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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2010년, 제 14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한 저예산 영화가 상영되었다. 초저예산 영화로서는 생각보다 진지하게 구현된 CG, 당시로서는 그리 흔하지 않았던 인터넷 커뮤니티 담론을 전면 수용한 영화로 소소한 화제를 일으켰다. 이 바람을 타고 ‘장기하가 에드우드를 만났을 때’(영화평론가 이동진), ‘지구를 지켜라 이후 가장 발칙한 데뷔작(영화평론가 김도훈) 등의 평을 들으며 극장 개봉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B급 영화, 맛이 간 영화, 아무튼 뭔가 이상한 영화에 꽂혀있던 나는 그 실체를 확인하러 한 달음에..!는 아니고 버스를 타고 걸어서 이대 후문 필름 포럼에 갔던 것이다. 좌석에 앉아 있으니 불이 꺼졌고 영화가 시작하나 보다 싶어 시선을 앞에 두었던 그 때, 갑자기 스크린 옆의 문이 열리며 왼손으로는 턱 밑에 둔 핸드폰으로 플래쉬를 켜 얼굴을 비추고, 오른팔은 위쪽으로 쭉 편 채 스크린 중앙까지 말없이 걸어 들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불이 켜졌다. 사내는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불청객을 만든 이응일이올시다.(‘이올시다’라고 하시지는 않았을텐데, 상황과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려 그냥 그렇게 기억하기로 했다.) 갑자기 이 영화를 떠올린 이유는 역시 ‘삐용삐용 B무비 시즌 2’에 원고를 쓰기 위해서이다. 시즌 1을 할 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지루한 영화만 잔뜩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옛날에도 지금은 흉내도 못 낼 ‘충분히 맛이 가버린’ 영화들이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박노식 감독의 < 왜? >나 최영철 감독의 < 삿갓 쓴 장고 > 같은 영화들은 지금 생각해도 (두 영화는 정 반대 방향에 있긴 하지만) 매우 썩 훌륭하게 미친 그런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이 때 소개한 영화들은 영상자료원에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다. 그 땐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끝내주는 영화들이 있으니 영상 도서관에 오셔서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2023년에 다시 ‘삐용 삐용 B 무비’를 시작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도 아주 좋은 영화가 많이 올라가 있고, 여러 OTT를 통해서 영화를 접하기 매우 쉬운 환경이 된 지금,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라는 건 예전보다 마음의 거리가 훨씬 멀게 느껴진다. 이번 시즌에서 소개할 3편의 영화는 되도록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리라 마음을 먹었고, 그래서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이응일 감독의 < 불청객 >이다. 이응일 감독은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영화 전편을 올려놓아서 누구나 손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서울시 관악구의 어느 자취방. 고시생 진식은 오늘도 공부에 여념이 없다. 함께 살고 있는 취준생 강영과 응일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빠져 자고 있지만, 시골에 혼자 계시는 홀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그는 오늘도 양치를 하며 민사소송법 제90조 소송대리권의 범위...를 중얼중얼 외우고 있다. 그 때 택배가 하나 도착한다. 택배에는 ‘개봉이파괘되면계약을성맆댄것으로간주함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꺼림칙한 마음에 쉽사리 열지 못하던 그 때, 방금 잠에서 깬 응일이 방에서 나와 택배를 뜯어 버린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은하계 론리스타 금융그룹에서 포인트를 관리하는 ‘포인트맨’. 그는 진식, 강영, 응일의 수명을 지금 포인트로 적립하면 나중에 영원한 삶으로 전환하여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 그들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허튼 소리에 당황하며 거부한다. 이에 화가 난 포인트맨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라!’라고 일갈하며 이들의 자취방을 우주 어딘가로 날려버린다. 여기서부터, 이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SF를 독립, 아니 이 정도라면 개인 영화라고 부르는게 더 어울리지 않나 싶은 규모에서 시도하는건 매우 드문 일이다. 개념이나 논리적인 부분으로 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눈으로 보이는 우주를 구현하겠다는 야심은 대단하다. 특히 영화의 가장 주요한 아이디어인 ‘자취방 창문 밖은 우주’라는 점을 쉽게 처리하고자 한다면 그냥 말로만 때웠으면 될 텐데 굳이 창문을 열고 우주를 보여주며 불사조 성운, 블랙홀까지 구현하고 있다. (우리 같은 백수가 밖에 더 있어! 라고 외치는 장면 뒤에 국회의사당이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장면이 붙어있다.) 상업영화에 비교할 수는 없는 CG이지만, 영화 전체의 톤앤매너와 착붙는 퀄리티를 가지고 있어서 이 만듦새 자체가 영화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여러번 돌려볼 수록, 이상하게 촬영과 CG가 절묘하게 훌륭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데 이거 혹시 진짜 되게 잘한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이 글을 다 쓸무렵에는 아. 진짜 잘 만든거 맞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농담들이 정말 재밌어서 많이 웃었는데, 잠에서 깨자마자 괜시리 반복적으로 리코더를 찾는 강영이나(중반부 쯤에 왜인지 ‘울밑에 선 봉선화’를 연주한다), 포인트맨의 초능력으로 갑자기 영어만 사용하게 된 응일, 포인트맨과 싸우다가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에 합격해서...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 호강시켜드려야 되는데... 이젠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씁쓸히 되뇌이는 진식 등 전반적으로 뜬금없고 어설프며 지금 보면 예스러운 농담들이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고시생, 취준생이라는 신분으로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어색한 위치가 되어 곰팡이 가득한 자취방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청년들. 그들에게 ‘수명’을 강탈하려는 포인트맨. 그는 자취방 브라더스의 수명을 앗아가려는 명분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성공한 사업가와 정치인을 욕만 할 뿐. 그들을 따라잡려 노력할 의지도 없는 녀석들! 인구는 해마다 감소하는데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으며 산소와 영양분을 소비하며 지구의 공간만 차지하는 놈들! 너희는 잉여인간이야! 쓰레기 같은 쓰레기들! 빌어먹을 루저들! 내가 너희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을 할 기회를 주겠다.” 그 보람된 일은 수명을 포인트로 바꿔 미국 앨러배마에 거주 중인, 민간의료보험을 경영하며 국가에 헌신한 77세의 잭 도슨씨에게 넘기는 것이다. 너무 직접적이라 뭐 더 해설이 필요없는 정도의 직유다. 마치 UCC를 보는 듯한 화질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2006년쯤부터 촬영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로서는 상당히 괜찮은 화질이었을 것이다. (SONY의 PD-150을 사용했다고 한다.) 4K, 8K도 접하기 쉬운 지금 본다면 아쉬울 순 있지만, 이 부분만 견딘다면 굉장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 글을 쓰며 여러번 돌려보았는데, 묘한 것이 개봉 당시에 봤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재밌고, 이야기 또한 더욱 시의적절하게 느껴져 웃다가 괜히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나 꼭 한 번쯤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2010년에 봤을 때보다 훨~씬 크게 들었다. 이응일 감독은 <불청객> 이후 몇 편의 단편, 웹드라마 등을 연출했고 현재는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신다고 한다. 언젠가의 그의 작품을 꼭! 다시 만나고 싶다. 이런 재능을 단 한편으로 갈음하는 건 관객으로서 정말이지 너무도 아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불청객>은 이응일 감독의 유튜브 채널 ‘토토모’에서 관람할 수 있다.
[한국영화걸작선]서울의 지붕밑: 6월의 영화
이 영화에는 세대를 넘어서는 ‘하도'가 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가족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젠 기타노 다케시의 명언을 그만 써먹을 때가 됐다고 말이다. “가족이란 누가 보지 않을 때 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다케시의 명언은, 옳다. 이제는 좀 지겨울 때도 됐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영화를 만들면서 이 놀랍도록 진부하게 재생산된 명언을 그냥 지나치는 건 힘든 일이다. < 서울의 지붕밑 >(1961) 역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둔 1961년 작 코미디 영화다. 아니,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좋겠다. 한의사 김학규 김학규의 딸 미용사 현옥 산부인과 의사 최두열 김학규 아들 현구와 점례 내용은 간단하다. 한의사인 김학규( 김승호 )는 요즘 좀 화가 나 있다. 골목 건너편에 생긴 산부인과로 동네 손님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다. 게다가 산부인과 의사인 최두열( 김진규 )는 김학규의 딸이자 이혼하고 돌아와서 한의원 2층에서 미장원을 운영하는 현옥( 최은희 )과 호감을 느끼고 있다. 김학규는 그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들도 문제다. 취업 전선에서 번번이 좌절하는 아들 현구( 신영균 )은 말 많고 탈 많은 동네 주막 주인( 황정순 )의 딸( 도금봉 )과 몰래 연애를 하다가 임신을 시키고 말았다. 도대체 김학규는 이 많은 자식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는 매우 분명하다. 오프닝에서 나오는 내레이션은 이렇게 선언을 한다. “새로운 시대와 낡은 시대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대"라고 말이다. 여기에는 구세대와 신세대가 있다. 김학규는 구세대의 어떤 모델이고, 최두열은 신세대의 상징이다. 전자는 한의, 후자는 양의라는 설정은 도식적으로 명확하거나 명확하게 도식적이다. 두 캐릭터 중 누가 고개를 숙이고 모든 갈등이 해결될 것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지금 와서 보자면 고리타분해 보이는 이 설정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지붕밑>은 60여 년 전 관객들이 극장을 떠나가게 웃었을 유머 감각을 그대로 이 시대에 옮기는 데 성공한다. 생각해보면 그건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한국 고전영화는 세대의 단절을 치열하게 겪었다. 60년대 대중영화의 감정이 2010년대의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일은 드물다. 지금의 미국 관객들은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1960)나 <뜨거운 것이 좋아>(1959) 같은 영화들을 보며 여전히 웃을 수 있다. 한국 관객들이 같은 시기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가 의도한 장면에서 웃으리라는 보장은 거의 없다. <서울의 지붕밑>은 지금의 관객이 보면서 1961년의 관객과 같은 마음으로 웃을 수 있는 드문 고전이다. 영화는 몇 가지 스테이지를 늘어놓고 마치 TV 가족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세대의 전쟁이라는 큰 그림 위에 여러 캐릭터들이 펼치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계속해서 열었다 닫는다. 그리고 감독은 마치 작은 단편 꽁트처럼 각 에피소드에 일종의 펀치 라인들을 집어넣는다. 특히 한의사 김학규가 젊은 연인이 “당신에게 제 하트를 드리지 않았어요?”라고 밀담하는 것을 엿듣고는 딸에게 “하도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장면은 백미다. 딸이 “하트는 심장이에요"라고 답하자 그는 “심장이라니 염통 말이냐?”라고 되물은 뒤 “사랑이라는 뜻도 된다는 말"에 능글능글하게 웃는다. 이 장면은 시대가 지나도 늙지 않는 코미디인 동시에, 세대의 급격한 변화라는 영화의 주제와도 근사하게 맞물린다. “당신에게 제 하트를 드리지 않았어요?” "하도..?" 물론 <서울의 지붕밑>이 도무지 낡아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스타들의 존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서울의 지붕밑>은 조촐한 배경과는 달리 당대의 신필름과 지속적인 작업을 하던 최고 인기 배우들이 모조리 모여 있는 당대의 블록버스터다. < 마부 >로 당대 한국인의 배우가 된 김승호, 부인 역할의 한은진 , 딸 역할의 최은희, 산부인과 의사역의 김진규는 물론, 김승호의 아들 역할은 신영균이 맡았다. 신영균과 결혼하는 점례 역할은 도금봉이고 그의 어머니는 황정순이 연기한다. 허장강 과 김희갑 , 구봉서 의 기막힌 코미디 연기는 물론, 젊은 신성일 의 깜짝 출연도 <서울의 지붕밑>을 배우의 영화로 만든다. 사실 이형표 감독을 잃어버린 거장이라고 말하는 건 좀 무리일 것이다. 그는 < 말띠 여대생 >, < 아가씨 참으세요 >나 < 남자 가정부 > 같은 코미디 장르의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었다. 홍콩 영화 <취권>의 성공에 힘입어 졸속으로 만든 < 애권 > 시리즈의 감독이기도 하다. 80년대 영화를 기억하는 관객에게는 82년작인 < 관속의 드라큐라 >가 먼저 떠오를게다. 그는 오랫동안 많은 대중 영화를 만들었지만 데뷔작인 <서울의 지붕밑>을 능가하는 영화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서울의 지붕밑>이 시대를 어느 정도 무사히 뛰어넘은 영화가 된 것은 신필름 출신으로 < 동심초 >와 한국 최초 컬러 시네마스코프 영화였던 < 성춘향 >의 촬영을 담당했던 이형표의 덕이기도 하다. 훌륭한 테크니션으로서의 이형표의 능숙한 설계는 영화 전체에 깃들어 있다. 특히 그는 서울 중심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는 큰 골목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한의원과 산부인과를 배치한다. 그 골목길은 세대의 단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네 사람들이 오가며 가십을 퍼뜨리고 몰래 연애를 하는 일종의 연극적 무대다. 이형표 감독은 로케이션 촬영과 세트 촬영을 적절하게 섞어서 각각의 무대를 감정적으로 잘 이어붙일 줄 안다. 특히 그의 테크니션적인 솜씨는 좁은 골목을 무대로 이후 등장할 모든 캐릭터들을 세련되게 소개하는 첫 장면에서 가장 멋지게 드러난다. 모든 한국 고전영화가 그렇듯이 <서울의 지붕밑>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예찬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서울의 옛 모습은 여전히 낯설다. 우리는 할리우드 고전영화에서 등장하는 맨하탄의 모습이나 오즈 야스지로 영화 속 동경의 모습에 묘한 향수를 느끼면서도 도무지 서울의 옛 모습에는 익숙하지가 않다. 그건 어쩌면 당대 한국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압도적으로 적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울의 지붕밑>은 (아마도 남산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서울의 전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 순간 ‘아!’하고 낮은 탄성을 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국영화걸작선]짐승의 끝
홍길동이 시골 도로에 길을 잃은 채 서 있는 장면을 보며 이것은 확실히 < 짐승의 끝 >(2008)의 상업적 연속면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과거와 현재로부터 미래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이 낯선 사람들과 동행하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조성희의 데뷔작을 떠올리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은 확실히 조성희 의 영화고,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 조성희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다. 물론 단편 < 남매의 집 >(2008)에 열광했던 당신은 장편 데뷔작 < 짐승의 끝 >(2010)을 보고 길을 잃었거나, < 늑대소년 >(2012)과 <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에 낙담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조성희 의 영화가 점점 데뷔작의 근사한 악몽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오히려 조성희의 영화가 데뷔작의 악몽을 더욱 본격적으로 풀어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짐승의 끝>을 다시 돌이켜 볼 필요도 있다. < 짐승의 끝 >은 부조리한 SF 재난 영화다. 아이를 낳기 위해 고향으로 가던 만삭의 여자는 이상한 남자를 만난 뒤 쓰러진다. 일어나보니 세상은 멸망했다. 그녀는 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모두가 이상하다. 밤은 계속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짐승의 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은 한국영화의 부조리극 속에 던져 넣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고,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키워드로 해석할 수 있는 영화다. 그런데 나는 <짐승의 끝>을 보자마자 80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초창기의 스필버그 사단의 영화들이 강하게 떠올랐다. 사실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한국 감독으로서 80년대 초중반 스필버그 사단과 당대 할리우드가 만들어 낸 상업영화의 영향력을 받지 않았을 도리는 거의 없다. 어린 시절 B급 SF/호러영화들, 그리고 TV 시리즈 < 환상특급 >을 보고 자란 세대의 문화적 결과물에는 어떤 동일한 무의식적 인장이 찍혀있다. 그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당시 스필버그 사단의 장르 영화들을 다시 꺼내보는 순간 당신은 적잖게 놀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지금 할리우드가 조 단테의 < 그렘린 >처럼 화면 바깥의 피비린내가 자욱한 영화를 PG-13으로 개봉할 수 있을까? 스필버그의 몇몇 영화들(특히 <인디아나 존스 2>)은 거의 소년들의 악몽이다. < 늑대 소년 >에서 조성희 는 적극적으로 팀 버튼의 < 가위손 >, 80년대 늑대인간 장르영화 < 하울링 >과 < 런던의 늑대 인간 >, 그리고 스필버그의 < E.T. >를 끌어온다. 그가 <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의 비밀>에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007 영화에 일종의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는 것도 거의 분명하다. 그는 이 영화 속 누아르의 관습과 스타일의 표본으로 <말타의 매>를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나는 어떤 면에서 조성희가 누아르 전성기의 영화들이 아니라 워렌 비티의 < 딕 트레이시 >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조성희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균열이다. 그는 순진무구해 보이지만 오히려 지금의 블록버스터보다 더 B급으로 음침하고 못된 구석이 있던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관습을 2010년대 충무로 상업영화의 관습과 마구잡이로 버무린다. 그것은 타협처럼 보이지만 타협이 아니다. 균열이다. 그리고 조성희는 두 개의 균열을 지나칠 정도로 매끈하게 이어붙이는 데 강박적인 공은 들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 늑대소년 >과 <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의 비밀>은 80년대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고 2010년대의 충무로 영화도 아닌, 홀로 뚝 떨어진 영화가 됐다. 비평가들이 겨우 2편의 상업적 장편영화를 만든 그를 이야기하며 ‘조성희 월드’라는 단어를 애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 다시 < 짐승의 끝 >을 돌아보는 건 꽤 흥미진진한 경험이다. 당시 그는 < 남매의 집 >의 가능성을 이 첫 번째 장편영화에서 제대로 펼쳐내지 못했다는 비평을 꽤 받았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런 비평들은 조성희 를 아트하우스 영화의 결계 속에서 해석하려고 시도한 탓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짐승의 끝>은 가장 상업적인 대학 졸업영화를 만들어내려는 오락적 결기가 느껴지는 영화다. 이런 음침하고 즐거운 결기를 나는 아마도 극장판 < 환상특급 >(1983)에서 조 단테가 연출한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봤던 것 같다. 그 에피소드의 제목은 ‘이상한 소년’이었다.
[삐용삐용B무비]데우스 마키나, 그리고......
얼마 전 배우 이영진 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영화 한 편이 있었다. <데우스 마키나>라는 영화다. 배우 이영진이 2000년대 중반엔 몸이 얼마나 지금보다 더 유연했던가, 액션 배우를 했다면 우마 서먼이 < 킬 빌 >에서 보여줬던 것 같은 뭔가를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 도중에 나온 제목이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데우스 마키나>가 대체 무슨 영화인가 싶을 거다. 물론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단어를 전 국민의 지적 유행어로 만든 진중권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아, 사실 진중권이 연출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영화가 나온다면 꼭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서울이 일베와 깨시의 전쟁으로 불타오르는 가운데 홀연히 연기를 뚫고 청와대 앞뜰에 착륙한 경비행기 한대. 거기서 진중권이 한 손에 고양이를 안고 라파엘로 그림 속 천사처럼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리고, 갑자기 신서울시에 출몰한 사도와 대결을 펼치는데…. < 천사몽 >(2001)과 < 성냥팔이 소녀 >(2002) 아,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만, 여하튼. <데우스 마키나>는 지난 2002년 기획에 들어가서 영화의 절반을 촬영해 놓고 갑자기 중단된 미완의 영화다. 이 영화를 ‘삐용삐용B무비’의 마지막에 꺼내놓는 이유? 완성됐더라면 < 천사몽 >이나 < 성냥팔이 소녀 >를 뛰어넘는 한국 B급 SF영화의 계보를 훌륭하게 완성했을 거라는 아쉬움 때문이다. 나는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이어지는 그 무시무시한 SF 블록버스터의 시대가 종종 그립다. 그 시기는 그러니까, 충무로로 쏟아져 들어오던 대기업의 엄청난 눈먼 돈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장렬하게 산화하겠노라는 이글이글한 야심이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하던 시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였고,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만듦새였으며, 하나같이 장르의 기본이 하나도 안 된 영화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시대가 그리운 이유는 정말이지 모두가 영화를 막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시나리오 한줄 한줄 빨간 펜으로 검사하던 시절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괴작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어디로 향하는지 누구도 모르는 영화적 에너지의 시대였다. 맞다. 바로 그 시기 때문에 지금 한국 영화계가 이렇게 된 거다. 그런데도 그 시기가 그립다니 이거 참 사람이 경망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리운 건 그리운 거다. 하여간 다시 <데우스 마키나>로 돌아가자면 이야기는 이렇다. 무대는 2003년이다. 서울의 한 고층빌딩을 과격한 테러 단체가 점거하는데, 한국 최대의 정보 통신 기업은 이걸 진화하기 위해 비밀 인간병기 조직을 투입한다. 작전을 완료하고 돌아가던 인간병기 조직의 미녀( 김정화 )는 헬기 추락으로 부상당하고, 이를 오토바이 광인 미남( 권상우 )이 집으로 데려가고, 미남과 미녀는 사랑에 빠지고, 그러나 인간병기인 미녀를 되찾기 위해 정보 통신 기업이 찾아오고, 그들을 질기게 쫓는 인간 최종병기는 배우 이영진 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 영화가 끝까지 만들어졌다면 그랬을 거라는 소리다. <데우스 마키나>를 만들다가 무릎을 꿇고 결국 사라진 감독은 이현하 다. 당시 영화잡지의 인터뷰들에 따르면 그는 프랑스 유학파고, 구로사와 아키라에 관한 석사논문을 쓴 적이 있고, 프랑스영화자유학교(CLCF)에서 영화 실무를 공부했다. 나로서는 그의 경력으로는 도무지 이 영화를 가늠할 수 없다. 다만 몇몇 인터뷰들을 통해 대충 <데우스 마키나>가 어떤 영화가 됐을지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 총몽 >, < 공각기동대 >, < 아키라 > 등을 적극 차용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건 사실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나온 SF영화 중에서 이 세 작품을 적극 차용하지 않은 영화는 거의 없으니까. 형식적인 면에서 이 감독은 “< 와호장룡 >이나 < 매트릭스 >와는 달리 원심력과 중력이 느껴지며, 움직임과 기하성을 조화시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건 더더욱 모르겠다. 흠. 아마도 원화평의 안무와는 다른 안무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아니다. 나는 지금 <데우스 마키나>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꿈을 능욕하려는 게 아니다. 정말로 나는 중간에 엎어져서 영원히 스크린에 걸릴 기회를 박탈당한, 만약 만들어졌다면 정말이지 끝내주게 삐용삐용한 B무비가 됐을 이 영화의 운명을 슬퍼하며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거의 100억대의 제작비를 투여한 <데우스 마키나>의 시나리오에는 민병천 의 < 내츄럴 시티 >를 연상시킬 만큼 순결한 나이브함이 깃들어 있으며, 만약 만들어졌다면 적어도 <내츄럴 시티>와 함께 ‘한국 영화가 가장 도전적이었던 시절’을 기념하는 유물로 남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잊혀진 <데우스 마키나>의 이야기를 꺼낸 김에, 나는 몇 편의, 여러분에게 보여질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사라진 몇 편의 장편과 단편을 거론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도살자>( 김진원 , 2007) 먼저 김진원 감독의 2007년 작인 <도살자>다. 부천영화제에서 상영한 뒤 사라진 이 장편 고문 호러영화는 돼지머리를 가진 괴물을 주인공으로 스너프영화를 찍는 도살업자에 대한 이야기로, 한국 영화에서는 익히 볼 수 없었던 피와 배설물, 내장의 스펙터클이 카메라 바깥으로 진동을 한다. 돼지 발정제를 먹은 (가히 < 텍사스 전기톱 대살륙 >의 악마를 닮은) 괴물이 남자 희생자를 강간하는 장면에서 당신이 만약 B급 고어영화의 팬이라면 흐뭇해 했을 지도 모른다. 동시에 김진원 감독은 스산한 서울 교외의 배경을 통해 어떤 서정성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도 성공한다. 나는 김진원 감독이 꼭 다시 호러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 < 편대단편 >( 지민호 , 2005) 또 언급할 영화는 지민호 감독의 2005년 작 < 편대단편 >이다. 350만 원으로 10년에 걸쳐 완성된 이 영화는 당시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꽤 화제를 모았다. 혼자 연출, 제작, 각본, 편집, CG를 다 해내는 지민호 감독의 이 보기 드문 SF 단편은 일종의 ‘안티 < 스타워즈 >’로, 강제로 군에 징집된 뒤 기억을 삭제당한 식민지 행성의 젊은이들 이야기다. 물론이다. <편대단편>은 꽤나 허술하고, 종종 (이 분야의 오덕들이 만드는 영화가 대게 그렇듯이) 지나치게 진지하다. 하지만 지민호 감독이 좀 더 많은 투자를 받아 장편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 생각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 불청객 >( 이응일 , 2010)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언급해야 할 영화는 2010년에 나온 초저예산 SF영화 < 불청객 >이다. 만년 고시생과 백수들이 택배 상자에서 튀어나온 외계인을 만나는데, 알고 보니 이 외계인은 루저들의 생명을 적립해 늙은 거부들의 수명을 연장해주는 일종의 고리대금업자로, 주인공들이 계약을 거부하자 자취방이 통째로 우주로 날아가버린다. 이건 한마디로 말하자면 ‘88만원 세대의 SF 어드벤처’로, <이나중 탁구부> 시절 후루야 미노루를 연상시키는 정말 기가 막히게 엇나가는 풍자 코미디로 가득하다. 아니, 나는 <불청객>보다 더 웃기는 영화를 2010년 이후로 한국 영화계에서 본 적이 없다. <불청객>이 소규모 개봉관에서 약간의 화제를 모은 뒤 이응일 감독은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 지구를 지켜라 !> 이후 가장 발칙한 데뷔작이었던 <불청객>의 감독이 아직도 메가폰을 잡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슬플 따름이다. 자, ‘삐용삐용B무비’를 마치며 내가 바라는 소원은 두 가지다. <데우스 마키나>의 묻혀있는 필름만이라도 다시 발굴해서 단관에서라도 상영을 하는 것, 그리고 이응일 , 김진원 , 지민호 에게 어떤 독지가나 어떤 진취적인 제작자라도 나타나서 제작비를 좀 지원해주는 것. 내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한국 B무비의 역사가 바뀔….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기념할 만한 B무비들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삐용삐용B무비]비천괴수
자, 가렛 에드워즈의 < 고질라 >를 보면서 ‘쇼와 고질라’와 ‘헤이세이 고질라’의 전통을 언급하며 유년기의 추억이 귀환한 듯 기뻐하는 평들이 딱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는 것부터 먼저 언급하며 이 글을 시작해야겠다. 그러니까 말이다. 어째서 고질라가 유년기와 청년기의 추억일 수가 있지? 쇼와든 헤이세이든 내가 극장용 고질라를 처음으로 본 건 2000년대 이후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 진정한 첫 번째 고질라 영화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 고질라 >였던 것 같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다시 매만져진 일본인들의 전통을 목격한 뒤, 그걸 토대로 다시 일본인들의 전통을 거슬러 올라 머릿속에 입력시켰다는 이야기다. 문방구의 꽃,「괴수대백과」 만약 고질라가 내 안의 아주 미묘한 덕심을 살짝 건드리긴 했다면, 그건 오로지 80년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괴수대백과」 덕분이다. 이걸 기억하는 세대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80년대 문방구에서는 한국에 전혀 소개된 바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특촬물에 대한 번역본 해설지를 팔았다. 그게 또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인기가 있었다. 나 역시 「괴수대백과」의 열렬한 팬이었다. 고질라와 가메라와 모스라와 킹기도라와 메카 고질라의 사진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것들을 진짜 스크린 속에서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다. 그 열망은 십여 년 뒤에나 겨우 DVD를 통해 이루어졌다. 마치「‘건담대백과」로 접한 <기동전사 Z건담>을 십수 년 뒤에나 카피본으로 겨우 (그것도 중간중간 더 이상 성인에게는 온전히 통하지 않는 과장된 감상주의를 감내해가며) 목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괴수물’을 처음으로 스크린에서 본 게 언제냐고 묻는다면, 고질라나 가메라 대신, 입에서 꺼내는 즉시 살짝 웃음이 터지는 제목을 굳이 꺼내야만 한다. 그렇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이라면 기억할 < 비천괴수 >라는 제목 말이다. < 비천괴수 >는 60년대 신상옥 , 나봉한 같은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한국과 홍콩 합작영화가 쏟아지던 시절 성룡, 홍금보가 출연한 <용호문>(1975), < 사대철인 >(1977) 등 무협 영화를 만들었던 김정용 감독의 영화다. 합작영화 시절이 막을 내리고 한국영화의 암흑기가 도래한 80년대 초반, 그는 < 소림사 주방장 >(1981)이나 < 무림 걸식도사 >(1982)같은 코믹 무협영화들을 만들었다. 낯설다고? 80년대 토요일 낮에 당신은 TV로 이 영화들을 본 적이 있을 거다. 하여간 그는 90년대 후반까지도 조형기가 임화수를 연기하는 < 충무로 돈키호테 >(1999)같은 싸구려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30여 년 동안 영화를 만든 이 남자의 필모그라피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게 격정적인 B급 영화가 바로 이 한국형 괴수물 <비천괴수>다. 뭔가 대단한 영화일 것 같다고? 확실히 대단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공룡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는 김 박사(왜 그 시절에는 다 김 박사인가!)가 실종된다. 잡지사에 근무하는 강 기자는 박사를 찾아 어느 작은 해안 도시로 간다. 알고보니 김 박사는 딸과 함께 숨어서 공룡의 존재를 여전히 찾아 헤매고 있다. 강 기자는 이러저러해서 김 박사의 가정부로 취직을 한다(왜?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자정신이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끝에 괴수가 부활해 인간들을 침공하기 시작한다(공룡이라더니 왜 괴수냐고? 그걸 나에게 물어봐야......). < 비천괴수 > 스틸 홍보물 당대의 국민학생들에게, 아니 적어도 내가 살던 지방 항구도시의 유년들에게, < 비천괴수 >는 센세이셔널한 블록버스터였다. 소문이 퍼지자 거의 주변 모든 학교의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보러 갔다. 거기에는 「괴수대백과」에 나올 법한 괴수들이 정유시설을 파괴하고, 도시를 파괴하고, 쓰나미를 일으키고(태풍이었던가? 어쨌든.....), 하여간 모든 걸 파괴했다. 그건 그야말로 당대 한국 영화의 어떤 괴수적 절정에 다름 없었다. “「괴수대백과」 괴수들이 다 나와!” 나는 친구들에게 소리를 빽빽 질러가며 <비천괴수>를 보라고 권했다. 그렇다. 「괴수대백과」의 괴수들이 이 영화에 다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면 이건, 알라바마주의 할매가 옆 동네 천을 하나씩 훔쳐다가 기워낸 퀼트 같은 영화였으니까. < 비천괴수 >는 80년대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카피라이트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는지에 대한 근사한 역사적 사료다. 사실상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괴수의 스펙터클은 < 울트라맨 > 시리즈의 괴수 장면들을 불법으로 가져온 것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돌아온 울트라맨>의 시고라스, 벰스타 등이고, 초기 울트라맨의 페스타도 등장한다.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번 상상해보시라. 한국형 괴수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제작자와 감독은 아무리 원화를 팍팍 투자해도 엔화로 만든 특촬물의 퀄러티를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니 유일한 방법은 어차피 한국에 전혀 들어오지 않은 일본 특촬물의 괴수 장면들을 조금씩 떼어다가 영화 속에 삽입하는 것이었을 게다. “자, 영화의 줄거리는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에서 따오는 거야. 공룡을 발견한 학자 이야기를 넣으면 근사하잖아? 응? 공룡이 아니고 괴수물 아니냐고? 한국 사람들은 괴수 이런 단어 잘 모르니까 일단 공룡으로 시작해. 그리고 그냥 해변 마을에 가서 배우들 데리고 도망치고 이런 거 찍은 다음에 편집하면 되는 거야. 괴수랑 사람이랑 직접적으로 컨택트하는 장면이 하나 쯤 있어 하지 않냐고? 그러면 발만 하나 만들어! 발만!” 발만! 당연히 괴수가 나오는 장면들과 실제로 찍은 인간들의 장면들은 도대체 붙을 리가 없다. 아마도 김정용 감독은 거의 제대로 된 대본도 없이 이 영화를 촬영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괴수가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 뒤에는 옅게 미소 짓거나 좋아서 박수를 쳐대는 인간의 리액션 씬이 등장한다. 아, 혹시 이것은 지구 종말의 날을 맞이한 인간들의 광증을 표현한 몽타주인가? < 비천괴수 > 최대의 명장면은 배우 김을동 이 마을에서 아기를 둘러업고 산으로 피신을 갔다가, 둘러업고 온 것이 아기가 아니라 베개라는 사실을 깨닫고 슬프게 오열하는 장면이다. 공포에 질려서 산으로 도망쳤던 김 박사의 딸은 그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도 기쁘게 웃어젖힌다. 나중에 <비천괴수>를 다시 봤더니, 이 영화의 진정한 괴수는 괴수가 아니라 김 박사의 딸이었다. 그러고보니 왜 한국형 괴수영화 속 아이들은 이토록 인간미 없는 사이코패스인가에 대한 논문을 누가 하나 써볼 법도 하다. 전설적인 < 대괴수 용가리 >에서 용가리와 춤을 추는 소년의 캐릭터와 함께 묶어서 말이다. < 비천괴수 >는 < 대괴수 용가리 >(1967), < 우주괴인 왕마귀 >(1967)로부터 시작된, 가난한 한국 B급 괴수영화의 계보도에서도 결코 진골은 될 수 없는 영화다. 두려움 없는 저작권의 테러라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대괴수 용가리>를 극장에서 보기에는 너무 어렸고, 레이 해리하우젠의 몬스터들은 ‘괴수’라기보다는 뭔가 좀 다른 존재였다(그리고 심형래의 < 용가리 >를 온전히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나이가 들었다). 지금 삼사십대의 한국 몬스터 영화광들에게는 <비천괴수>가 주는 어떤 미묘한 향수를 도저히 거부할 길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건 마치, < 고질라 >를 보고 싶었으나 정작 알라바마주 동네 극장에서 상영하는 샘 커츠만의 거대 ‘칠면조 괴수물’ <자이언트 클로 The Giant Claw>(1957)가 생애 첫 괴수영화가 되어버린, 지금은 예순이 넘은 미국의 어떤 괴수광 노인이 느끼는 향수 같은 것과도 비슷한 것이리라. 뭐, 그런 느낌적 느낌일 거란 소리다. 김기주 남혜경 김다혜 문태선 감독: 김정용 각본: 이문웅 개봉극장: 오스카(서울) 관람인원: 2,741명(서울)
[삐용삐용B무비]하피
2000년은 한국 슬래셔 영화계의 원년이었다. 갑작스레 한국형 슬래셔 영화 네댓 편이 동시다발적으로 개봉을 했다. 대체 왜? 그게 다 웨스 크레이븐의 < 스크림 > 탓이다. 덕이 아니다. 탓이다. 다 내 탓이오 고등학생들의 살인을 다룬다는 이유로 수입이 금지됐던 웨스 크레이븐의 < 스크림 >(1996)은 1999년 뒤늦게 개봉했다. 슬래셔 영화는 장사가 안 된다는 시장의 법칙에도 불구하고 이 끝내주는 메타-호러영화는 서울에서만 36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같은 해 개봉한 < 스크림 2 >역시 서울 관객 17만을 동원했다. 1999년으로서는 꽤 괜찮은 성적이었다. 두 영화의 성공을 보며 충무로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뻔하지 않은가? 그즈음 충무로 제작자들이 입봉 준비 중인 신인감독들을 커피숍에서 앉혀놓고 했을 법한 대화를 한번 상상해보시라. “어이 김 감독, 요즘 시나리오 하나 쓰고 있다고?” “네. 대표님. 끝나면 보여드리겠습니다. 고다르적인 영화적 개념을 상업적으로 한번 풀어보려고….” “에이 그걸로 언제 입봉하려고? 마흔 돼서? 그러지 말고 공포영화부터 하나 만들어서 돈부터 번 다음에 김 감독 하고 싶은 거 해” “공포….영화요? 저 공포영화 무서워서 못 보는데…” “에이. 포르노는 뭐 섹스 잘하는 놈만 만드나? 그 뭐더라 ‘ 스크림 ’인가 그거 봤어? 그거 비슷하게 하나 만들면 무조건 되는 거야. 이거 잘 되면 내가 김 감독 지금 쓰는 걸로 꼭 영화 만들어줌세”. 오오 통제라. 2000년을 수놓은 슬래셔 영화들 여하튼, 2000년 여름에 개봉한 한국형 슬래셔 영화는 < 가위 >, < 찍히면 죽는다 >, < 해변으로 가다 >와 < 하피 >다. 이 중 성공한 건 안병기 라는 장인의 대표작인 <가위> 하나뿐이다(서울 관객이 30만이 넘었다). <해변으로 가다>는 할리우드 슬래셔 영화의 가장 심심하고 슴슴한 오마주로 남았다. <찍히면 죽는다>의 부제는 ‘또 찍으면 죽는다’로 공식화하는 게 마땅하다. 그렇다면 <하피>? 이게 좀 문제다. 다들 이 영화를 < 맨데이트: 신이 주신 임무 >(2008)와 함께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졸작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영화에 관한 거의 유일한 리뷰라고 할 수 있을 네이버 독자 리뷰 하나는 “나중에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원본 필름을 없애야 합니다”라고 절규하며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런 리뷰도 영화를 본 적이나 있어야 쓸 일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 하피 >라는 영화를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보기는 쉽지 않을 거다. DVD를 출시할 만큼 배짱 있는 제작사도 없고, 무엇보다도 주연인 김래원 과 이정현 이 DVD의 출시를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게 어떤 영화냐고? 수연, 현우, 예림 내용은 아주 간결하다. 전반부에서는 모범생 수연( 이정현 )과 불량소녀 예림( 김꽃지 )이 양아치 현우( 김래원 )을 둘러싸고 연애질을 벌이다가, 중반부에서는 세 명이 주축을 이루는 영화동아리(대체 이딴 세 명이 왜 영화 동아리의 주축 인물인지는 미스터리미스 어쨌든….)가 단편공포영화를 만들러 외딴곳으로 가고, 후반부에서는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아마도 장르 영화광이었던 모양인 라호범 감독은 심지어 90년대의 가장 핫한 단체인 ‘대학 영화동아리’를 배경으로 설정한 뒤 일종의 메타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정말 못 만든 영화다. 하지만 못 만든 영화가 어디 한둘이던가. 못 만들었기로 말하자면야 같은 해 개봉한 < 찍히면 죽는다 >가 더 격렬하게 못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찍히면 죽는다>는 컬트가 되지 못하고 < 하피 >가 일종의 컬트가 된 이유는, 이 못 만든 영화를 못 만든 스태프들이 어떻게든 ‘일부러 못 만든 영화’처럼 보이려 편집실에서 행한 놀라운 투쟁 덕분이다. 아마도 스태프들은 < 스크림 >을 대충 흉내 내면 꽤 근사한 한국형 슬래셔 영화가 나올 거라 생각했을 거다. 막상 다 찍어놓고 보니 그렇지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당대의 성우 이선영 을 뒤늦게 섭외해서 내레이션을 깔기 시작했을 것이다. 아아 < 하피 > 내레이션의 오묘한 힘은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다. 현우( 김래원 )가 살인마의 목을 쇠사슬로 조르는 장면에서 “아저씨는 왜 저렇게 괴로워할까? 쇠사슬이 아니라 플라스틱 소품일 뿐인데”라고 이선영의 내레이션이 흐를 때, 2000년 여름의 극장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한번 떠올려 보시라. * 내레이션 컬렉션 * “잠깐, 이 영화의 모든 끔찍한 장면은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가 제작하는 공포영화의 표현이므로 실제 살인과는 무관하다” “아이들은 나이트클럽이 콜라텍인 줄 알고 왔다. 아이들을 속이는 건 어른이다” “담배가 많이 등장하지만 이건 다 소품일 뿐이다” “이 줄은 사실 플라스틱이다. 따라서 임산부나 노약자가 놀랄 필요 없지만 이 여자의 연기를 흉내낼 필요도 없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잠깐, 이 영화의 모든 끔찍한 장면은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가 제작하는 공포영화의 표현이므로 실제 살인과는 무관하다”는 내레이션은 어떻게 해석해야 좋은 걸까. “아이들은 나이트클럽이 콜라텍인 줄 알고 왔다. 아이들을 속이는 건 어른이다”라는 내레이션은 공익광고에 대한 스태프들의 준엄한 농담인 걸까? “담배가 많이 등장하지만 이건 다 소품일 뿐이다”라는 내레이션은 추후 한국 TV에서의 방영을 염두에 둔 일종의 검열적 예언일까? 내레이션으로는 부족했던지 스태프들은 후반 작업에서 효과음으로도 농담을 시도한다. 단추가 떨어지면 엔진음이 나온다. 농구공이 골대를 맞으면 “띠오오옹”하는 만화 속 효과음이 나온다. 이거 내가 지어내서 쓰는 게 아니다. 정말로, < 하피 >에는 그런 내레이션과 효과음이 끝도 없이 나온다. 아마도 < 하피 >의 제작진은 편집실에서 첫 번째 편집을 하던 중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게 공멸하느니 차라리 웃기기라도 하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라호범 감독은 이런 식의 메타장르영화적 농담이라도 넣으면 헛발질에 유독 열광하기 쉬운 극소수의 비평가와 장르광들이 상찬하고, 그 덕에 어찌어찌 다음 영화라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최종 편집실에 모인 스태프들의 가당치도 않은 모험은 결국 <하피>를 몇 안 되는 한국형 컬트영화 중 하나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 김완주 전주시장. 노력했으나 영화 속 출연장면 찾지 못함. 사족으로, < 하피 >는 전주에서 촬영된 가장 최초의 영화 중 하나다. 당시 전북도민일보에는 전주시장의 첫 번째 영화 출연이라는 기사가 났다. 기사는 “김완주 전주시장은 문화영상산업의 도시, 전주를 알리기 위해 빅히트가 예고되는 영화 <하피>에 출연하게 됐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돼 “시장의 영화출연으로 이정현 양을 비롯한 유명영화 배우와 출연진 모두를 전주시의 홍보요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문장으로 끝이 난다. 김 시장은 ‘테크노의 요정 이정현 양을 지도하는 체육교사’를 연기했다. 당시 전주 지역의 흥행 성적은 KMDb에 남아있지 않을 터인데, 전주시청 공무원 수만큼의 흥행 성적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구든 테크노의 요정 이정현양을 만나면 나 대신 누가 좀 물어봐 주시길. 당시 <하피>의 시사회장에서 이정현과 김래원 을 비롯한 주연배우들이 영화가 너무 민망했던 나머지 도망가버렸다는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여전히 확인할 길이 없다. 이정현 김래원 김꽃지 감독: 라호범 각본: 권소연 개봉극장: 피카디리 등 관람인원: 26,591명
[한국영화걸작선]첫사랑
이명세 의 < M >을 보는 도중에 묘한 데자뷔가 왔다. 2007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어떤 면에서 1993년작 < 첫사랑 >의 영화적 환기이거나, 20년을 간극으로 둔 리바이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둘 다 첫사랑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거니와, 둘 다 이명세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르게 단언하건대 <첫사랑>은 이명세의 가장 빛나는 걸작 중 하나다. 1993년 당시 이명세 는 충무로 상업영화계의 새로운 신동이었다. 데뷔작 < 개그맨 >은 그가 배창호의 (보다 뛰어난) 수제자라는 증거였다.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0)는 새로운 한국영화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예언 같았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아니었다면 김의석 의 < 결혼 이야기 >(1992)를 비롯한 로맨틱 코미디의 물결은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모든 성공을 스스로 비웃기라도 하듯 이명세는 당대의 관객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을 < 첫사랑 >을 만들었다. 최종 관객은 겨우 5천 명이었다. < 첫사랑 >은 대학에 들어간 열아홉 살 소녀( 김혜수 )가 연극반 연출자( 송영창 )를 짝사랑하고, 몇 번의 데이트와 첫 키스를 한다는, 별것 없는 이야기다. 아니, 여기에는 사실 이야기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이명세 는 첫사랑의 기억과 감정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그려 내는 데만 집중한다. 이명세는 송영창이 피우는 담배 연기가 바람에 실려 창밖으로 흘러나가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선풍기와 부채를 총동원했고, 60 테이크 이상을 찍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한낮에 반짝거리는 지붕을 표현하기 위해 기와를 모두 식용유로 칠했고, 목련을 모조리 따서 세트에 달았다. 그런 이명세의 방식은 서사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던 당시의 한국 영화계에서는 가히 도착적인 방식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이명세 는 < 첫사랑 >이 ‘첫사랑’이 아니라 첫사랑의 ‘기억’에 대한 영화라는 걸 분명하게 한다. 첫사랑은, 그것이 누구의 첫사랑이든 관계없이, 한 인간의 인생에서 가장 짜릿하면서도 슬픈 기억이다. 그것은 중년이 된 어느 날 신발 끈을 묶다가, 혹은 평소처럼 버스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가다, 불현듯 찾아와서 심장을 두들긴다. 이명세는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첫사랑의 순간들을 마치 세밀화를 그리듯이 재현하고,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첫사랑에 빠졌던 순간의 풍광과 기억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나는 김혜수 가 자전거를 타고 벚꽃이 날리는 거리를 내달리다가 송영창 의 창가로 부유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순간 여전히 뭔가 끓어오르는 감흥을 느낀다. 그것은 스타일과 이야기가 완벽하게 합일된, 혹은 오로지 스타일로서 온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마술 같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 첫사랑 >은 이명세 가 ‘스타일리스트’라는 이름을 얻게 된 첫 번째 영화였고, 이명세는 같은 접근법으로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를 만들며 상업적인 감각과 자신의 스타일을 버무리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자아내는 마법 같은 순간은 < 형사 >와 < M >에서 다시 재현되지 않았다. 이명세의 영화에 대한 접근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우겨보자면, 나는 이명세 영화의 즐거움이 CG의 발전과 함께 사그라졌다고 믿는다. 여기서 내놓고 싶은 또 다른 이름은 팀 버튼이다. 팀 버튼의 몰락은 사실상 CG 발전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의 영화는 수공예로 정성스럽게 창조한 아날로그 특수효과의 지장 속에 있었다. < 비틀 주스 >나 < 배트맨 > 시리즈, < 가위손 >과 그 이후의 영화들을 한번 비교해 보시라. 그가 자신의 수공예적 상상력을 번들거리는 CG로 재창조하는 순간 물리적인 아름다움은 처절하게 거세된다. 이명세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의 초기작들이 주는 감흥은 ‘손맛의 상상력’이라고 믿는다. 혹은 ‘손맛의 공간감’이라고 믿는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창조한 <지독한 사랑>의 세트를 한번 생각해 보라. 그 꿈처럼 가짜 같은 바닷가의 집은 CG로 재창조하는 순간 꿈이 아니라 그냥 가짜가 될 것이다. 손맛을 흉내 낸 CG 이미지가 그걸 대체하는 순간, 이명세의 스타일은 묘하게 숨이 죽어 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명세 의 최고작을 꼽으며 < 첫사랑 >, < 지독한 사랑 >,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사이에서 망설일 테지만, 손맛의 스타일리스트로서 이명세의 가장 순수한 절정이 <첫사랑>이었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한마디 붙이자면, 이명세 감독의 초기작들은 < 개그맨 >을 제외하면 DVD로 좀처럼 발매되지 않고 있다. 이건 거의 문화재 관리 직무 유기에 가까운 일이다.
[한국영화걸작선]달콤한 인생
< 달콤한 인생 >이 개봉했을 때 쏟아진 악평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스타일만 강조한 느와르’라는 표현은 일단 이해가 잘 가질 않았다. 느와르(Noir)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해당 영화의 스타일을 구분 짓는 잣대다. 영화학자 토머스 샤츠는 '스타일이 실체를 결정하고, 기운이 플롯을 압도하고, 내러티브성이 내러티브로 등장하고, 초점이 ‘무엇’에서 ‘어떻게’로 옮겨가며, 형식과 내용을 분리할 수 없게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간단명료하게 풀이하자면, 결국 느와르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느와르는 그저 스타일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느와르가 될 수 있지 않나? 화면이 어두침침하며 반영웅이 등장하면 그건 다 느와르일 수도 있다. < 블레이드 러너 >를 느와르로 구분하는 게 가능하다면 < 토탈리콜 >이 느와르가 될 수 없는 이유도 없다. < 달콤한 인생 >에 대한 가장 졸렬한 표현은 아마도 ‘청담동 느와르’였을 것이다. 청담동 느와르라니.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인지를 몰라서 한참을 갸우뚱거렸다(이건 부산 출신으로 2004년에 상경한 내가 서울 지리에 대해서 잘 몰랐던 탓일 수 도 있다). 술자리에서 들어보니 당시 충무로 사람들은 김지운 , 박찬욱 등 몇몇 감독들을 ‘청담동 감독들’이라 부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 2005년 당시는 청담동이라는 동네가 90년대의 압구정동처럼 한창 뜨던 상태였으니 트렌드에 민감한 감독이 청담동의 새로 생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신작을 논의했을 수 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청담동 느와르라니. 그렇게 따지자면 김조광수 , 이송희일 의 영화는 ‘낙원동 퀴어 시네마’고, 김태용, 민규동 의 영화들은 ‘홍대 모던 시네마’인가? < 달콤한 인생 >은 빠르게 잊혀졌다. 흥행 성적은 무던했고 비평가들의 평가 역시 박했다. 여러모로 이 영화는 < 장화, 홍련 >과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사이의 어떤 어두운 구멍처럼 남아있다. 다만, <달콤한 인생>이 해외의 장르 영화광들과 비평가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으며 나름의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는 점은 거론하고 넘어갈 가치가 있다. 이를테면 한국의 비평가와 장르광들은 한국 호러나 느와르, 혹은 액션 영화에 대해 할리우드의 장르 클래식들로부터 무엇을 도용했는지에 대해 날카롭게 따지고 드는 경우가 있다.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끈질긴 집착이라고 할 법도 하다. 그러나 < 가위손 >과 비슷하다는 이야기에 대해 < 늑대소년 >의 조성희 가 말했듯이, 잘 알려진 장르영화의 플롯과 분위기는 결국 공공재다. 중요한 건 이 공공재를 얼마나 근사하게 자신의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느냐다. 김지운 은 자신이 느와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고전과 현대 영화들로부터 파편들을 가져온다. 여기에는 자신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랐다가 떨어져 내리는 반 영웅이 있고, 총을 들고 오가는 어둠의 사내들이 있고, 운명의 굴레에서 빠져 나오려는 여자가 있다. 김지운은 그 간결한 느와르 장르의 파편을 온전히 자기의 방식으로 밀어붙인다. 김지운의 방식? 끝내주는 폼의 추구다. 다들 알다시피 김지운은 폼을 잡는 감독이고, < 달콤한 인생> 은 김지운의 폼이 절정에 올랐던 영화다. 이를테면, 내가 영화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이병헌 과 황정민 이 (굳이) 아이스링크에서 만나는 시퀀스다. 그들이 아이스링크에서 만나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이병헌과 황정민의 근사한 목소리가 얼음에 반사되어 울려 퍼지고, 두 남자의 피가 하얀 얼음 위에 흩뿌려지고, 황정민이 얼음 위 흩뿌려진 피를 밟고 비틀거릴 때, 그 모골이 송연 할 정도로 근사한 폼은 도무지 거부할 도리가 없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김지운 을 봉준호 와 박찬욱 이 이룩한 지점들을 뒤쫓는, 형식적인 아름다움에만 사로잡힌 2인자 정도로 지칭한다는 걸 익히 알고 있다. 글쎄. 내가 보기에 김지운은 두 감독과 전혀 다른 유형의 감독이다. 그는 이야기가 아니라 종종 하나의 이미지로부터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며 영화적 아이디어를 출발시키는 듯 하고,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놓을지라도 뭔가 근사할 것 같은 시퀀스를 영화의 중간에 툭 던져 넣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앞서 이야기한 아이스 링크 장면, 혹은 < 악마를 보았다 >의 산장 결투 장면 같은 것 말이다). 그건 종종 불연속적이고 불균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에 이르러서는 그런 결점 자체가 김지운 영화의 독특한 장점이 된 게 틀림없어 보인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 달콤한 인생 >이 개봉했을 당시에는 김지운 영화의 연속적인 특징에 대해서 온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였다. 지금 와서 돌아보자면 <달콤한 인생>은 김지운이 추구해 온 ‘김지운적 (폼의) 페스티시’를 가장 달콤하게 스크린에 살려낸 영화다. 만약 김지운이라는 이름이 고전으로 남는다면, <달콤한 인생>은 그 이름을 대표하는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