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 감독
- 오스버트 파커
- 제작년도
- 2007
‘~을(를) 위한 선’이라는 제목이 붙은 백남준 의 작업은 1961년부터 1964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가장 먼저 선보인 작업은 <머리를 위한 선>(1961)으로, 작곡가 라 몬테 영(La Monte Young)이 쓴 퍼포먼스 스코어 <구성 19 #10 밥 모리스에게 Composition 19 #10(to Bob Morris)>에서의 지시문 “선을 그리고 그것을 따라가라”를 백남준이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잉크를 머리에 묻혀 길이가 긴 종이에 선을 그리는 퍼포먼스였다. 이 외에도 사람 머리 조각을 쇠사슬로 매달고 신어볼 수 있게 만든 <걸음을 위한 선>(1961), 거름 체에 물건을 매달아 악기처럼 소리를 내 볼 수 있도록 한 <손을 위한 선>(1961), 슬리퍼, 양철 주전자, 열쇠, 나무 인형 등 잡다한 사물을 줄에 매달아 바람에 의해 서로 부딪히게 만들어 풍경처럼 소리를 내게 만든 <바람을 위한 선>(1963)과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물을 설치한 후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한 <코를 위한 선>(1963), 검은 TV 화면 가운데에 가늘고 긴 흰색 세로줄이 나타난 < TV를 위한 선 >(1963) 등등이 있다. 이 작업들이, 그리고 백남준이 선 사상과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을뿐더러 그의 예술적 실천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리 유용한 접근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대부분의 작업이 전시되었던, TV를 처음으로 전시장 안에 들여옴으로써 백남준을 유명하게 만든 부퍼탈의 파르나스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을 떠올려 보자. 이 전시의 독특함은 작업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었다. 전시의 제목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그가 원했던 것은 ‘음악’을 ‘전시’하는 것이었던 듯한데, 관객은 전시장에 놓인 각종 작업을 직접 다루고 소리를 내 보면서 경험할 수 있었다. 음악을 가만히 앉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로 보여주고자 했던 인터미디어적 특성, 작업에 대한 자유로운 경험과 자율적인 의미 생산에 대한 강조. 백남준은 1962년 갤러리스트 롤프 예를링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전시가 “회화나 조각이 아닌 ‘시간-예술’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음악이 그러하듯 시간을 통해서 가능한 미적 경험이었고 그리하여 전시장에서의 작품이란 관객의 시간과 상호적일 수 있는 장치였다. 그림 1: <흰색 회화>(1951) 앞에 앉아 있는 라우센버그 < 영화를 위한 선 >(1962-64)은 ‘비어 있는’ 필름의 프로젝션이다. 즉,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리더 필름을 영사기에 넣고 빛으로 쏴 흰 화면을 만든다. 이 화면 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필름에 난 스크래치나 묻어 있는 먼지 때문에 무언가가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것뿐이다. 일반적으로 필름 프로젝션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의 형식과 내용은 어디에도 없는 이 반영화(antifilm)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존 케이지는 이미지 없이 프로젝션 되는 <영화를 위한 선>을 보고 라우센버그의 <흰색 회화 White Painting>(1951)를 떠올렸다고 한다. 케이지가 라우센버그의 회화에 영향을 받아 <4분 33초>(1952)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라우센버그는 “캔버스는 절대로 비어있지 않다”라고 믿었고, 케이지는 “소리는 언제나 존재한다”라고 말하며 이에 응답했다. 그림 없는 회화, 소리 없는 음악, 그리고 이미지가 없는 영화. 서로 상이한 매체지만 이들은 모두 비어있는 것이자 가득 찬 것에 대한 실험이었다. 라우센버그가 시각의 영역에, 케이지가 소리의 영역에 있었다면, 유령과 같은 이미지가 물러난 백남준 의 화면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시간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기대되는 서사가 아니라 영화를 구성하는 물적 조건인 기계 장치가 만들어내는 시간은 투명하다. 볼 것 없는 화면과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소리 앞에서 관객은 자기 자신의 시간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우게 된다. 백남준은 기본적으로 지루함의 미학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는 지루함이 발생할 때 경계가 사라지는 일종의 미학적 순간이 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루함은 흥미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이기도 하다. ‘음악의 전시’ 서문에 백남준은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러니 해보라. 처음에는 (아마) 흥미롭겠지만 나중에는 지루해질 것이다. 견딜 것! (아마) 다시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지루해질 것이다. 견딜 것!” 백남준이 보기에 영화라는 것은 시간을 구조화하는 주요한 시간 기반 매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드러내기 위해 영화를 지배하던 형식과 내용이 직조된 기존의 구조를 제거해야만 했을 것이다. < 영화를 위한 선 >이 1960년대에 등장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테다. 60년대는 전반적인 모든 예술의 영역에서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대한 급진적인 대안적 실천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로버트 모리스는 1961년 <두 개의 기둥 Two Columns>을 만들어 마이클 프리드가 ‘연극성’이라고 폄하한 바로 그 전시장에서의 경험, 현상학적 미학을 강조한 미니멀리즘의 시작을 알렸다. 루시 리파드는 개념 미술의 맥락에서 미적 오브제가 사라져가는 60년대의 경향을 가리켜 ‘비물질화’라는 용어를 그의 1973년 저서에서 사용한다. 1958년 1월, 이미 앨런 캐프로는 「아트뉴스」지에 ‘잭슨 폴록의 유산’이라는 글을 발표하며 삶의 영역으로 확장된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말했고 플럭서스 또한 마찬가지로 예술과 삶의 경계를 지워 예술을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다다에 뿌리를 둔 플럭서스는 단순함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다양한 방식으로 ‘DIY(Do-It-Yourself)’ 미학을 전파했다. 여기에는 1950년대에 존 케이지가 탐구한 불확정성이라는 개념이 깔려 있다. 영화의 영역에서 또한 대단한 에너지를 지닌 움직임이 있었다.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시네마를 중심으로 아방가르드 영화가 활발히 전개된 것이다. 1962년 23명의 독립영화 감독이 모여 뉴 아메리카 시네마 그룹이 정식적으로 조직되었는데 이들이 적극적이었던 것은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영화를 유통시키는 대안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조나스 메카스가 1964년 세운 필름메이커스 시네마테크는 당시 등장하던 영화와 비디오 예술 실천을 위한 중요한 장소였다. 이곳은 시각예술과 퍼포먼스가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는 곳이 되었고, 다양한 방식의 전시와 유통을 통해 주류 예술 밖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이곳에서 영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방식들이 실험되었다. 그림 2: 1965년 10월 28일자 「빌리지 보이스」 1964년 뉴욕으로 이주할 당시 백남준 의 여행용 비자를 위한 스폰서가 바로 메카스였다. 메카스는 플럭서스의 핵심 인물이었던 마키우나스와 잘 알고 지냈다. 백남준이 뉴욕에서 처음으로 < 영화를 위한 선 >을 선보였던 것은 1964년 마키우나스가 초대해서 참여하게 된 플럭스홀(Fluxhall)에서의 6주간의 플럭서스 페스티벌(Fully Guaranteed 12 Fluxus Concerts)이었다. 백남준은 4월 25일 다섯 번째 콘서트(Concert No. 5)에서 <피아노를 위한 플럭서스 콘서트 Fluxus Concert for Piano>라는 제목의 작업과 함께 <영화를 위한 선>을 선보였고, 5월 8일 여덟 번째 콘서트(Concert No. 8)에서는 <영화를 위한 선>을 단독으로 상영했다. 브루스 젠킨슨에 따르면, 이 행사에서 <영화를 위한 선>은 “업라이트 피아노와 더블베이스가 놓인 다락 공간의 전면에 위치한 가정용 영화 스크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크기로 상영되었다. 1965년 11월 2일에는 조나스 메카스가 필름메이커스 시네마테크에서 만든 행사 ‘뉴 시네마 페스티벌Ⅰ’에서 <영화를 위한 선>을 선보였다. 다케히사 고수기는 이 행사에서 백남준이 노출된 빈 필름과 노출되지 않은 빈 필름 두 가지 버전으로 스크리닝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라이브 퍼포먼스를 결합시켰다고 회고한다. 피터 무어가 촬영한 <영화를 위한 선>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진이 바로 이 행사에서의 기록이다. 이 사진을 보면 백남준은 <영화를 위한 선>이 상영되는 스크린을 마주하고 서 있다. 한 해 전의 상영과는 달리 스크린의 크기가 훌쩍 커졌다. 그는 영사기와 스크린 사이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화면을 드나드는 간단한 행위를 수행했는데, 이는 퍼포먼스라기보다는 <영화를 위한 선>에 대한 백남준 자기 자신의 관람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영화의 미니멀리즘적 경험인 것이다. 메카스는 「빌리지 보이스」에 다음과 같이 썼다. “백남준의 (시네마테크에서의) 저녁을 보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라 몬테 영, 스탠 브래키지, 그리고리 마르코폴로스, 잭 스미스, 혹은 (의심의 여지 없이) 앤디 워홀의 예술처럼, 그의 예술은 천 년 동안 이어진 미학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다른 고전적인 예술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분석되고 경험된다. (...) 빛이 이미지가 된 자리에 이미지 자체를 없애버렸다.” 그림 3: 플럭스키트, 1965 그림 4: 플럭스키트 안의 <영화를 위한 선> 패키지 < 영화를 위한 선 >이 언제 최초로 만들어졌는지는 모호하다. 「플럭서스 Etc: 질베르트 & 릴라 실버만 콜렉션」에 따르면 <영화를 위한 선>이 포함된 백남준 의 필름 스크리닝이 1962년 12월 파리의 학생과 예술가를 위한 미국인 센터(American Center for Student and Artists in Paris)에서 있었고, 마키우나스 또한 「필름 컬처」 1966년 겨울호에 <영화를 위한 선>의 제작연도를 ‘1962-1964’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작업은 제작년도를 표기하기에 무척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영화를 위한 선>의 필름은 이후 여러 버전으로 제작되어 유통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연 이 작업의 핵심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생필름을 프로젝션하는 것이라면, 과연 이 작업의 요체는 필름일까? 백남준이 사용했던 바로 그 원본 필름이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작업이 제공하는, 백남준이 고민했던 시간에 대한 경험이 중요한 작업일까? <영화를 위한 선>은 형식과 그것이 놓이는 맥락이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무엇이라 규정지을 수 있는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1962년의 상영에 대해 케이지는 “1시간 길이의 이미지 없는 필름”으로 기억했으며, 메카스는 시네마테크에서 16mm필름으로 30여분 길이로 상영했다고 밝힌다, 여기에 더해 마키우나스가 플럭서스의 오브제와 인쇄물을 보급하고 유통시키기 위해 DIY 버전으로 만든 에디션 플럭스키트(Fluxkit, ‘A’ 카피와 ‘B’ 카피 모두 1965년 제작) 이후에는 <영화를 위한 선>이 주로 루핑으로 상영되었음을 상기해보면(이는 유통을 위해 작은 크기의 패키지로 제작된 탓에 필름의 길이가 짧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업의 정해진 상영 방식은 없는 듯하다. 이 말은, <영화를 위한 선>의 물질적 상태가 정해진 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영화를 위한 선> 단 한 작품에 대한 연구를 통한 전시를 기획하고 이에 관련된 책 「Revisions: Zen for Film」을 펴낸 한나 횔링이 다루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그는 <영화를 위한 선>을 전시장에서 봤던 세 번의 경험을 떠올리는데, 한번은 필름 프로젝터로, 한번은 디지털화된 이미지의 프로젝션으로, 한번은 필름이 담긴 캔이 유물처럼 전시되어있는 경우였다. 그는 작품이 여러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러한 상태, 계속적으로 재물질화 되고 관객의 참여 또한 그 의미가 갱신되는 이러한 상태가 <영화를 위한 선>의 복잡하고 흥미로운 점임을 얘기한다. 마키우나스는 플럭서스의 이벤트를 조직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데, 영화의 문화와 이것을 유희적으로 즐기는 데 관심이 많았다. 플럭서스의 활동을 영화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하고자 한 그의 노력 덕분에 플럭서스 그룹은 플럭스필름(Fluxfilm)라는 이름 아래 많은 필름 작품을 만들어냈다. 마키우나스는 1962년부터 1970년 사이에 백남준 , 오노 요코, 벤 보티에, 폴 샤리츠 등 플럭서스 그룹에서 제작한 영화 37편을 모아 플럭서스 앤솔로지(Fluxus Anthology)를 편집했는데, 그 첫 번째(Fluxfilm No.1)가 바로 < 영화를 위한 선 >이다. 이 버전에서 <영화를 위한 선>의 러닝타임은 7분 58초이다.(플럭서스 앤솔로지의 전작은 모두 우부웹에서 감상할 수 있다. http://www.ubu.com/film/fluxfilm.html). <영화를 위한 선>의 16mm 버전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아카이브 형태로 수장고에 보존 중이다. 질베르트 & 릴라 실버만 플럭서스 컬렉션에 포함된 이 필름은 현존하는 필름 중 유일한 극장용의 긴 버전이지만, 이는 더 이상 상영용으로 쓰이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누군가가 뉴욕현대미술관이 소장 중인 <영화를 위한 선>의 이 버전을 대여하고자 하는 경우 미술관은 필름을 대여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크리닝의 개념만을 대여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즉 <영화를 위한 선>을 빌리는 이는 프로젝터를 구비하기만 한다면, 길이를 마음대로 정하여 아무 16mm 빈 필름 리더를 상영에 사용할 수 있다. 최근 뉴욕현대미술관의 정책은 원본 필름을 이 작업의 필수적인 요소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나 횔링은 밝히고 있다. 이는 분명 설치나 참여형 예술, 이벤트로서의 영화, 퍼포먼스 등 최근의 예술 실천뿐만 아니라 디지털 사본이 무한히 증식 가능한 당대의 매체적 조건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일 것이다. <영화를 위한 선>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메인 사진 설명: 피터 무어, <영화를 위한 선> 앞에 서 있는 백남준. 1965년 11월 2일
아마도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대대적인 마틴 스콜세지 회고전을 환영하며, 팬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그의 실패작 두 편을 추천하고자 한다. 이 말에는 어떤 아이러니도 없다. A4 한 장 분량의 소개 글에서 새삼 < 비열한 거리 > < 택시 드라이버 > < 성난 황소 > < 코미디의 왕 > < 좋은 친구들 > < 순수의 시대 >를 언급하는 것은 민망한 지면 낭비다. 그보다는 이럴 때가 아니고서야 언제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을까 싶은 작품, 본다고 한들 누가 뭐 얼마나 얘기할까 싶은 작품, 그러나 널리 알려진 수작들과 마찬가지로 스콜세지를 이해하는 데에 빛을 던져줄 만한 작품 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 뉴욕, 뉴욕 >은 < 택시 드라이버 >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탄 후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오만해진 스콜세지가 매우 방만하게 만든 뮤지컬이다. 스콜세지는 제대로 된 각본 없이 많은 것을 즉흥에 의지해 계속 카메라를 돌렸는데, 처음 편집본에서는 두 주인공이 만나는 첫 장면의 길이만 한 시간에 달할 지경이었다. 그런 방만한 만듦새에다 로버트 드 니로가 재능 있는 트럼펫 연주자로 나와 역시 재능 있는 가수를 연기한 라이자 미넬리를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괴롭히는 진절머리 나는 이야기인데 흥행할 리가 있나. 영화는 대폭 삭제되었고,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나 지미 도일의 패악질을 어떻게든 참아낼 수만 있다면, < 뉴욕, 뉴욕 >은 그렇게 실속 없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광 스콜세지는 여기에서 고전기 할리우드의 뮤지컬에 헌사를 바친다. 여기 나오는 뉴욕은 스콜세지가 나고 자란 비열한 거리가 아니라, 그가 어린 시절 TV로 보고 꿈꾸었을 인공적인 세트 속의 형형색색 아름다운 가짜 뉴욕이다.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연인을 학대하는 남자 예술가의 이야기는 4~50년대의 뮤지컬 <내 꿈은 당신의 것My Dream Is Yours>(1949)이나 <스타 탄생A Star Is Born>(1954)에서 가져왔다. 어쩌면 라이자 미넬리를 주연으로 삼은 것도 한편으로는 고전기 뮤지컬의 대표 감독 빈센트 미넬리와 스타 주디 갈랜드에게 바치는 간접적인 헌사였을지 모른다. 특히 대미를 장식하는 ‘해피 엔딩’ 장면은 50년대 이후로는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MGM 뮤지컬의 화려함을 한껏 뽐낸다. <악대차The Band Wagon>(1953) <파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1951)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1952) 같은 옛 뮤지컬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눈물을 글썽일 만하다. 두 주인공의 권력 균형이 좀 더 맞았더라면, 지미 도일이 그토록 자연재해 같은 인간만 아니었더라면 더욱더 보기 좋은 영화가 되었을 텐데. 그래도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스콜세지는 지미 도일 같은 인간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 덮은 채 ‘해피 엔딩’으로 갈등을 무마할 정도로 몰염치한 창작자는 아니다. 조금만 참아주시기를. < 비상근무 >는 어떤 면에서는 < 뉴욕, 뉴욕 >과 정반대의 상황에 놓인 작품이다. 90년대 초 뉴욕의 야간 근무 구급요원을 다룬 이 영화에서, 스콜세지는 다시 한 번 < 택시 드라이버 >의 세계로 돌아간다. 뉴욕의 밤은 불타는 지옥이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주인공 프랭크 피어스는 그 안에서 구원을 찾아 헤맨다. 단,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 비클이 피로 도시를 정화하고자 하는 복수의 천사라면, 프랭크는 피 흘리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한 명이라도 살리고 싶어하는 성자다. 일종의 과대망상과 강박관념에 빠졌다는 점은 마찬가지일지 몰라도, 그는 스콜세지 영화의 남자 주인공치고는/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것치고는 놀랄 만큼 제정신이다. 여기에 로버트 리처드슨이 촬영한 뉴욕은 마이클 채프먼이 촬영한 <택시 드라이버>의 뉴욕과 마찬가지로 빨갛고 파랗고 노란빛이 어둠 속에 번지면서 화려한 추상미를 자랑한다. 거의 무게 없이 허공을 활강하듯 춤추는 카메라와 빠른 편집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스콜세지의 스타일도 눈을 홀릴 만하다. 스콜세지의 음악 선곡 실력이야, 가장 좋지 않은 영화에서도 빛을 발하는 부분이고. 요컨대 < 비상근무 >는 이번 상영작 중 가장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큰 불편 없이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으며, 눈과 귀를 만족시킬 자극도 충분하다. 그런데 왜일까, < 택시 드라이버 >의 심란함이 빠져나가자 스콜세지의 정수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어쩌면 스콜세지의 정수는, < 좋은 친구들 >에서처럼, 끔찍하지만 누리고 싶은 권력의 세계 앞에 느끼는 매혹과 혐오 모두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 불온한 균형 감각에 있는 것이 아닐까? <비상근무>에서처럼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 채 바라보는 지옥의 풍경은 오히려 관찰자를 게으르고 위선적인 구경꾼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비상근무>는 부재를 통해 거꾸로 스콜세지 영화의 힘이 지닌 성질을 검토하도록 이끈다. 따라서 로버트 드 니로를 비롯한 스콜세지 세계 남정네들의 갖은 난동을 보고 이런 건 정말 싫다고 질색하신 분들께 충심으로 권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싱글들의 푸념은 동서고금을 막론할 거 없이 비슷한 모양이다. 시카고 철도국 개찰구에서 일하는 루시에게도 다가올 연휴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당직을 떠맡게 되었고,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건 고양이 한 마리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낙이 있다면 매일 아침 지나치는 어느 잘 생긴 남자만 바라보는 것뿐인데, 그나마도 짝사랑이라 말 한번 못 붙여본 채 전전긍긍 앓고 있다. 그런 그녀를 하늘도 불쌍히 여긴 걸까. 연휴 아침 불량배들에게 떠밀려 철로로 떨어지는 남자를 보게 된 루시는 빛의 속도로 달려 나가 그를 구하게 된다. 아 위대한 사랑의 힘이여! 그러나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병문안조차 허락되지 않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그만 망상(!) 하나가 입 밖으로 새어나온다. “결혼하려고 했는데..” 옆에서 귀신같이 그 말을 들은 간호사가 면회를 허가하고, 그때 마침 나타난 남자의 가족들에게 루시를 약혼녀라고 소개한다. 아뿔사! 이를 어째. 솔직히 아니라고 고백하려 하지만 남자네 할머니가 심장마비 전력이 있어 더 이상의 충격은 안 된다며 겁을 준다. 더욱이 뒤늦게 나타난 남자의 동생은 그녀가 형 타입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그녀를 의심한다. 아니 솔직해지자. 그는 형수가 될 이 여자가 마음에 든다. 그녀도 그가 싫지 않다. 이게 모두 당신이 잠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산드라 불록과 빌 풀먼 1994년 < 스피드 >로 일약 스타가 된 산드라 블록이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 달달한 홀리데이 시즌용 로맨틱 코미디는 재밌게도 크리스마스와 해피 뉴 이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1995년 4월에 개봉되었다. 그러고도 전 세계적으로 2억불에 가까운 흥행을 기록하며 그해 깜짝 히트작이 되었다. 남자 주연을 맡은 빌 풀만은 미소가 멋진 배우였지만 당시 상업적인 필모그래피와는 거리가 멀었고, 제작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1,700만 달러짜리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피터 갤러거나 피터 보일, 잭 워든과 글리니스 존스 등 뛰어난 조역진들의 포진과 대작들을 피해 한참 연애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비수기 봄철에 개봉해 입소문을 타고 성공했다. 산드라 블록은 이 영화로 생애 최초 골든 글로브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후 특유의 친근하면서도 털털한 분위기를 이어가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나갔다. 감독 존 터틀타웁은 전작 < 쿨러닝 >으로 주목받기 시작해서 경력의 대부분을 디즈니에서 보낸 인물로, 그 영향 때문인지 주로 휴먼 코미디에서 장기를 보여 왔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그런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유쾌한 소동극이 잘 어우러진 작품으로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맥을 충실히 따르며 감미롭고 착한 서민 버전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행복한 이야기에 아름다운 음악이 빠져서는 곤란, 80년대 중반부터 많은 종류의 할리우드 코미디를 책임졌던 랜디 에델만이 크레딧에 올라 상큼 유쾌 발랄 3종 세트의 음악을 선사하고 있다. 랜디 에델만 Randy Edelman 지금은 영화음악가로 정평이 났지만, 사실 랜디 에델만은 70년대 영미권 팝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싱어 송 라이터였다. 신시내티 음악대학 졸업 후 소울의 황제 제임스 브라운의 킹 레코드 편곡자로 들어가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피아니스트 겸 음악감독으로 활동했고, 동시에 당대 히트 가수였던 카펜터스와 배리 매닐로우, 프랭크 자파, 블러드 스웨트 앤드 티어스와 올리비아 뉴톤 존 등에게 곡을 써주며 유명해졌다. 자신 또한 72년부터 79년까지 6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수준급의 AOR(Adult Oriented Rock)을 들려줬으며, 천재 여성 싱어 송 라이터인 재키 데샤논과 결혼하는 등 안팎으로 화제를 낳았다. 이후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에 몰두한 그는 85년부터 92년까지 인기리에 방영된 TV시리즈 < 맥가이버 >의 테마로 주가 폭등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일련의 코미디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할리우드 주류영화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코미디 외에 액션과 스릴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에서도 그 역량을 발휘했으며, 무엇보다 대중음악에서 탄탄히 다져진 매력적이고 친근한 멜로디 라인에 깔끔하고 인상적인 편곡으로 영화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나 < 라스트 모히칸 >이나 < 게티스버그 >, < 드래곤 하트 > 등과 같은 스코어들은 시상식이나 방송에서 인기리에 사용되며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익히 알고 있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랜디 에델만의 작품들 크리스마스 영화답게 본편 내 캐럴이나 홀리데이 시즌 송이 많이 삽입되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오로지 랜디 에델만의 스코어만 떠오를 정도로 그가 맡은 음악의 위력은 대단하다. 풀 오케스트라를 활용하기보다 가벼운 팝적인 어프로치의 컨템포러리 스타일로 유쾌한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무엇보다 귀에 쏙 파고드는 깜찍한 멜로디의 테마들이 로맨틱 코미디에 잘 어울린다.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테마는 모두 세 곡으로 친절하게도 사운드트랙 1, 2, 3번에 순서대로 자리 잡고 있다. 제일 먼저 활력 넘치는 건반에 리드미컬한 스윙감이 결합돼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잡는 ‘Opening’과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엉뚱하고 의뭉스러운 유쾌함을 선사하는 ‘Peter’s Family’, 그리고 플루트와 피아노로 가슴 시린 외로움과 고독을 스르르 녹여주는 따뜻한 선율의 ‘Love Theme’가 바로 그들이다. 나머지는 이들 테마들이 다양하게 변주되거나 합쳐지면서 색다른 분위기와 긴장, 드라마를 생성해낸다. 스트링과 목관악기를 중심으로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과 역동적인 사건들을 묘사해 가는데,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랜디 에델만은 전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링 작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 외에도 사건이 벌어지는 마법의 순간을 담아낸 ‘An Untimely Accident’에선 변화무쌍한 다이내믹함을, 루시의 플로렌스에 대한 꿈이 담긴 ‘Dreaming of Florence’에선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사운드를 선사하는 등 다양한 시도도 선보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운드트랙에 삽입곡들은 전혀 실려 있지 않은데, 이는 영화 개봉 시기가 봄철이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때가 때이니만큼 영화상에서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관련 곡들을 소개해보면 초반 루시가 홀로 궁상맞게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밀 때 블루지한 코코 테일러의 ‘Merry Merry Christmas’가 흐르고 있고, 가족의 초대를 받아 집 밖에서 망설이다 들어갈 때는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Winter Wonderland’가 겨울의 정취를 느끼게 만든다. 그 뒤를 이어서 가족사진 찍을 때도 역시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버전의 유명한 시즌 송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가 나지막이 깔리며, 가족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장면에선 엘라 피츠제럴드가 고혹적인 목소리로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를 불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친구가 연 파티에서는 의미심장하게도 두 남녀를 위해 Li’ll Ed and The Blues Imperials의 신명나는 로큰롤 ‘I’m your Santa’가 배경에 깔린다. 그러나 이런 노래들을 모두 지워버리는 랜디 에델만의 로맨틱한 스코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로, 싸늘해진 겨울 가족과 연인의 온기를 되찾게 만드는 반가운 크리스마스 선물 같다. 이후 그는 < 식스 데이 세븐 나잇 >, < 서바이빙 크리스마스 >, < 27번의 결혼 리허설 >, < 프로포즈 데이 > 등에서 자신의 진가를 다시 한 번 발휘했다. Opening Track List 1. Opening 2. Peter's Family 3. Love Theme 4. An Untimely Accident 5. Phone Tag 6. Dreaming of Florence 7. He's Alive 8. Riverside Walk 9. A Testacular Situation 10. Jack and Lucy 11. Leave It to Sol 12. The Dream is Over 13. Sound Advice 14. Tear Jerking Tale 15. Bumpy Encounter 16. A Happy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