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전쟁
- 감독
- 정창화
- 제작년도
- 1964
- 출연
- 김진규, 김보애, 최남현, 장동휘, 구봉서, 허장강, 트위스트 김, 조항, 김칠성, 구종석, 최창호, 공시훈, 황해남, 최삼, 최찬식, 문호경, 안인숙, 조정자, 정애란, 황정순, 이빈화, 최난경, 유계선, 주선태, 전옥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1981)를 사실 경박하게 ‘삐용삐용’ B무비로 언급하는 것은 무척 난감한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실제로 보지 않은, 하지만 영화제목만은 다 알고 있을 사람들은 대부분 B스럽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처럼 한국영화계에서는 뜻하지 않게 B의 운명을 타고난 영화들이 있다. 대부분 영화제목 때문이다. 입으로 울어야 할 앵무새가 몸으로 울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 앵무새가 영화 속에서 언어장애인인 정윤희를 비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처럼 슬픈 제목이 없다. 대사로 자신의 슬픈 내면을 드러내야 할 정윤희 가 그저 하염없이 말 못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외모만 탁월하고 연기가 부족한 정윤희를 위해 그런 앵무새 설정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정윤희는 앞서 만들어진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와 더불어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두 편으로 2회 연속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뭐랄까, 한국영화사를 통틀어 단 한 명의 ‘여신’을 꼽으라면 단연코 정윤희다. 정윤희 일단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는 도입부부터가 B스럽다. 알다시피 정진우 감독은 한국영화사에서 < 율곡과 신사임당 >(1978)을 통해 최초로 동시녹음을 시도한 선구자다. 그래서 매번 영화가 시작할 때마다 당당히 그 사실을 공표했는데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또한 ‘제6회 동시녹음 작품’이라는 대문짝만한 문구를 선보이며 시작한다. 자랑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바로 카메라 자랑으로 이어진다. ‘TODD-AO 카메라 제1호 작품’이라는 문구도 뜨는 것. 더구나 뒷배경으로는 본 영화와 전혀 상관없이 전장의 폭발 장면이 보이고, 손현채 촬영기사가 촬영부 퍼스트로 보이는 인물과 함께 한 바퀴 뱅그르르 돈다. 왠지 당시 활동했던 분들은 ‘촬영감독’이 아니라 ‘촬영기사’라 불러야 그 아우라가 살아나는 느낌인데, 아무튼 화려한 필모그래피에 비해 한국영상자료원 데이터베이스에 증명사진 하나 없는 손현채 촬영기사의 얼굴을 그렇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 초분 >(1977), < 피막 >(1980), < 뽕 >(1985), < 내시 >(1986) 등 이두용 감독과의 작업으로 유명하다. 기술의 과시 영화는 홀아비 최영감( 황해 )의 회한 가득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벌판에서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내려오는 문( 최윤석 )과 수련( 정윤희 )의 환상을 본다. 그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자신의 혈육이 아닌 문과 수련을 데려다 키웠는데, 바깥에는 친남매로 알려진 그들이 사랑에 빠지게 됐고 최영감은 내내 그것을 막으려했다. 어떻게 보면 요즘 TV 막장드라마(?)의 흔한 설정으로 느껴지는데, 어쨌건 그 무엇도 그들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사랑 앞에서 무엇을 감추랴? 대자연도 숨죽인 강렬한 육체언어!”라는 포스터 카피가 인상적이다. 결국 최영감은 “제발 인간 좀 되라”며 문을 서울로 보내버리는데,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괜히 지나가는 행인들과 어깨를 부닥치고 멀쩡한 전봇대를 부여잡으며 서울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던 그는 결국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렇게 두 사람이 모처럼 다시 만나는 장면이 압권이다. 저 멀리 쓸쓸한 표정으로 있는 수련을 발견하자마자, 문은 마치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물속으로 뛰어든다. 당시로선 보기 드문 수중 정사신이 그렇게 탄생했다. 이 장면을 위해 오대산 금강연에서 산소통을 메고 촬영에 임했던 손현채 촬영기사는 15번에 걸친 NG 끝에 호흡기를 놓쳐 심폐소생술로 살아났다 한다(그런 그에게 대종상은 촬영상을 안겨주었다).그렇게 그들은 뭍으로 나와서도 대충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는 서로의 몸을 탐한다. 뭍으로 나온 그들 이후 정윤희 의 팬으로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하지만 영화적으로는 더욱 드라마를 풍성하게 해주는 설정은 바로 어느 순간부터 문을 쫓아다니게 되는 숙( 김형자 )의 등장이다. 사실상 영화 속 대사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 숙은 시도 때도 없이 문에게 들이댄다. 그러면서 자신의 얘기를 구구절절 들려준다. 어려서 살던 섬을 떠난 그녀는 부푼 꿈을 안고 뭍으로 나왔지만 결국 건달과 엮여 인생이 꼬이게 됐다. “저 하늘에 구름이 왜 이리 많을까요”부터 “인간은 고무공과 같을지 몰라. 이리저리 튕겨나가고 싶으니까”라며 거의 시적인 대사들을 남발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는 관심도 없이 걷고 있는 문을 향해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천당인가요? 지옥인가요? 아니면 좀 쉬어서 가요”라고 말하는 그 모습이 처음에는 지겹다가도 어느덧 적응하게 되는데, 김형자 역시 이 작품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어쩌면 이 영화의 주제도 떠다니는 삶에 대한 회한을 담은 숙의 대사다. “저 기차는 어디로 가는 기차일까요. 기차를 오래 타면 엉뎅이가 아파요. 그래서 마음 내키는 대로 걷다가 다시 타고 내리고 반복하죠. 그러다 해가 저물고 다음날이면 트렁크를 들어다주는 말없는 사내를 만나게 되요. 그게 인생인 거예요.” 그런 숙이 기어이 문을 성(性)적으로 굴복시킨 다음, 자신의 기둥서방과 문이 뒤엉켜 싸우는 장면과 숙이 화장을 고치는 모습을 교차 편집시키는 대목은 압권이다. 마치 ‘에라이, 남자들이 원래 그렇지 뭐’ 라는 생각으로 지켜보던 숙은 “됐어요, 이제 그만!”하며 불쑥 그 싸움을 말린다. 싸우는 남자들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다. 괜히 큰 사고라도 나면 자기만 귀찮아지니까. 그리고는 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바이바이” 떠난다. “여기가 우리들의 종착역인가 봐요. 어차피 내릴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첫 번째 정거장에서 내리는 게 나아요. 어쨌건 당신은 내 가슴이 여전히 뛰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멋진 남자에요. 세월이 흐르면 별난 추억이 될 거에요. 그럼 안녕~.” 실로 멋진 퇴장이다. 그렇게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는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를 보고 그 속편의 느낌으로 정윤희 에게 하트를 뿅뿅 발사하며 본 영화였다가, 뜻하지 않게 김형자 를 발견하게 된 영화였다. 김형자 , 김형자, .... 김형자 끝으로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도저히 볼 수 없는 나이로 이 영화를 보면서 충격 받았던 두 개의 장면을 얘기하며 마무리할까 한다. 알부자로 소문난 최영감이 동료 철도노동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최영감을 흠모하고 있던 술집 여주인이 “과부 사정은 홀애비가 안다”며 느닷없이 최영감의 바지를 풀어 손을 쑥 집어넣는다. “과부 사정은...” 운운하는 대사야 워낙 익숙했지만 사람들이 가득한 술집에서, 그러니까 파티션도 쳐져 있지 않은 술집에서 직접 바지를 풀어버리는 그 여주인의 기개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는 최영감이 귀갓길에 사온 핑크빛 ‘신식 고쟁이’를 정윤희 에게 선물하고 바로 입어보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전후한 이야기의 진행을 전혀 떠올리지 못할 만큼 강렬했다. 그러니까 정윤희가 초반에 나뭇잎으로 몸을 두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런 란제리가 없었기 때문인 것. 게다가 아무리 딸이라도 피 하나 섞이지 않은 딸이 그 차림새로 아버지의 등도 밀어주고 비누칠도 해주니, 그 장면이 줬던 묘한 긴장감은 그야말로 살벌했다. 그야말로 어린 나 또한 그 장면에서 몸으로 울고 말았다. 정윤희 황해 최윤석 김형자 감독: 정진우 각본: 김강윤 , 김성화 개봉극장: 피카디리(서울) 관람인원: 169,381명
아, 임성민 ! 누군가 내게 한국영화계 최고의 미남배우가 누구였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고(故) 임성민이라 말할 것이다. 물론 남궁원도 잘 생겼지만 임성민이 좀 더 섹시했다. 고교 육상선수 출신의 탄탄하고 매끈한 체격, 그야말로 훤칠한 조각미남의 대명사였던 그는 ‘변강쇠’ 이대근 으로 대표되는 1980년대 후반 토속에로 장르의 반대편에서 치명적인 도시 남자의 ‘지골로’(gigolo)스러운 매력을 뽐냈다. 물론 마흥식 , 이영하 처럼 비슷한 계열의 다른 배우들이 있었지만 역시 그가 가장 섹시했다. 마치 ‘한국의 미키 루크’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섹시함을 과시하며 < 달빛 멜로디 >(1984)에서는 안소영 , < 바람난 도시 >(1984)에서는 이미숙 , < 탄드라의 불 >(1984)에서는 오혜림 , < 무릎과 무릎 사이 >(1984)에서는 이보희 , 그리고 < 색깔있는 남자 >(1985)에서는 무려 오수미 , 오혜림 , 오경아 트리오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며 입지를 다졌다. 이즈음, 요즘 한창 잘 나가는 TV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류수영 의 본명인 ‘어남선’처럼 뭔가 수산업을 연상시키는 ‘임관배’라는 본명을 내던진 것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다. 달빛 멜로디 , 무릎과 무릎 사이 , 그리고 장사의 꿈 세월이 흘러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1994)에서 최진실 에게 납치당한 한국 최고의 미남 배우도 바로 그였다(당시 최진실의 지시로 그의 목을 조르고 있던 무명의 신인배우가 바로 유오성 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1995년 8월 17일, 어린 딸을 하나 남겨둔 채 간경화 악화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 사의 찬미 >(1991)에서 윤심덕( 장미희 )과 사랑에 빠진 와세다대학 영문과 학생 김우진으로 출연해,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지적인 모습을 뽐내며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하는 등 배우로서의 원숙미를 서서히 드러내던 시기였다. 그렇게 남자배우로서 한창 뻗어 나갈, 불과 마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으니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서 한국형 하드보일드 장르가 안착한 지난 몇 년간 멋진 고참 형사나 보스로 출연한 그의 모습을 가끔 상상해본다. 공교롭게도 임성민 은 역시 세상을 뜬 장국영과 1956년생 동갑인데, 그보다 한 살 많은 1955년생 임달화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임성민이 살아있다면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헛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황석영 원작, 신승수 감독 < 장사의 꿈 >(1985)은 ‘털보’ 임성민 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씨름 선수 차일봉(임성민)은 서울에 올라와 방황하던 중 돈을 벌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에 나선다. 당연히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외모다. “어이, 거기 털보! 덩치가 좋구먼. 나랑 같이 일하러 갑시다.” 하지만 공사판의 한 할아버지가 그의 육체가 부러운 듯 점잖은 표정으로 독설을 내뱉는다. “힘이란 믿을 게 못 되지. 늙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이제 힘은 별로 쓸모가 없을 거외다. 용이 뭍에 오르면 개미가 덤비는 법이지.” 그러자 일봉은 갑자기 밥을 먹다 말고는 쌓아놓은 벽돌 탑을 단숨에 넘어트리며 장사의 희열에 젖는다. 고향에서는 황소를 독차지할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전국 규모의 천하장사 대회에서는 크게 명함을 내밀 수준이 못 되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더 큰 도전의식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런 식의 B무비스러운 고속촬영 판타지 장면은 영화 내내 반복되는데, 아마 연극으로도 만들어진 <장사의 꿈>이 흉내 낼 수 없는 영화적 효과를 위한 장치일 것이다. 영화의 시작, 털보 임성민 이후 그는 불고기를 사주는 돈 많은 게이( 남포동 )의 유혹에 넘어갈 뻔하면서 도시의 삭막한 공기에 눈뜨게 된다. 그러다 급기야 영문도 모른 채 지하실에서 은밀하게 만들어지는 에로영화에까지 출연하게 되는데, 그 촬영현장에서 맨 처음 맞닥뜨린 헐벗은 애자( 금보라 )를 보고는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바지가 부풀어 오른(-_-;) 일봉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대로 된 ‘합’을 맞춰보기도 전에 애자의 기둥서방 마대수( 송경철 )는 애자를 데리고 누드캘린더를 촬영하는 곳으로 휭 떠나버린다. 그래도 일봉의 남다른 체격과 외모 때문인지 곧 두 사람은 음지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 부기 나이트 >(1997)의 덕 디글러(마크 왈버그)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그전까지 대머리 중년 남자배우와 뒹굴던 애자 역시 싱싱한 일봉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당연히 최고의 에로배우를 얻은 감독( 정진 ) 역시 신이 난다. 거리로 나간 고다르가 < 네 멋대로 해라 >(1960)를 찍었던 똑같은 16밀리 볼렉스 카메라로 골방에서 에로영화를 찍고 있는 처지일지언정, 그는 생긴 것과 달리 에로영화에 대해 진지한 철학을 설파하기 시작한다. “예술이 별건가, 바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거다. 자연의 아름다움, 육체의 아름다움. 그중에서도 남녀가 사랑할 때의 아름다움이 가장 아름답다. 사랑 앞에서는 어떤 가치도 무의미하다. 어서 옷을 벗고 그 폼 나는 육체를 아낌없이 뽐내고 자랑하라!” 급기야 그들은 깊은 산 속에서의 야외 로케이션도 감행하게 되는데, 쇠사슬을 두른 ‘타잔’ 임성민 이 쇠사슬을 끊고 하얀 천을 날리며 헐벗은 채 뛰어오는 ‘선녀’ 금보라 를 향해 달려간다. “도시 생활에 찌든 사람들에게 야성을 되찾아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감독의 하나 마나 한 개소리가 이어지는데 어쨌건 북한산에서 이뤄진 ‘타잔과 선녀의 합궁’이라는 아찔하고 키치적인 동서양의 만남 앞에 그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순간 이마무라 쇼헤이의 < 인류학 입문 >(1966)이 살짝 떠올랐다고 고백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타잔 임성민 , 선녀 금보라 임성민 도 그렇지만 ‘cute’와 ‘sexy’가 하나로 만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금보라 의 매력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 장사의 꿈 >에서 일봉이 과거 시골 읍내를 주름잡던 천하장사였다면 애자는 바닷가 마을의 해녀였다. 그래서 “애자 씨는 너무 차가워요”라는 일봉의 질문에 “어려서부터 해녀로 자라서 피가 차가운가 봐요”라는 나름 그럴듯한 답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 차가운 매력은 에로 연기가 서투른 일봉의 연기를 교정하는 데 있어서도 능수능란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는 서로의 몸을 만지는 게 아니라 조명 불빛을 만지고 있는 거예요”라는 충고는, 지금껏 봤던 그 어떤 에로영화들에서도 깨닫지 못한 최고의 ‘연기론’과 ‘형식미’ 모두를 함축하고 있다. 바로 그 차가움 속에 서울로 올라와 산전수전 다 겪었을 애자의 깊은 슬픔이 묻어나온다. 그것을 드러내기 위한 친절한 몽타주 역시 가슴을 후벼 판다. “서울은 캄캄한 어둠 속의 동굴과도 같다. 줄곧 어둠 속에서 살았다”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올 때는 친절하게도 그 건너편에서 시각장애인 두 명이 지팡이를 짚고서 걸어가고 있다. 암흑과도 같은 도시생활을 시각장애인의 그것과 비교하며 B스럽다기보다는, 너무나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EBS스러운 몽타주라고나 할까. 또한 서울을 헤매고 다녔다는 말에는 곧장 벌거벗은 채 새벽 명동거리를 질주하는 애자의 싱싱한 뒤태를 보여준다. 정말 충격적인 몽타주가 아닐 수 없다. 앞서 김수용 감독의 < 도시로 간 처녀 >(1981)를 비롯해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81) 등으로 깜찍한 신인의 미모를 뽐냈던 그녀는 <장사의 꿈> 이후 < 금달래 >(1986), < 늑대의 호기심이 비둘기를 훔쳤다 >(1988) 등에 출연했다. '조명 불빛을 만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지고 난 다음부터가 문제다. 촬영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못된 대수를 일봉이 무력으로 제압한 이후, 에로영화 촬영장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두 사람은 떠돌이 신세가 된다. 우연히 만난 약장수 태산거사( 김인문 )과 함께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펠리니의 < 길 >(1954)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애처롭고 정감이 넘친다. 하지만 그들에게 행복은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교통사고로 애자가 유산한 이후 1년 동안 떨어져 지내기로 한 것. 일봉은 남창으로, 애자는 그 문제의 기둥서방을 다시 만난다. 이때부터 영화에서 애자는 사라지고 일봉의 고난의 역사가 시작된다. 뚜쟁이인 방배동 오여사( 김영애 )의 안내로 산속에서 (둘 만의 암호인) 초록색 물통을 든 여사님( 김애경 )을 만나 격렬한 정사를 나눈 뒤부터 산에서도 하고, 호텔에서도 하고, 기차에서도 하고, 아이를 원하는 여자의 대리부 노릇도 한다. 수많은 여사님들에 둘러싸여 자라피도 마시며 승승장구하지만 이내 정력은 고갈되고 만다. 급기야 그는 함께 샤워를 하며 정사를 나누던 한 여사님으로부터 “이거 병신이잖아. 어쩌다 이따위를 보냈지”라는 씁쓸한 환불요구에 직면하는 신세가 된다. 병원의 의사로부터 “몸도 마음도 황폐해졌어요. 좀 쉬어야 합니다”라는 진단까지 받고 보니, 마치 그 모습이 혹독한 연예계 생활에 지쳐 간경화로 쓰러진 현실의 임성민 을 떠올리게 해 마음이 아프다. 말하자면 < 장사의 꿈 >은 고 임성민의 레퀴엠처럼 느껴지는 슬픈 에로영화다. 나이트클럽에서 수많은 남자들의 담배 연기에 파묻혀 나체쇼를 하고 있는 애자와 일봉이 조우하는 마지막 장면 또한 실로 충격적이다. 성인이 되어 영화를 다시 보면서는 그 마지막 장면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더랬다. 1980년대 에로영화에 대해 막연한 조소와 냉소를 퍼붓는 사람들에게 <장사의 꿈>은 그야말로 감동의 명편이다. 마지막 장면 임성민 금보라 정진 김영애 감독: 신승수 각본: 신승수 개봉극장: 코리아, 동아 관람인원: 12,601(서울)명
사랑은 순수하지 않다. 아니 감정은 진실할지라도, 우리가 사회에 속해 있는 한 순결하지 않다. 계급과 지역,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랑은 끊임없이 침해당하고 변질될 테니까. 서울 변두리 어딘가에서 갈빗집을 하는 영운( 김승우 )은 동네 룸살롱의 에이스 연아( 장진영 )와 사랑에 빠진다. 우리가 늘 보던, 화류계 여성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다. 그 남자는 사랑을 하고, 하지만 도망치고, 하지만 잊지 못하는 신파극. <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하 <연애 참>)은 참 식상한 이야기를 들고 나왔던 영화다. 하지만 < 연애 참 >은 과거의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중심은 사랑 이전에 ‘변두리’다. 사전을 찾아보면 변두리는 ‘어떤 지역의 가장자리’라는 말이다. 영운과 연아가 사는 곳은 변두리다. 서울 중심이나 번화가가 아니라 그냥 어딘가의 동네. 영운은 갈빗집을 하고, 한 친구는 비디오 가게를 하고, 한 친구는 공장 사장님의 아들이다. 나머지 친구들은 건달 아니 한량이다. 별다른 일 없이 적당히 놀고먹는 친구들. 그러니까 영운과 친구들은 변두리에서는 잘나가는 한량 정도다. 날마다 놀고, 먹고, 마시고, 미래 같은 것 생각도 않고 지내는 지질하지만 유쾌한 인생들. 한국 드라마에서는 늘 재벌이 나오고, 영화에서는 조폭들이 나온다. < 연애 참 >에는 어느 것도 없다. 이권이 크지 않은 변두리에는 조폭들이 크게 설치지도 않는다. 영운의 친구가 룸살롱 호스티스의 기둥서방 역할을 하면 업소 관리하는 건달들이 조금 손봐주는 정도다. 동네 토박이들이 설치고 다니는 것 정도는 눈감아준다. 여기는 그들의 동네니까. 그렇게 영운과 친구들은 변두리의 왕 행세를 한다. 경찰에게도, 건달에게도 꿀리지 않는다. 다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생겨 충돌했을 때에는 바로 고개를 숙이지만. <연애 참>은 구질구질한 변두리의 정서를 제대로 포착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우리 동네가 딱 저렇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80, 90년대의 정서에 크게 기울어져 있지만. 영운은 그런 변두리의 한량이다. 사귀는 여자가 있었지만, 연아가 수작을 걸자 바로 넘어간다. 하지만 약혼녀와 헤어지지 않는다. 연아와 결혼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어머니의 눈이 있고, 뭔가 꺼림칙하다. 그래서 아무 대책 없이 미루고 또 미룬다. 예쁘고, 몸매 좋고, 화끈한 연아가 더 좋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용기가 없다. 아니 용기가 없는 게 아니다. 온갖 추잡하거나 창피한 짓을 할 자신은 있지만, 자신의 사회적 관계에서 이탈할 생각은 없는 거다. 그들이 변두리의 왕으로 남기 위해서는, 최소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술집 애인은 둬도, 술집 부인을 두는 건 아니다. 그렇게 그들은 치사하고, 쪼잔하다. 신혼여행을 간 첫날밤에 연아에게 전화를 하는 정도의 순정을 가진 영운이지만,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서는 단 한 걸음도 나가지 않으려 한다. 술주정으로 영운의 아내에게 전화를 건 연아를 그녀의 집에 가서 무지막지하게 폭행 한다. 연아와 영운의 친구들이 와서 영운에게 한마디씩 하자 나가서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아내에게 울먹이며 해명을 하다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영운을 친구가 본다. 그리고 친구가 하는 말 “씨발 새끼, 진짜 사람 아니네. 그래도 이 대목에서 수경아 사랑해, 는 빼야지.”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라며 토해내는 영운을 보고 있으면, 진짜 사람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게 결국 우리네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변두리에서, 미래 같은 건 보지 않고, 단지 지금의 일상과 오락에 빠져 살아가야만 하는 보통 인생. 그나마 변두리의 왕이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그들은 그 왕 노릇조차 잃으면 진짜 ‘사람 아니’게 되는 것이다. 아쉽게도 < 연애 참 >은 세련되지 않다. 아니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인물과 대사는 생생하지만, 장면들을 보면 오래전 한국영화를 보는 것 같다. 투박하고, 촌스럽다. 그런데 그 인물들에 빠져들다 보면 야릇하게도 매혹된다. 그 촌스럽고 너절한 인간 군상에. 영운과 연아의 드라이브는, 소형 오토바이를 타고 산동네 도로를 달리는 정도였다. 멋진 산악도로가 아니라 언덕 위의 빼곡한 집과 건물들이 보이는 도로에서의 드라이브. 그런 그들이 무개차로 제주도의 해안 도로를 달리는 상상을 한다. 멋진 풍경이지만, 그 장면은 여지없이 90년대 한국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익숙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의도도 있었겠지만, <연애 참>의 구태의연하지만 생생한 인물들은 바랜 듯한 풍경 속에서 가장 색이 잘 드러난다. <연애 참>의 매력은 구질구질하면서도 악착같이 폼을 내려는 절박한 몸짓 같은 것이다. 영운과 연아의 ‘가벼운’ 연애는 그 극단을 보여주는 것이고. <연애 참>은 미완성처럼 어색하게 마무리하지만, 그 연애의 무거움은 여전히 가슴을 누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