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잉걸의 땅
- 감독
- 김영조
- 제작년도
- 2008
올해 이상하게도 영화제 예심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무수한 영화들을 보면서 당연히 한국독립영화의 경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나아가 부산에서 제작되는 영화들과의 차이도 새삼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올해 11월이 되면 열아홉 번째를 맞는 ‘부산독립영화제(이하 부독제)’의 예심만 남아 있다. 부산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영화만으로 경쟁작을 선정할 만큼 많은 영화가 제작되고 있고, 해마다 공모작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제작의 폭이 넓어지는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양적인 증가가 부산영화의 특질로 이어지는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고(기회가 된다면 차근차근 생각해볼 만하다는 사실만 밝힌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중요할지 모를 부독제 예심을 앞둔 지금 부산독립영화의 몇 가지 단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첫째. 영화를 만드는 인력의 층과 경로가 다양해졌다. 1980년대 중반 경성대학교 영화학과의 졸업 작품이 상영된 이후 각 대학에서 제작된 영화들과 시네마테크부산, 영화의전당 아카데미 워크숍을 통해 극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간혹 교육제도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영화를 습득하고 직접 카메라를 든 경우까지 포함하면 상당히 오랜 기간과 편수가 축적된 셈이다. < 파란 입이 달린 얼굴 > ( 김수정 , 2015) 둘째. 독립영화 배급의 주목할 만한 확장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배급과 상영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었고 공동체 상영이나 대안 공간에서의 상영을 시도했었지만 지속성의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었다. 하지만 올해 봄 20대 청년들이 모여서 부산의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영화배급협동조합 ‘시네소파’을 만들었다. 이들은 김영조 감독의 다큐멘터리 <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개봉시켰고 후속작으로 김수정 감독의 < 파란 입이 달린 얼굴 >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제에 소개됨으로 인해 미약하나마 상영의 기회를 갖는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영화가 활동할 수 있는 장으로 확장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셋째. 지금까지 어렴풋이 잡히는 부산영화 고유의 정서와 특징들을 가늠해볼 수 있겠다. 1999년 ‘메이드인부산독립영화제’가 첫선을 보였을 때는 말 그대로 부산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의지가 최우선이었다. 독립영화를 알리려는 열망과 이곳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모으고 기록한다는 뜻도 포함된 첫 영화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이름이 발견되거나 다채로운 생기를 품은 영화들과 만나게 되었다. 16mm 필름에서 출발한 부산독립영화는 디지털 포맷으로 바뀌는 동안 꽤 긴 명단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는 부산영화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흔히 부산영화의 특징을 말할 때 인물들의 관계를 기반으로 한 감수성의 표현이나 삶의 여러 층위 중에서도 유독 부재와 상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자주 거론된다. 부산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사회적, 지리적 특수성과 개인의 삶과 정서가 교차하거나 만나는 장소로 영도나 산복도로, 태극마을이 등장하는 영화도 심심찮게 만났다. 바다가 제공하는 풍광은 인물의 경험과 감정을 품거나 뱉어내기도 하고 유동적이고 임시적이었던 장소가 정박된 곳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삶의 맥락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한다. 철거되는 지역의 스산한 현장과 좁은 골목이 어지럽게 얽히면서 빈곤과 부재, 떠남과 애도를 불러들이기도 한다. < 뿔을 가진 소년 > ( 김휘근 , 2017) 촬영 현장 < 오두막 > (이상환, 2016)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소개하고 싶은 네 번째 단상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흐름에 대해서다.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감독들과 그들의 영화가 뿜어내는, 거칠지만 순전한 기운과 새롭고도 낯선 감각들, 다른 태도로 카메라를 들고 배우들을 그 앞에 세운 영화들이다. 김휘근 감독은 고등학생 때 만든 < 이빨 >(2013), 스무 살에 혼자의 힘으로 꾸려나가 완성시킨 < 하얀색은 더럽다 >(2014)에 이어 < 뿔을 가진 소년 >을 완성했다. < 파수꾼 >에 깊이 감동한 나머지 시나리오와 연출, 촬영을 맡은 첫 단편에서부터 그는 직접적인 표현과 상징을 사용함에 주저함이 없다. 다양한 인물들이 특정한 사건에 연루되는 드라마를 위해 장르를 활용하거나 비관습적이고 작가주의적인 스타일도 포용한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본능적인 감각, 그의 열정과 집념이 일과 영화의 병행 안에서 쉽사리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김수정 감독은 < 이매진 >(2011), < 달을 쏘다 >(2013)를 만든 후 부산에 돌아와 < 파란 입이 달린 얼굴 >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부산영화는 비슷하다’는 전제와 정면으로 맞선다는 점에서 새롭다. 관객의 호감마저 배척한 인물들, 매정하면서도 차가운 현실을 관찰하는 카메라의 거리감, 관람하기 편하게 조율된 요소들에 저항하는 방식이 곧 영화가 된다. 현재 그는 부산독립영화협회가 제작하는 부산여성감독들의 단편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올해 부독제에서 김수정 감독 특유의 신중하지만 단호한, 느린 호흡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작년 부독제에서 만난 이상환은 가장 흥미로운 감독이다. 부산에 터를 잡은 후, 형과 가까운 친구들과 품앗이를 하듯 만들어낸 영화가 작년 한 해 동안 여섯 편에 이른다. < 오두막 >(2016)은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청년의 고단하고 흉포한 삶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집요하게 쫓으면서 인물을 둘러싼 편견을 직시하도록 촉구한다. 너무나 직설적이기 때문에 인물을 대하는 윤리적 태도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 이 영화의 힘은 그들의 필사적인 탐색과 속도전에 가까운 생산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세 감독의 영화에 담긴 부박한 삶은 때론 도전적인 테마, 불연속적인 이미지와 편집, 공감하기 힘든 까다로운 캐릭터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관찰하고 모색하는 영화의 다양한 방법 즉 충동적인 감각과 낯설고 막다른 길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하다.
부산의 독립영화계에 200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바람이 생겨났다. 그들은 30대 전후의 젊은 감독들이고 집단을 이루어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조성봉 감독이 제주 4.3 학살에 대한 도전적인 기록인 < 레드 헌트:빨갱이 사냥 >(1997), < 레드 헌트 2: 국가범죄 >(1999)를 제작했고, 계운경 감독이 장애 여성의 사랑과 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귀담아들은 < 팬지와 담쟁이 >(2000)를 만들었다. 기채생 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부산, 광주 등의 지역 인디씬의 성립과 변화, 와해의 지점을 오랜 기간 기록했다. 새롭게 등장한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주축이 된 집단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나 시점에 차이가 있고, 다큐멘터리의 미학적 수사에 대한 생각도 다르지만 부산독립다큐멘터리의 층이 세분화되는 지점은 이들로 인해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오지 필름’은 박배일 이 주축이 된 집단으로, 이들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현장에 찾아가 함께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 박배일은 <제제에게 가는 길>(2007), <내 사랑 제제>(2008), < 나비와 바다 >(2013)를 통해 장애인의 연애와 사랑,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그들의 곁을 지켜보았다. 소외된 이웃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그들만의 크리스마스>(2007), < 잔인한 계절 >(2010)은 이웃집 할머니, 분주한 도시의 후미진 곳에서 노동하는 환경미화원의 열악한 삶을 통해 한국사회의 시스템이 못 본 척 지나치는 그 지점을 찾아가 새벽과 밤의 시간을 공유하고 기록했다. 이후 박배일은 다른 지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옴니버스로 제작한 4대강 문제, 제주 강정 마을의 문제 등을 담은 영화를 거친 후에 < 밀양전 >(2013), < 밀양 아리랑 >(2014)에 이르렀다. 밀양 송전탑 설치를 맨몸으로 막기 위해 산을 오르는 밀양의 할머니들과 함께하기 위해 밀양에 머물면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할머니들의 일상적인 삶을 관찰하면서 밀양에서 살아온 시간에 대해 기록하고 증언한다. 박배일의 카메라가 충돌의 현장을 마다치 않고 종횡무진하면서 관찰한 사건들은 한국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기본적인 인권이나 행복하게 살 권리를 함부로 훼손시키면서 공동체의 가치까지 허물어뜨리는지 낱낱이 폭로한다. < 밀양 아리랑 >( 박배일 , 2014) < 악사들 >( 김지곤 , 2014) ‘탁주조합’은 김지곤 과 그의 조연출을 맡았던 오민욱 이 함께 만든 집단이다. 이들은 함께 영화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예민한 영화적 감각을 통해 공간을 새롭게 직조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김지곤은 쇠락해가는 극장을 좁은 영사실을 통해서 바라본 < 낯선 꿈들 >(2008)과 극장 바깥에 존재하는 삶의 터전을 기록한 < 오후 3시 >(2009)를 통해 사라질 공간, 매혹으로서의 극장에 대해 접근하는 그의 감수성을 드러냈다. 이후 제작된 < 할매 >(2011), < 할매-시멘트 정원 >(2012) 연작은 우연하게 만난 산복도로의 할머니들의 삶과 무자비한 도시개발의 파괴력, 그로 인해 흩어져야 하는 할머니들의 친근한 공동체의 와해 과정을 기록한다. 김지곤의 카메라는 할머니들의 자리를 지키면서 함께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 순간을 중심축으로 구성해낸다. < 악사들 >(2014)은 속칭 ‘오부리’라고 불리는 악사들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면서 이들이 다시금 연주를 들려주는 순간을 기록한다. 오민욱 은 < 1987061020080610 >(2008), < 상 >(2012)을 통해 부산민주화운동의 뜨거웠던 투쟁을 과거와 현재의 시점에서 환기시키고 있다. 특히 <상>의 오래된 사물을 통해 그 순간의 기억이 현재 공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 존재하는지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오랜 기간 인간의 눈과 관심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에 놓여 있던 사물을 통해 역사와 기억에 대해 미학적인 접근을 하는 방법은 이후의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 재 >(2013)와 < 범전 >(2015)은 부산의 장소가 어떤 방식으로 제도적 시선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 현재 그곳을 채운 개발의 흔적과 자본의 논리가 어떻게 침투하는지를 실험적인 이미지와 바라봄의 체험이라는 감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재 >( 오민욱 , 2013) <사냥>( 김영조 , 2013) 이 외에도 김영조 의 제작사 ‘월요일 아침’은 다큐멘터리의 활성화와 후배 육성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김영조의 < 가족 초상화 >(2007), <목구멍의 가시>(2009)는 가족의 숨겨진 비밀과 가족사를 관통하는 문제들을 통해 한국사회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이 증폭시키는 감정이 인상 깊다. < 태백, 잉걸의 땅 >(2008), <사냥>(2013)은 한국사회가 지닌 문제들을 담백하게 관찰하는 사람 중심의 영화다. 또 현재 영화 제작보다 미디어 운동이나 풀뿌리 운동과 연관된 실천을 중심에 둔 ‘미디토리’의 대표인 박지선의 <전설의 여공>(2012), < 그림자들의 섬 >(2014)을 제작한 김정근 도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시선과 묵직한 삶이 교차하고, 미학과 정치가 예리하게 맞물리기도 하는 부산의 독립다큐씬의 활력은 감독들의 차기작으로 인해 더욱 풍성해진다. 김지곤은 할매 연작의 마지막 편을 제작 중이고, 김정근은 지하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찾아다닌다. 박배일은 막걸리 생탁의 노동쟁의를 기록하고 있고, 오민욱 역시 부산의 잊힌 공간을 부지런히 오간다. 김영조는 영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중이다. 이들의 카메라가 운동으로 향하건, 투쟁이나 사색의 현장을 지칭하건 그들 모두는 부산이라는 지역과 장소를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카메라의 태도에 대해 고군분투한다. * 사진설명: 좌측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배일 , 김지곤 , 오민욱 감독
최근 몇 달간 나를 사로잡은 다큐멘터리는 김응수 감독의 < 아버지 없는 삶 >이었다. 그리고 이번 ‘다큐멘터리 초이스’를 위해 염두에 둔 작품 역시 <아버지 없는 삶>이다. 그러나 내가 소속된 전주국제영화제를 둘러싼 지난 한달여의 파문 속에서 지금 이 영화에 대해 뭔가 말한다는 사실이 또다른 추문이 될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다. 결국 <아버지 없는 삶>을 잠시 유보하고 아버지에 관한 또다른 영화인 < 가족초상화 -내 아버지와 나의 탈모 >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 가족초상화 >는 2007년 마르세이유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김영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할 만큼 영화는 극적인 재미와 완성도를 두루 갖추고 있지만 한국 관객들에게는 생소한 영화다. 그 이유는 “촬영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기 며칠 전 아버지는 이 영화가 국내에 상영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하셨다”는 엔딩 자막에 충분히 나타난다. 복잡하게 얽힌 가족사에 관한 영화인 만큼 이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불가피하게 관계에 얽혀있는 이들이 난처해질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에서의 영화 배급, 상영을 자유롭게 추진하지 못했던 탓이다. 유학을 며칠 앞둔 어느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감독에게 어머니는 아버지가 살아계시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자식에 대한 포기각서까지 쓰고 어머니를 떠나 다른 살림을 차렸다는 아버지.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벌을 받아야할 인간이며 그가 남긴 아들 하나 잘키우는 것이 그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기억의 대상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아버지라는 존재. 예기치않게 ‘아버지’라는 시험지를 받아든 감독은 고민 끝에 그를 만나러 간다. 그들은 어떻게 대면하는가? < 가족초상화 >는 감독이 아버지를 만나는 과정을 통해 기억 속에 부재하던 아버지가 서서히 의미있는 존재로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탐구하는 영화다. 무겁고 드라마틱한 소재. 혹은 TV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들이 즐겨 묘사하듯 감정과잉의 신파극이 될수도 있는 소재였지만 김영조 감독은 그러한 위험을 용케 피해간다. -내 아버지와 나의 탈모-라는 부제에서 짐작할수 있듯이 감독은 오히려 탈모라는 유전적 연결고리를 통해 비극적인 소재에 희극성을 살짝 얹으면서 영화가 신파극으로 추락하는 위험을 피하고 관객을 관찰자의 자리로 초대해 담담히 응시하게 한다. 드라마를 엮어가는 감독의 솜씨는 경제적이고 안정적이다. 수십년을 등지고 살아온 어머니와 아버지, 아들이 처음으로 함께 식사하는 장면에서 감독은 가르마가 두 개인 사람은 결혼을 두 번 한다는 속담을 언급하며 자신의 이중 가리마가 아버지에게서 유전된 것인지 확인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이미 대머리가 되어서 확인할 수가 없다는 말을 툭 던진다. 부부의 정을 나눈 뒤에 수십년을 외면하고 살아온 남녀가 지난 세월에 대한 원망을 토로하는 이 긴장된 자리에서 천연덕스럽게 내던지는 아들의 말은 그 진지함으로 인해 오히려 관객을 ‘빵’터트리면서 영화에 마법같은 웃음가루를 흩뿌린다. 그러나 그렇게 무겁게 가라앉을 법한 순간에 한번씩 치고 들어오는 유머는 감독에 의해 치밀하게 계산된 서사전략의 일부이자 결과다. 돌이켜보면 관객의 눈물을 쥐어짤수도 있었을 순간에 감독은 냉정하리만큼 침착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그러한 침착함은 관객이 아버지라는 대상이 부재에서 존재로, 부정적 존재에서 긍정적 존재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감정과잉의 부담을 벗고 관찰할수 있게 한다. 영화는 짜임새있게 구성되어 있다. 러닝타임 65분에 달하는 영화는 정확하게 반으로 접혀지며, 오프닝과 엔딩은 수미쌍관을 이룬다. 오프닝에서 카메라는 암실에서 사진을 인화하는 감독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물에 잠긴 인화지에는 서서히 아버지의 형상이 나타난다. 아들 스스로 촬영한 것이 분명한 이 사진은 영화가 끝날 무렵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온전히 드러낸다. 다음 장면에서는 감독과 어머니가 집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나온다. 이 모자(母子) 사진에 부재하는 ‘대타자’로서의 아버지.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자는 어머니의 제안에 아들은 집에서 찍자고 하는데 그 이유는 비어있는 아버지의 자리가 어색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어머니와 아들은 다시 한번 가족사진을 찍는데 이번에는 사진관에서다. 물론 이 사진에도 역시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현상적으로 두 사진은 촬영공간만 바뀌었을 뿐 ‘아버지 없는’ 모자의 이미지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동일성 아래에는 양피지처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전자에는 두 사람에 의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아버지라는 의미가, 후자에는 아내와 아들에게 존재를 인정받은 ‘부재자’ 로서의 아버지라는 의미가 붙어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괄호친 이 두개의 사진은 현상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실은 상반된 의미를 지닌 전혀 다른 사진인 것이다. 이 두 장의 사진은 부재에서 존재로, 무에서 유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변화해가는 영화의 서사 진행 및 테마를 압축해 보여준다. 이 영화는 아버지라는 유령과 싸우며 그 실체를 긍정할 것인지, 부정할것인지 고민하는 영화다. 물론 결말은 긍정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은 쉽게 얻어진게 아니다. 그러한 긍정에 이르기까지 감독이 겪어야했을 내적 고민을 관객의 입장에서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 고민의 일단을 감독은 영화적 구성을 통해 보여주려 한다. 영화 전반부에서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기억을 들으며 안정감을 취하던 카메라는, 감독이 청자의 자리에서 이탈해 이벤트 메이커이자 참여자로 자리를 바꾸는 순간 급격하게 흔들린다. 아버지의 도장 가게 앞에서 흔들리는 카메라는 아들의 심적 동요, 긴장감을 표현한다. 그러한 감정의 흔들림을 다스리면서 아버지의 가슴에 마이크를 꽂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때가 러닝타임 33분 경과 후, 정확히 영화가 절반 정도 진행됐을 때다. 앞에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아들은 이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다. 동일한 사건, 동일한 이야기에 대한 아버지의 버전이 시작된다. 영화의 표면은 조근조근하고 잔잔한지만 그안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변화는 격렬하다. 세 사람이 저마다의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발설하고 조정해 가는 과정. 그럼으로써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존재를 긍정하고 관계를 복구하는 과정의 중심에는 ‘육체’가 있다. ‘탈모’라는 유전적 소인. 무언가를 기억한는 정신의 노동 과정을 관장하는 것은 결국 몸이다. 몸의 기억이고 감각이다. 몸의 카니발. 혹은 몸의 반란. 어쩌면 이 영화가 주는 즐거움의 하나는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