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니스
- 감독
- 리차드 도너
- 제작년도
- 1985
- 출연
- 숀 애스틴, 조쉬 브롤린, 제프 코엔, 코리 펠드만, 케리 그린, 마샤 플림트, 조나단 케 콴, 존 마츠작, 로버트 다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극장에 불이 켜질 때까지도 미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영화를 만날 때면 나는 가까운 서점으로 향하곤 한다. 원작을 읽으며 영화를 다른 결에서 곱씹어 보거나 오리지널 스코어를 들으며 영화의 분위기를 일상의 배경으로 훔쳐오길 좋아한다. 작품이나 연출자에 대한 비평집이 출간되어 있다면 특히 운이 좋은 날이다. 다음은 가까운 카페로 자리를 옮기거나 집으로 돌아가 노트북을 켤 차례다. 검색 엔진과 아카이브의 은총으로 영화 제작과정과 뒷이야기는 물론이고 개봉 당시의 비평과 기사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일렬로 꼬리를 물며 늘어서는 브라우저 탭 사이를 헤매다 보면 하룻밤을 꼬박 새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에릭 로메르의 < 녹색 광선 >(1986)을 보고 영화에서 언급된 동명의 소설이 궁금했다. “녹색 광선을 보면 타인의 진심을 알 수 있다”는 로맨틱한 말이 마음에 남았고 다름 아닌 쥘 베른의 작품이라는 점이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녹색 광선』은 국내에 출간된 책이 없었다. 세상에. SNS에 “출판사 여러분, 이 책을 번역해주세요!”라고 여러 번 외쳐보았지만…. 『녹색 광선』 나는 몇 년 전부터 ‘딴짓의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좋아하는 영화나 영화제에 대한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있다. 책이라고 부르기에 어딘가 쑥스러운 책들은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을 통해 특정한 독자와 만나기도 했다. 해가 거듭되면서 ‘언젠가 『녹색 광선』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이상하게도 ‘언젠가 나라도 만들어야 한다’라는 혼자만의 다짐으로 바뀌었다. 한 권의 번역서가 출간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 그리고 전문가의 노력이 필요한지 미처 짐작하지 못해서 가능한 결심이었다. 번역가와 교정가를 섭외하고 좋아하는 디자이너에게 표지 디자인을 의뢰했다. 천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비용은 그때그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충당했다. 더 많은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ISBN을 받을 수 있는 출판 사업자가 되어야 했다. 자본금 0원에 향후 출간 계획은 없는 이상한 출판사를 세우고, 필름이 영사되는 속도(f/s)에서 따온 ‘frame/page’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결과, 이제 누군가 영화 < 녹색 광선 >을 보고 모티브가 된 쥘 베른의 소설이 궁금하다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 구니스 > 『Three Weeks with the Goonies: on Location in Astoria, Oregon』 『구니스와 함께한 3주』 2016년 여름, 한국영상자료원의 ‘아재와 이모를 위한 여름방학 특선’ 프로그램에서 리처드 도너의 < 구니스 >(1985)를 처음 보았다. 겪어본 적 없는 유년기를 추억하게 만드는 왁자지껄하고 귀여운 이 영화는 클래식이 된 작품답게 제작 비화와 후일담을 포함한 정보가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늘 그렇듯 인터넷을 헤매던 중에 우연히 『Three Weeks with the Goonies: on Location in Astoria, Oregon』이라는 제목의 특이한 책을 발견했다. 저자가 열아홉 살 당시 살던 동네가 <구니스>의 로케이션지로 결정되자 제작진의 허락을 받아 촬영 현장을 관찰한 경험을 회고한 에세이였다. 영화 연출을 공부했고 중년이 된 지금도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믹 올더먼(Mick Alderman)이 직접 쓰고 스스로 출판한 미국 내의 독립출판물이었다. 감독도 제작진도 배우도 아닌 사람이 남긴 영화 현장의 독특한 관찰기에서 영화라는 세계에 속하고 싶었던 지망생의 동경과 떨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실패담으로 가득한 투박한 글이었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보았기에 깊이 이입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구니스>를 보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당신의 책을 발견했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저자와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구니스와 함께한 3주』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하기로 했다. 나는 다시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고…. 영화와 관련된 책과 작업을 좋아한다. 영화가 극장에 앉아있는 두시간에 그치지 않고 삶에 여러 방식으로 스며들 때, 영화는 세상에 살아있는 것이 되고 나도 한동안 영화를 살아본다. 아무 계획 없이 만든 출판사지만 사실은 만들고 싶은 영화 관련 책의 리스트가 조금 있다. 그중에 몇 권을 만들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그 책들을 두 손에 쥐고, 사랑하는 영화의 흔적을 좇아 얼마나 많은 밤을 충혈된 눈으로 보냈는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PS. 영화와 관련된 좋은 책을 꾸준히 출간하는 출판사가 있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내가 주먹구구식 책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고민했다. 좋은 영화, 영화인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계시는 영화 분야 출판사와 편집자분들께 깊은 감사과 응원을 전한다.
1. 어렸을 때, 영화 속에서 조금이라도 무섭거나 긴장되는 장면이 나오면 엄마는 내 두 눈을 가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가락 사이로 그 장면들을 볼 수 있었다. 이티와 자전거와 소년이 처음 날아오르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자전거가 절벽으로 살짝 떨어지는 듯하다가 존 윌리엄스 스코어의 도움을 받아 다시 공중으로 부양할 때, 사람들은 박수를 쳐대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들만 그랬던 게 아니다. 아저씨 아줌마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랬다. 그 시절의 극장 풍경은 지금과는 조금 달랐던 것이다. 지금이야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관객으로서의 의무이지만 그땐 소리를 내며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난 엄마의 손가락 사이로 그 광경을 목격했다. 인디아나 존스가 굴러오는 돌을 피해 달아나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는데, 소중한 모자가 아직 동굴 안에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존스는 손을 뻗어 결국에는 모자를 구해낸다. 바로 그 순간에도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모과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 그렘린 >)과 배낭 속에서 튀어나온 권투 글러브가 악당의 얼굴을 때리는 장면(< 구니스 >)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순간마다 엄마의 손가락과 사람들의 환호성과 열정의 박수가 겹쳐져 있었다. 그때마다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2. < 구니스 The Goonies > 아마도 그것은 일종의 속임수였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일간지 신문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구니스 대개봉’ 광고가 실리자 외출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스크린이 밝아지고 스태프 롤이 떠오를 때 알게 되었다. 이번에도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가 아니었다. 또 한 번 속았다. 80년대의 많은 영화들이 그런 전략을 취했다. 메인 포스터에 커다랗게 ‘스티븐 스필버그’라고 쓰여있으면 그건 일종의 재미 보증서 같은 역할을 했다. < 피라미드의 공포 >도 그랬고, < 그렘린 >도 그랬다. 그 사기 행각의 결말은? < 구니스 >는 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 영화에는 정말 멋있고 매력적인 소년 소녀들이 잔뜩 나온다. 구니스의 리더, 션 오스틴은 동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아이들의 주장에 맞서 천식 호흡기를 들고 버텼다. “지금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면 그곳은 우리의 하늘이 아니야, 하지만 이곳은 우리의 세상이지. 구니스의 세상.” 뭐 이런 식의 대사를 하고 천식 호흡기를 휙 빨아들이는 그 모습, 카스리스마가 엄청나다. 난 케 후이 콴의 배낭 속이 궁금했다. 어린 아이계의 맥가이버라고 할 만한 발명 소년의 핵심기술이 그 가방 안에 모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미끄러지고, 달리고 물에 빠지고 하는 모험의 세계에서, 케 후이 콴의 손재주가 더 즐거운 길을 인도해 주었던 것이다. 나머지 아이들도 저마다 멋진 선택을 하며 마을을 구해내는 데 일조한다. 그런데 < 구니스 >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나온다. 모험이 끝나고, 션 오스틴은 담요를 두르고 상념이 잠겨있다. 그때 그를 리더로 인정해준 형의 여친이 다가와 볼에 뽀뽀를 해주는 것이다. 동굴 속에서는 누군지 모르고 키스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예쁜 누나의 뽀뽀를 받은 션 오스틴은 천식기를 던져 버리고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풍문에 따르면 그렇게 소년들은 성장한다고 한다. < 빅 Big > 어느 날, 동네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비디오 가게에 < 빅 > 이라는 영화가 나왔는데, 물건이라고. 처음엔 관심이 없었지만 친구가 비디오를 빌리는 데 성공하자, 어느새 그의 집 소파에 앉아 상기된 표정으로 영화의 시작을 기다렸다. 어느새 비디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이야기였다. 어른이 된 톰 행크스는 어린이의 감각으로 장난감을 만들어 어른들의 세계에서 능력을 인정받는다. 아이들의 욕망을 완벽하게 건드리는 스토리 라인, 톰 행크스의 당황하는 연기가 포인트다. 흠뻑 빠져 2시간이 지나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의 눈길을 가장 사로잡은 건 톰 행크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을 때였다. 데이트를 마치고 두 사람은 같이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웃옷을 벗는다. 그리고 불을 끈다. 그렇게 암전인가, 싶은 그 찰라, 그러나 톰 행크스가 다시 불을 켰다. 우리는 소년들의 취향을 확실히 저격하는 페니 마셜의 연출기법에 혀를 내둘렀다. 나와 친구들은 다시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갔지만, 공차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머릿속을 가득 메운 그 장면이 떠나질 않았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렸다. 그 어둠 속에서 공을 차며 나는, 또 한번 어른이 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 이티 E.T.: The Extra-Terrestrial > 내 기억에 < 이티 >는, 우리나라에서 개봉하기 전부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웬만한 동네 형들 집에는 이티 인형 하나쯤은 다 있었고, 식빵같이 생긴 이티의 머리라는 노래를 다들 부르고 다녔고,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티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아이들도 존재했다. 이티는 뒤뚱거리며 소년에게 다가왔고, 뒤뚱거리며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친구가 된 이티와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온갖 모험을 벌이다가 공중부양을 하며 이 세계를 내려다본다. 꿈 같은 일이었다. 눈을 감으면 그 꿈결 같은 공기를 만끽하던 그 첫 번째 관람체험이 아직도 생각난다. 내 생각에 < 이티 >는 영화사상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영화이며, 외계에서 온 생명체의 마음에까지 동화시키는 거의 유일한 영화이다. 난 관객의 감정 컨트롤을 이렇게까지 잘하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즐거움과 슬픔, 공포와 불안을 요리조리 오가는 이 영화의 연출에는 경외감 마저 든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엘리엇이라는 소년에 동화되었다. 몇 년 뒤에 봤을 때는 이티에 감정이입이 되었고, 그다음엔 열쇠남(피터 코요테)에 공감했다. 지금은 소년의 엄마에 정이 간다. 이런 식이다. 언제나 다른 각도에서 영화를 보게 만드는 힘으로 < 이티 >는 2016년 여기까지 왔다. 또 한 번 영상자료원 스크린에 도착할 이티를 생각하니, 또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모른다. 3. 돌이켜 보니, 애초에 설렘이라는 감정이 있었다. 엄마의 손가락 사이에서 시작된 영화 관람 모험이,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어린 세대들은 어떨까? 그들만의 레전드가 따로 있을 것이고, 생각만 해도 설레는 영화 목록 또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른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여기, 이 영화 리스트가 정답이다. 이번 기획전이야말로 당신을 다시 설레게 할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른 세대에게는? 내가 보증한다. 이 리스트는 단순한 추억거리가 아니다. 영화 각각의 흥분지수가 워낙 높아서 2016년 관객들에게도 먹혀들 것이 확실하다. 그러니 뭘 해야 할까? 꿈과 모험과 낭만이 가득한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지하 1층으로 지금 당장 달려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