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아
- 감독
- 강민지
- 제작년도
- 2010
두 장의 사진이 있다. ‘Before’ 그리고 ‘After’. 지하철역이나 시내버스 안에서 가장 많이 보는 광고 유형이다. 서울 시내 몇몇 지역에서는 눈길 닿는 어디라도 걸려있다. 성형 시술 이전과 이후의 사진을 비교함으로써 누구나 자신의 얼굴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단지 결단의 문제일 뿐이다. 며칠간의 통증은 그간 받아온 심적 고통에 비할 바 아니며, 부담되는 금액도 일종의 투자 비용으로 여기면 받아들일 만하다. 성형외과 광고에 등장하는 ‘Before’와 ‘After’ 두 사진 속의 얼굴은 동일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달라야 한다. 같으면서도 달라야 하는 것, 그것이 성형 수술이 추구하는 미의 방향이다. 그런데 광고 속 사진으로 제시된 ‘Before’와 ‘After’ 사이에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변신의 과정이 빠져 있다. 강민지 의 < Before&After >는 성형수술에 대한 단편 애니메이션이면서도, 단순히 거기에 머물지는 않는다. 이 작품의 핵심은 성형수술에 대한 풍자나 비판, 야유가 아니다. 물론 그 지점을 다루는 기본 이야기는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강민지는 전형적인 스토리텔링에 얽매는 작업을 해오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재료가 지니는 특성을 고스란히 이미지로 가져오고 여기에 수작업을 가미하여 움직임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선보였다. 그래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즉흥적이기에 자유로운 생기가 넘쳐난다. 종이, 사진, 나뭇잎 등등, 작품에 쓰인 원재료가 지닌 물질성을 억지로 가공하는 대신, 거기에 봉인된 본래의 에너지를 해방시키도록 유도해내는 작업을 해왔다. 만약 스토리가 있다면 그 생기로운 움직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입사 이력서에 사진을 붙여야 할 때, 주인공은 사진 속 자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 채용 담당자의 시선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규정된 현실을 이미 주인공도 공유하고 있다. 취직을 위해서는 채용 기준이라는 잣대에 자신의 외모를 맞춰야 한다. 그래서 늘 성형수술은 권력의 사회학이다. 그리고 성형수술을 다루는 작품들은 그것이 애니메이션이든 라이브 액션이든 소설이든 만화든 간에 그 지점에서 출발하고 공격하고 파국을 맞는다(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작품이 있던가?). 강민지 의 < Before&After >에도 성형수술에 대한 판단과 이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의 힘은 그것을 어떻게 애니메이션만의 방법으로 보여주는가에 있다. 이를 위해서 애니메이션의 가장 근본적인 지점으로 돌아간다. 바로 ‘애니메이터의 손’과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 집중한다.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 애니메이터의 손은 조물주의 손과 동급이었다. 그 손을 통해 캐릭터가 탄생하고, 움직임이 부여되었다. <Before&After>에서 애니메이터의 손은 수술장갑을 낀 성형외과 의사의 손으로 연결된다. 그 손에는 연필, 지우개, 그리고 칼이 쥐어진다. 그리고 조물주의 또 다른 역할이었던, 피조물의 처단까지 행사한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 속에서 성형수술이 시도되는 장면이 다른 한편으로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가는 애니메이터의 작업 모습과 겹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침내 그 손은 작품을 종결짓기에 이른다. < Before&After >는 ‘애니메이터의 손’을 상기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이를 위해 ‘Before’와 ‘After’ 사이에 ‘Between’이라는 구역을 설정한다. 바로 성형외과 광고에서는 생략된 ‘과정으로서의 사이’를 다루는 구역을 할당한 것이다. 그런데 ‘Between’은 그저 단순한 성형시술 과정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의 핵심은 제작 기법에 있다. 바로 각각의 프레임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낱장의 분리된 작화지 묶음에 한 장 한 장 따로 그리지 않고, 하나의 작화지 표면 위에 한 장면을 그린 후, 그다음 프레임 이미지를 위해서 이전의 이미지를 지우개로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그려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풀이하자면, 하나의 작화지 표면은 이전까지의 이미지와 이후의 이미지, 즉 특정 프레임 전체의 이미지들이 그려지고 지워지면서 누적되어가는 지층과도 같다. 이런 제작 과정을 거치면 작화의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작화지 묶음이 아니라 최종 프레임에 해당하는 이미지 하나이다. 그리고 그 최종 이미지에는 그 앞을 거쳐 간 이미지들의 흔적이 지우개 가루와 함께 어렴풋이 남겨져 있다. < Before&After >의 제작 방식은 윌리엄 켄트리지의 목탄 드로잉 작업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고, 캐롤라인 리프의 샌드 애니메이션과 페인트 온 글래스 기법, 그리고 알렉산더 알렉셰이예프의 핀스크린 기법과도 물리적 기반을 함께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영화 이미지가 스크린에 투사되는 원리와도 조응한다. 스크린은 온전히 하나의 유일한 표면이고, 영사의 시간 동안 무수한 프레임 이미지가 스치고 지나간다. 이처럼 < Before&After >는 성형수술을 모티브로 삼되, 그것을 이야기의 소재나 결론, 혹은 교훈으로 그치지 않고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예술 창작물은 차고 넘친다), 그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란 수술을 통해 형태가 변해가는 과정, 즉 ‘수술 전’과 ‘수술 후’ 사진이 생략한 과정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개입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드러낸다. 그 구체적인 행위의 주체는 의사이고, 애니메이터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둘의 행위는 미적이면서도 파괴적이다. 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예술 형식이 작동하는 본질이기도 하다. 강민지는 이전 작품들에서도 그 본질을 감지하고 있었고, 이번 작품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탐구한다. 엄지, 척!
독립애니메이션의 현재, 그리고 나아갈 길 - 인디애니페스트 영화제 상영작을 중심으로 얼마전 독립애니메이션 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가 막을 내렸다. 영화제 경쟁부문에 해당하는 독립보행/새벽비행을 통해 소개된 작품 40편과 초청부문 상영작을 모두 합쳐 100여편에 이르는 작품이 상영되었다. 한 해동안 제작된 독립애니메이션을 결산하는 자리이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모이는 만남의 자리였다. 다양해진 상영작의 스펙트럼 9회를 맞은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상영된 작품은 어느 해보다 다양했다. 동 영화제의 단골로 단편작가로써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하고 있는 강민지 , 박재옥 , 한지원 감독 등의 작품과 오랜만에 단편으로 돌아온 이성강 감독의 작품이 상영되며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장편애니메이션의 뮤직비디오 형식인 <맞춤희곡>(최진성)이 상영되었으며, 동물자유연대에서 제작한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김준)이 상영되었다. 국내에서 제작된 작품이 중심이었던 것과 달리, 올해는 유독 해외에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는데, < 나무의 시간 >( 정다희 ), < 너무 소중했던, 당신 >(백미영)은 프랑스에서, (원애린), <마음나무>(박희영)는 미국에서, 그리고 일본에서 온 ( 김학현 ), <나의 액자>(김예원) 두 작품이 상영되는 등 해외에 있는 작가의 작품들이 있었다. 내러티브 중심의 단편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고병준)와 같은 비서사적 형태의 실험애니메이션 작품도 찾아 볼 수 있었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다양한 색깔로 굴절한다 ‘영화제’는 프리즘이다. 작품들이 한 곳에 모이는 축제이자, 앞으로의 애니메이션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보여주는 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이 기법적?내용적?공간적?형식적으로 다양해졌다는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가능성들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가능성은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우선,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스타일과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는 작가로서의 가능성이다. 강민지, 김준, 오수형 감독은 꾸준히 단편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로, 거의 매해 쉬지 않고 작품을 영화제를 통해 발표하고 있다.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에서 이러한 작가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문화적,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둘째로 단편에서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으로 나아가는 흐름이다. 올해 상영작인 <맞춤희곡>이 그렇다. 화제작인 < 돼지의 왕 >, < 사이비 >를 만든 연상호 감독이나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를 만든 장형윤 감독도 오랫동안 단편을 작업해왔다. 이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의 씨앗이 단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셋째로 다양한 플랫폼에 대한 가능성이다. 캠페인의 성격을 띠고 있는 작품이나, 전시와 결합하여 제작된 작품은 이미지를 통해 함축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특성과 프레임 단위로 이루어지는 작업과정이 전시형태로 보여질 수 있다는 특성을 살린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독립애니메이션은 내부의 실험과 고민을 거쳐 다양한 가능성과 지향점을 가지고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이번 영화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양한 정책적 프리즘이 필요한 때 얼마 전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 사이비 > 상영후 한 관객이 묻는 ‘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냐’는 질문에 연상호 감독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애니메이션은 다양하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렇다. 애니메이션은 다양하다. 애니메이션이 어린이용이 아닌 것처럼, 독립애니메이션이 단편애니메이션의 다른 말이 아닌 것처럼, 애니메이션은 형식과 내용에서 다양할 수 있다. 90년대부터 서서히 싹을 틔우기 시작한 독립애니메이션이 이제는 양적?질적 성장을 거쳐 다양한 색깔로 세상을 향해 그 빛을 드러내고 있다. 그 빛이 더 멀리 더 강하게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단편 작가들에 대한 지원, 극장용 독립장편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원, 그리고 다양한 플랫폼에 대한 지원 등을 통해 한 자리에 모여 꿈틀대기 시작한 독립애니메이션이 다양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할 것이다.
독립애니메이션 최대의 축제인 인디애니페스트(9.20~9.25)가 올해도 인상적인 작품들에게 상을 안겨주면서 축제의 시간을 끝냈다. KIAFA 특별상 독립애니메이션 협회의 집행위원들이 주는 이 상은 다른 부분이 보편적이지 않더라도 하나의 강력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작품에게 수여된다. 수상작은 김왕걸 감독의 < 집 >. 이 작품은 연필 드로잉으로만 그려진 페이퍼 애니메이션이다. 감독은 다른 것을 신경쓰지 않고 한국사회에 집이 주는 계급 구조만을 집중 조명하였다. 치솟는 전세와 작아지는 사람들의 여유와 마음. 대한민국은 집의 공화국이며 집이 계급이다. 주제에 집중하는 능력은 단연최고였고 현실적으로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작품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초록이상 < 마당을 나온 암탉 >의 오성윤 감독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상이다. 그래서 상이름도 주인공의 이름을 딴 초록이 상. 초록이 상 수상자는 < 연인의 방 >의 전용석 감독이다. 이 작품은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한정된 장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집이 기울어지는 아이디어는 새롭지는 않다. 유명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벨런스>와 박지연 감독의 <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 >에도 이미 나오는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균형이 주제라기 보다 기울어가는 남자의 마음을 기울어가는 집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한 현실적인 연애정서를 스탑모션으로 그것도 현실적이고 재미있는 대사로 표현한 것은 이 작품의 강점이다. 영화아카데미 실습작품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짧은 시간 안에 좋은 컨셉으로 승부하는 감독의 재능을 보여준다. 새벽비행상 성혜진 감독의 < 너 때문에 >에는 어떤 의미에서 예스러운 작품이다. 작품에 묻어나는 정서도 지금의 삼사십대가 기억하는 풍경, 그리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던 남매의 감정을 잘 잡아내고 있다. 그런데 감독이 여고생 같은 모습이기 때문에 더 놀라웠다. 손으로 일일이 문질러서 만들어낸 부드러운 아트웍은 흡사 페인트온 글라스와 같이 자연스러운 장면 변화의 느낌을 준다. 오랜만에 나타난 전통의 강호 계원 조형예술대학교의 작품이다. 심사위원 특별상 < 수영장의 고양이들 >. 이 작품은 작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졸업 작품들 중 가장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단색이지만 섬세하게 배열된 색의 조화와 캐릭터의 디자인들이 인상적이다. 델리 스파이스의 노래 ‘고양이와 새의 관한 진실’과 같이 죽의 고양이에게서 죽음과 삶에 대한 철학적 심상을 표현하였다. 독립보행상 < 연애 놀이 > 정유미 . 전작 < 나의 작의 인형 상자 >, < 먼지 아이 >로 이미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정유미 감독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의 한명이다. 그녀의 특징은 포스트 모던 하다는 것. 작화와 컷아웃 형식이 결합된 움직임은 분절되고, 절제된 사운드는 효과음을 빼고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내용 또한 일반적인 영화의 스토리 텔링과 전혀 다르다. 영화는 다큐를 보듯, 현상을 관찰하듯 감독이 관찰자처럼 인물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전작과 같이 각 장면들은 반복와 차이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흑백의 극사실주의 묘사가 결합된 이 작품은 연애를 ‘서로의 반응을 통해 일어나는 놀이’로 보고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디의 별 인디의 별은 < 오목어 >의 김진만 감독. 이 작품으로 김진만 감독은 관객상과 대상을 동시에 수상하였다. 전작에 비해 눈에 띄게 작품이 재미있어 졌다. 톡특한 목소리연기를 한 연기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물어 보았더니 모든 연기는 본인이 했다고 한다. 김진만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장인정신을 유지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업은 혼자서 오랜기간 촬영을 거쳐서 완성된다. 스탑 모션은 중간 움직임을 수정할 수 없고 한 컷이 잘못되면 그 컷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노동의 산물. 이렇게 섬세하고 꾸준하게 좋은 스탑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감독이 있다는 것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행운이다. 게다가 점점 재미있어서져서 웃기기까지 하다. 그의 대상 수상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독립 작가들, 특히 10년이 전부터 작품을 만들던 박현경, 김준기 감독의 신작은 반갑고 그리고 꾸준히 작품을 만드는 정민영, 오수형, 양선우 감독 그리고 김예영, 김영근, 강민지 감독 등의 작품을 보면 다양한 형태로 작업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의 폭이 조금씩이지만 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다행이다. 초창기 인디애니 페스트는 실사 영화제에서 소외된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노력하였고 또한 아시아의 작가들과의 교류도 점차 늘어가게 되었다. 이런 역량을 유지하면서 점차 관객을 늘리는 형태가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