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연감
- 감독
- 벨라 타르
- 제작년도
- 1985
- 출연
- 헤디 테메시, 야노스 델치
그래서 우리는 유튜브 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20년 5월에는 정지돈의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출간 기념 라이브 북토크를 했고(촬영하던 아이패드 배터리가 중간에 떨어지는 바람에 강제 종료됐다), 2021년 5월에는 오한기의 『인간만세』 출간 기념으로 셋이서 라이브 북토크를 했다(오한기가 화장실에 가야겠다며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줌을 통해 진행했던 것까지 포함하면 라이브 경험은 더 많다. 우리가 연예인도 아니고 무슨 라이브냐고, 너무 민망하다고, 식은땀 흘리며 새하얘진 머리로 아무 말이나 하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이제 멀쩡한 정신으로 차분하게 아무 말이나 한다). 그렇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다. 정말로… (하나, 둘, 셋-) (심호흡) 1. 23 아이덴티티 -안녕하세요? 우리는 한영한사! 지금부터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신년 특집 유튜브 라이브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K정연이고요, 제 옆에는- -안녕하세요 JD입니다. -처음 연재 제안 받고 서교동 카페에 둘이 마주보고 앉아서 도대체 뭘 써야 하나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해가 바뀌었어요. 신년인데 어떻게 지내시나요? 근황부터 좀. -네, 저는 요즘 누워 있는데요. 누워서 책도 보고 누워서 소설도 쓰고 밥도 누워서 먹고 지금도 사실 누워 있어요. -세상에, 지금 라이브 스트리밍 중이잖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독자들을 기만하시는 건가요? How dare? -어차피 안 보이잖아… 근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이게 뭐야 진짜. 그러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이건 장난이 아니다. 오늘을 위해 나는 유튜브 채널까지 만들었다. 이름은 레코드 디스코드(검색해도 안 나옴), 오디오 비주얼 전문(일단은) 채널이다. 계획은 이랬다. 영자원에 미리 양해를 구해서 라이브 시작과 동시에 유튜브가 임베드 된 연재 페이지를 올린다, 스페셜 게스트들과 함께 2시간 남짓? 지난 10화 동안의 연재를 돌아보고 21세기 한국 영화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 남은 11화 동안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는다, 라이브가 끝난 다음에는 AI 노트 어플을 통해 자동으로 푼 녹취를 연재 페이지에 추가한다, 클립 일부를 NFT로 판매해서 에세이 필름 제작비를 확보하고 남는 돈은 사회에 환원한다… 다시 봐도 완벽한 계획이다. 단 하나, 유튜브에서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려면 구독자가 1000명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지금 구독자가 몇 명이죠? -사실 좀 아까워요. 딱 23명이… -23명이 모자라다고요? -딱 23명이라고요. -그게 뭐가 아까워요? -그럼 안 아까워요? -?? 2. 그는 사막에 서서 인생의 순간들을 세고 있다 1954년 12월 10일 요나스 메카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듣는다. 동생 아돌파스 메카스와 뉴욕 언더그라운드 영화계의 다른 백수들과 함께 전설적인(그때는 아니었지만) 영화 잡지 [필름 컬쳐]를 창간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돈이라고는 고작 120달러가 전부라는 소식이었다. 다음 호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돈은 700달러. 메카스는 심플한 해결책을 떠올린다. 편집위원들에게 100달러씩 갹출하는 방법이었다. 참고로 초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전국민에게 100원씩 받아서 놀고먹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조지는 남미 여행을 준비하느라 빈털터리 신세였다. 루이스는 잡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줄 수 있다고 했다(“돈만 빼고”). 메카스 형제는 원래 돈이 없었다. 고든은 돈이 있다, 하지만 돈을 낼 수는 없다, 그건 신념의 문제다, 라고 말했다. 왜? 엘비스 프레슬리 모창 가수와 동명이인이자 훗날 에드워드 마이브리지, 토마스 에이킨스, 미국 영화의 기원에 대한 책을 출간하게 될 고든 헨드릭스가 메카스를 쏘아붙였다. 왜 돈도 없으면서 잡지를 시작한 거야? 최소한 3호나 4호 정도는 낼 돈은 쥐고 있었어야 하는 거 아냐? 만약 우리들이 전부 그렇게 생각했다면 [필름 컬쳐]를 시작하기 위해 22세기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메카스는 말했다. 세상에는 돈도 있고 사업 수완도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건 돈도 없고 사업 수완도 없는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신은 잔인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메카스는 일기장을 펼쳤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오늘 아침 법원에서 소환장이 날아왔다는 얘기는 차마 꺼내지도 못함. 인쇄비를 주지 않았다며 인쇄소에서 우리를 고소했다. 783달러 91센트를 갚아야 한다, 일주일 안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예요. -돈도 없고 구독자도 없지만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요? -신은 잔인하다고요. 3. 볼륨을 높여라! 최근 나는 오디오와 엘피에 빠져 8개월 할부(그 이상은 무이자가 안 됨)로 너무 많은 것을 샀다. 최소한 3/4분기까지는 뭘 사기는커녕 마리모처럼 꼼짝없이(움직이면 돈이니까) 누워 지내야 할 판이다. 마감은 늘 밀려 있고 시간은 부족하고 의욕적으로 시작한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23명이다(아마 다 아는 사람이지 싶다). 그렇지만 최근 몇 년 중에 가장 의욕이 넘치고 동시에 홀가분한 마음이기도 하다.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의 답인 42(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참고)살이 되어서 그런가? 마치 [기나긴 이별]이라고 이름 붙인 장편소설의 초고를 끝낸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기분이다. 1952년 5월 14일 담당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챈들러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것을 내가 원하던 대로 썼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럴 수 있게 됐으니까요.” 물론 나는 챈들러가 아니다. 일기나 트윗, 심지어 메모조차 내가 원하는 대로 쓰지는 못한다. 영상이라면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영상을 다룰 줄도 모르고 다루는 법을 배울 여유도 없다. 하지만 내게는 이미 이중의 우회로가 마련되어 있다. 1)이건 글이 아니라 유튜브 라이브임 2)유튜브 라이브지만 글을 통해서 송출되는 라이브임 말하자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일종의 회색지대가 있고, 그곳에서 나는 중력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처럼 굴 준비가 되어 있다. 개연성과 물리법칙을 가볍게 무시한 채 라이브 스트리밍 도중에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하기도 하고(이렇게), 중간중간 의미없고 지루한 부분을 빠르게 건너뛰며 플래시 포워드를 하기도 할 것이다(저렇게). 서두르자. 어쨌거나 밤은 짧을 것이고 우리에겐 아직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4. 비카인드 리와인드 -21세기 한국 영화가 < 박하사탕 >과 함께 시작했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아니요? -2000년 1월 1일이 딱 되자마자 개봉했대요. 자정에, 특별 이벤트로.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나 다시 돌아갈래! 하는 절규와 함께 시작한 셈이죠. How ironic? -2000년 1월이면 20세기잖아요. 21세기는 2001년부터고요. -…넷플릭스에 있길래 다시 봤는데 저희가 그동안 연재를 통해 이야기했던 한국 영화의 특질들, 그러니까 목욕탕이니 노래방이니 화면을 가득 채운 K-얼굴의 스펙터클 같은 것들이 전부 나오더라고요. 종합선물세트처럼요. 정말이지 깜짝 놀랐지 뭐예요. 우리가 더듬더듬 어떻게든 길을 찾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버렸고요, 하핫. -저기요? -그럼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이창동 감독은, 그 전직 문화부장관은, 아니 미래의 문화부장관은 과연 <박하사탕>을 통해 어디로 돌아가고자 했던 걸까요? -K정연? 제 말 안 들려요? - 설경구 가 기차 선로에 서서 문제의 대사를 외쳤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설경구와 충돌한 기차는 뒤로 가기 시작하고요. 1994년 여름으로, 1987년 봄으로, 1984년 가을로, 1980년 5월로, 1979년 가을로, 그리고… -야. 물론 <박하사탕>은 회귀물이다. 그리고 이창동은 21세기 한국 대중서사의 우세종이 된 웹툰과 웹소설의 트렌드를 선취했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박하사탕>은 한국 현대사의 외상적인 사건들을 통해 재구성한 ‘60년생 김영호’(아마도 그의 생일은 4월 19일일 것이다)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창동이 [82년생 김지영]의 성취를 선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창동의 영화가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떠밀리다가 흐름 그 자체가 되는 문제적-남성-개인의 픽션을 보여준다면, 조남주의 소설은 거대서사 속에서 매번 남자주인공의 아내(김여진)로, 정부(서정)로, 작부(고서희)로, 첫사랑(문소리)으로 주변화되고 대상화되는 여성들의 삶-이야기들을 통계와 기사를 재료로 픽션의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아주 가까스로(소설이 지영을 진료한 남의사의 진술을 통해 성립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그것이 바로 소설이라는 근대적 양식의 본질이다). 둘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또 다른 자리가 필요하다. 20년의 시간을 회귀해 스무살의 천변으로 돌아간 김영호는 첫사랑 순임을 다시-처음 만난다. 손으로 뷰파인더를 만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나중에 사진을 찍고 싶다고, 사진기를 메고서 이런 이름 없는 꽃들을 찍고 다니고 싶다던 영호는 순임에게 말한다. -이상해요. 여기 내가 한 번도 와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옛날에 한 번 와본 데 같아요. 저 철교랑 강이랑 다 낯익어요. 여긴 내가 너무나 잘 아는 데거든요?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런 건요, 꿈에서 본 거래요. -정말 꿈이었을까요? -영호 씨, 그 꿈이요.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그 꿈은 좋은 꿈이 아니고 악몽이고 그 속에서 영호는 스스로 다른 이들이 꾸는 악몽의 주재자가 된다. 그렇기에 그는 손뼉을 치며 ‘나 어떡해’ 노래를 부르다가도 홀로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돌바닥에 누워 철교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눈물 흘리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혹은, 그것이 꿈이라는 걸 알지만 그 꿈에서 깰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아무리 역사의 열차를 뒤로 가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궤도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따라서 이건 회귀물이라기보다는 루프물이다(“나 ‘다시’ 돌아갈래!”). 정해진 루트를 반복해서 달리는 열차의 운동이 그런 것처럼. 그런데 만약 충분히 많이 되돌린다면 어떨까? 20년이 아니라 아예 100년 쯤을 되돌린다면? 처음으로, 1895년 12월 28일 파리의 그랑 카페에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가 도착하던 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세계 규모의 전쟁이나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크툴루의 부름은 아직 들려오지 않았으며 원한다면 누구나 아무 거리낌 없이 이름 없는 꽃을 찍고 서정시를 쓸 수 있었던 시대로. 그땐 어쩌면 좋은 꿈을 꿀 수 있을지 모른다. 최소한 더 길고 다채로운 꿈이라도. 그리하여 영호(와)의 악몽이 조금이나마 희석될 수 있도록. 물론 이것은 비약이다. 왜 아니겠는가? -차라리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박하사탕>의 회귀(루프)는 가리봉 봉우회에서 야유회를 갔던 천변에서 시작하고 또 끝나지만, 21세기 한국 영화는 설경구의 외침과 함께 과거(트라우마적)-현재(망가진)의 무한 루프를 벗어나 대과거(기원)로의 동반 회귀를 감행했다고요. -요즘 웹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니에요? -그곳에서 한국 영화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최소한 현실이 아직-도래하지-않은-척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한국 영화는 ‘정치적인 것’을 생산해내기를 멈추고, ‘정치’를 서사 내부에 가둔 채 극의 논리에 따라 자체적으로 소멸되고 해소될 수 있는 스펙터클을 더 잘 만드는well-made 일에 매달리기 시작했지요.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마크 피셔를 따라 말하자면 21세기 첫 20년 동안 한국 영화의 장르는 단 하나, 바로 자본주의 리얼리즘입니다! -그만! 저는 여기서 나가야겠어요. -한국 최초의 천만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강우석의 < 실미도 >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물론 그 영화는 웰메이드가 아니지만요. 거기서 설경구는 1971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비겁한 변명입니다… 5. 노 홈 무비 2001년 1월 1일 <박하사탕>과 함께 시작한 21세기 한국 영화의 첫 20년은 2019년 12월 26일 지각 개봉한 허진호 의 < 천문: 하늘에 묻는다 >와 함께 끝난다. 혹은 그보다 조금 이른 7월 24일에 개봉한 송강호 박해일 주연의 < 나랏말싸미 >와 함께 끝났다고 해도 좋다. 둘 다 세종대왕을 내세우고 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무척 묘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진정한 끝은 2019년 12월 31일 당시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신문 기사와 함께 왔다(뉴시스, “中 우한서 원인불명 폐렴 환자 집단 발병...당국 긴장”). 돌아보면 21세기 첫 20년의 한국 영화는 대규모 물량 공세와 와이드릴리즈를 통해 누가 천만이라는 깃발을 가져갈 것인가를 두고 다투는 ‘극장전(劇場戰)’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충무로의 토착자본이 CJ나 롯데 같은 대기업의 자본으로 재편된 21세기 한국 영화가 돌아가고자 했던 곳은 어쩌면 스튜디오 제작 체계가 확립되던 무렵의 헐리우드, 황금기라고 불리는 시절의 헐리우드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더는 불가능해진 지금 한국 영화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누구도 모르는 것처럼,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었다. 덩달아 내 인생도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었다. 다들 그렇듯 나 역시 종종 새로운 인생을 꿈꾸긴 했다. 회귀나 빙의나 이세계 같은 황당무계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이런 식은 아니었다. 지금 같은 삶은 아니었다. 한동안 내가 그렸던 미래는… 우리 가족이 살 수도 있었을 그것은… 솔직히 나는 <나랏말싸미>가 천만 영화가 될 줄 알았다… 6. 내 차 봤냐? -요즘에도 극장 자주 가세요? -요즘에도 극장 안 가세요? -작년에는 한 번 갔던 것 같아요. 같이 갔잖아요, < 라스트 듀얼 > GV하러. 아 GV 전에 미리 보느라 시사회도 갔었으니까 두 번이죠. 아내가 시간 나면 지돈씨랑 같이 영화나 보라고 유효기간이 12월 31일까지인 라이카 시네마 초대권 두 장 줬는데 결국 그건 못 갔네요. 아쉬워라. -정말… 너무 아쉬워서 눈물이 날 것 같네요… 그래도 올해는 벌써 한 번 다녀왔다. 3시간짜리 영화였으니 1.5번이라고 해야 하나? 맞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 드라이브 마이 카 > 이야기다. 타임라인에 쏟아지는 트네필들의 기립박수에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영화는 재밌었다. 중간중간 지루할 법도 한데 3시간짜리 영화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한 2시간 26분 정도로 느껴졌달까? 물론 엉덩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욱신욱신 쑤시는 꼬리뼈와 함께 도서관에 갔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어정쩡한 자세로 의자에 걸터 앉아 일기장을 열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새삼 느낀 하루키의 인기 비결: 그건 그가 통속성을 다루는 방식에 있는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은 일종의 제로 콜라다.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기보다는,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에서 결정적인 ‘X’를 제거한 채 그것에 조금 미달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하마구치 류스케는 다르다. 내 생각에, 그건 이 영화가 탐구하는 핵심적인 질문이 통속성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라는 문제이기 때문인 것 같다. 혹은 이 영화가 탐구하는 핵심적인 질문은 인생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라는 문제인데, 하마구치 류스케는 인생이 통속성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략…) (…중략…) 다시 말해보자. 가후쿠에게는 맹점이 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발견된 맹점은 아내가 죽은 후 더 커지지도 줄어들지도 않은 채 그 상태 그대로 거기에 있다. 그것이 커지지 않은 이유는 가후쿠가 때마다 안약을 넣기 때문이다. 즉, 가후쿠가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을 보려하지 않는가? 그건 바로 통속성이다. 정확히 말하면, 통속성 자체가 바로 맹점이다. 통속성이란 어떤 것들을 설명하는 가장 간편한 방식인 동시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럼 결국 주인공의 녹내장은 나은 건가요? -의사는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잖아요. 그럼 정확한 원인을 알게 되면 완치할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물론 이건 제 생각일 뿐이지만요.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저도 재밌고 잘 찍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몇몇 장면은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요. 특히 마지막 눈밭에서 연설하는 부분. 보면서 진짜 와 저래도 돼? Really? -엄청 뻔뻔하죠. 저도 그 부분 보면서 좀 그랬는데, 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도 아마 그 부분까지 좋아하는 건 아닐 것 같아요. 다만 뭐랄까, 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더 좋아할 수는 있겠죠. 어떤 결정적인 작은 흠이 전체를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하고, 나아가 옹호해주고 싶게 만드는 것처럼요. 그러니 우리도 좋은 이야기만 하죠. -저는 운전하는 장면들이 좋았어요. -저는 담배 피우는 장면들이 좋았어요. -저는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너무 잘생겨서 깜짝 놀랐어요. 원래 이렇게 잘생겼나? 얼굴을 좀 고쳤나? -잠깐, 왜 우리가 <드라이브 마이 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고 있는 거죠? 지금? 한국 영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에도 모자랄 판에. 7.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런데 한국 영화가 도대체 뭘까요? 이제 와서 새삼 묻는 것도 우습지만, 연재가 지속될수록 한국 영화가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언젠가 이승훈 시인(하늘에서 평안하시기를)은 시가 무엇인가를 안다면 우리는 시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어요. 한국 영화가 무엇인가를 안다면 우리는 한국 영화에 대한 에세이 필름을 만들 필요도 없겠죠.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이유도요. -한국 영화를 새롭게 발견하려고 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내 인생을 새롭게 발견하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 -?? 왜 갑자기 반말…? -정신 차리세요! 지금 우리에게는 격식이나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틱톡 틱톡!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한국 배우들이 셋이나 출연하고 한국말도 자주 나오죠. 한국인 스텝들도 여럿 참여했고요. 에필로그 같은 마지막 장면의 배경이 부산이기도 한데요, 그럼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한국 영화일까요 아닐까요? A)한국 영화라면 그 이유는? B)한국 영화가 아니라면 그 이유는? -갑자기 그런… -그만! 대답하지 마세요. 어차피 시간도 없으니까!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중요한 건 <드라이브 마이 카>가 한국 영화냐 한국 영화가 아니냐가 아니에요. <드라이브 마이 카>를 한국 영화로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가 문제인 거죠. -받아들인다고요? -아카데미 위원회가 21세기의 새로운 20년을 맞아 < 기생충 >을 미국 영화로 받아들인 것처럼요. -도대체 누가 <드라이브 마이 카>를 한국 영화로 받아들인다는 건데요? 무슨 자격으로요? -그건… 그때 갑자기 화면 멈추고, 멈춘 화면 위에 빨간 자막이 뜬다. (자막) “K-씨네필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K-inephile)” (To be continued…)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한국영화사에서 김기덕과 비슷한 영화를 만든 사람은 없다. 김기덕은 산업, 미학, 스타일, 제작 시스템 등 모든 측면에서 완전한 외부인이라고 할 만한 예술가이다. 단순한 질문 이상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영화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침묵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심지어 인간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장면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순환하는 인생과 윤회를 테마로 한 반(半) 추상 불교 우화인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2003)이 이런 작풍의 대표작이다. 소외에 길들여진 난폭한 남자들을 즐겨 다룬 김기덕의 평판작들과 이 영화의 톤은 완연히 다르다. 김기덕의 여느 영화들처럼 한국에서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받았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호화롭고 초월적인 이미지로 서구 비평가들에게 격찬을 받았는데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영국의 비평가 토니 레인즈는 “이 영화에 대한 서양 관객들의 물신화는 서구 사회에 만연한 오리엔탈리즘의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간성과 범죄, 자백과 구속, 구제 등의 현대의식을 대변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스토리는 탄생, 성장, 죽음의 순환을 요체로 한다. 단순함을 심오한 예술적 감성의 증거로 본다면 이 영화는 절묘하게 단순한 작품이다. 모든 사람들이 체험하고, 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계절의 변화는 인간의 노화가 필연적이듯 시간, 변화, 소멸에 대한 체험을 제공한다. 최소한의 대사에도 불구하고 불교 도상학과 이솝 우화적인 상징을 통한 순환 내러티브는 세 가지 보편적 진리, 즉 무상과 고통, 자아 없음이라는 틀을 통해 존재의 타당성을 찾아간다. 명상적인 어조의 영화는 어린 시절을 봄으로, 청소년기를 여름으로, 성숙기를 가을로, 노년을 겨울로 설정하여 인생의 모든 단계를 계절과 연결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더하여 유년기의 무지와 천진함, 청소년기의 치기와 욕망, 청년기의 집착과 분노, 노쇠함과 함께 오는 지혜 등의 단계적 행동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는 대화보다 침묵, 침묵과 병존하는 행동에 의존한다. 승려의 계절이 은유적 서사에 반영된 영화에서 김기덕은 침묵을 비명처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슬픔, 침략, 폭력, 소란, 증오, 탐욕을 배음으로 깐 내러티브와 주제는 말보다 이미지로 전해진다. 이를테면 영화 전체를 대변하는 이미지는 묶이거나 붙잡힌 존재이다. 묶인 동물, 묶인 소년, 묶인 남자, 묶여 있는 뗏목 따위. 극적인 모티프들을 상실한 채 많은 상징과 은유, 암시를 활용하면서 연출의 숨은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거의 모든 장면들에서 다의적인 기호를 볼 수 있다. 이들 가운데 동물의 상징성은 분명하다. 물고기, 뱀, 개구리, 고양이, 강아지, 나비, 잉어, 수탉, 오리, 거북이와 같은 동물들이 번갈아 출연하는데 흡사 ‘동물의 왕국’ 류의 다큐멘터리나 동물도감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줄 정도이다. 그들 각각은 무엇인가에 대한 상징이다. 예를 들어 뱀은 피부가 벗겨져 변태하는 모양으로 중생의 변화를 나타낸다. 개구리는 정화, 치유, 탈바꿈, 순환 주기를 상징하고, 강아지는 첫 장면에서 소년의 특성처럼 달콤함, 장난, 젊음의 무지, 천진함을, 수탉은 섹슈얼리티, 정욕, 남성성을, 물고기는 다산, 거북이는 장수, 지혜, 평화를 의미한다. 동자승이 물고기와 개구리, 뱀의 몸에 돌을 매달고 낄낄대며 즐거워하자 노승은 동자승의 허리를 돌로 묶어 동물과 상태와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노승은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 중 어느 하나라도 죽었으면 너는 평생동안 그 돌을 마음에 지니고 살 것”이라고 말한다. 이야기가 진행함에 따라 그 말의 무게는 실제로 몇 사람의 삶을 익사시키게 된다. 여름의 소년은 숲에 가서 방황하는 동안 뱀이 짝짓기하는 것을 보면서 성적인 자기 인식의 시간에 진입한다. 반복되는 이미지인 뱀은 전통적으로 불교의 삼독(三毒)과 연결되나 이 영화에선 자주 애착을 내포한다. 와병 치료를 위해 사찰을 방문한 소녀를 흠모하게 된 소년은 규율과 경계를 무시하기로 작정한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잇는 담이 존재하지 않는 문의 프레임을 소년은 넘어간다. 연인을 좇는 것을 자제할 수 없었던 소년은 자신의 유일한 보증인 수탉을 데리고 사찰을 떠난다. 외부 세계의 더러움과 녹을 입은 모습으로 돌아온 가을의 청년에게 노승은 고양이 꼬리로 사찰의 나무 테크 위에 반야심경을 쓰고 살생을 저지른 칼을 사용해 그 위에 새기도록 한다. 집착과 증오를 버렸는가? 삶의 주기가 다한 노승은 등신불이 되어 열반에 든다. 겨울의 남자는 스승의 직무를 대행하는 승려(김기덕 자신이 연기한다)가 되어 귀환하다. 이 챕터는 대사가 없고 명상적인 톤이 절정에 이른다. 보라색 천으로 얼굴을 가린 미스터리한 여자는 아기를 승려에게 맡기고 얼음 아래로 가라앉는다.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찬 승려는 맷돌을 허리춤에 메고 산으로 올라가는데, 고통과 후회에 찌든 그는 자비의 화신인 관음도 지니고 있다. 맷돌과 부처를 하늘 가까운 언덕 꼭대기로 운반하는 그는 시지프스와 같은 투쟁을 통해 죄업을 씻는다. 마지막 봄, 백발의 승려는 이제 어린 제자가 된 아이와 함께 완전한 원으로 돌아온다. 순환적 시간관에 기초하여 모든 순간에는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의도도 포함된다. 영화에서 우리는 소년이 남자가 되는 것을 본다. 결국 그는 진정한 헌신의 에너지를 끌어 올려 고통을 만든 에너지를 초월적으로 변형시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천천히 이 관행이 연민과 지혜를 통해 스스로의 삶에 경의를 표하는 것임을 깨닫도록 만든다. 종종 세대가 서로를 바라볼 때, 한 세대는 무례함과 방종, 거친 관능, 범죄 충동을 본다. 다른 세대는 불필요한 형식, 부패한 권력에 대한 충성, 활력의 상실을 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을 통해 사랑, 욕망, 질투, 증오 그리고 분노를 거쳐 인생을 배우는 사람의 우화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혼란과 고통에 빠지지만 어쨌든 여행이 시작된 호수의 사원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다. 자연, 색채, 변화의 계절을 통과하는 동안 김기덕은 동물들을 통해 생의 순환을 투사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김기덕이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존재의 깨달음을 형상화해왔던 감독이라는 점이다. 미물에 가하는 고통조차 경계(警戒)해야 함을 주장하는 이 영화 안에는 동물 학대로 볼 수 있는 많은 장면들이 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폭력적인 어휘들에 반기를 든 이들의 비판을 받았던 김기덕은 한 인터뷰를 통해 이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인간 세계를 비유하기 위해 동물 상징을 동원하는 일은 영화에서 빈번하며 동물에 인간의 감정을 투사하거나 동물을 의인화하는 것 또한 흔한 일이다.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은 인간과 동물의 성질, 형태를 동일하게 본다는 입장으로 특정한 용도에 따라 동물들을 대할 때의 태도와 관점을 말하고 있다. 김기덕의 수인동성동형론에 따르면, 인간과 동물의 삶은 평행하며 그 존엄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인간을 모사한 저들은 돌덩이를 달고 물 아래로 가라앉고 돌에 짓이겨져 죽는다. 개구리와 물고기의 입에 돌을 밀어 넣는 이 영화의 일부 묘사는 타자의 고통에 둔감했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실제로 얼마나 완악할 수 있는지를 잔혹한 폭력을 통해 방증하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논쟁을 야기했다. 동물의 영성(靈性)을 발견하는 것은 이 영화의 작은 주제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핍박받은 동물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인간은 알 수 없다. 수인동성동형론의 오류는 여기서 시작된다. 동물들 역시 우주 만물의 순환하는 본성에 따라 그들 자신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무던히도 비를 뿌려대던 여름도 9월 8일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백로’를 기점으로 가을로 접어들면서 올해는 일찍 추석이 찾아 왔다. 긴 여름 탓에 시원한 극장가는 대목을 이루었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다수 걸렸다. 다행히 < 마당을 나온 암탉 >은 오랜만에 좋은 이야기와 따뜻하고 호감 가는 그림, 유려한 움직임과 구수한 사투리 재담 등 여러 가지 구색들이 잘 갖추어져 어린이 관객과 동행한 가족들에게까지 호평과 감동을 불러냈고, 9월 4일 관객 200만 돌파에 여느 해보다 빨리 찾아온 추석연휴 특수까지 기대된다. 덕분에 이어지는 가을은 애니메이션 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호기가 되고 있다. 이번 추석은 긴 장마와 이른 절기 탓에 곡물과 과일나무는 아직 만족스럽지 못한 곡식과 과실을 거두고 있지만 그래도 가을 명절인 추석에 가장 신나는 일은 사랑이 담긴 풍성한 선물을 가득 담고 고향을 찾는 부모님과 자식, 할머니, 할아버지, 손자 손녀들과 함께하는 가족들 간의 ‘만남’일 것이다. 고향을 멀리 두고 직장과 교육열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상이 이동해서 살고 있는 현대이지만, 가족들에게는 물질적 수확이상의 마음과 정신의 풍요로움이 더 간절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명절에는 대부분 가정들이 고향을 찾아 대이동을 하거나 또는 서울로 역귀성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또 다른 한가위 세태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핵가족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그 수가 많아져서 올해는 최대 인구인 50만 명이상이 추석연휴에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여하튼, 오랜 세월을 통해 고유한 전통과 풍습이 된 추석과 설날에는 많은 친지들이 모여 그동안의 안부와 기쁨을 묻고 나누며, 혹은 걱정과 슬픔을 서로 위안하기도 하면서 인간적인 온정과 혈연간의 고리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의 물질적 풍요, 기계와 기술의 발달, 문명의 혜택으로 많은 우리나라사람들이 이를 통해 행복과 기쁨을 찾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결핍된 인간성과 극명화 된 개인주의로 소외된 가족과 버려지는 아이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지나친 교육열과 인성문제, 경제적 원인으로 인한 가정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보도되고 있다. 또한 최근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고 이로 인해 복잡한 문화와 풍습간의 충돌에 기인한 새로운 사회문제도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현대의 냉혈시스템에 갇혀 모럴 해저드해진 우리사회의 분절된 희노애락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기를 통해 사정없이 비틀고 더군다나 닭살 돋는 사람의 입소리로 만든 음향효과의 상상력을 감성적으로 덧대어 통렬함과 유머의 부조화를 극적인 플롯으로 절묘하게 풀어낸 블랙 코메디 작품 < 에브리 차일드(Every child) >이다. 이야기는 갓난아기가 마을의 어느 바쁜 중역 간부의 집 앞에 나타나지만 아기를 원치 않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 주변의 가정들을 옮겨 다니면서 전개된다. 아무리 귀여운 아기일지라도 틀에 박힌 단절된 사생활을 통해 지루한 행복을 지키려는 각 가정의 소시민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짐’으로만 취급되는 메마른 일상에 대한 비판을 신란한 유머로 풍자한다. 이 작품은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영국의‘EveryChild(www.everychild.org.uk/)’라는 기구에서 캐나다 NFBC에 의뢰하여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유엔 아동보호기구 ‘유니세프’의 아동 권리 선포를 기념하기 위한 초대회에서 상영되었다. 이 필름은 선포된 10가지 원칙, 이름하여 모든 아이들은 이름과 국적을 부여받는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제작 배경 때문에 제작자겸 시나리오 담당인 데렉 램(Derek Ramb)이 감독에 우선하여 크레딧을 장식한다. 여러 뛰어난 감독들이 그러하지만 유진 페도렌코(Eugene Fedorenko)는 이 작품을 통해 일찍이 드러난 창의적 발상의 품부로 보편적 일상에 의한 인륜적 해이함에 대해 날카롭지만 웃기게 표현하고 있다. 덕분에 1980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 수상을 비롯하여 오타와, 바르나, 밀라노, 등 12개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영광도 가졌다. 일반적으로 웃기는 영화에 채플린을 논할 때 버스트 키튼도 동시에 언급되듯이 ‘버려진 귀여운 아기’에 대해‘버려진 귀여운 고양이’의 에피소드를 애니메이션으로 풀어 만든 코델 바커(Cordell Barker)의 1988년 작품 <돌아온 고양이(The Cat come Back)>는 왜곡된 거울에 비친 이미지와 같은 강한 혼돈의 기억으로 나란히 남는다. 이 작품은 뛰어난 연출과 편집, 훅업을 스토리에 녹이고, 인상적인 주제음악으로 쟈그레브 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유머상과 음악상을 수상하면서 평점에서도 ‘에버리 차일드’와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코델 바커는 2001년 또 한편의 아기를 테마로 한 태몽이야기 <이상한 침입자(Strange invader)>를 들고 나타났다. 그러나 여전히 빠른 호흡은 이전 작품에 이어 아쉽게도 옥에 티로 남는다. 오늘날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명절과 방학기간에 가족단위로 영화관을 찾아 즐거움과 감동을 받으며 여가를 즐기고 있다. 올해도 변함없이 여름방학부터 추석까지 < 마당을 나온 암탉 >, < 스머프 >, < 재스퍼 >를 비롯해서 많은 애니메이션이 개봉 되었고, 앞으로도 < 코쿠리코 언덕에서 >, < 체브라시카 > 그리고 < 아더 크리스마스 > 등 많은 애니메이션영화들이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가을의 수확만큼이나 큰 기쁨으로 찾아오는 자식농사와 연계하여, 이번에는 가족과 어린이들에게 추천할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찾아보면서 가까운 과거의 단편 몇 작품을 올려놓고 며칠간 고심을 하였다. 어린이 같은 순수함과 천진난만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코 회드만의 1977년 작품‘모래성’은 상상력이 돋보이지만, 현대의 세련된 특수효과에 익숙해진 어린이용으로는 그 완성도가 떨어져 몰입감이 덜하고, 개성적이고 독특한 전통기법인 핀스크린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한 쟈크 두루앵의 1976년 ‘마음의 풍경’은 수상실적이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무겁고 초현실적인 몽환으로 일반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거부감마저 들게 한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획기적인 기법으로 개발되었지만, 짧은 유행처럼 지나가는 애니메이션 역사의 단편적이고 편중된 쟁점으로 기억되는 아픈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추석 명절인 이즈음에 어린이와 가족들을 염두에 두고 재미있고 상상력을 즐길 수 있는 여러 작품들을 추천목록에 올렸지만, 세태의 자조와 조롱의 해학으로 가득 찬 메시지를 기발하고 독특한 음향효과와 보편적이지만 신선한 에피소드들로, 어떻게 보면 어린이용인 것 같으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른용 같은‘부조화의 조화’라는 극과 극의 씨실과 날실을 교묘하게 엮어낸, 곱씹어 볼 만한 간단치 않은 가치를 던져주는 웃기게 슬픈 작품 < 에브리 차일드 >를 단절되어가는 현대의 우리 주위 핵가족들에게 특별히 추천한다. 웃고, 즐기고, 느끼시길... (편집자주: 본 원고는 10월 원고로 9월에 받았으나 사정상 11월 초에 업데이트하게 되어 원고 내용과 다소 시기가 맞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