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의원 「나의 꿈, 나의 길」 출판 기념회
- 제작년도
- 2006
2013년 7월 어느 여름날, 동네(경기도 양평군) 묵집에 들렀다. 두부와 도토리묵을 직접 제조하고 식당도 겸하고 있는데 바로 옆집이어서 술 땡기면 내 집 드나들 듯 들리는 곳이다. 그리고 늘 오는 동네청년(시골은 나이 4~50은 넘어야 청년 소리 듣는다)들을 만난다. 근데 그 날은 못 보던 머리 희끗한 동네청년이 묵집 마당 파라솔 밑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분 역시 같은 동네 주민으로서 이 집 단골이었다는데 같은 동네 살면서 직접 마주친 건 그 날이 처음이었다. 함께 합석한 자리에서 그는 대뜸 나에게 “1월생 아니냐?”며 “12월부터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몇 해 전 신을 영접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지금 아주 강력한 호랑이 신이 내려 나의 미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고 했다. 난 그 사람을 ‘도인’이라고 부른다. 사실 그 때만 해도 앞이 안 보이는 시기였다. 2005년 < 핑크팰리스 >, 2007년 < 작은 여자 큰 여자 그 사이에 낀 남자 > 이후 7년 가까이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2008년 일제고사 갈등으로 해직된 전교조 교사들의 저항과 복직과정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2009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지역에서 또 다른 싸움을 기록하게 됐다. 대한민국 유기농업의 발원지로 알려진, 그래서 김문수 (전)경기도지사가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까지 개최한 팔당 두물머리 유기농지가 4대강 사업에 포함돼 공원과 자전거길 조성을 위한 수용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역의 유기농민들이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나에게 찾아와 4대강 사업으로 농지가 수용당할 위기에 처했다며 이 상황을 대외적으로 알려낼 짤막한 홍보영상을 부탁했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 농민들의 3년 4개월간 끈질긴 저항 끝에 결국은 ‘사회적 합의’를 일궈내면서 본의 아니게 그 전 과정을 함께하게 됐다. 그사이 해직된 전교조 교사들은 복직했고 3년 치 촬영테이프가 고스란히 담긴 박스 옆에 두물머리 저항 350여 시간의 촬영테이프가 또 겹겹이 쌓였다. 두 자녀가 있는 한 가정의 아빠로서 7년 촬영에 매달리며 아내에게 집안 생계를 떠맡긴 심정은 말해 무엇하랴! < 두물머리 >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꼬박 1년을 <두물머리> 편집에 매달렸다. 7년 만에 발표하는 작품인데 반응 없으면 더 이상 영화로 아내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그만큼 절박했고 오랜 시간 편집으로 지쳐 있었을 그 더운 여름날, 그만큼 그 도인의 말 한마디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반갑고 솔깃했다. 난 그간의 < 두물머리 > 작업을 설명했고, 도인은 영화가 반응 있을 것이고 그 영화가 나의 영화작업 기반이 될 테니 앞으로 딴 거 생각하지 말고 영화만 하라고 했다. 실제로 영화는 그해 12월 서울독립영화제서 ‘관객상’을 받고 이후 계속되는 국내영화제 상영과 수상, 세월호 이전까지 활발하게 공동체상영이 이루어지면서 약 5천여 명의 관객이 극장개봉 없이 영화를 봤다. 덕분에 상금과 상영료를 조금 모아 보증금을 마련하면서 양수리 두물머리 인근에 사무실을 얻고 ‘두물머리 픽쳐스’라는 독립영화 제작사까지 차렸다. 토요다큐멘터리 영화학교 영화사 명칭에 지역을 내세운 만큼 지역에 기반해서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경기문화재단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공모지원사업’을 알게 됐고, 공모에 당선돼 지난 한 해 ‘토요 다큐멘터리 영화학교-토닥토닥’를 운영했다. 지역 초, 중등 학생 25명이 5개조 프로젝트팀으로 나누어져서 약 9개월간 다큐제작기초과정을 배우며 작품을 만들고 학생들 손으로 직접 영화제를 개최해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반응이 좋아 지역의 예술가와 학생, 학부모가 만나는 학교 밖 예술교육프로그램으로 정착시켜나갈 계획이다. 내친김에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하는 영화제작스쿨도 차려볼까 한다. < 명령불복종 교사 > 그렇게 지역에서 기반을 잡아갈 즈음, 그간 묵혀 두었던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250여 시간을 다시 내들었다. 숙제였다. 이 숙제를 마치지 않고서는 다음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래전 이야기라 시의성이 너무 떨어진 것 아닌가, 망설이고 있을 때 그 도인이 말했다. 영화가 필요한 상황이 다시 도래할 테니 꼭 제작하라고. 오히려 < 두물머리 >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교조에 대한 정부탄압이 노골화됐고 편집을 서둘러 < 명령불복종 교사 >라는 제목으로 다시 2014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하면서 숙제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더 잘해보라고 ‘심사위원상’을 줬고, 2013년에 폐지됐던 초등 일제고사가 새해 다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여전히 끝내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얼마 전에 다시 만난 도인이 그랬다. “앞으로 좀 바빠지겠네.”
지난해 6월 이후 나의 일상은 밀양과 부산을 오가며 촬영과 교육을 반복하고 있다. 밀양과 부산을 오가기 위해 오른 기차의 느릿한 창밖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낙동강에 넓고 짙게 펼쳐진 녹조와 싸늘하게 공원으로 닦여버린 논과 밭, 아무도 달리지 않는 자전거길,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집터가 쓸쓸히 지나가면 3년 전 그때가 떠오른다. 자신의 삶 터에서 쫓겨난 농부의 절규와 소리 없이 사라져간 모래와 생명들, 밤낮없이 삽질을 하고 모래를 나르는 노동자를 안타깝게 지켜보며 이를 기록에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에 독립영화 감독과 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여 <강, 원래>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12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회를 조직하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강의 현실을 알렸던 2011년. ‘내가 할 일은 마쳤다!’ 착각하며 이후 난 뉴스를 통해 자전거길 개통을 알리는 팡파르를 지켜봤고, ‘보’라 불리는 ‘댐’ 완공 소식을 남 일처럼 전해 들었다. 그러던 2012년 뜨거운 여름 어느 날 고개가 갸웃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4대강 싸움에서 처음으로 농민이 승리했다는 소식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기뻐하며 그들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완성되길 기다렸다. 고은진 감독의 < 팔당 사람들 >은 우리나라 최초로 유기농을 시작한 팔당 지역 농민들의 삶과 4대강 사업 반대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팔당 유기농 단지는 경기도의 자랑거리였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2008년 세계유기농업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유기농의 발상지인 팔당 지역, 양평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 유기농의 중심지역입니다.” 라며 전 세계인에게 자랑하곤 팔당 유기농을 적극 권장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정부의 4대강 정비사업 발표 후 팔당댐 안에서의 유기농이 발암물질을 생산한다며 어떤 형태의 농사도 지어선 안 된다고 180도 입장을 바꾼다. 마른하늘에 곤파스 태풍이 몰려오듯 밭만 일구던 농민들의 삶도 거센 ‘4대강 사업’ 광풍에 마구 흔들린다. 영화는 4대강 사업의 허와 실을 직접적으로 파고들거나, 농민들의 투쟁 과정을 자세하게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유기농지를 만드는 방법과 농사를 대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들어준다. 그 속엔 땅을 함께 일궈나가는 기쁨이, 1년 동안 가꿔온 수확물이 맛없을 때 느끼는 절망이, 계란 껍질 술잔으로 소주를 나눠 먹는 즐거움이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유기농지에서 살아가는 지렁이와 자 벌레의 느릿한 걸음을 지긋이 바라보고,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두물머리의 풍경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4대강 사업으로 갈기갈기 찢기는 공동체와 차마 울지 못하는 분노를 담아내려 노력한다. 어떤 이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20년 넘게 자식처럼 일궈온 땅을 버리고 대체 부지를 찾아 말없이 떠나고, 다른 이는 땅의 가치와 자신의 명분을 지키기 위해 남는다. 떠난 이와 남은 이의 미안함과 서글픔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태풍 곤파스가 훑고 간 자리엔 비닐이 뜯겨있고 쇠살이 쓰러져있다. 농민들은 다시 농사를 짓기 위해 웃음 가득 농을 던지며 힘을 모아 쇠살을 펴 하우스의 골격을 만들고 비닐을 덮는다. 그로부터 4대강 사업 광풍이 농민들의 삶을 헤집고 지난 3년 후, 끝까지 싸움을 이어온 농민들이 하우스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의 대화엔 한숨과 후회가 오가고, 얼굴엔 피곤과 수심이 가득하다. 영화는 논 위에서 달집태우기를 하며 소원을 비는 농민들의 모습에서 시작해 단단한 공원으로 변해버린 두물머리의 풍경으로 맺는다. 이젠 더 이상 달집태우기를 하며 수줍게 웃는 농민도, 그들이 바랐던 삶도, 유기농지에 살던 지렁이와 자 벌레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2012년 여름날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는 무지에 의한 기쁨은 사라졌고 며칠 전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농부의 말이 떠올랐다. “연대하는 이들이 있어 희망이 커졌다. 그만큼 싸움은 길어졌고 우리들의 상처도 깊어졌다. 끝까지 함께 싸워 이길 수 있도록 하자!” 책임 있는 연대! 고은진 감독은 팔당 농민들 곁을 지키며 국책사업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맞선 이들의 삶을 충실히 담아내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농민들처럼 한숨과 후회, 피곤과 수심을 가득하게 만든다. 고은진 감독의 < 팔당 사람들 >은 <강, 원래>프로젝트 이후 4대강 사업을 나 몰라라 했던 나를 돌아보게 했고, 카메라를 들고 밀양에 연대하고 있는 내게 책임 있는 연대가 무엇인지 또 하나의 길을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