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 감독
- 김재현
- 제작년도
- 2016
- 출연
- 백승찬, 전재현, 한태일, 홍윤정, 김종태, 조운, 이용원, 전소니, 박재한, 김윤진, 홍채령, 김재현
잘생긴 나무 옆에 지어진, 예쁜 집으로 숙녀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찬찬히 들어와 서로를 마주하는데, 건네는 인사말이 예사롭지가 않다. “늙었네. 내가 아줌마가 되면 이렇구나” 하룻밤, 언제일지 언제인지 모를 그 하루 동안 ‘나’ 들이 서로를 보러 온다. 부러움이 뭔지 모르던 8살부터, 많은 것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손을 가진 서른 여섯까지. 각각 자라온 시간 속의 소녀들과 아가씨들로, 여섯 명의 숙녀들이 함께 자리한다. 그리고 그녀들이 내어놓는 이야기들.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아이와 내방이 갖고 싶었던 꼬마 숙녀, 예쁘고 인기 많던 부러운 친구 이야기 그리고 처음 생리한 날. 그 때, 첫 느낌, 기쁨과 오해들 실망과 상처들. 아마도 기억들 중에서도, 깊은 자국이 남은 시간 속 그녀들이 모여든 것 같다. 작은 아이의 눈물을 좀더 자란 소녀가 닦아주고, 또 소녀의 상처를 더 큰 그녀가 감싼다. 꼬마에게 검지만큼 커다랗고 아팠던 가시가, 몸이 자라며 새끼 손톱 마냥 작게 느껴지고, 상처에 앉은 딱지도 떨어져 결국엔 흉터마저 흐릿한 나이가 된다. 그 사건의 순간들이 이 숙녀들을 자라나게 만드는 것인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그녀들을 키워낸 것뿐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이야기는 소녀가 건강하게 잘 자라날 거라는 든든한 약속을 하듯 다정하게 들어온다. 서른 여섯의 숙녀는 이제 지나온 시간들을 끌어 안고 보듬어 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자라난 손바닥 뼘만큼 더 크게, 살아낸 시간의 양만큼 더 깊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이다. 이만큼은 자라야 비로소, 나의 과거들에 초대장을 보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단짝보다 나를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쌍둥이 자매보다 더 가까이 공감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 바로 자신뿐일 것이다. 그런데 왠걸, 그녀들의 대화가 매끄럽지 못한다 싶더니 비난하고, 소리지르고 돌아서기까지 한다. 시간 속에서 쌓여가는 순간들은 나를 자라나게도, 또 바뀌어 가게도 하는 것이다. 가장 소중하다 여기던 것을 뒷줄에 세우기도 하고, 부럽고 크다 여기던 것을 한줌처럼 보이게끔, 좋아하던 것을 더 많이 좋아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은 어떻게든 우리를 나아가게 만든다. 이 이야기를 크게 관통하는 주제는 ‘꿈’이다. 조그맣고 예쁜 꿈. 자유롭고 멋진 꿈. 그런데 그 꿈들이, 이루어내지 못한 옛 다짐들이 지금의 내게 비난을 퍼붓는다. 열아홉 청춘의 꿈이, 날 선 원망으로 가슴 속을 파고 들려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꿈들에 초대장을 보낸 숙녀는, 이 시간 또한 보듬어낸다. 하룻밤. 언제일지 언제인지 모를 그 하루 동안 ‘나’ 들이 서로를 보러 왔다. 만나러 왔다. 확인하러 왔다. 안아 주려 왔다. 그 하룻밤이 다 지나고 이제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가장 뜨거운 순간을 살고 있을 스무 살을 앞둔 숙녀가, 가던 걸음을 돌이켜 서른 여섯의 자신에게 외쳐 묻는다. “그럼- 이젠 더 이상 꿈꾸지 않아-?” 당신의 옛 꿈들이 당신에게 물어온다. 이젠 더 이상, 꿈꾸지 않아?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까 그 숙녀는 뭐라 답했을까. 그녀의 대답이 궁금하다면, 숙녀들의 하룻밤 이야기를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현재(리뷰작성시기준)까지는 유튜브 에서도 시청이 가능하다. 가쁘게 살아가다, 잠시 쉼표를 찍어두고 잠잠히 앉아있고 싶은 날, 이 이야기를 추천한다. 20분 정도의 짧은 이야기와 또 그보다 긴 여운으로 잠시 쉬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학창 시절, 사고로 죽었던 친구가 귀신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난다면? 그리고 그 죽음의 이유가 나와도 관련이 있다면? 나로서는 무척 두렵거나 공포스러운 상황일 것 같다. 자, 그러면 이 귀신에, 몇 가지를 더해보자. 이 친구는 나의 첫사랑이었으며, 그동안 흘러버린 세월만큼 성장해 있는, 몹시 그립고도 생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예의 설정에서 나올 수 있을 법한 여러 장르 중에서도 드라마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어떤 장르들보다 매끄럽게, 묘한 감동과 즐거움을 일으키며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초등학교 시절, 철수가 영희를 좋아한대 아니래, 이런 이야기만으로도 하루가 떠들썩하고 흥겹게 지나던 때, 한없이 가볍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의 때, 여물지 못해 쉽게 상처가 생기기 쉬운 마음의 때, 바로 그때 일어난 사건으로 천진하게 즐겁기만 하던 이야기가 힘 있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단짝인 친구들 여섯이서, 함께라는 것만으로 하루하루가 즐겁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사고로 죽게 된다. 멘마. 죽은 소녀의 이름은 멘마이다. 함께 만든 비밀기지에 모여 서로의 풋사랑을 떠보는 미묘한 상황에서, 멘마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게 된다. 허허벌판에서 소나기를 만나듯 불시에 찾아온 그 사건은, 남겨진 친구들의 내면 군데군데를 성장이 멈춰버린 아이로, 그 시간 속에 얼어붙게 만든다.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감싸내지 못하고 각자의 기억과 감정 속에 묶이고 만다. 미뤄두거나 감춰두고 있던 것들, 가볍고 유치한 마음들마저 단단한 죄책감들로 변해, 벽돌처럼 쌓여 서로를 바라볼 수 없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흐르지 못하는 시간들이 쌓여가며 이들 사이의 간극은 더 넓어져만 간다. 더해 가는 나이에 맞춰 흉터도 자라가던 어느 날, 단짝 친구들 중 리더였던 남자 주인공, 진땅 앞에 느닷없이 멘마가 등장한다. 다른 사람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진땅 만큼은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있는 멘마가 나타난 것이다. 해맑은 유령과 혼란스럽기만 한 진땅은, 우여곡절 끝에 단짝이던 친구들 모두에게 멘마가 진짜로 나타났다는 것을 이해시킨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다시 하나가 되어 고민에 빠지게 된다. 왜? 왜 멘마는 성불하지 못하고 다시 나타난 것일까? 이 귀여운 유령 소녀는 살아있을 때 맹하던 그 모습을 배반하지 않고, 다시 나타나서도 이렇게 말한다. “왜 돌아오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헤헷.” 이라고 말이다. 친구들은 멘마가 잘 성불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방법을 찾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리고 이 와중에 서로 엉켜있던 감정의 끈들, 미묘하게 꼬인 추억들이 하나씩 풀려나간다. 각자의 얼어붙은 시간들이 다시 함께 모여 흐르기 시작한다. 사실 이 애니메이션은 총 11부작, 15세 이상 관람가인 TV 시리즈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TV 판에 나오는 내용들을 군데군데 짜깁기하고 인물들의 회상을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구성이 좋아서 사전 정보 없이 극장판만을 보아도 기분 좋게 이야기 안으로 따라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이런 류의 애니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TV 판부터 보는 것을 권장한다. 시리즈에서 주는 감성이 훨씬 더 깊고, 이후 극장 판을 보면 배가 된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본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과연, 몇 년이 지나도 성불하지 못하고 다시 나타난 멘마의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자신에게 일어난 사고와 죽음을 이유로, 잘라내는 것 외에 방법을 찾기 힘들 정도로 꼬여버린 친구들의 관계가 멘마의 혼령 또한 묶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그것들을 풀어나가다 보면 성불을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멘마가 리더인 진땅 앞으로 다시 나타난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단지 엉킴만을 풀어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모쪼록 그 이유는, 직접 애니메이션 안에서 찾아보면 좋겠다. 달달 하고 저린 마음을 문질러 가며 말이다.
음울한 배경과 불안한 음향 속에 한 남자의 기묘한 대사가 들려온다. 불쾌한 표정의 남자가 바라보는 곳에는 중력이 반대로 작용하는 듯, 하늘을 향해 거꾸로 매달려 있는 물건들이 즐비해 있다. 느릿한 손길로 물건들을 건들다, 화면 밖의 당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더럽혀진, 죄인의 후손아, 하늘에 먹힘을 당할(하늘이 너를 삼킬) 것이다.” 질서와 규율의 지배를 받으며 통제 속에 유지되는 어느 사회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한 사춘기 소년이 있다. 그런데 점차 소년의 과거가 들여다 보이며, 이 방황은 사춘기가 던져주는 유통기한의 짧은 불편함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 속에 삐걱대는 소음임을 알 수 있게 된다. 하늘을 ''''불경 시'''' 여기는 사회 속에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다 추락해서 사망한 아버지. 그것이 소년의 현실과 내면 속에서 바늘 무성한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며 그를 할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질서를 피해 잠시 숨은 소년 앞에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한 소녀가 나타난다. 살려달라는 소녀의 비명을 듣고서야 소년은 비로소 그녀가 하늘을 향해 추락하는 중 임을 알게 된다. 추락하고 있는 소녀, 파테마는 빈곤하고 폐쇄된 땅 속 지하세계에서 사는 주민이다. 오래 전 지구적인 과학실험 실패의 결과로 하늘에 삼켜지는 것을 피해 땅 속으로 피신한 죄인의 후손 중 하나이다. 사실 이 소녀는 큰 난관에 봉착하는 중이다. 하늘이 있는 ''''진짜 세계''''를 보고 싶은 열망에 건너서는 안될 경계에서 서성이다 발을 헛디뎌 추락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발 아래 하늘이 있는 위태한 세계에서, 현실 위를 비틀대며 서있는 소년과 마주하게 된다. 소년은 어쩌면 자신의 상처와도 이어져 있는 소녀, 파테마를 돕기로 결심한다. 본인과는 거꾸로인 그녀를 배척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그녀를 알아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어쩌면 그 숭고한 결정은 하늘에 삼켜지는 벌을 받을 소녀의 죄를 씻기에 충분한 희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를 다 내던져서라도 과거를 치유하기로 한 소년의 개인사이기도 할 것이다. 어쨌거나 숭고한 그의 희생으로 그들은 하나가 되었을까? 아니다. 갖은 고난을 함께 뛰어넘으며 소녀에게 연민을 품게는 되었지만 소년은 스스로가 하늘로 추락하게 되는 상황에 놓였을 때야 비로소 파테마의 공포와 고통, 두려움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그녀의 ''''일부분''''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작은 조각 같은 깨달음이 던지는 파장은 큰 물결로 우리를 덮는다. 이 조그만 것이 소년을 남자로, 우리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의 땅덩어리 반대에 서서 발을 맞대고 살아가고 있는 이 형태는, 지금 지구별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다만 이것을 바라보는 시야의 범위를 구역 단위로 당겼을 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도 한눈에 볼 수 있게 확대 시켜 준다. 어디까지 확장할지 축소할지는 관객의 선택일 것이다. 좁게는 남녀에서부터 국가, 혹은 우주적이거나 영적인 문제까지 일수도 있겠다. < 거꾸로 된 파테마 >의 감독 요시우라 야스히로는, 2011년 아이튠즈 무비 랭킹 3위를 기록해 화제가 되었던 극장판 <이브의 시간>을 제작했으며 이 작품이 그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신카이 마코토와 쌍벽을 이루는 젊은 천재 감독이라는 평가와 함께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감독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한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재의 < 업사이드 다운 >(2012) 라는 영화가 나왔었다. 영화가 먼저 나와서 표절 의문도 있었다지만, 제작 시기는 <거꾸로 된 파테마>가 빠르다고 하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보다 <거꾸로 된 파테마>를 보고 나면 <업사이드 다운>은 또 어떤 맛일까 궁금해지긴 한다. 이것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요즘, 모두가 평화의 메시지를 던진다. 거꾸로 된 혹은 반대인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이야기를 걸어온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서로 겨누고 싸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이것도 현실이며, 아닌 게 아니다. 이쯤에서 크게 스포일러 하나 하겠다. < 거꾸로 된 파테마 >는… 그게 아닌 게 아닌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