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9°C
- 감독
- 김강민
- 제작년도
- 2011
창의적 도구의 사용과 상상력 사이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다. 초기 애니메이터들에게 애니메이션은 새로운 매체로써 자신의 상상력을 시각화하는 일종의 창의적 탐험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애니메이션 역사상 형식적인 측면에서 가장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작가라고 평가받는 실험 애니메이션의 대가 노먼 맥라렌 역시 작품의 아이디어 대부분을 정형화된 제작 기법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재료와 테크닉을 실험하는 과정을 통해 수많은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애니메이션의 지평을 넓히는데 공헌했다. ‘매체가 표현을 규정한다.’라는 그의 말은 다른 어떤 미사여구보다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명확하게 묘사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김강민 감독의 작품은 초기 실험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미학적 시도와 닮은 구석이 많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이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도구 사이의 균형과 실험적 탐색을 통해 감독은 순수한 상상력의 세계를 자신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수작업의 정서로 재현하고자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강민 감독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 점(Jeom) >(2017)은 2012년에 제작된 < 38-39'C >의 속편 격으로 ‘모반’ 혹은 ‘몽고반점’이라 불리는 검은 점에 의해 거부할 수 없는 유전적 힘으로 연결되어있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초반 이야기는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가 교차하듯 포탈이 서서히 열리면서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처럼 엉덩이에 큰 반점을 갖고 태어났다는 다소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자기 고백적 서술로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주인공이 아버지와 서로 닮아있는 엉덩이 표식을 무척 싫어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게 되고, 아들은 필사적으로 그 흔적을 지우려 하나 성공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에게 첫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서, 표식이 혹여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이어질까 전전긍긍한다. 작품의 모티브는 전작 <38-39'C>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이야기는 감독 자신과 자녀와 거의 소통이 없었던 진지하고 과묵했던 아버지 사이의 관계에 바탕을 둔 작품으로, 아버지를 회상할 수 있는 기억의 장소이자 서먹했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대화 없이 유일하게 스킨쉽을 통해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던 공간인 대중목욕탕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주인공은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매주 갔던 낡은 대중목욕탕을 추억의 공간으로 소환하고, 서로 등을 밀어주던 시간들을 되감기하면서 어느새 아버지 나이가 된 자신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짠한 마음과 미운 감정을 동시에 보여준다. 1편에 해당하는 <38-39'C>가 아들인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면, 속편인 <점>에서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자신과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로 경로를 선회하면서, 이제 이야기는 아버지의 관점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라운드를 맞이한 부자 간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면서 끝을 맺는다. 우연히 세대 간 이어진 반점이란 변조된 유전적 유산을 통해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풀어 낸 시도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매체 환경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여 다양한 도구의 탐색으로 제작 프로세스 자체를 표현의 발견이자 새로운 미학으로 시각화한 감독의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전 보다 섬세하게 조각된 2D 컷아웃 퍼펫 캐릭터와 입체적 배경 레이어의 앙상블이 손맛의 매력을 필터 없이 그대로 전달하고 있으며, 추상과 구상을 가로지르는 이미지 변주가 몽환적으로 실현되면서 작품 세계를 한 층 더 독특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드러난 물질성 핀 스크린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있다. 정확히는 그런 기법이 있었다. 수많은 핀들을 꽂아서 만든 캔버스에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핀을 눌려 일종의 자국을 만들고, 거기에 적당한 조명을 쏘아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기법(인간 손의 흔적을 빛이 그린 그림자로 완성하는 오묘하고도 신비로운 기법)이 있었다. 경외감마저 불러일으켰던 핀 스크린의 마법은 많은 부분이 핀들과 핀들 사이에 켜켜이 쌓인 빛과 그림자들이 만들어낸 대상, 즉 물질의 표면이었다. 이런 걸 ‘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술에서 물성이라는 것은 사실 모더니즘 시대를 풍미했던 구태의연한 논의였다. 이미 예술은 개념으로 전환으로 물질성을 넘어서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이 물질적 속성이라는 것이 결국 예술 장르의 구분 짓기라는 점, 또는 예술 표현 수단의 가장 작은 단위(예를 들어 점, 선, 면, 색채 등)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예술의 테제, 또는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셀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모든 이미지가 대상을 추상화하여 그려진 이미지라는 점에서 대상 자체의 직접적인 물질성을 언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셀 애니메이션에서의 이미지는 그려진 ‘평면’ 이라는 물질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에 더욱 방점을 두어야 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의 경우 제작 방식에 있어서는 이미지를 적층시켜 환영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물질성이 드러나지만, 그것이 서사나 플롯 구성에서 잘 드러나진 않는다는 것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보자면, 전통적인 실사영화도 마찬가지다. 분명 실사영화도 카메라는 대상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물질성을 획득하고 있지만, 그것이 문학적 서사 내부에 들어오면서 물질성은 증발되고 캐릭터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적어도 애니메이션이든, 실사영화든 극영화의 영역에서는 대상의 물성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밌게도 애니메이션의 제작 기법과 양식에 대한 분류에 ‘오브제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대부분의 발전적 애니메이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찰흙(클레이), 돌무더기, 심지어는 동물 사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질들이 애니메이션의 오브제로 사용되고 있다. 이때 많은 작품들의 성격이나 테제는 이 오브제의 특성으로부터 기인한다. 예컨대, 오브제로서 클레이는 비정형적이고 플라스마 적 물성, 돌이나 금속은 강인함과 거친 물성, 종이는 평면과 구겨짐과 같은 물성을 이용한다. 때문에 발전적 애니메이션에서의 오브제의 물질성은 작품 내에서 잘 봉합되고, 숨겨지고 감추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작품이 드러내는 속성들은 서사보다는 이미지를, 캐릭터보다는 오브제와 대상의 물질성을, 이음매 없는 유려함보다는 봉합의 흔적을 드러냄을 중요시하게 된다. < 사슴꽃 >도 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 사슴꽃 > 이음매 없음과 봉합 김강민 감독의 < 사슴꽃 >은 전작 단편 작품인 < 38-39°C >와 동일한 스톱모션 작품으로, 전작에서 쌓아 올린 이미지의 병렬세계를 더욱 견고하고 농밀하게 작업하였다. 예를 들면, 두 작품은 모두 과거의 한 단편적 기억으로부터 직조되었는데, 전작은 과거 한 지점의 목욕탕에서 아버지와의 기억을 소환하였다면, <사슴꽃>은 한 소년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소위 ‘보양식’의 최초 흡혈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여기서 대체로 기억을 구축하고, 구술하는 순간에 등장하는 독특한 이미지들의 나열은 각 작품들의 중심이미지라 할 수 있다. 특히 두 작품 모두에서 백미라고 할 수 있는 ? 일종의 마음의 변화, 즉 정동(情動, affect)의 순간과, 이때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의 병렬은 주로 평면과 입체, 빛, 추상적 이미지들이 교차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일군의 성장담, 또는 오이디푸스 과정처럼 보이는 이 두 작품들이 스톱모션(발전적 애니메이션)의 입체 공간에 형이상학적인 평면 이미지들을 교차시켜 그 자체가 주요한 표현 수단으로 된 것이다. 이 두 작품이 실험 영화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에는 예의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 사슴꽃 >에 등장하는 대상들을 살펴보자.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전작의 컷 아웃 방식의 평면이 아닌 입체의 모양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물들이 3D 프린터를 이용해 출력된 것임을 쉽게 알아챈다. 표면들은 정리되지 않고 적층된 플라스틱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각각의 표면의 ‘결’들은 그곳에 떨어진 조명을 표면에 의해 여러 층위로 난반사 한다. 요즘의 3D 프린터들이 첨단(cutting edge)의 느낌을 위해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려는 노력이 무상하게 말이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 두드러진 것은 표면들에 거칠게 드러나는 이음매들의 등장이다. 많은 부품들의 결합으로 구성된 캐릭터들은 각진 표면에 수채화로 그려진 종이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들 각 부분들이 겹합된 부분은 여전히 여백으로 남아있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이나, 디지털 영화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은 실재와 구분이 되지 않게 이음매를 지우고 매끈한 형태로 만들어, 이것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을 추구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만들어진 대상’임을 오히려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봉합의 흔적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들 봉합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좋은 예술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애초부터 이음매 없이 만들어져 처음부터 그렇게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천의무봉은 대상의 본질을 지움으로써 그 자체로 은폐한다. 하지만 이음매를 드러내면 그것이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예컨대, 이음매가 드러난 곰 인형은 천과 솜으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아는 것처럼 대상의 이전 상태를 드러낼 수 있다. 영화가 봉합을 하지 않고 이음매를 드러내면 영화가 기인하고 있는 현실 세계가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대상을 카메라 앞에서 드러내면서 대상의 물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것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지닌 강점이다. 이는 대상이 어떤 상태로 그려지는가에 문제이기도 하면서 작품이 무엇을 재현하는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많은 스톱모션/오브제 애니메이션은 생명이 없는 사물의 움직임, 움직이고 있는 죽음(좀비/죽었지만 살아 있는 것 같은 움직임)을 재현하고 있다. 이것 역시 애니메이션의 주요한 특성 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죽은 사물이 등장하는 곳에서 이음매를 드러낸 사물들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여기서 애니메이션 이전의 상태, 즉 사물의 움직임 이전의 움직임인 애니메이터의 존재 또는 애니메이터의 손과 만나는 것이다. 물질의 표면에서 느껴지는 감각들, ‘결’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 이상의 것이다. 우리가 잘 봉합된 CG의 매끈함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들, 삐뚤삐뚤 그려진 이미지와 지문이 남겨진 클레이, 실재 광원에서 떨어지는 빛, 먼지들의 가라앉은 작은 세트에서 묘한 감각을 느끼는 것은 이음매들이 주는 존재의 함성과 결, 즉 작가의 손과 퍼포먼스 때문일 것이다. * 작품링크 : https://vimeo.com/219692884
스톱모션이라는 미학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이론에 의하면, 이 예술 장르에 적합한 미학의 뿌리는 색채론과 표현주의, 그리고 비선형적 공간구성 등 상당 부분 모더니즘적 전통에 기대어 있다. 물론 필름(film)이라는 뉴미디어의 등장과 소비가 가능하게 된 시점이 모더니즘의 공간이라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은 당연히 그 시대적 모멘텀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초기의 애니메이션이 상당 부분 실험적 영화의 틀 내부, 그리고 모더니즘 회화 작가들의 활동에 의해서 유지된 점도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색채, 움직임, 추상화(abstract), 분절적 공간 구성 등은 애니메이션의 주요한 미학적 지표임에는 틀림없다. 적어도 전통적인 애니메이션(orthodox animation)에서는. 하지만 이러한 이론적 접근, 또는 적용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양식이 있는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그렇다. 일반적으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세트를 제작하고, 퍼펫을 만들어 그것들을 실재하는 공간에 배치한 다음, 이들의 포즈를 사진이라는 기계적 특성을 이용해 기록한다는 점에서 실사영화의 그것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기에서는 괴테의 색채론 보다는 데카르트의 광학이론이, 캐릭터와 공간의 비선형적 분절보다는 선형적이고 비분절적인 공간 구성이 우선한다. 무엇보다도 스톱모션은 가상의 빛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광원으로 공간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작품 제작의 공간은 오히려 실사영화의 세트촬영을 축소한 형태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결과물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성과 실사영화의 특성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그것 때문이었는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가 각자의 영역으로 분리되어 나갈 때에도 실사영화의 한 꼭지(마치 최근의 디지털 영화의 그것처럼 영화 속 FX 효과의 하나로서 합성)로 최근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스톱모션 이미지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공유하며 두 영역 사이의 다양한 이미지들과 쉽게 병치되거나 합성될 수 있다. 후에 언급할 김강민 감독의 < 38-39°C >은 이러한 스톱모션 이미지의 특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들의 환영적 병치 또는 환상적 리얼리즘 목욕탕을 찾은 한 중년의 남성이 (아마도 아버지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기억하게 되는 백일몽의 이야기를 담은 < 38-39°C >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며, 종이를 이용해 인형을 만든 페이퍼 퍼펫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물론 작품에 사용되는 퍼펫은 쇼트의 특성과 카메라의 앵글에 맞춰 각각 별도로 제작되었는데, 캐릭터들은 평면의 색면이면서 동시에 카툰적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작품의 세트는 모두 정교하고 깊이감 넘치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크게 목욕탕 입구와 내부로 나뉜다. 입구는 평면적인 배경을 애니메이션의 레이어와 같이 배치하고 입체적 소품들을 병치하여 독특한 느낌을 환기시킨다. 이에 비해 두 번째 주요 공간인 욕실 내부는 상당히 입체적이고 빛과 그림자에 의해 구분되어 상당히 실사 영화적이다. 세트에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며, 오랜 기간 노하우를 통해 완성된 스타일처럼 보인다. 예의 언급처럼 스톱모션 이미지의 이중적 의미에서 보이는 공간들은 비단 세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품의 쇼트구성도 마찬가지인데, 욕실 내부를 그린 두 번째 시퀀스 초반 역시 상당히 실사 영화적이다.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쇼트들 사이로 녹아들어 있는 공간의 인서트들은 이 작품의 독특한 이미지만큼이나 신선하면서도 우아하다. 특히 목욕탕 내부에 스며든 수증기와 빛의 궤적을 더듬는 장면들은 연출자가 가지고 있는 실제 빛과 광선에 대한 이해와 재능을 놀랍도록 실감하게 만든다. 다시 작품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목욕탕에 찾아온 남성의 이야기이다. 공중목욕탕의 ‘남탕’ 하면 흔히 떠오르는 키워드는 보통 ‘문신남’, ‘때’, ‘아버지’, ’바나나우유’ 정도가 되는데, 이 작품도 오래되고 홀로 남겨진 듯한 공중목욕탕의 이미지 속에서 중년이 된 남성을 통해 ‘아버지’를 소환한다. 작품의 두 번째 시퀀스인 백일몽 장면은 이러한 아버지를 호명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작품의 초반과 후반에 언급되는 팽이는 시간과 엮인 과거로의 상징적 배치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작품에서 과거의 한 장소를 소환하는 과정이다. 감독은 과거의 이미지(등이 붉게 타오른 아버지)를 소환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물질적인 필름이미지를 동시에 불러들인다. 영화관에서 셀룰로이드 필름이 타들어 가는 듯한 이미지부터 필름 스트립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속도감 있는 색면들의 병치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자유롭게 충돌시키고 있다. 마치 렌 라이(Len Lye)의 작업처럼 보이는 느닷없는 이미지들은 스톱모션이라는 이미지, 그리고 프로젝션처럼 보이는 배경 이미지들과 함께 병치되면서 물질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감독의 이러한 이미지 병치는 스톱모션 이미지라는 이중적 양식에 절묘하게 들어맞으면서도 동시에 표현주의 작품의 일부처럼 느껴지게 만들며 스스로의 작가성을 드러내고 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감독은 작품 속에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상당히 다양한 방법을 접목하고 있는 듯한데, 투명한 유리를 카메라 앞에 두고 소프트렌즈 효과를 만들기도 하며, 미디어 파사드와 같은 프로젝션 기술을 사용하는가 하면, 후반 과정을 통해 작은 이미지의 변형을 주기도 한다. 가장 원형적인 빛의 이미지와 그것에 대한 이해력, 세트와 캐릭터에 주어진 색채와 유려한 미장센, 그리고 자유로운 이미지들의 인서트와 텔롭(작품의 이미지 위에 얹히는 타이포그래피) 등은 그가 가진 작품의 색을 풍부하게 만들어 나간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은 복제와 움직임이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들의 병치를 통해 완성하는 동시대적인 이미지인 ‘합성’이미지에 가깝다. 또는 스톱모션이라는 사실적인 세트에 느닷없이 ‘낯설게’ 접근해 들어오는 캐릭터와 이미지들은 결국 이 작품을 환상적 리얼리즘에 가깝게 만들어 버렸다. 스톱모션이라는 경계 사실 스톱모션은 가장 오래된 애니메이션의 제작기법이다. 말하자면 초기 실사영화의 기법 연구 과정에서 등장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CG와 디지털 이미지의 등장으로 인해 그 자취를 찾기가 어려워졌지만, 그럼에도 스톱모션은 많은 부분에서 아직까지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면서 그 나름의 방식을 발전시켜왔다. 때로는 실사 영화적 기법으로부터 때로는 전통적 애니메이션 기법, 그리고 디지털 기술합성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테크놀로지와 전통적 ‘손(手)’의 기법을 여전히 주요한 가치로 삼으면서 말이다. 물론 김강민 감독의 본 작품도 이러한 경계 이상에 위치한 놀라운 작품이다.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의 향연 또는 병치는 지면상 언급하지 못한 다른 다양한 미학적 성과들과 함께 스톱모션이라는 이미지의 또 다른 경계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그의 후속작이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 38-39°C > 전편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rRS1yhIhEHQ < 38-39°C > 메이킹 영상: https://vimeo.com/26085766 차기작 < 사슴꽃 > 트레일러: https://www.youtube.com/watch?v=MfX9BE8BTB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