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실
- 감독
- 추상미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예수정, 김광덕
서울아트시네마 1층 구매표소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시네마테크 운동의 결실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탄생하다 서울아트시네마 는 사단법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운영하는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로, 한국의 시네마테크 운동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형성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시네필 문화가 번성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2000년대로 넘어오는 시기, 불법 복제된 VHS를 구해 함께 보는 관행에서 벗어나 저작권자의 허가를 받아 정식으로 영화를 상영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서울에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문을 열었고, 전국 각지에도 협의회에 소속된 시네마테크 성격의 극장들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현재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 대전아트시네마 , 광주극장 등이 협의회 소속 상설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청주의 씨네오딧세이와 제주 씨네아일랜드 등은 특별전과 다양한 기획을 통해 영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협의회 초기부터 대표를 맡은 故 최정운 대표가 단체의 틀을 잡는 일에 힘썼고, 현재는 곽용수 대표가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탄생과 이동의 역사 1990년대부터 비디오테크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던 ‘문화학교 서울’은 2000년대로 접어들며 안정적이고 공식적인 영화 상영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빌린 공간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시작된 활동은 상설 극장의 필요로 이어졌고, 여러 사람의 노력을 모아 2002년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안정적인 재정 구조를 갖추기 어려운 민간 시네마테크의 특성상 서울아트시네마는 여러 공간을 옮겨 다니며 운영되었다. 2007년부터는 종로 낙원상가 옥상에 위치한 허리우드극장 으로 자리를 옮겨 180석 규모의 극장으로 운영되었다. 2개관으로 구성된 허리우드극장의 한 관을 서울아트시네마가 사용했고, 옆 관은 필름포럼 이 사용했다. 이후 필름포럼이 떠난 자리에는 노년층을 위한 영화관 ‘실버시네마’가 들어섰고, 위층에는 <사랑한다면 춤을 춰라> 뮤지컬 공연장이 운영되었다. 극장 시설의 노후화와 주변 입지 문제로 서울아트시네마는 2015년 4월 서울극장 11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극장에서 운영되던 시기에는 옆 관에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함께 자리하면서 서울극장 자체가 시네필들에게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영화 상영업 전반이 큰 타격을 입고 서울극장도 문을 닫게 되자, 서울아트시네마는 여러 후보지 가운데 과거 정동극장이 운영되었던 경향아트힐 건물로 옮겨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 외관 서울아트시네마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많은 시네필들의 기억도 함께 쌓였다. 아트선재센터 주변의 고즈넉한 분위기, 낙원상가 옥상의 눈 내리던 밤, 서울극장 앞 포장마차의 풍경은 그 시절의 예술영화와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한 고전영화들과 함께 기억된다. 이를 증언하는 기록과 회고 역시 곳곳에 남아있다. 현재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으로 올라오는 길과 미술관·박물관이 어우러진 지역의 문화적 풍요가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에 새로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공간과 시설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시 종로구 정동 경향신문사 경향아트힐 2층에 자리하고 있다. 1층에 있었던 매표소는 현재 사용하지 않고 흔적만 남아 있으며, 현재는 2층에 매표소와 라운지가 마련되어 있다. 라운지는 영화관 특유의 단정한 분위기를 위해 조도를 낮게 유지하고 있으며, 서울아트시네마의 역사를 보여주는 포스터와 책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매표소에서는 티켓 발권 외에도 책자 구입과 관객회원 및 후원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단관으로 운영되는 상영관은 230석 규모로, 독립예술전용관 가운데서도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휠체어석은 객석 후미 좌우측에 총 4석이 마련되어 있으며, 휠체어 이용자는 2층으로 올라올 때 계단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할 수 있다. 상영관은 과거 공연장으로 사용된 적이 있어 뒤편에 분장실 공간이 남아 있으며, 현재는 회의실과 게스트 대기 공간, 창고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무실은 상영관과 떨어져 있지만 중앙 통로를 지나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서울아트시네마 로고가 있는 입구를 통해 연결된다. 상영관 상영 시설은 시네마테크라는 지향에 맞게 다양한 매체를 상영할 수 있도록 갖추어져 있다. DCP 프로젝터는 4K 사양이며, 그 외에도 35mm 영사기 2대, 16mm 영사기 1대, 자막 영사용 별도 프로젝터가 객석 후미에 마련되어 있다. 자주 사용되지는 않지만 HDCAM, DVCAM, Blu-ray, DVD, miniDV, VHS 등 다양한 매체를 상영할 수 있는 데크와 플레이어도 구비되어 있다. 지속가능한 근무와 극장 운영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진은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으면서도 긴밀하게 협업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프로그램 디렉터, 프로그래머 2인, 영사기사 2인, 사무국장, 매표 및 회원 관리 2인, 홍보 담당, 회계 담당 비상근 직원, 자막팀장 등 총 10인이 상근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 밖에도 디자이너 1인이 극장 소속은 아니지만 전속 계약을 통해 홍보물 디자인 전반을 맡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오후 1시에 첫 상영을 시작해 오후 10시에 마지막 상영을 마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상영 작품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영된다. 개점 시간이 늦은 것은 영사기사와 운영진의 지속가능한 근무를 고려한 기준이 반영된 결과다. 2층 매표소 로비 티켓은 지금도 영수증 형태가 아닌 종이 티켓으로 발권되고 있어 이를 모으는 관객들도 있다. 온라인 예매는 ‘타이티 티켓’ 시스템을 통해 가능하다. 관람료는 일반 9천 원이며, 연회비 6만 원의 관객회원으로 가입하면 1년 동안 모든 영화를 5천 원에 관람할 수 있다. 현재 관객회원은 약 3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밖에도 10회 관람권을 8만 원에 판매하고 있으며, 청소년·65세 이상·장애인에게는 3천 원 할인 혜택이 적용된다. 상영 시작 15분 후 입장 금지, 음식물 반입 금지 등의 운영 원칙이 있으며, 노쇼 방지를 위해 시네토크가 포함된 회차는 당일 취소가 불가능하다. 또한 비영리 극장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광고를 상영하지 않는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와 ‘시네 바캉스’ 독립예술영화관 가운데서도 서울아트시네마는 독특한 프로그램 구성을 보여주지만, 상영작 선정의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좋은 영화를 상영한다”라는 것이다. 다만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상영되는 작품은 우선순위에서 제외된다. 요컨대 좋은 작품이면서도 다른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영화들을 우선적으로 소개하는 셈이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1년 내내 기획전이 이어지며, 고전영화와 동시대 예술영화를 고르게 상영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이 찾는 대표 프로그램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와 ‘시네 바캉스’다. 2006년에 시작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9명의 친구들과 함께 출발했다. 시네마테크라는 이름이 아직 낯설던 시절부터 그 필요성과 존재를 널리 알리고자 했던 캠페인의 성격이 강한 영화제로, 평론가와 영화감독, 배우들이 참여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현재까지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이 찾는 영화제로 자리하고 있으며, 올해까지 18회를 이어오고 있다. 역대 기획전 포스터 전시 여름 휴가철에 맞춰 열리는 ‘시네 바캉스’ 역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못지않게 많은 관객이 찾는 대표 프로그램으로, 고전영화와 동시대 영화를 아우르는 주제별 상영을 이어오고 있다. 이 밖에도 감독 회고전과 특정 지역, 영화 사조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기획이 계속되고 있다. 2025년에는 보이체크 하스, 유디트 엘레크, 구로사와 기요시 등의 감독 회고전을 준비했다. 영화 자체가 되는 영화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연 3만 명 아래로 떨어졌던 관객 수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2024년의 연간 총관객 수는 약 3만 6천 명이었다. 관객회원 대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20~30대로 나타났지만,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관객층은 10대부터 노년층까지 폭넓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한편으로 ‘특이한 관객이 많은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상영 중 소음을 지적하는 장면 같은 에피소드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회자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영진의 말에 따르면 실제 극장을 찾는 관객층은 매우 다양하다. 조용히 혼자 영화를 보는 관객도 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를 즐기는 관객도 있으며, 오랜 시간 극장을 찾아온 연령대 높은 관객들 역시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표소 차단벽 홍보물 김보년 프로그래머는 이상적인 영화관을 두고 “개성이 없는 영화관”이라고 말한다. 특정한 공간의 인상보다 그곳에서 본 영화의 기억이 또렷하게 남는 극장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아트시네마는 좋은 영화를 가장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100년 뒤에도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여전히 존재하고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남아 있다면, 누군가가 첫 번째 영화를 보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는 체험의 본질이 ‘내가 없는 세계를 보는 경험’이라면, 서울아트시네마는 누군가의 인생 첫 영화의 기억이 남고, 그 기억이 훗날 다시 그리움으로 돌아오는 공간이기를 바라고 있다.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3, 경향아트힐 2층 (경향신문사 건물)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개관, 낙원동 허리우드 극장과 종로3가 서울극장을 거쳐 현재 위치로 이전 2) 설립일 : 2002년 5월 10일 3) 운영주체 :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 곽용수) 4) 공간 구성 - 경향아트힐 2층을 타 엔터테인먼트 공간과 나누어 사용 중 - 230석 규모 1개관 및 대기공간, 매표소, 사무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음 5) 극장 규모 : 1개관 230석, 휠체어석 4석 6) 운영시간 및 정기휴무 - 첫 상영 오후 1시, 마지막 상영 종료 오후 10시 기준으로 상영 작품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영 -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7) 입장료 및 할인 정책 - 일반 9,000원, 관객회원 5,000원(연회비 6만원), 10회권 8만원, 청소년/65세이상/장애인 할인 6,000원 - 현장 예매 및 TINY TICKET을 통한 온라인 예매 가능 8) 조직 구성 -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하는 주체 - 서울아트시네마 조직은 팀으로 나뉘어 있지 않으나 크게 프로그램 파트, 영사 파트, 사무 및 운영 파트로 구분할 수 있음 9) 구성원 : 상근 10인, 비상근 1인, 외부전속 1인 - 프로그램 디렉터 1인 / 프로그래머 2인 / 사무국장 1인 / 영사기사 2인 / 매표 및 회원 관리 2인 / 홍보 1인 / 회계 1인 / 자막팀장 1인 (비상근) / 디자이너 1인 (외부 전속) 10) 주요 장비 - 35mm 영사기 2대 / 16mm 영사기 1대 / 4K DCP 프로젝터 / HDCAM / DVCAM / VHS / miniDV 상영용 데크/ (시네마테크 정체성에 따라 모든 매체를 상영할 수 있도록 함) 취재 일자: 2025년 6월 17일 글/인터뷰 진행: 김문경 사진: 허 성
누군가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흔적과 기억이 담긴 사진첩 속에서 그 누군가는 영화 한 편의 주인공이 됩니다. 사진첩의 주인공은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죠. 그렇다면 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한 ‘어느 영화인의 사진첩’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많은 영화인들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그 사진첩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경기도 시흥군 동면 안양리(현 안양시), 얼핏 봐도 백 명은 족히 넘어 보일 정도로 인파가 북적이는 이곳.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일까? 흙먼지 폴폴 날리는 공사장에 말이다.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고, 짓고 있는 중으로 보이는 콘크리트 건물 앞에서 멋들어지게 늘어서서 단체 사진은 또 왜 찍고 있는 걸까? 혹시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것일까? (좌) 홍찬, 현제명 등 / (우) 박계주, 조경희 (좌) 한형모, 허백년, 이진섭 등 / (우) 김학성, 유계선 등 엄청나고 대단한 것이 들어설 것 같은 흥분으로 가득한 이곳은 다름 아닌, 동양 최대 규모의 영화 스튜디오가 될 수도영화사(대표 홍찬 ) 안양촬영소 정초식 및 상량식(이하 정초식) 현장이다.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 속 여러 장에 걸쳐 발견되는 일련의 사진들에는 수도영화사 사장 홍찬과 현제명 박사, 문학가 박계주 와 조경희, 시나리오 작가 유한철 과 이진섭 , 영화평론가 임영 과 허백년 , 스틸 작가 백영호 , 감독 한형모 , 배우 이민 과 유계선 등의 인물들이 포착되어 있다. 생전 이 사진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던 촬영감독 김학성 의 모습 역시 박혀있다. 그러나 이 행사에는 문화계 인사만 자리한 것이 아니었다. 단신에 가까운 신문 기사와 이승만 대통령의 동정을 따라가는 <대한뉴스>에서 확인되는 이날의 공식 기록은 이러하다. 안양촬영소 정초식은 1956년 10월 17일 오전 11시, 경기도 안양리 공사 현장에서 수도영화사 사장 홍찬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여기서 현제명 박사는 공사 경과를 보고했고, 이승만 대통령과 최규남 문교부 장관의 축사가 이어졌다. *주1 그 밖에도 여기에는 당시 민의원 의장이었던 이기붕과 내무부 장관이었던 이익흥 등의 정부 인사 역시 자리했다. 영화배우 주증녀 가 영화인 대표로서 단상에 올라 대통령에게 꽃다발을 전달했고, 정초식 이후 대통령은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촬영소 모형도를 살폈다. *주2 이 같은 공식 기록을 놔두고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의 사진들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그것이 다름 아닌 ‘개인의 기록’이라는 데 있다. 객관적인 사실을 열거하며 대통령의 동정에 초점을 맞춘 공적 보도와 달리, 이 일련의 사진들은 순수하게, 안양촬영소 건립에 들뜬 영화인의 시선으로 기록된 것들이다. <대한뉴스>에서 전달되는 근엄하고 정제된 분위기와 달리, 사진은 어딘가 다소 어수선하고 북적인다.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시각 요소만 담겨 있지만, 그럼에도 왠지 이곳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는 대화 소리, 북적이는 인파와 공사장의 소음이 그대로 들리는 것만 같다. 공적 기록과 달리 정제되지 못한 개인의 사진(심지어 이 사진들은 인화되지 못한 채 필름으로 남아 있다)은 이렇게 예상외의 것마저 전달한다. 그렇다면 영화인뿐 아니라 여러 문인과 정부 관계자들이 나서서 모두 축하하고 있는 안양촬영소 건립이란 당시에 어떤 의미였을까? 일제강점기 때부터 국내의 영화인들은 영세한 자본에다 촬영소는 물론이고 변변한 영화 기자재도 없는 현실을 탄식하며 탄탄한 자본력을 가진 영화 기업을 기대했고, 영화 예술을 위해 헌신하는 굴지의 독지가가 나타나길 바라는 비현실적인 꿈을 꾸기도 했다. 해방을 맞이했지만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고 한국전쟁으로 그나마 있는 시설마저 파괴되었으니, 영화인들이 느꼈을 실망과 좌절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고 쉬이 짐작 가능하다. < 춘향전 >(이규환, 1955년 국도극장 개봉) 흥행을 계기로 영화 제작에 숨통이 조금 트였다고는 하지만, 안양촬영소가 개소하기 전까지 국내에 있는 영화촬영소라고는 미국의 아시아재단 원조로 들여온 기자재를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정릉 스튜디오와 < 자유부인 >(한형모, 1956)의 제작사 삼성영화사가 서울 군자동에 설립한 삼성스튜디오 정도였다. 이마저도 모두 안양촬영소가 한창 공사 중이던 1957년의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1956년 10월의 안양촬영소 상량식이 영화계, 나아가 문화계 전반의 큰 행사이자 축제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안양촬영소는 대지 면적 32,000평, 건평 5,400평의 규모로, 자타공인 당시 동양 최대 스튜디오였다. 한국영화 1세대 촬영기사이자 테크니션이던 이필우 의 설계를 바탕으로, 3개의 스튜디오(500평, 380평, 150평)와 래보라토리(105평), 녹음실(60평), 소도구 및 대도구 제작실(150평), 분장실(100평), 촬영 장비 저장소(100평) 등을 구비했고, 식당과 샤워실, 총 3,300kW 출력이 가능한 변전실 3개 등의 부대 시설까지 완비했다. 기자재로는 당시 접하기 힘들었던 미첼 NC 카메라 3대와 웨스트렉스 녹음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최신 설비와 시설을 자랑했다. *주3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확인되는 이 같은 모습을 차츰 갖춰가고 있던 1956년 10월, 사진 속의 이날은 그렇기에 더욱 흥분과 경이로 가득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근사하게 차려입고 이곳에 모인 많은 이들의 상기된 표정은 안양촬영소가 영화인들에게 와닿는 의의를 설명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한편 안양촬영소가 여전히 한창 공사 중이던 1957년 3월의 어느 날, 수도영화사 대표 홍찬은 《국제영화》와의 인터뷰에서 촬영과 조명, 소품, 의상, 메이크업 등의 기술 스태프 500여 명을 전속으로 기용할 예정임을 은연중에 밝히기도 했다. *주4 홍찬이 발표한 이 말이 사실이라면, 수도영화사의 안양촬영소 건립은 영화인들에게 또다시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속’이라 함은 곧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도영화사가 안양촬영소 건립과 함께 제시한 청사진은 영화인들이 불안정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수도영화사와 전속 계약을 맺은 스태프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지만, 위 사진들의 원 소장자 김학성이 수도영화사와 촬영감독 전속 계약을 맺은 사실은 그의 컬렉션을 통해 확인된다. 김학성의 수도영화사 전속 촬영감독 임명장 (한국영화박물관 상설 전시 자료, 우측은 필자의 한글 병기) 수도영화사의 전속 촬영감독으로서, 김학성은 이곳에서 수도영화사 안양촬영소 창립 작품 < 생명 >(이강천, 1958)의 촬영을 담당했다. 그 과정에서 그에게도 수도영화사 전속 촬영감독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안양촬영소 상량식 사진들 못지않게,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에는 그가 <생명>을 촬영할 당시에 찍은 사진들이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도영화사 사무실에서 촬영된 필름을 검토하고 있는 모습부터 <생명> 고사 현장, 한강 로케이션 촬영 현장과 안양촬영소 세트장에 이르기까지, 사진 자료만도 89점에 달한다. 이는 그가 참여한 작품에 관한 컬렉션 사진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인들의 환대를 받으며 성대하게 지어진 수도영화사 안양촬영소의 수명은 안타깝게도 그리 길지 못했다. 수도영화사는 창립 작품 <생명>에 이어 < 낭만열차 >(박상호, 1959)를 제작했지만, 두 작품의 잇따른 흥행 부진으로 수십억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안양촬영소는 1959년 4월 부도 처리되며 상업은행의 관리로 넘어갔다. 이후 선민영화사와 홍성기 감독, 범아영화사가 잠시 운영을 맡기도 했지만, 한동안 방치되었고 1966년,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 인수돼 안양필름(1967~1968), 안양영화제작주식회사(1970~1973) 등의 스튜디오로 활용되었다. *주5 *** 주1. “안양촬영소 정초식 성대”, 《조선일보》 1956. 10. 18., (석)3면. 주2. “ 대통령 각하, 안양촬영소 정초식에 임석 ”, <대한뉴스> 제94호, 1956. 10. 주3. 안재석, 「 안양촬영소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주4. “[신춘대담 no.3] 현란한 문화기업의 개화전: 영화산업의 왕자 ‘수도’의 구상”, 《국제영화》 1957년 4월호(15호), 93쪽. 주5. 안재석, 앞의 글; 조준형, 『영화제국 신필름』, 한국영상자료원, 2009.
꿈. 이라는 글자를 적어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모양에서 조금 묘한 느낌이 든다. 또 모양만큼이나 발음 역시 묘하다. 꿈. 꿈. 의뭉스럽기도 하고 초탈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여튼 뭔가 꿈꿈한 느낌이랄까. 또 하나 재미난 점이 있다. 우리가 ‘꿈’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보통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된다. 잠을 자면서 나타나는 어떤 정신적인 현상을 가리키는 ‘꿈’(꿈1)과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나타내는 ‘꿈’(꿈2). 이 두 가지 의미는 언뜻 봐선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 같진 않지만, 같은 모양의 글자를 사용하고 있다. 신기한 점은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영어에서 Dream이라는 단어 역시 꿈1과 꿈2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일본어에서도 꿈을 나타내는 ‘유메(ゆめ)’라는 단어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꿈’이라는 단어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두 가지 의미는, 인류학적으로 뭔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광국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인 < 꿈보다 해몽 >을 보며 나는 꿈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두 가지 의미의 연관성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더 이상 관객이 찾지 않는 연극을 때려치우고 나온 한 여배우( 신동미 분)가, 과학수사보다는 꿈 해몽에 능한 형사( 유준상 분)를 만나며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는 여배우가 꾸었던 꿈으로 들어갔다가 그것을 해석해주는 형사의 이야기와 형사 누나가 꾼 꿈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여배우가 1년 전에 헤어졌다는 전 남자친구 ( 김강현 분)의 꿈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영화는 쉴 새 없이 현실과 꿈 사이를 들락날락거린다. 나는 우연한 기회로 영화를 두 번 보았는데, 처음 볼 땐 자연스레 꿈1에 집중하며 보았다. 즉, 꿈1의 관점으로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와 그 경계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이야기에 자연스레 집중되었다. 꿈과 현실의 불분명한 경계와 그 상호작용이 꽤나 흥미로웠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 인셉션 >이 비교적 논리적인 체계 아래에서 꿈속의 꿈으로 들어간다면, < 꿈보다 해몽 >은 논리적 전개과정이 무의미한, 말 그대로 꿈에 가깝게 꿈을 그려낸다. 그리고 얼마 뒤 두 번째로 영화를 보았다. 같은 영화였지만 다른 영화였다. 이번엔 꿈2에 포커스를 맞춰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연기라는 꿈을 박차고 나온 여배우, 그녀와 헤어진 뒤 자신의 꿈을 버리고 현실 세계로 사라져버린 전 남자친구,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소년과 그것을 끊임없이 지우려고 하는 소년의 엄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들 모두 표면적으로 꿈1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모두 자신의 꿈2에 대해 갈등하고 성찰한다. 영화는 연기를 그만두겠다며 무대를 박차고 나온 여배우의 모습으로 시작해, 곧 시작될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분장실 거울 앞에 앉은 여배우의 미소에서 끝을 맺는다. 그 미소에서 느껴졌던 긍정의 에너지가, 결국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꿈(1+2)에 대한 해몽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야기 구조에 이끌렸다면, 영화를 다시 보며 더욱 깊게 다가왔던 건 각박한 현실 속에서 꿈2에 대한 용기를 잃어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응원의 메시지였다. 꿈1을 통해 비로소 다시 만나게 된 꿈2라는 존재. 꿈2에 대한 자각을 통해 새롭게 경험하는 꿈1의 모습들. 비록 아직 현실에서 일어나진 않았지만, 어떤 기대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진 꿈이라는 존재. 서로 마주 보며 닮아가는 두 개의 꿈은 하나의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영화를 보며 했다. 어쩌면, 꿈의 어원에 대한 영화적인 답변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