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반짝이는 박수 소리
‘반짝이는 것’이 시각의 영역이라면, ‘박수 소리’는 청각의 영역이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 장애인들에게 보내는 소리 없는 박수(소리)이다. 소리 대신 양손을 흔들어 ‘짝짝짝’ 대신 ‘반짝반짝’을 한다. 영화 < 반짝이는 박수 소리 >는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 그/녀들에게 보내는 소리 없는 박수, 곧 지지와 응원이다. 동시에 영화는 ‘말의 세계’(감독은 듣고 말할 수 있는 비장애인의 세계를 침묵의 세계와는 다른 ‘말의 세계’라 표현한다)의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혹은 듣지 않았던 ‘침묵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감독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침묵의 세계와 말을 세계를 오가며 두 세계를 매개해왔듯이, 영화 역시 청각 장애인과 비청각 장애인의 세계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건네려는 시도인 셈이다. 반짝이는 침묵의 세계, 소리 없는 일상 영화는 청각장애인이지만, 누구보다 아름답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부모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달리기를 좋아하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소녀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소년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말을 할 수 없으므로 한 가정을 꾸려가기 위한 그들의 삶은 짐작보다도 훨씬 고단하고 힘들었을 텐데, 그들은 한없이 밝고 유쾌하게 지난 시간을 회고한다. 영화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며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아빠와 엄마의 모습으로 시작되는데, 두 사람의 삶은 이미 그 자체로 크리스마스트리만큼이나 반짝인다. 밥을 지어 먹고, 김장을 담그고, 장을 보고, 명절을 지내는 그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은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단단하게 구축되어, 그 자체로 이미 평화롭고 온전해 보인다. 침묵의 세계에 살고 있는 혹은 함께 살아가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다. 엄마, 아빠를 중심으로 다큐를 찍으려고 하지만 과연 다큐를 통해 가족을 설명할 수 있을지, “찍으면 찍을수록 견고하고 완전”한 그 세계를 어떻게 다큐에 담아낼 수 있을지 감독은 묻는다. 영화는 부모님과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지만, 이 영화가 해야 하는 가장 큰 몫은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일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침묵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이 뒤처지거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대신 감독은 내 안의 질문, 내 안의 이야기에 한층 더 가까이 그리고 깊이 다가선다. 장애를 가진 그들의 부모만큼이나 침묵의 세계와 말을 세계를 오가야 했던 아이들의 삶도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감독인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곧 학교를 그만두고 배낭여행을 떠난다. 동생 광희 역시 기숙사형 대안학교에 입학해 집으로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한다. 부모가 장애인이므로 누구보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고, 누구보다 ‘착하게, 빨리 자라야 했던’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삶을 선택한다. 그것은 아마도 부모의 침묵의 세계로부터, 그것이 주는 어떤 책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말의 세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방황하고 부유하는 삶을 정리하고, 정착을 준비 중이다. 광희는 마을 까페를 차릴 계획을 세우고, ‘혼자로 오롯할 수 있는 세계를 꿈꾸었던’ 나 역시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 시간들을 정리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 반짝이는 박수 소리 >는 이 질문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다. 나와 내 동생은 왜 그렇게 떠돌아야만 했을까. 이제 우리는 부모의 장애 때문에 짊어져야 했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진 걸까, 오롯하게 나일 수 있는 걸까. 그래서 감독은 엄마, 아빠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일상을 따라가다가도 이따금 카메라를 든 스스로를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고민과 상처를 갖고 있을, 비슷한 질문의 답을 찾고 있을 동생에게 불쑥불쑥 묻는다. 나에게 보내는 질문 혹은 위로 < 반짝이는 박수 소리 >에서 가장 강렬하게 와 닿았던 장면이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조바심 속에 밤을 새우며 첫 딸을 키워낸 엄마 아빠의 고생담도, IMF를 맞아 호떡 장사를 위해 아이들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독하게 장사를 해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도, 장애를 가진 부모 때문에 종종 따돌림을 당해야 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도 마음이 아팠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치 그녀의 마음속 깊숙이 박혀있었던 듯한 어린 시절을 환기시키는 부분이다. 아버지가 충실히 기록해놓은 어린 시절의 홈비디오는 그 자체만으로는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가족의 일면이지만, 거기에 입혀진 소리(하지만 부모들은 듣지 못했을 어린 그녀의 옹알이와 장난감 기계의 멜로디)와 아마도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 혹은 그녀의 기억에 남아있을 듯한 풍경은 그녀가 어린 나이에 감당했어야 했을 삶의 무게, 그녀가 느꼈을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이제는 어른이 된 내가 그때의 어린 나를 만나 어루만지는 느낌, 어린 나의 상처와 아픔과 버거웠을 삶의 무게를 들여다보는 그런 느낌. 이 장면을 보면서 정말 온전히 그녀가 하고 싶었던 아니 해야 했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말하지 못하는 부모의 침묵의 세계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세계와 말의 세계를 넘나들며,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그 상처를 보듬고 일어서야 그녀가 온전히 침묵의 세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 반짝이는 박수 소리 >는 홍재희 감독의 < 아버지의 이메일 >을 닮았다. 그녀들의 삶을 붙잡고 있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 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와 다짐. 두 세계의 화해와 인정의 순간들, 오롯한 성찰과 다짐들 덕분에 이 작품 역시 반짝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