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가
- 감독
- 안정호
- 제작년도
- 2018
<백룸> 중 (사진: IMDb / © A24) 기억에 남는 불안이 있다. < 1917 >(샘 맨데스, 2019)에서 데번셔 연대의 무모한 돌진을 막아낸 스코필드가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야전병원 막사에 당도했을 때, 나는 영화가 쌓아온 서스펜스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불안에 사로잡혔다. 막사 저 멀리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 순간부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화 내내 스코필드에게 밀착해 있던 카메라가 거의 유일하게 인물을 놓아두고 홀로 날아오르기 시작했고 끝내 그 나무 아래서 이야기의 문을 닫는다. 눈을 뜬 남자가 한바탕 소동을 끝내고 다시 나무 아래서 눈을 감는 이야기. 헛웃음이 나올 만큼 도식적인 수미쌍관 구성은 경탄스러운 카메라 무빙을 한 편의 허탈한 동화로 바꿔놓았다. 극장을 나서며 이렇게 적었다. “대체로 무용(無用)한 것들을 사랑하는 편이다. <1917>은 카메라의 쓸모, 자신의 효용을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는 것 같아 왠지 안쓰러웠다. 문득 침묵할 줄 알았던 카메라들이 그립다.” 당시 편협한 판단을 요약하면 이렇다. <1917>은 촬영 방식이 제일 앞자리에 놓인 영화다.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 스스로 밝혔듯 이 영화에서 물리적인 아날로그 롱테이크는 최장 7분 남짓, 나머지는 교묘한 트릭으로 이어 붙인 착시다. 끊어지지 않는 카메라를 위해 서사가 설계됐는데, 결과적으로 이야기 구성은 기이하리만치 게임에 가까워졌다. 참호에서 트럭으로, 불타는 마을에서 강물로 이어지는 여정마다 이름난 배우들이 마치 게임 속 NPC처럼 배치되어 병사를 다음 구간으로 안내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서사를 위한 카메라가 아니라 카메라를 위한 서사가 되어버렸다. 말하자면 <1917>의 연결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의 결과가 아니라 ‘연결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그 유려한 롱 컨티뉴이티 숏은 전장을 재현하는 대신 관객을 안전한 가상현실로 소환해 버린다. 영화적인 것,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극한까지 추구한 결과가 역설적으로 영화로부터 멀어지는 기이한 종착지에 다다른 셈이다. 2020년 무렵의 나는 그 어긋남을 두고 ‘영화를 향한 향수병’이란 딱지를 붙였다.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지만 끝내 다다를 수 없는 곳을 바라보며 앓는 병. 향수병은 애초에 돌아갈 수 없음을 전제로 성립하는 상태이므로 그리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고백한다. 그땐 일말의 허세와 더불어 형식주의자를 향한 결벽 비슷한 감정이 작동했던 것 같다.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에 유난히 위화감을 느끼는 편이다. 스타일에는 목적과 필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싶은 말이 어떤 결과물로 이어진 형태가 곧 형식이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렇기에 방향과 결과, 의지와 형태가 어긋난 순간들을 만나면 한참 생각에 잠기곤 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원래 하고 싶었던 게 뭘까. 시간이 흘러, 정확히는 새로운 세대의 물결을 겪으며 질문의 방향이 슬며시 바뀌는 중이다.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입에 올리던 ‘영화적인 것’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런 고정불변의 대상이 있긴 한 걸까. 영화가 무엇인지 묻는 것만큼 본질적이고 동시에 바보 같은 질문도 없다. 그건 목적지라기보단 그저 지향에 불과하다. 본래 큰 질문에서는 답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법이다. 현 시점 내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영화적인 것’이란 지표에 절대성 따윈 없다는 믿음이다. 아주 협소한 경험에 근거하여, 영화적인 것의 실체는 ‘경험에 근거한 익숙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한 시절의 관습이다. 심지어 이 관습의 수명은 길어야 20~30년, 대체로 한 세대보다 짧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체험을 절대적인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1950년대에 완성된 몇몇 형식들을 ‘시네마틱’이라 일컫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거칠게 말해 오늘날 영화적인 것이라며 유통되는 상당수의 기법은 1950년대 이후, 좁게 잡으면 1970~80년대에 유행하거나 영향을 미친 스타일에 가깝다. 이를테면 슬로우 시네마가 롱테이크를 거쳐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그렇다. <1917>의 롱 컨티뉴이티 숏이 증명하고자 한 ‘영화적인 접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도 그저 본인이 만들어온(그리고 지나온) 영화라는 영토에 대한 향수에 잠긴 게 아닐까 싶은 의심. <1917> 중 (사진: IMDb / © Amblin Entertainment, ㈜스마일이엔티, ㈜씨제이이엔엠) 의심을 심화시킨 건 <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2019)이었다. 그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내내 윤단비 감독의 심경을 상상했다. 이 젊은 창작자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윤단비 감독의 영화에는 지난 세기의 끝자락, 그 언저리의 여름이 고여 있다. 2층 양옥집과 낡은 선풍기, 대야에 담긴 수박, 한없이 늘어지는 오후. 흥미로운 건 영화가 재현한 그리움에 정확한 원본이 없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시네필들이 직접 살아보거나 겪어본 적 없는 1980년대 대만 뉴웨이브의 골목을 그리워한다. 요컨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추억하기, 원본 없는 노스텔지어라고 해도 좋겠다. 엉뚱한 고백 하나 하자면, 나는 이 영화를 보다가 헤어진 적 없는 연인을 그리는 노래들을 떠올렸다. 최신 K팝, J팝을 들으며 애틋한 이별을 앓는 요즘 세대와 마찬가지로 돌이켜보면 나 역시 신승훈의 노래를 들으며 아직 겪은 적 없는 사랑을 먼저 배웠다. 그 감정은 가짜인가. 당연히 아니다. 경험의 원본이 없을 뿐, 패턴과 표현 방식을 공유하는 순간 감정은 실제로 발생한다. <남매의 여름밤>의 공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인식 하에서 존재한다는 것처럼. 지정학적 시간에 얽매이지 않은 채 그리움의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하여 그 여름밤은 감독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니면서 결국 우리 모두가 지나온 무언가를 자극한다. 직접 겪지 않아도 향수병을 앓을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이 내게는 작지 않은 균열을 남겼다. <남매의 여름밤> 중 / © 오누필름 최근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유튜버들을 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 백룸 >(케인 파슨스, 2026)과 < 옵세션 >(커리 바커, 2026)은 흥미롭게도 모두 고전적 문법의 영화다. 10대의 침실에서 태어난 유튜브 영상 <백룸>은 캐릭터도 서사도 없이 노란 방과 형광등 소음의 이미지를 가운데 두고 해석과 재창작을 댓글창과 위키트리에 맡긴 열린 텍스트다. 반면 영화 <백룸>은 오리지널 각본 위에 배우의 얼굴을 세우고 트라우마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통과하는 닫힌 이야기다. 배우 중심의 단단한 서사, 처음과 끝이 닫힌 세계. 하지만 정작 케인 파슨스는 <백룸>을 영화화하면서 자신을 스타로 만든 유튜브의 작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니 그럼에도 젊은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려들었고 함께 집단체험을 공유했다.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극장에서 본 인생 공포영화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소가 주는 경험의 확산은 바야흐로 새로운 세대가 극장영화로 융합되는 신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변하는 경우는 없다. 어떤 것은 바뀌고 어떤 건 바뀌지 않으며 디졸브 된다. 기성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러하듯 프리 프로덕션 중심의 예술이다. 현장에서 찍는다는 행위 자체에 무게가 실린다. 반면 디지털 미디어는 포스트 프로덕션 중심이다. 렌즈가 포착한 진짜보다 소프트웨어로 빚어낸 진짜를 신뢰한다. <백룸>의 VHS 질감이 아날로그 카메라가 아니라 무료 3D 소프트웨어의 후반작업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파슨스가 극장에 가져온 것은 유튜브의 문법이 아니라 유튜브의 프로세스였다. 문법이 아니라 프로세스의 융합. 무엇보다 그는 새로운 문법에 집착하지 않았다. 새로움을 향한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길을 가릴 수도 있는 법이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소프트웨어로 아날로그의 유령을 위조해낸 이 제작 방식이야말로, 겪지 않은 것을 그리워하는 우리 시대의 뒤틀린 향수에 대한 완벽한 은유 아닌가. <백룸>의 배경은 1990년, 화면의 질감은 VHS다. 주 관객층인 20~30대는 그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백룸>의 모방된 질감이 의도와 달리 그들에게 기이한 안락함을 주었으리라 짐작한다. 왜냐하면 <백룸>의 리미널 스페이스는 연결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쓸모를 강요받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디지털에는 그리워할 게 참 많다.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꾸는 필터가 유행하고, 멀쩡한 고화질 영상을 VHS 질감으로 되돌리는 레트로 변환이 놀이가 된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질감 그 자체가 그리움의 대상이, 마음을 눕힐 안정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남매의 여름밤>으로 대표되는 시네필 세대 창작자들과 본질적인 패턴은 다르지 않다. 사실 이건 봉준호 , 박찬욱 같은 앞 세대도 마찬가지였다. 비디오 가게와 시네마테크에서 자란 이들에게 영화는 태어나기 전의 시간까지 소급되는 고향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영화라는 고향에서 시간을 초월해 만난다. 심지어 디지털은 이 영토를 무한정 확장해 우리 앞에 소환 중이다. <백룸> 중 / 사진: IMDb( 1 , 2 ) / © A24 <백룸>을 극장에서 본다는 건 시간의 때가 묻은 노란 벽지와 형광등 불빛, 낡은 카펫에서 안식을 찾는 세대가, 인류가 가장 오래 사용해 온 어두운 방에 모여 함께 악몽을 꾸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극장이야말로 현실에서 두 시간 동안 잠시 미끄러져 나가는 이행의 공간,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리미널 스페이스다. 그리하여 출구 없는 방은 무섭고, 동시에 그립다. 아무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공간이 과잉 연결의 시대를 사는 세대에게는 지옥이면서 동시에 도피처가 되는 셈이다. 무서움과 그리움이 한 몸이라는 이 양가성이야말로, 겪지 않은 것을 추억하는 마음과 함께 한 세대를 극장으로 데려온 힘일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고전적인 영화는 그리워할 대상인가. 그럴 수 있다. 그럼 그 시절의 감각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향수병에 빠진다, 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향수에 빠진 사람들은 가만히 병을 앓는 대신 온갖 것을 시도한다. 로저 디킨스는 끊어지지 않는 카메라로, 윤단비는 원본 없는 여름밤으로, 파슨스는 위조된 VHS의 유령으로. 어쩌면 새로움은 바로 그 발버둥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도달할 수 없지만 계속 향할 수밖에 없는 욕망. 일치할 수 없음에도 한없이 가까워지고자 하는 마음. 그것은 영화와 현실의 관계이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창작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1917>을 향수병이라 명명했을 때 내 감정의 바탕은 안타까움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겪어보지 못한 것을 얼마든지 추억할 수 있는 시대라면,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사실은 더 이상 병의 조건이 아니라 창작의 조건인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자면 애잔함보다는 멈추지 않는 도전과 활력을 느낀다. 그 시절 나는 극장을 나선 뒤에도 질척거리며 달라붙어 있는 영화를 더 보고 싶다고도 썼다. 어쩌면 그건 시대를 구분하며 벽을 치는 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실시간으로 마주하는 건, 매체 간 문법이 섞이면서 공유되는 확장의 순간들이다. 침묵할 줄 알았던 카메라들이 그립다는 문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이제 그 그리움은 앓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빚어내는 소리로 들린다. 향수병은 나을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불치병은 도리어 불사의 동력이 되기도 하나 보다. 문득 윌 스미스 주연의 < 나는 전설이다 >(프란시스 로렌스, 2007)가 떠오른다. 이것이 절멸의 길인지 아니면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길인지 아직 단언할 순 없다. 내가 서 있는 장소가 구 인류의 땅인지, 신 인류에 편입될 수 있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이미 무언가 변했고 부지런히 더듬어가며 뒤따르는 중이다. <백룸> 중 (사진: IMDb / © A24) 다시, 비평 과거에 봤던 영화가 요즘은 달라 보인다면, 관점은 언제부터, 어떻게, 어떤 이유로 달라진 걸까. 시간을 따라 서로 다른 형태와 색깔을 남긴 비평의 궤적을, 필자가 직접 뒤따라가 봅니다. 송경원(씨네21 편집장) l 영화 논문, 비평, 기자 글쓰기까지, 영화에 대한 서로 다른 리액션 사이에서 흔들리고 방황한지 15년. 이제야 영화 글쓰기가 나의 직업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2023년 《 씨네21 》 편집장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듯 영화를 보고, 읽고, 쓴다.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 2011년부터 부일영화상, 부천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심사위원 등 역임. 『프로듀서』(2019), 『만화 웹툰 작가 평론선―이충호』(2021),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2021, 공저),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2024) 등 집필.
사진: KOBIS / © (주)영화사금월 고어한 영화를 좋아했다. 요즘에는 그런 종류의 작품을 보는 게 조금 피곤해졌다. 썰고, 베고, 찌르고, 뽑고 하는 장면을 보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해서다.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던 20대 시절에는 일부러 피투성이 영화를 찾아보고는 했다.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것도 있고 당시 분위기에 영향받은 바도 있었다. 일본 영화 전면 금지와 검열이 심해 웬만한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수입이 보류됐던 1990년대 중반부터 이들 영화를 몰래 찾아보는 움직임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성행했다. 국내에서 뒤늦게야 개봉했던 < 스크림 >(웨스 크레이븐, 1996)과 < 황혼에서 새벽까지 >(로버트 로드리게즈, 1996) 등을 조악한 화질과 자막의 비디오로 돌려봤다. 금단의 세계를 경험한다는 쾌감, 남이 못 본 걸 먼저 접한다는 우월감이 더해져 더 강한 묘사의 영화들을 찾다 보니 < 고무인간의 최후 >(피터 잭슨, 1987) < 텍사스 전기톱 학살 >(토비 후퍼, 1974) 등으로 정도가 심해졌고, 2000년대 이후에는 영화제를 돌아다니며 < 이치 더 킬러 >(미이케 다카시, 2001) < 휴먼 센티피드 >(톰 식스, 2009) 등에 열광했다. 물론 고어한 영화만 본 건 아니고 검증받은 클래식도 관람했지만, 피 칠갑 작품들은 곧 내가 즐겨보는 장르가 되었다. 개인적인 선호가 있다 보니 잔인하고 직접적인 묘사도 창의적이면 미덕이라고 생각해 그걸 작품 평가의 척도 중 하나로 삼기도 했다. 박훈정 감독의 < 브이아이피 >(2016)는 그래서 내게는 별 다섯 만점에 세 개 반인 작품이었다. 사진: KOBIS / © (주)영화사금월 그때 20자로 평하길 ‘아이디어 하나로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라고 했다. ‘북한의 고위층 자제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남한에 넘어온다면’이라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납치하고, 고문하고, 살인하는 장면이 전면에 나섰고, 잔혹 행위의 여파를 개인의 일탈 수준을 넘어 남과 북과 미국의 역학 관계로 풀어가는 게 기존 장르물과 비교해 색달랐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둔감한 판단이었다. 고어한 영화도 남과 북이 분단된 한국에서 만들면 국제정치와 결합한 또 다른 하위 장르로 발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성을 피해자이자 성적 대상으로 비추는 관습에 내재된 문제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채 관성에 젖어 장르 친화적으로만 바라본 까닭이었다. 그에 관한 생각의 변화를 촉구한 작품이 <브이아이피>였다. 더 정확히는 이 영화가 공개된 후 벌어진 ‘여혐’과 ‘젠더 감수성’에 관한 논란이었다. 여성 신체 노출과 노골적인 살해 장면이 정말 필요했는지를 둘러싸고 의문이 제기됐고, 남성 중심적 힘의 논리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여성을 시각적 장치로 도구화한 혐의가 짙어, 그간 남성을 위한, 남성의 영화로 소비되어온 한국 장르 영화계 전반에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선행됐어야 할 인식을 담아내지 못한 20자 평을 쓰고나서 뜨끔했던 기억이 난다. 관련해 모 일간지로부터 전화 인터뷰 요청을 받기도 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이었다. 영화일 뿐이라고 옹호하기에 영화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컸고, 허구의 룰이 미장센 요소이기도 한 장르물의 논리로 설명하기에 <브이아이피>는 특이점이 있었다. 박훈정의 연출 필모그래피에서 감독의 세계에서 판을 치는 ‘폭력’은 문제 해결의 제1요소이되, 조직을 통해 인간의 아귀 악착과 같은 감정을 ‘은유’하고(< 낙원의 밤 >·< 신세계 >), 슈퍼파워를 내세워 만화적으로 ‘과장‘하고(< 폭군 >·< 마녀 >), 조선시대와 같은 ‘과거’로 돌아가는(< 대호 >·< 혈투 >) 데 적용되면서 현실과 다소 거리를 둔 분위기를 자아낼 여지가 다분했다. <브이아이피>의 경우 남·북·미의 힘의 관계에 더해, 무엇보다 남성의 폭력에 노출된 여성에 대한 묘사를 영화적 설정으로 가볍게 넘기기에는 현실의 실상이 겹치는 정도가 강했다. 이 모든 것을 장르로 풀다 보니 여성 혐오와 차별의 심각한 현실은 재미를 위한 자극적 요소로 소비되고, 감독이 이를 의도한 건 아니어도 관객이 받아들이는 데는 무리가 생긴다. 사진: KOBIS / © (주)영화사금월 박훈정 감독은 이 영화 개봉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관련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보통의 다른 남자들보다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모자란 정도가 아니라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과는 그의 다른 연출작 GV를 진행하며 만난 적이 있다. 설명을 들어보니 영화적 취향과 그걸 생성한 과정이 나와 비슷했다. 세대가 같은 박훈정 감독 또한 금지된 영화를 향한 호기심으로 고어 관련 장르물을 찾아보았고, 이 경험이 창작자로서 작품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신세계>의 피가 난무한 격투씬이나 각본에 참여한 <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2010)의 신체 훼손 장면이랄지, 한때 즐겨봤던 영화로 형성된 개인적인 기호가 반영되어 있다. <브이아이피>에 등장하는 남자들, 좋게는 제멋대로, 실제는 단세포적이면서 동물, 아니 짐승같은 캐릭터들은 모두 익숙한 면모가 있다. 귀공자풍의 연쇄살인마 김광일( 이종석) 은 만화 『몬스터』의 요한, 그를 쫓는 경찰 채이도( 김명민 )는 기타노 다케시의 < 그 남자 흉폭하다 >(1989)와 < 하나비 >(1997) 등에 등장하는 폭력 경찰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이를 가져와 재가공하기보다 감독이 설계한 세계에 맞춤한 결과로, 등장인물이 모두 성인임에도 유치한 구석이 있다. “X 되기 일보직전인 거 알지?”, “벌써 X 된 거 같은데요”와 같은 대사가 있고, 극중 범인 김광일 곁에 굳이 여자 경호원을 배치해 사건을 키우는 묘사에 관해서는 감독의 무신경으로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흔히 영화와 같은 콘텐츠를 두고 시대의 산물이란 표현을 쓰고는 한다. 그건 작품 자체뿐 아니라 이를 창작한 감독이 카메라 뒤에서 작품에 접근하는 태도도 포함한다. 단, 오해하지 마시기를! 작품과 창작자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해도 해당 창작물이 사람의 됨됨이까지 파악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박훈정 감독은 앞서 언급한 인터뷰 자리에서 “앞으로 영화를 하면서 이런 부분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좀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라며 반성의 의지를 나타냈고, 특히 <마녀>(2018) < 마녀 Part2. The Other One >(2022)에서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슈퍼히어로물을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피가 난무하는 폭력씬이 등장해도 <브이아이피>에서 제기됐던 문제점들은 많이 개선한 형태였다. 각각의 작품에서 여성 병기로 등장하는 자윤( 김다미 )과 소녀( 신시아 )는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자신을 찾아가는데, <브이아이피>에서 기능적인 캐릭터에 가까웠던 남성들보다 이성적이고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마녀>의 자윤, <마녀 Part2. The Other One>의 소녀 / © (주)영화사금월 시대는 요구하는 윤리와 감수성이 있고, 거기서 벗어날 때는 강한 저항에 부딪히거나 외면받기 마련이다. 연출자가 과거에 갇힌 영화적 감성으로 완성한 <브이아이피>는 시대착오의 작품이었다. 현재를 업데이트하지 않은 이 영화는 대중 정서와 괴리된 완성도로 박훈정의 작품 목록에서도 평가와 흥행 면에서 최악을 면하지 못했다. 혹자는 여성 현실을 외면한 묘사와 여성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금지해야 한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지만, 굳이 창작의 영역에 인위적인 금지의 조치를 가하지 않더라도 시대와 통(通)하지 못하는 영화는 자연스레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게 어디 영화에만 해당할까. 시장에서 영화평론가로 통하는 나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 <브이아이피>에 관해서 다시 20자로 평하라고 한다면 ‘뭐 볼 거 있냐, 가자. 보기 험할 거 같다.’라고 쓰지 않을까 싶다. 실은 극 중 채이도의 대사를 빌린 거다. 동료 간부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한다는 소리가 “뭐 볼 거 있냐, 가자. 비 올 거 같다”였다. <브이아이피>의 여성에 관한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아 상징적으로 들려서다. 내가 기존에 쓴 이 영화의 20자 평을 접한 이들의 반응도 다시 작성한 단평의 뉘앙스와 다르지 않았을 테다. 고어 취향이라는 방구석 스크린의 틀에 갇혀 넓은 현실에 발 담그지 않은 채 평론가 타이틀을 허울 삼아 좁은 식견을 전문 지식이라 공개해 불편하게 했으니 말이다. 지금이라도 고해성사할 기회가 생겨 다행이다. 고어한 영화와 담쌓고 지내는 건 아니지만, 화제가 되는 작품은 찾아보기는 해도 이 장르를 보는 관점이 이전과 달라졌다. 이 장면이 영화의 콘셉트에 필요했는지,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의 가능성을 두고 있는 건 아닌지를 점검하면서 재현의 윤리를 따져 묻게 되었다. 앞으로도 잘못 보는 경우가 있겠지만, 시대를 나침반 삼아 바르게 보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다시, 비평 과거에 봤던 영화가 요즘은 달라 보인다면, 관점은 언제부터, 어떻게, 어떤 이유로 달라진 걸까. 시간을 따라 서로 다른 형태와 색깔을 남긴 비평의 궤적을, 필자가 직접 뒤따라가 봅니다. 허남웅(영화평론가) l 《딴지일보》 영화팀, 《FILM 2.0》을 거쳐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미개봉 영화의 복사 비디오를 보면서 영화의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어 30년 가까이 허우적대고 있다. 구조되지 않아도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 상태가 또 맘에 든다. 영화에 관한 관심이 아직 식지 않아서다. 그래서 여전히 영화에 관해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있다.
헤이리시네마 외관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예술마을 속 영화관 헤이리 예술마을의 모든 건물은 공간의 60% 이상을 문화시설로 채워야 한다는 원칙을 따른다. 화가 김민숙이 창립한 ‘커피공장 103’ 역시 이 원칙을 지켜야 했고, 이는 독립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던 아들 장현상 이 건물 3층에 ‘ 헤이리시네마 ’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극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평소 영화를 통해 인연을 맺어온 KU시네마테크 한경훈 대표의 조력이 든든한 보탬이 되었으며, 독립·예술영화 시장이 비교적 활기를 띠던 2016년 전후의 시기적 상황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소규모 영화관이 동료 영화인들에게 든든한 활동 기반이 되길 바랐던 장현상 감독의 바람대로, 현재 헤이리시네마는 상설 독립·예술영화전용관으로서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장현상 대표는 헤이리예술마을이라는 입지적 특성을 고려하여 예술영화 중심의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대표 본인이 독립영화 감독인 만큼 프로그램 역시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편성되고 있다. 또한 예술마을 내 도자기 공방과 협업하여 체험형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쿠킹 클래스 공간과 연계해 음식 관련 영화 상영 및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멤버십 가입자에게 제공되는 굿즈 역시 마을 내 공방과 협업하여 제작된다. 예술마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예술 활동을 지지하는 환경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획들은 비교적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1층 카페 ‘커피공장 103’ 내부 전경 헤이리시네마의 공간과 시설 헤이리예술마을은 하나의 대규모 단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러 개의 입구를 통해 공원처럼 진입할 수 있다. 그중 6번 게이트를 통해 들어서면 ‘커피공장 103’ 건물에 위치한 헤이리시네마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건물 1층과 2층에는 카페, 그리고 카페와 연계된 작은 갤러리가 있으며, 엘리베이터 또는 중앙 계단을 통해 3층의 영화관으로 이동할 수 있다. 매표소 앞 복도에는 영화 관련 서적과 자료가 비치되어 있어 상영을 기다리는 동안 열람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개봉작 및 개봉 예정작의 홍보물도 벽과 테이블을 채우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라운지 공간이 이어지는데, 이는 카페와 연계되어 커피와 베이커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휴게 공간으로 운영된다. 창밖으로는 헤이리예술마을의 풍경이 펼쳐져 관객들이 상영 전 여유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상영관은 총 30석 규모로 소규모이지만 관람 환경에 적합한 구조를 갖추기 위해 설계되었다. 좌석은 일반적인 극장 의자가 아니라 소파, 암체어, 좌식 의자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슬로프 구조와 좌석 높이의 차이를 통해 시야 확보를 고려하고 있다. 각 좌석에는 사이드 테이블이 설치되어 관람의 편의성과 아늑한 분위기를 동시에 제공한다. 상영 설비는 BARCO사의 DP2K 영사기와 고반사율 및 균일도를 갖춘 하크네스 스크린, 5.1채널 음향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어 소규모 상영관이지만 기본적인 상영 환경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헤이리시네마 휴게 공간 전경 헤이리시네마의 사람들 헤이리시네마 운영진은 총 3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현상 대표 외에 영사 및 프로그램 담당 1인, 홍보 및 운영 담당 1인이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인원은 소수이지만 각자의 역할을 유동적으로 조정하며 협업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초기 설립 단계에서부터 최소 인원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구조이기 때문에 현재도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관객층은 다른 독립·예술영화관과 비교했을 때 중·장년층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파주라는 지역적 특성과 더불어 교통 접근성이 높지 않은 점 때문에, 자발적으로 방문하는 관객이 중심이 된다. 특히 평일에는 문화예술 향유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이 주를 이루며, 주말에는 보다 다양한 연령층이 방문한다. 시네필 중심이라기보다는 예술, 미술, 여행 등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진 관객층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성은 예술을 주제로 한 영화 편성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헤이리시네마 운영자 장현상 감독 헤이리시네마 프로그램 운영 상영 회차는 일반적으로 하루 5회이며, 러닝타임이 긴 작품의 경우 4회로 조정되기도 한다. 외국영화와 한국영화의 비중은 약 8:2 수준이며, 경기인디시네마 프로그램과 연계한 한국영화 상영도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프로그램 편성은 전담 매니저가 맡지만, 상영 여부나 편성 구성에 대한 중요한 결정은 운영진 전체의 논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현장 발권 외에도 디트릭스(Dtryx) 온라인 예매 시스템을 통해 예매가 가능하다. 관람료는 주중 9천 원, 주말 1만 원이며, 파주시민·헤이리예술마을 주민·청소년에게는 각각 할인 혜택이 제공된다. 경로 우대 할인은 일괄 6천 원으로 적용된다. 회원제에 따른 회원 모집은 연말에 진행되며, 약 5만 원의 패키지 가격에 초대권 8장, 영화 할인권, 커피 할인권, 굿즈 등이 포함된다. 통상 약 300명 규모의 패키지가 2개월 내에 매진된다. 특징은 제공되는 관람권이 멤버십 패스가 아니라 초대권 형태라는 점이며, 한 명의 회원이 여러 명과 함께 관람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예술마을이라는 공간의 사회적 성격과도 연결된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관객 참여형 편성이 있다. 상영작 아웃라인이 공개되면 관객이 온라인 설문을 통해 원하는 상영 시간을 요청할 수 있으며, 실제 편성 과정에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반영된다. 매표소 전경 첫 상영작과 흥행작 개관 상영작은 대표인 장현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 사돈의 팔촌 >(2015)이었다. 초기 상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술적·운영상의 문제를 점검하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 상영 성격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개관 초기에 누수와 소음 문제가 발견되었고, 이를 개선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후 상영작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 아가씨 >(2016)가 이어졌다. 개관 이후 가장 큰 흥행작으로는 에이슬링 월쉬 감독의 < 내 사랑 >(2016)이 꼽힌다. 모드 루이스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관객 반응이 매우 좋아, 특정일을 ‘<내 사랑> 데이’로 지정해 하루 종일 단일 작품을 상영했음에도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이는 해당 영화가 주요 관객층의 취향과 잘 맞아떨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외에도 어린이 영화 교실, 중년 여성 대상 영화 제작 수업, GV 및 마스터 클래스 등이 운영되어 왔다. 특히 2025년에는 이해영 , 이원석 감독 등 상업영화 감독뿐 아니라 마이크 피기스 감독을 초청하여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영화감독이 운영하는 영화관 영화관 운영이 쉽지 않은 시기이지만 장현상 대표는 그보다 기쁨이 더 크다고 말한다. 소규모 극장이기 때문에 운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프로그램 구성의 자유도가 높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또한 경기 북부에서 유일한 상설 예술영화관이라는 점에서 관객과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큰 보람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화감독이라는 정체성과 영화관 운영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은 많지 않다고 한다. 극장 운영을 통해 알게 된 ‘흥행 영화의 기준’이 창작자로서의 판단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며, 각각의 역할은 별개의 영역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시네필 중심 극장, 창작자 중심 공간 등 다양한 방향성을 실험했으며 워크숍과 클래스, 상영 연계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관객의 수요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방향이 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현재는 예술영화, 특히 예술 또는 예술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다양성을 유지하는 방향에서 운영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상영관 내부(객석 방향)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93-119, 커피공장 103 카페 3층 2) 설립일 : 2016년 3) 대표 : 장현상 4) 극장 구성 : 1개관 30석, 좌식 소파, 암체어와 사이드테이블 등으로 좌석 구성 5) 운영시간 및 정기휴무 : 첫 상영 10:30, 마지막 상영 오후 7시 안팎, 상영 작품에 따라 유동적 6) 입장료 및 할인 정책 (현장 발권 및 디트릭스를 통한 온라인 예매 가능) - 평일 9,000원, 주말 10,000원 - 헤이리예술마을 주민 2,000원 할인, 파주시민/청소년 1,000원 할인, 경로 주중·주말 무관 6,000원 7) 조직 구성 : 장현상 대표 외 프로그램 1인, 홍보·운영 1인, 총 3인이 운영 취재 일자: 2025년 11월 27일 글/인터뷰 진행: 김문경 사진: 허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