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
- 감독
- 김인수
- 제작년도
- 1974
- 출연
- 박일, 김승남, 조학자, 이예성, 석인수, 유지인, 하명중, 이낙훈, 성진아, 용일화, 백소진, 방희정, 이예민, 김기종, 노사강, 이승렬, 주일몽, 박병기, 김용학, 임예심, 윤일주, 이영호, 임해림, 임성포, 조덕성, 손전, 김지영, 나정옥, 최재호, 추봉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국어 시간에서 접했을 소설 『오발탄』(이범선, 1959). 1959년 발표된 이 작품은 출간 직후부터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듬해인 1960년에 영화로 제작되어 1961년 봄 개봉되기에 이른다. 영화는 “레이션의 껍데기로 지붕을 이었다”라는 원작의 건조하면서도 날카로운 묘사가 보여주는 해방촌의 모습처럼, 전후 서울의 실상을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사실적 재현의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며, < 오발탄 >(유현목, 1961)을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치는 원작의 뛰어난 영화화라는 차원을 넘어선다. <오발탄>은 당대 서울의 도시 공간을 있는 그대로 포착함으로써, 도시사와 도시계획사 연구에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서울은 국가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서의 도시계획과 고도경제성장의 동력 속에서 매해, 아니 매달 철거와 신축이 반복되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맥락을 감안했을 때, 1960년 하반기에 촬영된 <오발탄>은 6.25 전쟁과 일제강점기의 상흔이 생생히 남아있던 서울의 민낯을 참으로 절묘한 시점에 카메라에 담아낸 셈이다. 덕분에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전쟁 직후 서울의 모습을 마치 타임캡슐을 열어보듯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다. 이제 영화가 포착한 서울의 다양한 면모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철호의 판잣집과 계리사 사무실 영화 초반, 카메라는 주인공 철호( 김진규 )가 산비탈의 판자촌 사이를 걸어 나오는 모습을 비춘 뒤, 곧장 서울 도심의 계리사 사무실을 비추는 시퀀스를 보여준다. 사는 곳은 무너져가는 판잣집이지만, 일터는 시내 한복판의 말끔한 오피스 빌딩이라는 점에서, 당시 서울의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투영된 도시 공간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감독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철호의 계리사 사무실이 위치한 빌딩 입구에는 ‘대한상공회의소’라는 명판이 걸려 있는데, 2025년 현재까지도 상공회의소는 남대문 바로 옆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비탈의 판잣집을 내려온 철호가 서울의 중심에서 일한다는 설정은, 그가 아침저녁으로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장치라 해석할 수 있다. 판잣집 사이로 내려와(상) 계리사 사무실(대한상공회의소 건물)로 들어서는 철호(하) 한국상업은행 남대문지점 1957년에 준공되어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상업은행 남대문지점(現 흥국생명빌딩)은 영화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등장하는 건물이다. 카메라가 남대문을 잡으면 반드시 화각에 들어오는 탁월한 입지 덕분에, 1966년작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에서도 남대문 주변 전경을 비출 때면 이 빌딩이 당당히 중앙을 차지한다. 건축가 나상진(1923-1973)이 정성 들여 설계한 오피스 빌딩으로, 지금 보아도 유선형 외관이 인상적이며, <오발탄> 촬영 당시에는 더욱이 초현대적이고 세련된 자본의 상징으로 주목받았을 것이다. 극중에서 철호의 동생 영호( 최무룡 )는 이 빌딩을 올려다보았다가, 후반부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마침내 은행강도를 감행하는데, 이 두 시선의 대비를 통해 감독은 전후 제대군인들의 비극적 처지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현대식 빌딩을 의도적으로 대조한 것으로 보인다. <오발탄> 중 한국상업은행 남대문지점 한국산업은행 남대문지점 터에 현재 자리한 흥국생명빌딩 (사진: 필자 제공) 철호가 내려다본 서울 러닝타임 63분경, 철호는 집에 들어가려다 노모( 노재신 )의 “가자, 가자” 소리를 듣고 발길을 돌려 남산 중턱에서 서울 전경을 내려다본다. 남산 중턱에는 판잣집이 들어서기 이전, 일제강점기부터 부유층을 위한 주택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주택지의 거주자들은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철호와 같은 판잣집 주민들은 언덕 한참 아래 한강로의 전차 정류장에서부터 집까지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그렇기에 철호가 내려다보는 서울의 전경은 부의 상징이 아닌 가난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부유한 이들이나 관광객이 전망대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것과, 산비탈 빈민이 도심을 ‘마지못해’ 내려다봐야 하는 현실의 차이를 이 시퀀스는 절묘하게 포착해낸 것이다. 철호가 내려다본 서울 전경 영호의 도주 영화 후반, 은행강도를 감행한 영호의 도주 장면은 경찰 무선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종로2가와 청계천4가, 5가, 달리는 노면전차의 궤도, 그리고 종암동으로 이어지는 추격전은 당시 구간별로 진행 중이던 청계천 복개 공사 현장에서의 총격전까지 더해져 강렬한 긴박감을 자아낸다. 1930년대 후반 시작되어 전쟁 이후 1958년에 재개된 청계천 복개 공사는 자재와 예산 부족으로 부분적으로만 진행되었는데, 이는 영호와 같은 도망자가 복개된 지하 공간을 드나들 수 있는 개연성을 자연스럽게 제공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전차를 타고 도망가는 영호의 모습 대신, 카메라가 어지럽게 뻗어나가는 전차 선로를 속도감 있게 포착해 낸 장면이다. 특히 쭉 뻗어나가던 선로에서 갈라져 나가는 분기점을 담아냄으로써, 감독은 영호의 돌이킬 수 없는 일탈을 은유적으로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복개된 청계천의 지하 공간 전차가 빠르게 달리는 와중 포착된 선로의 분기점 철호의 배회 영호는 결국 체포되고 부인은 출산 중 사망한 상황에서, 넋이 나간 철호는 서울 도심을 정처 없이 배회한다. 러닝타임 95분경, 딸에게 사주고 싶었던 신발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철호의 뒤로 반도호텔(1938년 준공, 1976년 철거)과 미도파백화점(現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의 세련된 외관이 드러난다. 당시 이 거리의 랜드마크였던 미도파백화점과 반도호텔 중 반도호텔은 롯데호텔로 재건축되며 그 흔적을 감췄지만, 미도파백화점은 리모델링을 거쳐 롯데백화점 영플라자로 남아있다. 덕분에 지금도 을지로입구역에서는 영화 속 장면과 동일한 구도로 <오발탄>의 의도를 마주할 수 있다. 극중 반도호텔이 등장한 자리의 현재 모습 (사진: 필자 제공) 극중 미도파백화점과 현재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명동본점 (사진: 필자 제공) 유현목 (1925-2009) 감독은 생전 인터뷰에서 영화 속 판잣집을 촬영하기 위해 직접 해방촌을 방문하여 영호네 집과 같은 실제 거처를 물색했다고 밝혔다. 감독은 원작에서 상대적으로 생략된 서울의 도시공간을 섬세하게 담아내면서, <오발탄>은 시간이 흘러도 당시 서울 시민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빈민들의 삶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이는 마치 ‘서울의 도시 공간’이라는 이름 없는 배역이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것과 같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무언의 명배우의 연기를 다시금 주목하고 있다. 김영준 연구원이 들려주는, <오발탄> 속 서울에 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국영화X공간] 영화 "오발탄". '욕망과 좌절의 거리 서울' 클릭! 김영준(도쿄대학 특임연구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궁시렁쟁이 40대 아저씨, 덩치 크고 나이 먹은 트렌스젠더, 반항기 가득한 10대 가출 소녀. 도대체 어울릴까 싶은 이 희한한 조합의 노숙자 3인방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더 나을 것도 없는 같은 노숙자 주제에 사사건건 잔소리를 해대는 40대 아저씨 `긴`과 이 꼴이 못마땅한 가출 소녀 `미유키`는 크리스마스인 오늘도 어김없이 티격태격 싸움질을 하고 있다. 싸움도 말릴 겸, 트렌스젠더 `하나`는 이 둘을 데리고 미유키를 위해 눈 여겨둔 크리스마스 선물을 찾으러 분리수거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쓰레기를 뒤지던 3인방은, 점 찍어둔 선물은 웬걸 얼굴에 점이 있는 작디작은 갓난아기를 발견하게 된다. 놀람과 기쁨과 곤란이 한 공간에 섞인다. 엉킨 실타래 같은 각자의 삶으로부터 도시의 틈새까지 도망 온 그들의 구질구질한 일상 속에, 또 하나의 실뭉치가 비비고 들어온 것이다. 긴과 미유키는 흔치 않게 한마음이 되어 한사코 거부하지만 씩씩하고 감수성 넘치는 트렌스젠더 하나상의 다소는 과격한 시위로 결국 이들은 아기의 부모를 직접 찾아주기로 결정하게 된다. 사랑을 버리거나, 혹은 잃거나 또 사랑에 내몰려 스스로를 버린 그들이 작은 아기에게 자신을 나누기로 선택을 한 순간, 별것 없던 삶 속에서 사소하고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나와 무관한 한 생명의 행복을 위해 동분서주 걷고 달리는 사이 각자들의 엉킨 과거에 실마리가 한 가닥씩 풀려가고 이들의 삶에도 생명력이 차올라 간다. 한국 내 상영 제목인 <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은 매우 잘 지어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 내내 크고 작은 행운과 우연들이 이들을 축복해 주고 이끌어 주지만 도무지 억지스럽게 느껴지거나 눈살이 찌푸려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사소한 행운들이 쌓고 쌓이며 점점 커지는 장면들은 그럴듯하니 시기적절하게 여겨진다. 마치 그동안 막혀 있던 세 명분의 행운이 이날 한 번에 터져나 오는 듯하더니 결국엔 기적을 일으켜 아기를 지켜내는 장면에 와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다. 故 곤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도쿄 갓파더스>도 시나리오와 연출이 굉장히 치밀해 한 치의 틈이나 흠을 찾기가 힘들지만, 그 의도와 즐거움은 친절하게 느껴질 만큼 알아채기 쉽다. 화면 곳곳에는 재미있는 요소들이 디테일하게 뿌려져 있고 자잘한 이야기 도구들이 `보기 좋게 숨어` 있어서 잠시도 눈을 떼기가 싫어진다. 그래서 보통은 원작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더빙판은 찾지 않는 편이지만 이 애니메이션만큼은 더빙판이 없다는 것에 아쉬움이 생긴다. 자막을 읽어 내용을 따라가는 것 못지않게 영상에서 주는 즐거움이 참으로 크기 때문이다. 아마도 <도쿄 갓파더스>는 <쓰리 갓파더스> 라는 1948년 제작된 맥시코 영화에서 모티브를 잡아온 것 같다. 이 영화는 세 명의 은행 강도가 황무지에서 도망 중에 죽어가는 여자에게 아기를 부탁받은 후 아기의 생명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해 나가고 결국엔 구원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도쿄 갓파더스>에서 나오는 불행한 인물들은 대체로 다른 형태의 같은 결핍을 갖고들 있다. 그리곤 곤고하고 사랑 없는 현실로부터 달아나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가거나 죽으려 한다. 이건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세상,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그저 풀어낸 듯 평범하고 불쌍하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너를 위해 나를 내어놓자 우리의 결핍이 채워진다. 애정이 그 공백을 메꾸어 가고 칙칙한 여백 속에 색깔이 차오른다.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그들만의 아기 예수는 그렇게 노숙자 3인방의 삶에 구원을 던진다. 그리고 유쾌하게 잡아챔으로써 우리에게도 희망을 품게 해준다. 따뜻하다. 즐겁다.
< 기억의 잔상 >의 원제는 'Embers'이다. 장작 등이 불에 타고 사그라질 때 남는 마지막 붉은 기운을 일컫는다. <기억의 잔상>에서 타마라 스테파니안 감독은 구 소련연방 시대를 살았던 할머니 세대가 지닌, 이젠 희미해져가는 그 마지막 기억을 담고 있다. < 기억의 잔상 >의 시작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한다.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고 할머니와 남다른 애정을 나눴던 감독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정작 할머니에 대해, 할머니가 살아온 삶에 대해 무지했음을 깨닫게 된다. 할머니가 살았던 삶을 되짚기 위해 손녀 타마라는 할머니와 청춘을 함께 보내고 평생을 친구로 지냈던 대학 시절 친구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시작한다. 다정하고 쾌활한 여성이었으며 동시에 열렬한 공산당원이기도 했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의 조각이 모여지면서 영화는 할머니를 넘어서 할머니가 살았던 세대의 꿈과 열정을 기록하는 기회로 변모해 간다. 아르메니아는 굴곡진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세기말부터 시작된 터키의 탄압은 세계 제1차대전 기간 중 60만명에 이르는 대학살로 이어지면서 많은 수의 아르메니아 인은 망명의 길을 선택했다. 아르메니아는 1920년대 소련연방에 편입되었고, 소련연방이 해체되면서 독립국가가 되었다. 감독의 할머니 타마라의 세대는 바로 소련연방에 편입된 이후 태어나 성장하고, 연방의 해체과정과 아르메니아의 변화과정을 직접 겪은 세대이다. 이들 세대는 소련연방이 약속했던 평등과 희망을 기억하는 세대이며, 자치국가로 독립한 이후 밀려드는 자본주의에 의해 급격하게 변화해가는 사회와 전통이 사라져가는 것을 목격한 세대이다. < 기억의 잔상 >은 할머니 세대의 모습을 오래된 물건들과 기억으로 채워진 그들의 공간과 그들의 깊은 주름에 새겨진 눈물과 웃음의 기억을 아름다운 색감과 정교한 프레임으로 잡아낸다. 다큐멘터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터뷰 장면들은 마치 한 폭의 오래된 초상화처럼 고풍스러움과 따뜻함 그리고 화려한 색감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들이 풀어내는 기억의 언어만큼이나 침묵을 주시하는 과정에서 타마라 스테파니안 감독이 이들 세대에 갖고 있는 연민과 애정이 배어나온다. < 기억의 잔상 >은 내용의 대부분이 인터뷰로 이루어진 다큐를 어떻게 영화적인 미학으로 풀어가는가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라는 개인적인 기록을 어떻게 그 세대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 다큐로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인가 질문하며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기억의 잔상 >은 부산국제영화제의 다큐멘터리 펀드인 AND(아시아다큐멘터리네트워크: Asian Network of Documentary)의 지원을 받았고 2012년 최우수 아시아다큐멘터리 상인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하였다.