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공장
- 감독
- 강일몽
- 제작년도
- 1967
< 연산군: 장한사모편 >(이하 <연산군>)은 제1회 대종상에서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신영균 ), 여우조연상( 한은진 ), 촬영상 등 여덟 개 부문을 휩쓸었으며, 이후 신상옥 의 대표작 중 한편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신상옥은 자서전 <난, 영화였다>의 한 페이지에서 이 작품을 두고 쓴소리를 길게 써두었다. 그게 어느 정도이냐면, 자신이 북한의 감옥에 있을 때 남한의 형에게 몰래 보낸 편지에 ‘<연산군>의 원판을 찾아서 불살라 버리라’고 부탁했다(<난, 영화였다>의 82페이지). 아마도 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 얽힌 불만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2개월 만에 찍어 1962년 신정(1월 1일)에 상영된 <연산군>이 흥행에 성공하자, 흥행업자들이 구정(설날)에 맞춰 속편인 < 폭군 연산: 복수, 쾌거편 >(이하 <폭군 연산>)을 내놓으라고 극성을 떨었다고 한다. 그래서 놀랍게도 1개월 만에 <폭군 연산>을 만들어야 했으니 창작자로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산군>과 <폭군 연산>을 급조된 그저 그런 작품일 것이라고 예상했다간 큰코다친다. 신필름 설립 후 < 춘향전 >(1961)이 거대한 성공을 거두고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가 국내외에서 호평을 얻은 1961년, 신상옥은 본격적인 궁중 사극을 계획한다. <연산군>은 여러 면에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대조를 이룬다. 촬영과 미술 등의 규모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엄청나며, 신필름의 위세를 증명하듯 당대의 유명 배우들이 모두 출연해 영화의 곳곳에 배치되었다. 심지어 중전 역할의 최은희조차 <연산군>의 초반과 <폭군 연산>의 후반에 잠시 나오는 게 전부일 정도로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함의 극치다. 장담하건대 지금껏 만들어진 어떤 한국영화에서 이보다 더 대단한 주연급 배우들이 총출동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박종화의 <금삼의 피>를 원작으로 삼았는데, 신상옥의 연작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두 작품이 이후 만들어진 연산군 영화에 끼친 영향은 따로 말할 것도 없다. 역사 속 사건을 영화화했으므로 선점한 영화의 영향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영화의 대사, 연기, 미술 등이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음은 이후의 영화들이 곧 방증하는 바다. 신상옥의 <연산군> 2부작이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대하드라마 스타일의 전개 방식에 있다. 연산군 영화가 동궁 시절의 융, 즉위 이후의 사건 등을 한 편의 영화에 담으려면 대략 몇 가지의 방안 중에 하나를 취해야 한다. 몇몇 사건이나 인물에 국한해 접근하거나, 그게 아니면 아주 급박하게 전개시키는 방식. <금삼의 피>를 원작으로 삼은 이혁수 의 < 연산군 >(1987)은 연산과 장녹수의 관계에 치중했고, 임권택 의 < 연산일기 >(1987)가 연산의 심리적 측면의 묘사에 집중했다면, 근래에 만들어진 < 왕의 남자 >(2005)나 < 간신 >(2015)에서는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인물로 비친 감이 없지 않다. 신상옥의 2부작은 전후편을 합쳐 265분이라는 상영시간이 드는 만큼 작품의 걸음걸이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인상으로 치면, 연산에 관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연산일기>가 연극적이고 셰익스피어적인 반면, 신상옥의 연작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처럼 죄와 구원의 여정에 방점을 찍는 장편소설을 닮았다. 임권택이 조선실록에 적힌 바를 내레이션으로 삽입해 역사적 사실을 따른 것과 비교해 신상옥의 영화는 일부 허점이 품은 게 분명하다. 즉, 역사에 대한 객관적 서술에는 빈틈이 있을지 모르나, 원작 소설에 맞춰 한 인간에 대한 비극적이고 낭만적 기록으로 읽는다고 치면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지 싶다. 일례로, 영화 초중반에 짐승을 소재로 이야기를 잇는 방식이 눈에 띈다. 동궁 시절의 융이 사냥터로 떠나는 길에 거지 행색의 외조모가 길을 막는데 그는 눈치채지 못한다. 돌아오는 길에 송아지 한 마리가 다시 길에 끼어들자 신하 중 한 명이 죽여버린다. 이를 본 융은 송아지를 잃은 어미 소의 마음을 읽어 그를 죽이고 만다. 자신의 진짜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고 자랐던 그의 내면을 슬쩍 드러내는 장면이다. 신하를 죽였으나 은연중에 모정을 그리는 애처로운 인물로 묘사된 그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비뚤어진다.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 영화는 또 하나의 동물을 등장시킨다. 성종이 중전을 위해 키우는 사슴이 있었는데, 융은 성종 앞에서 일부러 사슴에 발길질해 반감을 표출한다. 묘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왕위에 오른 뒤 한층 성품이 포악해진 연산은 폐비 윤씨에 관한 전모를 듣고 앞서 등장했던 사슴에 창을 던져 죽어버린다. 영화는 죽은 사슴의 얼굴을 드물게 클로즈업한다. 연산과 성종의 관계가 틀어지다 마침내 선을 긋는 과정을 몇 차례에서 걸친 은유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자칫 영화의 속도가 느릴 거라고 여겨지겠으나, 그것보다는 섬세한 방식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듯하다. 다른 연산군 영화들이 사건을 전하느라 급급해 인물을 불쑥 등장시키는 경우도 잦은데, <연산군>은 다르다. 외조모인 신씨와 폐비 윤씨가 혜택을 입은 대표적 인물이다. 신씨가 거지 행색으로 도성을 돌아다니다 연산과 다시 만나는 과정에 여러 에피소드를 삽입해 감정의 리듬을 확보하고, 영화 초반 융의 꿈에 나타났던 윤씨는 후반에 통째로 시간을 부여받아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으로 화한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전달되는 감정이 두터운 진정성을 얻음은 자명하다. <폭군 연산>의 결말이 역사적 사실과 딴판이면서도 하나의 이야기로서 완결성을 구한 것도 그래서다. <연산군>이 폐비 윤씨로 인한 연산군의 슬픔을 다루면서 그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여주는 것과 반대로, <폭군 연산>은 나쁜 왕으로서 연산군을 지속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연산군>과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그러던 <폭군 연산>은 결말에 이르러 전혀 색다른 하나의 플롯을 꾸민다. 사악한 행동을 일삼던 연산은 문득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영화 초반에 잠시 나왔다 사라졌던 중전의 방을 찾는다. 여기서 중전의 역할은 흡사 <죄와 벌>의 구원의 인물, 나타샤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에게 내린 벌을 받아들이고 멀리 떠나가는 연산의 모습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와 <무사>(2001)의 마지막 이미지와 유사한 정서를 전달한다. 일생에 걸쳐 애욕에 시달렸던 인물이 마침내 자유와 평온을 찾은 모습은 앞선 서사 전체와 맞먹는 무게를 지닌다. 촬영 시기가 한국의 산천이 지금처럼 개발되기 전인 1961년인지라 야외에서 촬영된 장면들이 여럿 돋보인다. 특히 전편인 <연산군>은 세트에서 촬영된 부분이 거의 없고, 실내 장면도 대부분 실제 궁궐 등의 현장에서 직접 찍었음을 알 수 있다.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던 연산이 말을 타고 여기저기 떠도는 장면을 보면, 배경으로 드러나는 옛 한국의 모습에 신기함을 느낄 지경이다. <연산군>은 들과 산이 펼쳐졌던 공간으로서 옛 한국을 기억하게 한다. 한 예로, 연산이 장녹수를 처음 만나는 장면의 흥취는 다른 연산군 영화들이 꿈도 못 꿀 부분이다. 근래 영화들이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 클로즈업을 구사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의 촬영은 미디엄 쇼트 이상으로 인물에게 다가가는 법이 거의 없다. 또한 와이드앵글로 넓게 퍼진 이미지를 종종 구사해 시원한 인상을 안겨준다. 전후편을 통틀어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은 영화의 내적인 스케일을 확장하는 역할을 맡는데, 어쩌면 이 부분에서 <연산군>의 단점이 두드러지게 엿보인다 하겠다. 단순하게 말해 연산군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연산군 역의 신영균을 포함해 대다수가 기능적인 연기의 선을 넘지 않는다. 영화의 속도는 분명 빠르지 않은데, 인물들은 여기서 등장해 대사를 내뱉고 저기로 사라지는 데 그친다(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연산의 숙부 역할로 나온 허장강일 것이다). 신상옥의 전작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보았던 넉넉하고 유유자적한 연기는 여기에 없다. 그 결과, 이야기 전체가 주는 힘이 대단하면서도 매 장면에서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는 실패했다. 신상옥이 싫어했던 부분이 바로 그것일까? 모르겠으니 짐작만 할 뿐이다. >> 연산군(장한사모편) 고화질 VOD 보러가기 <<
1960년대 중후반 이만희 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아니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멜로드라마 세 편을 발표한다. < 만추 >(1966), < 귀로 >(1967), < 휴일 >(1968). 하지만 1970년대의 이만희는 그 시절의 창조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 들국화가 피었는데 >는 이만희가 < 청녀 >(1974), < 태양을 닮은 소녀 >(1974) 등을 발표하던 무렵의 작품이다. 이 무렵의 이만희 영화는 뭔가 지쳐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들 영화에 짙게 깔린 허무의 정서는 1960년대 영화에서도 드러난 것이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 그의 영화는 훨씬 더 어둡고 무기력하다. 심지어 죽음 충동이 감지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영화진흥공사는 설립 기념작 중 하나인 <들국화는 피었는데>의 연출을 이만희에게 맡긴다. 그것은 이만희가 이미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등의 전쟁영화를 통해 자신이 전쟁의 스펙터클을 얼마나 잘 다룰 수 있는 감독인지, 그리고 그 와중에도 인물 하나하나를 얼마나 개성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지 입증한 감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진흥공사는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어 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임권택 의 < 증언 >(1972)의 성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1억에 가까운 제작비를 투자하고, 국방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제작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만희는 (그 시절의) 임권택이 아니었다. 1970년 3차 개정 영화법과 1973년 4차 영화법을 연이어 발표하며, 검열을 통해 반공과 근대화를 찬양하는 국책영화만을 양산하려 했던 유신정권의 영화정책 앞에 이만희는 고개를 숙일 생각이 없었다. 영화를 정치적 수단으로 여기는 국책영화와 오로지 영화만이 영화의 목적이어야 했던 이만희의 만남에서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고, 결국 <들국화는 피었는데>는 이만희와 영화진흥공사 간의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비균질적인 영화로 완성되고 말았다(그는 이 영화의 편집권을 빼앗기기까지 한다). <들국화는 피었는데>는 한국전쟁의 발발에서 서울수복까지의 기간을 담고 있다. 이만희가 영화에서 방점을 찍는 것은 북한의 공격에 속수무책 당하며 일방적으로 남으로 쫓겨 내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서울 수복의 기쁨을 잠시 보여주지만, 영화 말미에 배치된 이 장면들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에서 이질적인 불순물처럼 억지로 붙어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들국화는 피었는데>가 자신의 힘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몰고 온 무력감과 절망감, 그리고 그 끝에 짙게 깔려 있는 허무함의 정서를 담은 영화라는 의미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전쟁영화의 외피를 걸친 허무의 고백이다. 정대위( 이대엽 )가 진격해오는 북한 탱크를 향해 폭탄을 안고 뛰어드는 무모함은 군인의 사명감이나 용기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도무지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현실의 절망감에서 비롯된 자포자기의 행위에 가깝다. 이는 유사한 행위를 반복하는 송소위( 고강일 )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자신을 짓누르는 절망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이 허무함은 전쟁이라는 영화의 소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영화주의자였던 이만희가 온전히 자신의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시대에서 느끼는 절망감의 토로이기도 할 것이다. 이로 인해, <들국화는 피었는데>에는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는 이질적 힘의 충돌이 남긴 흔적이 남아있다. 이는 영화 속에 영화진흥공사의 흔적과 이만희의 흔적이 공존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들국화는 피었는데>가 분열되고 찢겨진 이유다. 북한이 탱크를 몰고 진격해오는 장면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당시 국방부의 지원 속에 완성된 국책영화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면서도, 북한군에 의해 말살된 마을 주민들의 참담한 죽음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그려내는 등의 이만희다운 영화적 표현이 공존한다. 또한 영화 엔딩의 희망찬 진격의 이미지에서 드러나듯 반공영화의 전형성이 존재하면서도, 이데올로기를 냉소하며 전쟁 자체를 허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허무주의자로서의 이만희도 공존한다. 중심인물이 현대위( 신성일 )에서 돌이( 김정훈 )로 갑자기 전환되는 등 반복적으로 툭툭 끊기는 서사적 진행과 반공과 반전(이데올로기적 허무감)의 이질적 가치가 서로 충돌하는 등의 영화적 결함은 시대와 불화하는 자와 그 시대를 강요하는 자의 공존이 불러일으키는 불협화음의 증거다. 많은 사람들이 1970년대를 한국영화의 암흑기라 부른다. 그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시대의 영화를 주목해야 한다면, 암흑의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영화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이들의 몸부림의 흔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현목 은 투항했지만, 이만희와 하길종 의 영화는 있는 힘을 향해 무언가를 지킨다. <들국화는 피었는데>의 비균질성이야말로 이만희의 몸부림친 증거다. 그렇기에, 참 처연한 영화다. >> 들국화는 피었는데 VOD 보러가기 <<
얼마 전 한 영화제에 상영이 결정된 감독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올해 상영하는 모든 작품을 IPTV에서 영화제 기간에는 유료로, 영화제 이후에는 3개월간 무료로 서비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감독은 “이게 말이 돼요?”라고 물었다. 물론 작품의 배급권을 가지고 있는 협회와 사전에 연락하거나 협의된 바는 없었다. ‘출품요강’이 발휘하는 막강한 힘 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 외에 별도의 플랫폼에서 작품을 서비스할 수 있고, 이것이 사전에 별도의 협의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영화제의 주장에 근거로 사용된 것은 바로 ‘출품요강’이었다. 이 영화제의 출품요강에는 ‘○○○ 영화제 이름으로 IPTV 상영 등 기타 뉴미디어에 일정 기간 상영될 수 있으며’라는 규정이 있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지난해 한 영화제가 배급사나 작가와 별도의 동의 절차 없이 해외에서 작품을 상영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항의했을 때 돌아온 대답도 같았다. ‘출품요강에 내용이 나와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영화제의 출품요강의 힘은 강력하다. 출품요강 규정에 따르면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는 순간 출품자는 요강에 있는 내용에 자동으로 동의를 표시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작권자나 배급사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이들은 한결같이 ‘출품요강’ 한 마디로 대답해왔던 것이다. 출품요강이 무엇이길래, 그렇게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출품요강은 출품 방법을 안내해주는 설명서라기보다는, 저작권자가 자신의 작품을 해당 영화제에 출품하였을 때 생겨나는 권리에 관한 이슈들을 정리해놓은 일종의 계약서에 가깝다. 대부분의 영화제가 작품공모와 함께 출품요강을 홈페이지에 공지하는데, 규정하고 있는 내용들은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영화제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내용이나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도 다르다. 그럼에도 영화제에 출품할 때 이들 내용을 세부적으로 따져보기보다는 간단한 확인절차를 거친 후 작품을 출품하게 되는데, 이는 분명 어느 정도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출품요강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는 분명 그러했을 출품요강과 영화제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는, 시간이 흐르면서 운영하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애초의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마치 경전의 한 구절 같은 출품요강의 단어만이 글자 그대로 권력을 가지게 되는 현상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제는 우리가 공유해왔던 막연한 상식 -사실, 그러한 상식이 실재해왔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에 기대는 것이 아닌, 창작자의 권리와 작품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명문화된 출품요강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편리함에 숨겨진 무서운 덫 최근 영화제의 출품요강은 내용의 복잡화와 형식의 단순화 경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내용의 복잡화는 영화제 상영 외의 상영회나 온라인 플랫폼으로 영화제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매번 상영동의를 받는 행정상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영화제 출품요강에 이 모든 내용을 한 번에 담아서 동의받고자 하는 경향이다. 형식의 단순화는 출품 자체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약식으로 신청서를 작성하여 출품 가능하게 하는 방법과 필요한 내용을 축약하여 출품 방법에 대한 설명서에 가까운 출품요강으로 공지하는 방법이 있다. 두 경향은 영화제나 출품자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규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출품자는 간단하게 자신의 권리를 영화제에 빼앗길 수도 있으며, 영화제에서는 이러한 출품요강을 근거로 작품의 권리를 충분히 악용할 수 있다. 사실 영화제에서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출품요강에 적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별도의 협의 없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없어 자칫하면 열려있는 규정이 될 수도 있다. 영화제에 출품한 것이니, 영화제에서만 상영한다는 상식도 의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출품요강에서 지켜야 할 의미, 그리고 형식 출품요강은 영화제와 출품자인 저작권자가 맺는 첫 번째 약속이다. 영화제는 출품요강을 통해 저작권자가 이 작품의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저작권자의 권리를 지켜줄 것을 함께 약속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영화제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작품의 권리를 정확하게 명시해야 한다. 즉 기본적인 계약서에 들어가는 기간과 지역을 포함한 권한의 범위를 말한다. 특히, 영화제 상영 외에 다른 권리를 사용하고자 할 때는 정확한 정보의 제공과 사전협의 절차를 거칠 것을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영화제가 이러한 권리 사용을 요구하였을 때, 이를 거절한다고 해도 영화제에서의 작품 상영 등 기본적인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것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때로 영화제는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고 싶은 창작자에게 권력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는 협의 과정에서 감독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지가 만들어졌는지 스스로 반문해봐야 한다. 영화제들 중 상영작을 ‘비영리’ 혹은 ‘공공목적’의 활용을 전제로 작품의 권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 단어의 뜻이 애매하여 어디까지 비영리로 볼 수 있으며, 무엇이 공공목적인지 정의하기 어렵다. 결국 해석의 여지가 많은 두 단어로 상영료 지불 없이 작품을 사용할 권리를 가져가는 조항으로 악용될 수 있다. 간혹 영화제들 중 출품 규정과 관련하여 영화제와 저작권자 간의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경우, 규정에 없는 사안에 대하여 상호 협의가 아닌, ‘영화제의 판단에 따른다’거나 ‘영화제가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는 경우들이 있다. 저작권자가 가지고 있는 권리를 영화제가 사용함에 있어 최종 결정은 저작권자에게 있는 것이 맞다. 권리를 빌려달라고 이야기하는 자가 그 권리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그리고 영화제들이 출품 기간이 끝나면, 출품요강을 삭제하여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다. 영화제와 저작권자 간의 약속을 서로 확인하는 의미에서도 이러한 출품 요강의 내용들은 기본적으로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도록 열려 있을 필요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4년 공모전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이는 수상작의 저작권이나 각종 권리를 공모전에서 가져가면서 생기는 문제를 방지하고, 창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에서 발표되었다. 이제는 영화제에도 이러한 출품요강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감독 등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각 협단체와 배급을 담당하고 있는 배급사들이 중심이 되어 영화제에 제안을 해보면 어떨까? 영화제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지금이라도 다시 영화제의 출품요강을 살펴보면서 행정적 편의를 위해 잊혀져갔던 규정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영화제를 만들었던 처음의 의미들을 살려 재정비를 해보면 어떨까? 신뢰는 어렵게 쌓이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만약, 그동안 만들어왔던 신뢰관계가 무너졌다면, 다시 처음부터 쌓을 수밖에 없다. 영화제가 감독과 맺는 첫 번째 약속인 출품요강을 다시 살피고 뜯어보면서 서로의 신뢰를 다시 쌓는 첫 번째 길이 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