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제목들
<영자의 전성시대>(1975) 중 영자( 염복순 ) / © 태흥영화 (사진: 양기주) *** 현재 한국영화박물관에서는 기획 전시 ‘ 제목전(展) – 텍스트, 타이포그래피, 무빙 이미지 ’ 가 진행 중이다. 1919년 < 의리적 구토 >로 시작해 2025년 개봉작까지 8,400여 편의 한국영화를 다루는 이번 전시는 100년이 넘는 한국영화 역사를 ‘영화 제목’의 관점으로 살핀다. 제목은 관객에게 한 편의 영화를 가장 인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계된 문장(혹은 단어)이지만, 이를 통시적으로 관통해 보면 제목 하나하나에 당대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영화 제목은 한 편의 영화를 설명하는 도구인 동시에, 영화가 태어난 시대의 정서를 품고 있는 문장이다. KMDb는 이번 전시와 연계해 두 편의 글을 공유한다. 먼저, 1970~90년대의 시대정신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저항’의 움직임 을 문주화 영화평론가가 당대 한국영화와 그들의 제목을 통해 들여다본다. *** 나는 내 앞에 있으면 좋을 사람에게 말을 거네 ─한번만 다시 생각해 봐요 더러운 걸레 같은 내 혀로 있으면 좋을 그 사람의 젖은 머리를 닦네 - 김혜순, 「비에 갇힌 불쌍한 사랑 기계들」(1997)의 일부 얼마 전 접했던 어느 다큐멘터리 영화를 떠올린다. 영화는 무연고자들의 장례를 치르는 것을 업으로 삼은 한 남자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황량한 빈소에서 남자는 우두커니 선 채로 세상을 막 등진 망자를 향한 기도문을 읊는다. 기도문을 들을 리 없는 무연고 사망자의 대답 없는 관 주변으로, 살아생전 그와 만난 적 없는 사람들만이 어색한 작별 인사를 나눈다. 이 세상에 슬프지 않은 장례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연고자의 장례를 기록한 그 영화에서 나는 생경한 슬픔을 감각한다. 그것은 ‘제대로 슬퍼할 수 없음에 대한 슬픔’이었다. 때로는 영정 사진마저 없는 그들의 겸손한 장례식 장면에서, 제대로 울 수 없는 나는 울 수 있을 만한 이유를 서둘러 찾아보려 했다. 우리가 그들의 삶에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뻔뻔한 비통함이 가장 손쉽게 댈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이 죽지 않았다면, 가령 그들이 가족과 친구들, 혹은 어느 공동체의 일원이었다면 우리와 만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떠난 자와 늦게 도착한 자를 구태여 한 프레임 안에 욱여넣은 그 영화는 무엇을 하려 했던 것일까. 뒤늦은 속죄를 행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긋난 두 시간 축을 가로지르는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서두가 길었다.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공개된 한국영화의 제목을 살펴보는 나의 심정은 흡사 영화 속 장례지도사와 유사한 것이었음을 밝힌다.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저항 정신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특히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의 영화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시간을 헤아려 본다는 점에서 머나먼 미래를 자신 있게 예견하는 SF영화들과 진배없는 것이었다. 이미 발행된 숱한 비평과 연구 자료들을 읽으면서 나는 그 시간을 안다고 믿고 싶었지만 언제나 극복할 수 없는 간격을 느끼곤 했다. 차이가 있다면 SF영화에서 인류는 주로 불굴의 의지와 빼어난 기지로 절명의 위기를 벗어나는 모험가로 그려지는 것에 비해, 1970년부터 1999년까지의 한국영화에서 인물들은 대체로 좌절한 얼굴의 일그러진 클로즈업 속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희극인의 이름인 줄로만 알았던 ‘영자’는 사실은 비극을 표상하던 이름이었다(< 영자의 전성시대 >).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분명한 점은 70년대를 점화시킨 것이 큰 불길이라는 것이다. 70년대에 진입하기 직전인 1969년, 미국은 아폴로 11호를 쏘아 올린다. 사람을 태운 우주선은 거대한 불을 내뿜으며 달 착륙에 성공한다. 닐 암스트롱, 아니 미국인은 인류의 영웅이 되었다. 다음 해인 1970년, 한국에선 부조리한 근무 환경을 견디지 못한 어느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다. 수중에 돈이 없던 그는 제대로 된 응급 처치도 받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른다. 훗날 그의 이름은 한국의 비상식적인 노동 환경의 개선을 촉구하는 하나의 명령어가 된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1978년 출간되고, 박광수 감독의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 1995년 개봉하였다. 영화에서 ‘전태일’을 정면으로 재현하기까지 25년이 걸린 셈이다. 영화는 재현을 통해 25년이라는 사건과 재현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간격을 극복하려 한다. 그 시절의 영화들은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국가가 내건 거대한 캠페인 혹은 정치적 매니페스토에서 이탈된 사람들의 이름들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인다.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재현을 통해 되살리고 각인하는 행위, 이를테면 무연고자들의 위패를 찾아주는 것처럼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의 간극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시간의 틈 사이로 스며드는 망각에 저항한다.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을 박제하며 기념하는 박물관이 아닌,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이미지로 재현해낼 것이다.’ 질 들뢰즈는 1985년 출간된 『시간-이미지』에서 앙리 베르그송의 이론을 부연 설명하면서, 페데리코 펠리니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우리는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동시에 유년기이고 청소년기이며 노년기이고 성년기이다.” 전입신고의 영화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칠수와 만수>(1988)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칠수와 만수> / © 예성일, ㈜동아수출공사 (사진: 박광수필림) 흥미롭게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전태일( 홍경인 )의 평전을 집필하는 영수( 문성근 )는 수배 중인 신분 때문에 전입신고를 하지 못하는, 주소를 가지지 못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가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 전태일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아키비스트이다. 박광수의 리얼리즘은 잊힌 이름들을 프레임 안으로 전입시키면서 성립하곤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한국으로 집중된 해, 감독은 < 칠수와 만수 >를 공개한다. 장칠수( 박중훈 )와 박만수( 안성기 )는 실제로는 다른 성을 가졌지만, 아버지(국가)로부터 배척당한 공통의 역사를 지닌 배다른 형제처럼 그려진다. 당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철수와 영희라는 두 허구적 인물이 사이좋게 지내며 새 나라의 어린이로 성장하는 동안, 영화의 허구적 인물 칠수와 만수는 같은 해 서울올림픽이 마련한 수많은 시상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한 채, 건물의 옥상 위로 내몰린다. 영화는 칠수와 만수의 시점 숏으로 그들을 우러러보는 경찰과 언론인, 구경꾼들을 비춘다. 손에 손을 잡고 올림픽 시상대에 올랐던 한국의 메달리스트들을 응원했던 그들이 칠수와 만수를 우러르며 기원했던 것은 그들의 안전일까 추락일까. <칠수와 만수>는 희뿌연 서울에서 길을 잃은 채 추락한 인물들을 잊지 않겠다는 저항적 선언이자, 한국 역사에 메달리스트들의 이름과 함께 장칠수와 박만수의 이름을 제목으로 기입하는 전입신고의 영화이다. 두 개의 날: <바람불어 좋은 날>(1980),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바람불어 좋은 날>, <기쁜 우리 젊은 날> / © ㈜동아수출공사, ㈜태흥영화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정성일 은 『1980년대 한국영화: ‘서울의 봄’부터 코리안 뉴웨이브까지』(2023)에서, 이장호 에 대해 한쪽으로부터는 외면을 당하고 다른 한쪽에게는 환대를 받은, 두 세대의 중개인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장호가 중개한 것은, 비단 그의 등장을 전후로 활동했던 한국영화의 두 시대뿐만이 아니다. 그는 < 바람불어 좋은 날 >에서 결합되기 어려운 남녀들을 잠시나마 중개한다. 주연을 맡은 안성기의 영향 때문인지, 유사한 제목의 구조 때문인지 내게 배창호 의 < 기쁜 우리 젊은 날 >의 영민과 <바람불어 좋은 날>의 덕배가 유독 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쭈뼛대며 말하던 영민과 덕배는 두 영화의 제목처럼 좋고도 젊었던 날을 보냈을까. 두 영화는 인물들이 누렸어야 마땅한 젊고도 좋았던 나날들을 제목으로 제시하면서 비극과 희극 사이의 간격을 좁힌다. 부패한 유산들: <지리멸렬>(1994), <꽃잎>(1996), <나쁜 영화>(1997) <지리멸렬>, <꽃잎> / © (재)한국영화아카데미발전기금, ㈜미라신엔터테인먼트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90년대 초반,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한국은 변혁의 물결 위에 서게 된다. 1993년 대전에선 세계박람회가 열렸다. 모두가 한국의 국가적 위상을 드높이는 일에 동참했다. 그 일환으로 개최됐던 ‘엑스포93 국제영화제’에선 장선우 의 < 화엄경 >(1993)이 상영됐다. 다음 해, 봉준호 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으로 < 지리멸렬 >을 완성한다. 기성세대의 무능을 드러내고 부패한 지식인들의 세계를 해부하는 단편이었다. 같은 해, 12월 31일 주간으로 송출되던 <대한뉴스>가 제작을 멈춘다. 국가는 그렇게 영화 창작 주체의 자리를 반환한다. 2년 후인 1996년 장선우는 < 꽃잎 >으로 1980년 5월의 광주를 소생시킨다. 으레 ‘꽃’은 피는 것으로, ‘꽃잎’은 떨어지는 형상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꽃은 짧은 봄 동안 만개하고, 떨어진다. <꽃잎>은 지면에 닿아 낙엽이 되기 전, 낙하하는 꽃잎과 같았던 광주의 역사를 어슴푸레 내비춘다. 감독은 엑스포와 같은 국가가 내세운 꿈에 동참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 장막을 걷어내고 당시 세대가 물려받은 부패한 유산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임무를 부여받은 듯했다. 이어서 연출한 < 나쁜 영화 >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배반하는 비뚤어진 저항의 표현이었다. 그해 일본에서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 큐어 >가 개봉하였다. 도쿄에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서울의 길거리에는 회생이 어려워 보이는 좌절감이 배회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세기말을 이야기했고, 1997년 12월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맞이한다. <나쁜 영화> / © ㈜미라신엔터테인먼트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되살아나는 목소리들: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 <낮은 목소리 2>(1997) 망각에 저항하며 매장된 시간들을 현재로 소환한 영화의 목소리들도 있었다. 변영주 가 연출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우리는 일제강점기 시절 젊음을 짓밟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늙어버린 초상을 뒤늦게 발견한다. < 낮은 목소리 2 >에서 관객은 강덕경의 장례 장면을 지켜보며, 그녀의 조문객으로 자리한다. 그에게 가족이란 나눔의 집으로 모여든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이 전부였다. 영화가 우리와 작별시키는 것은 그의 육체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가 강탈당한, 젊고도 좋았어야 했던 지난날들과 영원히 이별한 것이다. 여전히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그러나 영화는 멈추지 않고 무지에 저항한다. 새로운 세기의 첫 해, 변영주는 < 낮은 목소리 3 - 숨결 >(1999)을 발표하며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낮은 목소리 2> / © 변영주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90년대의 마지막인 1999년, 영화 속 인물들은 주유소를 때려 부수고(< 주유소 습격사건 >), 내일이 없는 것처럼 불안한 미래에 저항하며 오직 실패하기만 했다(< 세기말 >). 마찬가지로 1999년 미국에선 폴 토마스 앤더슨의 < 매그놀리아 >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영화의 오프닝, 기묘한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우리는 과거를 잊었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 비록 우리가 과거를 잊더라도, 영화는 과거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저항한다. 잃어버린 위패들을 끊임없이 생산하면서. <세기말> / © ㈜태흥영화 (사진: 이한나) 문주화(영화평론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 l 영화평론가. 2024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통해 등단했다. 영화 이론과 미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비평을 비롯한 연구, 스크리닝 기획 등 동시대 예술의 여러 영역에서 실천적 비평을 수행하고 있다. 2025년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 무관한 당신들에게 >를 기획했으며, 현재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