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오락관
- 감독
- 김용삼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김용삼, 김동규, 이정자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2015년 최초의 지역 독립영화전용관이 개관하다 2015년 2월 11일 개관한 대구 오오극장은 대구 지역 최초, 그리고 유일의 독립영화 전용관이다. 2012년 12월, 대구민예총이 주최한 ‘자급자족 자립예술 세미나: 대구의 결핍’ 모임을 기점으로 독립영화 전용관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2013년 11월 대구독립영화전용관 설립추진모임을 1차로 실시했으나 예산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실패, 2014년 10월 2차 설립추진모임을 통해 본격적인 개관 준비에 들어갔다. 주체는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대구민예총, 미디어핀다 3개 조직이다. 추진단체가 예산을 일부 분담하고, 개인 차입, 일반 시민 모금, 좌석 판매 등을 통해 설립 예산을 마련했다. 2015년 7월,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으로 조직을 전환하는 첫 설립 총회를 갖고(발기인 5명, 조합원 13명), 8월에 설립 신고를 마쳤다. 개관 6개월 차인 2015년 8월 첫 관객 프로그래머 모집을 실시해 ‘커뮤니티시네마’, ‘모두의 영화관’을 가치로 하는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만의 고유한 프로그래밍이 시작되었다. 영리추구보다는 문화적 다양성과 그 저변을 확대하는 공공 영화관의 성격을 지향하는 오오극장은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원들이 직접 운영하는 극장이라는 점에서 극장의 연혁을 조합의 활동과 나란히 살펴보아야 하는 곳이다. 2016년부터 < 수성못 >(유지영), < 나만 없는 집 >(김현정), < 혜영 >(김용삼), < 맥북이면 다 되지요 >(장병기) 등 대구독립영화를 만든 젊은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짐에 따라, 지역영화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단체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조합원들은 최초 설립 목적에 걸맞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서의 조직 전환 필요성을 느끼고 2017년 2월 28일 서성희 이사장 취임 이후 협동조합 변경 신고를 마쳤다. (2018년 11월 14일, 문화체육관광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영화 상영 및 배급,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및 미디어교육의 실시, 관련 커뮤니티 공간 및 갤러리 운영 등을 목적으로 하는 조합 방침에 따라 오오극장의 공간은 대구영화학교, 관객 프로그래머들이 주도하는 커뮤니티 시네마 등을 위한 장소로도 운영되고 있다. 소박하고 정겨운 커뮤니티 시네마 통유리로 된 극장 입구 대구 중앙로역을 지나 국채보상로 길에 접어들면 노란색의 큼지막한 숫자 ‘55’가 쓰인 건물이 보인다. 오오극장에 들어서면 “33다방은 11시에 커피로 열어요. 55극장은 23시에 영화로 닫아요”라는 문구가 관객을 반긴다. 1개층, 1개관으로 꾸려진 오오극장은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로 지역 극장의 묘미를 전한다. 외관이 통유리로 돼 있어 카페 공간, 로비 등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입구 왼편에는 삼삼다방, 입구 정면에서 가장 안쪽에는 상영관이 위치해 있다. 상영관 좌석 수는 총 55석으로, 좌석수에 맞춰 극장 이름을 딴 경우다. 작은 좌석 수에도 불구, 앞줄 4개 좌석은 휠체어 좌석으로 마련했다. 휠체어 이동의 편의를 위해 극장 입구부터 상영관까지 문턱을 최대한 낮췄으며 화장실의 문 역시 미닫이로 설치했다. 코로나19 팬데믹 휴관 직전까지 상영관 입구 왼편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DVD 시청각실을 운영(2석), 오오극장 멤버십에 가입한 회원에 한해 극장 로비 서가의 DVD를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로비 공간의 DVD는 시민 기증, 대구영상미디어센터의 자료들을 합한 것으로 역시 오오극장 회원이라면 2주 간 대여가 가능하다. 매년 진행하는 <대구 독립영화 연말 정산>과 <오오극장 관객 프로그래머 영화제>가 오오극장이 지속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2월 20일 휴관에 돌입해 4월 30일에 영업을 재개한 오오극장은 2022년 5월 현재, 운영난 타개와 시설 보수 등을 위해 상영관 리모델링 또는 이전 여부를 검토 중이다. 상영관 입구 로비 전경(좌측이 매표대 겸 카페 매대, 우측이 DVD 전시대 대구 문화의 중심지에 위치한 극장 오오극장이 자리한 곳은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2동 경상감영 일원으로 중구의 중심부인 반월당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경부선인 대구역, 도시철도로는 1호선 대구역, 2호선 반월당역, 3호선 달성공원역을 통해 접근이 용이하며 대구광역시 중심부의 주요 도로인 중앙대로, 서성로, 국채보상로, 북성로에 둘러싸인 형태이다. 국채보상로 길을 걷다 보면 노란색의 큼지막한 숫자 ‘55’가 쓰인 건물이 보인다. 대로변에서 오오극장을 등지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성내 2동에 자리한 110년 역사의 종로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담벼락을 따라 북성 문화마을길이 조성되어 있다. 대구 읍성의 옛 모습과 근대역사의 흔적을 살린 이 곳에는 대구에서 활동한 화가 이인성, 지휘자 박태준, 동학을 창도한 종교창시자 최제우를 소개하는 팻말들을 줄지어 서 있다. 종로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반경 500m 이내에 오오극장, 무궁화백화점, 북성로 공구골목 등이 위치한 모양새다. 오오극장 바로 뒤편에 자리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대구 근대역사관 등도 중구의 주요 문화시설이며, 무궁화백화점과 중앙상가를 비롯한 대구 주요 상권과도 닿아있다. 오오극장과 약 100m 거리에 위치한 롯데시네마 프리미엄 만경관은 1922년 개관해 2018년 폐관한 대구 향토 극장 만경관이 롯데시네마와 제휴를 맺고 최신 영화관으로 탈바꿈한 시설이다. 과거 만경관, 한일극장 등과 함께 형성된 영화관 거리에 위치한 오오극장의 입지는 대구 문화가 발전한 중심지에 자리해 역사적 가치가 높다. 오오극장 주변 북성 문화마을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41919)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537, 1층 2. 설립일: 2015년 2월 11일 3. 대표자: 서성희 4. 규모: 230.00m² / 상영관 크기(가로 7.60m, 세로 9.00m, 높이 3.75m) / 스크린 크기(가로 5.50m, 세로 2.30m) 5. 극장 구성: 1관, 55석 (51석+휠체어석 4석) 6. 운영시간: 10:00 ~ 22:00 (시간표에 따라 유동적) 7. 입장료: 일반 8,000원 경로, 청소년, 장애인, 멤버십 7,000원 8. 조직 구성: 사무국 (사무국장, 사무국원), 프로그래머, 홍보팀장, 재무팀장(5인) 9. 공간 구성 - 상영관 1개관 - 삼삼다방: 커피 및 음료 판매, 20석 - 갤러리 삼삼다방: 전시공간, 카페 벽면을 갤러리로 활용 지역 예술인의 작품 상시 전시 - 장애인 시설 구비: 휠체어석 4석, 휠체어 진입로 및 통로, 장애인 화장실 인터뷰: 한종해 사무국장 한종해 사무국장 김소미 _오오극장은 대구 최초, 그리고 유일의 독립영화 전용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영화관을 열기까지 어떤 배경이 있었나요. 한종해 _대구 지역에 기반한 독립영화인과 시민들이 뜻을 모아 개관한 것이 2015년 2월 11일이에요. 대구의 예술인, 영화 운동 단체들이 모여 포럼을 가졌는데 독립영화 전용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다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죠. 대구의 여러 가지 영화적인 흐름을 이끌고 성장시켜갈 수 있는 거점이 되기를 바라며 2년 반 정도 준비 끝에 2015년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의 인디스페이스를 청사진으로 생각하며 준비했어요. 어떻게 보면 인디스페이스와 같이 독립영화전용관들이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운영에 성공하는 사례를 믿고 시작한 것인데, 박근혜 정부 들어 독립영화전용관 운영 지원 사업이 원활하게 이러우지지 않아 개관 직후 굉장히 힘든 시기를 3년 정도 보냈습니다. 김소미 _55석 좌석의 이름을 따서 오오극장이란 작명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좌석수를 55석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한종해 _시민 모금을 받긴 했지만 자금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상영관 안 좌석도 서울의 다른 극장을 통해 지원받은 것이고요. 그렇다 보니 원하는 수량만큼 좌석을 확보하기는 어려웠어요. 상영관을 만들만한 층고 높은 건물을 찾다가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았는데, 최대한 많은 좌석을 넣는다고 했을 때 딱 55석이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랜 회의를 거쳐 극장 이름을 55개 좌석 수에 맞춰 '오오극장'이라고 부르자는 의견이 가장 환영받았습니다. 오오극장 상영관 내부 김소미 _사무국장님은 대구 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의 사무국장이기도 하신데요. 오오극장의 조직 체계는 어떤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지요. 한종해 _크게는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의 조직 체계 내에서 오오극장이 하나의 사업장 역할을 하고 있지요. 조합의 사무국장인 제가 오오극장의 사무국장도 맡고 있고요. 그 외에 사무국원, 프로그래머와 홍보팀장, 그리고 재무팀장 각 1인으로 이루어진 조직입니다. 현재 총 5명이에요. 원래는 저와 김창완 프로그래머, 노혜진 홍보팀장, 이아름 재무팀장까지 4명이서 운영했는데 최근 여러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하기 위해 사무국원을 충원했습니다. 김소미 _대로변 1층에 극장이 자리 잡고 있어 로비에 있는 삼삼카페를 따로 찾는 손님들도 있을 것 같네요. 극장 개관 당시부터 카페 운영을 계획하셨나요? 한종해 _워낙 작은 극장이라 극장만으로는 수입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극장 설립 추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카페 운영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름도 오오극장과 운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았지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삼삼오오 같이 찾는 극장으로 의미를 부여해보면 좋겠더라고요. 김소미 _1개층, 1개관으로 아담하고 소박한 공간입니다. 공간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다고 보시나요? 한종해 _멀티플렉스와는 다르게 로비 공간이 좀 더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지요. 팬데믹 이전에는 감독님들, 그리고 지역 영화인들이 회의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친밀도가 우리 오오극장의 장점인데 코로나19를 겪으며 관객의 발길이 줄어들어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김소미 _극장의 세부 요소를 소개해주신다면요. 한종해 _작지만 내실이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장애인 시설은 필요하다는 목표가 애초부터 확고했습니다. 지원 사업을 통해 화장실, 진입로 등에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공사를 했어요. 어쩌면 당연한 거지만, 그럼에도 없는 극장들이 많아서 오오극장 개관 초기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꼈지요. 또 오오극장을 찾는 시민, 각종 단체들로부터 중고 DVD와 책 등을 기증받아 로비 서가에 진열해두었는데요. 비치된 DVD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세요. 지금은 팬데믹 이후 폐쇄한 상태지만, 원래 상영관 옆에 따로 작은 간이 시청각실을 운영하기도 했죠. 중형 텔레비전 하나와 좌석 두 개가 있는 방인데, 미리 신청해 서가의 DVD를 볼 수 있도록 운영했습니다. 로비 입구 DVD 전시 코너 김소미 _극장 운영 외에도 로컬시네마의 증진을 위해 오오극장 운영진들이 힘 쏟는 사업이 있을까요. 한종해 _대구시로부터 대구영상미디어센터의 운영을 위탁받았습니다. 오오극장 설립 초창기부터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산업적 측면에서 대구 로컬시네마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었어요. 우선 일거리가 주어져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계속 발굴이 되어야 하고, 대구에서 찍은 영화로 성과를 거둬 전국적인 감독이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지요. 그러려면 후배 양성이 필요합니다. 대구는 대학 영화학과가 단 한 곳도 없어요. 공식적인 영화 교육 채널이 없는 도시여서 바로 그 부분을 메울 수 있는 교육 기관과 미디어센터의 존재에 현재 많은 영화인들이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대구영화학교를 비롯한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인 이유입니다. 또 독립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대구 지역 영화를 체계적으로 배급할 배급 기관과 체계의 필요성도 절실히 느끼고 있더라고요. 조합 차원에서 배급팀을 운영할 수 있을지, 우리의 역할도 새로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소미 _중앙로역을 지나 극장까지 걸어오면서 동네가 주는 고즈넉한 인상에 반했습니다. 오오극장의 위치에 있어 지리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한종해 _중구는 그야말로 대구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동네를 돌아보면 조선시대 말부터 구한말 일제강점기, 그리고 산업화 시대의 유산들이 모두 모여있고, 그건 극장의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오오극장이 위치한 곳을 중심으로 반경 1km 내에 대구 영화의 역사가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쉬운 것은 개발 과정에서 과거 영화관의 흔적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에요. 이런 부분에 애착을 느끼고 있는 터라, 대구시 관계자, 문화예술 운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대구 영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싶다는 생각을 알리고 있어요. 보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김소미 _코로나19 펜데믹으로 휴관 이후 경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오오극장을 지키고 계십니까. 한종해 _영리추구를 위한 극장이 아닌 만큼 독립영화 전용관의 중요성을 굳건히 믿으며 버팁니다. 누구나 제일 처음 영화를 찍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만들게 되는 것이 독립영화일 수밖에 없잖습니까. 독립영화들이 지원을 통해서 풍성한 양분을 얻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영화도 성장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오극장은 물론, 독립영화 전용관이 전국 각지에 더 세분화되어 존재하길 바라고, 극장이 지역 영화 운동의 구심점이 되길 바랍니다. 인터뷰: 김창완 프로그래머 김창완 프로그래머 김소미 _오오극장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창완 _대구 지역 최초로 만들어진 독립영화 전용관이고, 올해 7년 차를 맞이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국 독립영화 개봉작을 주로 상영하고, 대구 지역의 로컬시네마 상영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습니다. 김소미 _극장 이름, 카페명에 이어 이제는 극장 마스코트로 자리잡은 길고양이의 이름도 범상치 않네요. 어떻게 '오우삼'과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김창완 _창문 밖에서 울던 고양이였어요. 직원들이 음식을 주면 들어와서 먹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여기 머물며 계속 살게 되었죠. 처음엔 오오극장, 삼삼카페의 이름을 따서 오삼이라고 하다가 오우삼 감독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김소미 _오오극장 주변은 동성로 번화가에 비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역사가 유구한 곳입니다. 김창완 _동성로 일대에 형성된 대구 최대의 중심가와 가까우면서도 살짝 비껴나 있다고 볼 수 있죠. 근대 역사의 자취가 남아있는 골목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지금의 롯데시네마가 들어선 자리는 원래 만경관이라는 오래된 극장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지어졌죠. 현재 CGV대구한일점이 된 한일극장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김소미 _대구 지역 유일의 독립영화 전용관으로서 프로그래머님의 고민과 책임감도 상당할 듯 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프로그래밍을 하시나요. 김창완 _막상 시기별로 한국 독립영화 개봉작이 그리 많지 않아서 제 취향을 발휘할 여력은 적었던 듯 해요. 절대적 편수 자체를 적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상영할 만한 영화의 숫자는 대체로 정해져 있는 식이었거든요. 기획전을 꾸릴 땐 시기적으로 중요한 영화들이 무엇일지 고민하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여성 영화들이 강세를 띠면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고집을 부릴 때가 있었다면 ‘어떤 영화를 틀겠다’ 보다는 ‘이런 영화는 절대 안 틀겠다’ 쪽에 적용되지 않았나 싶네요. 오오극장 영사실과 작업중인 김창완 프로그래머 김소미 _오오극장 개관 기념 특별전, '대구독립영화 연말정산' 기획전을 매년 열고 관객들도 호응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김창완 _관객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매달 1번 상영하고, 1년에 한번씩은 꼭 관객 프로그래머들이 선정한 영화들로 영화제를 엽니다. 다른 극장과는 다른 오오극장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해요. 관객 기자단은 있지만, 저희처럼 관객 프로그래머가 직접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영화제를 만들게끔 유도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는 이것이야말로 커뮤니티시네마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관객 프로그래머 영화제 중 <내 배우 영업전>은 제게도 의미있는 기억이에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배우들일지라도 주목할 만한 커리어를 가졌다면 초청해서 관객과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김소미 _극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있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김창완 _저희가 '오오극장의 5대 사건'이라 부르는 일들이 있어요.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 나쁜 나라 >(김진열, 2015)가 개봉했을 때 어떤 관객이 55석 전체 티켓을 구매해서 관객들에게 나눔하는 이벤트를 연 적이 있습니다. 오오극장이 전국 최초였고, 이 일을 기점으로 여러 극장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나쁜 나라> 이벤트가 일어났지요. 오오극장은 김태리 배우가 신인 시절 출연했던 독립영화 < 문영 >(김소연, 2017)의 확장판을 가장 먼저 상영한 곳이기도 해요. 새벽부터 줄을 선 김태리 배우의 팬분들로 인해 4회차 상영이 모두 매진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문제적 호러 < 무서운 집 >(양병간, 2015)도 지역 극장 중 최초로 상영했어요. 컬트 영화가 나온다면 앞으로도 적극 상영하려 해요. 컬트 영화는 특히 관객들의 반응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남달리 좋습니다. 1층 로비 유리창에 적힌 관객들의 메모들 김소미 _지난 7년간 직접 경험한 오오극장만의 공간적, 문화적 미덕은 무엇이었나요. 김창완 _솔직히 말해 오오극장은 이른바 '스펙'이 좋지는 않은 극장이에요. 가능한 더 좋은 환경에서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프로그래머로서 미안함도 큽니다. 그럼에도 오오극장만의 장점이 있다면, 만만하고 귀여운, 문턱이 낮은 극장이라는 점이 아닐까요? 일반 극장과 마이크로시네마 사이에 위치한 극장이라고 생각해요. 관객과의 대화로 극장을 찾은 감독, 영화인들이 종종 'GV 행사 중 가장 마음이 편했던 곳이 오오극장'이라고 말씀해주기도 하세요. 무대에 선 영화인과 관객 사이의 밀착성이 남다르기 때문에 다른 극장에선 잘 못했던 이야기도 여기 와선 하게 된다는 거지요. 언제든 문이 열려 있고,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 틀거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극장이라는 것도 오오극장만의 색깔 중 하나이고요. 김소미 _오오극장의 미래에 관해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신가요. 김창완 _개관 후 7년이 지나 재정비할 시점이 왔다고 봐요. 장비들도 교체가 필요한 시점이고요. 리모델링을 할 것이냐, 이사를 갈 것이냐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 같아요. 그러니 재원 마련이 더욱 절실한 시점입니다. 필자: 김소미(씨네21) 사진촬영: 백종헌 인터뷰 일자: 2022년 5월 13일
언젠가부터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 한국영화가 설 곳이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검사, 경찰, 탐정, 공무원, 정치인, 범죄자를 중심으로 한 장르 영화가 판치는 현재의 한국영화계 안에서 인간관계의 본질을 관통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찾는 건 쉽지 않다. 그나마 사랑이라는 관념과 경험의 복합체를 삶의 흐름 속에서 재현하는 매체로 텔레비전이 있다. 그런데 이들이 다루는 사랑도 어딘가 모르게 획일적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사랑을 말하기 위해 복수, 치정, 불륜 등의 선정적인 소재를 거치거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랑의 가치를 교환 가능한 것쯤으로 환원하거나, 그도 아니면 가족이라는 사회적 제도의 부속물로 축소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사랑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한 사랑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대상화할 수 있고 그래서 유형화할 수도 있다는 한계가 있다. 결국, 사랑을 말하지 않는 영화와 사랑을 획일화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틈에 끼여 사랑에 관하여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경험 자체가 희소해지고 있다. 김용삼 감독의 < 혜영 >이 반갑고 또 이 영화가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단순히 사랑을 이야기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한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관념, 감정, 관계 등으로 그려내고 있어서다. 영화는 오랜 시간 사귀었던 성우와 혜영이 헤어진 이후 성우가 혜영을 잊지 못하는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오프닝을 제외하고 이 영화는 총 3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가장 먼저 오프닝에서 2016년 4월 구마모토현에서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는 성우의 모습이 나온다. 이어서 찬송가의 웅장한 사운드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가운데 구마모토성을 각각 부감과 정면으로 담은 쇼트, 한 교회 건물의 십자가를 담은 쇼트, 그리고 벽에 기대에 잠들어 있는 성우의 모습이 몽타주 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오프닝은 과거 성우와 혜영이 연인이었을 때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편집해 놓았다. 여기서 혜영의 얼굴은 검게 칠해져 있어서 현재적 시점에서 봤을 때 그녀는 성우와 이별했으며 그래서 그녀는 성우의 과거로 남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성우와 혜영의 관계를 경제적으로 압축하고 있는 이 오프닝은 영화 전체에서 혜영과 성우의 사랑이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이 현재에도 지속하는 무엇으로 남아 성우의 삶에 강한 파문을 일2으키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랑은 끝났어도 그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것이 이 영화가 일관되게 유지하는 태도이다. 1부는 혜영과 성우가 연인이었을 때, 서울에 직장이 있는 혜영이 성우가 사는 대구로 내려와 며칠 머물다 떠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은 종종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마치 뼈와 살처럼 서로 끈끈하게 붙어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둘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함께 야구를 보고 함께 랩을 흥얼거릴 수 있지만, 혜영은 집에 있을 때 잘 씻지 않고, 치킨을 시켜 먹는 것을 좋아하고, 둘 사이의 약속을 어기고 몰래 일본 성인물을 보는 성우가 못마땅하다. 그래도 둘은 마치 영혼의 단짝처럼 서로에게만 공유 가능한 언어로 소통하는 애틋한 관계이다. 그런데 2부로 넘어가면 돌연 혜영이 사라진다. 영화는 혜영의 사라짐과 관련하여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혜영이 사라진 이유는 그녀가 성우 몰래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서울과 대구를 왕래할 때 기차 대신 버스를 더 애용한다는 단서를 통해, 그리고 성우의 집 근처 교회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찬송가의 장엄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론해볼 수 있는 정도다. 2부는 이별 후 홀로 남은 성우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매일 술을 마시면서 폐인처럼 살아가던 중 우연히 구마모토현에 강도 7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 구마모토현은 과거 혜영이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에피소드를 통해 영화는 비록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 곁에 없지만,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심연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불현듯 지형학적 융기를 일으키듯 겉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사랑과 지진은 삶을 뒤흔들고 강한 파문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끝으로 3부에서는 성우와 찬다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찬다라는 성우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인데, 그는 혜영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성우와 함께 야구를 보고 수다를 떤다. 여기서 영화는 혜영의 공백을 찬다라로 채우면서도 정작 성우가 혜영의 빈자리를 정서적으로 완벽히 메우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하나의 사랑이 그것의 정점에 있다가 느닷없이 이별로 추락하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에 찾아오는 파장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사랑을 관념의 수준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 혜영 >은 일부 예외적인 장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우가 사는 방을 주된 배경으로 활용하고 있다. 1부에서 혜영과 성우의 과거 이야기가 전개될 때, 두 사람의 활동 반경은 성우의 집안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성우의 집은 그들의 사랑을 오롯이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리고 성우의 집은 그들의 사랑이 물질적인 흔적의 형태로 남아 있는 장소이다. 그곳에는 혜영과 성우가 텔레비전으로 야구 경기를 시청하면서 나누어 입었던 야구 유니폼이 있으며, 혜영이 성우와 다툴 때 잃어버렸던 반지가 방구석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그리고 혜영이 쓰던 여러 물품이 창가에 수북이 쌓여 있는 그런 곳이다. 2부에서 이별을 겪는 성우를 괴롭히는 것은 단순히 혜영에 대한 그의 감정이 무의식 속에 억눌려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방 구석구석에 그녀의 흔적이 물질적인 흔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를 존재론적으로 대리하는 사물들이 성우의 집에서 성우와 더불어 살고 있었다. 이것이 이 영화를 만든 김용삼 감독의 연출력의 미덕으로, 그는 사랑을 건축적으로 주조하는 동시에 그것을 물질적으로 구체화하는 재능을 갖고 있다. < 혜영 >의 또 다른 미덕은 사랑을 다른 어떤 것과도 교환 불가능한 특이한 것으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이는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혜영과 성우가 빚어낸 사랑의 강도가 다른 이들의 사랑보다 더 강렬하다는 말이 아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그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식에서 특이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성우와 혜영은 종종 두 사람 사이에서만 소통 가능한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함께 보던 만화 속 대사를 활용해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손을 맞대고, 시선을 교환한다. 그리고 성우는 혜영을 호명할 때 “캡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영화 < 죽은 시인의 사회 >의 명장면에서 빌려온 캡틴이라는 단어는 성우를 통해 혜영을 세상에서 둘도 없이 귀중한 그래서 더없이 고유한 존재로 만든다. 이외에도 성우와 혜영 사이에서만 소통 가능한 표정과 몸짓이 있다. 이처럼 혜영과 성우는 오직 두 사람 사이에서만 약속된 언어를 통해 서로를 더 빛나게 하는 동시에 둘 사이의 관계를 더 공고하게 다진다. 그들에게 사랑은 은밀한 언어이고 신비로운 세계이다. 오직 사랑하는 두 사람만이 입장 가능한 작지만 큰 세계. 그렇기에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이란 하나의 유일무이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며, 이별이란 그런 세계를 상실하는 것과 같다.
이제 정말로, 혼자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국내의 대부분 영화 제작 워크샵들은 여전히 공동 작업을 전제하는 구조로 구성된다. 종종 워크샵 강사를 할 때 수강생들에게 들려주는 첫마디는 항상 같다. “영화는 문학이나 미술과 달리, 혼자 작업할 수 없어요. 다큐멘터리와 실험 영화를 제외한다면, 영화에서의 공동 작업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급변하고 있는 디지털 환경은 그 첫마디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녹음, 네가 필름 현상과 편집, 사운드 믹싱, 프린트 출력에 이르기까지 영화 제작을 이루는 촘촘한 분업 작업이 카메라 REC버튼과 파이널 컷 프로 같은 통합 프로그램 하나로 간단하게 수렴되고 일원화되면서 누구나 마음 먹으면 쉽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공동 작업을 필히 전제해야 했던 필름 시대에 갖지 못한 상상력이 디지털 환경에서 발화하는 영화적 풍경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독립영화축제인 인디포럼 2011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세 편의 단편영화 역시, 그 영화적 풍경에 속해 있다. 내밀한 가족 이야기에서부터 평범한 극영화 내러티브에 이르기까지, 각본, 연출, 촬영, 녹음, 편집 등 모두 원맨 시스템으로 제작된 세 편의 단편을 개막작으로 내세운 올해 인디포럼 영화제의 의도는 ‘사적 영화’의 세계를 소개하는 데에 있었다. 김준우 감독의 < 만들고 싶다 >는 한 영화학도의 내밀한 고백을 담고 있다. 과연 어떤 영화를 만들까, 연출가라면 누구나 고민해봤을 그 자잘하고 소심한 고민들이 풍자와 해학의 추임새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작품은 근래 나온, 영화 만들기에 대한 고민를 다룬 영화들 중 가장 위트가 넘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영화를 만들고 싶어진다. 두 번째 작품인 김용삼 감독의 < 가족오락관 >은 사적 영화의 세계를 탐험한다. 감독이 직접 주인공을 맡고, 실재 자신의 부모를 등장시켜 웃음을 자아내는 이 영화는 얼핏 백수 청년의 일상을 다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가족이 얼마나 웃긴지를 관객에게 폭로하는 유쾌한 일기장에 가깝다. 반면, 이지상 감독의 < 돈 좀 더 줘 >는 감독 본인의 말대로 ‘세태에 대한 테러’의 영화다. 노동에 지친 아버지와 반복해서 돈 좀 더 달라고 조르는 철없는 어린 딸 사이에 벌어지는 난데없는 폭력. 감독은 시퀀스를 반복 재현하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그 폭력의 고리를 설득력있게 그려보인다. 기술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가벼워진 카메라는 미처 가보지 못한 영화적 영토에 발을 딛게 하는 최적의 동반자일지도 모른다. 이 세 편의 단편들은 일기를 쓰듯, 신문 기사를 읽어내려가듯 혼자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의 가능성을 웅변해주고 있다. 당신도 혼자 영화를 찍을 수 있냐고? 이 세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당신은 당장 카메라를 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