 인력(spectator_in_attraction)이라는 개념 안으로 끌어들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지금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흔적 자체의 존재론이 어떻게 재현의 배치를 무너트려가면서까지 어떤 기쁨을 호소하느냐는 것이다. 과잉의 투여라는 문제. 거기에 얼룩처럼 남아서 자기의 존재를 사건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오로지 기능적으로만 말한다면 양쪽 모두 전차 혹은 기차가 있거나 없거나 차이가 없다. 만일 있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는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 여기서 그 존재의 차이는 오로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시선의 경로에 대한 동요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전차와 기차를 단순하게 대결을 무대화시키는 장치라거나 혹은 알레고리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이 두 개의 힘이 아무 것도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 같은 태도를 말하고 싶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전차와 기차는 우연히 거기서 마주친 대상이 아니다. 임권택 은 이 장면에서 구태여 김두한과 김동회를 종로 한복판 두 대의 전차가 교차하는 그 장소에로 대결 장소를 옮긴다. 왕가위는 십년 전 섣달 그믐밤 궁이와 마삼의 대결을 기차역으로 이끈다. 하지만 거기서 두 대의 전차, 혹은 막 도착한 기차는 그저 무심하게 궤도를 따라 떠나간다. 그때 그 힘은 단지 영화적 사건으로서만 존재한다. 이 존재 자체가 어쩌면 장면을 망쳐버릴 지도 모른다. 혹은 장면에 대해서 어떤 얼룩처럼 여겨지기조차 한다. 그런데도 거기 있어야만 한다. 아니, 차라리 그것이 있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마치 그것이 있는 자리에서만 이 사건이 성립되기라도 하듯이 여기에 온다. 영화에서 우리를 까다롭게 만드는 부분은 서사 안으로 통합되지 않으면서 거기에 불가사의하게 사건으로 존재하는 비인칭의 이것임, 과 마주칠 때이다. 영화에서 그 무언가를 건드릴 때 거기서 통일성을 요구하면 안된다. 기이하게도 여기에서 내가 마주친 순간은 그 존재의 사건들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라는 영화적 시간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교차하는 두 대의 전차, 혹은 막 도착한 기차가 불러일으킨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을 말하고 싶다. 물론 이 기쁨을 가장 먼저 알고 있었던 사람은 루이와 오귀스트 뤼미에르 형제일 것이다. 시오타역으로 들어오는 기차. 상영시간 56초. 나는 잠시 멈추고 이 장면을 다시 보고 있다. 당신께서 부디 이 칸막이처럼 여겨지는 두 영화 사이를 횡단하면서 내가 찾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채주었으면 고맙겠다. 가로 지르기.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성립되면서 동시에 그 영화로부터 시작되는 다른 영화들과의 사이를 떠도는 것이다. 말 그대로 표류. 임권택을 말하면서 거기에 가 닿지 않으려는 노력. 그래서 왕가위에게 다가가기. 하지만 왕가위에게 머물지 않기 위해서 임권택에게로 돌아오기. 그 사이에서 나는 영화 안에 머무는 불가사의한 사건을 발견하고 기쁨에 넘쳐 어쩔 줄 모르는 중이다. 마치 열차처럼 양쪽을 오가면서, 놓쳐버린 열차를 그리워하면서, 다시 찾아올 열차를 기다리면서, 그 둘이 교차하는 그 시간이 바로 내가 영화와 대결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말하자면 내가 임권택에 관한 글을 시작하면서 맞이하는 첫 일 년, 작년의 그날로부터 오늘. 나는 지금 다시 시작하는 중이다. (세 번째 이야기 끝, 네 번째 이야기 계속) 장군의 아들 2 1991년 103분 컬러 1.85 감독 임권택 제작 태흥영화㈜ 각색 이윤택 촬영 정일성 조명 차정남 편집 박순덕 음악 신병하 박상민 김두한 송채환 송채환 신현준 하야시 이일재 김동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