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둘이서
- 감독
- 박윤교
- 제작년도
- 1976
- 출연
- 백윤식, 서미경, 방희, 남희, 이현숙, 김신명, 방수일, 김홍량, 허영, 안진수, 김용학, 임해림, 주용남, 임성포, 양일민, 최일, 박종설, 나갑성, 태일, 이승열, 방일수
사진: 필자 제공 회생(回生) < 회생 >(2026)은 제목 그대로 회생(回生)에 관한 영화다. 거의 죽어가다가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그 지난한 과정이 얼핏 담겼다. 곡절을 겪는 메마른 인물들이 언젠가 흠씬 웃기도 하고 때로는 비난이 칭찬으로 바뀌기도 하며 무겁던 세속도 일순간 탈속으로 변하기도 한다. 언뜻 회생이란 것이 타자의 구원이라거나 은총을 매개하여 전제하는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변화란 다만 자신의 고통만을 전제한다. 구제를 자처하거나 이에 도통하려는 타자의 개입은 별개의 문제이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주체는 나 자신 말고는 없다. 살아내는 것도 스스로 살아내는 것이고 스스로를 사지로 내모는 것도 나 자신이다. 그간 마셔보지 못했던 환희의 숨이 내 몸에 스며드는 순간에 선행되는 것은 다름 아닌 숨 끊길 듯 숱하게 비애를 몰아쉬었던 자신의 고통이다. 날마다 심폐소생을 받아야 할 만큼 저마다 꽉 막힌 삶을 살아가고 있으나 겨우 숨 붙들고 그런대로 곧잘 살아가는 이유, 변화의 가능성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 있다. 고통은 변한다. 그리고 변화는 그 대가를 안다. 평상심을 얻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변화는 격정에 쫓기던 시절을 기억한다. 자칫 욕심내거나 성내게 되면 감당 못 할 채무를 떠안는다는 걸 기억한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비범한 나날을 좇으려는 어리석음으로 회생 불가의 지경에 이른다는 걸 잊지 않는다. 그리하여 변화는 괴로움에 급급하여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던 삶의 구체적인 면면에, 평안에 이르기 위한 원리금을 꾸준히 상환하고자 한다. 고통과 격정으로부터 다시 빚 독촉을 받지 않기 위하여 변화는, 주고받음이 정확한 우리 삶에 실재하는 대차(貸借) 관계, 곧 업(業)에 따라 간신히 처신한다. 이러한 변제 행위는 기도가 된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이문재의 시 「오래된 기도」 중 회생한 자가 있다면, 거의 죽어가던 끝에 원인 모를 힘이 생겨 갑자기 살아낸 것이 아닐 것이다. 위와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에 자신을 일일이 맡겨보려는 무의식과 더불어 일상을 껴안게 된 몸이 저절로 평안을 찾아갔을 터이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시기만 해도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걸 한 번 믿어보려 했기에 엉겁결에 회생이란 변화를 맞이한 것이 아닐까. 업(業) <회생>의 영어 제목은 카르마(Karma)다. 그래서 이 작품은 ‘행위’에 관한 영화다. 카르마란 불변의 법칙도 운명도 아니다. 나의 사소한 몸짓과 말씨, 스치는 한 생각으로도 빚어내는 행위들이 언젠가 자기 삶에 크고 작은 굴곡을 남긴다는 오래된 상식에 가깝다. 당장 갚지 못할 금전 채무이든, 오래도록 쌓인 마음의 빚이든 이러한 상식선에서 정확하게 나타나고 또한 사라진다. 문제는 무지(無知)다. 고통의 근원이다. 과도한 빚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파산에 이르기 전까지는 스스로 어떤 행위를 짓고 살아가는지 좀처럼 모르는 것이다. 스스로 사지로 걸어 들어가고 있으면서도 이를 모른 채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끝내 죽는다. 자신의 서슴없는 행위들이 자의에 의한 죽음에 일조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반면 알게 되면, 즉시 멈춘다. 빚에 대한 오해가 깊다. 빚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이는 아군을 향한 오인 사격과 같다. 빚은 다만 출현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너무나 모르고 살았기에 이를 넌지시 일러주고자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고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고 걷기만 해도 남 부럽지 않은 충만에 이를 수 있다는 삶의 신비를 부디 모르고 살지 말라며 삶으로부터 부득이 요청되는 것이다. 빚은 마치 제 할 일을 다한다는 듯 무지와 인위에 허덕이는 이들을 저마다 찾아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결국, 빚은 단지 삶의 불화와 갈등이 몸 밖으로 드러난 통증에 지나지 않는다. 과도한 빚을 진 자가 더 이상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제야 그는 그동안 곪아 있던 속살을 마주한다. 돌연 조급해진 그에게 상처는 안중에도 없다. 애꿎게 자신과 타인을 꾸짖는다. 죄책감은 속살 깊이 파고들어 상처를 더욱 곪게 한다. 그러나 별안간 본모습을 드러낸 빚을 맞이할 수 있다면 기어이 치유의 겨를이 생겨난다. 오랫동안 차마 들여다볼 수조차 없었던 그 환부를 보살필,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때 빚은 짐이 아니다. 새살이 움트는 자리가 된다. 회생은 빚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둠은 다만 빛의 부재이다. 따로 어둠이라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무지는 앎이 비추는 곳에서만 걷히고 빚 또한 회복을 상실한 삶이 드러낸 양태에 불과하다. 불교식 표현을 빌리자면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곧 괴로움과 깨달음은 애초에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깊은 번뇌야말로 삶을 크게 돌이키는 인연이다. 회생이란 삶을 다시 배워가며 보듬어보는 일이다. 회생(懷生) 빚 몇천 몇억 탕감받기 위해 그저 회생절차를 이용하고자 법무사사무소에 구비서류만 툭 내던져놓고 가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살면서 이런 곳에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끝내 통곡을 두고 가시거나 지나온 삶의 회한에 이제는 말조차 잃은 듯 허공만 바라보다 가시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말이 과연 무얼까 고민이 짙었다. 어쩔 줄을 몰랐다. 차분히 말 듣는 것과 맡은 일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말이 있으려나 싶었다. 그런데 마주한 자의 비감을 견디질 못하고 몇 마디라도 건네야 할 것 같으면 사무원으로 일하는 나 역시 법무사인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라 말하곤 했다. 처음 보는 제 앞에서 어렵게 눈물을 보이셨지만 그래도 빚을 갚으며 살아내려는 당신의 모습이 되레 제게는 큰 위로가 된다며. 더는 말을 아끼고 속으로 되뇐다.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당신의 사망진단서와 폐쇄 가족관계등록부 몇 장으로 가족들이 대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당신 스스로 온 것이니까. 그래서 <회생>을 처음 기획하면서 언젠가 완성이 되면 고개 푹 숙이고 있는 분들에게 그저 군말 없이 이런 영화도 있으니 시간 되실 때 한번 보시라 말씀드리고 싶었다. 이 영화가 회생(懷生), 모든 살아 있는 무리, 곧 중생을 위한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순진하고 어리석은 서원이었다는 것을 날마다 절감한다. 예컨대 1999년경 사망한 어머님 생전의 1989년 발생한 은행 채무를 2026년이 되어서도 상속받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채무가 발생한 1989년 이후 30여 년 동안 총 네 차례나 양도된 채권을 최근까지 보유한 대부회사가 2026년 들어 시효연장의 소를 제기했다는 사실을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사람에게 이 <회생>이라는 영화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인간 영혼의 불안을 잠재울 그 어떤 예술과 종교도 그 채무를 대신 없애주지는 못한다. 대물림을 막기 위해서는 시효연장 소장을 송달받은 날부터 14일 안에 추후보완항소를 제기해야 하고, 상속채무의 존재를 알게 된 날부터 3개월 안에 특별상속한정승인심판을 청구해야 한다. 결국 현실의 채무를 해결하는 것은 법률이다. 그렇다고 예술이 무력한 건 아닐 것이다. 영화 < 죽은 시인의 사회 >(피터 위어, 1989)에서 키팅 교수는 “법률과 의술, 사업과 기술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고귀한 일이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라 말하지 않던가. 영화는 상속채무의 대물림을 막아낼 수는 없겠지만, 빚을 짊어진 한 인간을 이해하게 한다. 내면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삶의 목적이다. 금전 채무를 당장 탕감받는다고 해서 삶의 근원적인 병폐가 곧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회생과 파산사건에는 법률대리인을 둘 수 있을지언정, 법적 절차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알 길 없는 내면의 문제만큼은 그 어떤 대리인도 선임할 수 없고 그 어떤 절대자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삶이 요구하는 것은, 그저 자기 마음을 스스로 제때 돌보는 일이다. 마음이 문드러졌다면 그 또한 몸처럼 치유의 대상이 되며, 그 치유에도 적절한 시기와 나름의 절차가 있다. 오랫동안 몸집을 키운 상속채무를 떠안지 않기 위해서는 추후보완항소와 특별상속한정승인심판 청구를 정해진 기간 안에 해야 하듯, 마음이라는 세계에도 놓쳐서는 안 되는 시기가 있다. 적기를 놓쳐버리면 누군가는 끝내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그때 그 마음은 이미 오래도록 무거운 짐에 짓눌려온 육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 사무원으로 일하며 시를 써온 김기택 시인은 마음을 두고 이렇게 썼다. 마음이란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육체이다. 살처럼 꼬집거나 때리면 아프고 상처가 난다. 닭살도 돋고 주름살도 생기고 때도 낀다. 마음이란 육체이므로 음식과 물을 주지 않으면 굶어 죽는 것은 당연하다. 햇빛과 공기가 닿지 않으면 말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늙는 것도 병이 나는 것도 당연하다. 여느 육체와 마찬가지로 잘생긴 것과 못생긴 것이 있고 큰 것과 작은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이 있다. 그러나 마음이란 성감대보다 민감하고 오감보다 예민한, 섬세한 그만큼 망가지기 쉬운, 육체이다. - 김기택 시집 『바늘구멍 속의 폭풍』(1994) 중 법무사사무소에는 상처 입은 마음이 찾아온다. 목을 매기 직전에 가까스로 어머니의 몸을 들어 올린 아들의 마음, 실종신고 끝에 차 안에 홀로 있던 아들을 겨우 찾아낸 아버지의 마음, 이자율 1000%가 넘는 불법 사채에 휘말린 자식 좀 도와달라며 울며 발만 구르는 어머니의 마음이 밀려온다. 그러한 마음에는 아직 새살이 돋을 겨를이 없다. 깊이 패인 상처는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흉터가 되기 전까지 붕대로 감겨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큐멘터리가 함부로 담아서는 안 될 한 가지가 있다면,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다. 흉터가 되었거나, 적어도 회복의 기미가 보여야 지나온 흔적을 다른 이에게 어렵사리 꺼내 보일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상처를 내맡긴 대상과 믿음을 나누는 관계 속에서 성립한다. 그렇기에 이 예술이 되려 상처를 헤집게 된다면, 법과 종교의 오래된 폐단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다만 작품의 소재로, 사건의 구실로, 끝내는 구원의 대상으로까지 여기게 된다면 정작 돌보아야 할 저마다의 마음을 놓쳐버릴지 모른다. (그 믿음은 촬영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함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스태프와 감독 자신까지 이어진다. 2023 DMZ Docs 피치에서 만난 <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의 김영조 감독은 다큐멘터리는 세 가지 신뢰 위에 선다고 말해주었다. 감독과 스태프 사이의 신뢰, 감독과 대상 사이의 신뢰, 그리고 감독 자신에 대한 신뢰.) 다시 회생(回生) 법무사 아버지를 더 미워하다가는 내 마음에 더 큰 병이 날 것만 같았다. 그가 세상 떠난 뒤에 미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었다. 그래서 그가 숨이 붙어 있는 한 함께 채무를 갚아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내고서부터 이상한 일들이 이어졌다. 정말 하늘이 감응한 것인지 사무실 수입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매달 고정된 변제금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형편이 갖추어졌다. 밥 굶지 않고 잠잘 곳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매달 둘이서 힘겹게 번 돈이 변제금으로 모두 나갈 때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 허탈한 리듬에 몸과 마음이 곧바로 적응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번 달 변제금은 겨우 마련했는데 다음 달은 어떻게 하지 또 어떻게 버티나’ 하는 걱정이 컸다. 그러나 매달 새로운 의뢰인들이 이곳을 찾아왔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났다. 6개월, 24개월, 48개월이 흘렀다. 언제부터 빚을 갚기 시작했는지 또 얼마의 빚이 남았는지 세어 본들, 돈이 뚝 떨어지고 빚이 갚아지나 싶었다. 도대체 몇 건의 회생 파산과 채무 관련 사건을 다룬 것인지조차 모를 지경에 이르렀고 그렇게 아홉 해가 흘렀다. 빚을 갚아나가는 삶의 운율이 이제는 아예 몸에 배어 버렸다. 혹여나 한꺼번에 남은 빚을 모두 청산할 기회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또 다른 업이 되어 되돌아올까 두렵다. 업무를 두고 법무사님과 의견이 엇갈려 서로 화를 내고 감정이 상할 때면 문득 언젠가 찾아올 그리움에 대해 떠올려보려 한다. 그러면 화가 좀 가라앉는 것 같다. 아, 이 순간도 언젠가 얼마나 그리워질까. 그렇게 여기면 좀 진정이 된다. 제발 청소 좀 하라며 핀잔을 늘상 주어도 기어코 구정물 묻은 신발로 사무실 바닥을 누비고 다니는 그 발자국이 얼마나 그리워질까. 방금 전까지 다시는 말 안 걸 것처럼 다투다가도 ‘어제 쓴 서면 꽤 잘 썼더라’라는 한마디에 토라진 마음 풀리는 일은 또 얼마나 그리워질까. 서로 뭔가를 끼적여 각자의 자리 벽에 붙여놓고는 훈훈한 날이면 ‘이건 어디서 주워온 글이냐’며 서로 품평하는 시간도. 각자 퇴근한 뒤에 서로 미안하다며 자기 전 짧게 문자를 주고받는 일은 언젠가 또 얼마나 그리워지려나.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의 시 「묵화」 어떠한 종속이 현실을 외면하는 체념이 된다면 그보다 지독한 구속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종속이 현실을 긍정하는 수용이 된다면 외려 그 안에서 자유를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 나는 믿고 싶다.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마음을 품고 지내다 보니 그제야 나는 어머니에게 마음의 깊은 빚을 지고 살아왔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빚을 줄여나가도 끝없이 다채로운 빚이 찾아오는 이곳에서야 그녀와의 인연이 지닌 무게를 헤아릴 수 있었다. 그녀가 왜 비구니가 되었는지, 정확히는 왜 다시 비구니가 되었는지는 어린 내가 알 리 없었다. 자식을 둔 비구니라는 사실은, 어린아이가 알아가는 세상과는 도무지 들어맞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존재를 숨기기에 바빴고 가까운 이들이 이를 알게 될까 늘 무서워했다. 학창 시절은 물론 성인이 된 뒤에도 나는 늘 그랬다. 군대 신병교육대 수료식 날에도 보살님들과 함께 나를 보러 온 그녀에게 그냥 차 안에 계시라 했다. 그녀는 가만히 차 안에서 날 기다렸다. 군 제대 하고 2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지금 네 아버지 곁에 누군가 좀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주변에 그를 도울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제대한 뒤에야 이 이야기를 내게 꺼낸 것은 그녀 나름의 배려였던 것 같은데, 당시 나는 세상 다 무너진 것처럼 꽤 충격을 받았다. 내 첫 반응은 그랬다. 어쩌라고. 나보고 어쩌라고.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몇 있다. 사법고시를 공부하러 고시원에 간 그가 부처님 오신 날이면 절에 와 연등을 달고, 눈 많이 오면 눈 쓸러 오거나 절의 작은 하꼬방에 기숙하러 왔다가 넷마블 알까기를 하던 모습. 다시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고시원으로 향하는 뒷모습. 그런 희미한 기억 품고서 법무사를 한다는 그의 사무실로 갔다. 꼬질꼬질한 모습이 그대로였다. 이 사무소에서 수많은 이들의 기구한 사연과 삶의 몸짓을 듣고 본 뒤에야 나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녀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긴 사찰 빚을 대신 갚고자 다시 승복을 입고서 아무도 갚지 않으려는 빚을 스무 해 넘도록 묵묵히 갚아왔다는 사실이 비로소 가슴에 사무쳤다. 새벽녘 도량석을 마치고 향냄새 풍기며 어린 내가 자는 곁으로 와 다시 잠들던 그녀가 지금의 나처럼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는 걸 그토록 몰랐다.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원망은 지금도 나를 부끄럽게 하고 아직도 나를 짓누른다. 비구니 스님은 어린 내게 라면을 종종 끓여주었다. 라면 냄비 안에 떠 있는 긴 머리카락을 발견하고는 나는 스님에게 투덜거렸다. 왜 머리카락이 여기 있느냐며, 머리카락이 들어간 음식은 먹기 싫다고. 나는 머리카락을 끄집어내고 다시 라면을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스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스님은 제 머리카락 하나에 씩씩대며 다른 이를 탓하는 어린 내가 얼마나 우스웠을까. 아버지의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그의 빚을 굳이 드러내고자 했던 내 욕망은, 그간 어머니의 존재를 숨기느라 그녀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고자 했던 부채감에서 비롯된다. 어쩌면 그 청산 과정에서 시심(詩心)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사무소 출퇴근길마다 많은 시인들의 시를 외웠다. 언젠가 그들처럼 살아보겠노라 다짐했으나 내게는 시 쓰는 재주가 없다는 걸 일찍이 알았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고마운 시를 내어준 시인들에게도 참 많은 빚을 졌다. 그러다 운 좋게도 다큐멘터리와 연이 닿았다. 이 인연은 또 언젠가 얼마나 큰 빚으로 남게 될는지. 부모에 대한 영화를 만들며 안도현 시인의 시론 [1] 을 여러 번 읽었다. 시는 부모와 절대자에게 마음을 바치는 양식이 절대 아니라고 한다. 부처를 우러르면 불경을 읽고 절을 하면 되는 것이고 부모를 공경하면 지극히 효도를 다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부처와 예수와 부모를 시에다 쓰고 싶어 못 견디겠으면 부처의 말씀을 관념의 테두리 안에 가둬버리고 실천할 줄 모르는 자들에 대해 쓰고 또 부모의 비겁함과 치부와 죄를 찾아 쓰라 한다. 무엇을 위해서도 누구를 위해서도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나는 역시나 시 쓰기에 실패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먼저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시든 시적인 것이든 그 이후의 일이다. 이 영화의 한글 제목 ‘회생’이 법무사(아버지)라는 외피를, 영어 제목 ‘KARMA’가 비구니(어머니)라는 내피를 나란히 품기를 바랐다. 어린 시절의 내게 이 둘은 결코 만나서는 안 되는 세계였다. 다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승과 속이 본래 둘이 아님을 믿고 싶었다. 서로를 배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세계를 한 스크린에 놓아두고자 그 사이에서 나는 좀 앓았다. 비구니 스님이 울린 범종 소리로 끝맺는 <회생>의 마지막 장면은 앞서 언급한 이문재 시인의 시 「농담」 [2] 의 마지막 연에 빚을 졌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1] 안도현,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한겨레출판, 2023. 3. 17. [2] 이문재, 『제국호텔』, 문학동네, 2012. 12. 17. 김면우(영화감독) l < 회생 >(2026) 연출.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일은 없다’. 가끔식 남의 집 가훈을 들으면 실소가 나올 때가 있다. 가훈이란 원래 성경의 한 구절 같아 실천하기 어렵고 이루지 못할 이상향 같은 것 아닌가. 그래서 영화 ‘잠’에서 둘이 함께를 강조하며 남편과의 분리를 극도로 경계하는 아내의 집착이 처음부터 매우 불안해 보였다. 급기야 남편에게 귀신이 씌였다는 무당의 한마디에 의해 불안은 공포로 급격하게 전환되는데. 그 말이 아랫집 할아버지의 말이든 혹은 남편의 속마음이든 둘이 함께라는 말은 이제 둘 이외의 것들은 모두 제거되어야만 성립되기 때문이다. 남편의 몽유병, 아내의 불면증 남편은 잠이 들고 아내는 그런 남자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본다. 이들의 결혼생활은 어쩐지 함께 잠드는 것이 아니라 깊은 밤이란 시간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유한다. ‘둘이 함께라면’이라는 가훈의 전제는 영화 시작부터 어긋나있다. 한 공간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밤 시간을 공유하던 부부에게 마침내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남편이 자다가 얼굴에 피가 나도록 뺨을 긁고, 잠든 상태에서 냉장고를 뒤적거리며, 갑자기 거칠고 낯선 사람으로 돌변한다. 더없이 편안하고 안락해야 하는 둘만의 밤이 당장 해결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 하지만 몽유병을 앓고 있는 남편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아내가 밤새 함께 꾸었던 악몽으로 인해 그들의 신혼집은 불길하고 뒤숭숭한 꿈자리로 바뀐다. 의사의 치료, 무당의 치유 악몽과도 같은 현실로부터 발생한 문제를 의사는 수면장애로 진단하고, 무당은 빙의라 점을 친다. 적극적인 치료와 치유가 필요한데, 의학은 환자의 상태를 시각화된 그래프로 제시하고 무당은 부부 사이에 보이지 않은 존재가 존재하고 있다고 점을 친다. 어쩐지 의학의 이성적 치료와 무속의 영적 치유라는 극단의 처방으로 인해 부부의 불면증과 몽유병 증세가 더욱 악화되는 것 같다. 이제 남편의 잠은 현실을 더 끔찍한 악몽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 아내는 펄펄 끓는 솥에 토막난 아이가 들어있는 악몽에 시달린다. 이런 부부에게 의사는 잘 듣지도 않은 약을 처방하고, 무당은 집안 곳곳에 붙일 부적을 주며 굿이 최선의 방법이라 조언한다. 애초에 몽유병과 불면증이라는 실체가 모호한 증상에 시달리는 부부에게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은 정신과 영혼을 다루는 정신의학과 무속 외에 달리 기댈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남편은 몽유병 완치 판정을 받지만, 이번엔 아내의 편집증이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심각해진다. 아내는 이미 무속에 깊이 심취해 남편의 빙의를 확신한다. 남편의 연기(혹은 빙의), 아내의 프레젠테이션 이제 막 아이가 태어난 젊은 부부의 집은 방문마다 자물쇠가 걸려 있고, 냉장고는 한때 그들이 키우던 애완견이 죽어 있던 곳이다. 아기와 엄마는 욕조에서 문을 잠근 채 잠들고, 아이 아빠는 잠든 채 거실을 배회하다 아이 침대에 소변을 본다. 급기야 거실에서 귀신 쫓는 굿이 벌어지고, 온 집안이 부적으로 뒤덮인다. 그리고 기어이 일이 벌어지는데. 이때 남편이 아랫집 할아버지에게 빙의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던 여자가 남편에게 지금 그들의 가정이 처한 상황과 그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방법이 다름 아닌 프레젠테이션이다. 남편의 몽유병과 아내의 편집증으로 인해 고조된 긴장감이 이 부분에서 와르르 무너지며 당혹감을 안겨준다. 극도의 불면증과 불안증세로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여자가 남편(에게 씌인 귀신)을 설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PT라니. 게다다 남편과 관객은 그 PT 속 사진 자료를 보고서야 비로소 그 집에서 귀신을 쫓는 굿이 벌어졌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왜 그처럼 중요한 굿 장면이 하필 PT속 사진 한 장으로 제시된 걸까. 생각해보니 앞서 냉장고에서 애완견이 발견되었을 때의 충격도 아내의 비명과 몸짓으로 전달했는데, 이번에도 남편의 몸에 귀신을 봉인하는 글귀를 세기고 무당이 굿을 하는 장면을 사진 한 장으로 갈음해버린다. 공포와 미스테리 영화를 표방하면서도 가장 끔찍하고 강렬한 공포 이미지를 굳이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있을 터. 문득 아내가 남편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장면에서 어쩌면 우리는 가장 가까운 관계의 사람과도 어떻게 대화를 나누고 설득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니 남편이 직장을 관두겠다고 했을 때 아내는 남편의 재능을 추켜세우고 용기를 복돋는 말로 그의 중도 포기를 막는다. 본인의 수면장애가 가족의 안위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남편이 잠깐 방을 따로 얻어 나가면 안 되겠냐고 제안했을 때 아내는 가훈을 이유로 단칼에 거절한다. 대기업 사원인 아내에게 중도 포기는 지독한 경쟁 속에서 자멸로 받아들여졌을지 모른다. 또한 기업 시스템의 통상적인 보고 방식에 길들여져 있기에 위급한 상황에서 PT는 그녀가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사적인 대화마저 그녀가 공적인 장에서 습득한 방식으로 이뤄진 장면으로의 전환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기이하게 와닿았다. 아내에게 ‘둘이 함께’는 어떤 상황에서도 실천하고자 했던 개인적 믿음에 가까운 말인데, 이 또한 결국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환상이 아닐까. 남편 또한 아내의 광기에 가장 공적인 소통 방식으로 맞선다. 긴급한 순간에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학교와 현장에서 배우고 익혀왔던 연기를 응용하는 것이다. 어쩌면 여자의 말처럼 남편은 진짜 빙의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자기 정신으로 연기를 했든, 진짜 빙의된 상태였든, 그 또한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배우고 익힌 연기 혹은 타인이 일생에 걸쳐 사용해온 언어로 아내를 진정시키게 된다. 노인과 아파트 이 영화에서 부부의 아파트를 침범한 외부인은 아랫집 노인이었다. 물론 귀신일 수도 있고, 아내가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있다. 영화는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난해하게도) 부부의 불면증과 몽유병의 원인이 된 노인이 귀신이었는지 환상이었는지에 대해 끝내 밝히지 않는다. 다만 무당의 말 “개 짖는 소리 없이 애기 우는 소리 없이 둘이서만 살고 싶어”가 남편과 노인 중 누구의 속내를 대변하는 것인지 의미심장하다. 마지막에 남편의 빙의(혹은 연기)를 통해 어쩌면 노인은 그 아파트란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부부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노인의 딸은 아내를 볼 때마다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이혼을 권한다. 남편에게 노인은 조금 더 먼 미래일지도 모르며, 아내에게 노인의 딸은 조금 더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 전형적인 공통의 삶은 윗집의 후추와 아랫집의 앤드류를 통해 드러난다. 마치 복제한 것 같은 두 반려견을 통해 윗집과 아랫집이 바닥과 천장을 공유한 것을 넘어 실은 더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닮아간다는 걸 알 수 있다. 서로에게 타인이란 당장 베란다와 창문 밖의 가파른 벽과 같은데, 그 단단하고 차가운 벽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존재를 알게 되고 신경 쓰게 된다. 막연한 추상이 아니라 동일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벽을 통과해온 소음과 베란다 창을 타고 올라온 담배연기, 화장실 천장의 누수를 통해 타인을 감지하게 된다. 이웃을 향한 우리의 감정선과 억측 또한 그로부터 생성된다. 단단하게 굳은 철근콘크리트 벽과 바닥으로 인해 우리는 보이지 않고 대화하기 어려운 타인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오해하며 망상한다. 영화에서 아랫집 노인은 살아서는 불쾌한 이웃이었고, 죽은 뒤에는 광기와 공포의 원인으로 내쫓아야만 하는 악귀가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노인은 부부가 나눈 대화, 아내가 아랫집에서 발견한 흔적, 그리고 남편의 몸을 통해 빙의 혹은 연기되는 존재로 등장한다. 타인의 삶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죽음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일련의 과정이 어딘가 익숙하다. 지금 우리가 매끈하고 스마트한 콘크리트 박스 안에서 잘 알지 못하는 이웃을 규정하는 방식과 닮아 있어서다. 영화를 보다 몇 년 전에 한 어르신이 들려주신 태몽 이야기가 떠올랐다. 태몽이란 흔히 부모가 태어날 아이에 대해 꾸는 꿈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노인들의 태몽은 이웃집에 살고 있던 어르신들이 꾸기도 했다. 한 아이의 탄생이 자기 부모와 가족들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누군가에 의해 암시된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때 한 아이에게 이웃의 노인은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몽상가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화를 알고 있었음에도 영화 ‘잠’에서 무당의 한 마디에 남편의 몸에 빙의된 존재를 추적하는 아내를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아랫집 노인을 떠올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생각의 흐름이 소름끼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느꼈던 찝찝함과 다소 무서웠던 감정의 실체가 이와 같다. 인물들이 무심코 던진 말들의 의미를 곱씹으며 내용과 결말을 유추하다 보면 어느새 그 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를 발견할 수 있어서다. 영화를 보고나서 타인에 대한 지독한 오해와 혐오를(아내의 불안과 공포의 원인) 만든 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초반에 부부의 가훈을 유독 강조해서 드러내는데, 이미 그 가훈의 ‘둘이 함께’는 천 길 낭떠러지 같은 곳에 둥지를 튼 부부가 전제되어 있다. 그러니까 부부가 된 두 사람에게 닥칠 숱한 문제 속에서도 오직 둘만 바라보고 살아남겠다는 다짐처럼 읽힌다. 그런데 이미 두 사람은 함께 누워 각기 다른 잠을 자고 꿈을 꾸며 살고 있고, 이제 둘은 셋이 되었다. ‘셋이 함께’ 겪을 문제는 또 어떤 잠과 꿈을 불러올까. 아랫집 여자의 말처럼 그냥 다 놓고 헤어지면 그만인데 부부는 기어이 또 함께 살며 또 다른 악몽을 감내하게 되었다. 셋이 함께 말이다.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한국영화 황금기 20년의 역사를 함께 하다 셀은 2003년 6월25일 황효균·곽태용 대표가 설립한 특수분장 업체,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이다. 두 대표는 세포의 기본 단위이자 배터리의 최소 에너지 단위를 뜻하는 의미를 담아 회사의 이름을 지었다. 한때 같은 특수분장 회사에 다녔던 동료인 두 대표는 박찬욱 감독의 < 쓰리, 몬스터 > 중 단편 <컷>을 필두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해, 이후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김용화, 나홍진 등 한국영화의 내로라하는 창작자들이 신뢰하는 동료로 자리 잡았다. 분장 및 더미·애니매트로닉스·특수소품·세트팀 등을 운영하는 국내 대표 특수분장 업체 셀의 현재 인원은 총 20명으로 해마다 약 10여개 이상의 작품에 참여해 지금까지 170여 작품에서 활약해왔다. < 친절한 금자씨 > < 도둑들 > < 부산행 > < 신과 함께 > < 기생충 > 등의 주요 미장센을 상상의 영역에서 물리적 실체로 구현해낸 셀의 핵심 가치는 분장과 소품, 애니매트로닉스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위한 테크니컬 아트의 전천후를 담당하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역량이다. 회화를 전공한 황효균 대표는 분장 및 더미, 공학을 전공한 곽태용 대표는 애니매트로닉스가 전문 분야다. 두 대표의 진두지휘하에 더미 전문가인 이희은 이사, 실장 3인(박영무, 박신영, 이효응), 팀장 2인(이고운, 박소연) 외 12명의 팀원들이 3개 층으로 구성된 메인 작업동에서 협업하고 있다. 황효균 대표는 24년, 곽태용 대표는 22년 경력의 베테랑이며 이희은 이사를 비롯한 실장급 직원들 모두 15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작업동 디자인실에서 작업중인 팀원들 셀 스튜디오는 설립 당시부터 주5일제 근무를 시행, 현재 주 40시간 일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영화 현장에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저녁과 휴일을 보장해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병행하며 작업에 섬세히 몰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국내 여타 특수분장 업체와 비교해 직원 수가 많은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부산행>과 <킹덤>을 거쳐 SF 장르에 도전하다 설립 이후 긴 시간 쉼 없이 성장해온 셀은 김지운 감독의 < 달콤한 인생 >에서 총격 신 더미를, < 인류멸망보고서 > 중 <천상의 피조물>에서 로봇 캐릭터를 구현하면서 역량을 한층 강화했다. 카이스트 로봇업체에서 억대로 책정한 로봇을 셀은 그보다 낮은 비용, 양질의 퀄리티로 결국 완성해냈다. 청룡영화상 기술상을 수상한 <부산행>에서 보여준 최초의 K좀비는 < 반도 >를 거쳐 넷플릭스 < 킹덤 >에 이르면 백성 출신 좀비와 양반 출신 좀비, 생사초를 먹고 살아난 왕 좀비 등으로 조선 좀비의 디테일을 새로이 창조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 밖에도 <기생충>의 수석과 털이 살아 있는 복숭아, < 옥자 >의 돼지 옥자, < 엑시트 >의 유해가스, < 암살 >에서 나이 든 염석진의 축 처진 뱃살 등이 모두 셀의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 르네상스 속에서 본격적인 업력을 쌓았고, 스릴러 강세 속에서 전에 없이 완성도 높은 액션 신의 원천으로 자리했던 셀은 이제 < 승리호 > < 고요의 바다 > < 더 문 > < 정이 > 등을 통해 SF 장르로 새 무대를 개척하고 있다. 셀의 일원들은 할리우드와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실력에 자부하고 있다.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해외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으며 2019년 이후 OTT 시리즈 작업 의뢰가 급증해 현재 < 커넥트 > <기생수> 등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OTT 시리즈 < 지옥 >에 쓰인 괴물의 미니어쳐 *CELL의 주요 작업 <쓰리, 몬스터> 중 <컷>의 손가락 <친절한 금자씨>(2005)의 반인반견 백선생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의 말 < 도둑들 >(2012)의 마카오 박(김윤석)이 변장한 얼굴 < 늑대소년 >(2012)의 늑대소년 <인류멸망보고서>(2012) 중 <천상의 피조물> 인명 <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의 이병헌(광해) 더미 < 미스터 고 >(2013)의 고릴라 링링 < 암살 >(2015)의 배우 이정재(염석진) 분장 < 부산행 >(2016)의 좀비 < 대호 >(2016)의 호랑이 < 로봇, 소리 >(2016)의 로봇 소리 <옥자>(2017)의 옥자 <기생충>(2019)의 수석과 복숭아 <반도>(2020)의 좀비 시리즈 < 스위트홈 >(2020) 속 괴물 시리즈 <고요의 바다>(2021)의 우주복 <정이>, 시리즈 <커넥트>, <기생수> 등 회의동 2층의 회의실 벽면: 그간 CELL에서 작업한 영화들의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체계적인 공간 구성과 동선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셀은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북부에 자리한 덕이로 172번길 4-72에 위치해 있다. 남측에는 고양종합운동장, 북측에는 운정신도시 아파트단지, 동측으로는 3호선 주엽역과 경의중앙선 탄현역에 접근하기 용이하다. 인접한 건물로는 고양예술고등학교가 있다. 2003년 설립한 셀은 인근의 소규모 스튜디오를 이용하다 2020년 전용 건물 준공을 마쳤다. 1320m² 부지에 2개동으로 구성된 990m²의 건물이 현재의 셀 스튜디오다. 셀 스튜디오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주변의 전경은 비닐하우스가 펼쳐진 평화로운 시골의 풍경으로, 그 아래 마당에는 주위의 목가적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거나 피칠갑한 더미들이 햇볕 샤워 중이다. “셀 스튜디오의 앞마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향후 1년 내로 극장가에서 관객을 만날 한국영화의 밑그림을 절로 그려보게 된다”(<씨네21>, 2016년, 셀 스튜디오 특집)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더미가 방문객을 반기는 셀의 마당을 지나면 각각 작업동, 회의동으로 불리는 2개 건물이 연결된 채 마주보고 있다. 셀의 직원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작업동이다. 1층은 크게 기계장비실, 용접실, 자재실로 구분된다. 밀링, 선반, 알곤 용접기, 드릴프레스, 절단기 등 중량감 있는 주요 장비들이 모인 공간이다.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주로 곽태용 대표가 관리한다. 1.5층에는 기계작업실, 3D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물질 없이 깔끔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터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고, 채색실은 환풍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작업동 1층 기계 및 애니매트릭스 작업실 전경 2층은 황효균 대표가 관장한다. 보다 정교한 작업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등으로 쪼개진 공간에는 온갖 팔레트와 실리콘, 붓, 알코올, 접착제, 리무버, 프라이머 등등이 조합된 특수분장 가방이 펼쳐져 있고 더미 채색, 더미의 머리카락과 눈썹을 심는 작업, 괴생명체 등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3층은 주요 작업물 및 조형에 사용하는 몰드들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한다. 2층 테라스를 따라 회의동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그동안 셀이 수상한 주요 상패를 모아둔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등이 있다. 1층은 식당과 휴게실로, 3층은 자료실로 사용된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로 172번길 4-72 2. 설립일: 2003년 6월 25일 (2015년 7월 17일 법인 전환) 3. 대표자: 곽태용, 황호균 4. 규모: 부지 1320m² / 건물 990m² (2개동) 5. 조직 구성: 총직원 20명(공동대표 2인 포함) 6. 공간 구성 - 작업동 1층 - 기계장비실, 용정실, 자재실, 남자화장실 1.5층 - 기계작업실, 3D 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 2층 -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3층 -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여자화장실 - 회의동 1층 - 식당 및 휴게실 2층 -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남녀 화장실 3층 - 자료실 인터뷰: 황효균, 곽태용 대표(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CELL)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황효균(우측), 곽태용(좌측) 대표 김소미 _셀의 설립 배경을 들려주세요. 황효균 _2003년도 새해를 둘이서 시작을 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한 2년 정도는 하고 싶은 영화를 해보면서, 밥벌이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한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이었고요. 셀을 만들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피디님이나 제작실장님이나 조감독님, 이런 분들이 신작 들어갈 때 새로 생겼으니까 일을 한번 맡겨주신 거죠. 김소미 _두 분이 일하신지 총 몇 년이 되신 거지요? 곽태용 _저는 22년차고. 황효균 _저는 24년차이지요. 김소미 _두 분의 첫 인연은 언제 맺어졌나요? 곽태용 _영화 쪽에서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업체에서 일을 배우는 기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둘이 처음 만나게 된 거예요. 좀 부족하지만 우리 것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의기투합했던 게 시작이었죠. 초반에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둘이서 이것저것 연구하고 재료도 찾아다니다 운 좋게 좋은 감독님들을 만나게 된 거죠. 황효균 _저희 사이를 돌아보게 되는 좋은 시간인 것 같네요. (웃음) 옛날 20년 전 골방에서 시작했어요. 버는 족족 투자해서, 딱 밥 먹을 정도만 남겨놓고 공간을 꾸려갔죠. 저희는 성격도 서로 참 달라요. 저는 좋게 말하면 꼼꼼한 편이고 곽 대표는 통이 커요. 분야도 다른데, 제가 미술과 분장, 더미 쪽이고 곽 대표는 기계 쪽, 로봇, 하드케이스 등을 만듭니다. 김소미 _공식적으로 작업에 착수하게 된 셀의 첫 작품은 무엇인가요? 곽태용 _개별적인 의뢰를 받고 소품이나 특수 제작물을 제작한 경우들이 앞서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처음 작업하게 된 건 박찬욱 감독님의 <쓰리, 몬스터>죠. 그전에 배고픈 시기도 겪은 터라 사실은 굉장히 열심히 작업했었어요. 남들이 보기엔 ‘어, 저게 뭐지’ 싶은 새로운 효과를 가미하기도 하고요. 그런 점이 박찬욱 감독님께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다음 작품도 박찬욱 감독님과 하게 되고 또 그 작품을 함으로써 김지운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의 의뢰를 받게 되었죠. 초창기에 <달콤한 인생> 같은 작품도 참 절실히 했던 기억이 나네요. 황효균 _<쓰리, 몬스터>에 저희 역량을 보여줄 요소가 다양하게 많았어요. 손가락을 잘라서 믹서에 갈아버리는 설정이라든가. (웃음) 이후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몸은 개인데 얼굴은 최민식 배우인 반인반수 소품도 있었죠. 박찬욱 감독님 작품엔 항상 저희에게 큰 숙제 같은 것들이 하나씩 있었던 것 같아요.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에 놓인 인체 일부 모형들 김소미 _셀이라는 이름의 작명 배경도 궁금합니다. 황효균 _멋있는 영어 단어로 이름을 짓고 싶었죠. (웃음) 로봇, 더미, 특수분장 쪽으로 의미 있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찾다가 셀이라는 단어가 외자라는 게 특히 좋았어요. 생명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곽태용 _또 배터리의 가장 기본 단위 에너지인 그런 의미도 있거든요. 황효균 _처음에는 회사 설립 후 전화 받을 때 ‘셀입니다’라고 인사하면 ‘요술공주 샐리’ 아니냐는 말도 듣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름 하나 잘 지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네요. 김소미 _두 분이 성격과 전문 분야에 있어서 상호보완적인 시너지를 이루고 계시네요. 곽태용 _이 일 자체가 굉장히 복합적이잖아요. 간단한 특수분장에서 시작해, 분장으로 안 되는 건 더미를 만들고, 또 더미를 만들었는데 그걸 조금 더 활용하고 싶으면 거기다 애니매트로닉스를 적용하고. 결국 이게 다 섞여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관장할 수 있어야 퀄리티 높은 작업물이 나옵니다. 각각의 세분화된 영역을 한데 모아서 할 수 있다는 점이 저희 회사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김소미 _테크니컬 아트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비전은 설립 초기에도 명확히 갖고 있던 그림인가요? 황효균 _그렇죠. 예를 들면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병헌 배우의 더미가 나오는데요. 그냥 가만히 있는 더미가 아니고, 독에 중독된 채로 숨도 쉬고 고통스러울 땐 미간을 살짝 찌푸리거나 건초를 태워서 코에 갖다 대면 연기가 코로 빨려 들어가는 식의 설정들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그럼 저희는 2층에서는 더미 외형을 만들고 1층에서는 안의 기계 장치를 동시에 만들어요.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상호보완적으로 작업하는 거죠. 지금은 특수분장팀이 많지만 저희는 외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할 수 있는 팀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김소미 _황효균 대표는 분장과 더미 전문, 곽태용 대표는 기계 및 애니매트로닉스 전문으로 자신만의 특화된 분야를 개척하기까지 두 분 각자의 전공과 최초의 관심 분야느 무엇이었나요. 황효균 _저는 미술, 회화를 전공했는데요. 캔버스에 그리는 게 아닐 뿐 결국 입체 위에 그리는 작업으로서 같다고 느낍니다. 결국 좀비 분장도 배우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거죠. 어릴 때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더미나 괴물 캐릭터를 만든다고 하면 모델링, 채색을 주로 해야 하니까 결국 영화 특수분장 일은 제 전공을 그대로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곽태용 _저는 화학공학을 전공하다가 중퇴했어요. 어릴 때부터 뭔가 만들거나 분해해서 작동 원리를 연구해보는 성향이 있었어요. 모형 제작을 취미로 계속하기도 했고요. 그걸 계기로 미니어처 작업을 통해 영화 쪽에 처음 입문했습니다. 영화 애니매트로닉스 분야는 정확한 전공이나 커리큘럼이 있다고 보기가 어려워요. 결국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기계의 원리를 면밀하게 관찰해서 그걸 응용하는 거거든요. 해외 자료들도 많이 보고요.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재료를 직접 만져보고 사무실에서 테스트해보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제가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늘 새로운 것들을 연출하길 원하는 감독의 바람을 충족시켜주기 위함이 더 커요.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작업동 2층 미술작업실 전경 김소미 _지금 시점에서 돌아보았을 때, 셀의 매출 및 작업 규모 혹은 기술 수준에 있어서 확실한 성장의 분기점으로 꼽아볼 작품이 있을까요? 곽태용 _특수분장이라는 게 맨 처음에는 배우의 얼굴에 실제로 상처를 낼 수 없으니까 그것을 분장으로 만들고, 거기서 더 심한 상처가 필요하면 더미로 커버를 하고, 나중에는 그 더미가 기계 장치로 움직이면서 점점 더 극적인 효과를 내는 식으로 계속 간 거잖아요. 저희도 초반부터 그런 모든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처음엔 상처 분장, 인조 피부 이런 작업 위주로 했었죠. 그러다 아무래도 한국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죠. 스릴러영화를 하게 되면 더미가 많이 나오니까 한동안 그런 작업 위주로 하게 되었어요. <달콤한 인생>의 경우 총격 신에서 더미가 많이 필요하잖아요. 총에 맞은 손가락이 터져 나간다든가 하는 효과들도 저희로선 의욕을 부추기는 데가 있었죠. 또 <부산행>을 기점으로 좀비물 붐이 일지 않았습니까. 덩달아 관련 작업도 늘어났죠. 또 재밌었던 작품 중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는데, 움직이는 말을 제작해서 슈팅카에 실었어요. 실제 달리는 말을 대체해 촬영을 했어요. 저희 작업 이후 사극에서도 많이 활용이 되었죠. 황효균 _운이 좋았죠. 그런 작업을 처음 맡을 수 있었다는 게. 셀이 최초로 시도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전에는 움직이는 말을 만들어서 촬영한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배우들은 항상 낙마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요. 액션을 소화하면서 말을 탄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배우가 저희의 움직이는 말 소품을 써보고 괜찮아서 이후에 계속 쓰고 싶다고 하면 보람이 있죠. 또 로봇을 직접 제작해 촬영한 영화인 <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 <로봇, 소리>도 중요한 작품이 되겠네요. 게다가 이제는 우주로 나아가지 않습니까. < 외계+인 > 1부 같은 작품을 보면 마블의 < 어벤져스 > 시리즈 못지않게 현실감 있게 나오니까 이제 한계점이 사라진 게 아닐까 싶어요.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를 위해 우주복을 최초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곽태용 _최근엔 연상호 감독의 <정이>를 작업했고요. 영화 <대홍수>도 SF고 드라마 쪽에서도 우주 배경의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나왔던 움직이는 말 기계 모형 김소미 _<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을 위해 제작한 로봇 소품도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직접 로봇을 제작한 경우가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황효균 _맞아요. 저 작품을 찍고 7년인가 있다가 개봉을 했거든요. 처음 촬영할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그게 될까’ 하던 때였거든요. 로봇이 합장을 하고 절을 하는 움직임들을 다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제작사가 카이스트의 로봇 공학 분야 전문가들에게 의뢰를 했었는데 그들은 정석대로 접근한 거죠. 이를테면 영화 세트장 바닥은 미끄러워서 작동이 불가능하다, 기간은 1~2년, 비용은 10억~20억원이 든다고 했대요. 제약이 너무 많았던 거죠. 그런데 사실 영화적으로 이해를 할 필요가 있거든요. 카메라가 발 부분을 잡지 않는다면 로봇이 실제로 걷지 않아도 그럴듯한 흉내만 내도 괜찮은 거예요. 어찌 보면 편법에 강한 겁니다. 영화 촬영을 위한 잔머리가 강한 거고, 응용력이 중요하죠. 김소미 _지금의 셀 스튜디오는 언제 완공이 된 건가요. 황효균 _여기 이사 온 지는 이제 2년 정도 되었네요. 곽태용 _원래 있던 곳도 여기 근처죠. 황효균 _처음 시작한 곳은 지금 스튜디오보다 규모가 약 1:3 정도였습니다. 옛날보다 환경이 많이 좋아진 거죠. 곽태용 _예전에는 큰 작업물을 만들면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안에 있던 걸 다 빼고 다 치우고 하느라 고생했죠. 아예 외부 창고를 단기 임대해서 그쪽으로 장비를 다 옮기기도 했고요. 황효균 _지금 부지는 총 400평이고요. 3층 건물은 약 80평 정도 됩니다.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선반의 인체 모형, 인체 일부 김소미 _총 3층으로 이루어진 셀 스튜디오의 주요 작업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곽태용 _일단 1층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실 쪽은 무거운 기계와 재료들이 많죠. 밀링 머신. CNC, 드릴, 프레스 등등. 가공 자재들도 기본적으로 쇠파이프 같은 무거운 재료들이니까 아래층에 있는 게 좋겠지요. 그 위에 1.5층이 있는데 프린트, 레이저, 도면 기반의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방을 따로 두었습니다. 1층 기계실은 아무래도 분진이 많이 발생하고 소음이 심해 조금 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팅 작업실을 위쪽으로 분리한 거죠. 황효균 _1층은 을지로 같은 분위기라고 보면 됩니다. (웃음) 공구들, 기계 장비들. 안 다루는 부품이 없고 전기, 배선, 라이팅까지 전부 다 하니까요. 2층으로 올라가면 페인트류, 실리콘, 물감, 분장 재료들이 중심이 되지요. 곽태용 _더미의 머리카락, 눈썹을 섬세하게 심고 채색하는 공간도 따로 구분되어 있어요. 화학 약품을 많이 쓰는 도색 작업 공간엔 냄새가 많이 나고 휘발성 페인트가 많기 때문에 환기 시설이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고요. 황효균 _이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설계 사무소와 논의해서 여러모로 저희 입맛에 맞게 건물을 지은 거지요. 냄새가 나는 방은 환기가 중요하니까 맨 뒤쪽, 오른쪽 구석에 가 있게끔 하고 분진이 많이 나는 폴리실은 따로 두고, 청결 유지가 필요한 채색실은 그 반대편에 거리를 두고 만든다든가 하는 식이죠. 김소미 _개인적으로 가장 애착 가는 공간이 있을까요. 곽태용 _저는 도면실이요. 도면실 겸 취미 활동방이 되었는데요. 개방해놓고 쓰고 있어요. 컴퓨터 옆에 드럼이 세팅되어 있거든요. 퇴근하면 직원들이 거기서 드럼 치고 있어요. 황효균 _곽 대표님은 보통 도면실이 있는 1층과 1.5층에 많이 머무르죠. 저는 아무래도 2층이겠죠. 각자의 공간에서 작업에 충실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모여서 밥을 먹습니다. 도면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곽태용 대표 김소미 _셀의 현재 직원수는 총 몇 명인가요. 한국영화의 주요 작품들에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데, 근무 강도를 어떻게 자평하는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저희가 지금 다 해서 20명인데 보통의 특수분장팀들과 비교하면 3~4배 정도의 규모라고 해요. 많이 듣는 얘기가 ‘셀은 맡은 작품 수가 많으니 야간작업을 자주 하는 거 아니냐’인데 그렇지가 않아요. 저희는 오후 5시 반 되면 다 퇴근해요. 곽태용 _한 8년, 9년 전부터 주 40시간 근무합니다. 황효균 _창립 초기부터 주5일제로 일했고요. 곽태용 _가끔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 때문에 마감이 늦어지면 밤 9시, 10시까지 야간작업을 할 때도 있는데, 1년에 5번도 안 돼요. 촬영이 걸리지 않는 이상은 각자의 저녁 시간을 갖고, 빨간 날은 그냥 쉬는 걸로 해요. 그래서 인원이 좀 많은가 봐요. 이렇게 일하려면 적어도 3~4명은 더 있어야 되거든요. 그리고 저희는 일용직이랑 계약직을 쓰지 않고 정직원만 고용합니다. 일단 고용안정이 돼야지 자기 실력이 발휘가 되니까요. 이 분야는 적어도 1년에서 2년은 배워야지 실력 발휘를 하는 직업이라서 그러려면 꾸준히 다니면서 할 수가 있어야 하고요. 김소미 _셀 입사를 꿈꾸는 구직자들이 많겠습니다. 지금 젊은 직원들의 성비는 어떻게 되나요. 황효균 _애니매트로닉스 쪽은 남자가 많고요. 미술 파트 쪽은 여자가 많고. 곽태용 _전체로 따지면 여성 직원이 더 많습니다. 입사 희망자들도 여성 비율이 높고요. 황효균 _분장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남자들에게는 아직도 약간의 편견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곽태용 _그런데 사실 기본적으로는 골조도 넣어야 되고 또 되게 무거운 몰드도 돌려서 스킨을 뽑아내야 되고, 작업의 많은 부분이 중노동에 가깝기도 하지요. 반대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하고 이 일을 희망하는 분들도 제법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성비로만 놓고 보면 포트폴리오 지원자 중 여성들이 월등하게 많습니다. 인체 모형을 작업중인 직원 김소미 _최근의 테크니컬 아트를 위한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제작 여건 면엥서 가장 크게 변화를 실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옛날에 직원이 3D 프린터란 게 나왔으니 하나 사달라고 해서 구매했더니, 스프라이트라고 하는 긁힌 자국이 그대로 다 보이는 수준이어서 ‘아, 이게 될까’ 싶었죠. 초창기에 300만원 주고 하나 사보자고 하는 걸 일단 시험 삼아 들여서 저희들끼리 열쇠고리 같은 것도 뽑아보고 그랬어요. 그렇게 실험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음 버전이 나와요. 지금은 3D 포인트 프린트를 스튜디오에 5~6대 정도 놓고 쓰거든요. 만약 처음 나왔을 때 실험해보지 않았으면 아직도 못 쓰고 있을 거예요. 새로운 장비가 나왔다고 하면 우선 투자를 합니다. 최근에는 직원들이 레이저 각인기를 사달라고 해요. 우주복을 예로 들면 그 위에 NASA라고 새길 수 있는 거죠. 원래는 업체에 외주로 맡겨야 했던 작업을 그 기계를 사면 직접 새길 수 있대요. 200만원 정도 하는 것 같아요. 괜찮을까, 지금 고민하고 있어요. (웃음) 또 직접 사서 써 봐야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거죠, 물론 그냥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곽태용 _저희는 어떤 기계를 원래 목적 그대로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변형시켜서, 그러니까 작업의 목적에 맞추어 변형해서 쓰는 거죠. 시나리오에 담긴 천차만별의 요구를 표현하기 위해선 편법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지 만들 수 있고요. 박람회가 열리면 가서 구경하고 응용할 거리가 있으면 구매해서 테스트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박물관에 주고요. (웃음) 작업동 1.5층 3D 프린팅 및 스캐닝실 전경 김소미 _셀이 새 자리로 이사한 이후, 코로나19가 영화계를 강타한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곽태용 _한국은 팬데믹 기간에도 록다운 없이 영화 촬영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시리즈에는 계속 투자가 이뤄졌고, 그런 수요를 저희도 느꼈죠. 약간 반전이었죠. 황효균 _팬데믹으로 인해 오히려 작년, 재작년 엄청 바빴어요. 시리즈물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거죠. 지금 다시 극장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어서 영화 작업도 많이 들어가고 있는데요, 저희 욕심만큼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제 다른 업체들도 많이 생겨났으니 현업에서 계속 뛰긴 하지만 저희 둘만큼은 전보다는 일에 덜 쫓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영화라는 게 몰릴 때 몰리고 또 없을 때 없고 하니까, 뭐 잘 조율해가면서 해야죠. 김소미 _아직까지도 '이것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 싶은 도전 과제가 남아 있으신가요? 곽태용 _ 이 일은 전적으로 과제가 주어지는 일인 거잖아요. 연출자들이 새로운 콘셉트를 갖고 오면 최대한 그걸 구현해보고 싶은 거죠. 어렸을 때 할리우드영화를 보면서 항상 꿈꿔왔던 것은 있어요. 예를 들면 <에이리언>이요. 과거에는 이런 작품 해보고 싶다고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였는데 이제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할리우드 메이킹 필름을 보면서 동경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우리의 작업을 레퍼런스 삼는 나라들도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효균 _한국 콘텐츠의 질이 엄청 높잖아요. 한국영화를 보고 특수분장을 꿈꾸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고요. 제보받은 게 있는데 중국, 싱가포르에서 한국영화 보면서 저희 레퍼런스를 많이 참고한다고 해요. <옥자>에 쓰인 기술은 할리우드에서 그대로 따라 하고 있어요. 해외에 셀이 소개될 때 <부산행>을 했던 회사라고 하면 다 알아봐 주고요. 그런 게 참 뿌듯합니다. 필자: 김소미(씨네21) 사진촬영: 백종헌 인터뷰 일자: 2022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