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 감독
- 문수현
- 제작년도
- 2016
© 디깅룸 2026년 4월 12일, 나는 파주에 있는 한 출판 물류 창고를 찾았다. 고(故) 임재철 선생님의 제자들과 함께 이모션북스의 재고를 차에 실어 충무로의 옛 사무실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충무로로 간 우리가 마주한 사무실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이었고, 우리는 계단에 줄지어 서서 책과 유품을 옥상까지 손에서 손으로 올렸다. 4월인데도 날이 제법 더웠다. 존경하던 평론가의 책을 나르는 일은 영광스러웠지만, 책을 받아 올릴 때마다 이 책들은 왜 이렇게 무거운가 싶었다. 선생님은 존경스러운데 책은 자꾸 원망스러웠다. 내 옆에서 책을 나르던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통성명을 할 겨를도 없었다. 오후 늦게 유품 정리가 끝나고 식당에 둘러앉았을 때에야 함께 일했던 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나와 같은 라인에서 책을 옮기던 분은 자신을 1인 출판사 디깅룸을 운영하는 백지윤 편집자라고 소개했다. 백지윤 편집자가 고다르에 관한 책을 냈다고 하자, 나는 반가운 마음에 외쳤다. “아, 『고다르×고다르』 내셨구나!” 식탁의 사람들이 당황하며 정정해 주었다. “그게 아니라 『고다르처럼 보기』예요, 일남 님…” 나는 성격이 급하고 조심성이 없다. 아는 책 이름이 나왔다 싶으면 확인도 하기 전에 입부터 연다. ‘아, 이분은 나를 절대 신뢰 못 하시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달 뒤, 백지윤 편집자가 우리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녹음이 끝난 자리에 찾아왔다. 디깅룸에서 새로 낸 크리스틴 스몰우드의 『샹탈 아케르만, 갇힌 여인』(2026)을 들고서였다.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는 그날 자리에 없던 윤아랑 평론가에게 전해 달라며 한 권을 내게 맡겼다. 그 책은 이 글을 쓰는 9월 27일 현재까지도 내 손에 있다. 아마 그는 평생 나를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 호프 >(나홍진, 2026)가 개봉한 지 두 달이 넘었다. 그때 주고받은 카톡과 메일을 다시 읽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지금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잘 모르겠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왜 이렇게까지들 했을까. 내가 보던 트위터 타임라인에는 <호프> 이야기가 연신 올라왔고, 블로그에는 긴 글들이 쌓였다. 개봉 전부터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떠들던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도 할 말이 남아 있었다. 나도 블로그에 글을 쓰고, 트위터에서 떠들고, 카톡으로 같은 이야기를 또 했다. 같이 영화를 보며 떠들 사람을 찾겠다고 오픈채팅방을 팠더니 하루 만에 50명이 들어왔다. 임재철 선생님 프로필 사진을 달고 들어와 새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욕을 하는 정체불명의 인물도 있었다. 나는 가족과도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영화에 몸을 던지기 위해 회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그러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즈음 이광호 평론가는 나를 주변의 극장 관계자에게 소개해 주며 리액션 상영회를 구체적으로 의논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상했다. <호프>라는 영화 한 편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과 서슴없이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극장에서는 홍보 일정을 고려하면 새로 행사를 열기에는 시기가 조금 늦었다는 답을 보내왔다. 나는 그 입장을 이해했지만, 이 영화가 시장에서 그리 달가운 존재는 아닌 모양이라는 생각에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렇게 단시간에 사람들이 연결되는 풍경을 기이하다고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트위터에는 이때 나온 글과 트윗을 모아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는 게시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 글들을 보면서 혼잣말을 하곤 했다. “아이고, 이보세요. 책이 그렇게 쉽게 나옵니까?” 그러던 7월 27일, 회사 점심시간에 백지윤 편집자에게 메일을 받았다. 함께 <호프>에 관한 책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가제는 ‘호프 호들갑’ 혹은 ‘호프 지키기’. 백지윤 편집자는 8월 10일까지 원고를 받아 그달 안에 책을 내겠다고 했다. 선인세와 이후 판매에 따른 인세 정산 조건도 적혀 있었다. 내 블로그 글을 보고 연락했다며, 지금 <호프>를 보고 몸에 남은 것을 자유롭게 써 보자고 했다. ‘이 사람 미쳤네.’ 첫 번째로 든 생각이었다. 백지윤 편집자가 보내온 <호프> 관련 도서 출간 제안 메일 선인세 금액을 보고는 한 번 더 그 생각을 했다. 이 출판사는 정말 이 금액으로 우리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그렇다면 대단한 야심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때 <라디오스타>에서 김흥국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기억으로는 이렇다. 김흥국이 정준호 와 축구를 하던 중이었다. 정준호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며 물었다고 한다. [1] “형, 요새 행사 좀 있어?” 김흥국은 오랜만에 들어온 행사 생각에 축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김흥국이 되물었다. “와, 진짜 다섯 개 가 맞아?” 정준호가 답했다. “아, 알았어. 맞다니까.” 그런데 쉬는 시간에 정준호가 김흥국에게 이렇게 말하더란다. “형, 많이 약해졌네. 진짜 50 에 되는 거야?” 김흥국은 500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김흥국들을 찾아야 했다. 손가락 다섯 개만 보고도 단위를 묻기 전에 가슴부터 뛰는 사람들, 돈 이야기보다 <호프> 이야기에 먼저 몸이 반응하는 사람들 말이다. 다행히 나는 그런 사람들을 몇 알고 있었다. 나는 메일을 받은 지 십여 분 뒤에 답장을 보냈다. 반가운 제안이라며 그날 바로 필진을 꾸리겠다고 했다. 섭외할 사람들을 떠올리며 허풍도 떨었다. 그때 내 말을 기억대로 옮기면 이렇다. “이 사람들 아무도 거절 안 할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살이 떨렸다.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그날 오후는 지금 돌이켜봐도 기억이 잘 안 난다. 가장 수락할 것 같던 이광호 평론가가 제일 먼저 수락했다. 필진을 모으면서 윤아랑 평론가와는 우리끼리 아는 사람들로만 채우지 말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제안해 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나는 김해솔 시인을 떠올렸다. 트위터에서 그가 <호프>를 보고 미쳐 있는 걸 보고 이분에게 글을 부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책이 단순한 비평 모음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 부분을 채워 줄 사람이라고 느꼈다. 여기서만 밝히지만, 그날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실제로 김해솔 시인을 마주쳤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월간차지》의 신포도와 유유민은 이광호 평론가가 연결해 주었다. 두 사람이 참여하겠다는 답을 전해 듣고도 나는 그들이 실제로 누구인지 몰랐다. 이렇게 재치 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왜 갑자기 등장한 걸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광호 평론가가 그들의 정체를 알려 주자 나는 연달아 답장을 보냈다. “오, 맙소사…” “대스타들이시네…” 이런 일이 만 하루 만에 벌어지다 보니 내게는 온 세상이 <호프>일 수밖에 없었다.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한상희 평론가의 글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그가 <호프>를 보고 무엇이라고 말할지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 영화에 관해 떠들 때마다 머릿속 한편에는, <호프>가 대체 영화로서 어떻게 성립하고 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줄 사람은 상희 씨일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영화를 본 뒤 블로그에 글을 올렸을 때 정말 반가웠다. 내가 좋아해서 반복하고 있던 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왜 이 이상한 영화가 영화가 되는지를 말해 줄 사람이 나타난 기분이었다. 자연스럽게 이 책에도 그의 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은열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그가 <호프>를 보고 신정원 감독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았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온갖 영화와 감독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거기서 신정원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에는 유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호프>를 외국 장르영화의 맥락 속에서만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가 좋아했던 한국 장르영화의 이상한 계보 한가운데에 슬쩍 밀어 넣어 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 영화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그렇게 말해 줄 수 있는 글이라면 꼭 책에 남기고 싶었다. 금동현 평론가는 8월 10일까지 원고를 쓰기는 도저히 무리라며, 포지드필름스 쪽 인터뷰가 성사된다면 진행자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윤아랑 평론가는 직접 필진으로 참여하는 대신 정미파를 추천했다. 나도 정미파의 글을 꼭 싣고 싶었다. 정미파를 처음 만난 건 내가 <호프>를 본 날, 키니마에서 열린 ‘시네마 지옥’ 행사에서였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틀어 주는 영화는 안 보고 게임 피파 시리즈 이야기와 <호프> 이야기만 했다. 그날의 대화를 기억나는 대로 옮기자면, 30분에 한 번꼴로 둘 중 누군가가 같은 말을 했다. ‘시네마 지옥’ 행사 중 “호프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아직 〈호프〉를 보기 전이었던 한상희 연구자가 우리에게 물었다. “아니, 대체 호프가 뭐길래 그런 소리를 계속 하는 거야?” 그러면서도 한상희 연구자는 정미파가 나홍진 에 관해 풀어놓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며, 그 이야기를 꼭 비평으로 써 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정미파가 비평가로 데뷔할 책으로 이보다 잘 어울리는 책이 있을까 싶었다. 박동수 평론가에게는 <호프>의 차기작을 상상해 보는 대담을 원고로 싣자고 제안했다. 대담 상대에게도 그날 바로 인스타그램 DM과 섭외 메일을 보냈다. 그날 저녁, 나는 아홉 명의 명단을 백지윤 편집자에게 보냈다. 금동현, 김해솔, 박동수, 배은열, 신포도, 유유민, 이광호, 정미파, 한상희. 점심시간에 메일을 읽고 저녁에 명단을 보낼 줄은 나도 몰랐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모두 흔쾌히 함께하겠다고 해 주었다. 이름들을 모아 놓고 보니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시장에 나온다면 사람들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책을 일종의 <호프> 동인지로 만들어 줄 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 영화가 대체 어떻게 영화로 성립하는지를 설명해 줄 사람도 있었다. <호프>를 다른 영화들의 계보 속에 놓아 볼 사람도 있었고,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들이받을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 책이 아니어서 좋았다. 다음 날부터 백지윤 편집자가 필진 일동에게 정식 제안 메일을 보냈다. “저도 말이 안 되는 일정이라는 걸 알지만, 아마 모두가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답장은 곧바로 이어졌다. 김해솔 시인은 벌써부터 신이 난다고 했고, 유유민은 이번 기획은 스피드가 생명이라며 윤문도 하지 않은 메모를 그대로 보내왔다. 나는 같은 날 포지드필름스에 인터뷰 협조 메일을 보냈고, 대담 역시 정식으로 제안했다. 7월 29일 아침, 백지윤 편집자가 카톡을 보내왔다. “<호프>가 외세의 침략을 받기 시작한 아침입니다…” <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디스틴 크리튼, 2026) 개봉일이었다. 예매율이 꺾이기 시작했으니 오늘부터 책 소식을 조금이라도 풀어야 한다고 했다. 곧 책 제목도 보내왔다. 『호프 끝장』. 표지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그 역시 미쳐 있던 게 분명했다. 사람을 모으고 방향을 잡는 일은 내가 할 수 있었지만, 원고를 조율하고 계약서 같은 행정 절차를 꼼꼼히 살피기에 나는 부족했다. 그래서 동료 윤아랑 평론가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는 흔쾌히 공동 기획자로 함께해 주겠다고 했다. 윤아랑 평론가는 계약서를 밤새 읽고 분석해 필진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나는 그 메일의 마지막 문장을 지금도 좋아한다. “여기서 이런 프로젝트에 휘말리듯 참여하게 될 줄 알았던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물론 일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대담을 제안받은 분은 며칠을 고민한 끝에, 지금은 이런 일을 진행할 여력도 위치도 아닌 것 같다는 성의 있는 답장을 보내왔다. 포지드필름스로부터도 아직 답장이 없다. 하긴 연락받은 쪽에서는 ‘이 미친 사람들은 왜 이러지’ 싶었을 것이다. 영화 한 편 보고 갑자기 책을 만들겠다며 연락해 왔으니. 외부와 연결하려 했던 두 기획이 하나씩 멀어지자 오히려 분명해졌다. 기왕 시작한 거, 우리 손으로 끝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원고가 오기 시작했다. 정미파는 60매를 보내왔고, 배은열의 수정고는 올 때마다 파일 이름이 길어져 결국 ‘수정수정수정수정수정’이 되었다. 8월 7일, 알라딘 북펀드가 열렸다. 나는 바이럴 마케팅 회사 우수 직원 출신이라고 떠벌리며 시간차로 게시물을 올렸다. 마케팅의 생명은 호들갑이다. 백지윤 편집자는 그날 오전 단톡방에 이렇게 썼다. “오늘 200 뚫으면 발 뻗고 자겠습니다…” 윤아랑 평론가도 한마디 보탰다. “200 뚫으면 에어컨 켜고 자겠습니다…” 기적처럼 그날 오후 모금액이 200만 원을 넘겼다. 백지윤 편집자는 저녁에 <호프>를 한 번 더 보고 빅맥 라지 세트를 먹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호프 끝장』 필진 단체 채팅방 8월 11일, 금동현 평론가의 원고가 도착했다. 이 책을 팬진(fanzine)으로 이해했다며 장난을 쳐 봤다는 원고를 읽고 기획진은 박수를 쳤다. 다음 날까지 나머지 원고도 모였다. 대담과 제작진 인터뷰가 무산되는 바람에 급히 원고를 부탁해야 했던 박동수, 금동현 평론가도 훌륭한 글로 답해 주었다. 그날 밤 나는 단톡방에 썼다. 책을 만들기로 했을 때와 펀딩을 열었을 때의 불안이 싹 씻긴다고. 기한이 워낙 빠듯해 원고를 고쳐 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아랑 평론가는 정미파와 함께 원고를 다듬느라 고군분투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대부분의 원고를 받은 그대로 넘겼지만 유유민에게만은 한 가지를 부탁했다. 처음 받은 원고가 조금 방어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언가를 방어하기보다 일단 들이받는 쪽으로 가고 있으니, 비판받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더 과감하게 고쳐 달라고 했다. 다음 날 도착한 수정고는 근사하게 방공호를 벗어던지고 있었다. 8월 13일, 백지윤 편집자가 조판 PDF를 보내왔다. 각자 보내온 글이 170쪽짜리 책의 모습으로 묶여 있었다. 그날 윤아랑 평론가가 말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거 막 하는 기회가 살면서 얼마나 더 있겠어요.” 나도 답했다. “저도 혼자서는 이걸 뭔가 절대 못 했을 것 같아요. 꿈도 못 꿨고.”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이 작업의 이상한 점을 생각했다. 돈도 넉넉하지 않았고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이 일을 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아니면 못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시기,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에서 단편영화 심사를 하던 기간에는 정종호 감독과 <호프>에 관한 찬반 토론도 했다. 책의 출간 소식이 나오자 정종호 감독이 사악하게도 행사 이름을 ‘호프 끝장 토론회’로 지어 버렸다.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나는 이날 <호프>를 방어하는 쪽이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비판을 듣다 보니 할 말이 술술 나왔다. 그날 김영광 평론가의 말을 내 기억대로 옮기면 이렇다. “<호프>는 게임으로 치면 계속 파티원을 부르는 영화예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잠시 함께할 파티원을 불러 모아 책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평론가로 활동하면서도 이런 파티의 개념을 계속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토론이 끝날 무렵, 처음부터 조용히 듣고 계셨던 김홍준 감독님이 갑작스레 나서셨다. 잘 들었다며 말을 건네시더니, 이 책을 꼭 번역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한국영화사에는 한국영화의 운명을 건 작품들이 간간이 등장하는데, 그 역사성도 분석해 주었으면 한다는 부탁도 덧붙이셨다. 이런 일들을 겪고 있으니 이 책에 관한 어떤 의심이나 비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8월 18일, 백지윤 편집자가 제작처에 파일을 넘겼다. 8월 23일 밤, 펀딩은 200%를 달성하고 410부가 선판매되며 마무리되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대성공이었다. 8월 26일, 책이 물류창고에 들어왔다. <호프> 개봉 47일 만이었다. 9월 2일 아침, 백지윤 편집자가 단톡방에 캡처를 올렸다. 알라딘 종합 베스트 17위, 예술 부문 1위. 북펀드를 열 때 우리가 잡은 목표 금액은 200만 원이었다. 그날 오후 5시에는 대중문화 실시간 2위, 6시 21분에는 실시간 1위가 되었다. 알라딘 종합 베스트 17위, 예술·대중문화 부문 1위 기록 화면 책은 ‘와, 사람들이 저걸 읽나 봐’ 하는 분위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9월 9일에는 하루에만 120부가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지윤 편집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책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건 편집자 생활 처음이라, 참 묘합니다.” 며칠 뒤 다른 영화의 제작기를 쓰러 경주에 갔을 때였다. 촬영장 스태프가 물었다. “어떻게 <호프>로 책이 나와요?” 나는 웃으며 이 책이 알라딘 종합 베스트 17위라고 이야기했다. 주위에 있던 스태프 모두가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9월 중순, 이번 주면 끝이겠거니 했는데 『호프 끝장』의 순위가 또 올랐다. 진짜 좀비 같은 책이구나 싶었다. 이광호 평론가는 학급문고를 만든다는 느낌으로 참여했는데 이렇게 인기 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나는 극장에 갈 때마다 영화가 끝나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지금 내가 본 게 뭐지, 하는 표정. 그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이야기다. 『호프 끝장』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 같은 책이 되기를 바랐지만, 내가 기획한 것은 그 너머에 있었다. 영화가 극장에 걸려 있는데 비평은 반년 뒤에야 도착하는 방식 말고도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영화가 개봉하고 시장이 아직 그 가치를 판단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을 때, 바로 그 옆 진열대에 비평을 올려놓을 수 있다면 그 비평은 충분히 읽힐 수 있다. 그러려면 속도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건, 그 속도가 단순히 서두른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속도는 신뢰에서 나왔다. 내가 이 일을 하기 전까지 쌓아 온 관계와, 누군가가 보내 준 원고를 믿는 마음과, 누군가가 자기 역할을 해줄 거라는 기대에서 나왔다. 혼자였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속도였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백지윤 편집자는 《기획회의》에 실은 「운명페이」에서, 4월 12일 충무로에서 받은 환대가 없었다면 7월에 내게 출간을 제안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 그날 나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책 상자를 나르며 눈치를 보고 있었고, 이모션북스의 책들은 왜 이렇게 무거운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자기 책 이름도 제대로 몰라보는 사람을, 책을 전해 주기로 해 놓고 석 달째 안 준 사람을 믿고 이 책을 만든 것이다. [2] 백지윤 편집자는 자신을 제작자 정도로 생각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윤아랑과 함께 기획한 나로서는, 평생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아무래도 샹탈 아케르만 책은 이번 달 안에 윤아랑 평론가에게 전해 주어야겠다. *** [1]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2010년 7월 28일 방송분에서 김흥국이 소개한 일화를 필자의 기억에 따라 재구성했다. [2] 백지윤, 「운명페이」, 《기획회의》, 2026. ※ <호프> 스틸 외 사진: 필자 제공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조일남(영화평론가) l 영화를 두고 놀기를 좋아하고, 그 놀이가 남기는 것에 대해 쓴다. 아내와 두 강아지와 함께 파주에 살고 있다.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진행. 『호프 끝장』(2026) 공동 기획 및 서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2023) 공저. 머니그라피 인스타그램 매거진에 영화 칼럼 연재 중.
<백룸> 중 (사진: IMDb / © A24) 기억에 남는 불안이 있다. < 1917 >(샘 맨데스, 2019)에서 데번셔 연대의 무모한 돌진을 막아낸 스코필드가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야전병원 막사에 당도했을 때, 나는 영화가 쌓아온 서스펜스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불안에 사로잡혔다. 막사 저 멀리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 순간부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화 내내 스코필드에게 밀착해 있던 카메라가 거의 유일하게 인물을 놓아두고 홀로 날아오르기 시작했고 끝내 그 나무 아래서 이야기의 문을 닫는다. 눈을 뜬 남자가 한바탕 소동을 끝내고 다시 나무 아래서 눈을 감는 이야기. 헛웃음이 나올 만큼 도식적인 수미쌍관 구성은 경탄스러운 카메라 무빙을 한 편의 허탈한 동화로 바꿔놓았다. 극장을 나서며 이렇게 적었다. “대체로 무용(無用)한 것들을 사랑하는 편이다. <1917>은 카메라의 쓸모, 자신의 효용을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는 것 같아 왠지 안쓰러웠다. 문득 침묵할 줄 알았던 카메라들이 그립다.” 당시 편협한 판단을 요약하면 이렇다. <1917>은 촬영 방식이 제일 앞자리에 놓인 영화다.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 스스로 밝혔듯 이 영화에서 물리적인 아날로그 롱테이크는 최장 7분 남짓, 나머지는 교묘한 트릭으로 이어 붙인 착시다. 끊어지지 않는 카메라를 위해 서사가 설계됐는데, 결과적으로 이야기 구성은 기이하리만치 게임에 가까워졌다. 참호에서 트럭으로, 불타는 마을에서 강물로 이어지는 여정마다 이름난 배우들이 마치 게임 속 NPC처럼 배치되어 병사를 다음 구간으로 안내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서사를 위한 카메라가 아니라 카메라를 위한 서사가 되어버렸다. 말하자면 <1917>의 연결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의 결과가 아니라 ‘연결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그 유려한 롱 컨티뉴이티 숏은 전장을 재현하는 대신 관객을 안전한 가상현실로 소환해 버린다. 영화적인 것,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극한까지 추구한 결과가 역설적으로 영화로부터 멀어지는 기이한 종착지에 다다른 셈이다. 2020년 무렵의 나는 그 어긋남을 두고 ‘영화를 향한 향수병’이란 딱지를 붙였다.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지만 끝내 다다를 수 없는 곳을 바라보며 앓는 병. 향수병은 애초에 돌아갈 수 없음을 전제로 성립하는 상태이므로 그리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고백한다. 그땐 일말의 허세와 더불어 형식주의자를 향한 결벽 비슷한 감정이 작동했던 것 같다.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에 유난히 위화감을 느끼는 편이다. 스타일에는 목적과 필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싶은 말이 어떤 결과물로 이어진 형태가 곧 형식이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렇기에 방향과 결과, 의지와 형태가 어긋난 순간들을 만나면 한참 생각에 잠기곤 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원래 하고 싶었던 게 뭘까. 시간이 흘러, 정확히는 새로운 세대의 물결을 겪으며 질문의 방향이 슬며시 바뀌는 중이다.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입에 올리던 ‘영화적인 것’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런 고정불변의 대상이 있긴 한 걸까. 영화가 무엇인지 묻는 것만큼 본질적이고 동시에 바보 같은 질문도 없다. 그건 목적지라기보단 그저 지향에 불과하다. 본래 큰 질문에서는 답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법이다. 현 시점 내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영화적인 것’이란 지표에 절대성 따윈 없다는 믿음이다. 아주 협소한 경험에 근거하여, 영화적인 것의 실체는 ‘경험에 근거한 익숙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한 시절의 관습이다. 심지어 이 관습의 수명은 길어야 20~30년, 대체로 한 세대보다 짧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체험을 절대적인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1950년대에 완성된 몇몇 형식들을 ‘시네마틱’이라 일컫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거칠게 말해 오늘날 영화적인 것이라며 유통되는 상당수의 기법은 1950년대 이후, 좁게 잡으면 1970~80년대에 유행하거나 영향을 미친 스타일에 가깝다. 이를테면 슬로우 시네마가 롱테이크를 거쳐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그렇다. <1917>의 롱 컨티뉴이티 숏이 증명하고자 한 ‘영화적인 접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도 그저 본인이 만들어온(그리고 지나온) 영화라는 영토에 대한 향수에 잠긴 게 아닐까 싶은 의심. <1917> 중 (사진: IMDb / © Amblin Entertainment, ㈜스마일이엔티, ㈜씨제이이엔엠) 의심을 심화시킨 건 <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2019)이었다. 그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내내 윤단비 감독의 심경을 상상했다. 이 젊은 창작자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윤단비 감독의 영화에는 지난 세기의 끝자락, 그 언저리의 여름이 고여 있다. 2층 양옥집과 낡은 선풍기, 대야에 담긴 수박, 한없이 늘어지는 오후. 흥미로운 건 영화가 재현한 그리움에 정확한 원본이 없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시네필들이 직접 살아보거나 겪어본 적 없는 1980년대 대만 뉴웨이브의 골목을 그리워한다. 요컨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추억하기, 원본 없는 노스텔지어라고 해도 좋겠다. 엉뚱한 고백 하나 하자면, 나는 이 영화를 보다가 헤어진 적 없는 연인을 그리는 노래들을 떠올렸다. 최신 K팝, J팝을 들으며 애틋한 이별을 앓는 요즘 세대와 마찬가지로 돌이켜보면 나 역시 신승훈의 노래를 들으며 아직 겪은 적 없는 사랑을 먼저 배웠다. 그 감정은 가짜인가. 당연히 아니다. 경험의 원본이 없을 뿐, 패턴과 표현 방식을 공유하는 순간 감정은 실제로 발생한다. <남매의 여름밤>의 공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인식 하에서 존재한다는 것처럼. 지정학적 시간에 얽매이지 않은 채 그리움의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하여 그 여름밤은 감독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니면서 결국 우리 모두가 지나온 무언가를 자극한다. 직접 겪지 않아도 향수병을 앓을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이 내게는 작지 않은 균열을 남겼다. <남매의 여름밤> 중 / © 오누필름 최근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유튜버들을 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 백룸 >(케인 파슨스, 2026)과 < 옵세션 >(커리 바커, 2026)은 흥미롭게도 모두 고전적 문법의 영화다. 10대의 침실에서 태어난 유튜브 영상 <백룸>은 캐릭터도 서사도 없이 노란 방과 형광등 소음의 이미지를 가운데 두고 해석과 재창작을 댓글창과 위키트리에 맡긴 열린 텍스트다. 반면 영화 <백룸>은 오리지널 각본 위에 배우의 얼굴을 세우고 트라우마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통과하는 닫힌 이야기다. 배우 중심의 단단한 서사, 처음과 끝이 닫힌 세계. 하지만 정작 케인 파슨스는 <백룸>을 영화화하면서 자신을 스타로 만든 유튜브의 작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니 그럼에도 젊은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려들었고 함께 집단체험을 공유했다.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극장에서 본 인생 공포영화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소가 주는 경험의 확산은 바야흐로 새로운 세대가 극장영화로 융합되는 신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변하는 경우는 없다. 어떤 것은 바뀌고 어떤 건 바뀌지 않으며 디졸브 된다. 기성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러하듯 프리 프로덕션 중심의 예술이다. 현장에서 찍는다는 행위 자체에 무게가 실린다. 반면 디지털 미디어는 포스트 프로덕션 중심이다. 렌즈가 포착한 진짜보다 소프트웨어로 빚어낸 진짜를 신뢰한다. <백룸>의 VHS 질감이 아날로그 카메라가 아니라 무료 3D 소프트웨어의 후반작업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파슨스가 극장에 가져온 것은 유튜브의 문법이 아니라 유튜브의 프로세스였다. 문법이 아니라 프로세스의 융합. 무엇보다 그는 새로운 문법에 집착하지 않았다. 새로움을 향한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길을 가릴 수도 있는 법이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소프트웨어로 아날로그의 유령을 위조해낸 이 제작 방식이야말로, 겪지 않은 것을 그리워하는 우리 시대의 뒤틀린 향수에 대한 완벽한 은유 아닌가. <백룸>의 배경은 1990년, 화면의 질감은 VHS다. 주 관객층인 20~30대는 그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백룸>의 모방된 질감이 의도와 달리 그들에게 기이한 안락함을 주었으리라 짐작한다. 왜냐하면 <백룸>의 리미널 스페이스는 연결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쓸모를 강요받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디지털에는 그리워할 게 참 많다.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꾸는 필터가 유행하고, 멀쩡한 고화질 영상을 VHS 질감으로 되돌리는 레트로 변환이 놀이가 된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질감 그 자체가 그리움의 대상이, 마음을 눕힐 안정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남매의 여름밤>으로 대표되는 시네필 세대 창작자들과 본질적인 패턴은 다르지 않다. 사실 이건 봉준호 , 박찬욱 같은 앞 세대도 마찬가지였다. 비디오 가게와 시네마테크에서 자란 이들에게 영화는 태어나기 전의 시간까지 소급되는 고향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영화라는 고향에서 시간을 초월해 만난다. 심지어 디지털은 이 영토를 무한정 확장해 우리 앞에 소환 중이다. <백룸> 중 / 사진: IMDb( 1 , 2 ) / © A24 <백룸>을 극장에서 본다는 건 시간의 때가 묻은 노란 벽지와 형광등 불빛, 낡은 카펫에서 안식을 찾는 세대가, 인류가 가장 오래 사용해 온 어두운 방에 모여 함께 악몽을 꾸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극장이야말로 현실에서 두 시간 동안 잠시 미끄러져 나가는 이행의 공간,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리미널 스페이스다. 그리하여 출구 없는 방은 무섭고, 동시에 그립다. 아무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공간이 과잉 연결의 시대를 사는 세대에게는 지옥이면서 동시에 도피처가 되는 셈이다. 무서움과 그리움이 한 몸이라는 이 양가성이야말로, 겪지 않은 것을 추억하는 마음과 함께 한 세대를 극장으로 데려온 힘일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고전적인 영화는 그리워할 대상인가. 그럴 수 있다. 그럼 그 시절의 감각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향수병에 빠진다, 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향수에 빠진 사람들은 가만히 병을 앓는 대신 온갖 것을 시도한다. 로저 디킨스는 끊어지지 않는 카메라로, 윤단비는 원본 없는 여름밤으로, 파슨스는 위조된 VHS의 유령으로. 어쩌면 새로움은 바로 그 발버둥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도달할 수 없지만 계속 향할 수밖에 없는 욕망. 일치할 수 없음에도 한없이 가까워지고자 하는 마음. 그것은 영화와 현실의 관계이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창작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1917>을 향수병이라 명명했을 때 내 감정의 바탕은 안타까움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겪어보지 못한 것을 얼마든지 추억할 수 있는 시대라면,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사실은 더 이상 병의 조건이 아니라 창작의 조건인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자면 애잔함보다는 멈추지 않는 도전과 활력을 느낀다. 그 시절 나는 극장을 나선 뒤에도 질척거리며 달라붙어 있는 영화를 더 보고 싶다고도 썼다. 어쩌면 그건 시대를 구분하며 벽을 치는 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실시간으로 마주하는 건, 매체 간 문법이 섞이면서 공유되는 확장의 순간들이다. 침묵할 줄 알았던 카메라들이 그립다는 문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이제 그 그리움은 앓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빚어내는 소리로 들린다. 향수병은 나을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불치병은 도리어 불사의 동력이 되기도 하나 보다. 문득 윌 스미스 주연의 < 나는 전설이다 >(프란시스 로렌스, 2007)가 떠오른다. 이것이 절멸의 길인지 아니면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길인지 아직 단언할 순 없다. 내가 서 있는 장소가 구 인류의 땅인지, 신 인류에 편입될 수 있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이미 무언가 변했고 부지런히 더듬어가며 뒤따르는 중이다. <백룸> 중 (사진: IMDb / © A24) 다시, 비평 과거에 봤던 영화가 요즘은 달라 보인다면, 관점은 언제부터, 어떻게, 어떤 이유로 달라진 걸까. 시간을 따라 서로 다른 형태와 색깔을 남긴 비평의 궤적을, 필자가 직접 뒤따라가 봅니다. 송경원(씨네21 편집장) l 영화 논문, 비평, 기자 글쓰기까지, 영화에 대한 서로 다른 리액션 사이에서 흔들리고 방황한지 15년. 이제야 영화 글쓰기가 나의 직업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2023년 《 씨네21 》 편집장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듯 영화를 보고, 읽고, 쓴다.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 2011년부터 부일영화상, 부천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심사위원 등 역임. 『프로듀서』(2019), 『만화 웹툰 작가 평론선―이충호』(2021),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2021, 공저),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2024) 등 집필.
사진: 필자 제공 회생(回生) < 회생 >(2026)은 제목 그대로 회생(回生)에 관한 영화다. 거의 죽어가다가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그 지난한 과정이 얼핏 담겼다. 곡절을 겪는 메마른 인물들이 언젠가 흠씬 웃기도 하고 때로는 비난이 칭찬으로 바뀌기도 하며 무겁던 세속도 일순간 탈속으로 변하기도 한다. 언뜻 회생이란 것이 타자의 구원이라거나 은총을 매개하여 전제하는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변화란 다만 자신의 고통만을 전제한다. 구제를 자처하거나 이에 도통하려는 타자의 개입은 별개의 문제이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주체는 나 자신 말고는 없다. 살아내는 것도 스스로 살아내는 것이고 스스로를 사지로 내모는 것도 나 자신이다. 그간 마셔보지 못했던 환희의 숨이 내 몸에 스며드는 순간에 선행되는 것은 다름 아닌 숨 끊길 듯 숱하게 비애를 몰아쉬었던 자신의 고통이다. 날마다 심폐소생을 받아야 할 만큼 저마다 꽉 막힌 삶을 살아가고 있으나 겨우 숨 붙들고 그런대로 곧잘 살아가는 이유, 변화의 가능성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 있다. 고통은 변한다. 그리고 변화는 그 대가를 안다. 평상심을 얻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변화는 격정에 쫓기던 시절을 기억한다. 자칫 욕심내거나 성내게 되면 감당 못 할 채무를 떠안는다는 걸 기억한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비범한 나날을 좇으려는 어리석음으로 회생 불가의 지경에 이른다는 걸 잊지 않는다. 그리하여 변화는 괴로움에 급급하여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던 삶의 구체적인 면면에, 평안에 이르기 위한 원리금을 꾸준히 상환하고자 한다. 고통과 격정으로부터 다시 빚 독촉을 받지 않기 위하여 변화는, 주고받음이 정확한 우리 삶에 실재하는 대차(貸借) 관계, 곧 업(業)에 따라 간신히 처신한다. 이러한 변제 행위는 기도가 된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이문재의 시 「오래된 기도」 중 회생한 자가 있다면, 거의 죽어가던 끝에 원인 모를 힘이 생겨 갑자기 살아낸 것이 아닐 것이다. 위와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에 자신을 일일이 맡겨보려는 무의식과 더불어 일상을 껴안게 된 몸이 저절로 평안을 찾아갔을 터이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시기만 해도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걸 한 번 믿어보려 했기에 엉겁결에 회생이란 변화를 맞이한 것이 아닐까. 업(業) <회생>의 영어 제목은 카르마(Karma)다. 그래서 이 작품은 ‘행위’에 관한 영화다. 카르마란 불변의 법칙도 운명도 아니다. 나의 사소한 몸짓과 말씨, 스치는 한 생각으로도 빚어내는 행위들이 언젠가 자기 삶에 크고 작은 굴곡을 남긴다는 오래된 상식에 가깝다. 당장 갚지 못할 금전 채무이든, 오래도록 쌓인 마음의 빚이든 이러한 상식선에서 정확하게 나타나고 또한 사라진다. 문제는 무지(無知)다. 고통의 근원이다. 과도한 빚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파산에 이르기 전까지는 스스로 어떤 행위를 짓고 살아가는지 좀처럼 모르는 것이다. 스스로 사지로 걸어 들어가고 있으면서도 이를 모른 채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끝내 죽는다. 자신의 서슴없는 행위들이 자의에 의한 죽음에 일조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반면 알게 되면, 즉시 멈춘다. 빚에 대한 오해가 깊다. 빚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이는 아군을 향한 오인 사격과 같다. 빚은 다만 출현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너무나 모르고 살았기에 이를 넌지시 일러주고자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고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고 걷기만 해도 남 부럽지 않은 충만에 이를 수 있다는 삶의 신비를 부디 모르고 살지 말라며 삶으로부터 부득이 요청되는 것이다. 빚은 마치 제 할 일을 다한다는 듯 무지와 인위에 허덕이는 이들을 저마다 찾아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결국, 빚은 단지 삶의 불화와 갈등이 몸 밖으로 드러난 통증에 지나지 않는다. 과도한 빚을 진 자가 더 이상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제야 그는 그동안 곪아 있던 속살을 마주한다. 돌연 조급해진 그에게 상처는 안중에도 없다. 애꿎게 자신과 타인을 꾸짖는다. 죄책감은 속살 깊이 파고들어 상처를 더욱 곪게 한다. 그러나 별안간 본모습을 드러낸 빚을 맞이할 수 있다면 기어이 치유의 겨를이 생겨난다. 오랫동안 차마 들여다볼 수조차 없었던 그 환부를 보살필,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때 빚은 짐이 아니다. 새살이 움트는 자리가 된다. 회생은 빚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둠은 다만 빛의 부재이다. 따로 어둠이라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무지는 앎이 비추는 곳에서만 걷히고 빚 또한 회복을 상실한 삶이 드러낸 양태에 불과하다. 불교식 표현을 빌리자면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곧 괴로움과 깨달음은 애초에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깊은 번뇌야말로 삶을 크게 돌이키는 인연이다. 회생이란 삶을 다시 배워가며 보듬어보는 일이다. 회생(懷生) 빚 몇천 몇억 탕감받기 위해 그저 회생절차를 이용하고자 법무사사무소에 구비서류만 툭 내던져놓고 가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살면서 이런 곳에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끝내 통곡을 두고 가시거나 지나온 삶의 회한에 이제는 말조차 잃은 듯 허공만 바라보다 가시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말이 과연 무얼까 고민이 짙었다. 어쩔 줄을 몰랐다. 차분히 말 듣는 것과 맡은 일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말이 있으려나 싶었다. 그런데 마주한 자의 비감을 견디질 못하고 몇 마디라도 건네야 할 것 같으면 사무원으로 일하는 나 역시 법무사인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라 말하곤 했다. 처음 보는 제 앞에서 어렵게 눈물을 보이셨지만 그래도 빚을 갚으며 살아내려는 당신의 모습이 되레 제게는 큰 위로가 된다며. 더는 말을 아끼고 속으로 되뇐다.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당신의 사망진단서와 폐쇄 가족관계등록부 몇 장으로 가족들이 대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당신 스스로 온 것이니까. 그래서 <회생>을 처음 기획하면서 언젠가 완성이 되면 고개 푹 숙이고 있는 분들에게 그저 군말 없이 이런 영화도 있으니 시간 되실 때 한번 보시라 말씀드리고 싶었다. 이 영화가 회생(懷生), 모든 살아 있는 무리, 곧 중생을 위한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순진하고 어리석은 서원이었다는 것을 날마다 절감한다. 예컨대 1999년경 사망한 어머님 생전의 1989년 발생한 은행 채무를 2026년이 되어서도 상속받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채무가 발생한 1989년 이후 30여 년 동안 총 네 차례나 양도된 채권을 최근까지 보유한 대부회사가 2026년 들어 시효연장의 소를 제기했다는 사실을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사람에게 이 <회생>이라는 영화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인간 영혼의 불안을 잠재울 그 어떤 예술과 종교도 그 채무를 대신 없애주지는 못한다. 대물림을 막기 위해서는 시효연장 소장을 송달받은 날부터 14일 안에 추후보완항소를 제기해야 하고, 상속채무의 존재를 알게 된 날부터 3개월 안에 특별상속한정승인심판을 청구해야 한다. 결국 현실의 채무를 해결하는 것은 법률이다. 그렇다고 예술이 무력한 건 아닐 것이다. 영화 < 죽은 시인의 사회 >(피터 위어, 1989)에서 키팅 교수는 “법률과 의술, 사업과 기술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고귀한 일이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라 말하지 않던가. 영화는 상속채무의 대물림을 막아낼 수는 없겠지만, 빚을 짊어진 한 인간을 이해하게 한다. 내면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삶의 목적이다. 금전 채무를 당장 탕감받는다고 해서 삶의 근원적인 병폐가 곧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회생과 파산사건에는 법률대리인을 둘 수 있을지언정, 법적 절차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알 길 없는 내면의 문제만큼은 그 어떤 대리인도 선임할 수 없고 그 어떤 절대자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삶이 요구하는 것은, 그저 자기 마음을 스스로 제때 돌보는 일이다. 마음이 문드러졌다면 그 또한 몸처럼 치유의 대상이 되며, 그 치유에도 적절한 시기와 나름의 절차가 있다. 오랫동안 몸집을 키운 상속채무를 떠안지 않기 위해서는 추후보완항소와 특별상속한정승인심판 청구를 정해진 기간 안에 해야 하듯, 마음이라는 세계에도 놓쳐서는 안 되는 시기가 있다. 적기를 놓쳐버리면 누군가는 끝내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그때 그 마음은 이미 오래도록 무거운 짐에 짓눌려온 육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 사무원으로 일하며 시를 써온 김기택 시인은 마음을 두고 이렇게 썼다. 마음이란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육체이다. 살처럼 꼬집거나 때리면 아프고 상처가 난다. 닭살도 돋고 주름살도 생기고 때도 낀다. 마음이란 육체이므로 음식과 물을 주지 않으면 굶어 죽는 것은 당연하다. 햇빛과 공기가 닿지 않으면 말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늙는 것도 병이 나는 것도 당연하다. 여느 육체와 마찬가지로 잘생긴 것과 못생긴 것이 있고 큰 것과 작은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이 있다. 그러나 마음이란 성감대보다 민감하고 오감보다 예민한, 섬세한 그만큼 망가지기 쉬운, 육체이다. - 김기택 시집 『바늘구멍 속의 폭풍』(1994) 중 법무사사무소에는 상처 입은 마음이 찾아온다. 목을 매기 직전에 가까스로 어머니의 몸을 들어 올린 아들의 마음, 실종신고 끝에 차 안에 홀로 있던 아들을 겨우 찾아낸 아버지의 마음, 이자율 1000%가 넘는 불법 사채에 휘말린 자식 좀 도와달라며 울며 발만 구르는 어머니의 마음이 밀려온다. 그러한 마음에는 아직 새살이 돋을 겨를이 없다. 깊이 패인 상처는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흉터가 되기 전까지 붕대로 감겨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큐멘터리가 함부로 담아서는 안 될 한 가지가 있다면,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다. 흉터가 되었거나, 적어도 회복의 기미가 보여야 지나온 흔적을 다른 이에게 어렵사리 꺼내 보일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상처를 내맡긴 대상과 믿음을 나누는 관계 속에서 성립한다. 그렇기에 이 예술이 되려 상처를 헤집게 된다면, 법과 종교의 오래된 폐단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다만 작품의 소재로, 사건의 구실로, 끝내는 구원의 대상으로까지 여기게 된다면 정작 돌보아야 할 저마다의 마음을 놓쳐버릴지 모른다. (그 믿음은 촬영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함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스태프와 감독 자신까지 이어진다. 2023 DMZ Docs 피치에서 만난 <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의 김영조 감독은 다큐멘터리는 세 가지 신뢰 위에 선다고 말해주었다. 감독과 스태프 사이의 신뢰, 감독과 대상 사이의 신뢰, 그리고 감독 자신에 대한 신뢰.) 다시 회생(回生) 법무사 아버지를 더 미워하다가는 내 마음에 더 큰 병이 날 것만 같았다. 그가 세상 떠난 뒤에 미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었다. 그래서 그가 숨이 붙어 있는 한 함께 채무를 갚아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내고서부터 이상한 일들이 이어졌다. 정말 하늘이 감응한 것인지 사무실 수입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매달 고정된 변제금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형편이 갖추어졌다. 밥 굶지 않고 잠잘 곳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매달 둘이서 힘겹게 번 돈이 변제금으로 모두 나갈 때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 허탈한 리듬에 몸과 마음이 곧바로 적응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번 달 변제금은 겨우 마련했는데 다음 달은 어떻게 하지 또 어떻게 버티나’ 하는 걱정이 컸다. 그러나 매달 새로운 의뢰인들이 이곳을 찾아왔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났다. 6개월, 24개월, 48개월이 흘렀다. 언제부터 빚을 갚기 시작했는지 또 얼마의 빚이 남았는지 세어 본들, 돈이 뚝 떨어지고 빚이 갚아지나 싶었다. 도대체 몇 건의 회생 파산과 채무 관련 사건을 다룬 것인지조차 모를 지경에 이르렀고 그렇게 아홉 해가 흘렀다. 빚을 갚아나가는 삶의 운율이 이제는 아예 몸에 배어 버렸다. 혹여나 한꺼번에 남은 빚을 모두 청산할 기회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또 다른 업이 되어 되돌아올까 두렵다. 업무를 두고 법무사님과 의견이 엇갈려 서로 화를 내고 감정이 상할 때면 문득 언젠가 찾아올 그리움에 대해 떠올려보려 한다. 그러면 화가 좀 가라앉는 것 같다. 아, 이 순간도 언젠가 얼마나 그리워질까. 그렇게 여기면 좀 진정이 된다. 제발 청소 좀 하라며 핀잔을 늘상 주어도 기어코 구정물 묻은 신발로 사무실 바닥을 누비고 다니는 그 발자국이 얼마나 그리워질까. 방금 전까지 다시는 말 안 걸 것처럼 다투다가도 ‘어제 쓴 서면 꽤 잘 썼더라’라는 한마디에 토라진 마음 풀리는 일은 또 얼마나 그리워질까. 서로 뭔가를 끼적여 각자의 자리 벽에 붙여놓고는 훈훈한 날이면 ‘이건 어디서 주워온 글이냐’며 서로 품평하는 시간도. 각자 퇴근한 뒤에 서로 미안하다며 자기 전 짧게 문자를 주고받는 일은 언젠가 또 얼마나 그리워지려나.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의 시 「묵화」 어떠한 종속이 현실을 외면하는 체념이 된다면 그보다 지독한 구속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종속이 현실을 긍정하는 수용이 된다면 외려 그 안에서 자유를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 나는 믿고 싶다.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마음을 품고 지내다 보니 그제야 나는 어머니에게 마음의 깊은 빚을 지고 살아왔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빚을 줄여나가도 끝없이 다채로운 빚이 찾아오는 이곳에서야 그녀와의 인연이 지닌 무게를 헤아릴 수 있었다. 그녀가 왜 비구니가 되었는지, 정확히는 왜 다시 비구니가 되었는지는 어린 내가 알 리 없었다. 자식을 둔 비구니라는 사실은, 어린아이가 알아가는 세상과는 도무지 들어맞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존재를 숨기기에 바빴고 가까운 이들이 이를 알게 될까 늘 무서워했다. 학창 시절은 물론 성인이 된 뒤에도 나는 늘 그랬다. 군대 신병교육대 수료식 날에도 보살님들과 함께 나를 보러 온 그녀에게 그냥 차 안에 계시라 했다. 그녀는 가만히 차 안에서 날 기다렸다. 군 제대 하고 2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지금 네 아버지 곁에 누군가 좀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주변에 그를 도울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제대한 뒤에야 이 이야기를 내게 꺼낸 것은 그녀 나름의 배려였던 것 같은데, 당시 나는 세상 다 무너진 것처럼 꽤 충격을 받았다. 내 첫 반응은 그랬다. 어쩌라고. 나보고 어쩌라고.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몇 있다. 사법고시를 공부하러 고시원에 간 그가 부처님 오신 날이면 절에 와 연등을 달고, 눈 많이 오면 눈 쓸러 오거나 절의 작은 하꼬방에 기숙하러 왔다가 넷마블 알까기를 하던 모습. 다시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고시원으로 향하는 뒷모습. 그런 희미한 기억 품고서 법무사를 한다는 그의 사무실로 갔다. 꼬질꼬질한 모습이 그대로였다. 이 사무소에서 수많은 이들의 기구한 사연과 삶의 몸짓을 듣고 본 뒤에야 나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녀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긴 사찰 빚을 대신 갚고자 다시 승복을 입고서 아무도 갚지 않으려는 빚을 스무 해 넘도록 묵묵히 갚아왔다는 사실이 비로소 가슴에 사무쳤다. 새벽녘 도량석을 마치고 향냄새 풍기며 어린 내가 자는 곁으로 와 다시 잠들던 그녀가 지금의 나처럼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는 걸 그토록 몰랐다.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원망은 지금도 나를 부끄럽게 하고 아직도 나를 짓누른다. 비구니 스님은 어린 내게 라면을 종종 끓여주었다. 라면 냄비 안에 떠 있는 긴 머리카락을 발견하고는 나는 스님에게 투덜거렸다. 왜 머리카락이 여기 있느냐며, 머리카락이 들어간 음식은 먹기 싫다고. 나는 머리카락을 끄집어내고 다시 라면을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스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스님은 제 머리카락 하나에 씩씩대며 다른 이를 탓하는 어린 내가 얼마나 우스웠을까. 아버지의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그의 빚을 굳이 드러내고자 했던 내 욕망은, 그간 어머니의 존재를 숨기느라 그녀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고자 했던 부채감에서 비롯된다. 어쩌면 그 청산 과정에서 시심(詩心)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사무소 출퇴근길마다 많은 시인들의 시를 외웠다. 언젠가 그들처럼 살아보겠노라 다짐했으나 내게는 시 쓰는 재주가 없다는 걸 일찍이 알았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고마운 시를 내어준 시인들에게도 참 많은 빚을 졌다. 그러다 운 좋게도 다큐멘터리와 연이 닿았다. 이 인연은 또 언젠가 얼마나 큰 빚으로 남게 될는지. 부모에 대한 영화를 만들며 안도현 시인의 시론 [1] 을 여러 번 읽었다. 시는 부모와 절대자에게 마음을 바치는 양식이 절대 아니라고 한다. 부처를 우러르면 불경을 읽고 절을 하면 되는 것이고 부모를 공경하면 지극히 효도를 다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부처와 예수와 부모를 시에다 쓰고 싶어 못 견디겠으면 부처의 말씀을 관념의 테두리 안에 가둬버리고 실천할 줄 모르는 자들에 대해 쓰고 또 부모의 비겁함과 치부와 죄를 찾아 쓰라 한다. 무엇을 위해서도 누구를 위해서도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나는 역시나 시 쓰기에 실패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먼저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시든 시적인 것이든 그 이후의 일이다. 이 영화의 한글 제목 ‘회생’이 법무사(아버지)라는 외피를, 영어 제목 ‘KARMA’가 비구니(어머니)라는 내피를 나란히 품기를 바랐다. 어린 시절의 내게 이 둘은 결코 만나서는 안 되는 세계였다. 다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승과 속이 본래 둘이 아님을 믿고 싶었다. 서로를 배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세계를 한 스크린에 놓아두고자 그 사이에서 나는 좀 앓았다. 비구니 스님이 울린 범종 소리로 끝맺는 <회생>의 마지막 장면은 앞서 언급한 이문재 시인의 시 「농담」 [2] 의 마지막 연에 빚을 졌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1] 안도현,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한겨레출판, 2023. 3. 17. [2] 이문재, 『제국호텔』, 문학동네, 2012. 12. 17. 김면우(영화감독) l < 회생 >(2026)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