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행정 - 김동호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김동호
© 코리아씨네마 똠얌꿍, 슌사쿠, 国, 國, 纳, 陆海铃, 宍倉紗弥, 髙橋, 﨑, 𠮷野, 辻, 齋藤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은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이자 “사회적 아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인 베스트셀러” [1] 『꼬방동네 사람들』(이동철, 1981)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개봉 당시 “갖가지 사연을 안고 모여 사는 판자촌 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감동으로 그려낸 작품”이라는 언론의 호평을 받았으나 [2] 실제로 이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에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존재했다. “제작 신고 때부터 우여곡절을 겪고 10개월 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3] 라거나 ‘신고 접수 후 <꼬방동네 사람들>의 경우는 1백 21일 만에 수리 통보를 받아 제작에 나서게 됐다’ [4] 는 기사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980년대 초반 ‘사회적 아픔’을 다루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대 상황 및 검열 제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모든 제작사는 시나리오와 영화 필름을 검열받아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그렇다면 검열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신고 과정에서 가장 지적을 많이 받는 부분이 정사 장면, 외설, 비속·저속한 대사 등으로 사회적으로 말썽이 일고 있는 에로티시즘 영화가 크게 브레이크에 걸리고 있다’ [5] 는 기사는 당시 이루어지던 검열 항목을 알려 준다. 특히 에로티시즘은 주요 검열 대상이었다. 그런데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사회적 아픔과 가난한 사람들을 재현하는 데 중심을 둔 ‘사회성’ 짙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에로티시즘 영화와는 결이 달랐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영화는 더욱 시련을 겪어야 했다. ‘사회성 짙은 영화’에 대해 시대는 매우 민감했고 영화는 결국 수정되어야 했다. 이는 시대가 승인하고 요청한 영화, 그리고 대중의 삶을 들여다보는 거울로서 이 작품이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격동의 시대, 대중 영화가 직면한 시련 이 영화의 제작 시기는 1980년대 초반 사회적 격동의 시기와 겹친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정권 시대가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 5.18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었다. 전두환 정권이 집권 초기 언론사 통폐합을 단행한 것이나 문화 분야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강화하고 저항운동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것은 이러한 차원에서였다. 1984년 5차 영화법 개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한국영화와 영화산업 또한 이런 소용돌이 안에 있었다. [6] 이러한 상황에서 <꼬방동네 사람들>이 ‘사회 현실’을 다룬다는 게 문화 검열 주체들에게 달가울 리 없었다. 특히 원작인 이동철의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은 “청계천변으로 흐르는 썩은 오물, 똥물, 악취 나는 시궁창을 코앞에 둔 채 즐비하게 늘어선 판자촌 동네” [7] 를 배경으로 성매매 여성과 소매치기, 구두닦이 등의 온갖 도시 하층민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산업화 시기 도시 하층민이 그 존재 자체로 불안과 오염의 가능성을 내포한 ‘위협’으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정주하는 변두리가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에서 배제된 불안정, 궁핍, 무질서, 비도덕, 비윤리적인 타락한 성벽처럼 묘사되었다는 점 [8] 을 감안할 때,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재현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전두환 정권 수립 초기 사회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 © 코리아씨네마 이러한 점은 영화의 검열서류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원래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원작 소설 속 ‘검은 장갑’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검은 장갑’ 명숙을 주인공으로 삼아 주요 인물들의 삶을 충실하게 재현했다. 그러나 문화공보부 산하 공연윤리위원회는 “전체적으로 서민 생활을 절망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도박 등 사회악을 합리화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공서 양속과 사회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민층 묘사에 있어 가급적 훈훈한 인정미를 부각시키고 착한 의지로 살아가는 모습에 역점을 둠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구체적으로는 “비속한 대사가 많고 가정(사회) 윤리 저해 장면, 소매치기 장면, 도박 장면, 사기 장면” 등이 문제가 되었다. [9] 결국 시나리오는 대폭 개작되었다. 이후 신고한 시나리오는 “공서 양속과 사회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부분은 전체적으로 삭제”했다. 대신 “비록 고난과 역경의 현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결코 불의에 타협치 않고 밝은 내일을 향해 참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그들의 착한 의지와 인정이 넘치는 삶의 현장을 영상으로 옮김으로써 원작 소설이 주는 어두운 이미지를 밝게 승화시켜 사회 계몽적인 작품을 제작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10] <꼬방동네 사람들> 심의서류 “극영화 제작신고에 대한 회신” 중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공연윤리위원회는 “전체적으로 서민 생활의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으며 가정 윤리(순결성)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라고 판단, 또다시 제작사에 개작을 요구했다. 문제 장면으로 제시된 “가정윤리(순결성) 저해 장면, 청소년의 건전한 생활 태도 함양 저해 장면, 사회 비리 고발 장면이 전체 장면 126씬 중 29%인 36씬”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11] 대대적인 개작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제작사는 “시나리오를 전체적으로 재검토, 대폭 순화하여 계도적인 작품으로 개작”해야 했다. 이로써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서민 생활의 부정적인 장면 묘사를 절제하고 가정 윤리를 저해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는 한편” 몇 가지 문제 장면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제작을 허가받기에 이른다. [12] 요컨대 시나리오 개작 과정은, 비교적 소설 원작에 충실했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계몽’과 ‘사회 정화’라는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도록 바꾸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계몽의 내용은 영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현되었는가. 1980년대가 요청한 서민 가족의 삶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의 시나리오 개작과 영화 제작 과정에서 변화된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빈민촌을 배경으로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의 삶이 대거 축소되는 대신 검은 장갑 명숙( 김보연 )과 그녀의 전남편이자 아들 준일( 이재진 )의 아버지인 주석( 안성기 ), 그리고 현 남편이자 살인자인 태섭( 김희라 )이 주축이 된 가족 이야기가 극의 중심을 차지한다. ‘배감독이 당초 원작이 지닌 강한 사회성과 패기의 메시지를 그대로 영화화하려 했으나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네 차례나 개작 지시를 받아 다소 감상적으로 굴절된 느낌’ [13] 이라고 평가한 것도 가족 이야기가 애정 관계와 얽히면서 영화 속에 두드러지게 재현된 점과 관련된다. 둘째,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서는 검은 장갑 명숙이 홀로 주석의 아이와 빈민촌에 남는 걸로 끝난다. 그러나 영화에서 검은 장갑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주석이다. 영화는 주석이 과거 소매치기였던 삶을 청산하고 가족을 책임지는 가부장으로 거듭나도록 한다. 가령, 영화에서 ‘가족 사진’을 고이 간직한 채 명숙과 준일 주변을 맴돌고 “남자한테 가정이란 자기 몸보다 중요한 거야”라고 말하며 명숙에게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거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꼬방동네를 떠나는 명숙과 준일을 자신이 운전하는 택시에 태우는 주석의 모습 등은 소설과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없는 새로운 장면들이다. 이로써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당대 정권이 승인하고 요청했던 서민 가족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 코리아씨네마 실제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로 이어지는 근대화 과정에서 남성은 가족을 이끄는 권위의 상징이자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산업 역군이었다. 주석은 그러한 현실 가부장의 문화적 판본이었다. 특히 아버지 없이 방황하는 준일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유난히 강조되는 이유는 주석의 윤리적 책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가부장으로서 주석에게는 준일을 훈육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태섭이 살인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자수하기 위해 떠나는 것도 주석 가족의 삶이 사회적 안정과 질서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이로써 영화는 1980년대 사회 안정과 근대화를 겨냥하는 계몽적인 가족 영화로서 대중과 만나게 된다. 한편, 당시 이루어진 문화 검열 과정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 있다. 바로 영화 속 빈민촌과 아파트의 풍경이다. 사실상 공간이 영화 속에서 가족 이야기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 원작에서 드러나듯이 도시의 변두리 빈민촌은 더 이상 밀려날 데가 없는 도시 서민들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장소였다. 소설만큼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도 서민들이 살아가는 변두리 빈민촌의 풍경은, 가까운 거리에 들어서 있는 아파트의 모습과 대비되어 주변화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시각화했다. 나아가 ‘이러한 대비적 장면은 그 자체로서 이미 도시 공간의 구조와 그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 구조의 모순을 드러냈다.’ [14] 그런데 당시 아파트가 근대화의 상징이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주석을 중심으로 새롭게 꾸려질 가족에게 멀리 보이는 아파트는 어쩌면 그들이 당도할 미래의 안락한 가족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아파트’와 ‘빈민촌’의 선명한 대비는 양가적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작가 황석영은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의 ‘발문’에서 이 작품을 두고 작가 이동철이 스스로 판자촌에서 살아오는 동안 겪고 본 자기 동네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게 엮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15] 당대 삶의 현장성을 획득했던 소설은 출판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영화는 달랐다. 배창호 감독의 야심에 찬 데뷔작은 사회 안정에 도움이 안 되는 문화 생산물로 여겨졌다. 영화는 집단 대중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체였던 만큼 다른 문화예술에 비해 엄격한 관리가 필요했다. 따라서 당대 문화 계몽은 현실의 모순이나 불합리를 드러내기보다는, 일반 대중이 공감할 만한 서민 가족의 삶을 통해 근대화의 욕망을 환기하는 것에 가까웠다. 게다가 영화 속 메시지는 근대화의 긴 터널을 통과하던 대중의 욕망과도 공명하는 데가 있었다. 따라서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0년대 근대화를 위해 문화적 에너지를 공급했던 영화의 역할과 대중 욕망의 양상, 그리고 문화 제도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코리아씨네마 *** [1] “사회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인 베스트셀러 현암사가 이 시대의 양심에 호소하는 세 권의의 장편소설!”, 《경향신문》, 1981. 9. 28. [2] “새로운 메시지 담은 3편의 영화”, 《동아일보》, 1982. 7. 23. [3] “<꼬방동네 사람들> 제작 완료 기구한 운명 헤치는 여인 그려”, 《경향신문》, 1982. 7. 15. [4] “제작자협 당국 영진공 불황 타개 간담회 ‘영화 제작 행정 규제 융통성을...’”, 《경향신문》, 1982. 5. 3. [5] 위의 글. [6] 김동호 외, 『한국영화 정책사』, 나나출판, 2005, 258~259쪽. [7] 이동철, 『꼬방동네 사람들』, 현암사, 1981, 7쪽. [8] 김원,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 현실문화, 2011, 107쪽. [9]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0]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1]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2]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3] “새로운 메시지 담은 3편의 영화”, 《동아일보》, 1982. 7. 23. [14] 정태수, 「1980년대 한국 영화에서의 생산의 공간(1980-1987)」,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 공간Ⅰ(1980-1987)』, 박이정, 2018, 28쪽. [15] 이동철, 앞의 책, 372쪽. 한영현(세명대학교 교수, 영화연구자) l 한국영화사에 관심을 가지고 주로 전후 영화 작품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과 학술이사, 《현대영화연구》 편집위원, 영상문화지평연구소 편집위원장 등 역임. 『냉전의 시대, 유랑하는 타자들: 한국 영화에 나타난 타자성의 문화 정치』(2022), 「생명⋅기술⋅공간의 삼중주: 봉준호 감독 <미키17>(2025)을 중심으로」 등 집필.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공간』(2018) 등 공동 집필.
올해는 유독 배우들의 육체가 활동하거나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이 그 영화를 지정한다는 느낌을 받은 영화들이 많았다. 배우의 몸이 빚어내는 고요하거나 육중한 리듬, 마찰하거나 돌파하는 신체가 지녔던 파열음의 강도, 장르와 무관하게 육신의 움직임에서 비롯된 우스꽝스럽거나 숭고한 제스처가 우리를 압도하는 장면을 통해 영화들이 지금 무엇에 집중하고 있으며 결국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를 찾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가령 호아킨 피닉스의 둔탁한 어깨가 거친 호흡을 따라 오르내린다. 폭력으로 점철된 유년 시절과 떨쳐버릴 수 없는 전장의 기억, 죽음의 공포는 온몸에 난 흉터에 새겨졌고, 욱신거리는 어깨를 감싸고 앉아 있는 그의 등은 고통을 즉자적으로 지시한다. < 너는 여기에 없었다 >(2017)는 트라우마를 짊어진 피닉스의 육체가 매번 스크린이라는 면에 부딪히면서 우리를 향해 밀고 나오는 과정으로 보인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사뿐한 발걸음과 우아한 손짓은 공기보다 가벼워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유령처럼 집안을 부유한다. 그가 걷거나 앉는 섬세하고 신경질적인 동작에 이어 병상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다가 급기야 여인의 무르팍에 엎드리는 무력함으로의 이행은 한 사람의 삶이 사랑과 집착, 광기와 허무로 인해 허물어지는 순간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 팬텀 스레드 >(2017)는 맹렬하게 달리는 자동차의 가속도로 인해 흔들리고 팽창하는 가시적인 세계와 스크린에서 서서히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는 쇠약한 몸짓의 대비를 통해 지독한 사랑의 파멸을 목도한다. 노래는 기막히게 잘 부르지만 잔악하고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카우보이는 영혼이 되어서도 노래를 부르며 하늘로 올라가 프레임 안을 떠나지 못하고, 사지가 절단되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청년의 신체는 아름다운 낭독 솜씨에도 불구하고 닭보다 못한 효율성 때문에 폐기처분된다. 온갖 풍파를 겪은 노인은 처진 뱃살과 늘어진 근육을 동원해서 끈덕지게 금광을 파헤친다. 땅을 파는 행위만으로 고단한 운명을 넘어서는 불멸의 순간이 제시되고, 유령마차의 탑승객과 같은 인물들이 안개 자욱한 집으로 들어서면 그들의 육체 또한 폐쇄된다. < 카우보이의 노래 >는 노래를 하고 사막을 횡단하고 이야기를 들을 사람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서부라는 장소보다 그곳에 머무는 다양한 신체들이 몰두하는 행동으로 인해 몹시 분주하고 재미나면서도 적막하고, 쓸쓸하면서도 장엄하다. 당당한 걸음으로 활보하는 톰 행크스와 머뭇거리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메릴 스트립의 보폭이 같아지던 순간은 < 더 포스트 >(2017)에서 거대한 인쇄소로 들어오는 빛, 신문이 생산되는 과정, 정렬된 활자판과 문장으로 조합하는 행위, 그것을 가능케 하는 숙련공들의 빈틈없는 노동과 마주하는 장면이다. < 풀잎들 >(2017)에서 카페를 들어서고 나가는 배우들의 걸음걸이와 느긋한 정도, 골목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 쪼그리고 앉아 대야에 심긴 잎사귀를 바라보는 각자 다른 웅크림의 정도와 몸의 기울기는 끊임없이 말을 이어가고 엿듣고 기록하고 상상하는 공간에 지금, 이곳의 애처롭고도 스산한 삶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다큐멘터리의 카메라 앞에 선 육신은 시간의 흐름 안에 놓인 존재임을 매번 일깨워준다.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공간을 기억하는 행위는 타인의 말을 듣고 카메라에 담아내는 끈기와 인내, 마을과 사람들의 얼굴을 찾아다니면서 함께 걷는 발걸음, 혼령을 달래기 위해 헤매는 몸짓들이 된다. 왕빙의 < 사령혼 >(2018)에서 감동적인 순간은 3부에 등장한다. 노인들이 앉아서 지난 삶을 증언하는 데 대부분을 할애한 이 영화에서 한 노인이 자리를 벗어나 집 안을 돌아다닐 때 꼿꼿한 노인들의 자세와 말이 흐트러지게 된다. 놀라울 정도의 기억력이나 죽음 직전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의 시간과 무관한 것처럼, 어쩔 줄 모르는 노인의 서성거림으로 인해 <사령혼>은 진혼에 멈추지 않게 된다. 원한조차 비켜 나갈 것처럼 음산하고 무시무시한 땅, 수습되지 못한 채 뒹굴고 있는 인골보다 서슬 퍼런 것은 증언자가 누구이건 동일한 경험과 기억으로 육화된 증언의 내용이다. 흐트러짐 없이 카메라를 향해 앉아 있던 그들이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엔 어김없이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으로 변해있거나 사망했다는 자막이 등장할 때, 우리는 그들의 청청하던 눈빛과 품위를 잃지 않은 자세를 떠올리게 된다. 이 모든 영화들이 각별하지만, < 녹차의 중력 >(2018)과 < 백두 번째 구름 >(2018)에서 발견한 임권택 의 손과 <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2017)에 등장하는 바르다의 발은 낯설기 때문에 끈질기게 떠오르는 신체기관이 되어버렸다. 백 두 편의 영화를 만든 임권택의 손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과 바르다의 손은 그녀의 영화에 종종 등장했지만, 발이 스크린을 채운 것은 처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그녀의 발 사진과 어떻게 놓아도 불편해 보이는 임권택의 깍지 낀 손을 보면서 노년의 예술가가 창조한 세계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넘어서는 감동을 느낀 것이다. 영화에 입문하게 된 전설적인 계기나 오랜 시간 영화와 더불어 살아가면서 겪었던 체험의 위대함, 명민하고 섬세하거나 과격할 만큼 고집스레 지켜온 연출의 태도와 그들의 손과 발의 활동을 연관 지어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더욱이 바르다는 여전히 카메라를 지닌 채 활동하고, 임권택은 소강상태에 빠진 시간을 견디는 중이라는 사실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녹차의 중력>은 영화감독 임권택에서 출발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임권택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시간을 버텨 내는가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달빛 길어올리기 >(2011)를 마치고 < 화장 >(2015)의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약 4년 남짓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학교에서 강의하고,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김동호 의 < 주리 >(2012) 촬영현장을 찾는 것으로 집약된다. 임권택에게 작용되는 강제성이 이 시간의 핵심이고, <녹차의 중력>은 생산하지 못하는 무위의 시간은 그저 버틸 도리밖에 없음을 체득한 임권택의 제스처와 손, 얼굴을 떠나지 않는다.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시간을 견뎌내는 임권택과 그의 곁에서 그의 모든 것을 찍겠다는 정성일 모두가 무력함이나 조바심을 잊는 사람들처럼 무심하게 제자리를 지킨다. 기차 창에 기댄 임권택의 오랜 잠보다 기차 대합실에서 커피를 만지작거리는 손이나 세례를 받을 때 어정쩡하게 깍지를 낀 손에서 현재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도래하지 않은 영화의 행위를 상상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는 잠에서 이미 영화를 만드는 행위에 닿아 있을지 모르고,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장의 모습을 그의 손을 통해 불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의 활동은 몇 신에서 두드러지는데, 첫 번째가 녹차를 대접하기 위한 행동이고 둘째가 세례를 받는 장면이다. <녹차의 중력>은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에서 시작한다. 노래 ‘봉선화’가 흘러나오는 프롤로그에 이어 등장하는 것은 녹차를 대접하는 임권택의 모습이다. 그의 손은 어김없이 떨리고 있고, 그 때문에 달그락거리는 다기의 소리는 녹차를 덜어내거나 물 따르는 소리, 주전자를 탁자에 놓는 소리보다 강렬하게 들린다. 그 공간은 소리의 움직임으로 채워진다. 떨리는 손으로 인한 소리들과 고요함의 이어짐이 곧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가 많지 않은 임권택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이자, 이 영화가 처음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임권택이란 사람의 시간이다. 특히 세례식은 고단할 정도로 반복되는 제식 행위(앉고 일어서고, 같은 구절을 반복적으로 낭송하고, 줄지어 서고, 감사를 표하고, 인사한다.)에 피곤함을 느꼈을 법한 임권택의 무심한 표정보다 가지런히 손을 모으지 못한 그의 구부정한 손가락 마디가 먼저 눈에 띈다. 또 그보다 연배가 낮은 대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는 행위나 영성체를 받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서 떨리는 손을 가까스로 잠재우고 있는 그의 우물쭈물한 자세가 그의 시간을 대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아내가 권유했을 것 같은 예식은 모종의 강제성을 띠고 있지만, 그는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을 애써 숨기는 것 같다. 예식 내내 손가락을 풀면 큰일 나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면서도 깍지를 끼고 있던 그의 손에 비해 세례를 받은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뒷짐을 진 그의 손이 오히려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정성일 은 두 손이 행하는 동작을 보여줌으로써 평소 같으면 집과 영화 촬영장 외의 장소를 찾을 일 없는 그의 예외적인 순간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마지막으로 <주리> 현장을 찾은 임권택의 모습이다. 이 현장에는 감독이 넘쳐나도록 많고 카메라도 많다. 연기하는 배우나 조감독도 감독들이고, 김형구의 카메라와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카메라, 정성일의 카메라까지 현장을 기록하는 중이다. 하지만 임권택의 카메라와 그의 배우들과 그의 영화는 여기에 없다. 분주하고 복잡한 현장에서 연기를 한 후, 모니터를 보고 있는 김동호의 뒤편으로 임권택이 앉아 있다. 그는 상념에 잠겨 있거나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저 거기 앉아 영화를 찍고 있는 다른 감독의 현장을 견디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의 눈에 맺혀 있는 보이지 않는 영화를 가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임권택만 혼자 동떨어진 존재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그의 손마저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프레임 바깥에 있을 손을 상상하는 우리가 더 숙연하고 비통한 기분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에게 바르다의 손은 익숙하다. < 낭트의 자코 >(1991)에서 자크 드미의 등을 따라 움직이거나 <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2000)에서 감자를 줍고 거대한 그림의 끝을 잡고 있거나 카메라를 들고 있는 그녀의 손을 봤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이 직접 등장하지 않더라도 야위고 검버섯으로 덮인 드미의 손을 쓸어내리거나 옅어져 가는 눈동자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무성한 수풀과 같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카메라의 움직임에서 그녀의 손길을 가늠할 수 있다. <아녜스의 해변>(2008)에서 바닷가를 걷거나 뒷걸음으로 퐁데자르를 지나가는 것뿐 아니라 <다게레오 타입>(1976), <벽, 벽들>(1981) 등을 통해 자신이 살던 거리부터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이르는 장소를 무수히 걸었던 그녀의 행위를 떠올릴 수 있다. 그녀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부터 쿠바, 이란, 미국을 오가는 동안 카메라에 담긴 풍경과 사람들의 얼굴과 행동들을 기록했고, 이 영화들은 타인을 만나기 위해 어디든 이동하는 그녀의 생생한 표정과 경쾌한 걸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도 이와 유사한 궤적을 보이지만, 몇 가지에서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녀가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진 것과 멈추어 서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녀가 걷는 행동이 조금씩 줄어든 만큼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는 늘어가고, 동행자도 생겨났다. 사진작가 JR과 포토트럭을 타고 마을을 방문하고 주민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거대한 사진으로 집의 외벽을 덮는 과정을 지켜본다. 또 JR은 바르다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한다. 휠체어를 타고 루브르 미술관을 활보하면서 그녀가 사랑하는 그림들을 보고 스위스에 살고 있는 고다르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한다. 활기와 웃음과 사소하고도 재미있는 수다로 가득 찬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처음엔 낯설다가 둘의 대화에 익숙해질 무렵, 바르다가 점점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문득 떠오른다. 그녀는 여전히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카메라를 통해 누군가를 기억하거나 자신의 삶을 믿고 있는 타인들의 표정을 지켜본다. 하지만 그녀의 걸음은 더욱더 느려질 것이고, 계단을 다 오르지 못하고 멈춰 서게 될 것이다. JR은 그녀의 발과 강제로 확장된 눈의 사진을 기차에 붙임으로써 그녀의 온 생애에 깃든 행동을 기념하는 것 같다. 동공이 확장된 눈과 동그란 발가락은 자유롭고 거침없이 행했던 걸음과 봄과 들음을 위한 멈춤의 순간에 새겨진 오랜 시간의 흔적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수술을 위해 찍은 눈은 바르다가 볼 수 없는 순간이고, 그녀의 맨발도 스스로 찍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모습이기 때문에 JR의 적극적인 행위가 개입되어야 한다. 게다가 거대한 크기로 인해 거대한 형상은 움직이는 기념비가 된다. 즉 JR이 바르다와 함께 하는 순간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이자, 선로를 따라 프랑스 곳곳을 활보할 발과 마주칠 사람들에게나, 영화를 통해 기차와 더불어 이동하는 바르다를 마주할 우리들에게도 각인될 표지가 될 것이다.
나는 < 달빛 길어 올리기 >가 나의 백한 번째 영화가 아니라 새롭게 데뷔하는 신인감독의 첫 번째 작품으로 불리고 싶습니다. 지난 백 편의 작품에서 도망쳐 새로운 느낌의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임권택 은 여러 자리에서 말했다. 두 번째 데뷔작. 다시 시작한다는 말. 영화사에는 두 번째 데뷔작의 역사가 있다. 이를테면 1950년, 로베르 브레송의 < 시골사제의 일기 >. 1978년, 고다르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인생)>. 1979년,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 카메라 광 >. 1996년, 후 샤오시엔의 < 남국재견 >. 이들은 물론 각자 서로 다른 이유에서 이 영화들을 자신의 두 번째 데뷔작이라고 불렀다. 나는 < 달빛 길어 올리기 >를 보면서 그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두 번째 시작한다는 말. 이제까지의 영화를 제로라고 선언하는 것. 왜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혹은 생겨난 것일까. 말하자면 결단. 그런데 어떤 결단? 서로 다른 판본의 대답. 그는 무엇을 극복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무엇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당신은 이 두 가지 질문이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무언가 중단되어야만 했다. 두 개의 무엇. 나는 < 달빛 길어 올리기 > 앞에서 문득 멈추었다. 임권택은 무엇이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영화 안에서 중단시켜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중단되지 않았다. 그 자신이 한 말. 그래서 백 편의 영화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표현. 도망치다. 왜 버린다고 말하지 않고 도망친다고 말한 것일까. 임권택은 완전히 포위되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백 편의 영화라는 병풍. 나는 거슬러 올라가면서 셈하기 시작했다. (백 번째 영화) < 천년학 >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아흔아홉 번째 영화) < 하류인생 >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 (첫 번째 영화)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나는 백 편의 영화 안에서 한 편씩, 한 편씩 차례로 그 안에서 도망쳐야 한다, 는 말을 생각해볼 것이다. 첫 번째 영화를 만들고 나면 두 번째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 말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시작된 것이라는 뜻이다. n + 1. 언제나 이미 시작된 시작. 이때 도망치면서 (두 번째로 만든) 첫 번째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말하자면 n - 1 이라고 불러볼 수는 없는 것일까. 거기서 멈추기. < 달빛 길어 올리기 >에서 무엇을 빼고 싶었던 것일까. 이 영화에 대해서 모두들 무엇을 새로 더했는지를 셈하였다. 나는 반대로 그가 일백 편의 영화로부터 도망친 다음, 혹은 도망치기 위해서 시도한 뺄셈을 생각해보고 싶다. 하지만 이때 뺄셈을 시도하게 되면 우리는 다소 난처한 논제와 만나게 된다. 거기서 빼야 하는 것은 이제까지 우리들이 임권택 이라고 불러온 영화적인 방법들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것만을 우리는 뺄셈에서 셈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화에서 세계의 일부를 뺄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계는 언제나 영화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셈을 시도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이제까지 만들어진 임권택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반(反) 임권택적인 영화가 된다는 사실이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이제까지 임권택이 만든 일백편의 영화와 싸우(기 시작하)는 (첫 번째) 영화이다. 혹은 외면하려는 영화이다. 이때 역설적으로 이 영화는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임권택 영화냐고 근본적으로 반문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나는 <달빛 길어 올리기>가 지나칠 정도로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어서 두렵게 느껴진다. 그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담은 영화.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긴장은 임권택 영화 안의 내재적인 기호들 사이의 네트워크 안에서만 설명되어야 한다. 물론 이 사실을 임권택이 모를 리가 없다. 임권택이라는 일백 칸의 방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집. 그 집을 등 뒤로 하고 다시 그 집의 주인이 ‘도망치듯이’ 떠나기로 결심을 했을 때, 누구보다 그 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가 거기서 나가려고 할 때, 그 집 문을 걸어 잠그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임권택 그 자신일 것이다. 두 명의 임권택. 아니, 백 명의 임권택(들)과 한 명의 임권택.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임권택(들)과 거기서 도망치고 있는 임권택. 그런데 그 집에서 어느 문을 열어야 거기서 나갈 수 있을까. 그 문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무거운 빗장들. 열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것이 정말 문일까. 그런 다음 마침내 이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문을 열고 문턱을 넘자 거기서 기다리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상한 시작. < 달빛 길어 올리기 >의 첫 장면은 “이 영화는 전주시에서 추진 중인 조선왕조실록 복본화(複本化)사업을 담당했던 공무원들의 실화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라는 자막이다. 두 가지 사실. 첫째, 이 사업은 전주시와 한국고전문화 연구원이 2008년에 시작해서 (영화가 이미 2011년 3월 17일 개봉을 끝난 다음인) 2012년 7월에 완료하였다. 이는 태종에서 명종까지 13대에 이르는 조선 전기 왕조실록을 제작 당시의 원본에 따라 재현한 것으로 806권 614책 5만 5130쪽에 이르는 작업이었다. 이를 위해 15억 원의 국고를 지원했으며 이 작업을 위해서 전주를 비롯하여 전국 24개 업체에서 공급된 전통 한지가 3만 8,000장이었다. (조선일보 2012년 8월 29일자 김창곤 기자)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이 사업의 진행 과정 중에 기획된 다음 전주영화제가 제작하였다. 좀 더 정확하게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영화 안의 대사에 따르면) 2008년 7월 15일이다. 그러니까 전주시가 막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을 시작했을 때 시작한 다음 영화는 그 완성을 기다리지 않고 그냥 끝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본화 사업의 성공 여부를 이 영화만 보고는 알 수가 없다. 종종 이 영화에 비판적인 글들은 < 달빛 길어 올리기 >를 전주시의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에 관한 정책홍보 영화라고 비평을 하지만 정작 이 영화는 그 사업에 별 관심이 없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함께 시작한 다음 그냥 중간에 끝나는 영화이다. 둘째, 첫 자막이 끝난 다음 첫 장면은 전주시청 강당 회의실에서 전주 시장이 새로운 업무를 맡은 직원들에게 인사발령 임용장을 나눠주는 데서 시작한다. 청소과에서 근무하던 7급 공무원 한필용 주사( 박중훈 )는 이날 한 스타일 한지과로 새로 배속된다. 그런 다음 이 영화는 내내 한필용을 따라 진행된다. 아니, 한필용이 등장하지 않는 씬은 없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카메라로서의 한필용. 이야기의 동선으로서의 한필용. 이때 처음에는 이 첫 씬을 무심코 보았지만 이때 임용장을 나눠주기 위해 화면에 등장한 사람은 송하진 전주시장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권택은 종종 (주연이 아닌) 어떤 인물의 경우 전문적인 연기자를 사용하는 대신 거기에 걸 맞는 이들을 현장에 초대하여 이들에게 그 배역을 맡기곤 하였다. 이를테면 <태백산맥>에서 북한에서 내려온 공산군 장교들을 연기하는 (그 영화 촬영 당시의) 영화담당 기자들. 그러나 여기서 그는 그 자신이자 동시에 그 자신이 아니다. 그 대신 그 자신이 그를 연기한다. 이때 두 말의 차이를 생각해주기 바란다. 송하진 전주시장은 영화에 출연해서 그 자신이 항상 해 오는 업무를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이 행동은 그에게 익숙한 일의 일부이며, 그는 이 장면을 위해서 별다른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 달빛 길어 올리기 >에는 송하진 전주시장 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그 자신을 연기한다. 이 영화에는 세 종류의 연기자가 있다. 하나는 박중훈 , 강수연 , 예지원 , 안병경 처럼 전문적인 연기자들이 영화 속의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한다. 물론 그들은 전문적인 연기자들이다. 두 번째는 아버지 역으로 송길한 시나리오 작가, 한지 수집가로 김동호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한지제작소 사장으로 민병록 전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전주시청 국장으로 장제국 동서대 총장처럼 임권택 의 지인들, 혹은 영화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이들이 자신과 서로 다른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한다. 그들이 아마추어의 연기자들이긴 하지만 종종 자신의 영화에서 그렇게 연기자를 선택하는 건 임권택에게 드문 일이 아니다. “만일 척 보고 믿을만한 얼굴이나 살아온 모양새가 나지만 연기가 안 되는 사람과 연기는 잘 하지만 도무지 그 일을 했을 것 같지 않은 겉모습을 지닌 연기자 둘 중 하나를 써야 한다면 그 역할이 단역이면 단연 전자지요. 왜냐하면 모양새가 안 나면 그걸 설득시키는데 한참 걸리는 거예요. 그게 영화인 거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내가 말하는 것은 세 번째 경우이다. 우선 기술적인 설명. 이 영화는 전문적인 연기자 박중훈에서 시작하지 않고 전주시장 송하진이 그날의 하루 일과가 진행 중인 생활의 시간 안에서 시작한다. 전주시장 송하진에게 그 일은 항상 하는 일의 일부이고, 그 장소는 그가 생활하는 업무 공간의 일부이다. 부디 아무 것도 더 하지도 말고 덜 하지도 말아 주세요. 그때 박중훈은 그 장소에 들어와서 그 일과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때 그 일과의 매카니즘 안에서 박중훈은 송하진과 연기해야 한다. 좀 더 정확하게 박중훈의 쇼트는 송하진의 쇼트와 서로 마주 붙어야 한다. 자크 오몽의 지적. 위대한 연기자들을 가장 난처하게 만드는 순간은 나무 옆에 서 있을 때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연의 일부인 나무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를 나무와 경쟁해야하기 때문, 이라고 썼다. 이 첫 씬에서 임권택은 송하진의 쇼트와 박중훈의 쇼트를 분리해서 찍은 다음 그 둘을 붙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 둘이 하나의 프레임에 있는 경우는 없다. 프레임 안에서의 공존과 쇼트의 분리라는 문제. 이 방법은 < 달빛 길어 올리기 >에서 일관되게 몇 차례이고 상대를 바꿔가면서 반복되고 있다. 이때 나는 분리라는 문제를 생각하는 대신 두 개의 쇼트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임권택은 수없이 박중훈의 쇼트(라고 여기서 부른 연기자의 쇼트)를 찍어본 연출자이다. 그러나 송하진의 쇼트를 찍어 온 연출자가 아니다. (나는 이것을 손쉽게 다큐멘터리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송하진이라는 실재. 박중훈이라는 드라마. 이때 이 분리에는 송하진이라는 실재 안으로 박중훈이라는 드라마가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견딜 수 없다기보다는 오히려 송하진이라는 실재의 리얼리티를 포기할 수 없다는 어떤 구체적인 충실성에 대한 존중과도 같은 태도를 보게 된다. 이 장소에서 실재와 드라마 사이의 종합을 포기할지언정 그 둘의 어느 쪽도 다른 한쪽에 양보하거나 봉사하는 방식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위한 어떤 위장도 없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 달빛 길어 올리기 >에는 실재와 드라마, 현실의 일부와 허구의 이야기,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야기의 삶을 연기하는 배우들, 그냥 간단하게 세계와 영화 그 둘 사이의 서로가 서로에 대한 침투를 시도하지만 임권택 은 여기서 둘 사이의 어느 쪽도 상처받기를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여기서 상처라는 말을 신중하게 사용했다. 현실이, 실재가, 세계가 상처 난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연기가, 영화가 상처 난다는 말은 두 개의 연결 사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용서할 수 없는 미학적 흔적의 고통이 뒤따른다는 뜻이다. 이때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영화의 어떤 시스템을 건드리는 것일까. 종종 비평은 이 둘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때로 이 둘 사이를 오갈 때 무언가를 위반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그것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약속이 있다. 물론 이때 여기서 그것, 이라고 불리는 수수께끼는 항상 미학적 전쟁터가 되었다. 대부분 우리들은 현실에서 시작해서 영화가 드라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아왔다. 종종 이 과정에서 한쪽은 다른 한 쪽을 위해 봉사하거나 혹은 일부를 잘라 내거나 때로는 변형을 가해야만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쪽은 다른 한쪽에게 어떤 불순물이 되어서 과도한 잉여의 불연속성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임권택에게 많은 경우 그를 둘러싼 세계는 이야기의 풍경이었다. 종종 풍경은 텔레비전을 통해서나 혹은 미장센의 일부로 그 자리를 차지한 다음 슬그머니 이야기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런 다음 인물을 설명하거나 혹은 칭칭 동여매듯이 그의 운명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 다음, 의 연쇄적 사용법. 그런 다음은 여기서 중단된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현실에서 시작해서 드라마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쇼트가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마주하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에게 마주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서로 마주하는 순간. 그 둘을 움직이는 서로 전혀 다른 운동의 기록.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주인공이 작동하는 방식의 이야기와 인물이 작동하는 방식의 세계 사이를 분리시킨 다음 그 둘을 마주보게 만들고 있다. 이때 이 착상의 잔상들이 이제 서로의 쇼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스템을 건드리느냐는 질문이 되어 그 안에서 스스로 창조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하나의 차원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뒤이어 이어지는 씬은 갑자기 이 영화를 원래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자리에로 되돌려 보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세 번째 씬. 늦은 밤. 귀가하는 한필용. 달빛이 떨어지는 골목을 따라서 걸어오면 그 골목이 끝나는 자리에 집이 기다리고 있다. 뇌경색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내 효경(예지원). 한필용의 등 뒤를 따라가면서 달빛이 떨어지는 골목장면은 임권택의 모든 영화중에서도 특별하게 우아한 순간이다. 또한 필용과 효경이 이야기를 나누는 씬은 매우 간결하게 그 두 사람의 지난한 삶을 소개한다. 바람을 핀 필용 때문에 효경은 뇌경색으로 고생하게 되었고, 게다가 아내 효경이 한지 장인 집안사람이라 시댁으로부터 천대를 받았으며, 그 아내가 어려서 고향을 잃어버려서 간절하게 한번은 그곳에 가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쓰러진 아내. 되찾아야하는 고향. 이제 이 영화가 나아가야 할 운동의 방향은 이미 여기서 결정된 셈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경제성에도 불구하고 임권택은 이 장면을 매우 고전적으로 연출하였다. 무엇보다도 박중훈과 예지원은 하나의 프레임 안에 대부분 공존하고 있으며, 그 두 사람의 쇼트는 독립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롱 테이크로 멈춰 선 카메라 앞에서 두 사람의 동선이 딥 포커스 안에서 이어지거나 아니면 두 개의 쇼트 사이에 위 아래로 분리된 두 사람의 육체의 일부가 중첩된다. 여기서는 이미 앞서 본 송하진의 쇼트와 박중훈의 쇼트가 분리된 것과 완전히 반대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공간. 배우들의 연기. 그 안에 이야기 바깥의 실재는 그 방에 놓인 텔레비전 모니터 안에서 제한적으로 작동된다. 이때 임권택은 한편으로는 필용과 효경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방송물 <조선왕조실록 93년만의 귀환>을 보여준다. 이 방송 영상물의 쇼트가 이야기를 중단시키고 독립적으로 우리에게 조선왕조실록의 역사에 관해서 알려주기 위해 등장하지만 그러나 이 씬 안에서 이 쇼트들은 부분집합이다. 왜냐하면 재빨리 필용의 시점 쇼트가 이 장면들을 씬 안으로 다시 봉합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하진의 쇼트와 박중훈의 쇼트는 두 개의 모델이다. 그들은 각자 자명해보이지만 그러나 그 둘이 하나의 씬 안에 자리하는 순간 갑자기 세계와 이야기 둘 중 어느 쪽이 자명한 것인지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이때 롤랑 바르뜨라면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라고 썼을 것이다. 세계와 영화 사이의 보이지 않는 틈새.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용법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는 인물의 쇼트와 세계의 쇼트 두 가지 방법 사이를 따라 진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다소 과도하게 문학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집으로 들어가면 공존의 고전적인 운동에로 되돌아가고 세상 바깥으로 나오면 두 개의 분리된 쇼트들 사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워진 위험한 범주들 사이의 마주침에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하고 싶다. 이 두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골목길. 여기에 한필용이 세계로부터 자기 집 안으로 돌아가기 위해 달빛이 떨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는 장면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스테디캠으로 이루어진 단 하나의 기나긴 쇼트. 이때 임권택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골목길을 걸어가는 장면 위에 송하진 전주시장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들려주는 (세계로부터의) 청각적 신호를 놓치지 않는다. 그의 등 뒤에 들러붙은 세계. 그런 다음 집 문 안으로 들어오자 그 청각적 신호는 중단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여기에 임권택 은 세 번째 차원을 더한다.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을 한지제작업자들에게 설명하는 장면, 그러니까 영화가 시작하고 22분의 지점, 이 자리에 카메라를 든 다큐멘터리 감독 지원(강수연)이 조수와 함께 나타난다. 갑작스러운 등장. 지원이 나타나면서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두 편의 영화가 된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 그녀가 한지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 달빛 길어 올리기 >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 그러나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원의 다큐멘터리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지 제대로 전체를 보지 못한다. (게다가 이 다큐멘터리 촬영 장면들은 별다른 사건 없이 그로부터 45분후, 그러니까 1시간 10분 정도가 되었을 때, 아직 영화가 40분이 더 남아있는 데도, “촬영 쫑이에요”라며 지원이 필용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물론 그런 다음에 다시 만나기는 하지만...) 임권택은 그녀가 만들고 있는 다큐멘터리를 끌어들여 과도하게 어떤 미학적인 게임을 벌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지원이 등장하면서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그녀의 다큐멘터리와 함께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작업에 매달린 전주시청 공무원과 그 사업에 관련된 사업자들 사이의 이야기처럼 진행되던 이 영화를 갑자기 여기서부터 방향을 틀어서 한지 이야기로 옮겨간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처음 시작과 마지막 끝이 이상할 정도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영화이다. 한 가지 더. 의미심장하게도 그 자리에 모두가 목청을 높이며 서로 사업을 따내기 위해 싸우고 있을 때 진정한 한지 장인은 구석에 앉아 술에 취해 졸고 있지만, 그렇게 슬그머니, 이 장면에서 처음 등장한다. < 달빛 길어 올리기 >의 유일한 장인. 오직 그만이 천년을 견딜 수 있는 한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는 세계 속에서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현실 속의 환상. 그런 인물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혹은 적어도 (이 영화의 자막에 따르면) “공무원들의 실화를 토대로 한 이야기” 바깥에 있는 인물이다. 실재 안의 증후. 그러나 그런 인물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는다면 실망스러운 실재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동시에 등장한 두 인물. 그 둘은 서로 반대 반향에서 나타나서 이 자리에서 마치 교차하듯이 동시에 공존한다. 이때 지원은 영화와 세계 사이에서 영화 쪽을 향해서 우리에게 일정한 거리만큼 물러난 영화의 자리를 계속해서 일깨워주고 있다. 그녀는 영화와 세계 사이의 공백을 채워주기는커녕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통해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거리를 영화 속에서 보여주고 전시하고 있다. 반대로 이 한지 장인은 천년을 가는 종이라는 한지에 대해 품고 있는 내밀한 의심을 역설적으로 긍정하는 표상이다. 세계 속의 조건과 관계로부터 초월적 인물이라는 설정. 그 안에서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것의 긍정. 사실상 < 달빛 길어 올리기 >가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에 관한 영화라면 이 한지 장인은 매우 불합리한 잉여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으로부터 한지에로 전회하면서 갑자기 이야기는 한지에 대한 존재론적 보증과 함께 세계와 이야기 사이의 부조화 사이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교환가치가 필요해진 것이다. 다소 서둘러 이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을 먼저 생각해보자. 이제는 이름조차 사라진 산속 깊은 월곡 마을 폭포를 마주보며 한밤중에 보름달 아래서 한지를 뜰 때 그들 중 누구도 이 종이로 조선왕조실록을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들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 사업이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차라리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 자체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다시 한 번 당신을 환기시키자면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이 진행 중에 (그것도 거의 초기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 영화는 이 세 명을 놓고 한필용이 이들 사이를 오가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이때 이 영화는 무언가 자꾸 이야기 바깥으로 나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자꾸만 중단된다. 그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가? 세계. 그저 놓여진 세계. 아무 것도 더 이상 손 써볼 수 없고, 거기서 어떤 것도 손대서는 안 되는 세계. 사실의 집합. 존재의 현상들. 그 사이에 선 영화라는 기록의 매체. 그러나 임권택 은 눈앞에 있는 존재들과 현상의 특징들을 찍었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를 담는 것이라는 방식으로 사태를 단순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 달빛 길어 올리기 >에는 어떤 곤궁에 처한 입장 같은 것이 반복적으로 느껴진다. 그것이 이상한 것은 영화 전체에서 문제가 생겼다기보다는 매번 새로운 씬과 만날 때마다 그것을 느껴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시적이기는 하지만 세계 속에서 존재론적으로 허약해보이고, 세계는 자명해보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에 그 안에 머물고 있는 인물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는 거리감을 끝내 좁히지 않으면서 서로가 서로의 유기적 관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마치 한 대의 카메라처럼 한필용은 계속해서 이야기와 세계 사이를 오가면서 그들 사이의 동선이 되려고 한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그 안에서 거의 기복을 느껴볼 수 없는 영화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내내 대부분의 모든 것들이 그냥 거기 그 상태 그대로 멈춰 서서 자기의 반경을 넘어서지 않는 정도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이제까지 자기가 해온 삶에 대한 반복. 그 반복 안의 일상. 종종 그 삶을 전시하고 있는 듯한 인물들. 그런 다음 그 상태를 영화가 살짝 건드려보는 방법을 취한다. 지원은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선생님에게 한지란 무엇인가요. 작은 반응들.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진 씬들의 연속. 여기에는 어떤 결정적 행동이나 태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혹은 그 무언가를 설득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영화와 세계 사이의 거리.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필용은 한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고, 그러므로 한지에 다가가기 위해서 그는 한지에 관한 정보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 다음 그 세계를 돌아다닌다. 한지라는 기호. 그를 둘러싼 수 없는 정보들. 반복적인 설명. 그때 임권택 이 발견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이상한 대답. 그는 달빛을 바라본 다음 밤하늘에 휘영청 뜬 보름달을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두 번째 밤 장면. 서울에서 막 사업을 승인받고 집에 돌아온 필용은 기분이 좋아서 아내를 마루에 나와 앉힌 다음 한 가득 물을 담은 세수 대야를 들고 오면서 “달 따왔다”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아내의 발을 씻겨주면서 고등학교 시절 불국사 수학여행을 갔을 때 효경이 써서 필용에게 건네준 이규보의 시를 낭송한다. “산속에 사는 스님, 달빛이 너무 탐나 물을 길러 갔다가 달도 함께 담았네, 절에 돌아와서야 응당 깨달았네, 물을 비우면 달빛도 사라진다는 것을” 이 영화 속의 네 명의 등장인물, 필용과 효경, 지원, 그리고 한지 장인의 유일한 공통점은 그들이 달빛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달빛에 관한 시를 읽은 다음 그걸 건네 준 효경. 이 시를 읽고 “뽕 간 다음” 임신한 그녀와 결혼한 필용. 둘이 함께 차를 타고 갈 때 “달빛도 좋은 데 불을 끄죠” 라고 말하는 사람은 필용이 아니라 지원이다. 그리고 달빛 아래서만 천년 가는 종이를 뜰 수 있다고 배우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 한지 장인. 그 네 사람 이외에는 누구도 달빛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 달은 저 하늘에 뜬 것이며, 달빛은 세계의 구석구석을 비출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그들만이 그것을 바라보고 그런 다음 느껴본다. 그 말뜻은 달빛은 세계가 아니라 이야기의 구석구석만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가장 신기한 것은 필용을 매개로 한 효경과 지원 사이의 공명 현상이다. 이규보의 시를 쓴 사람은, 아주 오래 전, 고등학교 시절, 효경이다. 필용은 지금 그걸 다시 효경 앞에서 낭송한다. 그러나 그 시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한지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을 ‘달빛 길어 올리기’로 정한 사람은 지원이다. 지원은 그 시를 낭송할 때 (영화 안에서조차) 아직 알지도 못한 사람이다. 정확하게는 이 시를 낭송한 씬 바로 다음에 지원과 한지 장인이 등장하는 씬과 우리는 만난다. 그래서 이야기 속의 이 두 사람은 이 시가 불러낸 등장인물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것이 이 두 인물에게 이상하게도 시적인 감흥을 감돌게 만든다.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 이 영화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단어는 월곡(月谷)이다. 나는 이 지명이 전라북도 전주에 실존하는 마을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낸 이름인지를 알지 못한다. (실제로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월곡리가 있다) 그러나 영화 속의 필용의 말에 따르면 “대구 어딘가에 있다고 하는데 거기는 아닌 것 같고”라고 효경에게 말한다. 그는 긴 시간 동안 아내의 잃어버린 고향 월곡을 찾아다녔고 이 장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지명이 이 영화를 자석처럼 이끄는 것은 이 이름이 ‘달빛이 떨어지는 계곡’이라는 뜻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 이 장소는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과 아무 상관이 없는 아내 효경의 개인적인 기억의 지명이었을 뿐이었다. 필용은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아내의 고향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고 말한)다. (하지만 이 고향을 찾으러 다니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월곡은 이야기의 외곽에 자리한 호명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규보의 시를 낭송한 다음 이야기 안으로 두 인물을 불러내고, 그런 다음 느린 속도로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에서 한지에로 전회하면서 갑자기 월곡은 이 모든 인물들을 한 자리로 모으는 그 어떤 매개의 공간으로 조금씩 좌표를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때 이 장소는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라 오로지 한지의 세계 내 존재의 보증을 온당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해진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장소를 성립시키기 위해서 세계를 버리고 오로지 영화 내의 이야기의 세계 안으로 들어와야만 한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장소. 현존재의 세계라는 현상을 버려야만 들어올 수 있는 잃어버린 고향. 말하자면 종종 마술처럼 작동하는 그 어떤 비밀이 담겨있는 말. 자기가 태어난 곳, 장인이었던 효경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살았던 곳. 아주 오래 전 한지 장인에게 종이 뜨는 법을 가르쳤던 사람이 효경의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그 장소에 이르러서야 듣게 된다. 월곡은 <달빛 길어 올리기>가 세계라는 현상과 이야기라는 구조 사이에서 끈질기게 두 개의 씬을 오가면서 반복적으로 겪는 불안 속에서의 영화적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 갑자기 물러나는 장소처럼 보인다. 하여튼 일상적 흐름 바깥으로 나와야만 구할 수 있는 대답. 진정한 한지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나요. 그건 지금 세계 안에서 불가능하답니다. 왜냐하면 천년을 가는 한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헛된 것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그걸 얻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를 버리고 과거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할 거에요. 필용과 지원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거의 같은 말을 반복한다. 네, 맞아요, 그것이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럼 어디에 있나요. 과거의 유산 속에 있습니다. 그저 남겨진 것만 남았을 뿐입니다. 동어반복. 필용은 그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다. 지원은 여기서 자신의 다큐멘터리가 실패했음을 느낀다. 다시 우리는 정신적인 대답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때 임권택은 자신이 쫓아낸 것을 여기서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정보의 세계. 존재의 표면들. 세계는 한지에 대한 질문 앞에서 자기의 수행적 차원이 종료되었음을 알린다. 그리고 거기엔 (천년을 가는) 한지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이야기는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 바깥으로 나올 필요를 느끼게 된다. 필요라는 요청. 그 무언가에게 해야 할 상징적 위임. 세계 속의 누구도 그 위임장을 받을 생각이 없다. 이때 절대적으로 필요해지는 것은 세계와 이야기 사이의 절대적인 분리이다. 그 사이에 생겨난 틈새. 월곡은 정확하게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런 다음 영화는 월곡으로 들어온다. 이때 당신은 이 영화가 다시 월곡에서 나가는 장면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 장면 전체는 두 가지 모두로 읽힐 수 있다. 하나는 이 영화 전체의 에필로그로 읽는 방법이다. 사실상 이 장면은 어떤 목표를 가지지 않은 행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들의 행위는 이 영화 전체의 이야기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1시간 38분 지점에서, 필용과 한지 장인, 그리고 그의 아들과, 금둔사 주지스님이 ‘사라진’ 월곡 마을 깊은 계곡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갈 때 화면 가득히 가로 질러 걸려있는 ‘출입금지’라는 플랫카드는, 물론 여기가 사람들의 손이 잘 미치지 않게 잘 보존된 장소라는 정보의 기능을 하지만, 오히려 더 나아가 세계로부터 떨어져나간, 현재의 시간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불가능의 장소에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미 ‘출입금지’의 영화적 표지판의 신호를 잘 알고 있다. 가장 유명한 예. 오손 웰즈의 < 시민 케인 >의 첫 장면. 혹은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 그들은 여기서 세계로부터의 어떤 간섭도 없이 ‘천년을 가는’ 한지를 만들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런 다음 이 자리에 필용은 차례로 초대한다. 처음에는 아내 효경을, 그런 다음 한지에 대한 다큐멘터리 < 달빛 길어 올리기 >를 만든 지원을 부른다. 지원은 카메라를 들고 이 장소를 찾아온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모두 끝났고, 이미 시사를 마쳤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녀는 “선을 본다”면서 시사를 마치고 필용에게 인사를 한 다음 서둘러 전주를 떠났고, 그런 다음 그녀는 영화에서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을 찍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일까. 물론 가장 따분한 대답은 보충 촬영을 위해서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좀 더 밀고 나가고 싶다. 이 장면 전체는 세계 안에서 마주친 그 모든 한지에 대한 불만족에 대한 대답처럼 진행된다. 필용은 끊임없이 한지 장인에게 질문한다. “정말 여기서 천년가는 종이를 뜰 수 있을까요?” 한지 장인은 대답한다. “여기가 선녀님들이 내려와서 춤을 추었다는 전설의 폭포 계곡이여,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도원경이나 마찬가지여, 이런 데서 천년 종이를 뜨지 어디 가서 천년 종이를 떠”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도원경. 불가능한 장소. 말하자면 환상의 공간. 그냥 단 한 마디로 월곡. 효경은 여기서 잃어버린 자기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가 한지를 만들던 모습을 재현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지원은 진정한 한지를 만드는 장인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자리에 온다. (세계 안의) 불만족에 대한 (이야기의) 만족스러운 대답. 이때 이 장면 전체를 읽는 다른 또 하나의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이 장면을 모두 하나의 꿈으로 읽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꿈이 도피가 아니라 욕망의 실재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좀 더 시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꿈을 유지하기 위해서 꿈 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내부라는 잉여를 보호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세계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여기서 화면 가득히 보여주는, ‘출입금지’는 얼마나 적절한 보호막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 달빛 길어 올리기 >의 마지막 장면을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 다음 이야기 안으로 들어갔을 때 과도하게 초월적인 정신에 몰두함으로써 사로잡히게 된 지나치게 시적인 대답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 장면은 어쩌면 세계 바깥에서 실현된 저승의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낮에 그들은 잠들고 밤에만 일어나서 그들은 천년을 가는 종이를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잠들어버린 낮의 시간. 깨어난 밤의 시간. 여기에는 과거의 시간에서만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슬픔이 감돈다. 지나가버린 시간. 잃어버린 시간. 그 시간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때 어쩔 수 없이 이 장면에서 바로크적인 슬픔을 느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상실한 것은 무엇일까. 거기서 느껴보는 멜랑꼴리.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이 어떤 행동도 완료되지 않은 것이지만(우리는 이 장면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장의 종이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그냥 거기서 영화가 끝난다) 그들의 행위가 완수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그들의 행위가 충만했음을 알게 된다. 밤은 끝나지 않았고, 또 끝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떨어지는 보름달 달빛을 보면서 효경은 이렇게 말한다. 천천히 한 글자씩, 한 문장씩, 마치 시를 읽는 것처럼, 소리 내어 읽으면서 당신께서도 음미하시길. “달빛은 아무리 바라 보아도 눈이 부시지 않아요.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는 친근한 빛으로 조용히 어둠을 밝혀요. 그 고요하고 은근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한지의 품성이 달빛과 너무 닮았어요. 우리의 마음이 순수하고 담담하고 조용해졌을 때 한지와 같은 달빛은 한가득 길어 올려질 거예요. 달빛은 길어 올린다고 해서 길어 올려지는 게 아니에요. 달빛은 그대로 두고 마음으로 그 빛을 보듬을 때 비로소 한가득 길어 올려지는 거예요” (계속) 2010년 118분 칼라 2.35 감독 임권택 제작 전주영화제 각본 임권택 각색 송길한 , 김미영 촬영 김훈광 음악 김수철 미술 주병도 편집 박순덕 박중훈 필용 예지원 효경 강수연 지원 안병경 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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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구술 컬렉션 | 28건 | 2022-08-25 | 2022-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