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모를 찾아서
- 감독
- 앤드류 스탠튼, 리 운크리치
- 제작년도
- 2003
- 출연
- 알버트 브룩스, 엘렌 드제너레스, 알렉산더 굴드, 윌렘 데포, 브래드 가렛, 앨리슨 재니, 오스틴 펜들튼, 스티븐 루트, 비키 루이스, 조 랜트, 제프리 러쉬, 앤드류 스탠튼, 엘리자베스 퍼킨스, 니콜라스 버드, 밥 비터슨, 배리 험프리즈, 에릭 바나, 브루스 스펜스, 빌 헌터, 루루 에벨링, 조단 랭프트, 에리카 벡, 에릭 퍼 설리반, 존 라첸버거
벌써 12년 전이다. < 몬스터 주식회사 >를 보면서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대기업 ’몬스터 주식회사‘는 참 깜찍한 설정을 지녔었다. 괴물들이 인간 아이들에게 겁을 주고, 그 아이들의 비명을 밤새 수집해 에너지를 만드는 비명 발전소였으니까. 그 와중에 최고 엘리트 사원인 털 뭉치 ’설리‘와 파트너 ’마이크‘, 인간 꼬마 부의 뭉클한 교감은 더없이 사랑스러웠고, 몬스터 주식회사 직원들의 과도한 실적경쟁은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12년 후.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과열 경쟁 속에서 픽사는 <몬스터 주식회사>의 프리퀄 < 몬스터 대학교 >를 내놓았다. 마치 일에 찌든 직장인들이 풋풋했던 대학 시절을 그리워하듯. < 몬스터 대학교 >의 핵심은 먼 훗날 ‘고수’가 될 설리와 마이크, 그들도 한때는 대학생이었고, 겁주기를 배웠다는 얘기다. 몬스터들의 대학 생활을 아이비리그 캠퍼스 생활에 적용시켜 캐릭터들의 배경을 쌓아가는 솜씨가 맛깔스럽다. 누구보다 열심히 겁주기 공부를 하지만 웃기게 생겨서 문제인 외눈박이 공부벌레 ‘마이크’. 겁주기로 뼈대 굵은 가문 출신에다가 생긴 것도 무서워서 별 노력을 않고도 주목받는 ‘설리’. 극과 극의 두 괴물이 4년제 명문 사립대학 ‘몬스터 대학교’(이하 ‘몬대’)의 신입생이 되어, 겁주기 전공 수업에서 처음 만난다. 훗날 명콤비가 될 두 라이벌이 만나기만 하면 싸우면서 드러나는 ‘몬대’ 생활의 면면은 재치가 넘친다. 몬대의 캠퍼스, 강의실, 운동장, 도서관, 남녀 클럽 등등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물론, `몬스터 리그‘의 라이벌 대학 공포공대와의 신경전, 그리고 학내에서 벌어지는 ’겁주기 대회‘까지. 대학 생활의 모든 것이 몬스터 세계에 적용되는 것이다. `몬대’의 전반적인 모습은 미국 동부 대학인 하버드와 MIT, 스탠포드, UC버클리의 캠퍼스 모습이 바탕이 됐다. 드림웍스나 블루 스카이 등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도 물론 이런 치밀한 자료 조사와 노력을 한다. 다만, 현실 세계의 리얼리티를 애니메이션 속 세계에 세세하게 적용하는 부분에서 픽사 애니메이션이 지니는 독특한 정서가 있다.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 지나가 버린 것 대한 그리움’이다. 그리고 그 정서야말로 픽사 애니메이션의 정수다. 장난감과 놀던 유년 시절(< 토이 스토리 >,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삶(< 월.E. >), 되찾아야 하는 부자 관계(< 니모를 찾아서 >)처럼. < 몬스터 주식회사 > 직원들이 겁주기 초과근무까지 하느라 잃어버린 대학생활의 낭만은 신선하고 즐겁다. 신입생 때부터 겁주기 스펙을 쌓아야 하는 몬대생들의 고충이 현실의 대학생들 못지 않지만, 그래서 더 유쾌하고 뭉클하다. 대학생활에서 사회생활까지 이어지는 타고난 능력과 노력의 차이, ‘겁주기’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해서 대학 졸업장이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한 논란, 몬스터도 대학을 다녀야 인정받는 사회의 허세도 곰곰이 되짚게 된다. 12년이 지났어도 늙지 않은 ‘설리’ 역 존 굿맨과 ‘마이크’ 역 빌리 크리스탈의 목소리 또한 한몫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픽사 스토리의 탄력성이랄까. 마이크와 설리가 어떤 사회생활을 하는지 아는 입장에서도 < 몬스터 대학교 >의 스토리는 매력적이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에 리얼리티와 상상을 결합해 새롭고도 팽팽하게 끌어가기 때문이다. ‘설리’를 포함한 괴물들의 털이 얼마나 부드럽고 생생한가 하는, 기술의 완성도는 부럽지 않다. 역시 부러운 건 스토리를 만드는 상상력이다.
여름이 늘 그렇지만, 블록버스터 사이에 쏙쏙 박힌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들의 전쟁이 또 시작되고 있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3D 장편 애니메이션들이 전면전은 비켜가면서 매달 한두 편씩 극장에 투하되는 상황이다. 지난 5월 말 선제공격을 감행한 드림웍스의 < 드래곤 길들이기 >에 이어 7월 1일 < 슈렉 포에버 >이 개봉했고, 7월 22일과 29일엔 차례로 팬층이 두터운 두 편의 일본 애니가 아이들을 노린다.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새 극장판 < 명탐정 코난 : 천공의 난파선 >과 < 도라에몽 : 진구의 인어 대해전 >이다. 정식 개봉작은 아니지만, 7월 15일부터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선 ‘건담 특별전’이 열린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극장판의 걸작들을 8편 만날 수 있다니 ‘오덕’은 아니지만 흥미로워 보인다. 8월엔 픽사의 전설을 이어갈 < 토이 스토리 3 >, 린타로 감독의 3D 애니메이션 < 요나요나 펭귄 >이, 9월까지 가면 < 아이스 에이지 > 시리즈를 만들었던 블루 스카이의 < 슈퍼배드 >가 있다. 그 와중에 일본 현지에선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 <더부살이 아리에티>가 7월 17일 개봉한다. 애니메이션 명가들이 거의 여름을 찜쪄 먹을 기세. 그런데 가만히 이 리스트를 쳐다보면 눈길을 끄는 게 있다. 감독들의 크레딧 때문이다. 개봉했거나 대기중인 애니메이션들 속에서 세월과 성장, 변화가 보인다. 먼저 < 드래곤 길들이기 >의 경우 8년 전 <릴로 앤 스티치>라는 걸작을 만들었던 크리스 샌더스와 딘 데블로이스가 연출을 맡고 있다. 드림웍스는 디즈니 출신의 이 두 감독을 데려와서 그동안 말발로 시건방을 떨던 기조를 버리고, 서사와 3D의 만남을 성공적으로 완성시켰다. 활력은 있으나 품위는 없었던 유머를 개조했다고 할까. 구관이 명관. 오랫동안 숙련돼온 장인들의 기술과 경험이 발휘된 측면이 있다. 70이 다 되가는데 아직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게 신기한 린타로 또한 노장 투혼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에선 세대교체와 색다른 변화의 흔적이 역력하다. < 슈렉 포에버 >의 경우 < 듀스 비갈로 > < 스카이 하이 > 등 실사 코미디 영화를 연출했던 마이클 미첼이 감독을 맡고 있다. 하기야 < 인크레더블 > < 라따뚜이 >의 감독인 픽사의 브래드 버드가 실사영화 < 미션 임파서블 4 >의 연출을 맡는다니 그 반대도 가능할 일. 코미디에 강한 실사 감독의 기용은 정체된 시리즈의 탈출구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효과가 있었는지, <슈렉 포에버>는 제 무덤을 파던 < 슈렉 3 >때보다 나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2편 이후 11년만에 개봉하는 < 토이 스토리 3 >에선 픽사의 세대교체가 눈에 띈다. 연출을 맡은 리 언크리치는 < 토이 스토리 2 >와 < 몬스터 주식회사 > < 니모를 찾아서 >의 공동 감독 출신. 재탕, 삼탕이라는 비난이 있긴 해도 <토이 스토리 3>는 픽사의 간판 브랜드인데, 여기에 꾸준히 양성해온 내부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꽤 부럽다. 픽사 내부에서 훈련과 경험을 축적, 계승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 아이스 에이지 > 시리즈로 픽사, 드림웍스와 함께 할리우드 애니의 ‘빅 3’를 구성해온 블루 스카이의 신작 < 슈퍼배드 >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감독을 영입, 새로운 기운을 수혈하려 애쓰는 중이다. 90년대 초부터 이미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의 세대교체를 고민해온 스튜디오 지브리는 최신작 <더부살이 아리에티>의 연출을 36살의 젊은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에게 맡겨 화제가 됐었다. 96년에 지브리에 입사, 애니메이터로서는 < 모노노케 히메 > 때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했던 요네바야시는 지브리의 거대 재앙이었던 <게드 전기>의 미야자키 고로(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에 비하면 훨씬 기대 받고 있다. 미야자키가 좋아했던 영국의 아동문학 <마루 밑의 소인들>이 원작이고, 지브리 특유의 캐릭터 디자인이 여전한 까닭에 얼마나 신선할 지는 미지수지만, 지브리의 정신을 이어가는 방식의 하나로 보이긴 한다. 세대교체와 노장투혼은 월드컵에만 있는 게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특히나 가장 크리에이티브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꼭 필요하다. 전통을 이어가는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의 거대 경연장에서, 우리는 너무 단발성 기술력에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할리우드나 일본의 스튜디오 시스템을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배울 건 있다. 눈에 불을 켜고 3D만 쫓아다니지 말고, 정신과 경험을 이어받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 문화를 육성하는데 돈 좀 쓰면 안 될까.
극장에서 개봉되는 애니메이션의 이야기 구조는 대부분 두 가지 패턴이 많다. 첫째는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든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을 하는 경우이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나 ‘ UP ’과 ‘ 드래곤 길들이기 ’가 그렇다. 현실에서 판타지로 가느냐 아니면 원래부터 거기 사는 주인공이냐 차이는 있지만 어째든 판타지 세계가 중요한 것이다. 두 번째는 전부 동물 친구들이 나오는 것이다. ‘ 니모를 찾아서 ’나 ‘ 아이스 에이지 ’ 등등이 그렇다. 아들을 구하러 가건 따듯한 곳을 찾아가건 이 세계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게 모든 등장인물이 동물이다. 물론 두 가지를 배합한 경우가 가장 많다. 그러니까 동물들이 나와서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하는 이야기. ‘니모를 찾아서’의 ‘바다’도 ‘ 쿵푸 팬더 ’의 ‘중국’도 사실은 판타지 세계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안 그런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다큐멘터리 형식의 애니메이션인 ‘ 페르세폴리스 ’와 ‘ 바시르와 왈츠를 ’ 같은 애니메이션에는 판타지도 동물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보통의 상업적인 성과를 노리는 작품은 이 두 가지 패턴이 많다. 왜 이런 단순한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패턴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최대한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강점을 추구해서 발전한 결과인 듯하다. 결국은 가족관객을 대상으로 볼거리와 재미를 실사 영화와 다른 측면에서 구현하기 위해 고민하다보니 흥행작품들을 뽑아보면 이런 분류가 가능해진 것 같다. 어째든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다 보면 싫든 좋든 판타지와 동물(의인화)이라는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왠지 판타지와 동물을 빼고 기획을 하다 보면 “이건 실사 영화 같잖아!” 라든지 “타깃 연령이 누구야?”라는 공포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주인공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이제 주인공이 볼거리와 모험이 있는 어디로인지 가야할 것 같은 대......”라는 기분이 들 때 시나리오가 막히고 만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 한국의 현실을 놓아두고. 왠지 나는 억지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이 싫다. 여기도 사실은 재미는 없지만 모험은 많다. 25일까지 카드 값을 마련해야 되고 어머니는 곧 임플란트를 하셔야 하고 내일 모레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납품해야 하는데 친한 친구에게서 힘든 일이 있어서 술 마시자고 전화가 온다. 정말 스릴 있게 느껴지지만 시나리오에 쓸 수는 없으니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특별한 세계로 가는 이야기를 만든다. 하지만 나는 그 세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기에는 현실의 인간 삶의 어떤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면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을 동물 친구로 바꾼다. 시나리오가 다시 시작된다. 내 주인공은 대관령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얼룩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학여행을 온 입시에 시달리는 도마뱀 여고생에게 반하게 된다. 그래서 일단 친해질 요량으로 막 짜낸 시선한 우유를 한잔 권하면서 “공부하는 거 힘들죠?”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수학은 좀 힘들지만 이런 시간도 다 추억이라고 생각해요.”라며 해맑게 웃는 여고생. 둘은 점점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유를 짜낸 내 주인공은 수소다.) 그렇게 짧았던 만남은 아쉽게 끝나고 도마뱀 여학생은 서울로 돌아가고 얼룩소는 사랑을 위한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며칠 후 다시 읽어 보니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네. 얼룩소와 도마뱀 여고생의 종족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누가 보고 싶을까? 그런데 원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였지?”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문제는 왜 생기는 걸까? 판타지 세계를 설정하는 것은 결국 볼거리와 상징의 문제이다. 볼거리의 문제만 생각해서 판타지를 설정하면 결국 빈약한 세계관과 상징으로 관객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모험이 되는 것이다. 또 의인화는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지나치게 주제를 한정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작품의 예술성을 떨어뜨리기 쉽다. 이런 문제로 어린이에서 어른까지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는 어렵다. 로봇에다가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잘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픽사나 판타지 세계를 등장시키면서도 관계와 성장에 관한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들을 보고 있노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FC바르셀로나 축구팀을 보고 있는 심정이 되어버린다. 세계의 벽은 높다. 히딩크 감독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한국애니메이션의 문제는 이야기의 빈곤이 아니라 체력이라고 말한다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당장 지옥 훈련을 할 텐데. 이야기의 문제는 사실 어떻게 훈련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빈약한 서사의 문제는 무엇일까? 결국은 감독이 시나리오를 써서 생기는 문제일까? 그렇다면 전문가에게 맡기자. 하지만 전문가를 찾을 수 없다. 왜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2년에 한편 나올까 말까 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전문 시나리오 작가가 전업하지 않고 남아 있을 리가 없다. TV용 애니메이션 전문 시나리오 작가도 적은 마당에. 그렇다고 실사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맡기는 것도 좋은 선택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실사영화는 어떤 주인공도 대부분 인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간의 특징이나 행동은 그런대로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 의 유바바나 접히면 상자가 되어버리는 월E 의 성격묘사를, 업(UP) 의 천방지축 새 캐릭터의 특징을, 디자이너와 애니메이터가 관여하지 않고 시나리오 작가 어떻게 혼자 쓸 수 있을까? 결국은 초기 기획 단계부터 스토리텔링에 재능이 있는 감독과 캐릭터 디자이너, 핵심 애니메이터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이해하는 시나리오 작가가 함께 많은 회의를 거쳐 개발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문제는 그런 자본적 여유와 인력을 제작사가 갖추기에는 한국은 시장이 작고 열악하다. 픽사도 토이 스토리를 만들기까지 스티브 잡스의 지원 하에서 10년이 걸렸다. 어째든 환경이 안 된다면 그래도 만들고 싶다는 사람이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판타지와 의인화로 애니메이션적인 재미를 주면서도 현재의 한국과 한국인과 끈을 놓지 않는 이야기를 만드느냐는 것이다. 판타지가 뜬금없지 않고 우리 삶의 축약된 어떤 단면을 보여주며 또 의인화된 캐릭터들이 유치하게 보여서 작품의 문학성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나에게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재능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창작자라면 다들 비슷하겠지만, 한국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으며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드는 것. 그걸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