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라쥬
- 감독
- 강민우
- 제작년도
- 2007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극장이 대구에 있다는 것과 그 극장이 동성아트홀이라는 건 웬만하면 아실 법하다. 그런데 이 극장이 지금 대변신 중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시다시피 대구 동성아트홀은 지난 2004년부터 지금까지 2천 편 이상의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상영한 대구지역 영화문화의 메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작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예술영화관 지원 사업에서 탈락하며 오히려 더 알려지게 된 이 극장에서, 필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간단히 역사를 말씀드리면 지역의 대표적인 극장 만경관에서 간판 화가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배사흠 대표가 1992년 오랜 꿈인 자신의 극장을 열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지금의 동성아트홀이다.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몰라도 당시에 지은 극장 작명의 의미가 ‘대구의 중심가 동성로에서 아트한 영화들을 상영하는 극장’이라는 것이었다. 인수 후 당시로써는 상당한 비용인 3억 원가량을 들여 시설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렀는데 멀티플렉스가 본격화 된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어 비디오 관으로까지 전락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2004년, 시네마테크를 운영하며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필자와 위의 상황에 직면한 동성아트홀이 만나 곧바로 협력을 약속하고 함께 영진위 예술영화관에 지원해 극장의 성격을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극장의 성격을 알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2000년대 후반에 이를 때까지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 극장을 서울 대학로의 동숭아트홀로 부르곤 해서 필자는 매번 이를 설명하느라 설움 아닌 설움을 겪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대구경북시네마테크의 전용관에 상응하는 기능을 동성아트홀이 맡아 줌으로써 해외의 많은 고전 작품들을 지역에 소개할 수 있었던 큰 기쁨이 있었다. 지역에서 예술독립영화의 첨병 역할을 해왔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CGV대구에 무비꼴라쥬가 생기고 롯데시네마대구에 아르떼라는 예술영화관이 생기는 등 치열한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기 매우 힘들어진 상황이 전개되었다. 또한 이 극장들이 모두 몇백 미터 거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상영작들도 겹치게 되는 상황이 지속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작년 영진위의 예술영화관 사업에서마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탈락하게 됨으로써 급기야 올해 2015년 2월 25일 동성아트홀은 폐관에 이르게 되었다. 이 때 여러 자구노력이 있었고 지역에서도 폐관을 안타까워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많은 언론이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여기서 다시 기사회생의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현재의 대표인 광개토병원 김주성 원장이 이 안타까움을 알고 선뜻 극장인수에 나서 주었고 그 결과 동성아트홀은 회생할 수 있었다. 배사흠 대표를 명예관장으로 하여 그 정신을 계승하고 기존 직원들이 운영을 맡아 운영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첫 사업으로 노후화된 시설을 개보수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공중이용시설인 극장이라는 특성도 있어 메르스가 대구에 퍼지던 시점인 6월에 곧바로 휴관공지를 하고 리모델링에 착수했다. 리모델링 중인 동성아트홀 이상 지난 20여 년의 역사를 숨 가쁘게 말씀드렸다. 지금은 상영시설과 휴게시설을 중심으로 대변신을 하고 있는데 실제 그 폭과 깊이를 정하는 데는 상당한 고민과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현재의 시설을 개보수한다 해도 근본적으로 건물의 취약점이 있어 보수에 드는 비용을 어느 선에서 정할지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동성아트홀에서 보다 안정적이고 확고한 시설로 운영해야 한다는 고민과, 다른 곳에 좀 더 안정적인 예술영화관을 하나 더 설립한다는 중장기적인 계획이 함께 하기 때문에 개보수의 규모를 산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예술독립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목마름을 외면할 수 없었고, 현재의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보자는 결심이 서 바로 리모델링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향후 동성아트홀은 어떤 극장이 될 것인가. 현재 주변 환경을 보면 CGV아트하우스가 앞에 있고, 옆에 실버영화관이 있으며, 그 근처에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이 있다. 그러한 지리적 여건과 함께 영화관의 성격이 함께 결정되는데, 실질적으로 대중성이 있는 예술영화의 경우 CGV아트하우스가 많이 상영하게 될 것이고, 국내 독립영화의 경우 전용관인 오오극장이 전담하는 형국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성아트홀은 (CGV아트하우스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다양한 예술영화 전시장으로써의 역할과 독립영화에 대한 일정 역할도 함께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전에는 이 모든 영화들을 동성아트홀이 담당해왔는데, 어떤 면에서 그 스펙트럼이 많이 좁아진 셈이다. 극장 자체로 보면 수익성은 더 나빠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간 시설의 노후화도 관객들에게 상당한 불편을 준 셈이라 이러한 부분을 개선한다면 근처의 극장들과 더불어 예술영화와 독립영화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 향상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있다. 동성아트홀 근방 극장 지도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지역에 소개해 지역민의 영화문화를 더 넓고 튼튼하게 한다는 소명의식을 뒷받침할 종합적 플랜의 일환이 아닌, 저마다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방식에 의해 유사한 극장이 늘어나게 된 점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동성아트홀은 그 존재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대구 지역에서 다양한 영화를 소개한 산파로서의 자긍심을 안고 있기에 오늘 스크린 너머 들리는 망치 소리에서 희망을 본다. 또한 보다 안락한 여건에서 보다 다양한 영화들이 동성아트홀을 메우고 거기에 환호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영화문화의 다양성과 문화 복지라는 큰 꿈을 꾸며 다시 재기할 동성아트홀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고 싶다. 아울러 지자체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에서도 문화도시 대구를 말로서만이 아닌 보다 실질적으로 이룰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으로서 동성아트홀에 대한 관심과 접근이 있기를 바라며 개봉관이 없어 힘들어하던 많은 감독들과 영화사, 그리고 스크린 독과점으로 영화선택권이 박탈당한 채 답답함을 하소연하던 그 관객들의 열정이 다시 동성아트홀에 가득 담기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힘들지만 보람찬 여정에 함께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언제까지나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다.
주방기구, 각종 채소, 각종 문구류, 진흙으로 꼴라주 된 얼굴들이 서로 토해내고 삼키는 행위를 반복한다. 진흙으로 빚어진 남녀 사이에서 한 덩어리가 태어나고 남녀는 서로 할퀴고 파괴하면서 무너진다.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 서로 나이프, 구두, 연필깎이 등을 뱉어내면서 격렬하게 충돌한다 < 대화의 가능성 Dimensions of Dialogue >은 체코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애니메이션 작가 얀 슈반크마이에르(Jan Svankmajer)의 1982년 작품으로, 3개의 에피소드(1부: 영원의 대화, 2부: 정열의 대화, 3부: 불모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각종 오브제의 기이한 변형과 조합을 통해 부조리한 상황, 인간 소외와 관계의 상실, 그리고 기계화되고 관료화된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를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한 이 작품은 베를린, 안시, 멜버른 영화제 등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1934년 프라하에서 태어난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조각, 무대디자인, 인형제작, 회화, 꼴라주 등 다양한 조형예술 분야를 공부하였으며, 1964년 그의 첫 번째 단편 애니메이션 <마지막 속임수 The Last Trick>를 제작하면서 그만의 독창적인 애니메이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30여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과, 장편 영화 < 앨리스 Alice > < 파우스트 Faust > < 쾌락의 공범자들 Conspirators of Pleasure > < 오테사넥 Little Otik > 등을 제작하였다.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애니메이션은 체코 초현실주의 예술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데, 체코 초현실주의 예술은 1968년 소련에 의한 체코 침공과 ‘프라하의 봄’이라고 불리는 민주화 운동을 겪으면서 모순되고 억압적인 사회에 비판적이고 전복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특히 1972년 제작한 <레오나르도의 일기 Leonardo’s Diary>에 대한 국가 검열로 인해 얀 슈반크마이에르는 79년까지 7년 동안 영화제작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 대화의 가능성 >은 그가 영화제작을 금지당한 기간 동안 시도한 예술적 모험과 실험이 집중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세페 아르침볼도 특히 < 대화의 가능성 > 중 ‘1부: 영원의 대화’는 초현실주의 미술의 선구자라고 평가되고 있는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Arcimboldo)의 회화와 연관성이 깊다. 아르침볼도는 과일, 야채, 물고기, 각종 사물 등을 조합하고 꼴라주하여 얼굴 그림을 그렸는데, 이로부터 영향 받은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오브제 꼴라쥬 기법은 그의 애니메이션뿐 만이 아니라 그가 작업해낸 다양한 그림, 조각, 공예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미술 세계는 그가 직접 저술하고, 일본어판으로 출간된 책 「슈반크마이에르의 세계」와 「슈반크마이에르의 박물관」에 다양하고 방대하게 기술되어 있다. 「슈반크마이에르의 세계」, 「슈반크마이에르의 박물관」 그리고 초현실주의와 그로테스크 미학의 거장,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 The Collected Shorts of Jan Svankmajer, Vol. 1 & 2 >, < Collected Shorts of Jan Svankmajer >, < Jan Svankmajer Complete Short Films > 등의 DVD 타이틀로 만날 수 있으며, 국내에서는 그의 장편 <앨리스 Alice>가 출시되어 있다.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애니메이션 < 대화의 가능성 Dimensions of Dialogue >는 아래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http://vimeo.com/17034946 http://vimeo.com/12073562
< 두 개의 문 >이 6만 명의 관객과 만났다. 제작진의 한 사람으로서 몹시 기쁘다. 하지만 동시에 참 낯설다. 독립영화를 개봉하는 모든 이가 꿈꾸는 1만 관객을 훌쩍 넘기다니, 낯설 수밖에. 때로는 비현실적 상황인 요즈음, 그 안에서 ‘어떤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흥행 현상을 경험하면서 < 종로의 기적 >의 ‘소박했던’ 개봉 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절대적 매커니즘을 목격한 기분이다. < 두 개의 문 > 개봉 첫 주의 높은 관객 점유율과 뜨거운 반응 덕분에 우리 모두는 상영관 확대를 기대했었다. 특히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을 통해 ‘독립영화 음영지역’에서도 개봉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두 개의 문>의 기록적인 흥행에도 불구, 멀티플렉스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인 ‘무비꼴라쥬’나 ‘아르떼’ 밖으로 나가긴 쉽지 않았다. 이미 수용 한계에 다다른 전용관이 아닌 일반 상영관에서도 상영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극장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 두 개의 문 >은 멀티플렉스의 2부 리그 소속이었다. 일반 상영관과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은 철저히 분리된 시스템이었다. 물론 견고한 극장 문이 열리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 문으로는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이 날렵하게 치고 들어왔다. 전용관의 상영작들이 문 밖을 나서는 것은 1부 리그 진출이 아닌 종영을 의미했다. 가끔 지역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먼저 상영을 요청, 일반 상영관에서 짧게나마 개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혜’는 멀티플렉스 본부의 지시가 아닌 현지 관객들의 끊임없는 상영 요청 덕분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부 리그는 박 터질 수밖에 없었다. 사이좋게 멀티플렉스에 진출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들은 전용관 안에서 곧 서바이벌 오디션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우열이 정해졌고, 순번이 매겨졌다. 전국 멀티플렉스 좌석 수의 1%도 안 되는 전용관을 수십편의 독립?예술영화들이 나눠가졌다. 그러다보니 전용관의 동료들이 괜스레 미워지기까지 했다. 유수한 영화제를 석권한 거장들의 아트하우스 작품과 스타급 명배우를 기용한 작가주의 영화들과도 한 배에 올라 경쟁해야 하다니, 이건 좀 불공정하지 않은가? 이왕 전용관을 운영할 거라면 국내파와 해외파,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의 섬세한 구분과 안배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복잡다단한 생각에 이르자 억하심정에 갑자기 분노가 터져 나왔다. “다양한 영화들에게 극장 문을 열면 될 것을, 왜 이런 구별 짓기까지 해야 하는 거냐고!” 포화 상태에 이른 가두리 양식장에 있으려니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여름 블록버스터의 파상공세가 시작되고, < 두 개의 문 >의 관객 점유율이 떨어지는 시점부터 그 분노는 서서히 안도감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전쟁터 같은 여름 극장가에서 이마저도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고마워라, 멀티플렉스 전용관이여!’ 이 지경에 이르니 조삼모사가 따로 없다. 순간 <돈의 맛>에서 쌍용자동차 진압 장면에서 재벌가의 아들이 이죽거렸던 대사가 떠올랐다. “싸구려 아파트 하나 줘서 중산층입네 하고 살게 했어야 하는데.” 아주 독한 가정이지만, 나는 극장 재벌의 머리 속엔 분명 이런 대사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멀티플렉스가 전용관 하나 던져주면 그 안에서 아웅다웅 독립영화 개봉합네, 예술영화 합네 하며 살겠지.” 전국적인 네트워크, 다양한 관객을 염두에 둔 빼어난 접근성, 최신의 쾌적한 시설의 풍부한 자원을 확보한 멀티플렉스. 장사의 이치에 통달한 극장 재벌들은 자신의 멀티플렉스에서 개봉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에 자족하도록 매트릭스를 펼쳐놓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그들은 ‘두 개의 문’을 절묘하게 배치하여, 영악하게 이용 중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문을 열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척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뽐내고, 다른 한 쪽 문은 굳게 닫은 채 그 뒤에서 게걸스럽게 긁어모은 돈의 맛을 탐닉하고 있을 것만 같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도 특별한 감격의 순간은 찾아온다. 머지않아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 두 개의 문 >의 1만 번째 관객을 만나기 때문이다. <두 개의 문>의 총 6만 관객 중 15% 이상이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경쟁 논리가 아닌 조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가짐, 흥행 스코어에 따라 난잡하게 시간표를 바꾸지 않고 관객들과 충분히 만날 수 있는 꾸준한 상영 회차를 안배하는 고집, 무엇보다 독립영화를 향한 응원의 마음과 무한한 믿음이 왜 중요한지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 두 개의 문 > 개봉을 앞두고 개봉을 통해 자력갱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작은 바람이라 했는데, 개봉을 경험하며 아주 큰 바람이 생겼다. 내가 만든 영화로 큰 수익을 얻는다면 극장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꿈. 물론 독립영화 전용관으로! 모두들 치기 어린 장래희망이라 했던 영화감독의 꿈도 25년 만에 이뤘으니, 극장을 짓는 꿈은 20년 정도면 가능하려나. 아차, 그러려면 일단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구나. 자! 그럼 저는 이제 차기작 준비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